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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과학기술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황금주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열린세상] 과학기술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황금주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솔직히 영국의 A연구소 과학기술자들이 우리보다 뛰어나지 않아요. 문제는 연구 기간과 펀딩이죠. 경영진은 A연구소에서 이전받은 원천기술을 평가하고 제품 적용 기술에만 집중하라고 해요. 우리는 그냥 기술 평가자인 거죠.” 대기업 연구개발(R&D) 팀장이 해외 기업 연구소와 국제협력을 진행하면서 과학기술자로서 느낀 열등감을 토로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경영진이 잘못한 것일까? 경영진의 판단은 경제적 측면에서 매우 적절하다. 국제기술협력으로 원천기술을 이전받는 게 더 경제적이다. 일본 소재·부품→한국 중간재→중국 완제품과 같이 세계 경제가 글로벌 공급망으로 연결돼 서로 의존하고 있는 현실은 경제 논리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과학기술 경쟁력의 논리가 존재한다. 2008년 해외 학술지인 사이언스 테크놀로지 앤드 휴먼 밸류(Science Technology & Human Value)에 게재된 필자의 논문은 글로벌 과학기술 분업의 문제점과 국제협력을 분석했다. 글로벌 차원의 과학기술 노동분업은 가속화해 왔다. 이 분업은 과학기술이 발전한 중심과 뒤처진 주변의 이중구조를 근간으로 하지만, 좀더 세분된 다층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기술적 파급효과가 큰 혁신적 기초·원천 연구는 중심국이 담당한다. 핵심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을 창출하는 중심과 이것을 소비해 부수적 지식을 만들고 상용화하는 주변으로 노동분업이 심화했다. 한국은 몇몇 분야에서 혁신적 기술 리더로서 진보된 기술을 창출·적용해 산업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반도체조차도 혁신적인 기초·원천 연구를 중심국에 의존했다. 한국은 다층적 과학기술 노동분업에서 중간적 위치다. 개발·응용기술 리더인 한국은 중심 과학기술이 상용화 가능성을 전제로 특허나 라이선스를 획득하기 위해 기초연구 초점을 어디에 맞출지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런 관계는 상호보완적으로 보이지만, 한국의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은 불균형하게 발전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기초·원천 연구에 대한 해외 의존을 피할 수 없다. 과학기술 노동분업은 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페어플레이가 전제되지 않으면 일본처럼 중심국은 언제든지 핵심 과학기술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 아베 정부가 경제보복을 목적으로 반칙을 저지르기 전까지, 또 미국과 중국의 기술전쟁이 불붙기 전까지 우리는 과학기술 발전과 활용이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2018년 과학기술 혁신역량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7위였다. 이는 개발·응용기술이 정부 R&D 투자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 덕분이다. 지식창출 분야는 20위권을 맴돈다. 우리나라의 기술무역수지는 계속 적자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엔진인 인공지능(AI) 경쟁력에서도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밀리고 있다. 카이스트 리서치플래닝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AI 특허 가운데 미국은 47%, 중국은 19%, 일본은 15%, 한국은 약 3%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은 장기적인 과학기술 정책과 AI 기초·원천 연구에 대한 중장기 계획 및 투자 확대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AI 경쟁력이 뒤처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석박사급 우수 인력의 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2018년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 석사·박사·석박사 통합 과정의 미달 사태는 이공계 기피 현상의 심각성을 반증한다. 혁신적인 과학기술과 지식의 생산자 역할을 못 하면서 과학기술자들이 느끼는 열등감도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자가 직면한 현실은 혹독한 노동환경에서 적은 비용으로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기 위한 도구의 역할이다. 이른바 극한 직업이다. 취업난과 고용 불안정도 심각하다. 아무리 이공계 기피 현상이 세계적 흐름이라지만, 심하게 말해 과학기술을 빼면 팔 것이 없다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이공계 기피 현상은 미래의 존폐가 달린 문제다. 우리는 글로벌 분업의 민낯을 마주했다. 이 때문에 분업의 고리를 끊을 미래지향적 청사진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의 새 지도를 그리는 기회에 과학기술자가 살 만한 나라를 만들 계획을 포함해야 한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는 기초·원천 연구의 몇 분야에서 국제적 수준의 연구소가 세워져 세계적 인재들까지 자석처럼 끌어당기게 되길 바란다.
  • [열린세상] 불황이 온다면 어떻게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까/홍춘욱 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

    [열린세상] 불황이 온다면 어떻게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까/홍춘욱 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

    최근 미 뉴욕연방준비은행(뉴욕연은)은 흥미로운 보고서 한 편을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서 뉴욕연은은 장단기 금리차를 이용해 ‘1년 뒤의 불황확률’을 예측했는데, 여기서 장단기 금리차란 장기금리에서 단기금리를 뺀 것을 의미한다. 과거 미국 경제가 장단기 금리가 역전될 때, 다시 말해 장기금리보다 단기금리가 더 높아질 때 불황을 경험했던 것에 착안해 ‘1년 뒤의 불황확률’을 추정한 것이다. 뉴욕연은의 계산에 따르면 1년 뒤에 불황이 출현할 확률이 31.5%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불황확률이 아직 30% 초반 수준에 불과하기에 2020년에 불황이 꼭 시작된다는 보장은 없다. 더 나아가 미 연준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 등 적극적인 통화공급 확대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불황의 위험을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2009년 6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경기 확장이 10년 넘게 지속된 만큼 꼭 2020년이 아니더라도 불황의 가능성이 점차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제 한발 더 나아가 불황의 가능성이 높아질 때 정책 당국과 가계가 어떤 대응을 보여야 하는지에 대해 미리 예행연습을 해 보자. 전쟁에 대비해 주요국의 참모본부가 이른바 ‘워 게임’ 하듯 불황이 닥칠 때를 대비해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대비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정책 당국으로서는 수출의 흐름에 주목해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선진국 경기의 악화로부터 경기 둔화가 시작될 때에는 항상 수출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이게 다시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수출 부진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때에는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물론 통화정책에 비해 재정정책의 시행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통화정책 시행이 우선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가계는 불황의 위험성이 높아질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각에서는 일체의 빚을 다 줄이고 현금 혹은 금과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한국이 다시 1997년같이 ‘통화정책 주권’을 잃어버리며, 고금리의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이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금리를 25%까지 인상하는 등 강력한 긴축정책을 시행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고금리 정책이 시행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왜냐하면 1997년 당시 한국은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는 가운데 외환시장에 대한 통제를 상실하며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2019년 7월 말 현재 4000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를 보유한 데다 2018년 말 기준으로 외환보유고를 제외한 한국의 대외금융자산 잔액은 1조 1168억 달러에 이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2019년 상반기에만 217억 7000만 달러의 경상수지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연간 기준으로도 1997년 이후 22년째 경상흑자 행진을 벌이고 있어 한국이 1997년 같은 파국을 맞이할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환경 변화 덕분에 지난 10년간 한국 정책 당국은 경기 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적극적으로 저금리 정책을 펼쳤다. 