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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창극 검증, 정파 안 치우치고 날카로워”

    “문창극 검증, 정파 안 치우치고 날카로워”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는 지난 25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에서 제66차 회의를 열어 전날 사퇴한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고위공직자 자격 논란에 대한 보도를 점검했다. 독자권익위원들은 서울신문이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날카롭게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도 인사시스템 개혁을 위한 꾸준한 보도를 당부했다. 김광태(온전한 커뮤니케이션 회장) 위원은 “진보 성향의 신문은 문 전 후보자를 친일파로 몰아가고 보수 신문은 인위적 해석을 덧붙이는 문제점이 드러났다”면서 “서울신문은 다른 언론과는 달리 정파적 진영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했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박준하(전 이화여대 학보사 편집장) 위원은 “후보자의 말실수에 집작하는 언론 보도가 많았는데 인사 문제 시스템 등 여러 측면에서 다뤘던 점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박 위원은 문 전 후보자 관련 최근 사설들에 대해 “초반에는 문 후보 스스로의 판단을 촉구한 데 비해 이후에는 청와대 책임론과 인사 검증시스템 문제에 무게를 뒀던 점이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다만 서울신문을 비롯해 언론들이 문 전 후보자의 친일발언 등에 대해 과도하게 다룬 측면이 있다면서 다각도로 후보들의 자질을 검증해줄 것을 당부했다. 고진광(인간성 회복 운동 추진협의회 대표) 위원은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보다 문 전 후보자에 대한 보도가 가혹한 측면이 있었다”면서 “여론몰이는 없었는지 언론의 태도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2기 내각 개각 문제 등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이 부족했다”면서 “폭넓은 인사가 됐는지, 여성 장관 비율은 부족하지 않은지 등 다른 문제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성자(책 만들며 크는 학교 대표) 위원은 공직인사혁신안 대해부 시리즈로 인사행정 분야 전문가 35명의 의견을 취합한 서울신문 기사를 예로 들며 “이른바 관피아 등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현 상황을 진단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면서 “앞으로도 공직자들은 어떤 윤리와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깊이 있게 다뤄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철휘 서울신문 사장은 “일부 언론은 후보자 검증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지만 서울신문은 생각이 다르다”면서 “세상이 달라진 만큼 앞으로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철저한 검증 보도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참전 할아버지들 덕에 저희가 공부” 감사 편지

    “참전 할아버지들 덕에 저희가 공부” 감사 편지

    “우리 할아버지도 6·25전쟁에 참전하셨대요.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저희가 편하게 공부합니다.”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대표 고진광)는 6·25전쟁 발발 64년을 맞은 25일 전국 각지에서 청소년들의 감사 엽서를 참전 유공자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날 세종시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6·25전쟁 참전 유공자 412명이 서울과 세종시 10대 청소년들이 쓴 손엽서를 받았다. 서울 화계중 학생 700여명과 언남중 학생 200여명은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을 찾아 유공자들에게 직접 손엽서를 전달했다. 충남 서산여중 학생들도 6·25전쟁을 다시 생각하며, 유공자들에게 감사엽서 쓰기 행사를 진행했다. 인추협은 2011년부터 ‘6·25 참전 유공자와 함께하는 세대공감’ 활동을 펴며 청소년들이 생존한 17만여명의 유공자를 찾아뵙는 행사를 전개하고 있다. 인추협 관계자는 “ 6·25전쟁을 잘 모른 채 ‘일제에 저항해 감사한다’는 내용의 엽서도 있었다”면서 “청소년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32회 교정대상 수상자] │봉사상│ 하준섭 부산교도소 교정위원

    [32회 교정대상 수상자] │봉사상│ 하준섭 부산교도소 교정위원

    1984년부터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용자들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노력했다. 1984년부터는 4080명의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자매결연을 주관해 심리적으로 안정된 수용 생활을 독려했다. 3060만원 상당의 음식물을 제공하고 ‘인간성 회복 및 준법정신 함양을 위한 강연’을 168회 실시해 수용자 교정, 교화에 기여했다. 1993년부터는 수용자들의 사회 견학 행사에 320만원 상당의 도시락을 지원하고, 출소 예정자 240여명과의 상담을 통해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도왔다. 1981년부터는 ‘마음의 등불 사랑의 봉사회’를 조직해 독거노인 합동 생일잔치를 열며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 ‘빅맨’ 정소민, 먹방 BJ 변신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채 먹방’

    ‘빅맨’ 정소민, 먹방 BJ 변신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채 먹방’

    정소민이 먹방(먹는 방송) BJ로 변신한다. 9일 방송되는 KBS 2TV 월화드라마 ‘빅맨’(극본 최진원 연출 지영수 제작 김종학프로덕션 KBS미디어) 13회에서는 자칭 외모와 인간성을 두루 겸비한 멀티형 공주 강진아(정소민)가 ‘재벌녀 어디서든 먹는다’ 생중계 방송에 나선다. 순진유업의 식중독 사태에 휩쓸려 위기에 빠져버린 김지혁(강지환)을 구하기 위해 강진아가 직접 수호천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 이날 제작사를 통해 공개된 사진 속 정소민(강진아 역)은 화려한 차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트에서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샌드위치와 우유 먹기에 심취해 있는 모습이다. 또한 우유를 한 방울이라도 흘릴 새라 미친 듯이 폭풍 흡수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리얼해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 장면 촬영 당시 정소민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채 세상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듯 열혈 먹방을 선보였다고. 이에 여배우로서 망가짐도 불사한 정소민의 온 몸 다 바친 먹방의 향연이 방송에서 어떻게 그려지게 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빅맨’의 한 관계자는 “정소민의 능청스런 열연에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이 모두 빵 터졌다”며 “지혁을 향한 진아의 순정이 점점 더 깊어질 예정이다. 공개된 장면 역시 지혁을 위해 아낌없이 모든 걸 내건 진아의 순정이 담겨있는 장면이다.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갈지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정소민의 ‘재벌녀 어디서든 먹는다’ 생중계 먹방을 만나볼 수 있는 ‘빅맨’ 13회는 9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사진 = 김종학프로덕션 KBS미디어 제공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재석 다큐, ‘유재석 용비어천가’ 대체 누가 왜 만들었나 했더니 ‘폭소’

    유재석 다큐, ‘유재석 용비어천가’ 대체 누가 왜 만들었나 했더니 ‘폭소’

    유재석 다큐 ‘유재석 용비어천가’, 대체 누가 왜 만들었나 했더니 ‘폭소’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제작진이 6.4 지방선거 특집 재방송에서 무한도전 내 ‘차세대 리더’로 뽑힌 유재석의 다큐멘터리인 일명 ‘재석 용비어천가’를 공개했다. ‘무한도전’은 4일 ‘선택 2014’ 특집 재방송에서 유재석이 차세대 리더로 선출된 후에 다큐멘터리를 내보내 눈길을 끌었다. 이 영상은 지난달 ‘무한도전’ 공식 트위터를 통해 공개됐었다. 주변 인물과 동료, 선후배들의 유재석의 인간성에 대한 생각을 담고, 가수 유희열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재석 용비어천가’는 주변 인물의 유재석에 대한 평가와 그가 방송에 입문한 후 지금의 인기를 얻기까지의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았다. 유희열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태동 鐘樓에서] 세월호 사건과 미디어 권력의 빛과 그늘

