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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베를린의 우울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베를린의 우울

    베를린에는 황제들이 살던 궁전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궁전은 폭격으로 심하게 손상됐다. 동베를린을 점유한 동독 당국은 부서진 궁전을 아예 철거해 버렸다. 통일 후 정부는 이 궁전을 되살리기로 했고, 현재 거의 완공 단계에 도달했다. 여기서부터 브란덴부르크문까지 이어지는 대로가 운터덴린덴이다. 도로 분리대 대신 피나무가 늘어선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서 사람들은 그늘을 거닐며 숨을 돌릴 수 있다. 대로 끝에 이르면 그리스식 열주가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브란덴부르크문과 만나게 된다. 이 장엄한 건축물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때 세워졌다. 그의 큰아버지 프리드리히 2세는 46년 동안 프러시아를 다스리며 독일 동북부에 치우친 그저 그런 나라를 유럽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동성애자였던 탓에 후사가 없었다. 큰아버지로부터 탄탄한 나라를 물려받은 운 좋은 조카는 통치 능력은 변변찮았으나 베를린을 수도의 위상에 걸맞은 도시로 개조한 공적을 남겼다. 습지에 세워진 베를린은 제방과 운하, 목조 다리가 뒤엉켜 있었다. 왕이 벌인 건축 사업의 첫 번째 결실이 브란덴부르크문이었다. 1791년에 완공된 브란덴부르크문은 독일 근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이 돼 왔다. 베를린을 점령한 나폴레옹 군,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독일 병사들, 기세등등한 나치스, 소비에트 기를 펄럭이는 소련군이 차례로 이 문을 지나갔다. 굳게 닫힌 채 냉전을 상징하던 문은 오늘날 평화와 통일의 상징이 됐다. 이 그림은 1920년대의 운터덴린덴을 보여 준다. 코트 깃을 여미고 우산을 쓴 사람들이 총총 지나간다. 원경에 브란덴부르크문이 보인다. 승리의 여신이 모는 사두마차의 실루엣이 뚜렷하다. 줄지어 지나가는 자동차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임을 말해 준다. 전쟁은 독일의 패전으로 끝났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로 따가운 논총을 받았으며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승리를 장담하며 전쟁을 부추겼던 정치가, 장군, 사회지도자들 중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 정치 상황은 어둡고 인플레는 심각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우울함이 느껴지는 것은 괜한 상상이 아니리라. 게오르크 그로스, 오토 딕스 같은 젊은 화가들은 전후 베를린의 황폐한 모습에 절망하고, 중산층의 이기적인 뻔뻔함에 분노했지만, 노년에 접어든 인상주의 화가는 우수에 잠겨 축축한 거리를 바라볼 뿐이다.
  • 빈살만 왕세자 개혁안 막은 살만 국왕

    빈살만 왕세자 개혁안 막은 살만 국왕

    로이터 “사우디 ‘아람코’ 기업공개 불허” 재무상태 공개 부담… 빈살만 정치적 타격 2조 달러(약 2218조원)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업체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가로막은 것이 다름 아닌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로이터통신은 27일(현지시간) 사우디 내부 소식에 정통한 3명의 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해 “지난 2년간 사우디가 노력해 온 아람코 IPO를 살만 국왕이 불허했다”면서 “사우디에서 국왕이 ‘안 된다’라고 말하면, 그 결정은 바꿀 수 없다”고 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살만 국왕은 지난 6월 라마단 기간 중 왕실의 가족, 은행가, 전 아람코 최고경영자(CEO) 등과 상의해 아람코 IPO 취소 결정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아람코 IPO가 사우디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아람코의 재무 상태를 완전히 공개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컸다. 아람코의 시가총액이 당초 예상했던 2조 달러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부담감, 외국 증시 상장 과정에서의 법적 위험성·각종 정보 공개 요구 등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결정으로 살만 국왕은 사우디의 실권이 아직 자신에게 있으며,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2인자라는 사실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게 됐다. 빈살만 왕세자는 다소간의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풀이된다. 아람코 IPO는 빈살만이 왕세자가 되기 전부터 추진했던 프로젝트다. 빈살만 왕세자는 아람코 IPO와 상장을 통해 얻은 자금을 바탕으로 자신의 개혁안 ‘비전 2030’을 밀어붙일 계획이었다. 로이터는 “빈살만 왕세자는 아람코 IPO를 통해 사우디의 폐쇄성을 깨고 개방적 문화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었다”면서 “IPO 취소는 약속 파기뿐 아니라, 지난해 11월 반부패를 명목으로 한 대대적 숙청 등 사우디의 예측 불가능성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소식통들은 “살만 국왕 때문에 빈살만 왕세자의 권력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정책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동시에 국왕의 가장 큰 총애를 받는 아들이자 상속자”라고 평가했다. 싱가포르 S 라자라트남 국제문제연구소의 제임스 도로시 선임연구원은 “이번 사건이 빈살만 왕세자의 지배력 훼손으로까지 확산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관측했다. 사우디 정부는 로이터 보도에 대해 “아람코 주주인 정부는 적절한 조건에서 IPO에 착수할 계획”이라며 아람코 IPO 취소설을 재차 부인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야간개장’ 성유리 “남편 집 자주 비워..내가 진짜 밤의 여왕”

    ‘야간개장’ 성유리 “남편 집 자주 비워..내가 진짜 밤의 여왕”

    배우 성유리가 스스로를 ‘밤의 여왕’이라고 밝혔다. 27일 밤 8시 10분 첫 방송된 SBS플러스 신규 예능 ‘당신에게 유리한 밤, 야간개장’에서는 MC 성유리의 일상이 소개됐다. 지난해 5월, 프로골퍼 안성현과 결혼한 후 신혼을 즐기고 있는 성유리는 ‘야간개장’을 통해 자신의 집과 일상을 처음으로 방송에 공개했다. 성유리의 신혼집은 심플하고 모던한 화이트톤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남편 안성현은 일 때문에 집을 비우기가 일쑤. 대신 성유리는 밍밍, 뚜뚜, 뿌잉 반려견 3마리와 함께 일상을 보냈다. “활동 시간이 주로 밤이다. 전 진짜 밤의 여왕이다”라고 스스로에 대해 설명한 성유리는 느즈막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그의 첫 일과는 반려견에게 리코더 불어주기. 일어나자마자 리코더를 부는 것만으로도 평범하지 않은데, 그의 집에는 크기별로 다양한 리코더가 있어 시선을 모았다. 성유리는 “초등학교 때 엄마가 리코더합주단을 했다. 저와 오빠가 했는데, 제가 리코더를 좀 잘했다. 리코더신동이라고 동네에 소문났었다”며 어릴 적부터 리코더를 즐겨 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유리는 스케줄에 나갔다. 샵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예쁘게 받고, 서경덕 교수와 함께 하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홍보영상의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5분 정도 분량의 내레이션이었지만, 성유리는 풀세팅으로 녹음실에 갔다. 내레이션 녹음작업도 능숙하게 해냈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프로다운 성유리의 모습이 돋보였다. 이후 성유리는 골프가방을 매고 실내 골프연습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프로골퍼 조민준에게 골프강습을 받았다. “골프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는 성유리의 골프실력은 골프선수 남편이 있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초보수준이었다. 그런 그가 골프를 시작한 이유는 남편 때문이었다. 성유리는 “(남편이 골퍼라)그래서 시작한 것도 있다. 다들 제가 잘 치겠지 하는데, 이렇게 너무 못치면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성유리가 골프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 자체가, 남편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성유리는 집에 돌아와 본격적인 자신만의 ‘밤 라이프’를 시작했다. 밤 12시경, 성유리가 한 일은 ‘그림 그리기’였다. 성유리는 목탄으로 흰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동그라미가 좋다”며 동그라미를 사정없이 그렸다. 그 위에 색깔도 덧입혔다. 성유리는 “제 그림을 좋아하시는 고객님이 계시다. 전 블랙&화이트가 좋은데, 색깔을 좋아하시는 고객님을 위해 색깔을 넣었다”며 자신의 그림을 전문적으로 사는 특별한 ‘고객’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림이 거의 완성되자 성유리는 그림의 사진을 찍어 누군가에게 전송했다. 이어 “팔아봅시다”, “사기 한 번 쳐봅시다”라며 그림을 팔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가 전화를 건 ‘고객’은 다름아닌 남편 안성현이었다. 성유리의 휴대폰 액정에는 ‘여보야’라는 애칭이 적혀 있었다. 성유리는 남편과의 통화에서 “고객님, 제가 좋은 그림이 있어서 사진 보내드렸는데 어떠세요”라며 운을 뗐다. 전화기 넘어 안성현은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라며 화답했다. 두 사람은 그림 판매자와 구매자로 상황극을 하며 알콩달콩 전화통화를 했다. ‘야간개장’의 다른 MC들은 스튜디오에서 성유리와 남편 안성현의 닭살 통화를 VCR로 지켜봤다. 특히 서장훈은 “전화해서 저걸 팔고, 얼마네 하는 게, 참 알콩달콩 하다”라며 신혼부부답게 귀여운 장난을 주고받는 성유리-안성현의 모습에 미소지었다. 이어 새벽 3시경, 성유리는 인스턴트 냉동 떡볶이를 꺼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얼굴이 부을 까봐, 살이 찔까봐, 늦은 시간에 먹는 것을 꺼리는 보통의 여배우들과는 다른 행보였다. 요리가 간편한 인스턴트 식품인데도, 성유리는 앞치마를 착용하고 전문 요리사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요리에 돌입했다. 성유리는 “주로 인스턴트를 많이 먹게 되더라. 요리학원도 다니고 그랬는데, 그게(요리가) 잘 안되더라”며 자신의 요리실력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적힌 레시피대로 냉동 떡볶이 요리를 하던 성유리. 떡이 익는 동안 그는 갑자기 발레동작으로 스트레칭을 해서 주변의 웃음을 자아냈다. MC 서장훈은 “원래 이러는 거냐, 웃기려고 이러는 거냐”라며 성유리의 엉뚱한 행동에 웃음 지었다. 떡볶이가 완성되자 성유리는 예쁜 그릇에 담았고, 그릇에 어울리는 테이블매트를 깔았다. 그리고 세팅이 완료되자 의자 위로 올라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인스턴트 요리라도 플레이팅에 신경쓰는 이유에 대해 성유리는 “요리를 썩 잘하지 못하는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남편에게) 예쁘게라도 차려주자 하는 마음에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유리는 “요리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요리도 하냐’, ‘예쁘게 잘 하고 드시네요’라고 댓글을 달더라. 거기에 중독된 거 같다. 예쁜 그릇에 예쁘게 플레이팅하고 먹으면 기분 좋다”라고 덧붙였다. 성유리의 말에 MC 서장훈은 “(사진을) 보시는 분들은 냉동식품인거 아나?”라고 물었다. 이에 성유리는 “(그런 내용은) 굳이 안 쓴다”라고 말해 다시 한 번 주변에 웃음을 선사했다. 드디어 취침에 드나 했더니, 이번엔 피아노에 앉아 열정적으로 피아노 연주에 나섰다. 성유리는 야간에 그림 그리고, 요리하고, 음악하고, 바쁘게 시간을 보낸 후 해가 뜰 무렵에 잠자리에 들었다. 성유리는 밤에 다양한 활동을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는 “제가 잠을 못자는 고민이 오랫동안 있었다. 하루가 흐지부지 끝나게 되더라. 생각을 달리해서, 밤에 활동적인 뭔가를 해서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겠다, 생각해서 밤에 바쁘게 보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밤에 일찍 자야겠단 강박관념을 없애고 나서부터, 혼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하나씩 만들어가기 시작했다”라며 그림그리기 등과 같은 활동을 밤에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태국판 ‘하나회’ 민정이양 속셈은… 군부·왕권 공생 작전