예를 들어 2008년 10월 한국은행은 기존 5.25%였던 정책금리를 단번에 4.25%로 인하했으며, 2009년 2월에는 2.0%까지 금리를 내린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012년 7월 유럽 재정위기 때에는 기존 3.25%였던 정책금리를 3.0%로 인하했고, 2016년 6월에는 1.25%까지 금리 인하를 지속한 바 있다. 따라서 불황이 출현한다면 정책금리 등 주요 지표 금리는 지금보다 더 떨어져 채권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금리 인하가 원화의 약세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적극적인 금리 인하가 있었던 2008년과 2012년 모두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상승한 바 있다. 따라서 만에 하나 불황의 위험이 높아진다고 판단할 때에는 한국 채권 그리고 달러 등 선진국 통화 자산에 대한 비중을 높이는 자산배분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열린세상] NO라고 말하지 않는 도시/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열린세상] NO라고 말하지 않는 도시/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런던은 관광도시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금융 및 상업도시다. 혼란하고 도무지 예측 가능하지 않아 불안하기 짝이 없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와중에서도 영국인들은 유럽의 다른 도시가 런던을 쉽사리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여전히 자신하는 듯한데, 이는 런던이 가진 장점 때문이다. 도시 규모나 인프라 면에서 런던에 비길 도시는 많지 않고, 영어가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통용되는 언어라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이런 뚜렷한 것 말고도 다른 도시에 비해 런던이 가진 큰 장점은 개방성이다. 즉 런던은 이방인을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드러내 놓고 배척하지 않는다. 사실 영국에서 이방인으로 생활하는 경우 비자나 취업 자격 등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요건들을 충족한다면 외국인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받는 차별은 없다. 세금도 영국인들과 똑같이 내고, 회사 설립 역시 영국인들과 같은 조건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주거용 및 사업용 부동산 거래를 하는 데서도 외국인이기 때문에 받는 법적인 제약은 없다. 이런 점은 영국에 투자를 하거나 영국에서 사업을 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에게 중요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법적’이라고 계속 단서를 다는 것은 드러나 있진 않지만 결과적으로 외국인이기 때문에 받는 실질적인 차별이나 제약까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국인과 외국인을 정말 아무런 차별 없이 똑같이 동등하게 대하는 사회라는 것이 과연 있는가 말이다. 아예 외국인에게는 별도의 신고나 허가 등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자국인을 대표자로 세우게 하는 등의 차별적 대우를 법제화해 두는 경우가 많으니, 법적 차별이 없다는 것은 높이 살 수 있는 장점이겠다. 게다가 대개의 양식 있는 영국인은 차별적 발언을 금기시하고 이곳은 ‘우리나라’고 당신은 이방인이라는 식의 티도 내지 않는다. 이런 영국인들에게 약간 놀라고 마음이 서늘해졌던 순간이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의 일이다. 동네 여러 집에서 ‘잉글랜드 깃발’을 게양하기 시작했다. 차들도 온통 잉글랜드 깃발을 꽂거나 붙이고 다녔다. 잉글랜드 깃발이란 영국, 즉 유나이티드 킹덤(The United Kingdom)의 국기인 ‘유니언잭’이 아니라 영국을 구성하는 네 나라(country), 즉 잉글랜드ㆍ스코틀랜드ㆍ웨일스ㆍ북아일랜드 중 잉글랜드의 깃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잉글랜드 사람들이 런던올림픽을 맞이해 모처럼 소위 ‘국뽕’에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거야 사실 한국인 입장에서 매우 익숙한 광경이기는 하다. ‘국뽕’에서는 한국인들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런데도 막상 이방인으로서 이런 열렬한 애국주의적 태도를 보는 것은 그리 마음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서로 어울려 사는 것에 큰 불만 없이 보이던 영국(잉글랜드) 사람들이 ‘우리가 주인이다’라고 매우 강력히 주장하는 것같이 느껴졌고, ‘아니 누가 뭐라 하나, 하지만 굳이 저럴 것까지는 뭐가 있담’ 이런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잉글랜드 사람’만 잉글랜드 국기를 거는 분위기였다. 자기 나라 국기를 거는 집도 몇 보였으나 많지는 않았고, 나란히 있는 집들 중 잉글랜드 깃발을 건 집과 아닌 집이 뚜렷이 구별됐다. 난데없이 출신국을 인증하게 돼 버린 셈이다. 만약 잉글랜드 팀이 지기라도 하면 누군가 불행한 타깃이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생겼다.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권리임에도 그 방식 및 정도에 따라 때로 이방인들에게는 배제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그 방식이 다른 나라를 향해 싫다(NO)고 하는 것이라면, 심지어 공적인 기관들이 나서서 외친다면 그 사회를 개방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 재팬’(NO Japan)이라고 써 있다고 해서 꼭 일본인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혐오와 배제는 쉽사리 깊어지고 넓어지기 마련이니, 이런 모습을 보는 이방인이라면 남의 일이라고만 여기긴 어렵다. 그 이방인이 쉽사리 돌아갈 수 없는 입장이라면 더하다. 관광객으로만 외국에 머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울 중구청이 내걸었던 ‘NO Japan’ 배너를 시민들이 나서서 떼도록 만든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 [열린세상] 임시정부 수립 100년, 한중 연대의 의미를 짚어 본다/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열린세상] 임시정부 수립 100년, 한중 연대의 의미를 짚어 본다/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지난 8월 2일 일본이 결국 수출 허가 절차 우대국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이후 일본 제품을 사지 않고 일본에 가지 않는 운동이 전 국민적 호응을 얻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에서 불매운동이 성공한 적이 없다며 비웃던 일본인들도 심각성을 의식하기 시작한 듯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행동이 옹졸하고 부당한 것임을 지적하는 운동이 시민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되고 전개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일본 정부 당국이 그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새삼 지적할 것도 없이 돌이켜 보면 올해는 3·1운동 100년의 해다. 바로 그해에 과거를 거듭 반성하고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나가기 위해 한일 우호에 진정성을 보여야 할 일본이 일방적인 조치로 한국 경제를 위협한 데 대해 우리 국민의 배신감과 분노는 더욱 거세게 조직됐다. 한국에서 일본 불매운동이 3·1운동을 재현하듯 번지는 동안 우리 청년들이 국민대표단 이름으로 중국의 임시정부 소재지를 순회 방문하고 돌아오는 행사가 있었다. 