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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면조 구이·야구 게임… 트럼프의 ‘메타포 대북 외교’

    북·미 실무 협상 난관·긴장 상황 반영 ‘장기화 대비 속도 조절론 거론’ 분석 싱가포르행 직전 G7 정상회의에서는 “공 치게 될진 몰라”… 성공 의문 내비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회담을 “야구와도 같다”고 비유하며 회담 성과에 대해 불확실한 전망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 이후 보름 이상 후속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이를 ‘칠면조 요리’에 비유한 사실과 맞물려 북·미 후속 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특유의 직설적 화법 대신 구사한 ‘메타포(은유) 외교’에 관심이 쏠린다. 28일(현지시간) 인터넷매체 액시오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10일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당시 다른 정상들에게 북·미 정상회담을 지칭해 “그건 야구와 같은 것”이라며 “공을 치게 될지는(hit the ball)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영어의 ‘공을 치다’는 말은 ‘일을 수월하게 진행하다’라는 뜻도 포함된 만큼 회담 성공에 대한 불확실성을 내비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 도착한 직후 회담 전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매우 좋다”고 호언장담한 것과 비교하면 실제 속마음은 큰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당초 일괄 타결 프로세스를 염두에 둔 속도전을 강조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 노스다코타주 유세 연설에서는 “(북한 비핵화를) 서두르면 스토브에서 칠면조를 서둘러 꺼내는 것과 같다”며 “이제 요리가 되고 있고, 아주 만족할 것이지만 서두르면 안 된다”고 속도 조절론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직설적이고 즉흥적 화법으로 유명하지만 때로는 대중의 호응을 얻을 메타포를 구사하며 국면을 전환시켜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부터 워싱턴DC 주류 정치권을 겨냥해 “워싱턴의 오물을 제거하자”고 비판하는 등 해학적 언어 구사로 지지율을 높여 왔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된 지난해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로켓맨’, ‘병든 강아지’ 등으로 지칭하며 말폭탄을 주고 받았지만 올해 들어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북한에 대한 이와 같은 화법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전후한 시점에 메타포 외교를 재개한 것은 그만큼 북·미가 물밑 실무 협상에서 난관을 겪고 있으며 북한에 섣불리 패를 보여 줄 수 없는 긴장된 상황이라는 점을 반영한다. 후속 회담에서는 북한 영변 핵시설에 사찰단이 들어가는 문제와 추가 핵시설 신고와 폐쇄, 핵물질·핵탄두 폐기 및 해외 반출 등 구체적 비핵화 일정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사찰단이 의심되는 장소·시설을 불시에 방문해 조사하는 ‘특별사찰’을 수용할지 미지수이고 비핵화 방법론에서 양측이 의견을 달리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같은 분위기를 회담 전부터 감지해 북·미 협상이 장기화되고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는 속내가 담긴 메타포를 구사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기저귀 찬 트럼프?…6m 풍선 인형 런던 상공에 뜰까?

    기저귀 찬 트럼프?…6m 풍선 인형 런던 상공에 뜰까?

    다음달 영국을 방문할 예정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조롱하는 풍선이 런던 하늘에 두둥실 뜨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크라우드펀드를 통해 기저귀를 찬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트럼프 풍선이 제작돼 하늘을 날 준비를 마쳤다고 보도했다. 6m 높이의 이 풍선은 트럼프를 닮은 헤어스타일과 얼굴, 여기에 기저귀 찬 모습과 작은 손발을 붙여 한마디로 조롱의 의미를 담고있다. 이 풍선을 제작한 인물은 영국 환경운동가인 레오 메레이(41)로 계획은 거창하다. 다음달 13일 런던을 방문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볼 수 있도록 하늘에 이 풍선을 띄우겠다는 것. 머레이는 "런던 하늘에 트럼프 풍선을 띄우겠다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풍자이자 은유"라면서 "세계가 트럼프를 어떻게 이해하는 지 알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계획은 미국 혹은 미국인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트럼프가 만들고 있는 미국에 대한 반대"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의 계획이 예정대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런던시장이 하늘에 풍선을 띄우는 이 계획을 허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 머레이는 "만약 허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다른 장소를 찾을 것"이라면서 "이 풍선이 트럼프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김부선 “독이 든 시뻘건 사이다 조심”…이재명 저격?

    김부선 “독이 든 시뻘건 사이다 조심”…이재명 저격?

    배우 김부선이 은유적으로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을 저격했다. 김부선은 24일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며 “국민여러분, 독이 든 시뻘건 사이다를 조심하세요!”라는 댓글을 남겼다. 이재명 당선인은 거침없는 발언으로 ‘사이다’라고 지지자들 사이에서 불린다. 그는 자신과 이재명 당선인과의 관계에 대한 칼럼을 쓴 기자를 언급하면서 “선거 전날 두 번씩이나 이재명 씨가 A 기자에게 전화하여 소리소리 지르면서 전화 먼저 하고 먼저 끊었다는데 사실이겠죠?”라고 적었다. A 기자는 첨부된 칼럼을 작성한 기자다. 칼럼 속에서는 스캔들의 핵심은 둘의 불륜 여부가 아니라 김부선이 이재명 당선인으로부터 입막음 강요, 협박,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주장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김부선은 이어 “(A기자가) 실망했다고 하더랍니다^^”라며 댓글로 “A 기자에게 미안하고, 눈물 나게 고맙고“라고 부연했다. 김씨는 이날 오후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J’의 내용을 문제 삼기도 했다. 김씨는 “이재명을 과하게 보호하시네 니들 참 후지다 후져”라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종필 주요 어록…“춘래불사춘” “사랑엔 후회가 없습니다” “몽니” “정치는 허업”

    지난 23일 별세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화려한 정치 이력만큼이나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본인이 처한 정치적 현실과 심경을 직설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은유적이고 우회적인 용어로 표현했다. 1980년의 ‘서울의 봄’을 두고 JP는 ‘춘래불사춘’이라고 했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상당수 국민들은 어둡고 긴 유신의 터널이 끝났다고 믿었다. JP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이을 2인자로 주목받았고 이윽고 3김씨가 정치의 전면에 다시 나서면서 민주주의 시대가 온 듯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신군부는 3김씨의 정치 활동을 금지시켰다. JP는 부정축재 혐의로 연행됐다. 당시의 현실을 가리켜 JP는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고 표현한 것이다. 1990년 3당 합당 뒤 당시 김영삼(YS) 민자당 대표가 이른바 ‘마산파동’을 일으키자 JP는 이를 “틀물레짓”이라고 빗대어 비난했다. 행동이 어린애같이 서투르고 유치하다는 충청도 사투리다. 그러나 YS는 비난의 말임에도 워낙 생소하고 구수하게 느껴져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1995년 민자당에서 탈당해 거대 야당인 자민련으로 재기한 뒤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는 “사랑에는 후회가 없습니다”라는 시적인 발언을 구사했다. 대권을 거머쥔 뒤 자신을 팽(烹)했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 대한 절절한 질타와 충고 뒤에 나온 연설이었다. 2011년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기업인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치는 과실이 생기면 국민에게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5000만 국민이 내려오라고 해도 자리에 앉아 있을 사람”이라고 뼈 있는 말을 남겼다. JP의 말 중 ‘몽니’는 압권으로 꼽힌다. 1998년 12월 15일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이 ‘내각제 개헌 연기론’을 제기하고 국민회의 측이 ‘내각제 개헌 유보’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참을 때까지 참는 게 지성이지만 그래도 안 되면 몽니를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현장 기자들은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을 부리는 성질’이라는 몽니의 뜻을 몰라 해석을 부탁하는 해프닝이 일기도 했다. 이후 JP에게는 ‘몽니 정치’가 수식어처럼 따라다녔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풍운아 JP의 말말말… ‘춘래불사춘부터 몽니까지’

