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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비도덕적인 뇌/이상건 서울대 의대 신경과 교수

    [열린세상] 비도덕적인 뇌/이상건 서울대 의대 신경과 교수

    최근 반사회적 인격장애자가 저지르는 엽기적인 범죄들이 끊이지 않는다. 감정이 결여된 범죄의 잔인성에 소름이 끼치면서 인간이 저지르는 죄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인지 궁금해진다. 인간이 원래 악하다는 원죄설, 비뚤어진 사회 또는 가정이 원인이라는 설, 정신의 문제까지 다양한 설명이 있다. 그러다가 정신의 기원인 뇌의 이상이 범죄의 원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과거 프란츠 갈이 이야기한 골상학이 원조다. 겉으로 보이는 머리 모양으로 인간성의 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인데, 발상은 재미있지만 물론 엉터리다. 그런 와중에 특정 뇌 부위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고 이해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들이 확인되면서 뇌가 성격 및 범죄의 기원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아예 정상적인 뇌와 비도덕적인 뇌의 회로는 처음부터 다른 것인가? 더 나아가 뇌의 구조와 기능을 보는 여러 가지 기법이 이 둘 사이의 차이를 밝혀낼 수 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를 밝히기 위해서는 정밀하게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이 장치들은 필자가 과거에 소개했던 ‘미래의 거짓말탐지기’에서 사용되는 기기들과 동일하다. 자기공명영상으로 우선 정밀하게 뇌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뇌 각 부분의 부피를 정확하게 측정하여 정상인과 비교할 수도 있다. 뇌의 기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과 양전자방출 단층촬영을 이용한다. 전자는 자기공명영상 기계의 자기장을 이용하는 것이고, 후자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다는 데 차이점이 있으나 원리는 마찬가지다. 기능을 하는 뇌 부위가 원료를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산소를 가진 피가 많이 몰리게 되거나 포도당을 활발하게 이용하게 되고 이를 사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도덕적인 뇌의 특징을 보기 위해 이 같은 기법을 사용하는데,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그래도 범죄학이 발달한 미국과 유럽에서는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당장은 무리지만 미래에는 도덕적 판단을 하고 이에 따라 의사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물론이고 인격의 핵심과 같은 영역까지 영상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사회적 성격에서는 ‘전전두엽’(뇌의 가장 앞부분)에 공통적인 이상이 발견된다. 사회적인 능력을 평가하는 게임을 하거나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그림을 보여주어도 반사회적 인격장애에서는 이 부위가 별로 작동하지 않는다. 전전두엽의 바깥쪽 부위는 계획을 세우는 기능을 하는데, 계획적 범죄자의 경우 이 부위가 잘 작동하지만 충동적 범죄자의 경우 이 부위의 기능이 떨어져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반사회적 성격을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뇌 문제이므로 관대히 보아주자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게다가 이런 소견을 보인다고 다 이런 장애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뇌의 이 부분들의 원래 기능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전전두엽은 도덕적인 판단을 하고, 사회적·감정적 정보를 처리하는 장소다. 여기에서 옆 뇌에 있는 편도핵이라는 부위도 한몫하는데, 이 자리는 자신의 행동에 의해서 다른 사람이 고통받을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다. 결국 이 두 자리에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적·도덕적 판단 기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나 자신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특성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 방법이 현재의 심리 검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거나 그보다 더 정확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검사법을 보완할 수는 있겠다. 매우 객관적이라는 장점도 있다. 잘 발전시키면 치료 성과를 보는 데 이용할 수 있고 또 한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다시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을 평가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불구속 상태에서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비극적 사건도 막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반사회적 인격장애뿐 아니라 서민들이 한푼 두푼 맡긴 돈을 제 주머니 돈처럼 써대고 거액을 횡령해서 밀항선을 타는 저축은행 회장님 같은 분들도 미리 가려낼 수 있을지 모른다.
  • [열린세상] 영리의료법인 논쟁 되돌아보기/조원동 한국조세연구원장