    [글로벌 인사이트] 태국판 ‘하나회’ 민정이양 속셈은… 군부·왕권 공생 작전

    “내년 2월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일정상) 불가능하다면 나중에 그 문제를 논의할 것이지만 총선은 2월 24일 치러져야 한다.” 2014년 군부 쿠데타를 통해 4년 이상 집권 중인 쁘라윳 짠오차(64) 태국 총리가 지난 21일 구체적 날짜를 명시하며 민정 이양을 위한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년부터 태국의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는 요원하다. 집권 후 4차례나 총선 시기를 늦춰 비판을 받아 온 쁘라윳 총리가 이제 더이상 총선을 늦추지 않아도 군부가 장기 집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태국 차기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군부가 정권을 유지할 것임은 확실하다”면서 “군부가 태국 정치의 핵심으로 남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작업을 거의 마무리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입헌군주제 국가를 표방하는 태국이 지난 4년간 전제군주와 군부가 공생하며 권력을 분점하는 체제로 변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그동안 ‘탕아’로만 알려졌던 새 국왕의 권력 의지와 그 후원을 받고 자란 태국 군부 내 파벌의 결탁이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일상화된 쿠데타… 군주와의 ‘권력 나누기’ 태국은 입헌군주국으로 전환된 1932년부터 2014년까지 모두 19차례의 군부 쿠데타가 발생할 정도로 쿠데타가 일상화된 국가다. 국민의 존경을 받았던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 국왕 시절에는 쿠데타가 발생하면 국왕이 이를 사후 승인해 군부가 집권한 뒤 민정으로 전환되는 패턴이 반복됐다. 국왕이 쿠데타를 승인하지 않아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 사례도 있었다. 2014년 5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던 쁘라윳이 이끄는 군부는 극심한 정치 갈등과 혼란을 잠재운 뒤 정권을 민간에 이양하겠다며 계엄령을 선포한 후 잉락 친나왓(51·여) 당시 총리를 축출했다. 쁘라윳 총리는 쿠데타 직후 2015년 10월쯤 총선을 치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2016년으로, 다시 2017년으로 연기했다. 쁘라윳 총리는 지난해 말에는 2018년 11월 총선을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가 올해 초 다시 내년으로 연기했다. ●퇴폐적이고 방탕한 후계자의 이중생활 민정 이양이 늦춰지는 와중인 2016년 10월 70년간 재위하며 태국 정치의 구심점이 돼 온 푸미폰 국왕이 서거했다. 그의 장남인 마하 와치랄롱꼰(66) 왕세자가 라마 10세로 즉위했지만 왕위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했다. 공식적으로 세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왕세자는 퇴폐적이며 방탕하며 기행을 일삼는 인물로 알려졌다. 특히 2009년 공개된 동영상은 전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세 번째 부인인 스리라스미 왕세자비(2014년 이혼)가 속옷 하의만 입고 왕세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외설적 장면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푸미폰 국왕 생전에 차기 왕위는 왕세자가 아니라 국민의 신망이 두터운 그의 여동생 마하 짜끄리 시린톤(63) 공주에게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쿠데타 주역들은 와치랄롱꼰 신임 국왕을 왕세자 시절부터 지지해 왔다. 쁘라윳 총리를 비롯한 쿠데타 주역들은 와치랄롱꼰 국왕을 지지한 국왕의 어머니 씨리낏(86) 태후가 후원한 군부 내 유력 사조직인 ‘동부 호랑이’ 파벌 출신들이다. 2006년부터 태국 군부를 장악해 태국판 ‘하나회’로 알려진 이 파벌은 ‘왕비의 근위대’인 태국 육군 2사단 21연대에서 장교 생활을 했던 군인들이 주축이 된 집단이다. 씨리낏 태후는 푸미폰 국왕의 왕비 시절 이 부대의 명예 연대장을 맡아 쁘라윳 총리 등 장교들을 각별히 챙겨 와치랄롱꼰 왕세자의 후원 세력으로 키웠고, 평판이 좋지 않은 왕세자가 차기 국왕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나섰다. 쁘라윳 총리 이외에 쁘라윗 웡수완 부총리, 아누퐁 파오찐다 내무부 장관 등 주요 요직에 앉은 인사들이 동부 호랑이 파벌의 실세들이다. 쁘라윳 정권은 집권한 직후 푸미폰 국왕이 서거할 때를 대비해 젊고 효심 깊은 이미지의 왕세자를 홍보하는 데 적극 나서 후계 구도를 공고히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12월 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와치랄롱꼰은 ‘탕아’라는 이미지가 무색하게 강력한 정국 장악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1월에는 새 헌법의 일부 조항에 대해 수정을 요구해 국왕의 일시적 부재 시 섭정을 지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삽입했다. 원래 조항에서는 왕실 자문기구 추밀원이 국왕 부재 시 섭정을 지명하고 의회 승인 절차를 밟도록 규정했었다. 아울러 태국 국민들의 구심이자 불교 지도자인 승왕을 직접 임명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기존에는 승려들의 원로회의에서 승왕을 임명해 국왕에게 추천하도록 했는데 이를 직접 임명함으로써 불교계에 대한 국왕의 통제를 강화한 셈이다. 새 국왕의 전제왕권이 막강해진 것은 지난해 8월 군부 정권이 왕실자산관리국(CPB)을 국왕이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하도록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300억 달러가 넘는 왕실 재산을 관리하는 왕실자산관리국은 원래 재무부 장관을 비롯한 4인 이상 위원으로 구성됐으나 국왕이 직접 위원장과 위원들을 임명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태국 왕실의 자산은 산유국인 브루나이 왕실(200억 달러)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왕실(180억 달러)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되고 정부의 감사도 면제된다. ●개헌·창당까지… 쁘라윳의 정치 야망 활활 동부 호랑이 파벌이 주축이 된 군부는 왕권 강화의 대가로 정치 개입의 제도화를 이뤘다. 쁘라윳 정권은 태국의 새 헌법 초안을 마련하고 2016년 8월 국민 투표를 통해 개헌을 성사시켰다. 새 헌법에는 총선 후 5년간의 민정 이양기에 250명의 상원의원을 최고 군정 기구인 국가평화질서회의(NCPO)가 임명하고, 이들이 선출직 의원 500명으로 구성된 하원의 총리 선출 과정에 참여하는 방안이 담겼다. 군부 지도자들도 상원의원에 자동적으로 포함된다. 또 선출직 의원에게만 주어지던 총리 출마 자격도 비선출직 명망가에게 줄 수 있도록 해 군 출신인 쁘라윳 총리에게 굳이 선출직 의원을 하지 않아도 다시 총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군사 정권의 막강한 정치 권력과 비교해 정치적 반대 세력은 왜소하다. 쿠데타로 물러난 잉락 친나왓 전 총리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영국으로 도피한 상태이며, 궐석재판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다. 잉락은 재임 중이던 2011~2014년 부정부패와 재정 손실 혐의를 받고 있다.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됐던 잉락의 친오빠 탁신 전 총리도 2008년 해외로 도피했다. 쁘라윳 총리는 차기 총선에서 정당 추천 후보로 출마해 총리로 당선되기 위한 유리한 정치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군부는 직접 새 정당인 ‘팔랑 쁘라차랏’ 창당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기존 양대 정당인 프어타이당과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을 회유해 포섭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탁신 전 총리 계열인 프어타이당에 대한 지지율이 31%로 팔랑 쁘라차랏당(22%)보다 높지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정당은 없다. 차기 총리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쁘라윳 총리가 31%로 1위를 차지했다. 차기 총선 결과 팔랑 쁘라차랏당과 쁘라윳을 지지하는 일부 군소 정당 간 연립정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지표 호전도 군부 자신감 뒷받침 쁘라윳 정권은 값싼 노동력과 천연자원, 관광업 등에 의존했던 태국 경제의 체질을 노동집약적 첨단 기술 위주로 탈바꿈하기 위한 국가경제발전계획 ‘태국 4.0’을 제시해 민심을 다스리고 있다. 실제로 2014년 0.9%였던 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해 4% 수준으로 격상됐고, 올해 1분기 수출 증가율은 최근 7년래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사상 최대인 3500만명을 기록했다. 이 같은 경제지표의 호전은 군부의 자신감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쁘라윳 총리는 시사주간 타임 인터뷰에서 “지금이 태국의 안정을 되찾고 미래로 전진하기 위해 중요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적수는 없었다… 이대훈 태권도 첫 3연패