    풍운아 JP의 말말말… ‘춘래불사춘부터 몽니까지’

    23일 별세한 JP는 화려한 정치이력 만큼이나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답답한 심경과 정치 현실을 은유적이고 시적인 용어로 표현하면서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그의 말 중에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공격은 드물었다. 혹자는 그의 말에 산이 있고 바람이 있고 물이 있다고도 했다.1980년의 ‘서울의 봄’을 두고 JP는 ‘춘래불사춘’이라고 했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상당수 국민들은 어둡고 긴 유신의 터널이 끝났다고 믿었다. JP는 박 전 대통령을 이을 2인자로 주목받았고 이윽고 3김씨가 정치의 전면에 다시 나서면서 민주주의 시대가 온 듯 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신군부는 3김씨의 정치 활동을 금지시켰다. JP는 부정축재 혐의로 연행됐다. DJ도 소요 조종 혐의로 잡혀 갔다. YS는 공직을 박탈당하고 가택연금됐다. 당시 연행에 앞서 이미 시대현실을 직시하고 표현한 JP의 ‘춘래불사춘’은 그의 수많의 명언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1990년 3당 합당 뒤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이른바 ‘마산파동’을 일으키자 JP는 이를 “틀물레짓”이라고 빗대어 비난했다. 행동이 어린애같이 서투르고 유치하다는 충청도 사투리다. 그러나 YS는 그냥 넘어갔다. 비난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생소하고 왠지 구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5년 설움을 딛고 민자당에서 탈당해 거대 야당인 자민련으로 재기한 뒤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놓은 “사랑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발언도 대히트였다. 대권을 거머쥔 뒤 자신을 팽했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 대한 절절한 질책과 충고 뒤에 나온 연설로 상대인 민자당 의원들의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다. JP는 중학 3,4학년 때 독서의 절정기를 맞았다고 한다. 1야1권 독파주의라는 목표로 매일밤 하루 한 권씩 책을 읽었다. 자신의 독서 버릇을 가리켜 난독(亂讀)의 시대였다고 회상했다. 닥치는대로 읽은 것이다. 주로 읽은 책은 역사와 전기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수시로 사전을 뒤적이면서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그 뜻을 검토하는 세심한 준비 과정을 거친 것으로 유명하다. JP의 말 중 압권으로는 ‘몽니’가 꼽힌다. 1998년 12월 15일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이 ‘내각제 개헌연기론’을 제기하고 국민회의 측이 ‘내각제 개헌 유보’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참을 때 까지 참는 게 지성이지만 그래도 안 되면 몽니를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현장 기자들은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을 부리는 성질’이라는 몽니의 뜻을 몰라 해석을 부탁하는 해프닝이 일기도 했다. 이후 JP에게 ‘몽니 정치’는 수식어처럼 따라다녔다. 다음은 생전에 고인이 남긴 주요 어록. ▲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1963년. 일본과 비밀협상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하자) ▲ 자의 반 타의 반(1963년 2월. 증권파동 등 4대 의혹 사건과 관련한 외유에 나서면서) ▲ 파국 직전의 조국을 구하고 조국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5·16 혁명과 1963년 공화당 창당이라는 역사적 전기가 마련됐다(1987년. 저서 ‘새 역사의 고동’) ▲ 5·16이 형님이고 5·17이 아우라고 한다면 나는 고약한 아우를 둔 셈이다(1987년 11월 3일. 관훈토론회) ▲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1990년 10월.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며) ▲ 있는 복이나 빼앗아가지 마시라(1995년 1월 1일. 민자당 대표시절 민주계의 대표퇴진론을 거론하는 세배객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덕담하자) ▲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1995년 6년 13일. 지방선거 천안역 지원유세) ▲ 역사는 끄집어 낼 수도, 자빠트릴 수도, 다시 세울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는 그냥 거기서 배우는 것이다(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해) ▲ 줄탁동기(1997년 자신의 대선 후원조직인 민족중흥회 회보에 사용한 신년휘호. 중국 송나라 선종의 대표적 전적인 벽암록 글귀. 병아리가 건강하게 부화하고자 알 속에서 두드려 나갈 때가 됐음을 알리고 어미닭도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밖에서 알을 쪼아 껍데기를 깨줘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일은 시기가 적절히 맞아야 한다는 뜻. 당시 대선 정국에서 적절한 시기의 결단이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는 해석) ▲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1997년 5월 29일. 자민련 중앙위원회 운영위) ▲ 이인제 후보가 우리를 늙었다고 하는데 나와 함께 씨름 한 번 했으면 좋겠다. 내가 결코 이 후보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젊다(1997년 12월 3일. 충북 괴산 정당연설회에서) ▲ 서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슬금슬금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1998년 6월 27일. 총리 서리 당시 ‘서리’ 꼬리가 언제 덜어질 것 같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 시인 프로스트가 ‘잠들기 전 가야 할 몇 마일이 있다’고 한 것처럼 저도 앞으로 가야 할 몇 마일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겠다(1998년 10월 16일. 동의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특강) ▲ 미리 왕성한 상상력과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스스로의 행보를 좁히거나 의지를 약화시키는 일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때를 맞춰야 하고 그러고도 안 될 때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1998년 12월 15일. 자민련 중앙위원회 연수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내각제 약속 불이행을 우려하면서 발언) ▲ 백날을 물어봐, 내가 대답하나(2000년 5월 2일. 일주일만에 당사에 출근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동 가능성을 묻자) ▲ 나이 70이 넘은 사람이 저물어 가는 사람이지 떠오르는 사람이냐. 다만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과욕이 남았을 뿐이다(2001년 1월 9일.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이 4·13 총선 때 자신을 ‘서산에 지는 해’로 표현한 것을 두고)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문화마당]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송한샘 국제예술대 교수