    [열린세상] 영리의료법인 논쟁 되돌아보기/조원동 한국조세연구원장

    주변 의사들에게 ‘자기자본’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곤 한다. 대체로 돌아오는 대답은 ‘자기 힘으로 동원가능한 자금’이다. 본인의 자금이거나 주변 또는 금융기관에서 빌려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라는 말이다. 자본주의 발전과정 맥락에서 보면, 상업자본주의 시절의 사고방식이다. 상업자본주의 시절 사업자금을 마련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민간부문에서 자금이 많이 드는 큰 사업을 하는 게 어려웠던 여건이었다. 사업에는 무한책임이 따르고, 빚을 갚지 못하면 패가망신해야 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인간성 좋은 안토니오가 무역업을 하는 친구 빚보증을 섰다고 죽음 문턱까지 가지 않았던가? 사업자금 조달의 물꼬가 터진 것은 산업자본시대에 주식회사 제도가 도입되어 양도가능한 주식거래가 활성화되고 주주에 대한 유한책임이 확립된 시점부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죽하면 중국의 장쩌민 전 주석이 뉴욕 증시를 중국경제가 미국에서 배워야 할 핵심과제로 지목했을까. 우리의 의사들도 이러한 산업자본주의의 장점을 결코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주식투자 전문가로 명성을 쌓은 의사도 있고, 필자 주변만 보아도 펀드투자 등 재테크를 실천하는 의사들도 꽤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 의사들은 여전히 상업자본주의 시절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어야 할까? 사회주의인 중국에서도 심지어 국영기업들까지 주식공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바로 비영리법인 족쇄 때문이다. 사실 의료행위도 대가를 전제로 치료라는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영리행위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영리법인 체제에서 의료행위 자체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현재처럼 의료기관에 대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유지된다면 환자들은 영리 의료법인에서도 보험수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모든 의료기관이 다 영리법인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영리법인이 허용된 외국에서도 대학병원을 포함한 유수 의료기관이 여전히 비영리법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비영리법인은 대규모 기탁자산을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에서 영리법인이 허용된다는 의미는 단지 사업에서 철수할 때 자본 회수가 가능하고 투자한 자금에 대해 이윤배당이 가능해진다는 것뿐이다. 그러면 비영리법인에서는 자본 회수가 불가능하고 투자한 자금에 상응한 이윤도 취할 수 없다는 말인가? 필자가 파악하기로는 그렇지 않다. 비영리법인도 이사장직이 거래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굳이 이윤 배분 형식이 아니더라도 투자한 자금에 대해 대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굳이 영리법인 체제와 차이점을 찾자면 거래가 음성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은(?) 차이로 인한 결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비영리법인체제 하에서는 거래가 시장을 통하지 않고 이루어지다 보니, 형성되는 가격 자체가 투명하지 않고, 이러한 불확실성은 거래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시장의 최대 적은 불확실성이라고 하지 않던가? 영리법인으로 자금조달 선택의 폭이 넓어질 때 나타날 가장 큰 변화의 하나가 의료기관 간 인수·합병(M&A)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고가 의료장비 보유 면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병원들의 8할 이상이 200병상 미만이라는 우리 의료산업의 현실 때문이다. 의료기관 간 M&A는 우리 의료산업 발전은 물론 환자들의 후생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병원 간 M&A가 이뤄지면, 병원마다 고가 의료장비를 구비할 필요성은 적어질 것이다. 어느 한 병원을 급성기 병상병원으로 지정하고 응급차를 통해 환자를 모아 치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고가 의료장비를 놀리지 않게 하기 위해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해야 할 유인도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언제 이러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발전에 수백년이 소요되었지만, 우리의 영리의료법인 논의는 이제 겨우 십수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 한다면, 우리 사회에 대한 지나친 자조(自嘲)가 아닐까.
  •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김문이 만난사람] 정약용 탄생 250주년 맞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누구나 출생의 비밀은 있다. 이름을 빛낸 위인의 경우에는 더욱 관심이 쏠린다. 그 비밀의 문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다산 정약용은 1762년(영조 38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250년 전인 음력 6월 16일, 아버지 하석 정재원(荷石 丁載遠)과 어머니 해남 윤씨(海南 尹氏) 사이에서 출생했다. 태어난 곳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아버지는 대과에 급제하지 않았지만 영조 임금의 특별한 지시로 연천현감, 화순현감, 예천군수 등 고을 수령을 지냈다. 조정에 들어와서는 호조좌랑과 한성서윤을 지내고, 다시 수령으로 나가 울산부사를 거쳐 진주 목사까지 지냈다. 어머니는 고산(孤山) 윤선도의 후손이요,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손녀였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윤두서는 한국 회화사에 유명한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세 부인 사이에 모두 5남 5녀, 그러니까 10남매가 있었다. 첫 부인은 24세로 요절한 의령 남씨. 소생으로 큰아들 약현(若鉉)이 있다. 둘째 부인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若銓), 약종(若鍾), 약용(若鏞) 3형제와 딸을 두었다. 딸은 나중에 조선 최초의 영세교인인 만천(蔓川) 이승훈에게 시집간다. 다산 정약용의 나이 9세 때 어머니 해남 윤씨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12살 때 서울에서 20세의 김씨(1754~1813)를 데려왔다. 어린 다산을 친자식처럼 돌봐준 그가 바로 서모(庶母) 김씨다. 서모 김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의택(金宜澤)의 딸로 슬하에 3녀 1남(약횡)을 두었다. 다산의 작은형 약종은 형제보다 뒤늦게 천주교를 접했지만 그 믿음이 독실하여 신유사옥 때(1801) 희생됐다. 전도에 힘쓰다가 책롱사건(册籠事件)으로 마흔 둘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 형 약전과 막내(다산)가 믿음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형제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했다. 엄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은 약종의 아들 철상(哲祥), 하상(夏祥), 딸 정혜(貞惠) 역시 천주교로 인해 요절했다. 형 약전은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다. 다산과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의 인연뿐만 아니라 다산의 학문을 알아주는 지기(知己)이기도 했다. 1801년 11월 하순 함께 귀양길에 올라 나주 율정점(栗亭店)에서 눈물로 헤어진 후 16년 동안 서로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약전은 그의 나이 59세인 1816년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떴다.(다산연구소 자료 참조) 올해 정약용 탄생 250주년을 맞아 다산의 생애와 학문, 사상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국립박물관과 실학박물관의 전시회, 음악제, 국제학술대회 등이 잇따른다. 지난 3월부터 올 12월까지 계속된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다산의 일대기가 처음으로 판소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산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이 행사는 오는 9월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정해석 명창에 의해 1시간 20분동안 진행된다. 창본은 김세종씨. 특히 영문판 CD까지 제작, 세계 각국에 보급할 예정이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다산을 기리는 판소리 무대는 있었지만 75년 생애를 오롯이 담기는 처음이다. 이 밖에 다산이 직접 쓴 글씨와 그림을 전시하는 ‘한국 서예사 특별전-다산 정약용 탄신 250주년 기념전’이 다음 달 9일부터 7월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또 다산 기념 음악회가 8월 24일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다. 다산연구소의 박석무(69) 이사장. 그는 요즘 이 같은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올해로 다산 연구에 몰두한 지 40년째가 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순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 이사장은 연구소 설립 이후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편지를 지금까지 700여회 쓰고 있다. 자리에 앉으면서 최근에 쓴 편지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왔다. ‘대군(大君)이다, 멘토다, 실세 중의 실세다라는 사람들의 감옥행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보기에도 딱하고 국가 체면도 구겨질 대로 구겨져 버렸습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큰소리치면서, 그들을 그런 직위에 임명했던 임명권자의 입장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중략)화려했던 권력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부와 권세를 놓치고 감옥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분들, 그런 기회에 목민심서라도 읽으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의 감옥행을 보면서 다산의 시선으로 글을 썼다. 또 있다. ‘정약전·약용 형제는 세상에 없는 지기지우인 동포 형제였습니다. 두 분이 주고 받은 편지나 학문적 토론의 글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는 사이였습니다.(중략)오늘의 세상에야 사촌이 남이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고 친형제조차도 재산 싸움에 남보다 더 원수지간이 되고 있음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재벌가의 왕자난이나 쟁송(爭訟)의 보도를 읽다보면 다산 형제의 우애가 세상을 바로잡을 청량제로 여겨집니다. 오늘에도 그런 형제애를 복원할 수는 없을까요.’ 이런 편지의 내용은 전국 35만 4000여명에게 이메일로 보내진다. 일주일에 주말을 제외한 4~5차례 꼬박꼬박 쓴다. 어리석은 질문 하나, 박 이사장은 목민심서를 몇 번이나 읽었을까. “몇 번 읽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회 현상을 보면서 문득문득 목민심서나 논어를 다산적으로 해석한 글들을 생각날 때마다 다시 뒤적이고 그 뜻을 가슴에 담지요. 수시로 읽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편지 쓸 때에도 다산의 눈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대학이나 단체 등에 강의 나갈 때도 다시 목민심서를 읽고 가지요. 성균관대에서 ‘다산과 21세기’라는 교양과목 강의를 하고 있는데 아주 명품강좌로 소문났다지요(웃음).” 지금도 틈 날 때마다 다산을 연구한다는 그는 대학 시절부터 ‘반계수록’ 등 실학에 관심을 두었으며 1971년 대학원 때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석사 학위논문을 쓴 것을 계기로 다산 연구와 인연을 맺었다. 1973년 유신에 항거하다 투옥됐을 때에 다산의 책을 여러 차례 읽었고 이후 8개월 수배 생활 동안에도 다산을 공부했다. 1982년 3월 복권됐을 때 비로소 7년 동안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쓰기 시작해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편역,발간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50여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끄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다산은 학문의 깊이가 끝이 없는 최고의 학자이자 사상가입니다. 다산은 52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통해 정치, 행정, 법학, 경제, 지리, 의학, 공학 등을 아우르면서 인간존중 사상, 개혁정신, 실사구시의 철학 등을 펼쳐 시대정신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학자로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안목과 방대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지요. 특히 유배지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인간성과 철학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산이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같은 한 줄기의 민중적 의지로 75년동안 치열하게 살다 간 역사적 인물이지요.” 가난에 찌들어 굶어 죽어가는 이웃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공동 경작에 의해 공동분배하도록 하자고 혁명적인 전론(田論)을 주장하기도 했고 부정부패와 착취를 일삼는 관리들을 어떻게 해야 올바른 생각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을까 해서, 관리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를 저술한 것, 그리고 시를 통해서 백성들을 일깨워 보고자 했던 그의 생애는 2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따르고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산은 22세때 진사과에 합격했는데 정조임금이 답안지를 직접 읽고 휼륭한 인재임을 알고는 근처에 있도록 하면서 자주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시문행사때마다 항상 1등을 차지하는 다산을 늘 아꼈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정조는 다산을 통해서 사실상 정치를 바로 할 수 있었고 그런 다산은 정책 보고서를 임금에게 직접 올리게 됩니다.” 박 이사장은 가정의 달을 맞아 “요즘처럼 가족윤리가 무너지고 사제 간의 의리도 깡그리 파괴된 때, 우리는 다산의 사상과 철학을 통해 가족의 중요함과 사제간의 정다운 의리를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다산의 효제(孝悌)사상을 새삼 강조했다. 다산의 탄신일과 관련해서는 “1762년 6월 16일에 태어났는데 그날이 양력으로 8월 5일이어서 생일 기념은 매년 8월 5일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그날에 회혼례, 산신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석무 이사장은 1942년 전남 무안에서 4대째 한학을 공부해온 집안에서 자랐다. 전남대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로 구속되는 등 민주화 운동에 투신, 4차례 옥고를 치렀다. 19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다산 연구에 집중했다. 1973년 유신반대 유인물인 전남대학교 ‘함성’지 사건에 연루돼 1년 동안 복역하면서 감방 안에서 본격적으로 다산 저술에 대한 연구의 시간을 가졌다. 출옥후에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발간했다. 지금까지 50쇄나 찍을 정도로 꾸준히 읽히고 있는 명저가 됐다. 1980년 광주항쟁 때는 관련 주모자로 몰려 오랜 수배생활 끝에 붙잡혀 1년 3개월여를 또다시 복역했다. 1988년 13대 국회에 진출한 후 14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국회다산사상연구회를 조직, 간사를 맡아 활동을 펼쳤다.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과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 초빙교수, 전남대학교 초빙교수와 단국대학교 이사장,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석좌초빙교수이자 (사)다산연구소의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다산기행’, ‘우리 교육을 살리자’,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1,2’,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가 있으며, 편역서로는 ‘흠흠신서’, ‘애절양’, ‘다산산문선’, ‘나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 및 ‘다산 논설선집’, ‘다산 문학선집’(공편역) 등이 있다.
  • [2012 여수세계박람회] “안내부터 통역… 1만 4300명이 뜁니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 “안내부터 통역… 1만 4300명이 뜁니다”

    “여수엑스포 성공은 우리의 얼굴에 달렸다는 각오로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는 12일 개막하는 여수엑스포 현장에는 1만 43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구슬땀을 흘릴 예정이다. 이들은 전국 140개 단체들이 뭉쳐서 조직된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고진광(57) 한국자원봉사협의회 공동대표다.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한 고 대표는 8일 현장을 점검하며 30년 전부터 전국의 어렵고 힘든 곳을 찾아 봉사활동을 해온 노하우를 이번 엑스포에 다 쏟아붓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들 자원봉사자는 앞으로 엑스포 기간인 93일간 엑스포 현장 곳곳에서 비지땀을 흘린다. 자원봉사자들은 1430명 단위로 10일간 활동을 한다. 봉사자들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계층으로 이뤄졌다. 70대 봉사자들은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어 일본인들의 안내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당은 고작 1만원이다. 고 대표는 “자원봉사자들은 전국에서 지원한 사람들 중 3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될 만큼 봉사 정신과 희생의 의미를 알고 있다.”며 “안내에서부터 외국어 통역 등 전 분야에 걸쳐 세심한 정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또 “이번 자원봉사는 국내 최초로 정부가 민간단체에 관리를 위탁해서 하는 활동이어서 우리는 그만큼 책임감과 보람을 함께 느끼면서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 대표는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의 미소나 표정, 몸짓 하나가 여수엑스포를 찾는 관람객들의 첫인상을 좌우한다는 각오와 국가 위상을 높인다는 자부심으로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수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사고] 본지 5기 독자권익위원 위촉