    적수는 없었다… 이대훈 태권도 첫 3연패

    광저우·인천 이어 한 체급 올려 金 획득 준결승까지 3경기 연속 큰 점수차 승리결승서 승부 가른 시원한 ‘3점 헤드 킥’늘 의연히 ‘종주국 자존심’을 지켜온 이대훈(26·대전시체육회)이 아시안게임 태권도 사상 처음으로 3연패 쾌거를 일궜다. 이대훈은 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태권도 겨루기 남자 68㎏급 결승에서 아미르 모함마드 바크시칼호리(이란)에게 12-10 역전승을 거두고 정상에 올랐다.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대회 남자 63㎏급에서 잇달아 정상에 오른 이대훈은 이번 대회 한 체급을 올려 세 대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6년 서울 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아시안게임 태권도에서 3회 연속 금메달을 딴 선수는 없었다. 이대훈은 무하마드 무하마드(인도네시아)와의 16강전을 26-5, 아르벤 알칸트라(필리핀)과의 8강전을 같은 점수로 눌렀다. 이대훈은 준결승에서는 예라실 카이이르베크(카자흐스탄)를 32-10으로 대파하는 등 세 경기 연속 20점 이상 여유 있게 이겼다. 결승 상대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요르단)를 준결승에서 10-8로 꺾은 바크시칼호리였다. 이대훈은 1라운드에서 2점짜리 몸통 발차기를 두 차례나 허용했지만 상대 감점으로만 1점을 얻는 데 그쳐 1-4로 끌려갔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은 그는 2라운드 시작하자마자 몸통 공격을 한 차례씩 주고받은 뒤 3회 연속 주먹 지르기 득점으로 6-7까지 따라붙었다. 3라운드 초반 다시 상대 몸통에 주먹을 꽂아 7-7 균형을 맞췄고, 이어 3점짜리 헤드 킥을 날려 승부를 갈랐다. 감점으로 상대에게 한 점을 내줬지만 몸통 발차기에 성공하며 12-8로 다시 달아난 뒤 감점으로 추격을 허용했으나 리드는 지켰다. 이로써 한국은 닷새 동안 열린 태권도 경기에서 금 5, 은 5, 동메달 2개를 수확했다. 겨루기에서 금 3, 은 4, 동메달 1개를 획득했고 처음 정식종목으로 치러진 품새에서 금 2, 은 1개, 동메달 1개를 따 겨루기와 품새 모두 금메달은 목표의 절반에 그쳤다. 한편 구본길(29), 김정환(35·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 오상욱(22·대전대), 김준호(24·국군체육부대)로 구성된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이날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이어진 단체전 결승에서 이란을 45-32로 격파하고 정상에 올라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구본길은 개인전에 이어 단체전 금메달도 가져가 두 대회 연속 2관왕에 올랐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첫 2관왕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여자 양궁 장혜진 강채영 탈락, 은메달도 못 딴 건 1978 방콕 이후 처음

    여자 양궁 장혜진 강채영 탈락, 은메달도 못 딴 건 1978 방콕 이후 처음

    한국 여자 양궁이 리커브 개인전 결승 진출에 실패하며 16년 만에 정상을 내줬다. 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양궁장에서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양궁 여자 리커브 본선에서 장혜진(32·LH)과 강채영(22·경희대)이 각각 8강과 4강에서 탈락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2관왕이자 세계랭킹 1위인 장혜진은 8강에서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다이난다 코이루니사(인도네시아)에 세트승점 3-7로 패했다. 이어진 준결승에서는 강채영이 장신옌(중국)과 팽팽한 접전 끝에 4-6으로 지고 28일 동메달 결정전에 나가게 됐다. 이에 따라 여자 양궁에서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에 실패한 이후 16년 만에 개인전 정상을 내주게 됐다. 은메달조차 따지 못한 것은 양궁이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이후 처음이다. 남자부 8강전에 한국 선수는 둘이 진출해 있다. 이우석(21)이 웨이춘헝(대만)을 7-1로 가볍게 누르고 4강에 진출했다. 두 경기를 더 치른 뒤 김우진(26)은 다카하루 후루카와(일본)와 준결승 진출을 다툰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6연패 노리던 펜싱 여자 플뢰레 일본에 져 동메달, 강보라 탈락

    6연패 노리던 펜싱 여자 플뢰레 일본에 져 동메달, 강보라 탈락

    펜싱 여자 플뢰레 대표팀의 아시안게임 6연패 도전이 좌절됐다. 마지막 대회에서 한국 선수 역대 최다 메달을 겨냥했던 남현희(37·성남시청)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전희숙(34·서울시청)과 남현희, 채송오(29·충북도청), 홍서인(30·서울시청)으로 구성된 여자 플뢰레 대표팀은 23일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체전 준결승에서 일본에 36-45로 져 동메달에 머물렀다. 이 종목은 한국이 1998년 방콕 대회부터 2014년 인천 대회까지 5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그 가운데 세 차례 우승을 함께 했던 남현희와 전희숙을 앞세워 수성을 노렸으나 6월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맞붙었던 일본과의 리턴 매치에서 패하고 말았다. 남현희는 금메달 하나만 더하면 통산 일곱 번째 금메달로 한국 선수 하계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 기록을 새로 쓸 수 있었으나 이루지 못했다. 개인전 2연패에 성공했던 전희숙은 두 대회 연속 2관왕을 노렸으나 무산됐다. 한국은 8강에서 홍콩을 45-32로 격파했으나 준결승 초반 전희숙과 홍서인이 한 점도 득점하지 못한 채 0-10으로 밀려 일찌감치 승기를 내줬다. 18-35일 때 여덟 번째 경기에 나선 남현희가 미야와키 가린을 13-4로 제압하며 31-39까지 추격했으나 끝내 뒤집지 못했다. 여자 플뢰레 단체전 우승은 중국과 일본이 디툰다. 싱가포르가 한국과 함께 동메달을 차지했다. 또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2관왕이자 세계랭킹 1위 장혜진(32·LH)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양궁장에서 열린 리커브 여자 개인전 8강에서 다이난다 코이루니사(인도네시아)에 세트승점 3-7로 패했다. 장혜진은 32강전에서 라오스, 16강전에서 베트남 선수를 차례로 제압하고 8강에 올랐으나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코이루니사에 밀렸다. 앞서 태권도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로 기대를 모은 대표팀 막내 강보라(18·성주여고)는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8강에서 져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택견을 접목한 화려한 기술로 무장한 채 쟁쟁한 언니들을 제치고 생애 처음 태극마크를 단 강보라는 8강에서 일찌감치 만난 이 체급 세계태권도연맹(WT) 올림픽랭킹 1위 파니파크 옹파타나키트(태국)에 8-27로 무릎 꿇었다. 또 조정 남북 단일팀은 무타포어 6위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박태현(25), 김수민(24·이상 해양경찰청)과 북측 선수들인 윤철진(25), 김철진(26)으로 구성된 남북 단일팀은 이날 팔렘방 조정 카누 레가타 코스에서 열린 조정 남자 무타포어 결선에서 6분59초61로 6개 출전국 가운데 가장 늦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번 대회 조정에서 단일팀을 꾸린 남자 에이트, 여자 경량급 더블스컬 나머지 두 종목 결선은 24일 이어진다. 앞서 여자 경량급 쿼드러플 스컬 결선에서는 한국이 7분06초22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붉은 벽돌 마을…수제화거리…7080 뚝섬의 추억을 거닐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붉은 벽돌 마을…수제화거리…7080 뚝섬의 추억을 거닐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5회 성수동(서울숲 밤마실) 편이 8월의 셋째 주말인 지난 18일 진행됐다. 절정을 향해 치닫던 여름이 거짓말처럼 선선한 가을로 바뀐 이날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성수동에 몰렸다. 정원 초과로 결국 몇 분은 오디오 가이드시스템 없이 해설자의 육성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이날 투어는 집결 장소인 분당선 서울숲역 3번 출구를 출발, 116개의 컨테이너로 조립된 언더스탠드에비뉴를 거쳐 옛 뚝섬경마장을 상징하는 기마상과 갤러리아 포레 주상복합아파트가 보이는 서울숲 바닥분수에서 서울숲 조성 경위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시작했다. 답사단은 성수동의 새 명물로 떠오른 붉은 벽돌마을을 걸어 공씨책방~웅덩이마을~수제화거리~카페거리를 거쳐 서울경찰기마대에서 짧지만 긴 일정을 마무리했다. 해설을 맡은 김은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철저한 사전준비로 서울의 핫플레이스 성수동 투어를 이끌었다. 특히 종착지인 서울경찰기마대에서 마구간을 공개하는 깜짝 선물로 참가자들을 감동시켰다. 설문조사에서 “웅덩이마을이나 붉은 벽돌 마을, 공씨책방, 경찰기마대 같은 예상치 못한 곳을 경험한 소중한 밤마실” 이라는 소감이 쏟아졌다.뚝섬은 섬이 아닌 섬이다. 중랑천과 청계천이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만들어진 퇴적평야지대이다. 3개의 하천이 가로지르며 3면을 둘러싸다 보니 마치 섬처럼 보인다. 조선시대 이 지역을 도성 밖 동교(東郊) 혹은 살곶이다리 밖 교외라는 뜻에서 전교(箭郊)라고 불렀다. 동국여지승람에 “동쪽에서 흐르는 한강이 둘러 서쪽으로 흐르고, 북쪽 중랑천이 서쪽에서 흐르는 한강과 합하는 중간에 있으므로 자연히 평야가 형성됐다”고 적혀 있다. 한양의 열 가지 명승지를 노래한 ‘경도십영’(京都十詠)에도 봄이면 살곶이벌을 찾는다는 내용의 ‘전교심방’(箭郊尋訪)이 꼽혔다.동교는 전국에서 사육한 4만~5만 마리의 말 중 ‘서울로 보낸’ 준마만을 키우던 국립목장이자 왕의 사냥터, 군대 사열 장소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에서 성종까지 100년 사이 151번이나 찾았을 정도로 조선 초기 역대 왕이 즐겨 찾는 장소였다. 뚝섬의 랜드마크는 단연 살곶이다리(箭串橋)다. 1420년 세종 때 공사에 들어갔으나 1483년 성종 때 완공됐다. 왕은 당시 가장 긴 돌다리에 ‘제반교’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1938년 성동교가 개설돼 사용가치를 잃고 방치되기 이전까지 서울에서 아차산 아래 뚝섬, 강 건너 광주를 잇는 교통의 요로였다. 이태원, 홍제원, 보제원과 함께 4대 관용숙소인 전관원(箭串院)이 자리했다. 한양인 듯 한양이 아니고, 섬인 듯 섬이 아닌 뚝섬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시설인 뚝도수원지(수도박물관)로 장소의 관성이 이어졌다. 경기 고양군과 양주군에 속했던 이 지역이 일제강점기 서독도리(성수동1가)와 동독도리(성수동2가)로 서울에 편입된 이후 대변화가 휩쓸고 지나갔다. 이 시기 뚝섬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시설물은 ‘기동차’였다. 1930년 왕십리~뚝섬 간 4.3㎞를 달렸다. 1934년 동대문~왕십리 간 별선을 놓으면서 동대문~뚝섬 구간이 완성됐다. 전성기 총 37대까지 운행된 기동차는 1960년대 중반 폐지될 때까지 뚝섬 주민들의 발이자 채소 수송수단으로 이용됐다.기동차의 진가는 뚝섬유원지용 피서열차로 애용되면서 발휘됐다. 동뚝섬역에서 600m 떨어진 한강가에 유원지와 수영장, 어린이놀이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강수욕과 뱃놀이의 추억은 1986년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사라졌지만 옛 뚝도공립보통학교(경동초등학교) 자리에 뚝섬유원지의 여름경찰서가 있었다. 1960~70년대 여름철이면 하루 10만명, 절정 때는 20만명의 행락객이 몰려들었다. 70척의 놀잇배가 뚝섬유원지를 오갔다. 그 시절 서울의 여름 피서는 뚝섬유원지가 책임졌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1960년대 초부터 무, 배추, 토마토 등 채소 재배지에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구로공단처럼 국가 주도 산업단지가 아니라 도심의 제조업체들이 교통이 편리하고 땅값이 싼 성수동으로 옮겨온 것이다. 1971년 당시 성수공단에 입지한 제조업체는 모두 671개로 서울 전체의 20%를 넘을 정도였다. 무허가 공해업소에서 쏟아내는 폐수로 인한 수질 악화 등 공해 문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결국 30년을 넘기지 못했다. 도시형 전통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수제화, 인쇄, 자동차정비업 중심으로 지역경제가 재편됐다.왜 성수동에 신발업체가 모였을까. 지하철 2호선 라인인 성수역과 화양역 사이에 봉제공장이 많았다. 피혁, 의류, 가방공장이 따라 들어왔다. 봉제산업이 피혁산업과 제화산업으로 연쇄효과를 낳은 셈이다. 1996년부터 2000년 사이 서울에서 설립된 제화업체의 절반이 성수동에 입지한 게 이를 방증한다. 본래 서울의 수제화는 염천교와 명동에서 살롱화라는 이름으로 발달했다. 70년대 후반 명동에만 100개가 넘는 수제화 업체가 있었다. 50년대부터 신발공장이 들어선 염천교는 구두백화점, 신발만물상 수준이었다. 기성화시대로 접어들면서 국내 양대 제조업체인 금강제화와 에스콰이어가 금호동과 성수동 시대를 마감하고 서울을 떠났지만 하청업체들은 남았고, 이들이 80년대 성수동으로 모여든 게 성수동 수제화 역사의 시작이다. 성수동은 우리나라 구두제작업체의 중심지가 됐다. 2000년대 중반 구두제작업체의 44.4%, 구두 부분품 및 재단제품 제조업체의 58%가 성동구에 몰렸다. 성수동에 구두제작업체의 86%, 구두 부분품 및 재단제품 제조업체의 70%가 집중된다. 구두뿐 아니라 다양한 패션제품으로 폭이 넓어졌다. 2013년 현재 성동구의 섬유 및 의류제조 업체는 380개, 자동차정비업은 190개, 구두제조 관련 업체는 650개에 6000여명의 종사자가 몰려 있다. 성수동은 명실상부한 수제화의 메카이다. 뚝섬은 1950년 성동구로 편입되면서 성수동(聖水洞)으로 이름을 바꿨다. 성수동은 성덕정(聖德亭)이라는 왕이 머물던 정자에서 ‘성’(聖) 자를 따고 뚝도수원지에서 ‘수’(水) 자를 딴 합성 지명이다. 지명은 바뀌었지만 뚝섬의 정체성인 목장과 수원지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1954년 경마장이 뚝섬으로 옮겨온 것은 말 목장이던 뚝섬이라는 장소의 관성이 살아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1958년 마장동에 우시장이 들어서고 뒤이어 도축장까지 들어와 가죽을 다루는 수제화 집적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하게 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현대의 이동수단인 자동차를 수리하는 정비공장들이 대거 성수동에 둥지를 튼 것도 ‘말(馬)의 고향’이라는 600년 이어진 장소의 관성 탓은 아닐까.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여름야행 5=양화진(한강 밤풍경) ●일시: 8월 25일(토) 오후 6~8시 ●집결장소: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7번 출구 앞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서울광장] 훈민정음에서 일자리 창출까지/박현갑 논설위원