    [문화마당]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송한샘 국제예술대 교수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지난주 시작한 걸 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48’이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맞춰 깜찍하게(?)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첫 방송과 동시에 포털 사이트들의 실시간 검색 순위는 ‘프로듀스48’ 관련어로 도배되었으며, 언론도 기사를 쏟아냈다. ‘프로듀스48’은 국민적 인기를 모았던 걸 그룹 아이오아이와 국내외 최정상급 인기 그룹으로 활동 중인 워너원을 배출한 ‘프로듀스101’의 후신이다. 이번에는 연습생뿐 아니라 데뷔 경험자도 참가하고, 우리보다 큰 규모와 오랜 역사의 음반 산업을 일궈 온 일본에서 최고 걸 그룹으로 꼽히는 AKB48이 참여하면서 글로벌 프로그램으로 인정받고 있다. 예고편도 화제였다. 총 96명의 소녀들이 ‘프로듀스…’ 시리즈의 시그니처가 된 피라미드 모양 무대에서 테마곡 ‘픽미’(pick me)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부르면 그들을 태운 두 개의 삼각형이 합쳐져 거대한 다이아몬드가 됐다. 비판의 소리도 있었다. 똑같은 디자인의 교복 스타일 의상은 롤리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아마 자유복의 경우 예상되는 미적 통일성이나 스타일리스트 동반 시의 형평성 문제, 한ㆍ일 양국의 상이한 패션 트렌드 등 다방면에 대한 고려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굳이 “교복보다는 제복”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제복’이라.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감시와 통제, 규율권력의 내면화와 자기검열이라는 전체주의의 폐해를 경고했다. 그가 만든 신조어와 상징은 지금도 여전히 관용어처럼 사용되곤 한다. 소설 속 정부는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의 건물에 위치하고, 비밀 장소인 ‘101호’에서는 규정 위반자를 격리해 교정한다. 오늘날 ‘101호’는 ‘나쁜 일이 자행되는 장소’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며 우리 옛 군사정권에서도 고문실을 일컫는 은어로 쓰인 바 있다. 보이지 않는 지배자 ‘빅브러더’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체제가 규정하는 언어와 사고, 감정과 행동만을 허락한다. 결국 시민들은 텔레스크린이 없는 곳에서도 자기 검열 기제를 작동하고 정부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프로듀스…’가 101이라는 숫자를 내걸었던 것, IOI가 101의 형상을, 워너원이 101의 영어 발음을 따서 그룹명을 지었던 것은 오웰과 무관할 것이다. 하지만 화면을 가득 채운 피라미드 구조의 참가자석과 꼭대기 1위석은 분명 권력과 위계질서가 반영된 디자인물이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경쟁자나 악플러의 표적이 될까 두려워 1위석에 한 번쯤 앉아 보고 싶다는 속내를 감추고 말았다. 시즌 내내 소녀들은 숙소와 연습실 등 곳곳의 카메라를 의식한 채 시청자들이 듣고 싶은 말, 보고 싶은 행동, 느끼고 싶은 감정만 걸러내려고 발버둥칠 것이다. 이미 데뷔했음에도 한국 연습생의 기량에 한참 모자란 AKB48에게 “대체 무엇으로 데뷔할 수 있었냐”고 물은 심사위원과 “일본에서는 (‘칼군무’보다) 관객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자질과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답한 한 참가자의 대화에는 분명 시사점이 있다. 물론 오디션 프로는 늘 순위를 필요로 하며, 순위는 규율이 내면화된 집단을 전제로 한다. 전체주의 시스템은 더 효율적이고 결과는 보다 즉각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다양성과 확장성, 자생성과 지속성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예고편 말미에 소녀들은 한결같이 윙크를 날린다. 전 시즌의 학습효과를 체감한 제작진의 의도이겠지만, 그 결과가 그저 대량생산된 몰개성의 눈 깜빡임으로 보일 여지는 없을지 이제부터라도 숙고해 볼 일이다.
  • 올여름 당신의 첫 책 따끈따끈 신작 이 책

    올여름 당신의 첫 책 따끈따끈 신작 이 책

    이영도·유시민 책 등 10종 첫선 인기 작가들의 신간을 그 누구보다 빨리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성큼 다가온 올여름 당신의 ‘첫 책’이 되길 기다리는 책들이다.새달 20~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A홀, B1홀에서 열리는 ‘2018 서울국제도서전’(포스터)의 야심 찬 기획인 ‘여름, 첫 책’은 올해 24회째를 맞는 이 도서전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행사다. 서점에서 정식 유통되기 전에 이번 도서전을 통해 독자들과 처음 만날 책은 국내 판타지 소설의 거장 이영도 작가의 ‘오버 더 초이스’(황금가지)와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돌베개), 소설가 최민석의 ‘고민과 소설가: 대충 쓴 척 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비채), 소설가 이승우의 ‘만든 눈물, 참은 눈물’(마음산책), 소설가 김탁환의 ‘이토록 고고한 연예’(북스피어) 등 10종이다. 저자들이 각 출판사 부스와 강연장에서 독자들과 조촐한 만남도 가질 예정이다. 지난해 ‘변신’이라는 주제로 도서전의 새로운 패턴을 제시했던 서울국제도서전의 올해 주제는 ‘확장’이다.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출판과 독서의 범위를 재정의한다는 뜻이 담겼다. 이번 도서전의 기획을 담당한 주일우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는 28일 “뉴미디어의 등장에 따라 종이책 외에도 전자책, 오디오북 등 책의 영역을 넓게 확장하려는 시도를 아우르고자 했다”면서 “책으로부터 파생한 다양한 콘텐츠를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독자의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 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독자들이 직접 자가 출판을 경험해 볼 수 있는 ‘당신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드립니다’, 김민섭, 남궁인, 요조, 임경선, 장강명, 정문정 작가가 독자와 함께 오디오 부스에서 짧은 오디오북을 녹음하는 ‘당신만의 오디오 콘텐츠를 만들어드립니다’, 김민정 시인, 박준 시인, 은유 작가, 기생충학자 서민 단국대 교수,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등 시·글쓰기·과학 등 분야명 명사 16명이 독자와 1대1로 만나 독자들에게 맞는 맞춤형 책을 처방하는 ‘독서 클리닉’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은희경, 조경란, 구병모, 윤고은, 손보미, 김사과, 박솔뫼 등 여성 소설가 11명이 서점을 주제로 쓴 잡문집 ‘서점들’도 도서전에서 5만원 이상 구매한 독자들만 받아볼 수 있다. 이번 도서전은 주빈국 체코를 비롯해 프랑스, 미국, 일본, 중국 등 32개국 91개사가 참여하는 국제관과 234개사가 참여하는 국내관 부스로 꾸려진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 학생 3000원.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전종서 “빈 플라스틱 용기처럼 찍어내는 연기 싫어요”

    전종서 “빈 플라스틱 용기처럼 찍어내는 연기 싫어요”