    [사고] 본지 5기 독자권익위원 위촉

    서울신문은 26일 제5기 독자권익위원 4명을 새로 위촉했습니다. 독자권익위는 이날 회의를 열어 이문형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협력센터소장을 5기 위원장으로 선출 했습니다. 독자권익위는 독자들의 권익침해를 예방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독자들의 알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안과 자문을 하게 됩니다. 또 정기적으로 일선 기자들과 보도방향에 관한 토론을 진행하며, 서울신문은 그 결과를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알리고 편집 제작과정에도 반영합니다. 위원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가나다순) ●신임 김광태 온전한커뮤니케이션 회장, 김현기 행정안전부 지방세제관, 이용원 동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임종섭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유임 이문형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협력센터소장,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 권성자 책만들며크는학교 대표, 김형진 변호사, 이청수 연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표정의 전 이대학보사 편집장,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팀장
  • [문화마당] 객석을 떠난 그들/신동호 시인

    [문화마당] 객석을 떠난 그들/신동호 시인

    무용공연을 보았다. 주변이 총선으로 분주했던 지난달, 불 꺼진 객석에 앉아 원초적인 몸짓과 문명이 만나 가는 과정을 보았다.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이란 다소 긴 제목의 이 공연은 LG아트센터의 기획공연으로 이루어졌다. 안무가 정영두는 말한다. ‘기술의 진화와 행복의 진화가 비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으로 공연을 준비했다.’라고. 안무가가 의도한 대로 음향과 조명 등 실험적인 기술이 춤과 만난 신선한 공연이었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쏠렸다. 놀랍게도 출연자들 모두 아마추어들이었다. 약제보조사에서 무역회사 직원, 고등학교 교사가 있는가 하면 증권사 브로커도 있었다. 그들은 공연을 위해 두 달간 많은 시간과 열정을 바쳤다. 자정이 넘게 땀을 흘리며 스물세 명의 출연자는 변화해 가는 자신의 몸을 보았을 것이며, 또한 생소했던 갖가지 기술이 자신들과 어울려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누구보다 깊이 만났을 것이다. 안무가의 의도를 표현하고자 거듭 연습을 반복하면서 그들 스스로 기술문명을 성찰하는 철학자가 되었으리라 생각하니, 공연의 의미가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차이는 문화에 있었다. 크로마뇽인의 거주지에서 발견되는 동굴벽화와 동물조각품들은 생존과 무관한 것들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죽은 자에 대한 연민으로 장례를 치르고 조각품을 나누며 같은 감성을 확인하는 동안 공동체의 결속은 더욱 단단해졌다. 내가 베푼 친절이 후대에라도 좋은 영향을 미치리란 생각은 문화적 감성을 통해 각인되었고, 이타심은 유전자에 기록되었다. 모닥불에 둘러앉아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춤으로써 생존이 불안했던 크로마뇽인은 비로소 존재의 위안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사회가 분화되고 전문화될수록 오히려 문화의 참여는 줄어들었다. 마을 축제는 공동체의 전 성원들이 준비하고 참여함으로써 완성되었다. 판소리는 단지 공연자의 소리로만 구성되지 않았고 관객의 추임새가 더해져야 했다. 현대사회는 그러한 참여의 기회를 박탈한다. TV는 갖가지 공연을 화려하게 보여주지만 향유밖에 할 수 없고, 영화는 표를 사는 적극적인 행위를 전제하지만 마찬가지로 참여의 문은 닫혀 있다. 전문화된 문화는 오케스트라나 뮤지컬처럼 고급화되어 일상적으로 향유하기에도 부담스러울 지경이니 참여는 언감생심이다. 문화적 감성을 전이하지 못하는 현대의 크로마뇽인은 존재의 불안함을 갖고 산다. 축제의 공간도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어 있으며, 주가를 올리는 합창단도 정작 참여하기에는 만만치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에 대한 참여의 공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데, 현대 사회에서 문화의 향유와 참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준 공간은 바로 교회다. 성가대의 노래를 듣고 목사의 연설을 향유하고 동시에 함께 찬송가를 부름으로써 교인들은 일상적으로 문화 참여의 기회를 갖는다. 함께 찬송하며 그들은 기꺼이 성경의 말씀에 동의하고 교회공동체 안에서 존재의 위안을 받는다. 문화에의 참여는 인간성에 대한 감수성과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독일의 작가 브레히트는 연극에 일반인을 참여시킴으로써 파시즘에 대해 국민 스스로 저항할 힘을 키웠는데 이를 ‘교육극’이라 불렀다. 향유보다 참여가 삶의 주체가 될 힘을 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사례 중 하나인 셈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작한 문화바우처는 문화복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일정부분 지원하는 사업이다. ‘문화의 집’ 사업처럼 문화에 참여할 기회는 가질 수 없고 단순히 관람을 지원하는 소비적 형태를 띠고 있다. 과연 이를 통해서 저소득층 사람들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교회에서도 하는 일을 정부가 방치한다면, 국민은 국가를 통해 존재의 위안을 받을 수 있을까. 객석을 떠나 무대 위에 선 그들을 통해 문화 참여의 중요성을 정부가 인식하길 바란다. 광범위한 정치 참여 또한 문화적 감수성의 향상을 통해 발현될 터이다.
  • [사설] 불법사채 없애려면 은행 문턱 확 낮춰라

    정부가 불법 사금융(사채)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금융감독원에 합동신고처리반을, 검찰과 경찰에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는 한편 피해신고 접수 등을 통해 상담·구제, 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한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어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불법 사금융 척결대책 관계장관회의가 끝난 뒤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불법 사금융은 우리 사회를 파괴하는 독버섯 같은 존재”라고 규정하고 흉악한 범죄이자, 사회악 척결 차원에서 강력 대처하겠다고 선언했다. 불법사채 피해자 대부분이 영세상인, 가난한 대학생, 실업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임을 감안할 때 범정부 차원의 대응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법사채가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단속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불법사채업자로부터 300만원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유흥업소로 팔려간 딸과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은 불법사채가 얼마나 무서운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다. 불법사채업자로부터 생활비 350만원을 빌렸다가 강제 낙태당한 채 노래방 도우미로 강제 취업된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다급하다고 불법사채업자에게 손을 내밀었다가는 영원히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법정이자율(연 30%)의 수십배에서 100배까지 순식간에 불어난다. 돈을 받아내려는 불법사채업자들의 닦달은 인간성의 파괴로까지 이어지기 마련이다. 정부는 불법사채 단속과는 별도로 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 등 서민금융을 통해 3조원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급 규모도 더 늘려야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문턱을 확 낮추는 일이다. 신용등급 6~10등급의 저신용자들도 이용할 수 있게 지원 조건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 그리고 단속과는 별도로 불법사채로 벌어들인 부당이익에 대해서는 정부가 환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환경운동 선구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기록으로 본 ‘기후 변화’

    환경운동 선구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기록으로 본 ‘기후 변화’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과 직면하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845년 3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남쪽으로 1마일 반쯤 떨어진 한 호숫가에서 27세의 하버드대 출신 젊은 시인이 도끼질을 시작했다. 촉망받던 시인은 16살에 하버드대에 입학한 천재였고, 그의 급작스러운 행동에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자신이 살 집을 직접 짓겠다는 포부는 당찼지만 도끼질도, 톱질도 서투르기만 했다. 시행착오 끝에 오두막은 7월에 완성됐고, 그가 지출한 건축비는 28달러 정도. 현재 돈으로 환산하면 100만원 남짓이다. 당시 하버드대 기숙사의 1년 방세는 30달러였다. ●행동으로 무소유 실천 시인은 이 오두막에서 2년 2개월을 살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1854년에 이 기록은 책으로 출간됐다. 바로 ‘은둔의 신화’ ‘에덴으로의 회귀’ ‘무위자연’ ‘정신적 낚시질’ 등 수많은 찬사를 낳은 미국 문학의 걸작 ‘월든’(또는 숲속의 생활)의 탄생이었다. 청년의 이름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은 물이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길이 알려지지 않았던 소로의 호수 이름이었다. ‘무소유’를 주장하고, 간소화를 외쳤던 소로는 아웃사이더였다. 실제로 월든을 비롯한 그의 책들 역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물질만능주의에 대해 사람들이 염증을 느낄수록, 비인간성이 사회문제화되면 될수록 월든의 위상은 점점 높아졌다. 그가 자유롭게 사는 것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겼다는 사실은 월든 곳곳에 나타나 있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그렇다.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게 하지 말라. 간소화하라, 간소화하라. 하루 세 끼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한 끼만 먹으라. 백 가지 요리는 다섯 가지로 줄이라. 이런 비율로 다른 일도 줄이라.’라는 구절은 숲속 생활에서 소로가 얻은 수많은 깨달음을 함축하는 문구로 널리 인용된다. 소로는 이렇게 얻은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혁명가이기도 했다. 노예 폐지에 앞장섰고, 부당한 현실과 억압에 대항하는 ‘시민의 불복종’을 써 19세기 말 시민운동의 정신적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소로의 ‘봄’이 사라지고 있다 소로의 기록들은 현대에 와서 그에게 ‘자연예찬론자’이자 ‘환경운동의 선구자’라는 재평가를 선물했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소로는 주변의 모든 것들, 특히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심하게 살폈고, 꼼꼼하게 적었다. 들꿩 새끼는 병아리와 어떻게 다른지, 참새는 어떤 소리를 내면서 봄을 찬미하는지 등에 대한 묘사가 월든 곳곳에서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돼 있다. 특히 소로는 의도하지 않게 ‘현대적 기록’도 남겼다. 일기처럼 생활을 적었기 때문에 1년의 흐름에 따라 각 날짜에 자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도록 정리한 것이다. 무엇보다 소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 월든 호숫가에 서식하는 꽃들이 언제 피는지를 기록해 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150년이 지난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소로의 기록을 현재의 전지구적인 이슈인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여긴다. 태풍이 오고 혜성이 지나가는 큰 사건은 수많은 역사책을 통해 과거를 살필 수 있지만, 꽃이 언제 피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 아카디아 국립공원의 스쿠딕 연구센터 연구진은 10년 전부터 콩코드 지역의 기후변화를 연구해 왔다. 밀러 러싱 박사는 라이브사이언스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가 변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만, 지역의 숲이나 동식물에 어떤 영향을 구체적으로 미쳤는지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소로의 기록을 토대로 과거와 현재의 환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해 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월든 호숫가는 물론 숲과 들판 등 소로의 모든 관심사를 오늘날 다시 살피고 측정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얻은 기록을 토대로 우선 소로가 관찰한 식물 43종의 개화시기를 오늘날과 비교했다. 그 결과 평균 10일가량 개화시기가 빨라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봄’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환경변화에 민감한 식물들의 경우에는 단순히 개화시기가 당겨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소로가 기록한 21종의 난초류 중 현재 콩코드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것들은 6종에 불과했다. 기후변화가 식물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연구진은 150년 전 꽃들이 개화하는 시기의 이 지역 평균온도가 22~24도였다는 것을 거꾸로 계산해 냈다. 같은 날짜의 현재 콩코드 지역 온도는 2.4도가량 높다. 이 같은 기후변화가 꽃들의 개화시기를 당기고, 일부는 아예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멀러 러싱 박사는 “콩코드가 속해 있는 보스턴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도심화 등으로 인해 온난화의 영향이 더욱 빨리 나타나고 있다.”면서 “어떤 해는 꽃이 좀 더 늦게 피고, 어떤 때는 더 빨리 필 수 있겠지만 소로의 시대보다 기온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소로는 평생 ‘모든 것을 버리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더 발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자연 그대로의 것’ ‘정신의 풍요’에 무한한 애정을 가졌던 소로가 오늘날 그토록 사랑하던 월든 호수가 인간이 만들어낸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변하고, 무언가는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진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CEO 칼럼] 인내의 힘으로 미래를 개척하자/김창범 한화L&C 대표