    [서울광장] 훈민정음에서 일자리 창출까지/박현갑 논설위원

    1443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기 전까지 우리 언어생활은 중국 문자인 한자 중심이었다. 왕족과 양반 등 요즘말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한자교육을 받아 생활에 불편함이 없었으나 일반 백성들은 한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해 불편했다.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농사짓는 방법을 담은 농사직설이라는 책이 있었으나 한문으로 작성돼, ‘그림의 떡’이었다.백성의 이 같은 불편을 안타깝게 여긴 세종이 만든 우리 글자가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 반포문에 나오는 “글 모르는 백성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라는 대목은 세종대왕 입장에서 보자면 훈민정음 창제가 국정과제였다. 최만리로 대표되는 학자 등 지배층에서 상소문을 올리며 반대했으나 세종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행정수요자 입장을 헤아리려는 지도자의 고민이 없었다면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는 한글은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해 아우토반을 보게 된다. 아우토반은 2차 세계대전 뒤 ‘라인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서독 경제성장의 또 다른 상징이었다. 박 대통령은 3년 뒤 경부고속도로 건설계획을 밝힌다. 하지만 나라 안팎으로 반대 목소리가 거셌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 142달러에 식량부족으로 미국의 잉여농산물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었다. 건설비 지원 요청을 받은 미국과 세계은행(IBRD)은 교통량도 없고 민생과 무관한 고속도로 건설이 웬 말이냐며 거절하고 비판한다. 당시 야당도 반대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68년 2월 1일 기공식을 갖고 2년 5개월 만인 70년 7월 7일 428㎞의 왕복 4차선 고속도로를 준공한다. 빈곤에서 벗어나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도로 같은 사회기반시설부터 갖춰야 한다는 신념의 결과였다. 당시 박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에 공사현황을 담은 상황판을 설치하고 진척 상황을 챙기며 현장점검도 잊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자동차 시대가 열리고 주변에 공업단지 건설이 이어지면서 이후 국가경제는 도약의 길로 접어들었다. 현안에 대한 고민과 통찰력을 국가 비전으로 구체화하는 지도자의 결단력이 가져온 성공 사례들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근 일하는 방식을 보노라면 이 같은 비전은 사라지고, 혼선만 키우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집권 1년차의 눈부신 외교안보 분야의 성과와 달리 내치 분야에서의 우왕좌왕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을 정부가 결정하지 못하고 여론에 떠넘긴 게 그렇고, 고용쇼크에 놀라 잇단 대책회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와 경제부처 간 화합을 재강조하는 상황은 민망스럽다. 물론 민주주의 시대 리더십 행사는 왕조시대나 독재시대처럼 일방통행식이어선 안 된다. 시대상황에 따라 일하는 방식은 바뀐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국가 주도형 성장패러다임은 신자유주의로 바뀌었다. 국가가 경제성장을 위해 자원을 동원하고 과실 배분에 개입하던 것에서, 정부 개입은 최소화하고 시장 역할을 키우는 방향으로 옮겨 왔다. 영국의 대처주의나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국정에 반영된 사례다. 리더십 구현 방식은 상황에 따라 바뀌지만 비전 제시와 이를 실현할 추진력은 시대를 막론하고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기존의 사회작동 원리에 대한 대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사회양극화와 소득불균형 심화를 드러냈다.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 문 정부는 이를 소득주도 성장으로 상징되는 ‘J노믹스’로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궤도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에는 긍정과 부정, 지지와 비판 등 상대적 가치판단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 반영한 게 여론이다. 여론은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일관된 추세라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으나 초라한 민생지표가 그렇다. 여론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난 이후 대책은 비전이 아니라 수습일 뿐이다. 리더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여건이나 상황에 반응하지 않고 주도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것이 그렇고,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듯 말이다. 나아가 용기 있는 리더라면 현안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기존 비전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개선하고 유사상황에 대비하는 새 비전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eagleduo@seoul.co.kr
  • ‘인어공주’ 김서영 女 개인혼영400m 銀