    “오디션에서 처음 본 순간 용모로나 내면으로나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배우라 생각했다.”‘박하사탕’으로 설경구, ‘오아시스’로 문소리를 발굴한 이창동 감독이 이런 상찬을 한 신예가 있다. 이 감독이 신작 ‘버닝’의 여주인공으로 낙점한 배우 전종서(24)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영화 출연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그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환호와 갈채 한가운데에 섰다. ‘버닝’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면서다. 지난해 소속사를 정하고 3일 만에 본 생애 첫 오디션에서 이 감독에게 발탁되면서 배우의 꿈은 믿기지 않는 현실로 영글었다. 영화 속에서 종수(유아인)의 어릴 적 친구 해미로 등장하는 그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만난 벤(스티븐 연)을 종수에게 소개한다. 종수는 해미와 함께 어울리던 벤에게서 “쓸모없는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게 취미”라는 말을 듣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고 해미는 자취를 감춘다. 전종서는 유아인과 스티븐 연의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고 신선한 외모와 성정을 재료로 한 자연스러운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끈다. “영화 속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분석하는 건지 아직 전 잘 몰라요. 하지만 감독님께서 제가 어떤 아이인지 그게 객관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얘기해 주시면서 ‘네게 이런 모습이 있으니 너를 믿는다’면서 촬영을 할 때 제 몫을 믿고 맡기셨어요. ‘인물을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라’는 감독님의 말씀에서도 ‘해미는 이런 부분에 매료돼 있구나’, ‘이렇게 사는구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요. 현장에서 감독님은 아빠이자 좋은 선생님이자 큰 어른이셨죠. 저 같은 신인뿐 아니라 스태프까지 모든 사람에게 그런 존중과 믿음을 보내 주시는 태도를 보면서 깊은 배움을 얻었어요.” 초등학교 때 ‘해리 포터’ 시리즈로 처음 영화의 재미를 알았다는 그는 고교 때 자연스럽게 배우의 꿈을 품었다. 세종대 영화예술학과에 진학했지만 틀에 박힌 교육이 맞지 않아 현재는 제적 상태라는 그는 “형태는 똑같고 열어 보면 아무것도 없는 플라스틱 용기처럼 찍어내는 연기나 작품은 싫다”고 했다. “신인 배우들은 역량을 발휘할 환경도, 기회도 제공받지 못한 채 소비되는 것 같아요. 배우 생활을 계속한다면 그렇게 찍어낸 연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순수하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그걸 온전히 뿜어냄으로써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배우, 한 사람의 관객에게라도 명확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버닝’은 청춘의 불안과 분노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그려내며 많은 상징과 은유를 심어 놓은 작품이다. 극 중 해미와 같은 20대 중반인 그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그래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스스로 물음표를 던지게 하는 영화”라고 했다. “어떤 친구들은 ‘재미없다’,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는 건데’라고도 해요. 또 어떤 친구들은 ‘너무 좋았어.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야’라고도 하고요.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이해해요. 100%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이 영화는 희망이 없고 분노로 가득 차 있고 외로운 지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위로를 안겨 주고 뭘 직시해야 하는지 묻는 우리의 자화상 같은 이야기 말이죠.”칸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버닝’은 여러 언론에서 높은 평점을 받으며 수상에 대한 기대를 모았으나 아쉽게 불발됐다. “감독님께서 레드카펫을 보고 ‘이게 다 비닐하우스(영화 속에서 벤이 불태우는) 같다. 눈에 보이는 거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고 진짜인 것 같지만 진짜가 아닌 거다’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 말씀에 저도 동감했어요. 상에 대한 기대감과 이슈들은 다 거품일 뿐이구요. 우리가 진짜 하고자 한 것, 해내야 할 것들을 다 해낸 것에 만족하니 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 의미 있는 여정이 끝나버린 게 벌써 그리운 마음이에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증오·이념의 ‘페스트’ 극복하는 분단 한반도 은유”

    “증오·이념의 ‘페스트’ 극복하는 분단 한반도 은유”

    “페스트(흑사병)는 ‘보이지 않는 공포’라 더 두렵고 정신마저 황폐화시키는 존재예요. 스스로 시스템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그래서 헌법마저 손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에서 가해진 ‘블랙리스트’도 일종의 페스트죠. 하지만 공포와 부조리가 전부는 아니에요. 카뮈는 화해와 휴머니티, 저항 정신을 통해 페스트를 극복하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 줘요. 그게 페스트를 국립극단 무대에 올리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해요.”지난 18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페스트’는 박근형(55) 연출가가 5년 만에 국립극단에 복귀한 작품이다. 그가 2013년 9월 국립극단에서 초연한 연극 ‘개구리’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악평을 받으면서 정부 검열과 블랙리스트 사태의 발단이 됐다. 지난 22일 명동예술극장 무대에서 박 연출가와 페스트의 무대를 만든 박상봉(39) 디자이너를 만났다. 박 연출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부터 ‘페스트’까지 두 사람이 ‘합’을 맞춘 작품만 7편에 달한다. 1947년 발표된 ‘페스트’는 ‘이방인’과 함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카뮈의 대표작이다. 지중해의 소도시 ‘오랑’에서 어느 날 쥐들이 떼로 죽은 후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처절하게 죽어간다. 페스트가 점령한 도시는 외부와 차단돼 고립되고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카뮈의 페스트는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변주된 고전이지만 2015년 한국에서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라는 현실 상황이 됐다. 페스트를 직접 각색한 박 연출가는 “병균이 재난이 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한국 사회와 연결됐다”며 “하지만 작품을 구상하면서 동시대 문제로 다루고 싶었던 건 메르스가 아니라 증오와 이념이 지배하는 분단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카뮈의 페스트를 비틀어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 빗댄 건 ‘박근형표’ 반전이었다. 그는 원작의 해안 도시 ‘오랑’을 연극에서는 고립된 섬으로 바꾸고, 거대한 철문 방화벽을 무대에 내리는 방식으로 한반도의 ‘장벽’을 상징화한다. 박 연출가는 오랑을 한반도로, 장벽은 남북을 가른 휴전선으로 대입해 연상했다고 한다. “남북 간 적대감이야말로 거대한 페스트 같은 거예요.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는 집단 최면이나 광기이기도 해요.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원인인 페스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그것에 대응하는 태도, 그것을 극복하고 마침내 화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박 디자이너는 “작품에서 보면 권력자가 장벽을 더 높게 올리고, 군인들이 감시하면서 공포를 키우고, 페스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전가한다”며 “박 연출가가 무대에 장벽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 ‘아, 남북 분단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박 디자이너의 토로다. “장벽이 필요하다는 연출가의 주문을 어떻게 소화할까 꽤 고민했어요. 그러다 철로 된 방화벽을 떠올렸죠. 그건 소방법에 따라 공연장에 설치돼 있던 진짜 방화벽이에요. 큰 부담을 덜었죠.” 연극 ‘페스트’의 무대는 극도로 절제돼 있다. 격랑이 이는 바다, 바람 등 자연의 물성을 이미지화한 수조와 커튼을 제외한 소품이나 장치는 무대에서 치워 버렸다. “연극의 공간은 심리적 공간이에요. 고립감이든 공포심이든 배우들이 표현해 내고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박근형 연출가의 미학은 소극장에서 더 생생해져요. 군더더기 없는 무대를 만든 이유죠. 배우들의 존재감이 제대로 드러나는 무대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한 결과물이죠.”(박상봉)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세 남자의 비극, 독백으로 풀다