    [이태동 鐘樓에서] 세월호 사건과 미디어 권력의 빛과 그늘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밝히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담론이다. 이미 19세기의 토머스 칼라일은 언론을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제4권력이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고, 20세기의 언론학자 마셜 맥루한은 텔레비전의 거대한 위력을 보고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의 권력은 언제나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함께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도덕적 정당성을 잃게 되면 그것은 사회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되지 못하고 무서운 폭력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제4의 권력’이라고 말하는 언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시카고 대학의 유명한 영문학자이자 언론학자인 웨인 부스는 ‘저널리즘에 있어서의 사실과 가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언론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담론이지만, 고급한 정론지(혹은 건강한 공정방송)의 길을 걷지 못하고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저급한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지게 되면, 그것이 지닌 가치와 사회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됨은 물론 오히려 사회에 큰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고는 최근 우리나라의 언론이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뉴스의 가치는 신속·정확함에 있다고 하지만, 거의 모든 방송사들이 너무나 성급하게 끝을 보겠다는 자세로 24시간 계속해서 참사 현장을 여과 없이 카메라로 비쳐 국민들을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MBN과 JTBC는 정부를 불신하고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겠다는 것처럼 오만한 자세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해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었고, 자학(自虐)에 빠질 정도로 집단적인 외상(外傷)을 입혔다. 이러한 일부 방송사들이 보인 무절제한 태도에 말 없는 다수의 국민들은 적지 않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세월호의 비극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참사다. 그러나 그것에 우리나라 전체가 완전히 침몰되어 있을 수는 없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기’ 때문에 블레이크의 말처럼 ‘뼈가 묻힌 무덤이라도 달구지는 몰아야’ 한다. 수장(水葬)을 한 304명이나 되는 후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살아남은 자들은 쓰러져 있지 않고 일어나야만 아이들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그들의 슬픔을 위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문학적인 담론을 얘기한다면, 비록 방송인들은 뉴스는 신속해야 하고 보도의 대상이 되는 사실과 가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이러한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낡은 것이다. 화이트헤드와 폴라니 등과 같은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우주에는 사실과 가치가 분리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방송사들이 세월호 참상에 대해 나라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절제력 잃은 충격적인 보도를 함으로써 국민들을 실망시킨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너무나 많이 난립한 방송사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 문제로 인한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질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방송기자들이 시청자들에 대해 언제나 일방적인 통로로 담론을 전개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장만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착시현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자는 권력이 강해지면 아이러니하게 자칫 그것의 힘에 지배되거나 압도되어 인간성을 잃어버린 불손한 얼굴로 나타날 수 있다. 윌리엄 피트는 “무제한의 권력은 지배자를 타락시킨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대중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제4의 권력을 행사하는 언론사들이 KBS처럼 겸손의 미학과 인간에 대한 예의는 물론 동료 간의 신뢰마저 버리고 진영 논리로 진흙탕 싸움을 하게 되면, 그 존재 가치를 스스로 상실하게 될 것이다. 뒤늦게나마 최근 언론인 5623명이 세월호 보도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시국선언을 하며 언론의 사명을 되새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 [생명의 窓] 인간마인드의 회복/서광 스님·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생명의 窓] 인간마인드의 회복/서광 스님·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않는 한 누구나 육도(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세계를 돌면서 전생과 현생, 그리고 내생을 윤회하면서 괴로움을 겪는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정신분석적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순간순간 육도를 오가며 윤회한다. 분노와 공격성에 의해 지배를 받는 지옥마인드, 신경증적 욕구와 갈망으로 들끓는 아귀마인드, 성욕과 무지로 뒤덮인 축생마인드, 질투심과 편집증에 몰입된 아수라마인드, 욕망의 충족이나 에고기능의 일시적 멈춤으로 인해서 황홀감에 빠진 천상마인드, 실존적 물음 또는 생명의 존귀함, 평화, 삶의 의미, 윤리 등을 고민하는 인간마인드를 끊임없이 윤회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들 가운데 몸은 인간이지만 정신세계는 성욕과 탐욕이 주를 이루는 축생의 마음이 지배적이라서 좀처럼 인간마인드에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동성추행, 심지어 딸을 추행하는 친부의 경우가 축생의 세계의 대표적 예다. 세월호 사건 바로 직전 우리들을 공분케 했던 울산이나 칠곡의 계모 사건은 공격성과 분노가 핵심감정인 지옥의 정신세계에 몰입된 전형적 예다. 그렇다면 온 국민을 슬픔, 분노를 넘어서 좌절, 절망하다 못해 무기력과 무감각함으로 몰아넣은 세월호 사건을 유발한 사람들의 주된 핵심감정은 무엇일까. 그건 아귀마인드다. 신경증적 욕구로 인해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갈망만 할 줄 아는 정신세계다. 물론 세월호의 비극은 육도의 어느 한 정신세계만의 결과는 아니다. 문제는 이 사건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사람들의 정신세계에는 인간적 가치나 존재의미,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유발하는 인간마인드가 치명적으로 결핍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인간마인드에 주로 머무르는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으로는 너무나 인간 같지 않은 이들의 정신세계와 행위들을 이해는커녕, 상상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놀라움과 분노를 넘어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나아가 그들의 문제해결 방식과 반응행동들은 인간마인드의 사람들을 더 큰 절망과 아픔, 무기력증으로 유도한다. 그들의 마인드는 온 세상이 그저 쟁취하느냐, 못하느냐의 이분법적 욕망으로 채워져 있을 뿐, 남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알지도 못한다. 상대 입장에서 사고하는 능력이 부재돼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힘과 소유의 논리에 의한 승복이 있을 뿐이다. 2차 대전 당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성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강제수용소에서조차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부류와 미천한 인격을 가진, 두 부류의 사람들을 경험했다고 증언했다. 요즘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가…”라는 반응으로 경악하게 만드는 끊임없는 사건·사고들을 접하면서 무력감을 넘어 그 출구를 찾는 일조차 힘겹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럴 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인간의 정신세계를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에서도 보듯이 아직도 주변에는 이웃의 고통을 공감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자비로운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은 여전히 희망적이다. 