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집 ‘작은 평화’낸 가수 한대수 씨/나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히피’
▲1948년 부산 출생 ▲66년 미국 뉴햄프셔대 수의학과 입학,중도 포기 ▲68년 뉴욕 사진학교 졸업후 귀국,최초의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악활동 시작 ▲70년 국전 사진부문 입선 ▲74년 군제대 후 첫 앨범 ‘멀고 먼 길’ 발표 ▲75년 2집 ‘고무신’ 발표,‘체제전복 음악’이라는 이유로 모두 금지곡 처분 받음 ▲77년 미국으로 이주,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중
한대수는 히피다.일부일처제를 인간 본성에 역행하는 ‘쇠우리’로 규정하는 자유주의자.그에게 예수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에 사랑과 평화의 씨앗을 심은 ‘원조히피’요,자신은 “80년 존 레넌이 뉴욕에서 총맞아 죽은 뒤 지구상에 살아남은 유일한 히피”다.
한대수는 미니멀리스트다.혼자서 먹고 누울 작은 방 한 칸이면 대저택이 안 부럽다.삼촌이 빌려준 서울 연희동의 8평짜리 오피스텔에는 1인용 매트리스와 기타 2대,낡은 괘종시계,CNN뉴스가 나오는 액정 모니터가 전부다. 한대수는 반자본주의자다.그에게 자본주의란 ‘탐욕’과 ‘이기심’으로 움직이는 반인간적 시스템일 뿐이다.무엇보다“50세 이상을 쓰레기로 만드는 반(反)노인적 체제란 점에서” 그는 21세기의 ‘월스트리트’ 자본주의를 증오한다.
●혼자 누울 방 하나면 기쁜 미니멀리스트
연희동의 오피스텔을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배꼽을 드러낸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상반신 포스터였다.
“여러 여자들을 모델로 사진을 찍어보았지만 솔직히 브리트니처럼 ‘동’하는 여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어요.무엇보다 저 배꼽이 인상적이었지요.물론 우리나라 이효리도 배꼽의 ‘도발성’에선 브리트니 못지 않지요.”
맞은 편 벽에 걸려 있는 또 하나의 여자 그림.지하도에서 20만원 주고 샀다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였다.‘마지막 히피’다운 인테리어 컨셉트였다.그의 히피적 기질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스무살 나이에 세상이 못마땅하고 사는 것이 화가 나 ‘물 좀 달라.’며 고함을 내질렀다.군인들은 ‘물 좀 주소’란 그의 노래가 정보기관의 ‘물고문’을 비꼬았다며 마이크를 뺏었다.
하지만 가수가 아닌 사진가 한대수의 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그는 뉴욕사진학교를 졸업하고 당당히 대한민국 국전 사진부문에 입선한 ‘제도권’작가다.고통이 애인이고 고독이 정부(情婦)이던 시절,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맨해튼 거리를 헤맸다.이런 그가 35년 작가 인생을 결산하는 사진전을 지난달 서울 서교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었다.그는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충격에 무감각한 ‘언쇼커블’세대
“원래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입니다.그런데 주변에서 영화가 좋다고 성화길래 영화관에 갔어요.박 감독하고는 ‘공동경비구역’에 내 노래를 삽입한 인연으로 술도 가끔 마시는 사이지요.그런데 도저히 눈을 뜨고 못 보겠더라고요.그날 밤 무서워서 잠도 못잤어요.그런 걸 ‘엽기’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리들리 스콧 감독의 ‘한니발’을 볼 때하고 비슷했습니다.”
의외였다.1960년대 ‘반문화’의 메카 뉴욕에서 20대를 보낸 사람이라기엔 너무 여리고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그는 요즘 세대를 “웬만한 충격에는 좀체 반응하지 않는 ‘언쇼커블(unshockable)’세대”라고 규정했다.음악이든,영화든 자꾸 강한 충격을 주려고만 하니까 대중들의 무감각이 심해진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사회가 너무 선해서 ‘에브리보디 해피’하면 엽기도 하나의 오락거리가 될 수 있어요.하지만 어디 그렇습니까.매일 폭탄이 터지고 하루에도 수백명이 굶어죽어 갑니다.이런 때일수록 예술은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인간과 자연에 포커스를 맞춰야 합니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못마땅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지난달 그가 펴낸 사진집의 제목도 ‘작은 평화’다.1967년부터 뉴욕과 로마,런던,모스크바,울란바토르 등 전 세계 12개의 도시를 돌며 찍은 80여개의 장면들을 크고 작은 프레임에 담았다.모델들은 뒷골목의 악사부터 지하도 노숙자,몽골 유목민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정착하지 못한’ 유랑민들이다.사진에는 제목도,설명도 없다.
“어디에서 누구를 찍은 사진인지는 중요치 않아요.전세계의 인간들이 처한 보편적 상황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그것은 고통과 소외입니다.뉴욕이나 서울이나 울란바토르나 약자들은 주리고 소외되고 억압받고 있어요.”
그는 무엇보다 50살이 넘는 사람들을 ‘퇴물’로 전락시키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강하게 비난했다.교육받지 못하고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지금쯤 서울역 어딘가에 사과박스를 깔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지난 97년 펴낸 자서전에서 “우리에게도 히피문화가 있었다면 사람들이 좀더 개방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적었다.그는 히피를 ‘고정관념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도덕에,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는 맹목에,일부일처제라는 반(反)생물학적 관습에.
“뉴욕은 이혼율이 50%가 넘고 우리나라도 세쌍중 한쌍이 이혼합니다.만약 이혼율이 80%에 육박한다면 결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우고,자연스럽게 헤어지고….이게 인간 본성에 가까운 것 아닌가요?”
●한대수는 휴머니스트다
그는 히피정신의 핵심을 ‘동의하지 않음을 동의하라.’는 말로 요약한다.그가 볼 때 살육과 전쟁은 ‘다름’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독선과 아집’에서 시작된다.이라크 전쟁도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은 지금 심각한 ‘오만병’에 걸려 있습니다.테러를 빌미로 오리엔트의 중심지 바그다드를 무력으로 정복했지만 보복의 악순환은 3대를 갑니다.미국은 당장 침략행위를 멈춰야 합니다.”
한대수는 어떻든 휴머니스트다.그가 음악과 사진을 업으로 삼은 것도,미니멀리스트적 삶에 집착하는 ‘마지막 히피’로 체제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고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에 대한 지독한 애정 때문이다.도대체 인간은 왜 고통당하는가.그것은 ‘행복의 나라’를 만든 열여섯살 시절부터 9장의 자작앨범을 발표한 지금까지 그가 줄곧 매달려온 ‘화두’다.그는 오늘도 기타와 카메라를 앞에 두고 일생을 매달려온 ‘인간이라는 화두’에 정직하게 대면하고자 노력한다.
글 이세영기자 sylee@
사진 강성남기자 s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