    세 남자의 비극, 독백으로 풀다

    온라인 살인게임 ‘킬롤로지’ 속 캐릭터처럼 잔혹하게 살해된 16세 소년 데이비(이주승, 장률), 아들을 잃고 복수에 나선 아버지 알란(이석준, 김수현), 게임 개발자 폴(김성대, 이율). 영국 극작가 게리 오언의 최신작을 초연한 연극 ‘킬롤로지’(Killology)는 세 남자의 비극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110분간 풀어헤친다.무대에 등장하는 세 사람은 단 한 번도 퇴장하지 않고 각자 언어의 성을 쌓아 올린다. 거의 주고받는 대사 없이 각자의 독백으로 전개되는 극은 데이비의 죽음을 고리로 연결된 1인극 세 편을 동시에 보는 느낌을 선사한다. 객석에 앉아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안이함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데이비, 알란, 폴의 독백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극은 관객들이 조각조각 난 10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다 어느 순간 충격적 실체를 깨닫게 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알란과 이혼한 후 먹고살기 위해 분투하는 엄마는 데이비에게 무심하다. 폭력이 일상화된 변두리 동네에서 데이비는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시들어 간다. 알란이 생일날 선물한 강아지 ‘메이시’는 데이비에게 애정과 온기를 주는 유일한 친구였지만 데이비의 눈앞에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데이비는 동네 소녀의 자전거를 훔쳐 달아난 밤, 살인게임에 빠진 또래들에게 고문당해 살해된다. 데이비의 죽음은 개인적 불운일까, 비극의 원인은 과연 게임일까. 킬롤로지를 개발해 억만장자가 된 폴은 살인도구를 들고 저택에 침입한 알란에게 악을 쓰며 항변한다. “이건 게임입니다. 게임에서 마법을 쓰면 돼지가 날아다니죠. 그렇다고 현실에서도 돼지가 날아다닌다고 생각합니까? 무슨 바보천치도 아니고.” 아들의 죽음이 폭력적인 게임 때문이라고 믿는 알란과 범죄와 게임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믿던 폴, 두 사람은 각자의 말을 쏟아내며 각자의 신념이 깨지는 걸 자각한다. 이 대목부터 이야기는 망가진 세계의 근원을 향해 달려나간다. 폴을 인정하지 않고 본인의 세계관만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폴이 살인게임을 만든 건 부친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었다. 데이비가 태어난 지 18개월 만에 집을 떠난 무책임한 알란. 아들이 절실하게 애정을 갈구할 때 부재했던 그는 뒤늦게 목놓아 운다. 연극 ‘킬롤로지’는 표면적으론 게임의 폭력성과 모방범죄라는 동시대 사회상을 다루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아버지(부모)의 존재와 책임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가 이 극을 쓰게 된 건 고향인 영국 브린제드에서 2년 동안 청소년 26명이 학교폭력과 소외로 자살한 사건 때문이었다. 그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알란의 환상 속에서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 데이비는 희망을 대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극 어디에도 작가가 심어 놓은 희망의 흔적은 없다. 이 극이 뿜어내는 리얼리티의 끝은 세 인물 중 어느 누구도 변호할 수 없는 폭력의 책임 문제와 팽팽하게 맞닿아 있다. 동네 또래 집단의 폭력으로 메이시가 죽던 그 밤, 아무도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는 데이비의 마지막 그 밤, 누군가 무자비한 폭력을 멈추게 하고 소년의 손을 잡아 줬더라면…. 극은 부재했던 희망이 잉태하고 있던 비극적 결말을 향해 맹렬히 달려갔던 셈이다. 세 개의 테이블과 의자로만 만든 카페 같은 미니멀한 무대는 한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 분리된 존재들을, 나란히 놓인 ‘세 개의 거울’은 비틀린 세계를 은유한다. 각자의 감정선을 유지하며 흡인력 있는 연기로 몰입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열연은 찬사가 아깝지 않다. 지난해 3월 영국에서 초연된 거친 텍스트를 ‘웰메이드 연극’으로 다듬어 낸 박선희의 연출력도 돋보인다. 오는 7월 22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4만~5만 5000원. (02)766-6007.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못, 준다/손현숙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못, 준다/손현숙

    못, 준다/손현숙 연애 고수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잘 주고받기란다 피구 게임에서도 몸을 살짝 뒤로 빼면서 공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주고받기만을 잘하면 쇳덩이라도 가벼운 법이라는데, 나무껍질처럼 생긴 목수 아저씨 못 하나 입에 물고 한참을 중얼거린다 장미나무 찻장을 앞에 세워놓고 “꽃 줄게, 꽃 받아라” 문짝을 달랜다, 나무의 결 따라 못질한다 심하게 어깃장 놓던 장미 찻장이 거짓말처럼 부드럽다 못은 망치로 때려 박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당신아, 어쩌자고 우리는 몸을 주고받아 새끼를 나눠 갖게 되었을까 그나저나 눈 깜짝할 새 방바닥에 쓰러져서 돌아가신 아버지 어디 가서 도로 몸을 받아 오나 너를 덜어 나를 채우는 여기, 꽃잠이 밀려와 하품한다, 생글거리며 횡격막을 연다 사랑은 몸을 주고받는 일이다. 당신은 사랑스러운 표범이다. 사랑은 두 마리 표범으로 몸이 엉겨 몸을 주고받는 열락(悅樂)이다! 사랑은 피구 게임을 닮았다. 몸을 뒤로 빼면서 공을 받아야 한다. 목수는 오래 써서 뒤틀린 장미나무 찻장에 못을 박으면서 “꽃 줄게, 꽃 받아라”라고 말한다. 이 절묘한 은유에 무릎을 친다. 장미나무 찻장에 못 하나를 박으며 저토록 우아하게 속삭이다니! 장미나무 찻장을 어르고 달래며 못을 박는 저 목수는 연애에 빠진 듯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허둥지둥 제 욕심만 먼저 채우려고 들 게 아니라 “꽃 줄게, 꽃 받아라” 해야 한다. 장석주 시인
  • 소나무 화가 김광배 팔공산 기슭을 담다