    ‘인어공주’ 김서영 女 개인혼영400m 銀

    김서영(24·경북도청)이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수영 선수로는 처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김서영은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겔로라붕카르노(GBK) 수영장에서 열린 대회 경영 여자 개인혼영 400m 결승에서 4분37초43을 기록해 2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4분34초58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은 일본의 오하시 유이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오하시는 올 시즌 세계랭킹 1위 기록(4분33초77)을 가진 선수다. 일본의 시미즈 아키코는 4분39초10으로 3위에 올랐다. 전날 수영에서 동메달만 두 개를 딴 한국은 김서영의 메달로 이번 대회 첫 은메달을 수확했다. ●접영 100m 안세현 銅… 日이키 첫 4관왕 이어 열린 접영 여자 100m 결선에서는 안세현(23·SK텔레콤)이 58초00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따냈다. 일본의 이키 리카코(56초30)가 금메달을, 중국의 장유페이(57초40)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함께 출전한 박예린(부산체고)은 59초57로 7위를 차지했다. 이키는 경영 종목 첫날인 19일 계영 400m에 이어 20일 접영 50m, 자유형 100m에서도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정상에 올랐고 이날 접영 100m에서도 금메달을 따 대회 첫 4관왕이 됐다. 이 종목에서 57초07의 한국 기록을 갖고 있는 안세현은 지난해 부다페스트세계선수권 접영 200m에서 한국 최고 성적인 4위(2분06초67)에 올라 새로운 기대주로 떠올랐다. 100m로 몸을 푼 안세현은 22일 자신의 주종목인 200m에서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우슈 조승재 중국에 0.07점 밀려 銀 우슈에서는 조승재(28·충북개발공사)가 이번 대회에서 불운에 울었던 한국 대표팀에 첫 메달을 안겼다. 조승재는 이날 자카르타 인터내셔널 엑스포에서 열린 곤술 연기에서 9.73을 받아 전날 도술에서 받은 9.72를 더해 19.45로 2위에 올랐다. 도술은 검을, 곤술은 곤봉을 이용해 연기를 펼치는 종목이다. 금메달은 합계 19.52(도술 9.76, 곤술 9.76)를 얻은 우자오화(중국)가 차지했다. 동메달은 19.41(도술 9.70, 곤술 9.71)의 아시마드 후라에피(인도네시아)에게 돌아갔다. 조승재의 값진 은메달로 한국은 이번 대회 우슈의 자존심을 살렸다. 우슈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2~3개의 금메달을 따낼 것으로 기대됐지만, 앞서 12일 열린 투로 남자 장권 결선에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던 이하성(24·경기도우슈협회)이 손을 바닥에 짚는 실수로 12위에 머물렀다. 서희주(25·순천우슈협회)도 같은 날 투로 여자 검술·창술 경기를 앞두고 무릎 부상으로 기권해야 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엘살바도르, 대만과 단교 후 中과 수교… 입지 좁아진 美

    中, 차이잉원 ‘美 경유외교’ 우회 압박 대만 수교국 17개국으로… 갈등 격화 미국과 중국 간 전방위에 걸친 갈등 격화 속에서 미국의 앞마당 격인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가 21일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전격 수교했다. 중국이 미국의 안마당에 한발 더 침투한 셈이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베이징에서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엘살바도르 외교부 장관과 ‘수교수립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엘살바도르의 결정은 중국의 군사무기 판매와 항구 건설 및 선거비용 등의 지원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대만의 수교국은 17개국으로 줄었다. 미·중이 무역 갈등뿐 아니라 대만 및 남중국해 문제 등 안보·전략 문제까지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미국 ‘안마당’에 있는 대만 수교국을 끌어들인 것이라 향후 양국 관계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미·중 갈등과 중국·대만 갈등은 지난 2년 새 격화된 반면 미국과 대만의 밀착은 두드러지면서 미국, 중국, 대만의 3각 관계에 더욱 깊은 골이 파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거센 압박을 받고 있는 대만을 이전 미국 정부들보다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주타이베이 미국대표부에 단교 이후 처음으로 해병대를 보내 경비를 맡게 했고, 지난 3월 미국·대만 고위급 관료의 상호방문을 허용하는 ‘대만여행법’을 발효시켰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전날 미 연방기구인 휴스턴의 미 항공우주국(NASA)을 찾고 다양한 미국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는 등 적극적인 ‘경유 외교’를 펼치며 중국 당국을 뒤집어 놓은 것도 이 법의 발효 덕택이었다. 양안 관계는 민진당의 차이잉원 정부가 출범한 뒤 갈등 악화로 치달아 왔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하며 독립을 추구해 나가는 대만에 압박 수위를 높여 왔다. 이날 수교 발표는 차이 총통이 중남미 순방과 미국에서 활발한 ‘경유 외교’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 나왔다. 차이 총통은 전날 귀국 기자회견에서 “대만이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국제사회에 알렸다”고 말했다. 또 이날 담화에서 “중국의 요구와 행동들은 마지노선을 넘어섰다”면서 “중국이 전투기의 대만 상공 비행, 국제항공사 명칭 변경, 타이중시(市)의 아시안유스게임 개최권 박탈 등 압박을 계속해 왔다”고 덧붙였다. 대만 외교부도 “엘살바도르가 최근 거액의 자금을 요구하며 항구 개발 협조를 요청해 왔으나 타당성이 떨어져 응하지 않았다”면서 “불법 정치헌금 등을 통한 중국과의 경쟁은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차이 총통 취임 후 2년 동안 중국은 상투메 프린시페,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등 4개국을 대만과 단교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소울의 여왕 추모하랬더니 마돈나 5분 동안 자기 자랑

    소울의 여왕 추모하랬더니 마돈나 5분 동안 자기 자랑

    팝스타 마돈나가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을 추모하는 연설을 지나치게 장황하게 해 제멋에 취해 있는 것 아니냐는 빈축을 샀다. 마돈나는 20일 미국 뉴욕에서 진행된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 시상식 도중 최고의 영예인 올해의 비디오상을 시상하기 위해 연단에 불려 나와 사회자로부터 프랭클린에 대한 추모의 얘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녀는 5분 동안 연설을 하며 프랭클린이 우리 모두에게 힘을 북돋아줬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에서는 마돈나가 연설 대부분을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일화를 나열하는 데 할애했다며 추모의 취지가 퇴색됐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 60회 생일을 맞은 마돈나는 데뷔 초기 오디션 때 프랭클린의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를 불렀던 일화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두 명의 진짜 대단한 프랑스 레코드 프로듀서가 자신을 그다지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왜 그렇겠느냐”고 관객들에게 묻고는 “비쩍 마른 백인 소녀가 들어와 다시 볼 수 없었던 가장 위대한 소울 가수가 부른 노래를 부르려 했기 때문이었다. 아카펠라?”라고 물었다. 마돈나는 이어 프로듀서들이 자신에게 몇주 동안 전화를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파리로 데려가 스타로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며 “그 뒤 나머지는 역사가 됐다”고 했다. 또 “여러분은 아마도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할지 모른다”며 “다 연결된다. 우리 소울 레이디가 없었더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가 오늘의 나로 이끌었다. 그리고 오늘밤 이 집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난 안다. 진짜 존경한다(R-E-S-P-E-C-T). 영원하라 여왕이여”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이 연설은 아레사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고 딱잘라 말했다. 한편 올해의 비디오상은 카밀라 카벨로가 차지했는데 그녀는 차일디시 감비노, 아리아나 그란데, 드레이크, 브루노 마스를 제치고 영예를 차지했다. 무대에 오른 그녀는 무릎을 꿇어 마돈나에 대해 경배한 뒤 트로피를 받아들었다. 올해의 아티스트도 받아 최고의 상을 둘이나 차지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우리 문화재, 우리 손으로 파괴한 것 많아 통탄스러워”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우리 문화재, 우리 손으로 파괴한 것 많아 통탄스러워”