이제 어떻게 하면 세월호 사건의 교훈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면서 정치, 교육, 경제 등 다양한 사회조직과 기능에 사용할 것인지를 화두로 삼고 고민해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어떤 방식으로 인간마인드의 교육과 회복을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하고 실천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돌베개 펴냄) 유대인으로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1919~1987)가 인간이라는 존재의 심연을 들춰본 에세이로 국내에 처음 번역됐다. 20세기 증언문학의 고전 반열에 오른 ‘이것이 인간인가’를 집필한 지 38년 만에 쓴 작품. 나치의 폭력성과 최소한의 인간성까지 말살하는 수용소 현상을 분석했다. 레비는 아우슈비츠 안에서 자신이 보고 겪은 일들을 통해 죽은 자(가라앉은 자)와 살아남은 자(구조된 자)를 가로지르는 기억과 고통, 권력의 문제를 파헤쳤다. 수용소 포로들이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 무자비하게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2장 ‘회색지대’는 발간 당시 가장 논쟁이 됐던 부분이다. ‘권력자’들은 가스실을 피하기 위해, 배고픔을 이기려고 범죄자 집단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최후의 생존자 가운데 다수가 이들 ‘권력자’였던 반면, 용기 있고 정의로운 이들은 수용소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280쪽. 1만 3000원.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가이 해리슨 지음, 정명진 옮김, 엑스오북스 펴냄) 전 세계 25억명 이상이 믿는 지상 최대의 종교인 기독교의 다양한 모습과 관점을 비판적으로 파헤친 책. 비기독교인은 물론 기독교인들도 궁금증을 품을 만한 기본적인 질문 50가지를 골라내 논쟁이 되는 문제들을 분석한다. 역사와 과학을 전공한 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다분히 논쟁적이다. 문자 그대로 믿기를 좋아하는 기독교인들은 노아의 방주 길이가 400∼500피트였다고 주장하지만 그 정도 크기로는 육상의 모든 동물을 종류별로 2마리씩 싣는 건 불가능하며 호주 대륙만큼은 컸어야 한다고 꼬집는다. 진화론 문제로 힘들어하는 기독교인에게는 다른 모든 것들과 똑같이 종교도 새로운 지식에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라고 제안하고 싶다고 말한다. 기독교인과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불교도, 무신론자가 모두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려고 책을 썼다고 한다. 495쪽. 1만 8000원. 나의 이상한 나라, 중국(한한 지음, 최재용 옮김, 문학동네 펴냄) 올해 스물여덟살, 아이돌 가수 같은 외모에 파괴력 있는 문장력을 구사하는 한한은 2010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뽑힌 중국문화의 아이콘이다. 그가 지난 8년간 자신의 블로그에 발표한 글 600편 중 가장 대표적인 70여편을 추렸다. 활어처럼 팔딱거리는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오늘날의 중국, 중국인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담은 사회비평서다. 1부에서는 젊은 세대로서 중국사회를 살아가면서 목격한 여러 가지 부조리를 재치 있는 조롱과 풍자 형식으로 고발한다. 권위주의에 빠져 인민위에 군림하는 중국정부, 호화로운 시설에서 은밀한 향락을 즐기는 사회지도층을 눈감아 주는 경찰당국 등이 도마에 올랐다. 2부에서는 작가인 한한이 바라본 중국 문화계의 문제점을, 3부에선 베이징올림픽 등 세계적 행사를 치르며 보인 비뚤어진 민족주의를 비판했다. 4부는 중국 시사주간지 난두저우칸과의 인터뷰 내용을 담았다. 504쪽. 1만 4800원. 우주의 끝을 찾아서(이강환 지음, 현암사 펴냄) 관측 천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국립과천과학관에 재직 중인 천문학자가 최신 천문학의 이론을 알기 쉽게 풀어 썼다. 우주를 구성하는 성분 중 우리가 정체를 아는 것은 5%도 되지 않는다. 27%는 중력으로만 존재를 알 수 있는 암흑물질이고, 68%는 우주 공간에 균일하게 퍼져 있는 암흑에너지다. 암흑에너지의 정체는 알 길이 요원하다.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는 수천억개 은하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렇게 거대한 우주도 138억년 전에는 무한히 작은 하나의 점에 모여 있었다. 우주가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유일한 단서인 빛을 관측하고 그 결과를 해석해서 찾아낸 비밀이다. 책은 또 다른 우주의 놀라운 비밀을 찾아가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빅뱅 뒤 우주가 어떻게 팽창해 왔는지, 빈 공간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정체와 영향은 무엇인지, 우주배경복사와 초신성 탐사, 중력파, 암흑물질 등의 개념을 다룬다. 352쪽. 1만 8000원.
  • [로스쿨 탐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로스쿨 탐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서울신문이 더 나은 법조인 양성을 기대하며 마련한 ‘로스쿨 탐방’ 5회는 고려·조선 1000년을 이끈 인재들을 배출한 최고 고등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전통을 이어받은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다. 박광민 원장은 수기치인(修己治人·스스로 수양하고 세상을 다스린다)의 품성을 갖춘 ‘플러스형 법률 전문가’ 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유교적 덕성을 중시하는 게 독특한데. -성균관대는 고려와 조선의 국립고등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옛 선비들은 끊임없이 인(仁)을 실천해 자아를 완성하고 완성된 자아를 주변으로 확대해 나가는, 곧 ‘수기치인’의 기본 품성을 갖춘 사람이라야 나라를 이끌어 갈 자격이 있다고 봤다. 그런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운영하는 것이 ‘신언서판’(身言書判) 제도다. 법조윤리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법률가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2학점짜리 과목을 운영하고 교양도서를 선정해 30권가량 서평을 제출하도록 하는 게 신(信)이다. 이는 국민에게 신뢰받는 법률가가 돼야 한다는 취지다. 언(言)은 어학 능력이고, 서(書)는 법률가에게 필요한 문장력을 키우는 프로그램이다. 판(判)은 사례와 실무수습을 통해 법률가로서 판단력을 기르도록 한다. →기본 목표로 세운 ‘플러스형 법률 전문가’란 무엇인가. -과거엔 법률 지식만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는 한계가 있었다면 이제는 지식과 실무, 법조윤리, 바람직한 가치관까지 융합한 법조인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에서 ‘플러스’라는 말을 쓴다. 국내를 뛰어넘어 사회와 국가, 세계에 기여하는 글로벌 역량을 갖춘 인재를 만들어 보겠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로스쿨이라는 제도를 통해 ‘시험을 통한 법조인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으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성대 로스쿨은 그런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표준적인 로스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 단계는 어느 정도 목표에 근접했다고 보나. -지금까진 성공적으로 추진 중이다. 예전부터 법학과는 성대를 대표하는 학과 가운데 하나였다. 전국 최고 수준의 실무교수를 보유하고 경험과 현장역량을 학생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한 국제교류도 활성화되고 있다. 공동학위 과정은 4개, 교류협정은 31개 학교와 진행 중이다. 특히 미국에서 학점교류로 로스쿨 과정을 이수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 돌아와 국내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학생도 매년 두세 명씩 배출하고 있다. →기업법무를 특성화로 선택한 이유는. -전체 164개 교과목 중 59개를 기업법무 과목으로 구성했다. 이 중 24학점 이상을 이수하면 기업법무 특성화 이수 인증서를 교부하고 성적표에도 명기해 준다. 한국 법조계가 국제무대에서 경쟁하려면 가장 시급한 분야가 바로 기업법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세계무대에 더 많이 진출해야 하는 건 한국인 모두에게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시장에선 무역과 특허 등 셀 수 없이 많은 분쟁이 발생한다. 사전에 분쟁을 예방하고 합리적인 기준 안에서 상호 간 최대 이익을 얻으려면 법률가가 더 많은 구실을 해 줘야 한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높은 등록금 수준 때문에 진학을 주저하는 학생도 많다. -등록금 부담이 크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교 입장에선 적자를 감수하며 로스쿨을 운영 중이란 점은 감안해 줬으면 좋겠다. 등록금 총액 대비 장학금 규모가 약 37%인데 성적 장학금은 거의 없고 83%가량을 사회적 취약계층 학생에게 지급한다. 거기에 교수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그것만으로도 로스쿨이 비싼 등록금으로 대단한 수익을 거두는 게 아니란 점이 분명해진다. 높은 등록금 문제에 대해 정부가 일정한 역할을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법조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사람을 아는, 사람과 사회와 국가를 이해하는 그런 법률가가 되길 바란다. 법에만 매몰돼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은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법률가가 결코 아니다. 사회와 국가와 세계 속에서 조화롭게 세계관을 갖추고 인류에 봉사해야 한다. 이걸 위해선 사법시험보다는 그에 걸맞은 목표를 갖춘 로스쿨에서 교육을 받은 법조인이 나와야 한다. 법률가가 특권을 가진 직업이라고 인식해선 안 된다는 걸 후배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박광민 원장은 ▲성균관대 법학사·박사 ▲서울고검 항고심사회 위원 ▲한국피해자학회 회장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회 위원 ▲해양경찰청 인권수호위원회 위원장
  • “셰익스피어의 詩語, 산문으로 알 수 없죠”