지난 7월 8일부터 17일까지 100인의 청년 대표단이 100년 전의 역사를 재현해 중국 내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재지였던 충칭, 광저우, 창사, 항저우, 상하이 등 5개 지역을 순회 방문하고 돌아온 것이다. 4000킬로미터의 대장정이었다. 이들의 행로를 뒤쫓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숨결이 중국 중남부의 도시들에 점점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에서 새삼 깊은 의미를 읽는다. 그곳은 단순한 중국의 도시들이 아니었다. 이 지역들은 현재도 그러하거니와 당대 동아시아권 최대급 국제도시들이었다. 중국을 무대로 펼쳐진 우리 독립운동이 국제사회로 열린 곳을 지향하며 늘 국제적 연대를 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의 집요한 추적에 쫓기면서도 결코 오지에 숨어들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 행사가 일깨워 준 사실이 또 하나 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100년은 조선의 100년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100년이라는 사실이다. 조선의 3·1운동에 중국의 인민이 각성해 일어난 것이 5·4운동이었다. 이후 중국을 무대로 한중 연대의 민족운동이 펼쳐졌다. 세계로 열린 곳에서 펼쳐진 한중 연대는 그 자체로 국제연대였다. 카이로선언이 그 결실이었다. 제국 일본에 패배를 안겨 준 승리의 씨앗이 여기에 뿌려졌던 것이다. 일본이 패전 이후 일본 외교의 실패를 자인하며 작성한 보고서가 있다. 대일 평화조약 체결을 앞두고 당대 총리 요시다 시게루의 지시로 작성된 조서 ‘일본 외교의 과오’라는 50쪽짜리 보고서다. 조서는 일본 외교의 실패를 만주사변에서 찾고 있다. 특히 중국 민족주의에 대한 과소평가가 군부 주도의 만주사변을 용인했던 원인으로 지적됐다. 결론은 이렇다. 일본 패전은 중국 대륙의 민족주의 고양과 그 역사적 의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결과였으며, 일본의 대중 정책이 중국의 반일, 항일, 모일(侮日)만을 문제 삼는 방향으로 치달았던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아베의 일본이 과연 요시다의 반성을 계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 외교의 과오’도 한참 부족한 내용이다. 그래도 그나마 아시아 민족주의에 대한 몰이해가 일본의 실패를 불러왔다는 분석은 전후 일본 외교의 기본 노선에 자리잡고 있었다. 유엔 중심주의와 미일동맹 기축주의, 그리고 아시아와의 관계 중시가 전후 일본 외교의 3원칙으로 자리잡은 것은 아베의 외조부 기시가 총리로 재임하던 시기였다. 기시마저도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시아 민족주의의 에너지를 아베는 적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아베 시대에 이르러 아시아 민족주의에 대한 평가와 그에 입각한 공존의 모색이라는 전후 일본 외교의 근간이 퇴색하고 있다. 아베의 무역전쟁 도발은 한국에서 이미 희석되고 있던 아시아 민족주의, 즉 저항적 민족주의를 부활시키고 있다. 일본 불매운동, 일본 여행 자제 운동이 그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명심할 일이 있다. 저항적 민족주의라 해도 승리의 조건은 국제사회에 열린 민족주의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한중 우호 카라반에 참석한 100명의 우리 청년이 100년 전의 역사를 되새김질해 보여 준 핵심 교훈이다.
  • [열린세상] 준비가 답이다/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열린세상] 준비가 답이다/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차라리 잘된 일로 받아들이자. 일본의 경제 도발은 진작 바꿔야 할 부분을 바꾸지 않아서 당하는 것이라고 인정하자. 그리고 사태가 어떻게 진전되든 지금이라도 바꿔야 할 것을 바꾸자. 우리의 잘못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임진왜란 때에도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준비하지 않아서 당했다. 많은 학자와 중견 기업인들이 과도하게 일본에 의존하는 우리의 산업구조에 대해 우려를 보였지만, 당장의 이익과 편리함에 현혹돼 준비를 게을리하다가 지금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베를 탓하는 대신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지금부터라도 갖출 것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 바꿀 것 중의 하나는 ‘하던 대로, 시키는 대로’ 하는 대신 알아서 미리 준비할 수 있게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면서 공부하고 일하게 하는 것이다. 수업을 위해 학생이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예습을 하면서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수업에서 해결하게 할 수 있다. 학생들이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한 상태에서 수업에 들어오면 강의로 수업 시간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그 시간을 토론에 할애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토론을 시키면 잘 못한다고 불평하는 분들은 예습을 하게 한 다음 토론할 기회를 주는 시도를 꼭 한번 해 보시라. 학생들은 토론 시간을 더 달라고 아우성칠 것이다. 강의보다 토론이 효과적인데, 예습으로 배경 지식을 갖출 때 더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진다. 주는 것만 받아 먹는 교육에서는 학생이 교사의 수준을 넘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학생이 더 잘할 것을 믿고 맡기는 교육에서는 그런 제약이 사라진다. 학생이 교사보다 더 좋은 생각을 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조직에서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인 회의도 준비를 통해 바꾸어야 한다. 100개 기업에서 근무하는 4만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담은 대한상공회의소·매킨지의 보고서(2016)는 우리나라 기업에서의 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일단 다 불러’서 ‘리더만 일방적으로 발언’하다가 ‘결론 없이 끝’난다. 이런 회의로는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회의를 최소화하고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 회의 전에 안건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각자의 생각을 글로 제시하게 하면 회의를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모든 회의를 다 이렇게 할 필요는 없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여러 사람이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을 때만 그렇게 하면 된다. 중요한 아이디어나 관점을 제시한 구성원에게는 약간의 보상을 제시하면 될 것이다. 각자에게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좋은 생각을 해냈을 때는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일할 의욕을 높일 수 있다. 혹자는 시키는 것도 못하는데 어떻게 생각하게 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필자의 답변은 못하는 게 아니라 시키기만 하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율적인 준비를 강조하는 것은 자율성이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방향만 정해 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게 맡길 때 일반적으로 성과는 물론 일하는 과정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또한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우연적 발견이라는 엄청난 행운이 덤으로 따라올 수도 있다. 과학계에서 이룬 성취 가운데에는 우연한 발견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심리학자 올즈는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미세 전극을 너무 깊숙이 삽입하는 실수 덕분에 쥐의 뇌에서 쾌락을 담당하는 부위를 발견했다. 아무나 이런 발견을 하는 게 아니다. 파스퇴르의 말처럼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 걸쳐 책임이 따르는 자율성이 확대돼야 한다. 행복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우연한 돌파구를 찾는 행운도 많아진다. 우리에게는 이런 행운이 절실하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이러한 악순환을 벗어나는 길은 우리에게 준 모욕을 감사로 갚는 것이다. 이번 일을 벌인 아베에게, 우리에게 정말 좋은 일을 했다고 감사할 날이 빨리 오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준비를 하자. 그렇지만 일본이 우리에게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과거에 했던 일을 결코 잊지 말자.