    문화재 수난사 연구하는 정규홍씨가 말하는 ‘문화재’“우리 문화재의 과거사를 정리하다보면 ‘정말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가슴 아픈 일이 많아요. 예를 들면 일제 강점기 골동품상 이희섭(李禧燮)은 1934년부터 1941년까지 일본에서 조선대공예전람회를 7차례 엽니다. 전람회 한 번에 우리 문화재 1500점에서 3000점을 도쿄와 오사카에서 전시하고 모조리 팔아치웁니다. 이희섭은 도록을 7권 만들었지요. 도록에 실린 문화재 일부가 일본 국보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7차례 전람회에 진열된 문화재가 1만 4516점입니다. 이뿐 아니라 이희섭은 서울에 ‘문명상회’라는 본점을 두고 도쿄와 오사카에 지점을 개설해 우리 문화재를 상설 전시해 팔아먹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으로 팔려나간 문화재가 최소 3만점에서 5만점에 이를 겁니다. 한 나라의 문화재가 통째로 옮겨진 것인데요, 한 개인이나 상인이 그렇게 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습니다. 통탄할 일이지요.” ●“조씨 문중, 가전 서적 700여권 일본에 스스로 갖다바쳐” 우리 문화재 수난사를 30년째 연구해 정리하는 정규홍(62)씨는 광복절 다음날인 1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알아본 일본이 빼앗아 간 것도 있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스스로 갖다바친 것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이완용(1858~1926)은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갑옷과 투구를 바쳤다는 기록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어느 조씨 가문에서는 일본 도쿄대박물관에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서적 700여권을 아주 싼 값에 넘겼다는 기사가 고고학 잡지에 나옵니다.” 어느 문중이냐고 묻자 정씨는 “기사에서 그것은 언급되어 있지 않고, 한자로 조나라 조(趙)가 적혀 있더라.”고 소개했다.정규홍씨는 1981년 교직 연수를 받으면서 석굴암에 대한 일본인들의 참담한 취급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 후 헌책방 등을 돌아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우리 문화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 문화재 수난일지와 우리문화재 수난사, 유랑의 문화재 등을 펴낸 수난 문화재 전문가다. 문화재 수난사를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해 중학교 교사직도 그만뒀다. 그동안 정부나 관계당국의 지원은 전혀 없었다. 경북지역 문화재 수난사를 쓰면서 용역 의뢰받은 것이 당국의 지원 전부였다. - ‘돈 안 되는’ 우리 문화재 역경사를 정리하는 이유는.☞ 무슨 엄청난 사명감이나 그런 것이 있어 하는 건 아닙니다. 이 일이라는 게 희한하게도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희열감도 있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자존감이랄까 자존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측면도 있고···. 일종의 중독성이 있어요. 한번 빠져들면 잠자면서도 술마시면서도 그 생각이 들고, 꼬투리가 잡히면 잊으려해도 그게 안돼요. 강단에 있는 사람들은 강의 때문에 중도에 끊기는데, 난 그런 것도 없기에 이것 하나만 파고 들어갑니다. ●“문화재 수난사 정리 이유?···중독성에 희열감이죠”- 많이 힘들겠다.☞ 돈 안되는 일을 하니깐 무엇보다 집사람에게 미안하죠. 교직에 있을 때 월급받아 상당액을 이것 연구에 쏟아부었으니깐. 지방에 한번씩 현지 조사 다니면 교통비에 숙박비도 만만찮죠. 책도 사고, 도서관에서 자료 복사도 엄청 합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때 복사비가 한장에 3원이었는데 이젠 50원으로 16배가 됐어요. 문화재 수난사에 관한 책을 냈는데, 잘 팔리는 분야가 아니라서···. 출판사에서 저자에게 책 몇 권 주고 그걸로 끝이예요. 그래도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니 시간은 잘 갑니다. - 그만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이번에 ‘요것만 정리하고 손 떼야지’하는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지요. 그런데 한 건을 정리하다 보면 다른 게 파생되어 나오고, 그기에서 또 다른 게 파생되어 나오고···. 그러다보면 숙제처럼 이만치 쌓입니다. 그러니깐 계속 손을 놓지 못하고 이러고 있습니다.- 수난 문화재가 그동안 왜 공식적으로 정리가 안 됐나.☞ 1945년 해방 직후에 박물관 관계자들이 우리 문화재에 대해 정리해 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이 우리 문화재와 관련된 고적조사와 유적연구 등에 한국인의 근접을 못하게 했어요. 일본인들이 독점했거든. 해방 이후 이 분야에 관한 지식을 가진 한국 사람이 없었어요. 일본이 떠나고 나니깐 총독부박물관과 경주박물관에 남은 고적조사, 발굴보고서 등의 정리를 전혀 못한 채 박물관에 쳐박혀 있었던거지요. 아직도 다 정리가 안 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유물 목록과 실물과의 대조가 정확하게 안 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인력 부족 탓이지만 국가적으로 재원을 투입해서라도 빨리 했어야 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예요. ●“일제시대 한국인 유적연구 차단···유몰 목록과 사료 대조 못 해”- 문화재 수난 분야, 처음 연구는 어떻게 했나.☞ 처음엔 마땅한 자료가 없으니 헌책방을 많이 기웃거렸죠. 1981년 이후 헌책방에 다니면서 문화재 관련 책을 사모았죠. 그리고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축쇄본을 돋보기로 보면서 자료를 모았죠. 또 일본인이 남긴 조사자료와 잡지 이런 것을 위주로 연관지어 보죠. 연관성이 있으면 메모를 해두는 거죠. 예컨대 발굴사업 보고서가 나오면 이게 당시 신문 기사에도 나옵니다. 기사와 고적조사 보고서가 약간 차이가 날 경우가 있거든요. 무덤 발굴의 경우 일본인들이 1차적으로 유물명을 기록하고 바로 박물관에 수장시키지 않고 1년간은 걔네들이 연구를 해요. 그 기간 유물이 분실될 수가 있어요. 실제로 분실이나 망실 그런 문헌이나 문서가 나와 있어요. 이를 비교해서 불법적인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 당시 일본이 얼마나 우리 문화재에 혈안이 됐나.☞ 일본의 각 대학이 잔치를 벌이듯이 우리문화재를 진열해 놓고 경쟁적으로 전람회도 가졌지요. 낙랑 유물부터 그때까지. 도쿄대 공과대와 문과대가 별도로 진열할 정도였으니. 당시 전람회 도록이나 기록들이 감춘 게 없이 매우 정확해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영구 통치할 줄 알았던 게지. 식민지 정착을 위한 하나의 사료로 삼기 위해 우리 문화재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수집해 가져갔지. 그때 조선에는 1908년 설립된 ‘이왕가박물관’ 뿐이었거든. 1915년 12월에서야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생기면서 법으로 유물 반출이 금지돼 있었지만 자신들이 보고서 작성을 핑계로 얼마든지 일본으로 가져갔지. 이런 단체로는 조선고적연구회가 대표적이지요. 당시 일본 도굴꾼들이 대거 몰려들어 우리나라 무덤을 다 파헤쳤죠. 1908년 이전에 고려 무덤의 경우 거의 다 파괴됐다고 보면 됩니다. 조선실록을 보면 수시로 어느 무덤이 파괴되고, 어떤 무덤은 4~5회에 걸쳐 도굴됐지요. 심지어 대낮에 총칼을 갖다놓고 후손들이 보는 앞에서 도굴하고···. ●“고려 무덤 마구 도굴···日대학들, 우리 문화재 진열 경쟁도”- 해방이 되면서 문화재 수난이 줄었나.☞ 1945년 9월8일 미군이 인천에 진주합니다. 그리고 9월20일 미군 300명이 부산항에 들어오지요. 미군은 가장 먼저 일본 군인의 무장해제와 퇴출이예요. 미군이 부산에 들어오기 전에 눈치빠른 일본인들이 문화재를 잔득 가지고 일본으로 나갔던 거죠. 미군이 10월 말쯤부터 일본 민간인을 퇴출시키죠. 그때 귀국 일본인에게 돈 1000원과 작은 옷보따리 정도만 허용하고 귀중품은 모두 압수했든거죠. 그러니깐 일본인들은 어선같은 것을 빌려서 밀항을 합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와 이치다 지로(市田次郞), 공주에 있던 가루베 지온(輕部慈恩) 같은 이들이 어마어마한 유물을 가져간 것이지요. 이들에 빌붙어 밀한을 도운 게 한국사림이예요. - 미군에 의한 문화재 유출도 있었나.☞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귀국을 원활히 하기 위해 ‘세화인회(世話人會)’이라는 것을 만들었죠. 일본인들의 물품 같은 것을 맡아서 일본으로 보내는 일을 맡은거지요. 당시 서울역에서 화물을 부산으로 보내면 중간인 대전역에서 미군이 화물을 압수해 물자영단(物資營團)에 넘겨버리는 것이지. 그 물자영단 창고를 미군이 관리했는데, ‘우리 문화재나 귀중품은 박물관에 넘기고 나머지는 P.X에 넘긴다’고 말하지만 미군들이 마음대로 가져가거나 처분해버린 경우도 많았죠. 해방전후 골동계에서 유명한 이영섭이 부산에서 미군들과 친하게 지내며 물자영단에 있는 그림 1000점 이상을 싼 값에 샀지. 그가 샀던 그림들이 어떻게 흩어졌는지 알 수 가 없어. 또 한때 현재 심사정(1707~1769)의 그림으로 잘못 알려진 ‘맹호도’ 출처는 흥미롭지. 1946년 한 미군이 골동품 상인 두명을 일본인 창고로 데려갔지요. 골동품 상인들에게 감정을 요청해 감정해 주니 미군이 그 댓가로 주었던 게 맹호도이지요. 나중이 국립중앙박물관이 거금을 주고 사들였지만 미군에 의해 흩어진 문화재도 부지기수예요. ●“미군정기와 6·25 전쟁서 문화재 수난도 어머어마”- 6·25 한국전쟁 때도 문화재가 많이 파괴·유출되었다.☞ 6·25 때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파괴됐지. 성보문화재(불교문화재) 파괴가 가장 심했지요. 유엔군이 주민 소개령을 내리고 초토화작전을 펼쳤던거죠. 소개령이 떨어지니 사찰에선 중요 유물들을 갖고 나옵니다. 작전이 끝나고 돌아가보면 절은 없어지고 재만 남은 거예요. 그러면 그 유물들이 절로 들어가지 못하고 흩어진 것이죠. 전국을 돌아다녀보면 오래된 절인데 건물만 새로 짓고, 유물이 없는 사찰이 많아요. 또 부산으로 피난 간 문화재는 극히 일부인데, 이마저도 용두산 대화재로 많이 불타버렸지요. 미처 피난하지 못한 우리 문화재는 미군들이 찾아내 저희들끼리 나눠 가졌습니다. 예를 들면 종묘에 있는 옥새와 금보(金寶·선왕이나 선비에게 올리는 추상존호를 새긴 도장) 이런 것이 상당히 분실됐지요. 1952년 신문을 보면 미군들이 옥새와 금보를 금은방에 가져와 감정해달라고 하다가 다른 미군에 의해 검거되는 그런 기사가 몇건 나옵니다. - 그 이후엔 문화재 수난이 더 없었나.☞ 1960~70년대에는 왠 도굴이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일본인 밑에 따라다니면서 도굴을 배운 기술자들이 그렇게 많이 도굴을 해요. 일재 잔재지요. 심지어는 집 짓는다하고 장막을 두르고 밤에 도굴을 하기도 했어요. 이런 유물은 1970년대엔 이삿짐으로 위장해 미국에 갖다나르다 적발된 경우가 많지요. 유물을 모조품처럼 가장해서 밀수출하다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 밀수전문가들과 한국의 중간 브로커들하고 짜고 가져간 것도 감당을 못할 정도로 많지요.- 지금까지 수난당한 문화재는 몇 점이 되나.☞ 1981년부터 올 4월까지 조사해 파악한 국외유출 문화재는 17만 2300여점에 이릅니다. 이것은 관공서·도서관·박물관 등 공식기록을 비교 조사한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를 포함한 것으로 낙랑시대부터 구한말까지의 유물입니다. 제 조사는 관공서 위주여서 개인소장은 거의 포함돼 있지 않거든요. 오구라가 반출한 문화재의 경우에는 극히 일부인 1100여점만 도쿄박물관에 기증됐고, 나머지 수천점은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어요. 이런 식으로 개인이 소장한 것을 포함하면 100만점이 해외에 떠돌고 있지 않겠느냐고 추산합니다. ●“파악된 수난 문화재 17만 2300여점···실제론 100만점 넘을듯”- 국외 유출 문화재를 환수하려면 어떻게.☞ 현재 파악된 17만 2300여점은 물론이고 앞으로 소재가 확인되는 문화재에 대해 정부와 민간단체가 합심하여 경로 추적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개인이 하기엔 너무 벅차지요. 어떤 과정을 거쳐 발굴해 소장했느냐는 경로 파악을 위해 고적 조사자료, 잡지에 실린 논문, 신문기사 한 줄까지도 축적해 종합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 쌓아나가다 보면 불법성 드러날 것입니다. 불법성이 드러난 것은 환수 운동을 펼칠 수가 있는 것이지요. 한일협정 때의 ‘청구권 포기 규정’ 때문에 정부가 일본에 공식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 환수 부분은 민간단체가 적극 나서야지요. 정씨는 “문화재는 미래 세대에 전해야 할 귀중한 유산”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혼이자 공동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남아 있는 문화재 가운데 우리 손으로 파괴하는 것 즉, 함부로 관리하고 방치한 것은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손선풍기 전자파 수치 높다…“25cm 이상 떨어뜨려 사용해야”