    “셰익스피어의 詩語, 산문으로 알 수 없죠”

    “1989년 교수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셰익스피어 번역본이 산문으로 차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시로 썼는데 왜 다 산문으로 늘려 썼을까 의아했죠. 외국어 문학 전공자로 우리 문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운문 번역에 일생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최종철(65) 연세대 영문학과 교수가 국내 최초로 셰익스피어 운문 번역에 나선 이유다. 1993년 ‘맥베스’로 첫발을 뗀 이후 20여년간 셰익스피어 번역에만 오롯이 매달려 온 그의 분투가 최근 ‘셰익스피어 전집’(민음사)으로 출간됐다. ‘왜 운문 번역이냐’는 질문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 강의를 시작했다. “셰익스피어의 시에는 압축과 상징, 비유가 많아 단어 하나에도 많은 의미가 농축돼 있어요. 그걸 산문으로 번역하면 공간 제약이 없으니 특정한 뜻을 전달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건 셰익스피어가 정해 놓은 길이 아닙니다. 뜻도 늘어지고 긴장감도 사라지죠. 리듬이 안 살아나면 말에 내포된 의미와 느낌도 함께 죽습니다. 반면 ‘당신은 장미다’라고 압축하면 ‘당신’에 없는 뜻이 장미에 옮겨 붙고 장미에 인간성이 더해져 충돌하면서 많은 의미가 생겨나게 돼요. 원초적인 의미의 충격과 상상력이 피어나고 거기에 음악이 붙으면 정서, 감정이 증폭됩니다. 그때 관객들이 빨려드는 거죠.” 그도 그럴 것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38편 가운데 운문 대사 비율이 80% 이상인 작품은 22편에 이른다. ‘맥베스’는 95%가 운문 대사일 정도다. 결국 셰익스피어가 쓴 원전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운문 번역이라는 것. ‘약강 오보격 무운시’(약강 음절이 시 한 줄에 다섯 번 나타나는 각운이 없는 시)로 분류되는 대문호의 시를 우리말로 옮기기 위해 최 교수가 활용한 것은 우리 시의 운율인 3·4조, 4·4조였다. 그 결과 원문 한 줄의 자음과 모음 숫자, 우리말 12~18자에 들어가는 자음과 모음 숫자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극이라는 게 삶을 무대에 재구성하는 거니까 우리 인생과 닮았잖아요. 그러니 사람이 한 호흡으로 가장 편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음의 양도 영어와 한국어가 비슷하다는 말이죠.” 셰익스피어가 의미 압축을 위해 앵글로색슨어, 켈트어에 라틴어를 섞어 썼듯 그 역시 우리말에 한자어를 섞어 옮겼다. 독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산문의 배열에 익숙했던 독자들은 ‘이게 뭐냐’는 반응이었고, 또 하나는 ‘나를 왜 이렇게 고생시키냐’는 것이었다고.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그렇잖아요? 한 번 읽으면 아름다워 보이지만, 읽고 또 읽으면 뒤에 숨겨진 통한의 정서가 드러나죠. 운문은 압축이기 때문에 한 번 읽어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읽고 또 읽은 독자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리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죠.” 오는 8월 정년을 앞둔 최 교수의 일생이 셰익스피어에 사로잡혔듯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은 세계 문화계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변주하는 데 여전히 열광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 어떤 작가도 셰익스피어만큼 인간의 희로애락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하지는 못했습니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관점을 고집하지 않고 보편적 인간상을 보여 줬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지금도 ‘현대적’이며 ‘현재의 우리’를 비출 수 있는 거죠.”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불량 제약회사(벤 골드에이커 지음, 안형식·권민 옮김, 공존 펴냄) 영국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겸 유행병학자인 과학저술가 벤 골드에이커가 다국적 거대 제약회사들이 어떻게 ‘질병장사’를 하고 있는지 그 실상을 폭로한 책. 제약회사가 의사를 비롯한 모든 의료인을 어떤 식으로 기만해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어떤 해를 입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전작 ‘배드 사이언스’를 통해 웰빙 명목으로 불티나게 팔린 항우울제나 다이어트 약들의 맹점을 파헤쳐 주목을 받았던 저자는 이번에 거대 제약사들의 의약 연구자료 은폐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저자는 책에서 불편한 진실들을 거리낌 없이 폭로한다. 연매출이 6000억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제약업계는 연구개발보다 마케팅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 신약 임상시험 결과는 조작되기 일쑤고 연구비를 건지고 수익을 늘리기 위해 신약에 맞는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규제당국은 규제는커녕 쉬쉬하며 거수기 노릇을 하느라 바쁘다. 권위 있어 보이는 학술지들은 사실상 제약회사의 광고지나 다름없다. 명백한 사기이자 부정행위가 만연한 현실은 의약시스템 전체를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해결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519쪽. 2만 2000원. 낭비사회를 넘어서(세르주 라트슈 지음, 정기헌 옮김, 민음사 펴냄) 올이 풀리지 않는 나일론 스타킹, 2500시간 사용할 수 있는 전구는 왜 사라졌을까. 10년을 거뜬하게 쓰는 냉장고 값에 맞먹는 스마트폰의 수명이 고작 2~3년인 이유는 뭔가.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세르주 라트슈는 이를 ‘계획적 진부화’라고 단정한다. 기업이 내구 소비재의 대체 수요를 부추길 목적으로 제품을 계획적으로 진부화시키는 것이다. 성장 위주의 경제 패러다임에 반대하는 저자는 광고, 신용카드와 함께 자본주의 소비사회를 특징짓는 현상으로 상품의 정해진 수명이야말로 성장사회를 이끌어가는 절대적 무기라고 분석한다. 광고는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신용카드는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 계획적 진부화는 소비자의 필요를 갱신한다. 우리는 광고와 신용카드를 거부할 수는 있지만 제품의 기술적 결함 앞에서는 대부분 속수무책이 된다. 책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하면서도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계획적 진부화라는 개념을 통해 상품들에 포위된 우리의 일상이 식민화되고, 공간과 시간이 변형 왜곡되고, 생태계가 파괴되며 급기야 인간성마저 진부한 것이 되어버리는 과정을 추적한다. 144쪽. 1만 2000원. 헤겔(찰스 테일러 지음, 정대성 옮김, 그린비 펴냄) 프리즘 총서 12번째 책으로 현존하는 영미권 최고의 정치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찰스 테일러가 집필한 헤겔 연구서다. 난해하고 복잡한 헤겔의 사유세계에 좀더 친근하게 접근하도록 청년기 헤겔의 형성 과정부터 정신현상학, 논리학, 정치철학, 역사철학, 미학, 종교철학, 철학사 등 헤겔 사상 전반을 충실하게 체계적으로 해설했다. 1975년 출간 이래 헤겔연구의 고전으로 인정받는 저작이다. 헤겔은 근대사회의 파편화와 인간의 소외 문제를 동시대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감지한 사상가였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방법을 철학적 쟁점으로 삼았다. 테일러는 헤겔 철학이 당시의 시대적 문제와 열망에 응답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시도로 탄생했음을 강조하면서 헤겔이 자신의 철학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려 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더불어 프랑스혁명에 대한 헤겔의 태도, 당대 프로이센 국가에 대한 헤겔의 평가 등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청년기 급진적이었던 헤겔이 말년에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평가나 헤겔이 프로이센을 찬양한 국가 철학자라는 비난은 후대의 무지와 오해가 빚은 왜곡임을 밝힌다. 1080쪽. 5만원. 공부 논쟁(김대식·김두식 지음, 창비 펴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인 형과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동생이 한국사회의 공부 풍토에 직격탄을 날렸다. 사고뭉치와 모범생, 이과와 문과, 보수와 진보, 직설과 배려 등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인 형제는 한국 교육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낸다. ‘천재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왜곡된 엘리트주의, 해외 유학파와 장원급제 DNA가 장악하는 학계, 아이들에게 공부 경쟁을 강요하는 현상 등을 조목조목 따진다. 대학에 박사 과정 학생들을 두면서도 정작 교수 임용의 문은 유학파 출신에게만 열어 놓는 모순, 출신 고교로 대학이 결정되고 출신 대학으로 직장이 달라지는 세상이라 고작 15살에 인생의 갈림길에 서야하는 아이들의 현실 등 공감 가는 얘기가 수두룩하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냈다”는 형제는 예리하면서 통찰력 있는 지적을 쏟아낸다. 288쪽. 1만 3800원.
  • [이태동 鐘樓에서] 선거는 민주주의 꽃인가 ‘막말’의 향연인가