  • [열린세상] 재판장님, 장애인이 어려운 말 써서 죄송합니다/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열린세상] 재판장님, 장애인이 어려운 말 써서 죄송합니다/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그는 이미 초로에 접어든 아저씨였다. 고된 일로 두툼해진 손바닥을 잡으며 놀라는 내게 괜찮다고 헤벌쭉 웃어 보이는 얼굴에 어떤 말을 이어 갈지 잠깐 고민했다. 그는 십수 년간 비장애인 부부에게 무임금으로 노동력 착취를 당하다가 얼마 전 한 장애인 단체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탈출한 지적장애인이다. 모르는 사람의 지시를 받으며 땀이 비 오듯 하는 일을 이어 온 건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없다. 서류를 통해 장애인 등록 경위를 확인해 보니 그는 태어날 때부터 지적장애가 있었다고 한다. 아주 어릴 때 영문도 모르고 부모에게서 떨어져 지내야 했고, 남들이 중학교에 다닐 나이에 이집 저집에서 몇 년씩 시키는 일을 해야 했다. 언제 끝이 나려는지 알 수 있었다면 조금 견디기가 쉬웠을까. 이번 주인은 정말 고약했다. 십수 년을 부리고 밥 한끼를 내주지 않았다. 반찬은 수급비를 쪼개서 사 먹어야 했고, 몸통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밥솥 하나로 끼니를 연명했다. 시키는 대로 빨리 못 한다며 주변에 있는 물건을 자주 던지곤 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매일 쉬지 않고 일을 하니 언제부턴가 허리도 몹시 아프고 한쪽 다리에는 저리는 통증도 생겼다. 가해자 부부를 고소하기로 했다. 고소가 무엇인지 이리저리 설명을 해 보는데 별 반응이 없다. 다만 “꼭 벌받게 해 주이소!”라고 목소리를 높이신다. “네! 물론입니다.” 앞으로의 긴 싸움에 앞서 조만간 닥칠 일들도 알려 드린다. “경찰서나 면사무소 같은 곳에 여러 번 가셔서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하셔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정에 나가서 판사님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날부터 새벽에도 밤에도 전화한다. 다른 건 몰라도 가해자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안 하면 안 되겠냐는 요청과 하소연이다. 쉼터로 옮기신 지 몇 달이 되었는데도 가해자를 생각만 하면 소화가 안 되고 기분이 나쁘다고 하신다. 지난번 경찰서에서 말씀하실 때처럼 제가 옆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려도 계속 좌불안석이다. 빨리 기소되고 재판이 열리길 바랄 뿐이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랴. 고소 후 8개월이 지났다. 법원에서 온 ‘증인소환장’ 앞에서 한숨을 푹 쉬시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긴장된다. “꼭 필요한 일이니까, 혼자가 아니니까 함께 해보자”고 말은 던져 놓았지만, 피고인석에 앉은 그 인간을 마주하기는 아주 싫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억 속 그 피고인에 대한 마지막 장면이 신발을 들고 때리려고 쫓아오던 모습이니 오죽할까. 대망의 증언날. 미리 증인 지원 신청을 마쳐 놓은 법정이라 증인지원관의 도움을 받으며 피고인과 마주치지 않게 무사히 입정했다. 검사와 피고인 변호사가 차례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고, 그 어려운 질문들에 낼 수 있는 모든 용기를 내서 대답하는 그의 한 문장 한 문장이 고마웠다. 그런데 마지막에 재판장님이 몇 가지 더 질문을 하신다. “피고인은 그렇다 치고 피고인의 아내는 어땠나요?” 질문을 여러 차례 듣고 이해한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에휴. 그 밥에 그 나물이쥬.” 재판장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혼잣말처럼 “지적장애가 있는데 어려운 말도 잘하네요?” 한다. 판사님은 속담과 같은 은유적 표현을 쓰는 이 지적장애인이 낯설다. 이러한 생경함은 ‘지적장애인이 아닐 거야’라는 판단까지 나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재판장님, 지적장애인은 아기처럼 말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살아온 인생 그 자체를 바라봐 주세요’라는 당연한 사실을 변호인 의견서에 또 어떻게 풀어 써야 하나 벌써 걱정이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는 장애인을 유형화·대상화·특정화한다. 그 틀에서 벗어나면 놀라며 걱정한다. 자신이 설정한 딱 그 수준으로 장애인이라는 대상을 평가하기도 한다. 무대에서 열심히 율동과 노래를 하는 한 지적장애인에게 칭찬한답시고 “정상인보다 잘한다”는 추임새를 넣던 비장애인 사회자. 그 멘트에 덜컥 놀라 무대를 응원하며 그 율동을 괜히 더 열심히 따라했던 어떤 날의 기억이 스친다. 지적장애인이 어려운 말 좀 쓰면 어떤가?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평범함이 존엄하게 인정되는 사회. 그런 사회야말로 불확실성에 두려운 일상과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품어 내는 힘이 있는 사회가 아닐까.