    [CEO 칼럼] 인내의 힘으로 미래를 개척하자/김창범 한화L&C 대표

    헬렌 켈러는 미국에서 최초로 인문계 학사를 취득한 중복 장애인이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3중 장애의 어려움을 딛고 그는 작가, 사회운동가, 교육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암흑 속을 뚫고 나온 빛의 천사로 불리며 칭송받았던 그의 뒤에는 48년 동안 고난과 헌신의 삶으로 일관한 개인교사 앤 설리번이 있었다. 앤 설리번은 헬렌 켈러에게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켈러의 기적적인 삶은 인생에서 인내의 힘을 깨우쳐 준 설리번과 같은 조력자가 있어 가능했다. 한 사람이 보낸 인고의 세월이 다른 사람의 천재성을 발현시킨 값진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꿈을 실현시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월트 디즈니. 그의 어린 시절은 그가 이룬 환상의 세계와는 달리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가정 불화로 집을 뛰쳐나와 추운 골목을 뛰어다니며 신문배달을 했던 그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고난의 세월을 견뎠다.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되는 사업 실패로 고전을 거듭했지만 꿈을 이루겠다는 집념과 신념으로 마침내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그룹을 일구고, 어린이들의 꿈과 환상을 구현한 디즈니랜드를 탄생시켰다. 인내를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했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들은 모두가 인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하철이나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추태를 부리는 ‘○○녀’, ‘○○남’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출현은 인내가 더 이상 미덕이 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람들은 점점 자신에게 가해지는 사소한 피해에도 발끈하고 격한 감정을 쏟아내야 권리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참을성 부족한 개인을 탓할 수만은 없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원인이다. 무한경쟁만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 참을성 있게 꿈을 좇는 일은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 됐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이기주의가 득세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인 경제불황과 정치적 이념 대립으로 정신적, 물질적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가정과 학교, 사회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아이들은 점점 남에 대한 배려를 배울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 살벌한 경쟁으로 상실한 인간성을 회복하고 믿음을 되찾기 위해 특별한 처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손바닥을 건드리는 것이 전부였던 열악한 교수법이지만 믿음을 가지고 암흑 속의 소녀를 일깨운 앤 설리번의 참을성과 암담한 현실에도 좌절하지 않고 꿈을 향해 수없이 도전했던 월트 디즈니의 인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이 세상 어느 것도 스스로를 낮추고 인내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계의 원리가 그러하고 인생의 모습 역시 그러하다. 지나친 성급함과 조바심으로 천재일시(千載一時)의 기회를 놓치는 과오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삶은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경과 고난의 연속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기다리면 값진 선물을 안겨 주기도 한다. ‘몸과 정신을 단련하는 부단한 노력이 재능을 앞선다.’는 격언을 가슴에 새기고 인내하는 여유를 갖자. 기나긴 제련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순금이라는 빛나는 결과물을 얻어낼 수 없듯이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기업경영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불안한 세계 정세와 급변하는 한반도 상황 등으로 위기 의식이 팽배한 요즘과 같은 기업환경 속에서 믿음의 인내와 도전의 인내는 더욱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성급한 열정에 휩쓸리지 않고 참고 노력한다면 인생은 달콤한 결실로 우리에게 보답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은근과 끈기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 내는 유전자가 있다. 올바른 가치관을 세웠다면 기다림의 여유와 안목을 가지고 미래를 기대해 보자.
  • 車, 욕망을 선물하다