    소나무 화가 김광배 팔공산 기슭을 담다

    절벽 위, 비탈길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소나무, 척박한 땅 위에 기반을 다진 밑동…. 화가 김광배(66)가 수년간 그려 온 소나무들은 위태롭고 불편한 모습으로 우리 삶의 민낯을 은유한다.5년 전부터 대구 팔공산 기슭에 작업실을 두고 소나무를 집중적으로 화폭에 담고 있는 그가 18~23일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 ‘팔공산 소나무’에서 3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아스팔트처럼 거친 질감과 바랜 듯 깊이 있는 색감의 그림은 그 자체로 모진 환경을 이겨내 온 소나무에 대한 찬가다. 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는 “김광배는 시각의 즐거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우리의 심연을 탐사하는 일에 매진한다”며 “작품으로 삶의 묵직한 자취를 말하고 뚜껑으로 가려져 있는 세상을 들어 올리거나 뚜껑을 관통해 그 안쪽을 들여다보려는 자세를 견지한다”고 평했다. (02)736-1020.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아무래도 그림을 사야겠습니다(손영옥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그림 구매는 왠지 나와는 거리가 먼 일 같다. 그러나 저렴하게 산 그림이 10년 후 돈이 된다면 어떨까. 책은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을 위한 미술품 구매 가이드 북이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미술품을 사려면 얼마가 있어야 하고, 어디에서 사들여야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272쪽. 1만 6800원.출판하는 마음(은유 지음, 제철소 펴냄) 산문집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글쓰기 에세이집 ‘쓰기의 말들’의 작가 은유가 문학편집자, 번역자, 북 디자이너, 출판제작자, 출판마케터, 온라인 서점 MD, 1인 출판사 등 10명의 젊은 출판인들을 직접 만나 ‘부단한 협동의 결과물’인 책을 짓고 펴내는 각각의 입장에 대해 묻고 기록한 인터뷰집이다. 344쪽. 1만 6000원.신해철(강헌 지음, 돌베개 펴냄) 가수 신해철이 201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여년간 그와 음악적 교감을 이어 온 음악평론가 강헌이 올해 신해철 데뷔 30주년을 맞아 펴냈다. 낡고 부패한 기성세대를 거부하며 인문학적 사유로 새로운 세계를 열고자 했던 신해철의 역동적인 삶과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다. 360쪽. 1만 6000원.한국 경제 4대 마약을 끊어라(유종일·권태호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경제 민주화로 유명한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와 권태호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대담집이다. 저자들은 한국 경제를 벼랑으로 몰고 간 4대 마약으로 ‘투자’, ‘환율’, ‘빨리빨리’, ‘찍기’를 꼽았다. 마약들을 하루빨리 끊고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새로운 성장 모델을 성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12쪽. 1만 5800원.적색수배령(빌 브라우더 지음, 김윤경 옮김, 글항아리 펴냄) 러시아 투자 회사 허미티지 캐피털 창립자이자 CEO인 미국인 빌 브라우더의 논픽션 소설이다. 푸틴 집권 후 러시아는 저자가 소유한 회사의 자본 구조를 조작하고 세금을 탈루한 것처럼 꾸며내 그를 범죄자로 만든다. 저자가 이런 범죄를 언론에 알리지만, 오히려 푸틴의 눈엣가시가 돼 위기를 맞는다. 496쪽. 1만 9500원.
  • 오멸 감독이 전하는 세월호 레퀴엠…‘눈꺼풀’ 4월 개봉

    오멸 감독이 전하는 세월호 레퀴엠…‘눈꺼풀’ 4월 개봉

    세월호 희생자들을 잘 배웅하기 위한 진혼곡과 같은 영화 ‘눈꺼풀’이 4월 개봉한다. 망망대해 위 외딴 섬 ‘미륵도’에서 떡을 만들며 저승으로 긴 여정을 떠나는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노인의 이야기를 담은 ‘눈꺼풀’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향한 작품이다. 오멸 감독이 제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연출에 임했다. 오멸 감독은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세월호가 제주로 향했기에 더 큰 무게감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그는 희생자들을 가슴에 묻고, 잘 배웅해주기 위해 슬프고도 아픈 마음을 은유적으로 담아냈다. 영화는 제20회 부산영화제,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냈다. 여기에 ‘아이 캔 스피크’, ‘누에치던 방’ 등 다양한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 이상희 배우가 학생들을 이끌고 섬에 도착한 선생님 역을 맡아 열연했다. 갑작스럽게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아이들에게 한 끼라도 먹이고픈 마음을 담은 세월호 헌정 영화 ‘눈꺼풀’은 오는 4월 12일 개봉한다. 15세 관람가. 85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막사발을 읽다-송가영(본명 송정자)

    막사발을 읽다/송가영(본명 송정자) 너만 한 너른 품새 세상천지 또 있을까 먼 대륙 날고 날아 난바다도 건너갈 때 태산도 품안에 드는 은유를 되새긴다 털리고 짓밟히고 쓸리기도 했을 게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친구가 되지 못해 바람에 말갛게 씻긴 꽁무니가 하얗다 바람에 몸을 맡긴 가벼운 너의 행보 새처럼 구름처럼 허공을 떠돌다가 양지 뜸 아늑한 땅에 부르튼 생을 뉜다 그리하여 정화수에 묵은 앙금 갈앉히고 눈빛 맑은 옛 도공의 손길을 되짚으면 가슴에 불꽃을 묻은 큰 그릇이 되느니
  • [현장영상] 마마무 컴백, ‘별이 빛나는 밤’ 쇼케이스 무대

    [현장영상] 마마무 컴백, ‘별이 빛나는 밤’ 쇼케이스 무대

    마마무(솔라, 문별, 휘인, 화사)가 돌아왔다. 신보 ‘옐로우 플라워’(Yellow Flower)를 통해서다. ‘옐로우 플라워’는 마마무의 신년 앨범 프로젝트 ‘포시즌’의 첫 시작을 알리는 앨범이다. 네 가지 컬러에 멤버들의 상징을 담아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마마무 멤버들의 매력과 역량을 담아냈다. 마마무는 7일 서울 마포구 무브홀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새 앨범의 타이틀곡 ‘별이 빛나는 밤’의 무대를 선보였다. ‘별이 빛나는 밤’은 기존 마마무의 곡들과는 사뭇 달랐다. 라틴풍의 느낌에 인상적인 기타 리프를 곁들여 떠나간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자연과 시간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마마무 앨범 총괄 프로듀서인 김도훈과 박우상이 함께 작업했다.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창극으로 꽃 피운 발칙한 빨간 망토

    창극으로 꽃 피운 발칙한 빨간 망토

    흔히 아는 서양의 구전 동화 ‘빨간 망토’ 이야기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할머니 집으로 가던 소녀가 음흉한 늑대의 꾐에 넘어가 할머니와 함께 늑대에게 잡아먹히거나, 또는 사냥꾼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구출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소리꾼 이자람·이소연이 들려주는 빨간 망토 이야기는 좀 다르다. 성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 빨간 망토는 호기심 넘치고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독립적인 소녀다. “다 알고 있었다”고 말하며 늑대가 먼저 도착해 있는 할머니의 집을 노크하는 요염한 표정의 소녀는 발칙하기 그지없다.국립창극단이 올해 기획한 신(新)창극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소녀가’가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이자람이 연출하고, 이소연이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만으로도 공연은 이미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배우이자 소리꾼, 인디밴드 보컬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자람은 ‘소녀가’에서 연출뿐만 아니라 극본, 작창, 작곡, 음악감독 등 1인 5역을 소화했다. 창극 ‘소녀가’는 소녀의 호기심과 욕망은 건강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늑대의 꾐을 간파하고 골려 주는 명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자람은 2010년 프랑스 작가 장 자크 프디다가 ‘빨간 망토 혹은 양철 캔을 쓴 소녀’라는 제목으로 다시 쓴 빨간 망토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과정에서 동시대의 관점과 해석이 더해지는 구전 동화의 특색을 기가 막히게 살렸다. 특히 이 작품은 국립창극단에서 처음 시도하는 모노드라마 형식의 창극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한 명의 소리꾼이 내레이션과 등장인물들의 역할을 하며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판소리 형식에서 여러 소리꾼이 나와 여러 배역을 나눠 맡는 것으로 파생된 창극이, 다시 역으로 한 명의 배우가 여러 역할을 겸하는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원형 무대에는 배우와 조명, 그리고 빨간 망토 외에는 어떤 장치도 없지만 소리꾼이자 배우, 이야기꾼의 역할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소연의 변화무쌍한 연기는 70분간 빈틈없이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철로 만든 옷, 빨간 망토, 늑대, 꽃밭 등 다양한 은유 속에 함축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예컨대 소녀는 조금씩 성숙해지면서 철로 만든 옷과 신발을 신게 된다. 소녀의 몸을 ‘철컹철컹’ 감싸는 철로 만든 옷은 소녀에게 철이 들 것, 즉 조신함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규범으로 읽힌다. 마침내 철옷과 철신발을 벗고 빨간 망토를 걸치게 된 소녀는 그토록 궁금해하던 숲속으로 가게 되는데 이때 마주치는 늑대는 어린 소녀를 유혹하는 남자를 의미한다. 또 소녀가 꽃밭에서 발견하고 황홀해하는 꽃은 막 피어나는 소녀의 여성성으로 은유된다. 고수 이준형의 전통 소리북 장단에 대중음악계 최고의 건반연주자 고경천, 베이시스트 김정민 등 정상급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선율과 다양한 음악적 효과는 극의 작품성과 대중성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린다. 공연은 4일까지.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두 ‘은유’… 편지로 알게 되는 가족의 소중함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두 ‘은유’… 편지로 알게 되는 가족의 소중함