  • [열린세상] 치킨게임 이기는 방법/남시훈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열린세상] 치킨게임 이기는 방법/남시훈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선언으로 시작된 한일 무역분쟁은 치킨게임의 성격을 갖고 있다. 수출 규제의 특성상 한일 모두 피해를 입으며, 이것이 지속되면 양국 모두 피해가 누적된다. 한 국가가 포기하면 다른 국가의 승리로 끝난다. 이렇게 승패가 결정되면 서로의 공격은 중단되겠지만, 패배한 국가는 국가의 위신에 상처를 입고 향후에 비슷한 공격을 또 당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이 한국보다 좀더 강하기 때문에 치킨게임에서 유리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이 한국보다 인구가 많고, 국민총생산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치킨게임의 승패는 국력의 격차만으로 갈리지 않는다. 상대편 기업이 망할 때까지 계속된 ‘반도체 치킨게임’과는 다르다. 국가와 국가가 상대하는 치킨게임은 정치세력의 안정성 문제가 걸려 있으므로 어느 한쪽의 피해가 정권에 타격이 갈 만큼 누적되면 치킨게임이 더 지속되기 어렵다. 또한 치킨게임은 양국의 충돌이 심해지면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모두 피해를 심하게 입는다. 따라서 전면전으로 가면 우리가 이긴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전면전에서 우리가 입는 피해가 너무 크다면 일단 전투를 피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즉 국가 단위의 치킨게임은 강한 국가 입장에서 이 싸움을 걸었을 때 내가 입는 피해가 별로 없다고 판단될 때 시작된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많이 입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어떤 정치경제적 이득을 얻고 싶어서 싸움을 거는 것인데 내가 피해가 많아지면 싸움에서 이기는 보람이 없게 된다. 즉 일본이 한국에 대해 수출 규제를 시작한 것은 한국이 일본에 항복하거나 한국이 일본에 피해를 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이다. 치킨게임을 이기는 필승 전략은 없지만, 유리하게 이끄는 몇 가지 원칙은 있다. 첫 번째는 신뢰성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치킨게임 초반에는 강력한 조치와 상대방에 대한 강한 비난 발언이 이어진다. 이 행동은 우리가 옳다는 대내외적 여론전을 펼치는 의미 외에도, 우리 쪽이 발언을 취소하기 어렵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가 갑자기 다시 취소한다면 국가의 신뢰성이 하락하며 국내 지지율도 잃게 된다. 그러므로 강력한 발언을 할수록 그 말을 취소하기는 어려워지며, 공격을 한 국가는 상대방이 쉽게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고 공격했는데 강력한 발언이 돌아오면 상대방이 강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우리 쪽 피해가 많아질 것을 우려해 포기하는 것을 고려하게 된다. 두 번째로 상대국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 충돌이 심해질 때 양국 기업이 입을 피해 수준과 일본 업계의 반응을 확인하면서 전략 수립에 반영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일본이 한국 측의 강한 대응에 놀라며 당황하는 모습이 보인다. 일본은 과거 박근혜 정부에 내정간섭 수준의 압박을 했고 이것이 통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통할 것으로 생각하고 단순하게 문제를 생각한 것일 수 있다. 한국에 대한 정보 수집에 실패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한국의 단합이다. 한국 정부는 우리의 피해보다 일본이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계속 강조해야 하며, 불매운동은 이것을 국민 차원에서 실현하는 좋은 방법이다. 치킨게임을 두고 미친 척을 해야 이긴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굳이 그런 수준까지 나갈 필요도 없다. 일본의 공격으로 인한 한국의 피해나 한국의 약점을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한일 간의 대결에서 한국을 더 불리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므로 적절한 수준에서 자제돼야 한다. 국민 스스로 단합해 각자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일본에 피해를 주고, 사령부 역할을 할 정부를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안으로는 약점에 대비하되 겉으로는 강경하고 단호해야 한다. 또 일본의 도발에 대한 방어 대책 외에 반격할 계획도 준비하고 그중 일부는 명시적으로 공개해 위협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 차원에서는 언젠가는 한일 간의 협력이 복원돼야 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이 게임은 한쪽의 완승보다는 한쪽의 판정승 정도로 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불매운동은 좋지만, 인종차별을 하거나 민간의 학술·문화 교류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 [열린세상] ‘국민의 재벌’ 가능할까/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민의 재벌’ 가능할까/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국민의 재벌.’ 현 상황에서는 거의 형용모순이다. 국민경제에 책임감을 가지고 기여하는 재벌은 초안밖에 없었다. 현실은 ‘재벌국민’에 훨씬 가깝다. 재벌이 잘돼야 한국 경제가 잘된다는 이데올로기적 압박에 국민의 인내와 희생이 감내돼 왔다. 반세기 넘는 한국 경제사는 재벌기업과 재벌가의 보호와 육성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벌’과 ‘갑질’은 해외 언론에서 한글 발음 그대로 표기될 정도로 한국 경제의 특이 사항이 됐다. 한국민 스스로도 당당하게 자부심을 갖고 사랑과 존경을 표현할 만한 재벌기업은 사실 없다. 그동안 다양하게 요구해 온 ‘재벌개혁’도 그 내용을 보면 상당 부분 ‘재벌국민’을 ‘국민재벌’로 대체하자는 주장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촛불정부’를 자임하면서 ‘재벌개혁’을 공약한 현 정부마저 시작도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전혀 뜻밖에 재벌개혁의 ‘비자발적, 잠재적 원군’이 외부에서 나타나 재벌체제를 흔들기 시작했다. 재벌기업에는 아베 정부의 요구대로 한국 정부가 굴복하고 한 달 전으로 되돌아가는 길이 가장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연기일 뿐이다.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때 대일 경제 관계가 치명적 약점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때까지 수출주도성장 30여년 동안 외환보유고가 바닥날 정도로 외환을 유출시킨 것은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였다. 부품소재의 과도한 대일 의존 때문에 수출이 늘어날수록 대일 무역적자도 커졌다. 그래서 수입선 다변화도 시도해 봤지만 허사였다. 그리고 1997년 한국 자본시장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가 결국 국가부도 위기의 불을 댕긴 것도 일본 자본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경상수지가 흑자 기조로 반전되자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는 물론 외화가득률, 국산화율의 문제는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지난 20년 동안 다시 누적되는 적자에도 경고음 한번 울리지 않았다. 이는 한반도 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해 온 일본의 ‘혼네’를 읽지 못한 대한민국의 뼈아픈 실착이었다. 아베의 무역보복이 가져다준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 한국 경제가 회생할 길은 하나뿐이다. 하루빨리 경제적 종속관계를 청산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국민재벌’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재벌의 국민’이 ‘국민의 재벌’로 대전환하는 게 새 ‘경제독립국가’의 시작이자 끝이다. 가장 시급한 부품소재의 국산화뿐만 아니라 개발 제품에 수요처를 제공하는 등 동반성장의 길을 여는 데 재벌기업이 앞장서야 한다. 이 전환이 재벌에는 상당한 비용을 유발하겠지만, 재벌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이 동반성장의 길밖에 없다. 이 길에서는 중소기업에 창업 기회도 열리고 지불 능력도 개선되면서 ‘괜찮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의 혁신과 실적에 따르는 공정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생태계가 조성되면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일부 해소돼 소득불평등의 완화와 내수 확대, 경제성장의 촉진이라는 작은 선순환도 시작될 수 있다. ‘일본수출규제대책민관정협의회’가 출범했다. 반세기 넘게 묵은 숙제를 ‘벼락치기’로 해결하려니 중구난방일 수 있다. 그래도 불화수소 생산 규제 완화나 52시간 탄력근로제 후퇴와 같은 ‘좀비’ 대책은 꺼내지 말자. 정부 정책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모두 국회의원들이 자녀 취업을 청탁할 만한 일자리가 돼야 한다. 일본 제품을 대체할 ‘좋은 물건’은 ‘좋은 일자리’에서 만들어진다. 그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던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부품소재산업의 독립을 중간 목표로 하여 ‘혁신성장’의 보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부품소재산업육성법’ 개정안도 정권과 무관하게 효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 생태계 혁신과 결합된 기술 혁신과 제품 혁신만이 ‘메이드 인 재팬’을 뛰어넘는 ‘메이드 인 코리아’를 만들 수 있다. “2차 벤더에도 신경 쓰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약속과 글로벌 기업들과 함께 ‘사회적가치협의체’를 구성한 최태원 회장의 의지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한국은 경제적으로만 선진국인 일본을 넘어서면 정치적, 문화적, 도덕적인 자부심과 결합하면서 일본과는 급이 다른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이번 위기 이후 대한민국의 비전이다.