    車, 욕망을 선물하다

    포디즘, 그러니까 컨베이어 벨트 위에 생산물을 올려놓고 시간단위로 제품을 찍어내는 거대 공장은 어떤 이미지인가. 영화팬이라면 찰리 채플린의 1936년 영화 ‘모던 타임즈’를 떠올릴 수 있다. 고정된 자세로 장시간 반복노동을 해야 하는 포디즘의 비인간성을 풍자했다. 매카시즘 열풍 때 채플린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추방당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아이러니에 흥미있는 사람이라면 여기다 한가지 더 추가할 수 있다. 포디즘을 비판한 채플린도 빨갱이로 몰렸지만, 포디즘을 만든 자동차왕 헨리 포드도 빨갱이로 몰렸다는 점이다. 노동자 일당이 평균 2.34달러이던 시절, 무려 5달러나 줬기 때문이다. 여기다 1일 8시간 노동을 보장하고, 기숙사를 제공했다. ‘가장 늦게 채용되고 가장 빨리 해고되는’ 흑인, 장애인, 여성까지 채용했다. ‘아무리 고되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기꺼이 노동할 자유’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자와 자유시장주의자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하찮은 노동자들에게 그렇게 퍼주다보면 기업경쟁력이 떨어져 결국은 망하고야 말 것이라는 저주가 그때라고 왜 없었겠나. 여기엔 또 하나의 반전 포인트가 숨어 있다. 정작 포드 자신은 철저한 마초스타일의 우파였다는 사실이다. 생산해낸 차도 오직 기계적 단순함이라는 남성적 스타일만 강조했다. 이는 나중에 GM에 역전당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 고립주의, 반유대주의를 고집했고 노조를 혐오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서 격찬받은 미국인은 포드가 유일했고, 1938년 히틀러는 제3제국 최고의 훈장 독일독수리최고대십자장을 수여하기까지했다. 포드는? 감사히 받았다. 다음 해에 2차대전이 발발했다. 그런 포드가 왜 노동자들을 후하게 대접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 규모를 키우고 싶어서였다. 일부 돈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노동자들도 차를 사야 시장이 커진다. 그럴려면 주머니에 돈도 좀 찔러주고, 과도한 노동으로 파김치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여유가 있어야 주말 드라이브라도 나갈 것 아니겠나. 포드 차를 타고 말이다. 포디즘은 합리적 생산방식으로 주목받는데, 사실 더 주목 받아야 할 대목은 여기다. 대량생산 제품을 대량소비할 수 있도록 ‘대중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포드 스스로도 빨갱이라는 비판에 대해 한마디했다. “높은 곳에 있는 열매를 따기 전에 낮은 곳에 있는 열매를 따야 한다. 대중시장은 얻기 쉬운 열매라 볼 수 있다.” ‘자동차와 민주주의’(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는 이런 측면에서 재미있게 읽힌다. 자동차를 다루되 무엇보다 ‘대중의 욕망’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포디즘 이후 미국의 자동차산업을 쭉 읊는데, 단순한 산업사라기보다 도시문화사나 미국문화사로 읽힌다. 건축, 도시, 지리학 등을 기초로 문명사를 다루는 루이스 멈포드, 데이비드 하비가 등장하고,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뉴욕의 불도저’ 로버트 모제스 같은 인물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자동차산업의 발달이란, 곧 도로의 개발과 그로 인한 도시생태계의 변화, 그 결과 나타나는 라이프스타일 변화까지 포괄한다. 그 변화의 키워드는 외곽타운화, 고립, 단절, 보수화 같은 단어로 요약된다. 포디즘의 영향은 강력했다. 바우하우스 초대 교장인 독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는 1923년 조립식 주택을 만든다. 집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린 것이다. 이는 교외의 대단위 주택 건설로 이어진다. 1947년 부동산업자 윌리엄 레빗이 조립식 주택으로 이뤄진 대단위 거주지 건설 아이디어를 냈고, 오늘말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외 풍경이 속속 생겨난다. 이들은 ‘레빗 타운’이라 불린다. 교외사는 사람들의 도심진입을 용이하게 해주기 위해 ‘거대 도시를 장식하는 리본’이라 불리는 복잡한 고가도로들도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자동차와 도로가 팽창하면서 햄버거가게 맥도날드, 실용적 모텔 체인 홀리데이인, 그리고 대형 쇼핑몰, 스타벅스가 흥행에 성공한다. 자본주의적 욕망이, 자동차란 적혈구를 타고 도로라는 혈관을 따라 미국 전역에 흘러든 것이다. 욕망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급속한 교외화로 인해 백인은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도심은 슬럼화된다. 슬럼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진행된 재개발은 기존 거주자들에게 혹독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심재개발)은 도시 빈민들을 다시 외곽으로 밀어낸다. 어렵지 않게 뉴타운, 용산사태 같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 정치적 보수화에도 기여한다. 교외에서 도심으로 오랜 시간 차를 몰고 통근해야 하는 백인들에게, 보수적 독설로 가득찬 라디오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극우독설가 러시 림보와 글렌 벡의 인기가 이를 증명한다. 저자는 그래서 처음에는 대중시장을 통한 민주주의 확장에 기여한 자동차가, 오늘날 민주주의에는 오히려 역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가벼운 서술이어서 문화적 논쟁 못지 않게 자동차에 대한 소소한 지식도 재미있다. 가령 GM은 왜 창업자 이름을 본뜨지 않고 ‘일반적인 자동차 회사’(General Motors)라는 이름을 택했을까. 최초의 로드무비는? 고급승용차를 뜻하는 세단(Sedan)의 유래는? 히틀러의 아우토반 이전에 등장한 최초의 고속도로는? 1964년 영화 ‘제임스 본드 - 골든 핑거’에 등장해 최초의 간접광고(PPL)로 꼽히는 차는? 토요타가 내놓은 크라운, 코로나, 코롤라라는 자동차 이름의 공통점은? 책 속에 답이 있다. 1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6) 보은 풍림정사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6) 보은 풍림정사 은행나무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잦아들고 언 땅을 녹이는 새 봄의 온기가 대지에 스민다. 봄이라 하기엔 이르지만 바람결에 담긴 봄기운은 또렷하다. 자연에 묻혀 살아가는 농촌 마을에도 스멀스멀 봄이 곧 들이닥칠 기세다. 기름진 논과 밭에 뼈를 묻고 살아가는 늙은 농부들은 자연의 흐름 앞에서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연의 흐름을 벗어나는 법도 없다. 늘 자연의 빠른 걸음걸이에서 한 걸음쯤 뒤로 물러난 거리만큼을 유지하며 묵묵히 따라갈 뿐이다. 순리를 따르는 삶이다. 자연에 앞서지도 자연을 거스르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자연에 기대 사는 농부들, 그리고 그들이 모여 사는 농촌에서 누구라도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건 그 안에 자연의 순리가 살아있어서다. ●기와 돌담·솟을삼문과 절묘한 조화 충북 보은 회인면 눌곡리. 너른 들녘을 거느리고 순리를 따라 살아가는 농촌 마을에 불어오는 바람결에도 봄기운이 담겼다. 봄의 소리를 가슴에 안고 분주히 오갈 농부들의 발걸음을 맞이할 들녘은 그러나 아직 고요하다. 언 땅이 풀려 축축해진 흙길이 정겹기만 하다. 평안한 마을길을 걷다 보면 길옆으로 이어진 낮은 비탈에 기대어 세워진 한 채의 고택과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가 발길을 붙잡는다. 보은 풍림정사와 그 집의 솟을삼문 앞에 서 있는 은행나무다. 봄을 앞두고 달콤한 정적이 감도는 마을 들녘에 사람의 자취는 찾을 수 없다. 지나는 사람은 물론이고 번듯한 신작로를 지나는 자동차도 고작해야 한두 대 정도다. 모두가 다가오는 새 봄의 농사일 채비로 한창 웅크리고 있는 중이다. 마음으로만 봄을 재촉하는 참 평화로운 정적이다. 발길을 붙잡는 풍림정사 대문 앞의 은행나무는 그리 대단할 것이 없는 평범한 나무다. 큰 나무도 아니다. 키가 18m쯤 되고, 가슴 높이 줄기 둘레는 4m가 채 안 된다. 지금의 생육 상태로 보아서 나이는 대략 150살 정도로 짐작된다. 천연기념물이나 지방기념물은 물론 아니고, 산림청 보호수 목록에도 끼어들지 못하는, 그저 아무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한 그루의 은행나무다. 그러나 나무 앞으로 펼쳐진 들판을 거느리고 서 있는 풍림정사 은행나무의 자태는 여느 문화재급 은행나무 못지않게 아름답다. 낮은 기와 돌담과 고택의 기와지붕 위로 널찍이 드리운 나뭇가지가 이뤄낸 유장한 곡선은 옛 선비의 기품까지 느끼게 할 만큼 듬직하다. 모든 생명이 그렇듯 그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지는 것이지 싶다. ●여성인권 강조한 선비 박문호가 심어 자연의 곡선을 닮은 우리 옛 건축물이 큰 나무와 잘 어울리는 건 당연한 일이건만, 풍림정사 은행나무는 이런 점에서 유난하다. 아예 처음부터 이 자리에 꼭 이만한 크기로 서 있었던 것처럼 나무와 풍림정사의 조화는 완벽하다. 기와 돌담이 바닥에 이룬 수평선을 디딤돌 삼아 수직으로 일어선 은행나무의 곧은 줄기는 사람의 눈을 가장 즐겁게 하는 황금분할의 비례를 이뤘다. 또 사방으로 고르게 펼치며 기와지붕 위로 살포시 올라선 나뭇가지가 드리우는 그늘의 풍성함은 고택의 빈 마당을 빈틈없이 채운다. 그야말로 나무와 사람살이가 이룬 아름다운 조화다.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관리하는 나무임은 틀림없어 보이지만 나무에 대한 별다른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나무의 위치나 주변 환경을 바탕으로 해서 그저 풍림정사와 관계 있는 나무라고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풍림정사의 연륜이 그리 길지 않아 나무의 연륜도 쉽게 짚어볼 수 있다. 풍림정사는 이 마을 출신의 선비 박문호(1846~1918)가 개화파와 수구파의 정쟁으로 혼란스럽던 조선 후기에 손수 지은 서당이다. 정통 성리학의 명맥을 잇고자 한 그는 당장에 자신이 벼슬을 얻는 것보다 나라의 장래를 책임질 후학을 양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일곱.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1872년의 일이다. 나무의 나이도 풍림정사를 세운 때와 일치한다. 결국 나무를 심은 것도 박문호였음이 드러난다. 그는 풍림정사를 짓고 대문 앞에 나무를 심었다. 정통 유학자답게 그는 공자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기는 은행나무를 심었다. 아마도 앞으로 오랫동안 잘 자랄 수 있는 건강한 묘목을 구해 심었을 것이다. 이 땅의 정신세계를 지켜온 유학의 가치, 혹은 공자의 가르침을 오랫동안 떠올리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자연의 순리 그르치는 억압 물리쳐” 선비 박문호는 특히 남녀 차별 극복을 매우 강조했으며 최초의 본격 근대 여성 교육서인 ‘여소학’(女小學)을 펴내기도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하늘이 주어진 본성대로 혹은 순리대로 살아야 함을 강조했다. 억압된 여성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남녀 모두 순리에 따라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바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전히 박문호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눌곡리 마을에서는 풍림정사와 그의 은행나무를 정성껏 지키고 있다. 한때 마을 사람들은 풍림정사 은행나무에서 열리는 은행을 거두어 판매한 이익금으로 풍림정사와 은행나무를 관리했다고도 한다. 고작 200년도 채 안 된 나무이지만 후손들에게는 천년을 더 살아온 여느 큰 나무 못지않게 자랑스러운 은행나무다. 그건 바로 우리 삶과 자연의 순리를 그르치는 온갖 억압과 장애를 물리치고 이 땅의 진정한 평화를 이루려는 옛 사람에 대한 자랑이다. 눌곡리 들녘을 한 바퀴 돌아 풍림정사 은행나무로 스며드는 상큼한 바람에는 옛 선비와 그를 따르는 농촌 사람들이 지켜온 인간 사랑의 큰 뜻이 담겨 있었다. 글 사진 보은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충북 보은군 회인면 눌곡리 126-3. 청원~상주고속국도를 이용하면 보은군을 찾아가는 길이 무척 빠르고 편하다. 보은 풍림정사는 회인톨게이트에서 불과 2㎞ 거리밖에 안 된다. 톨게이트를 나가자마자 나오는 사거리에서 1.3㎞ 직진한다. 개울 건너 삼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해 논밭 사이로 800m쯤 가면 왼편 길가에 풍림정사가 있다. 나무는 풍림정사의 솟을대문 앞 조붓한 마당에 서 있다. 풍림정사 주변은 마을이 없어 한적한데 1㎞쯤 직진하면 회인면 소재지인 중앙리 마을이 나온다.
  • [CEO 칼럼] 마음의 길, 소통의 길/최흥집 강원랜드 사장