    [이태동 鐘樓에서] 선거는 민주주의 꽃인가 ‘막말’의 향연인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선진국에서 선거는 모든 국민이 즐기는 축제와 같은 행사로 치러진다. 그들은 선거를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하고, 선거가 끝난 후에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며 다음 선거 때까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주어진 일들을 성실히 수행하는 자세를 보이며 살아간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의 선거는 축제가 아니라 분열과 갈등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전쟁’과도 같다. 2012년 대선이 끝났지만, 지난 일 년 내내 선거 후유증으로 나라가 시끄러웠고 지금도 그 여진(餘震)이 남아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오는 6월 4일 치르게 될 지방 자치 선거 또한 즐거운 축제가 아니라 심한 상처만 입게 되는 ‘전쟁’이 되리라는 불길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급조한 신당이 생겨나고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져 막말을 사용하며 극한적인 대립의 양상을 보이는 계절이 왔다. 선거 때에 여당과 야당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정책 대결을 하는 것은 정당 중심으로 경쟁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이 선출됐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반대파들과 심지어는 일부 교구(敎區)의 사목(司牧) 신부들까지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고 미움과 증오로 막말을 토해내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다. 나라의 통합을 이끌어야 할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인까지 ‘막말’을 한다면, 통합은커녕 사회분열은 더욱 첨예화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을 동반자가 아닌 적으로 생각하고 증오하게 되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된다. 증오심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대방을 학대하고자 하는 심리는 본능적인 검은 악과 심층적으로 연결돼 있다. 따라서 한 번 ‘막말’이 시작되면,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모르게 자제력을 잃고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경우처럼 원시적인 본능의 노예로 변신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미국 시인 에드거 앨런 포는 ‘까마귀’란 시에서 “어두운 밤 까마귀가 무엇을 한 번 쪼기 시작하면, 그 움직임에 취해 미친 듯이 쪼아댄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 정치인들은 ‘막말’을 악을 제거하기 위한 마키아벨리적인 언어나 혹은 반어적인 의미가 담긴 풍자라고 주장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미디어가 곧 메시지”인 디지털 시대의 대중에게는 수용하기 어렵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고 하는 우리가 왜 이렇게 ‘막말’을 많이 하는 국민으로 보이는가. 그것은 예(禮)를 중요시하는 유교문화가 무너지고 그것에 대체할 만한 수신(修身) 교육이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후 기독교 사상이 무너져 신념의 공백이 생겼을 때, 서양 사회는 강력한 인문학 교육과 예술의 힘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무너진 유교사상과 대체할 수 있는 인문학을 고사(枯死)시키는 교육 정책만 계속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큰 과오와 불행은 일제 식민지시대에 이어 찾아온 해방 공간에서 빚어진 치열한 이념적인 갈등이 국민들을 인간성의 이해보다는 흑백 논리의 포로가 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은 전부 친일파, 기회주의자로 배우며 미움과 증오의 세월을 보내도록 해 온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인들은 아직까지 그들의 저돌적인 막말이 국민 정서는 물론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얼마나 교육적으로 나쁘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후진적이고 희극적인 양상을 계속해서 연출하고 있다. 힘겨운 생활 전선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국민들은 오늘도 ‘막말’로 빚어진 싸움보다 웃음이 꽃피는 바르고 고운 말이 들리는 평화의 정치판을 기대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막말’이 아닌 존칭어를 사용해서 싸움·욕설·왕따를 추방했다는 서울 종로구 재동초등학교 어린이들보다 자신들이 지능적으로 훨씬 높고 훌륭한 어른들이라고 믿지 않는가.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열대’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열대’