  • [열린세상] 한국인들이 만든 선한 문화/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열린세상] 한국인들이 만든 선한 문화/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지난번 기고에 한국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썼더니 뜻밖의 반응이 있었다. 내 글을 전혀 보지 않는 벗들이 잘 읽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벗들의 격려에 공연히 우쭐해진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단행본을 낼 요량으로 자료를 모아 보았다. 이 자료에는 국내는 물론 해외,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불교, 기독교, 민족종교 등 다양한 계통의 예언이 포함됐다. 신기한 것은 이 예언들이 내린 결론이 다 엇비슷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은 미래에 세계를 정신적으로 인도할 중심 국가가 된다고 예언했다. 이것은 지난번 기고에서 소태산이 예언한 것과 같은 것이다. 백범이 한국이 높은 문화의 나라가 되기를 바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이것들을 정리해 보면 한국은 미래에 경제나 군사 대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나 정신적인 면에서 만천하에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한국은 협잡, 거짓, 생떼, 남만 탓하기, 무능 등등이 판을 치는 사회 같은데 높은 정신을 만들어 낸다고 하니 말이다. 특히 정치권을 보면 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외국인들의 시각은 다르다. 한국의 장점을 이야기할 때 많은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한국은 안전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특히 여성이 밤에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것이 신기하단다. 그래서 밤에 무엇이 먹고 싶으면 아무 때나 슬리퍼 신고 동네에 있는 편의점에 갈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또 길에 술 취한 사람들이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들은 소리만 지를 뿐 위해는 가하지 않는단다. 그다음에 지적하는 것은 한국에 도둑이 없다는 사실이다. 카페 같은 데서 핸드백을 놓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아무도 그 백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 정녕 신기하다고 한다. 유럽의 부국에서 온 친구는 지인이 지하철에서 전화기를 보다가 잠들었는데 깨 보니 전화기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들은 한국의 치안 상황이 좋은 것을 당연하게 여겨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한국처럼 치안이 좋은 나라가 외려 드문 것 같다. 앞에서 본 것처럼 한국이 그렇게 온갖 악만 들끓는 사회라면 어떻게 사회는 이렇게 안전한 것일까? 한국인들의 본성이 선해서 그럴까?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인은 선한 문화를 만들었고 그 안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가 이렇게 안전한 것이다. 한국인은 어떻게 선한 사회 문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조선을 이어받은 국가다. 조선은 어떤 나라인가? 성리학으로 똘똘 뭉친 나라다. 성리학을 만든 주자는 공자의 도통 라인을 맹자로 잡은 사람이다. 한국인들은 ‘공맹’이라는 단어가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유학사에서 맹자를 강조한 사람은 주자다. 맹자는 알다시피 ‘사람은 착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한 사람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인간은 당연히 선하겠거니 생각했다. 그 영향으로 생각되는데 과거에 문자도를 보면 ‘효제충신예의염치’ 등 온갖 인간의 선한 도리를 강조하는 것만 적어 놓았다. 그래서 지금도 시골에 가면 마을 어귀에 ‘효제충신’을 돌에 새겨 놓은 곳이 많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이렇게 인간의 착한 심성을 강조하는 나라는 없다. 일본은 문자도가 아예 없고 중국은 그저 장수와 복을 바라는 ‘수’(壽) 자와 ‘복’(福) 자가 대세를 이룬다. 또 조선 사람들은 인간의 기본 도리를 강조하는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같은 노래를 듣고 살았다. 이에 비해 일본인들은 주군의 복수를 하고 할복해 죽는 사무라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충신장’ 같은 이야기를 즐겨 들으며 살았다. 춘향이나 심청이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사람들은 분명히 인간은 선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에 맞는 문화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의 이런 모습을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한 창령사 터 출토 나한불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들의 모습은 한국인 그 자체였다. 수더분하고 착하기 짝이 없는 정겨운 모습이었다. 나는 이 불상들을 보면서 이런 것은 한국인이 아니면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앞으로 이런 선한 문화를 세계에 선사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 [열린세상] 종북과 전봇대/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종북과 전봇대/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전봇대를 뽑아 이쑤시개로 쓴다는 사람을 만났다. 허무맹랑한 뻥이었다. “전봇대 같은 이야기하고 있네” 그렇게 응수할 뻔했다. 전봇대 아래 곱게 잠든 중년의 남자를 자주 보았다. 술이 과해진 새벽녘에 자기 집 대문 전봇대 걸쇠에 상의를 걸쳐 놓곤 했다. 벗어 둔 구두가 단정했다. 그의 옆구리에 발길질을 했더라면 잡혀 갔을 것이다. 말질은 어땠을까. “야 전봇대야” 혹은 “전봇대 같은 인간아”라는 말로 법적인 책임을 져야 했을까? 한국에서 명예는 법의 보호를 두텁게 받는다. 세계적으로 이례적이다. 헌법 조문에 명예를 훼손하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규정까지 두었다. 거짓에 대해서만 법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서구 사회와 달리 진실한 사실을 말해도 처벌의 대상이 된다. 더욱이 친고죄가 아니라 반의사불벌죄다. 피해를 입은 사람의 고소가 없어도 명예훼손 발언을 한 사람을 을러대 처벌할 수 있다. 운수가 사나우면 자칫 7년간 징역을 살 수 있다. 명예훼손과 사촌쯤 되는 모욕의 경우도 엄하게 다스려진다. 모욕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나라가 드물지만 욕을 했다는 이유로 1년까지 감옥에 가둘 수 있는 나라는 더욱 드물다. 엎드려 공격을 준비하는 치명적인 사자의 발톱 앞에서 우리는 태연히 왜바람 같은 욕을 해대며 살고 있다. 날마다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하는 일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언론은 무사할까? 웬만해서는 괜찮다. 법률에 언론을 면책하는 규정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법부가 언론을 보호하는 강력한 장치들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공익을 위한 진실한 언론보도는 명예훼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올림픽을 치렀던 1988년 한국 대법원은 ‘진실 오신의 상당성’이라는 법리를 채택했다. 올림픽 축구 금메달에 견줄 만한 소식이었다. 결과적으로 진실성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취재보도 과정에서 진실한 것이라고 믿을 만했다면 언론인에게 명예훼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기준이었다. 2002년 월드컵 준결승에서 한국은 독일에 졌다. 