    손선풍기 전자파 수치 높다…“25cm 이상 떨어뜨려 사용해야”

    시중에 판매 중인 손 선풍기 13종에서 높은 수치의 전자파가 측정됐다. 전문가들은 최소 25㎝ 이상 몸에서 떨어뜨려 사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20일 환경보건시민센터 발표에 따르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손선풍기 13개 제품 중 바람개비가 없는 1개 제품을 제외한 12개 제품(중국산 9개·한국산 1개·미확인 2개)에서 전자파가 측정됐다. 이 중 4개 제품은 전자파 인체보호기준 833mG을 초과했다. 조사에 따르면 손 선풍기를 멀리 떨어뜨릴수록 전자파 수치는 낮아졌다. 센터는 전자파 세기는 거리의 제곱, 또는 세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자파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 25㎝ 이상 몸에서 떨어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손 선풍기 손잡이 부분에서도 평균 85.8mG의 전자파가 검출됐기 때문에 이왕이면 책상 등 평평한 곳에 손 선풍기를 올려놓고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센터는 “어린이와 임산부는 손 선풍기를 쓰지 않는 게 예방 차원에서 좋겠지만, 꼭 써야 한다면 어린이는 손을 쭉 펴서, 어른은 손을 약간 구부리는 정도의 거리에서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서효림 폭로 ‘런닝맨’ 이광수 저격 “술 마시고 쫓아다녀” 멱살잡이

    서효림 폭로 ‘런닝맨’ 이광수 저격 “술 마시고 쫓아다녀” 멱살잡이

    배우 서효림이 ‘런닝맨’ 이광수에 대해 폭로했다. 18일 방송된 SBS ‘런닝맨’에서는 배우 김뢰하, 곽시양, 서효림이 출연해 ‘아웃닷컴’ 레이스가 펼쳐졌다. 이날 서효림은 갑작스럽게 이광수의 멱살을 잡고 “내가 오늘 너를 잡으러 왔다”고 외쳐 웃음을 자아냈다. 서효림은 “이광수 데뷔작인 광고 시상자와 수상자로 처음 만났다”며 이광수와 데뷔작까지 함께 출연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서효림은 “어찌나 그렇게 술 마시고 쫓아다니는지”라고 폭로해 이광수를 당황시켰다. 하지만 서효림은 뒤늦게 “아니 극중에서 그런 것이다”이라고 해명해 재차 웃음을 안겼다. 이에 유재석은 서효림은 “아니 말을 좀 조심해서 하라”고 주의를 주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 서효림은 런닝머니 획득을 위한 랜덤 5초 퀴즈에 도전했다. 서효림은 “이광수에게 질투를 느끼는 순간은?”이라는 질문에 “다른 여자를 쳐다볼 때”라고 답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서효림은 “이왕이면 날 보는 게 좋다. 남자인데”라고 답했고 이광수는 “갑자기 이러면…”이라며 수줍어했다. 묘한 분위기도 잠시 “이광수의 잠버릇 세 가지”라는 질문에 서효림은 “코 곤다. 이를 간다. 껴안고 잔다”라고 막힘 없이 답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서효림의 정확한 답에 유재석과 하하는 “어떻게 아냐”고 물었고 서효림은 “같이 시트콤 촬영해서 안다”라고 이광수와의 친분을 드러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터키 신용등급 한 단계 강등…에르도안 “美압박에 굴복 안 해”

    S&P·무디스 하향조정…리라화 또 악재 중·러와 ‘반미 전선’ 꾸리며 美국채 매각 휘청이는 터키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피치에 이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일제히 터키의 국가 신용 등급을 한 단계씩 떨어뜨려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미국과의 ‘경제 게임’에 임전무퇴를 선언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수도 앙카라에서 열린 여당인 정의개발당(AK) 연례 전당대회에 참석해 “일부 세력이 경제와 제재, 외환 환율, 이자율, 인플레이션 등으로 터키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당신들의 게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도전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7일 S&P는 터키의 국가 신용 등급을 기존의 ‘BB-’에서 ‘B+’로 하향 조정했다. 투기 등급(정크) 범위 내에서 한 단계 더 끌어내린 셈이다. 무디스도 이날 터키의 신용 등급을 종전 ‘Ba2’에서 ‘Ba3’로 낮췄다. 터키의 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이라고 평가한 S&P와 달리 무디스는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올 초와 비교해 무려 40% 가까이 떨어진 리라화 흐름에 악재가 또 하나 추가된 것이다. 양국 간 갈등을 촉발한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의 신병 문제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앞서 미 정부는 브런슨 목사를 풀어 주지 않으면 추가 제재를 강행하겠다고 밝혔으나 터키 법원은 이날 석방을 또다시 거부했다. 터키는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이란 등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들과 ‘반미 전선’ 형성에 적극적이다. 중국 외교부는 19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전날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과 현재 정세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하면서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 나라들은 앞다퉈 미국 국채 매각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외신들이 인용한 미 재무부 통계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외국 투자자들의 미 국채 보유액은 전월보다 486억 달러(약 54조 7000억원) 감소했다. 이런 감소 폭은 2016년 말 이래 최대 규모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프로듀스48’ 롤린롤린팀 현장 투표 1위..최후 20명은 누구?

    ‘프로듀스48’ 롤린롤린팀 현장 투표 1위..최후 20명은 누구?

    ‘프로듀스48’ 최종 관문 파이널 생방송에 진출하기 위한 마지막 여정인 콘셉트 평가 무대가 모두 공개됐다. 지난 17일 방송된 ‘프로듀스48’의 최고 시청률은 3.3%까지 치솟았으며, 유료 전국 가구 시청률, 1534 타깃 시청률, 2049 타깃 시청률은 모두 1위(닐슨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를 기록했다. TVING과 엠넷닷컴을 통한 실시간 방송의 최대 동시 접속자는 약 4만4000명을 기록하며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온라인 화제성도 여전했다. 한일 양국의 최대 포털 사이트에서는 ‘프로듀스48’ ‘Rumor’가 각각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으며, 그 밖에도 프로그램과 관련한 다양한 키워드들이 검색창을 장식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데뷔를 눈 앞에 둔 30명의 연습생들이 각양각색 콘셉트 평가 무대를 펼쳤다. 먼저 컨템퍼러리 걸스팝 장르의 ‘1000%’를 소화해낸 김민주, 이채연, 시타오 미우, 미야자키 미호, 고토 모에의 무대가 공개됐다. 이채연은 팀원들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고 채워주며 리더의 역할에 충실했다. 연습생들은 그 노력에 보답하듯 모두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시선을 끌었다. 이들은 센터인 김민주를 중심으로 탄산음료 같은 청량함이 폭발하는 무대를 선보였다. 다음 무대는 뉴잭스윙 장르의 ‘너에게 닿기를’ 팀 김채원, 조유리, 나고은, 야부키 나코, 장규리의 순서였다.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연습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랑스럽고 청순한 매력을 발산했다. 김채원은 곡 콘셉트와 어울리는 모습으로 센터 역할을 다했다. 나고은, 조유리는 쉽지 않은 고음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힙합 알앤비 팝 장르 곡 ‘I AM’ 팀 안유진, 최예나, 이가은, 허윤진, 타카하시 쥬리는 성숙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이 묻어나는 무대를 선보였다. 센터로서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준 안유진, 곡과 꼭 어울리는 통통 튀는 매력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최예나, 노련한 실력의 이가은, 끝없는 연습을 통해 눈에 띄게 성장한 허윤진, 한국어 랩을 유창하게 소화해낸 타카하시 쥬리까지 모두의 능력이 잘 드러난 무대였다. 다음으로는 장원영, 김나영, 혼다 히토미, 시로마 미루, 김도아가 속한 트로피컬 팝 댄스 장르의 ‘Rollin’ Roillin’’ 팀이 무대에 올랐다. 고음 내기를 두려워했던 장원영은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해당 파트를 진성으로 부르며 무대 위에서 상큼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다섯 연습생 모두 가사만큼이나 신나고 자유로운 매력을 뿜어냈다. 김시현, 권은비, 한초원, 무라세 사에, 이시안은 뭄바톤 트랩 장르의 곡 ‘Rumor’ 무대를 선보였다. 이시안은 곡 콘셉트에 녹아든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김시현도 중심에서 센터로서의 존재감을 점차 드러내며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 매회 반전 무대를 선사 중인 한초원은 이번에는 랩 파트를 완벽히 소화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강렬하고 매혹적인 무대를 본 트레이너들은 “멋있다고 느낀 무대였다” “한 명 한 명이 다 보이는 무대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는 팝댄스 장르 곡 ‘다시 만나’ 팀 왕이런, 미야와키 사쿠라, 강혜원, 타케우치 미유, 박해윤의 무대가 공개됐다. 그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화사한 비주얼, 재회를 꿈꾸는 연습생들의 마음을 대변한 감성적인 가사, 청순함을 강조한 안무로 아련미 넘치는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박해윤은 고음 파트를 깔끔하게 소화해내며 환호를 자아냈다. 현장 투표 결과, 베네핏 13만 표를 차지한 1등 팀은 ‘Rollin’ Rollin’’ 팀이었다. 그 중에서도 밝고 귀여운 에너지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로마 미루가 팀 내 1등을 차지했다. 다음 주 공개되는 세 번째 순위 발표식에서는 데뷔를 향한 마지막 관문에 도전할 수 있는 최후의 20명이 호명될 예정이다. 과연 콘셉트 평가에서 주어진 베네핏은 연습생들의 순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또 어떤 연습생들이 살아남아 마지막 평가를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증이 높아진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 공개된 6개의 콘셉트 평가 경연곡은 18일 정오부터 엠넷닷컴을 포함한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감상할 수 있다. ‘프로듀스48’은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Mnet과 일본 BS스카파에서 동시 방송된다. 사진=Mnet ‘프로듀스48’ 방송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씨줄날줄] 헤이세이 일왕의 반성/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헤이세이 일왕의 반성/황성기 논설위원