    한곳에 오래 살다 보면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무엇이 있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 좋은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바뀐 것들 대부분은 되돌릴 수 없다. 이런 사실들이 모여 역사가 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도 해본다. 역사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런 명분 아래 그냥 배워 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슬픈 열대’의 저자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사실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 직무 수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사회의 기능 체계 속에 이미 한 자리를 확보했다는 느긋함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특수한 성격이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우리 시대의 많은 청춘들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그도 청년기에는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있었다. 고3 때 선생님이 법률 공부가 적성에 맞을 것이라고 권하자 2주간의 요점 정리만을 공부하는 것으로 쉽게 법학시험을 끝낼 수 있어서 법학부에 등록하고 철학 학위도 준비했다. 학위를 받고 그리 어렵지 않게 최연소로 철학교수 자격시험을 한 번 만에 통과했다. 전도유망한 철학교수로 안착할 수 있었으나 철학에서 배우고 훈련했던 논리들이 철학적 논리의 완성도를 위해서만 쓸모 있다는 생각에 철학과 멀어지게 됐다. 그가 철학과 멀어졌다 해도 그의 사상적 토대가 철학에서 온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자신의 세 스승이라고 표현한 지질학,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에서 체험과 실재 사이의 통로는 불연속적인 것이며 실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총합 안에서 우선 체험을 거부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에 대한 회의를 통해 체험이 더욱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이런 생각은 미국의 민족학자 로버트 로위가 쓴 ‘미개사회’를 읽고 확고해졌다. 철학적 훈련에 갑갑함을 느끼던 레비 스트로스는 이 책에서 철학적 지식이 아닌 관찰자의 직업적 참여가 있어야만 그 의미를 보존할 수 있는 원주민 사회의 실제 체험과 만나며 자신의 길이 민족학에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슬픈 열대’는 그가 42세 되던 해(1950년)에 출판됐다. 자신이 어쩌다 민족학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에서부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과 문명의 광기에 소심하지만 집요하게 저항했던 것을 거쳐 브라질 원주민과의 만남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 그리고 유네스코 문화사절로 파키스탄과 인도를 여행한 내용 일부를 정리한 방대한 책이다. 출발에서 귀로에 이르기까지 총 40장으로 구성된 목차만 보면 지구 사방을 여행한 경험담처럼 보인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면 여행기로 보아도 좋지만 그가 사람들의 뇌리에 던진 충격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마감하게 한 원자폭탄과도 같아 사상서라 부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KDC 분류 체계 중에서 기호 985대 남아메리카 지리에 분류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문명과 야만을 임의대로 구분하여 자기들이 속한 곳을 문명이라 부르고 그렇지 못한 곳을 야만이라 칭하며 맘껏 짓밟아도 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두 번의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물리적 파괴와 인간 살상을 목도하며 인간 존재에 대해 회의를 품은 지식인들은 인간에 대한 근원적 탐구를 자신의 특성에 맞게 시작했고 이로 인해 생겨난 결과물들은 지금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사유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다. 스트로스는 유대계 프랑스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했던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미국의 록펠러 재단이 유럽 학자들을 구해 내기 위해 계획한 ‘신사회 조사 연구원’의 초청을 받는 형식으로 브라질에 가게 됐다. 민족학에 대한 열정으로 브라질 탐험을 떠난 것 같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많은 영화와 다큐, 체험기, 사진, 회화 들을 통해 유대인들의 박해와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그가 브라질로 향하는 여정이 순탄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처해 있던 당시의 위기 상황을 생각하노라면 그가 현상 너머에 있는 심층에서 보편적 구조를 발견하고, 인간의 우열을 가르는 것이 매우 잘못됐다고 결론짓게 된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트로스는 인간정신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구조적 측면을 통해 인간정신을 탐구하고자 했다. 인간이 구조라 불리는 계획된 회로에 따르는 존재라는 주장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가 제시하는 구조들이 무의식의 표현이라 하더라도 이 구조를 특정 문화집단이나 특정 개인의 속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전체의 속성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실존주의에서 탐구하는 인간이 구조주의에 의해 주체를 상실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행위가 여전히 존재하는 지금 현실에서 차별하는 것이 잘못일 수도 있다는 주장은 여전히 필요하고도 절실하다. 그래서 비판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 불릴 자격을 얻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정리해 저장한 것을 손쉽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우리는 스트로스가 자신의 경험과 마주하기 위해 20년 걸린 이 책을 존중하며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꺼번에 다 읽으라는 말은 아니다. 브라질 원주민 부족의 낯선 생활을 신기하게 들여다보고 놀라움을 느끼고 싶다면 해당 부분만 읽으면 된다. 목차를 보면 쉽게 고를 수 있다. 스트로스의 문학적 자질을 음미하고 싶다면 선상 노트만 보아도 된다. 물론 꼼꼼하게 전체를 읽는다면 장마다 빛나는 문장들 속에서 지금 여기의 나에게 꼭 필요한 여러 의미를 만날 수 있다. 그가 묘사하는 원시세계를 머릿속에서 동영상화하며 읽으면 더욱 흥미롭게 읽힌다. 스트로스는 엘리트의 길을 무리 없이 간 사람이었다. 철학 교수 자격을 얻는 데 어려워하지도 않았고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 학기를 맞아 다시 반복해야 하는 일에서 불안을 느꼈다. 불안을 다독이며 살아갈 수도 있었으나 자신이 품었던 회의를 간과하지 않았다. 의심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인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고 인문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전체에 인식론적 전환을 가져왔다. 자신의 내부에서 신호를 보내는 사인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위한 지적 탐색에 게으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행복하게 자신의 길을 갔다. 나이 든 사람들은 청춘을 가능성이 많은 세대라 부러워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불안하다고 한다. 불안한 청춘이 불안을 달래기보다는 불안과 마주했던 사람의 궤적을 보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용기를 내어 보았으면 좋겠다.
  • 서정기 성균관장 취임

    서정기 성균관장 취임

    28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명륜당에서 열린 제30대 성균관장 취임식에서 서정기 신임 관장이 연설을 하고 있다. 서 관장은 취임사에서 “현대산업사회의 구조적 모순인 빈부 양극화와 인간성 상실, 정신문화의 황폐화를 극복하는 길은 왕도정치의 도덕적 기강을 세우는 것밖에 없다”며 “유학의 부흥을 통해 국민이 행복한 시대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4월에는 오페라 한편 볼까

    4월에는 오페라 한편 볼까

    새봄을 맞아 유쾌한 희극의 사랑, 처연한 비극의 사랑을 변주하는 오페라 두 편이 잇따라 관객을 찾는다. 19세기 초 스페인의 시골마을을 무대로 한 ‘사랑의 묘약’(왼쪽)과 18세기 프랑스 파리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라 트라비아타’(오른쪽)가 각각 다음 달 3~4일, 다음 달 24~2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른다. 솔오페라단이 이탈리아 로마오페라극장과 공동 제작하는 ‘사랑의 묘약’은 중세의 전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등장하는 사랑의 묘약을 패러디한 도니체티(1797~1848)의 대표작이다. 속임수와 고비를 딛고 사랑을 쟁취하는 시골 청년 네모리노, 이를 이용하는 약장수 둘카마라, 미모와 지성에 재력까지 뭐 하나 빠질 것 없지만 진실한 사랑을 갈구해 온 농장주의 딸 아디나의 이야기가 지루할 틈 없이 빠르게 전개된다. 이 오페라에서 많은 관객들이 고대하는 아리아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다. 네모리노의 진심에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아디나를 바라보며 네모리노가 사랑의 벅찬 기쁨을 노래하는 곡이다. 희극답게 흥이 넘치는 극 속에서 도니체티 특유의 진지함과 서정을 만끽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탈리아 소프라노 다니엘라 브루에라와 소프라노 김희정이 아디나, 이탈리아 테너 카탈로 카푸토와 테너 전병호가 네모리노를 열연한다. 3만~20만원. 1544-9373. 국립오페라단은 베르디(1813~1901)의 ‘라 트라비아타’(길을 잘못 든 여자라는 뜻)를 현대적 감각의 연출로 7년 만에 재해석한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동백꽃 여인’을 원작으로 하는 ‘라 트라비아타’는 상류사회의 위선을 꼬집는 동시에 인습에 갇힌 인간성,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묻는 오페라의 바이블이다. 술과 파티로 나날을 보내는 파리 사교계의 고급 창녀 비올레타는 순수한 청년 알프레도의 사랑 고백에 처음엔 코웃음 치지만 결국 이를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미련 없이 파리 교외로 그들만의 삶을 찾아 떠나지만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비올레타를 찾아와 아들을 단념하라고 요구한다.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의 진심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는 폐결핵을 앓는 비올레타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후다. 독일 오페라 지휘자 파트릭 랑에와 프랑스 연출가 아흐로 베르나르가 협업하는 가운데 러시아 소프라노 알비나 샤기무라토바가 비올레타 역, 테너 강요셉이 알프레도 역, 바리톤 유동직과 한명원이 제르몽 역으로 각각 참여한다. 1만~15만원. (02)586-5284.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문화 In&Out] “사랑해 용태형”… 아주 작은 울림