그해 대법원은 공적인 인물에 대해 언론이 명예훼손 보도를 했더라도 어지간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언론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비판을 해야만 민주주의가 오염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 후 대법원은 공직자나 공적 인물에 대한 언론의 명예훼손 보도가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 현저하게 상당성을 잃은 것’이 아니면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다. 사실 확인을 게을리하거나 의도적으로 그릇된 보도를 일삼은 언론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부분의 성실한 언론인들은 치열한 취재보도의 일상에서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대법원의 태도는 확고하고 일관적이다. 2018년 한국과 독일은 월드컵에서 또 붙었다. 한국이 독일을 낙낙하게 물리쳤다. 이해 10월 대법원은 명예훼손 소송사에 길이 남을 격론을 벌였다. 대법관 여덟 명의 다수의견은 “표현의 자유 보장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극우나 극좌, 종북이나 주사파, 보수우익과 같은 말의 외형적 표현에 갇히지 말자고 제안했다. 누군가를 종북, 수구꼴통이라고 불렀더라도 무조건 법적 책임을 추궁하지 말고 반박과 논쟁을 통해 문제를 풀어 보자는 취지였다. 소수의견은 견해를 달리했다. 종북의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겪어야 할 잔인한 처벌의 현실적 고통을 주목하자고 호소했다. 이후 판결에서 소수는 다수의견을 수용했다. ‘종북’은 거리마다 숱한 전봇대 정도의 용어로 쓰임새가 바뀌는 중이다. 공직자나 정치인은 종북이나 꼴통수구로 공격당할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 혹여 언론이 자신더러 그렇게 부르더라도 ‘전봇대 같은 이야기’라며 그냥 넘어가는 편이 낫다. 명예훼손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이 낮다. 그렇다고 아무런 맥락이나 근거도 없이 누군가를 종북이나 꼴통의 수구라고 부르는 것까지 허용되지는 않는다. 그럴 때 말은 칼보다 더 예리하고 훨씬 잔인한 무기다. 화가 나서 상대방에게 이념의 말대포를 쏘아대고 싶을 때 우선 전봇대를 뽑아 이쑤시개로 써 보자. 수구나 종북이라는 포탄 대신 ‘전봇대 어쩌구 저쩌구’를 날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덜 유해하고 법적으로 더 안전할 것이다.
  • [열린세상] 포함외교와 넘버 3/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열린세상] 포함외교와 넘버 3/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지난 23일 오전 중국 군용기 2대와 러시아기 3대가 통보 없이 한국항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했다. 러시아 조기경보기 1대는 두 차례나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타국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첫 사례다. 우리 군은 즉시 전투기를 출격시켜 경고사격까지 했다. 오랜만에 보여 준 군 본연의 속 시원한 모습이다. 군인에게 국가 이익은 오로지 국토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기에 신속하고 당당한 대응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과 현장 지휘관에게 외교적 우려나 걱정은 사치다. 이로 인해 발생한 외교적 문제는 정치의 영역이고 정부의 몫이다.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 획득과 확대를 위해 대외적으로 군사력을 시현해 왔다. 특히 다른 나라에 함대를 파견해 압력을 가함으로써 상대방으로부터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려는 외교 수단 중 하나인 포함외교의 역사는 오래됐다. 1866년 셔먼호사건,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강화도사건 모두가 포함외교가 빚은 아픈 역사다. 이번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을 지켜보면서 구한말 열강들의 침탈이 재현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중·러 군용기가 동시에 KADIZ에 진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러시아 국방부가 중국 공군과 처음으로 연합 공중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힌 만큼 이미 철저히 준비된 훈련이었다. 독도 영공 침범 역시 경고사격에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반복됐다는 점에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중러가 우리와 개별적으로 군사문제를 야기하고 대립각을 세울 이유는 없기에 중러 연합훈련을 동해상에서 실시한 의도는 두 나라가 노리는 전략적 이익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북한 편을 들어 북미 협상을 앞두고 미국을 압박하거나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으로 보기도 어렵다. 중러가 첫 장거리 연합 초계비행 훈련을 한 것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중러의 군사협력 강화와 공동 대응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대 중러 대립의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 6월 1일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중러를 위협 국가로 규정했다. 힘이 예전 같지 않은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고 러시아의 극동 지역 복귀를 차단하기 위해 일본, 호주, 인도를 중심으로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 위상 강화를 가장 바라는 쪽은 미국이다. 아베의 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이 군대를 가지게 되는 상황을 정당화하고 인정받으려면 한일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이 위안부 합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미국-일본-한국이라는 위계적 질서에서 우리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사드 배치라는 족쇄까지 채워졌다. 한국에도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를 요구하며 미국-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 군사협력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동쪽 한 축을 구성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지난 6월 30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협력 의사를 밝히자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러의 공중훈련은 인도·태평양 전략이 미국의 의도대로 호락호락 추진되지 않을 것이란 경고의 메시지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 축인 미국-일본-한국의 위계적 관계가 가진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 독도 영공 침범이 계획적이었다면 일본이 이 상황에서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우리의 군사적 대응을 비난하는 순간 중국과 러시아가 원하던 인도·태평양 전략의 균열이란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미국이 서둘러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한 것도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독도 문제에 대한 논란을 피하려는 듯 어느 나라 영공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다. 이번 중러 연합훈련이 조직 간 세력 다툼에서 상대 보스나 중간 보스가 아닌 일단 조직원을 향한 것이라면 기분 좋을 리가 없다. 미국이 보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다르다. 영화 넘버3에서 주인공이 “누가 넘버 3래. 나 넘버 2야”라고 했던 대사가 불현듯 생각난다. 중러 군용기 엔진 소음이 “그렇게 영원히 넘버 3로 살 거니?” 하는 것처럼 들리니 이상하다.