    아키히토(84) 일왕은 한·일 월드컵을 목전에 둔 2001년 12월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 깊은 교류가 있었던 것은 ‘일본서기’ 등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궁내청(왕실을 관리하는 정부 조직) 악사 중에는 이주자 후손으로 지금도 대대로 아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 나 자신, 간무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는 것에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 무령왕의 아들 성명왕은 불교도 전했다고 한다. (중략)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과의 교류는 이런 것만은 아니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잊어선 안 된다.”아키히토 일왕이 안타깝게 여긴 또 다른 교류는 16세기 말 일본의 두 차례 조선 침략, 특히 20세기 조선 강점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가 패전기념일인 그제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깊은 반성을 하는 동시에 전쟁의 참화가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절실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런 언급은 일제의 여러 전쟁과 함께 ‘인연을 느끼는’ 한반도를 보는 복잡한 감정의 표출일 것이다. 4년째 같은 행사에서 ‘깊은 반성’이란 표현을 쓴 그이지만, 그제가 마지막 추도식 참석이었다. 내년 4월 30일이면 살아 있을 때 왕위를 내려놓는 ‘생전 퇴위’를 한다. 아키히토는 건강 때문에 공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퇴위를 타진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2016년 8월 TV에서 직접 밝히면서 급물살을 탔다. NHK의 여론조사에서 84.4.%의 압도적인 지지로 국민이 찬성했다. 아베 정부도 어쩔 수 없이 생전 퇴위의 제도화를 바라는 왕실의 뜻과 달리 1회에 한해 용인하는 쪽으로 법제화했다. 반전의 상징이자 현행 헌법을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는 아키히토 일왕이 개헌을 일생일대의 숙원으로 여기는 아베 총리에겐 눈엣가시일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지난해 7월 고마(高麗)신사를 방문한다고 하자 우익세력은 일왕을 ‘반일좌파’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 신사는 1300년 전 도쿄 인근의 사이타마 지방으로 이주한 고구려인 약광이 만든 것으로 한반도와 인연이 깊다. 1989년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연 아키히토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방일 때 식민지배에 대해 ‘통석의 염’이란 표현을 써 사과한 바 있다. 2005년 사이판 방문 때는 한국인 전몰자 위령탑을 찾았다. 그의 퇴장이 일본 사회와 한·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낙연 총리가 현 일왕의 방한을 요망한 적이 있지만, 일본 정부가 승인할 리가 없어 차기 일왕인 나루히토 왕세자에게나 기대해 볼 일이다. marry04@seoul.co.kr
  • 김한솔 “더도 덜도 말고 70%만” ‘도마의 신’ 빈자리 채우겠습니다

    김한솔 “더도 덜도 말고 70%만” ‘도마의 신’ 빈자리 채우겠습니다

    김한솔(23)이 지금 ‘잠 못 이루는 밤’과 싸움 중이다. 그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남자 기계체조 마루와 도마에서 2관왕이 유력시되고 있다. 체조 강국인 일본이 10월에 열리는 도하세계선수권에 초점을 맞춰 이번 아시안게임에 1.5진을 파견하면서 메달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문제는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얼마나 초연한 자세를 유지하느냐다. ‘도마의 신’ 양학선(26)이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면서 시선이 자신에게 더욱 집중되는 것이 큰 짐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는 “특별히 뭔가 부담스럽지는 않다”고 말하지만 한 달 전부터는 매일 밤 서너 시간을 뒤척이다 새벽 3시쯤 잠든다고 한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예선 탈락이라는 아픔을 한 번 겪었던지라 처음 출전하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도 알게 모르게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김한솔은 “요즘엔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다. 수면 유도제도 생각해 봤는데 몸에 문제가 생길까봐 먹지 않고 있다”며 “향초, 무드등, 귀마개, 안대, 음악 등 수면에 좋다는 것을 이용해 보니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잠을 못 자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마루와 도마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싶다”며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첫날 마루를 먼저 하고 둘째날에 도마 경기를 하는데 개인적으로 다소 흐름을 타는 편이여서 일단 마루에 더 집중해 훈련하고 있다. 첫날 큰 실수가 없으면 다음날도 잘 풀리지 않을까 싶다. 정신력으로 이겨 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도마에서는 북한의 리세광(33) 선수가 경쟁자로 꼽힌다. 워낙 세계 최정상급에 위치해 온 선수이지만 주눅만 안 들면 성적이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 마루에서는 출전 선수 중 스타트 점수가 가장 높기 때문에 실수 없이 할 것만 딱 해 내면 충분히 메달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한솔은 “마루와 도마 모두 착지 싸움이기 때문에 실수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 100%를 발휘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70~80%만 하자고 생각하면 오히려 후회 없는 경기가 나올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 사진 진천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단독] 고종을 러시아로 피신시켜라… 100년 전 ‘조선판 007’ 美소설

    [단독] 고종을 러시아로 피신시켜라… 100년 전 ‘조선판 007’ 美소설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 소설 두 편이 발견됐다.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이다. 이 소설에는 최근에야 국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고종의 망명 시도와 러시아의 조선 지원 등 극비 내용이 담겨 있어 관심을 모은다.●베델 주인공으로 한 연작 첩보소설 발견 14일 서울신문 특별기획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취재팀은 미국 대중소설 잡지 ‘포퓰러 매거진’ 데이터베이스(DB) 등에서 베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중편소설 ‘고양이와 왕’(1912년 12월 하반호), ‘황제의 옥새’(1914년 11월 상반호)를 입수했다. 둘 다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의 작품으로, 베델을 주인공으로 한 팩션(역사적 사실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다. 1905~1907년 조선을 배경으로 일본과 러시아, 조선왕실 간 암투를 다룬 첩보물이다. 이번 발굴은 영국 출신 역사 연구가 에이드리언 코웰(62·싱가포르 거주)이 ‘고양이와 왕’을 제보해 이뤄졌다. 서울신문은 코웰의 주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황제의 옥새’를 추가로 찾았다. 두 소설은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미국인 빌리가 과거 조선에서 베델과 벌인 모험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각 소설에 ‘빌리와 베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 ‘셜록 홈스’ 시리즈처럼 연작으로 기획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고양이와 왕’ 제보자인 코웰은 “작가 리치는 조선에 장기간 머물며 베델을 직접 취재해 이 소설을 구상했다”면서 “당시 베델은 제국주의 국제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단아로 동북아 지역의 유명인이었다. 작가는 그의 독특한 행보에 흥미를 느껴 소설의 주인공에 낙점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친일 행보로 비난받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모두 등장한다. 이 시기 조선을 배경으로 한 거의 유일한 해외 문학 작품이어서 동북아 정세와 대한제국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허버트·민영환 등 역사적 인물 모두 등장 1편 ‘고양이와 왕’은 러일전쟁이 마무리된 1905년 서울 정동 애스터하우스 호텔(현 서대문역 농협중앙회 터)에서 시작된다. 호텔 주인인 프랑스인 루이와 조정 세관에서 일하는 미국인 빌리, 대한매일신보사를 운영하는 영국인 베델이 모인 바에 상하이 소재 러시아 정보기관(상하이 서비스)에서 온 미모의 젊은 여성이 나타난다. 그는 베델에게 “고종을 러시아로 피신시켜 일본의 을사늑약 체결을 막자”고 설득한다. 이 여성의 제안을 수락한 베델은 평소 친분이 있던 조선 대신 민영환을 찾아가 구체적 실행 계획을 논의한다. 2편 ‘황제의 옥새’는 베델이 일본의 강압에 옥살이를 하고 돌아온 1907년이 배경이다. ‘용치선’이라는 이름의 개화기 지식인이 베델이 있던 애스터하우스 호텔로 찾아와 “왕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를 보내 일본 침략의 부당성을 호소하려 하니 도와달라”고 청한다. 베델이 “고종의 옥새를 일본군이 감시 중인데, 전령을 외국에 어떻게 보내느냐”고 반문하자, 그는 “조선 왕가에는 유사시를 대비한 비밀 옥새가 있으니 일본군 몰래 그걸 쓰면 된다”고 설명한다. 베델은 용치선의 제안을 받아들여 특사 파견을 위한 비밀 계획을 마련한다. 이 소설이 주목받는 것은 당시 구한말의 역사적 사실들이 정확히 기록돼 있어서다. 한국 근대사를 연구하는 최덕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고양이와 왕’을 읽어본 뒤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는 최근에서야 관련 자료들이 공개돼 논문이 나오기 시작할 정도로 극비 사안이었다”면서 “신기하게도 작가가 러시아 비밀정보기관 ‘상하이 서비스’도 알고 있던 것 같다. 100여년 전 일반인이 접하기 힘들었을 내용이 소설에 나온다니 놀라울 따름”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고종과 대신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 담겨 또 소설에는 당시 우리 정부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고종은 의사결정 때마다 무당이나 지관에게 의지했고, 아들 순종은 여색에 빠져 바둑으로 세월을 보냈다. 조정 대신들은 일본에 매수돼 이들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빌리는 “조선의 진정한 충신은 민영환 한 명뿐이었다”고 말한다. 주인공 베델은 ‘일본 고베에서 왔고 황소 머리를 한 작은 체구의 영국인’으로, 성격이 강직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며 순교자의 열정을 가진 인물로 소개된다. 베델 연구 일인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소설 출간 연도가 1912년과 1914년이라면 작가가 호머 허버트의 ‘대한제국멸망사’(1906)와 프리데릭 아서 매킨지의 ‘대한제국의 비극’(1908) 등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서울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싱가포르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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