    2016년 1월 2일 한 해를 시작하며 1년 뒤 나에게 쓴 편지. 이상하게도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이 도착했다. 의아한 건 나와 이름이 같은 어떤 사람이 34년 전에 보냈다는 거다. 시간을 거슬러 배달된 이 편지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걸까.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서 ‘메두사의 후예’가 당선되며 등단한 이꽃님 작가의 청소년 소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문학동네ㆍ표지)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동명이인인 두 ‘은유’가 주고받은 편지글을 통해 돌아서면 잊고 마는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아빠의 재혼을 앞두고 마음이 어수선한 15살 은유는 태어날 때부터 곁에 없었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도통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아빠는 한 번도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1년 뒤 자신에게 편지를 써 보라는 아빠의 제안에 ‘느리게 가는 우체통’에 편지를 넣은 은유에게 과거로부터 답신이 도착한다. 발신자는 1982년 10살의 또 다른 은유.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서로의 고민과 비밀을 털어놓으며 가까워진다. 현재의 은유가 1년의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 과거의 은유는 20년의 세월을 산다. 서로 살아가는 시간의 속도가 다른 까닭에 과거의 은유는 현재의 은유가 오랫동안 궁금해 온 엄마의 존재를 찾아주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한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하나씩 밝혀지는 가족의 비밀. 그 과정에서 현재의 은유는 자신에게 무심한 줄로만 알았던 아빠의 자신에 대한 간절한 마음과 속으로만 그려 왔던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비로소 알게 된다.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타임슬립, 편지글이라는 익숙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가족에 대한 특별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유영진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소설로도, 영화로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왔지만 소중한 사람을 영원히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이 힘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평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기운 내라고, 자연처럼 살라고… 힘을 주는 詩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기운 내라고, 자연처럼 살라고… 힘을 주는 詩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달리아가 움직이지 않게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무성하는 채소밭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돌아오는 채소밭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 -‘채소밭가에서’ (1957)살다 보면 너무 힘들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고 싶을 때가 많지요. 가장 힘들 때 어디서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1954년 부인 김현경과 다시 만난 김수영은 성북동 계곡과 가까운 셋방에서 살았습니다. 솔방울로 밥 지어 먹으며 행복하게 살다가 시끄러운 라디오 소음이 싫어서, 1955년 여름 지금의 마포구 구수동 서강대교 근처인 서강으로 이사 갑니다. 겨울에 쓸 남은 연탄도 트럭에 싣고, 1000평쯤 되는 벌판에 외로 있는 엉성한 양기와집 한 채로 이사 갑니다. 지금과 달리 시골이었던 그곳에서 맨 처음 산란용 닭인 레그혼을 11마리 사서 키우기 시작합니다. 닭이 알을 낳으면서 생각지 않은 재미도 있었고, 단무지를 만들 수 있는 긴 무를 키우면서 농촌을 배경으로 많은 시를 씁니다. “우리집에도 어저께는 무씨를 뿌렸”고, “물을 뜨러 나온 아내의 얼굴은/어느 틈에 저렇게 검어졌는지”, “시골 동리 사람들의 얼굴을 닮아”(여름 아침 ) 갑니다. 농사하고 닭을 키우며 “땅속의 벌레”(봄밤 )를 그는 늘 벗 삼습니다. ‘채소밭 가에서’는 바로 이때 쓴 시입니다. 도시에서 기자로 지내던 사람이 닭똥과 흙냄새 범벅으로 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겠죠. 그의 글에는 농촌 생활이 지겹고 단순하다는 짜증도 있습니다. 닭똥 냄새 맡으며 지칠 때,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온갖 배추며 무며 파의 잎새들이 그를 응원하는 손짓으로 보였을까요. 그는 가장 사소한 사물에게 “기운을 주라”는 호소를 주문처럼 반복하며 기원합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채소밭에서 기운을 달라고 기원했을까. 시는 살아가는 힘을 노래합니다. 절실한 기구를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며 반복하고 강조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거리에는 구걸하는 고아와 싸구려 분을 바르고 미군을 부르는 양색시, 한쪽 다리를 잃은 목발 짚은 상이h용사가 넘쳐났습니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고 진창과 절망만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상처 앞에서 김수영은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고 간구합니다. ‘기운’이란, 만물이 나고 자라는 힘의 근원을 뜻합니다. 김수영은 자신의 시가 힘을 주는 시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살아가기 어려운 세월들이 부닥쳐 올 때마다 나는 피곤과 권태에 지쳐서 허술한 술집이나 기웃거렸다. 거기서 나눈 우정이며 현대의 정서며 그런 것들이 후일의 나의 노트에 담겨져 시가 되었다고 한다면 나의 시는 너무나 불우한 메타포의 단편(斷片)들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그리운 건 평화이고 온 세계의 하늘과 항구마다 평화의 나팔소리가 빛나올 날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우리들의 오늘과 내일을 위하여 시는 과연 얼마만 한 믿음과 힘을 돋우어 줄 것인가. - ‘시작 노트 ’ (1957)너무 힘들어 때로 허술한 술집을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의 시가 불우한 은유 조각이 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평화의 나팔소리가 빛나올 날을 가슴 졸이며”, “우리들의 내일을 위하여” 김수영은 시가 “믿음과 힘을 돋워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이 문제는 설움과 죽음을 극복하려 했던 그에게 늘 숙제였습니다. “기운을 주라”는 문장은 처음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말로 들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들으면 멈칫하지요. 그 사이에 의미를 증폭시키는 말이 들어갑니다. 시에서 세 번째로 “기운을 주라”는 말을 읽을 때는 무슨 뜻인지 궁금해집니다. 타인에게 “기운을 주라”는 말일까요. “밥 좀 주라”는 말처럼 나에게 “기운을 주라”는 말일까요. 읽는 사람에 따라 달리 읽힐 겁니다. 같은 문장이지만 의미는 다양하게 증폭됩니다. 독자의 귀에 힘을 내라며 소곤대는 말이 점점 북소리처럼 커지는 겁니다. 반복도 그냥 반복이 아니라 병치(竝置) 반복입니다. 김수영의 시에는 병치 반복이 자주 나옵니다. ‘절망’에서도 병치 반복이 보입니다. 風景이 風景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速度가 速度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이 병치 반복되고 있지요. 그런데 ‘채소밭 가에서’는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가 주요 가사와 마치 주거니 받거니 하는 노동요 닮은꼴로 병치되어 있어요. 