    [CEO 칼럼] 마음의 길, 소통의 길/최흥집 강원랜드 사장

    ‘길’이 있다. 사람 사는 곳에 길이 있다. 집과 집 사이에 길이 있고, 마을과 마을 사이에 길이 있다. 이렇게 사람이 길을 만들고, 길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언제인가 사람들은 신작로(新作路)를 만들었다. 길은 넓어지고 잘 다져지며, 곧아졌다. 자동차가 거침없이 신작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기술이 더욱 발달해 고속도로가 생기고, 고속철도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더 빠르고 편하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길이 좋아지는 만큼 세상도 변했다. 속도가 경쟁력이 돼 버렸다. 속도에 몰두하면서 사람들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잊어갔다. 시속 300㎞의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고속철도 안에서 창밖의 풍경은 무의미하다. 100㎞를 넘게 질주하는 자동차의 운전자에게 차창 밖은 자신과 상관없는 다른 세계일 뿐이다. 빨라지는 세계엔 외로움이 찾아든다. 몇몇 사람들이 속도 때문에 잊혔던 인간성 회복이라는 명제를 다시 떠올렸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다시금 깨닫는 각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속도 대신 여유와 활력, 소통을 말한다. 패스트푸드 대신에 잘 숙성되고 정성껏 만들어진 슬로푸드를 찾고, 마을은 사람과 자연에 바탕을 둔 슬로시티임을 자랑한다. 세상이 또다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로 길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남해 바래길, 부산 갈맷길 등 지역의 특성을 살린 아름다운 길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유행처럼 만들어지는 이 길의 공통점은 목적지까지 빠르게 가는 것이 아니라 느리게 함께 걷는 길, 같이 즐기는 길이라는 것이다. 길 위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배우고, 가족은 사랑을 알며, 사람들은 자연을 느끼게 되었다. 신작로에서는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사람을 보게 되었다. 다시 사람들이 길을 만들고, 길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있다. 하이원리조트에는 ‘하늘길’이 있다. 매년 수만명의 사람들이 이 길을 걸으면서 자연을 만끽하고 새로운 만남을 갖는다. 하늘길을 사람 냄새 풀풀 나는 길로 만드는 것, 이것이 하이원이 세상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자 길이다. 숱한 길 중에 으뜸은 마음의 길, 소통의 길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논의의 초점이 대개 소통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불통’(不通)이 심각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불통은 공감과 배려의 부족에서 시작된다. 공감의 부족은 상대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편견에서 나오고, 배려의 부족은 자신만이 옳다는 오만에서 비롯된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없을 때 대화는 공허해지고, 말은 끊기고 만다. 대화가 사라진 사회에서 갈등과 분열은 증폭된다. 마음의 길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소통은 사회안정의 필수요건이고 기업생존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강려자용(剛戾自用)에서 제왕의 소통 부재를 엿볼 수 있고, 채플린의 무성영화 ‘모던타임스’는 기업의 소통 부재를 대변한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중고생들의 ‘왕따’ 문제도 바로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가정과 사회에서 꽉 막힌 언로(言路)가 어린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소통이 원활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이런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 가지만 불통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결국 피해자나 가해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게 된다. 설 명절이 며칠 남지 않았다. 명절이 좋은 것은 떨어져 살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이다. 이번 설에도 사람들은 여러 가지 주제로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마음의 길이 확 뚫리는 대화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사회가 안정되고 기업이 번창하며 학교에 왕따가 없는, 그런 소통의 길, 마음의 길이 열리는 설날이었으면 좋겠다.
  • 목사 작가 주원규 7번째 장편소설 ‘반인간 선언… ’ 출간

    목사 작가 주원규 7번째 장편소설 ‘반인간 선언… ’ 출간

    ‘민족, 정치, 시민, 정부, 행정 등의 개념을 신봉하는 이들은 진실을 보지 못하지. (중략) 기업은 욕망에 대해 아무것도 숨기지 않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반드시 기업의 종교화가 필요한 거야.’(251쪽) ‘참 종교는 투명한 눈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 바벨탑의 역군들을 지원하고 밑의 세계, 자연의 질서에서 월권을 욕망하는 이들을 조정 관리하는 역할을 대신하죠.’(253쪽) 급사한 아버지 김승철 국회의원을 대신해 해능시 보궐선거에 나간 딸 김서희는 당선이 확정된 날 새벽 광역수사대 강력계 팀장 민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3년 전 이혼한 전 남편 정상훈의 시신 일부로 보이는 손목이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밝은 대낮에 말이다. 정상훈은 대한민국 재벌기업인 CS그룹의 계열사인 CS화학 선임연구원으로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 뒤로 강력계 팀장 민서는 CS화학 영업전략팀 부장 장국현이 살해된 시체 옆에서 정상훈의 것으로 보이는 발을 발견했다. 민서는 최근 벌어진 연쇄살인의 중심에 CS그룹이 관련돼 있다는 심증을 가지고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 ●21세기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모습 묘사 이 같은 내용을 담는 주원규(37)의 신작 장편소설 ‘반인간선언-증오하는 인간’(자음과모음 펴냄)은 재벌과 권력과 종교의 결탁, 노동과 기업의 갈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성 회복의 문제 등 21세기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개연성 있게 엮어내고 있다. 전방위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CS그룹은 삼성그룹을 연상시키고, 신재생에너지단지 조성은 마치 기업도시 건설과 닮았다. 노조위원장의 크레인 투쟁은 한진중공업 노동자 해고에 맞서 309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씨를 순간 떠올리게 한다. 노동문제에 미온적인 언론이나,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에 대한 보상을 무산시키는 변호사, 권력과 금력에 굴복하는 검찰, 음모적인 세력의 앞잡이가 되는 경찰 등등도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 주원규가 “구상과 준비 작업은 몇 개월이 걸렸지만, 꼬박 4일 만에 써 내려갔다.”고 했듯이 한숨도 쉬지 않고 읽어 내려갈 수 있다. 르포르타주 방식과 추리소설적 기법에 종교적 장치를 걸어 넣은 전개 방식은 뒤가 궁금해서 숙고하지 않고 속도 내서 읽도록 강제하는데, 잘 읽힌다고 해서 이해가 잘되는 것은 아니다. 다 읽고 나면, 뭔 이야기지? 하고 되묻게 되기 때문이다. 훼손된 사체가 나타나는 순서가 소설의 목차와 같이 손-발-귀-입-머리-심장 순인데 이 순서도에 따라 독자는 작가의 숨결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빨리 읽을수록 그것이 쉽지 않다. ●추리소설적 기법에 종교적 장치 가미 소설은 지속적으로 묻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냐? 당신은 인간적으로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는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냐? 기업(경제)이 사회의 일부분이 아니라, 기업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지배하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현실은 과연 용인될 수 있겠느냐? 2009년 ‘열외인종 잔혹사’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뒤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주원규는 3년이 채 못 되는 기간에 일곱 편의 장편을 냈다. 소설 전반에 종교적 장치가 과도하게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서울과학기술대학 공대를 중퇴하고, 신학대 3~4곳을 전전한 끝에 안착해 지금은 대안교회를 운영하는 목사직을 맡은 신분을 감안하면, 그 고민의 지점들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 1만 27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희곡 심사평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희곡 심사평

    총 146편의 응모작이 선자들의 손에 전해졌다. 가속화되는 비인간화 세태 속에서 인간성을 회복하고 추구하려는 서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현실과 세태의 단순한 모방단계를 넘어, 인간 본성과 동시대를 은유적으로 담아낸 작품들 세 편으로 논의가 좁혀졌다. ‘평범한 면접’은 생존 게임의 극단적 미션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그린다. 현실의 일면을 실감나게 내포하고 있으나, 폭력의 수위를 높이는 과정에서 틀에 갇힘으로써 의외의 결말을 창안하지는 못했다. 확고한 주제를 향해 극의 진전을 쌓아가다 보니 그 과정에서 비약이 심한 편이다. 설정된 상황 속에서 작가가 의도한 현실의 축도적인 측면을 살리되 결말의 설득력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가 남은 과제다. ‘날다, 익룡’은 신선한 알레고리의 도입으로 주목받았다. 출구 없는 88만원 세대의 절망을 날지 못하는 ‘익룡 되기’라는 상징으로 극화한 것이 호감을 샀다. (오디션 제도로 대표되는) 고통을 전시하는 세태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현실에 대처하는 방식의 차이를 그린 것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무대에서 표현되었을 때, 과연 내장된 의미가 관객에게 실제적인 힘을 발휘할까 하는 염려가 남았다. ‘모기’는 뉴타운 재개발 환경과 욕망 속에서 서민들의 뒤몰린 생존과 현실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일상을 생동감 있게 다루는 솜씨가 있고, 서민과 젊은 세대의 ‘피를 빨아먹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조용한 분노를 담고 있다. 아이러니의 확장과 희극적 요소의 비극적 전이, 시적 여운까지 성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결국 동시대 삶의 섬세한 포착, 현실을 승화시키는 극 언어와 역량, 작가로의 성장가능성 등에서 선자들의 고른 신뢰를 얻은 ‘모기’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 ‘퇴마록’ 이우혁 “교수가 나를 부담스러워해…”

    ‘퇴마록’ 이우혁 “교수가 나를 부담스러워해…”