    [문화 In&Out] “사랑해 용태형”… 아주 작은 울림

    서울 종로구 경운동의 수운회관 건너편에는 ‘낭만’이란 허름한 한식당이 있다. 이 집 문간방은 예술계 원로들의 단골 사랑방이다. 빵모자를 눌러쓴 문학평론가 구중서를 비롯해 신경림, 임재경, 김학민, 조성우 등 시인·소설가·화가·영화인 등이 두루 들러 환담을 하거나 바둑 한판 두는 장소가 됐다. 이들이 만든 모임인 ‘화백’에는 회비 1만원만 들고 오면 저녁 식사를 하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홀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술 마시고 주정 부리지 않는다’, ‘기본 의무를 다한다(회비 내고 출석한다)’는 단출한 회칙만 갖고 있다. 종교와 정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암묵적 내규도 지녔다. 이곳의 ‘대장’은 민중미술계의 마당발인 김용태(68) 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이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누구나 예외 없이 그를 ‘용태 형’이라 부른다. ‘용태 형’은 토론이 무르익어 자리가 싸늘해지면 자신의 18번 애창곡인 ‘산포도 처녀’를 부르곤 했다. 유 교수는 “(용태 형이) 술자리에서 부르는 오직 한 곡이었다. 바지를 배꼽까지 치켜올린 채 불렀는데, 형의 인간성이 깃들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용태 형’은 3년 전부터 모임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위암 수술 이후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탓이다. 최근 결성된 ‘김용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민정기, 백기완, 성완경, 신경림, 염무웅, 유홍준 등 45명의 문화예술계 원로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용태 형’의 18번 곡에서 이름을 따온 ‘산포도 사랑, 용태 형’(현실문화 펴냄)을 최근 펴냈다. 그들이 헤쳐 온 지난한 시절에 대한 경험담이다. 마감 시간 지키지 않기로 유명한 예술가들이지만 이번만큼은 한 사람도 늦지 않고 제 시간에 글을 보내왔다고 한다. 아울러 민중미술계 화가 43명은 26~30일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함께 가는 길’전에 작품 1점씩을 추려 냈다. 모두 ‘용태 형’에게 빚진 사람들이다. 책과 미술품 판매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김 전 이사장의 투병 생활을 위해 사용된다. 김 전 이사장은 미술을 통해 사회문제에 의견을 개진해 왔다. 1970~1980년대에는 작가 겸 예술기자로 이름을 날렸고, ‘반고문’전을 열어 6월 항쟁의 불씨를 살렸다. 폭넓은 마당발은 민중미술운동이 이 땅에 뿌리내리는 데 밑거름이 됐다. 화가 임옥상은 “용태 형은 겉멋 든 모습이라곤 전혀 없는, 그저 일꾼 같았다”고 회상했다. 팍팍하고 건조해진 세상살이에 찌든 요즘 예술인들이 목놓아 부르는 “사랑해, 용태형”이 잔잔한 울림으로 남는 이유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메르켈의 메달/박홍환 논설위원

    지난달 27일 독일 베를린의 연방하원. 게양대에는 조기(弔旗)가 내걸렸고, 2차대전 피해자인 95세의 특별한 연사가 초청돼 나치 정권의 잔혹상을 고발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러시아에서 방문한 노인을 위해 기꺼이 옆자리를 내줬고, 의원들은 나치 정권의 만행을 사죄하며 1분간 숙연하게 머리를 숙였다. 유대인 대학살을 반성하는 독일의 ‘홀로코스트 기념일’ 풍경이다. 메르켈 총리는 나치의 악업(惡業)인 홀로코스트를 거듭 사죄해 왔다. 지난해 8월에는 나치 강제수용소였던 뮌헨 인근 다하우 수용소 추모관을 방문해 헌화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역대 독일 총리 가운데 다하우 수용소를 찾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지난해 홀로코스트 기념일을 앞두고서는 “독일인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영원한 책임이 있다”고 사과했다.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후손들에게 대대로 이 같은 과거의 잘못을 똑바로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치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 어린 사죄는 2005년 집권 이후 변함이 없다. 2007년 유럽연합(EU) 순번의장 자격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메르켈 총리는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독일 국기가 장식된 리본이 달린 화환을 바치고 나치 정권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했다. 방명록에는 “인간성은 과거를 책임지는 것에서 싹튼다”고 적었다. 이듬해 이스라엘을 국빈방문했을 때에도 의회(크네세트) 연설을 통해 “독일의 이름으로 자행된 600만 유대인 대학살은 전체 유대인들과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에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다”고 사죄했다. 그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이 예루살렘의 대통령 관저에서 메르켈 총리의 목에 가장 영예로운 훈장인 ‘명예시민 메달’을 걸어줬다.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반성,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피해자’의 화해와 용서가 빚어낸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졌다. 그런데 메르켈 총리와 마찬가지로 전범국의 후대 지도자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어떤가. 그 자신 전범의 후손이기 때문일까, 식민 지배나 위안부 강제동원 등을 사죄하기는커녕, 전임자들의 반성까지도 뒤집어 엎을 태세이다. 메르켈 총리가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피해자들에게 진정으로 사죄할 때 아베 총리는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서 1급전범들의 위패에 고개를 숙였다. 아무 연고도 없는 중동국가에서 받은 메달이 전부인 아베 총리가 메르켈 총리의 목에 걸린 이스라엘 ‘명예시민 메달’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문화 In&Out] 사진전 ‘다른 길’… 박노해 신드롬 분석해 보니

    [문화 In&Out] 사진전 ‘다른 길’… 박노해 신드롬 분석해 보니

    “요즘처럼 언론이 어려운 때가 없었죠.” 이달 초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마주한 박노해(57·본명 박기평) 시인은 뜬금없는 소리부터 냈다. ‘언론탄압’을 화두로 삼는가 했더니, 생판 다른 상업성 정보의 홍수를 거론했다. “외부통제보다 더 무서운 게 정보 폭증입니다. ‘넘치면 없어진다’고 시시각각 쏟아지는 상업 뉴스 속에서 어떻게 속내를 파헤치는 가치 있는 뉴스를 생산할 수 있겠습니까.” 27세이던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하며 권위적 군사정권에 온몸으로 맞섰던 투사 박노해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이렇게 달라졌다. 지난 5일 개막한 그의 사진전 ‘다른 길’은 자신의 변화였고, 이제는 ‘박노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전시에는 평일 하루 1000명, 주말에는 4000명가량이 몰려온다. 개막 18일째인 지난 22일에는 관람객 2만명을 넘겼다. 관객은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매일 오후 5~7시에 열리는 사인회에는 늘 100여명이 길게 줄지어 기다린다. 박 시인은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꼭 잡아 악수한 뒤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서명해 준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팀장은 “국내 현역 작가 중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유료관람객을 모은 사례는 드물다”고 평가했다. 최근 서너 개 상업 사진전이 개막 3개월여 만에 관객 10만명을 모은 사례가 있었으나 의미가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 전시 주관업체가 집계를 부풀린 데다 기업 후원으로 산더미 같은 초대권을 쏟아낸 덕분이다. 반면 이번 전시회는 기업 후원과 상업 광고를 철저히 배제했다. 박 시인은 “가난한 시인에 불과한 내게 어울리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입소문을 타고 마니아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한동안 주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고, 대형서점에선 그의 사진에세이집이 베스트셀러 상위를 차지한다. 시인이 “시시한 사이”라 일렀던 이효리, 윤도현, 김제동, 황정민, 조재현 등 연예인들이 나서 홍보해 준 것도 도움을 줬다. 신드롬의 근원은 사진과 글이 지닌 ‘진정성’에서 찾을 수 있다. 항아리를 이고 산동네를 사뿐사뿐 오르는 인도 여인, 라오스 깊은 산속에서 만난 맑은 눈망울의 어린이들…. 15년간 아시아 오지를 돌며 담아온 사진에서는 인간성 회복의 메시지가 느껴진다. 속도와 경쟁에 매몰된 현대인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위로를 안긴. “‘대박 나세요’란 말을 함부로 못하겠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는 자본의 논리가 담긴 표현이지 않은가. 난 그저 강녕하시라고 말하겠다”는 시인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27년만에 돌아온 ‘로보캅’… 1987년과 어떻게 달라졌나