왜 병치 반복을 했을까요. 첫째,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한때 연극을 했던 김수영이 자주 쓰는 기법이지요. 둘째,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는 구절이 마치 밭고랑처럼 보이지는 않는지요. 채소가 심겨 있는 줄 사이사이에 있는 밭고랑 말입니다. 이렇게 시각적으로도 채소밭을 느낄 수 있는 시 형태입니다. 반복되는 구절은 설움과 절망에 빠지곤 했던 자기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며 기도였습니다. “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는 구절은 독자를 강바람이 스쳐 지나는 강가 채소밭으로 데리고 갑니다. 실제로 김수영이 살던 집은 강가에 있었습니다. “이 시를 썼던 집에서 한강이 보였어요. 우리집 쪽으로 경사가 졌는데 홍수가 나면 물이 차서 철렁철렁했어요.” 부인 김씨의 말입니다. “무성하는 채소밭가에서” 그는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무성한 성찰도 합니다. 두 뙈기의 차밭 옆에는 역시 두 뙈기의 채소밭이 있다 김장 무나 배추를 심었을 인습적인 분가루를 칠한 밭 위에 나는 걸핏하면 개똥을 갖다 파묻는다 -‘반달’ (1963) “두 뙈기의 차밭”은 집 뒤 150여평에 재배했던 잎이 예쁜 결명자 차밭을 말합니다. “인습적인 분가루”는 화학비료를 말합니다. 그게 싫어서 김수영은 밭에 “걸핏하면 개똥을 갖다 파묻습니다. 그의 시 정신인 “반역의 정신”(‘구름의 파수병’)은 그의 일상이기도 했습니다. 무성한 채소밭은 그에게 끊임없는 성찰을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채소밭가에서”라고 썼듯이 내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채소밭이 나에게 돌아옵니다. 채소가 주체입니다. 아니면 내가 돌아오는 채소밭으로 읽을 수도 있지요. 이어 발표한 ‘파밭가에서’도 그가 농사를 지으며 끊임없이 힘을 얻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달리아가 움직이지 않게”에서 ‘달리아’는 성장할수록 꽃 구근이 둥글고 크며 무거운 꽃입니다. 줄기가 꽃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때, 꽃대가 꺾이지 않도록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고 합니다. 부인 김씨는 “김수영 시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집 주변에 꽃밭을 만들곤 했어요. 달리아꽃도 그때 키웠고요. 잘 키우지 않으면 햇살 좋은 곳으로 옮겨 심어야 했어요. ‘움직이지 않게’는 그런 뜻이 아닐까요”라고 합니다.외국에서 온 비싼 달리아꽃을 귀한 인간 존재로 비유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얼마나 귀한 존재일까요. 함부로 움직이지 않게, 쓰러지지 않게, 기운을 달라고 시인은 간구합니다. 달리아는 김수영 시인 자신을 상징하는 꽃일 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는 무슨 뜻일까요.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소리도 고웁다”고 합니다. 지친 신체를 달래주는 고운 소리이기도 하지만, 그 소리가 점점 커지면 폭풍으로 불어 작물을 휩쓸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풀’(1968)에서도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고 합니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이 나를 마시면 안 됩니다. 우리는 바람이 상징하는 온갖 고통을 즐길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단독자로 단련시키면서도, 바람에 먹히면 안 됩니다. 그래야 “바람보다 먼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람보다 먼저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고 했듯이, 가장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뿌리를 지켜내야 합니다. ‘바람’은 달리아 꽃대를 꺾을 수 있는 어떤 폭압이겠죠. 10여년간 양계를 하고 채소를 키우던 김수영의 경제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11마리였던 닭은 한때 1000마리까지 늘었습니다. 4·19 이후 폭등한 사료값을 감당하지 못해 몇백 마리를 팔아버립니다. 700마리 정도 남은 닭의 사료값을 대기 위해 시인은 밤새워 글을 쓰고 번역을 합니다. 양계와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체험한 김수영은 아내에게 “우리가 닭이나 채소가 아니라 사람을 저렇게 키웠다면 더 의미 있지 않았을까” 하고 묻기도 했답니다. 사실 시인은 집일을 거들던 소년 만용이를 키워 대학까지 졸업시켰습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만용이의 학비를 직접 대며 부양했던 시인은 ‘만용에게’라는 시에서 가난한 생활의 고단함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생활이 어려웠지만 그는 자연을 그냥 묘사하기만 하거나 혹은 자연을 점령해야 할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자연에 “기운을 주라”며 대화하는 그 자신 또한 누리의 한 부분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시는 절대자유, 절대사랑 그리고 절대자연에 서 있었습니다. 자연이 하라는 대로 나는 할 뿐이다 그리고 자연이 느끼라는 대로 느끼고 나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 ‘사치 ’ (1958) 그는 자연에 귀를 대고 들으라고 합니다. 자연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자연이 느끼라는 대로 느끼겠다고 합니다. 가장 지쳤을 때,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했을 때, 그는 “서둘지 말라”(봄밤)고 위로합니다. 여린 새싹인 우리에게 얼어붙은 땅을 뚫고 봄을 끌어오는 자연처럼 살라며 그는 우리에게 권합니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시인·숙명여대 교수
  • ‘이방인’ 선예 가족사, 부모님 대신 키워주신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이방인’ 선예 가족사, 부모님 대신 키워주신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이방인’ 선예가 가족사를 공개했다.10일 방송된 JTBC ‘이방인’에서는 그룹 원더걸스 출신 선예가 남편과 데이트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선예와 제임스 부부는 연애시절 갔던 데이트 장소를 6년 만에 찾았다. 옛 추억에 젖은 선예는 “나는 ‘내가 복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한 게 오빠 부모님을 만나고다. ‘세상에 이런 부모님이 있구나’ 싶었다. 오빠가 부모님 덕에 이렇게 자랄 수 있었구나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에 제임스는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한국 가서 살았지 않냐. 정말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할머니가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이렇게까지 잘 키워주셨는데. 내가 정말 잘해야겠다.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선예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선예는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할머니가 엄마처럼 길러주셨다”고 고백했다. 이어 “나도 할머니처럼 살고 싶다”며 “할머니가 혼자 있는 모습에 걱정을 많이 하셨다. 가정을 만드는 모습을 보시고 ‘너의 평생 친구가 생겼으니 이제 됐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선예는 “딸 은유가 할머니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그래서 좀 특별하게 생각이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슬픔을 딸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사진=JT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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