    모든 창작자는 신의 영역에 접근한다. ‘퇴마록’의 이우혁(46)은 괴팍하지만 절대적인 제우스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작가는 신을 창조해서 부려야 한다. 소설가는 한 인간으로 남아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20년 전 컴퓨터통신 하이텔에 처음으로 연재됐던 ‘퇴마록’은 출간 후 지금까지 1000만부에 이르는 경이적인 판매 부수를 기록했다. 판매량으로는 단행본 출간사상 이문열의 ‘삼국지’ 다음가는 기록이다. 1994년 1권이 나와 이미 2001년 7월 완간된 ‘퇴마록’ 시리즈는 지난 9월 ‘국내편’에 이어 최근 ‘세계편’(엘릭시르 펴냄)이 소장판으로 새롭게 출간됐다.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작업실 근처에서 만난 작가는 “옛날 ‘퇴마록’을 읽을 때와 똑같은 기분이 든다는 독자가 많다. 이야기는 변하지 않았지만 문체 등은 많이 고쳤다. 처음 나온 ‘퇴마록’이 잘 쓴 글은 아니란 걸 나도 인정한다. 20년 전 ‘퇴마록’을 낼 때 처음으로 글을 썼고 문학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고백했다.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와 석사과정을 졸업한 작가는 박사 과정에 진학하려 했지만 교수가 그를 부담스러워해 잘랐다고 말했다. 작가라는 운명은 스스로 찾은 게 아니라 살다 보니 떨어졌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쓰게끔 사람들로부터 강요당했다고 덧붙였다. 악을 쫓는 퇴마사들의 활약을 그린 퇴마록 ‘국내편’은 1998년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세계편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집트 고대 석실 발굴의 비밀, 아서 왕의 전설, 드라큘라와 흡혈귀 전설 등 배경도 세계적이고 주인공도 한국인만이 아니다. 영국, 프랑스, 루마니아, 미국 등 세계를 무대로 블랙서클이란 악의 무리와 대적하는 다양한 개성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난 더는 판타지 소설을 쓰지 않아요. 우리 문화의 특수성 안에 전 세계 사람에게 호소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집어넣고 있어요. 1990년대 유행했던 판타지 소설이 요즘 거의 사라진 것은 ‘퇴마록’에서는 이야기가 인간의 본성을 깨우치는 수단이었지만 다른 소설은 괴담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요즘 몰두하는 것은 영미권에서 ‘퇴마록’을 번역, 출간하는 일이다. 중국에서도 오래전 ‘퇴마록’이 나와 서점에서 쌓아두고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인세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타이완에서는 책 한 권을 번역하는 데 4~5년이 걸린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어를 영어로 “제대로” 번역하는 인재가 없는 점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자신의 작품이 흔히 판타지 소설, 장르 소설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 이 작가는 “소설과 문학이 대중한테서 멀어지는 건 필연적이다. 소설은 한번 보고 책꽂이에 꽂아두면 자기 책인 줄 안다. 지식을 인터넷으로 공유하면서 인류는 스스로 멍청이가 되어가는 걸 모른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작가들이 트위터에서 수많은 팔로어를 거느리는 것에 대해 “작가들이 나팔수나 확성기가 되어 조종당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질타했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작가로 성장한 이씨는 인터넷을 적극적인 자료 조사 도구이자 의견 표현 창구로 활용했다. 60~70개의 익명 아이디를 가지고 악플러들과 싸우기도 했지만 결론은 “예수님도 악플러는 감화시키지 못한다.”로 마무리됐다.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현재 그는 독자적인 서버 업체에 개인 홈페이지를 맡겨 광고 없이 운영 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수억원을 버는 경험은 이미 해봤습니다. 목표는 내 작품이 대중 문학, 장르 문학을 떠나서 영원히 읽히는 고전이 되는 것입니다. 문학적 잣대는 신경 쓰지 않아요. 작품성으로만 평가할 게 아니라 보편적 인간성을 뽑아내 독자들을 느끼게 한 걸 봐야 합니다.” 최근 KBS에서 방영된 아동 애니메이션 ‘부루와 숲 속 친구들’ 시나리오 작업을 끝낸 이 작가는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10%는 내 아이디어였다.”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내가 아니면 못 쓸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는 그는 악플러와 싸우는 퇴마사이자 지적 재산을 훔치는 도둑들에게 선전포고를 내리는 전사처럼 보였다. 글 사진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사설] 고문의 비인간성 일깨우고 떠난 김근태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어제 6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죽음이 엄혹했던 5공 정권 때 당한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들린다. 비록 그는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지만, 이제 이 땅에서 고문과 같은 비인간적인 인권 유린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은 살아남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그가 영면했다는 소식에 여야나 정파를 떠나 많은 이들이 깊은 애도를 표시했다. 그만큼 고인이 민주화에 대해 일관성 있는 원칙을 지켰음을 인정한다는 징표다. 그가 고초를 겪은 것은 유신 및 5공 시절 민청련·전민련 등 재야 단체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수배와 투옥을 당할 때만이 아니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새정치국민회의에서도 1인 독식 중단과 동교동계 해체 등 당내 민주주의를 주장하다 눈총을 받기도 했다. 특히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양심고백으로 스스로 불이익을 자초하는 원칙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냉전기의 색깔론이 배회하던 5공 시절 억울하기 짝이 없는 피해를 당했다. 당시 공안 당국이 그를 송두율이나 윤이상 등 나중에 북한과 직·간접 연계 사실이 드러난 인사들과 동렬에 놓고 용공 혐의를 들씌우려 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기술자’라는 이근안씨에게 가혹한 고문을 당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직접적 사인이 뇌정맥혈전증 합병증이라고 하지만, 그가 고문 후유증인 파킨슨병을 수년째 앓아 왔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가 우리 사회의 인권 신장과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던져 사심 없이 헌신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의 영전에 심심한 조의를 표하면서 그의 희생이 고문과 같은 폭력적·반인륜적 공권력 행사가 근절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 [송년 커버스토리] 쪽방촌의 望年

    [송년 커버스토리] 쪽방촌의 望年

    서울성곽 아래 300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성북구 북정마을. 1960~70년대 마을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독거노인들이 주로 살고 있다. 도로 건너편에는 ‘성북동 부촌’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성곽에 가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이 마을은 복지의 햇살 역시 들지 않고 있었다. 바늘귀 같은 취업난, 살인적 등록금, 수직상승하는 공공요금 등은 북정마을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페인트 일을 하는 신모(50)씨는 최근 일감이 없어 집에서 노는 신세다. 큰아들은 군대에 갔고, 대학교 3학년인 작은아들은 학교를 쉬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을 벌고 있다.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대출 이자를 줄여주는 것도 하나의 복지 혜택인데, 그런 것이 전혀 없으니 너무 힘이 듭니다.”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인근에도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대로변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서자 3.3㎡(1평) 남짓한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촌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민 5~10명이 재래식 화장실 한 칸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악취가 코를 찔렀다. 강모(64·여)씨는 8년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허리디스크를 앓는 강씨는 인근 식당에서 전화가 오면 일주일에 서너 번 설거지를 해주고 있다. 이렇게 해서 생기는 한 달 수입 20만원에서 15만원이 월세로 나간다. 끼니는 일하는 식당에서 해결하거나 복지관에서 나오는 쌀과 라면으로 때운다. 강씨는 복지제도의 혜택에서 소외됐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을 법도 하지만 강씨는 “복지관에 물어봤는데 나이가 부족해 안 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정부는 ‘복지 확대’를 외치고 있지만 이들 빈곤층에는 남의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 북정마을에 사는 김모(60·여)씨는 26㎡(8평) 단칸방 하나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집에 난방시설은 전혀 없어 몇 겹의 이불을 뒤집어쓰고 지낼 수밖에 없다. 인천에 딸이 살고 있지만 그도 생활이 어려워 김씨를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딸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에도 해당되지 않아 국가에서 제공하는 어떤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김씨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자원봉사단체가 순간 온수기를 달아줘 겨우 따뜻한 물로 몸을 씻을 수 있게 됐다. 이웃 정모(87·여)씨 역시 딸이 3명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됐다. 각자 형편이 어려워 정씨를 돌보지 못하고 있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나마 받는 노인연금수당은 병원에서 무릎과 허리 치료받는 데 들어가고, 남은 돈으로는 하루에 쓸 연탄 1장도 못 살 지경이다. 지난해에는 노인복지회관 같은 곳에서 반찬을 줘서 식비 부담을 줄였으나 올해는 그마저도 없어 이웃이 나눠준 김치를 먹고 살고 있다. 이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복지제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제도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안다 해도 신청 방법을 몰랐다. 동대문 쪽방촌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김모(61)씨는 막일을 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겨울이 되자 일감이 뚝 끊겼다. 수입도 없는 데다 자녀도 없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에 부합하지만 정작 김씨는 그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정모(64·여)씨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저렴한 50만원짜리 연탄보일러를 설치할 돈도 없어 연탄 난로로 난방을 하고 있다. 그마저도 연탄을 살 돈이 없어 한 자원봉사단체가 보태준 연탄 200장으로 버티고 있다. 정씨 역시 기초생활수급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신청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정씨는 “동사무소에 가면 되는 것이냐. 내년이 되면 바로 신청하겠다.”면서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제도가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손을 내미는 이들은 민간 봉사단체뿐이었다. 창신3동 언덕 위에 있는 판자촌에 홀로 사는 이모(94·여)씨는 노인연금 9만원 외에 그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9.9㎡(3평) 방 하나와 조그마한 부엌이 있는 판잣집이 있다는 이유로 노인연금 외에 다른 수당을 받을 수 없는 처지다. 자원봉사단체인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고진광 이사는 “정부나 기관에서 생각하는 복지가 필요한 사람과 현장에서 보는 사람은 매우 다르다.”고 지적했다. 자식이나 쪽방 집이 있다고 해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 이사는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실제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도와주는 봉사자들이다. 정부가 이들과 협력해 실태조사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아·김소라기자 jin@seoul.co.kr
  • [박명재 세상 추임새] 이름을 불러주는 사회