    27년만에 돌아온 ‘로보캅’… 1987년과 어떻게 달라졌나

    기계음을 내는 둔탁한 은색 슈트, 굳게 다문 입술, 머리·어깨·팔·다리의 분절된 움직임…. 1987년 개봉한 ‘로보캅’ 속 로보캅은 로봇에 완벽히 녹아들어 간 인간의 모습이었다. 인간으로서의 감정도, 기억도 없던 로보캅이 자신의 이름 ‘머피’를 되찾아가는 과정에 절로 탄성이 터졌다. 2014년, 할리우드는 27년 전의 로보캅을 다시 소환했다. 근육질의 날렵한 검정 슈트를 입은 로보캅의 움직임은 사람의 민첩함을 그대로 닮았다. 얼굴과 오른손만 남긴 채 기계에 갇혀 버린 자신의 모습을 처음 본 그는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며 굵은 눈물을 흘린다.쇳소리 대신 사람 냄새가 짙은 로보캅은 원작에 열광했던 이들에게는 분명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얼굴을 한 로보캅’이 바로 이 리메이크작이 원작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데에 중요한 지표로 작용한다. 13일 개봉한 ‘로보캅’은 1987년작의 기본 얼개와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가져오면서도 인간성 상실에 대한 고뇌에 더 천착했다. 액션 스릴러 ‘엘리트 스쿼드’로 제5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거머쥔 브라질 출신의 호세 파딜라 감독은 ‘SF 걸작’의 명성을 재현하는 데 매달리지 않고 새로운 액션 블록버스터로 선회하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리메이크작의 배경은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한 미국 디트로이트시. 그러나 경찰이 민영화된 ‘디스토피아’를 그린 원작과는 다르게 실제 있을 법한 보다 가까운 미래를 그린다. 다국적 기업 옴니코프사는 극우 언론인 팻 노벅(새뮤얼 L 잭슨)의 선동을 등에 업고 경찰을 로봇으로 대체하려 한다. 범죄를 뿌리 뽑을 로봇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도시의 풍경은 실제로 파산에 내몰리고 범죄의 천국으로 전락한 디트로이트시를 닮았다. 옴니코프사가 고안한 로보캅은 ‘인간의 얼굴’을 한 로봇이다. 로봇 경찰에 대한 반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함이다. 폭발 사고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경찰 머피(조엘 킨나만)는 생명을 잇기 위해 로봇의 옷을 입는다. 재즈 명곡 ‘플라이 미 투 더 문’이 흐르면서 아내 클라라(애비 코니쉬)와 블루스를 추던 머피가 실험실에서 로봇으로 변해가는 장면, 로봇이 돼 돌아올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들 데이비드의 모습이 애처롭게 묘사된다. 머피는 로봇에 갇혀 있지만 뇌와 심장, 기억과 영혼은 그대로였다. 로봇이 됐지만 머피는 그대로일 것이라고 머피 자신도, 아내도, 가족도 믿었다. 그러나 실상은 ‘평상시엔 머피가 기계를, 전투시엔 기계가 머피를 조종하는 자유의지의 착각’에 빠져있을 뿐이다.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인간인지 로봇인지가 중요한가”라는 노벅의 선동에 로보캅 프로젝트의 비인간성도 무마되는 듯하다. 그는 무력감과 혼란에 빠지지만 곧 끓어오르는 자유 의지와 가족애를 발견한다. 서서히 자신의 슈트를 통제하기 시작한 머피는 옴니코프사의 레이먼드(마이클 키튼) 회장과의 목숨을 건 대결을 시작한다. ‘인간성 상실’이라는 주제는 로보캅 프로젝트에 참여한 노턴(게리 올드먼) 박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원래 그는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기계를 통해 새 삶을 되찾아 주는 연구를 해 왔다. 자신의 연구를 지원해 주겠다는 옴니코프사의 레이먼드 회장의 설득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학자의 양심이 시시각각 그를 흔든다. 원작이 수위 높은 폭력 묘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면 리메이크작은 호쾌한 액션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로보캅은 지상에서 2층으로 도약할 수 있는 첨단 바이크를 타고 도시를 휘젓는다. 전투 장면에서는 로보캅의 시점이 화면을 가득 채워 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허벅지에 장전하는 총과 공격형 로봇 ED208, 로보캅이 변신 초반에 입은 은색 슈트 등 원작에 대한 오마주도 빼놓지 않았다. 미국 사회에 대한 날 선 비판도 엿보인다. 영화 초반 옴니코프사가 고안한 미국의 로봇 경찰이 아랍의 한 국가로 파견돼 아랍인들을 공격한다. 미국의 무인정찰기 드론이 세계 각국에서 민간인 희생자를 양산하는 현실과 오버랩된다. 자본에 조종당하는 언론과 의회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자본주의의 탐욕과 전체주의의 폭력을 고발하면서도 이에 맞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사회 감시의 중요성을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강조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공연리뷰] ‘은밀한 기쁨’ 무대 복귀한 추상미의 이사벨 너무 밋밋해

    [공연리뷰] ‘은밀한 기쁨’ 무대 복귀한 추상미의 이사벨 너무 밋밋해

    착한 사람을 과연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타주의와 배려가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은밀한 욕망과 희열을 종교와 대의(大義)로 포장할 수 있을까, 혹은 그렇게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영국 극작가 데이비드 헤어(67)의 연극 ‘은밀한 기쁨’은 공연 내내 질문을 던진다. 1988년 영국 로열국립극장에서 초연한 꽤 오래전 작품이다. 하지만 자본을 추앙하고, 권력을 지향하며, 사랑을 갈망하는 군상은 달라진 게 없어 고스란히 오늘의 질문으로 남는다.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은밀한 기쁨’(연출 김광보)은 이런 다양한 군상을 통해 전통적 가치와 인간성의 붕괴, 자본주의의 파괴력을 이야기한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소박하게 살고 싶었던 이사벨(추상미), 그의 언니이자 환경부 차관인 마리온(우현주), 마리온의 남편으로 성공한 기업가 톰(유연수)은 각자 자신이 추종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왔다. 일종의 도덕성과 원칙주의, 권력, 자본과 종교다. 아버지의 죽음은 여기에 변수를 안겼다. 아버지의 애인이자 알코올 중독자 캐서린(서정연)이다. 이 가족에게 짐이 될 게 뻔한 캐서린을 아버지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떠맡으면서 이사벨의 삶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대립의 원인은 으레 힘, 돈, 욕심 등 부정을 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요상하게도 이 작품에서는 욕심 없고 원칙을 지키고자 한 이사벨이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듯 보인다. 회사를 위기로 내모는 사고뭉치 캐서린을 끝까지 감싸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기대는 동업자이자 애인인 어윈(이명행)은 매몰차게 뿌리친다. 매우 도덕적이지만 상황에 따라 그 원칙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다. 오히려 환경부 차관이면서도 환경단체를 경멸하는 마리온이나 기도 하나로 모든 잘못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톰이 더 설득력 있다. 추상미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이사벨이) 이해되지 않았다”면서도 “삶의 존경, 존중을 고집이나 신념처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이 고집은 다소 밋밋하게 드러났다. 착하기만 한 사람이 결코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명확한 발음과 시원한 발성으로 연기하는 우현주와 이명행 때문에 추상미의 이사벨이 답답해져 버린 것일까. 삶의 문제든, 사람 문제든, 이 작품은 여러 질문을 던진다. 3월 2일까지. 3만 5000원. (02)3443-2327.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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