    [박명재 세상 추임새] 이름을 불러주는 사회

    이름은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지니는 특권이다. 세상의 숱한 생물 중에서 자기 고유의, 자기 혼자만의 이름을 가진 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수많은 식물과 동물들은 종류를 나타내는 이름만 가질 뿐 개체 하나하나가 각자의 이름을 갖지는 않는다. 백합은 백합, 소나무는 소나무, 고래는 고래, 사자는 모두 사자일 뿐이다. 예로부터 사람의 이름은 함부로 범접하거나 훼손할 수 없는 존엄과 영예의 대상이었다. 사람의 이름에는 뜻하는 바 의미와 함께 이루고자 혹은 되고자 하는 소망, 그리고 조상과 가문의 얼이 온전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름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이자 자신을 총칭해 내보이는 정체성과 고유성인 동시에 인격의 결정체이다. 요즈음은 대체로 한 사람이 평생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옛날에는 아명(兒名) 따로, 성인 이름 따로, 그리고 벼슬이나 관직에 나아갈 때 또 다른 이름을 갖는 등 성장 연대기에 맞춰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잘 아는 포은 정몽주의 경우, 처음에는 어머니가 태몽에 난을 보았다 하여 몽란(夢)으로, 그 후 집 앞 나무에 용이 올라가는 꿈을 꾸고는 몽룡(夢龍)으로, 마지막으로 부친이 꿈속에 주희(朱子)를 만났다 하여 몽주(夢周)로 개명하기에 이른다. 지금도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한 성명학과 작명소가 유행하고 있다. 요즘 세상에서는 이 이름 대신 번호가 등장하여 온통 번호 세상이 되고 있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이름 대신 몇 동, 몇 호 아저씨가 되고, 병원 환자 대기실에서도, 은행 창구 앞에서도 번호가 부르는 곳으로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이름이 불려지는 기회가 줄면서 이름을 기억하려는 노력 또한 점점 줄고 있다. 심지어 선생님의 이름을 모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스승의 이름조차 모르는 제자들이 수두룩한 게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제자의 이름을 모르는 선생님도 꽤 있지 않을까 싶다. 좋은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을 자주 불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름이 번호로 대체되면서 개개인의 가치와 존엄성 내지는 생명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번호 속에는 개인의 개성과 인간성 내지 정체성이 몰각되어 그저 공허한 숫자의 개념만 있을 뿐이고, 번호에는 책임과 이름값이 따르지 않는다. 이러한 번호 뒤에 숨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편리성과 집단을 효과적으로 통제·관리할 수 있는 효용성 등으로 현대사회는 점점 번호를 선호하는 세상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人死有名, 虎死有皮)는 말이 있듯이 이름은 생전과 사후까지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고 표상하는 소중한 그 무엇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사에 있어 가장 치욕적인 일은 살아서는 이름에 걸맞은 자기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고, 죽어서는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이다. 이름이 가장 극진히 대접을 받고 소중히 여김을 받는 것이 바로 종교이다. 불가에서는 합장하고 기원할 때 부처님의 이름으로, 기독교에서는 모든 간구와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슬림은 알라의 이름으로 하게 된다. 상관이 친근하게 부하 직원의 이름을 불러줄 때, 의사가 따뜻하게 환자의 이름을 불러줄 때, 선생님이 자애롭게 학생의 이름을 불러줄 때, 낯선 사람이 공손히 나의 이름을 불러줄 때, 우리 사회에는 그만큼 신뢰와 존경과 사랑이 넘쳐나게 된다. 이처럼 머리로 기억하여 번호를 부르는 대신 마음속에 기억하여 이름을 불러주는 사회에는 따스한 시선과 훈훈한 인간미가 넘쳐나는 살가운 세상이 된다. 시인은 말했다. 누가 나의 빛과 색깔에 맞는 알맞은 이름을 불러다오. 나는 그에게로 가서 잊히지 않는 의미가 되고 싶다고. 세상 끝날 때까지, 생명이 다할 때까지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다정스레 불러주는 사회, 이 어렵지 않은 아름다운 세상이 필자의 소박하고 작은 세상 추임새이다.
  • 겨울에만 반짝 실적주의 성금

    겨울에만 반짝 실적주의 성금

    국내 최대 법정 전문 모금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운영하는 ‘사랑의 온도탑’이 지난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됐다. 지난해 성금 유용 파문에 사라졌던 탑이다. 2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모금회 측은 내년 1월까지 2180억원의 성금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1억 8000만원이 모일 때마다 1도씩 올라간다. 같은 날 서울광장에서 한국구세군 대한본영이 자선냄비 시종식을 가졌다. 올해 목표액을 45억원으로 잡았다. 국가지정 전문모금기관인 재단법인 ‘바보의나눔’도 올겨울 50억원의 성금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성금은 사회 구성원의 온정이자 선행이다. 그러나 이들 단체들의 모금 목표액 설정은 ‘실적주의’처럼 비쳐지고 있다. 사랑의 뜻을 어디에 어떻게 나눠줄지보다 일단 많이 모으고 보자는 데 더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왜 ‘겨울에만 반짝’ 성금 모금에 적극 나서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배분이 가장 필요한 시점에 이르러서야 본격적 모금활동을 시작하는 것은 시기상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연중 기부문화 정착이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날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에 참석한 인사들은 모두 ‘2180억원 목표달성’만 언급했다. 지난해 연말에 터진 공동모금회 비리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없었다. 투명한 배분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이동건 공동모금회 회장은 “지난해 국민들의 온정이 부족해 94.2도(2112억원 모금)에 그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꼭 온정이 더 늘어나 100도를 채우길 바란다.”고만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00도가 넘어 온정이 펄펄 끓어 넘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이사는 이에 대해 “목표액을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금의 목적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적은 액수의 기부라도 투명하게 적재적소에 유용하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금 실적주의’ 때문에 자발적이어야 할 기부가 강제기부로 얼룩진 사례도 있었다. 지난 9월 대구시교육청은 기부문화 정착을 위해 대구공동모금회와 협약을 맺고 학생들에게 사랑나눔통장을 개설하도록 했다. 성금은 모두 공동모금회로 자동납부됐다. 전교조 등 교육단체들은 “성금유용 등 비리가 드러난 공동모금회를 신뢰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강제성 성금모금에 국민들의 거부감도 적지 않다. 직장인 최모(26·여)씨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그들만의 실적 달성을 위해서 내는 성금이라면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공동모금회의 성금 유용 등 비리사태 이후 “성금모금 기관을 못 믿겠다.”는 기부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공동모금회가 모금한 성금은 모두 1449억 5000만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모금액인 1620억 3300만원보다 10.5% 줄었다. 성금 모금을 겨울에만 집중하는 것에 대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도움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시점은 겨울인데 지금 모으는 성금은 빨라야 내년에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체 측은 “예전부터 관례상 그렇게 해왔고, 추운 겨울에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온정의 손길을 유도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진광 이사는 “12월, 1월에만 반짝하는 성금모 금보다 계절에 상관없이 연중 온기를 지필 수 있도록 꾸준히 기부하는 문화 정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한·미 FTA 이후 영향 자세히 다뤘으면”

    “한·미 FTA 이후 영향 자세히 다뤘으면”

    ●“농업분야 피해 최소화 방안 보도를” 서울신문 제49차 독자권익위원회(위원장 김형준 명지대 교수)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위원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및 사회 분야 이슈 보도 내용에 대해 날카로운 조언을 쏟아냈다. 김형진(변호사) 위원은 “한·미 FTA 비준 논란의 핵심이었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관련 기사에서 핵심을 상세히 풀어주지는 못했다. 다른 나라와의 FTA에도 ISD 조항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등 보다 구체적으로 다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정의(이화여대 학보사 편집장) 위원은 “한·미 FTA 비준 자체보다 여야의 동향 보여주기식으로만 일관한 보도가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한경호(행정안전부 윤리복무관) 위원은 “그동안 서울신문이 한·미 FTA를 국가 이익이라는 큰 틀에서 접근하면서 사실 중심으로 전달했던 게 좋았다.”면서 “앞으로 분열된 민심을 수습하고 우려되는 농업 분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보도를 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문형(산업연구원 국제산업협력실장) 위원은 “한·미 FTA 체결 이후 우리나라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심층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 꾸준했으면”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도 주문했다. 권성자(책 만들며 크는 학교 대표) 위원은 “서울신문의 독거노인 시리즈는 심층적이면서도 정부의 협조를 잘 끌어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진광(인간성 회복운동 추진협의회 대표) 위원은 “지난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 문제가 터지면서 모금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1년이 지난 지금 모금회에서 모금되는 것들이 소외계층에 골고루 퍼지고 있는지 연말을 맞아 심층적으로 살펴봤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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