  • [열린세상] 과학기술, 경제안보와 국가안보의 양날의 칼/이은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열린세상] 과학기술, 경제안보와 국가안보의 양날의 칼/이은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최근 일제 때의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의 후폭풍으로 한일 관계가 전보다 악화돼 일본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의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고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와 국민들은 일본이 이러한 조치들을 당장 취소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 산업체들도 이에 대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무역적자의 핵심 요인인 소재?부품 대일 역조의 해소는 벌써 이삼십년 전부터 우리 정부가 주요 정책으로 추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가 풀어 나가야 할 숙제다. 그만큼 핵심 소재와 부품 관련 기술은 단기간 내에 개발하기가 힘든 난제들이다. 이번 일본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사태를 계기로 국가 주요 전략 소재와 물품에 대한 공급 및 확보에 대한 국가 전략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1980년대 말 한국은 핵심 소재?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다시 수출했다. 이를 두고 한국 경제를 ‘가마우지 경제’라고 비판하곤 했다. 가마우지 경제란 말은 중국이나 일본 일부 지방에서 낚시꾼이 가마우지의 목 아래를 끈으로 묶어 두었다가 새가 먹이를 잡으면 끈을 당겨 먹이를 삼키지 못하도록 하여 목에 걸린 고기를 가로채는 낚시법에 빗댄 용어다. 즉 한국의 수출 구조가 취약하다는 의미로, 한국이 핵심 부품 등을 일본에서 수입해 다른 국가에 수출하지만, 정작 이득은 일본에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가마우지 경제로 일부 이득이 일본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오히려 가마우지는 더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 조치로 이제 가마우지는 목 아래 묶어 둔 낚시꾼의 끈을 과감히 잘라 버리고 잡은 물고기를 온전히 차지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개발한 소재를 사용하지 않아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지적하니 모 그룹회장이 ‘아니다, 품질이 낮아 쓸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라고 반박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현장에서 뛰는 어느 기업인은 필자에게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생산 현장에서는 기획연구개발 파트, 생산파트, 구매?마케팅 파트가 서로 경쟁하며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판매해 왔다. 모두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불량률을 최소화하는 경쟁에 몰입해 왔기 때문에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는 모험을 감행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시국이라 정부도 최고 경영자도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불량 발생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과감한 모험을 허용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연구개발 파트가 다른 파트와 협조해 과감한 모험을 감행할 수 있다. 이렇게만 되면 이 위기가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경제안보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국가안보라고 하면 경제안보와 더불어 국방안보를 떠올릴 것이다. 국방력의 핵심은 무기 체계이며 무기의 위력을 좌우하는 것은 기술력이다. 무기에 들어가는 소재와 부품도 당연히 안보의 핵심 요소다. 국제적으로도 핵무기나 첨단무기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와 부품은 전략 물자로 분류해 유통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극초음속 비행체와 미사일을 개발해 시험 중이며 중국과 러시아도 이를 개발 중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러한 최첨단 무기를 보유한 국가와 보유하지 못한 국가는 향후 전쟁에서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첨단무기 개발 기술력이 곧 국방력인 시대가 됐다. 이렇게 보면 경제력, 국방력 등 국가안보의 핵심에는 과학기술이 자리잡고 있다. 과학기술은 국민이 배불리 먹고 편안히 살 수 있는 국가를 만드는 필수조건이다. 경제적 풍요로움과 전쟁 등 위험 요소로부터 안전하고 평안함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과학기술자들이 통제받지 않고 과감한 모험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경제안보와 국방안보를 동시에 지킬 수 있는 과학기술이라는 양날의 칼을 우리의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 [열린세상] 꿈은 이루어진다, 한선태처럼/양중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열린세상] 꿈은 이루어진다, 한선태처럼/양중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2019년 6월 25일은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많은 남자들의 꿈이 이루어진 날이었기 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밤 8시 47분. 장소는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배경은 LG트윈스와 SK와이번스 간에 벌어진 프로야구 경기. 3대7로 뒤진 LG에서 어떤 선수를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순간 관중석에서 커다란 함성이 일었다. 프로야구 1군 경기에 처음 데뷔하는 한선태라는 선수가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바로 그 한선태 선수가 대한민국 남자들의 꿈을 대신 이루어 주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자치고 한 번쯤 운동선수를 꿈꾸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처럼 운동신경이 둔한 이도 어렸을 때는 축구 선수나 야구 선수가 되는 꿈을 가졌으니 말이다. 중학교 3학년인 아들도 운동에는 영 소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들의 꿈도 축구에서 야구 선수를 왔다 갔다 한다. 아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동료나 선후배의 아들들도 운동선수를 꿈꾸는 경우가 제법 많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현실에 뿌리박지 않은 허황된 이야기쯤으로 치부된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운동만 하는 것이 우리의 선수 양성 구조이다 보니 전문적인 훈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체육 특기생으로 학교를 들어왔다가 중도에 그만둔 선수들과 같이 가끔 게임을 하곤 했다. 운동을 그만둔 선수인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와~’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일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최대한 불쌍한 눈빛으로 그 친구의 인간적인 배려를 기다리거나. 그만큼 ‘선(수)출(신)’이라는 말은 위력적이다. 그런데 그 ‘선출’이라는 장벽을 한선태 선수가 멋지게 깨준 것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운동을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프로 스포츠에서. 나를 대신해, 아니 우리를 대신해 꿈을 이루어 준 한선태 선수에게 무한한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한선태 선수가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까지는 능력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먼저 프로야구 선수가 될 자격이라는 장벽을 깨뜨려야 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아마추어 야구 선수로 등록돼 대회에 출전한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선출’이 아니라는 장벽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좌절하는 대신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에 호소해 스스로 그 장벽을 부수는 길을 택했다. 다음으로 사회의 편견 내지 선입견과도 싸워야 했다. ‘선출이 아니면 안 돼’, ‘비선출이 잘해 봐야 뻔하지 뭐’ 이런 편견들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을 것이다. 한선태 선수뿐만이 아니라 프로야구에 종사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선출이 아님에도 도전을 선택한 그의 용기와 선출이 아닌 사람을 선수로 뽑은 LG구단 관계자들의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이런 영역이 많이 남아 있다. 얼마 전 공무원을 채용할 때 실시하는 신체검사 규정이 바뀌었다. 1인당 국민소득 87달러, 평균수명 60세에 불과하던 1963년에 만들어진 것이 56년 만에 개정됐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발병이 없는 질환이나 치료를 통해 회복이 가능한 감염병이 기준에서 사라졌다. 중증요실금, 치아질환처럼 업무 수행에 큰 지장이 없는 질환들도 빠지게 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고,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서기까지 56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 규정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기준이라고 제시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겐 장벽으로 느껴지기도 했을 대목이다. 기준이나 제도는 사람들의 약점을 보완하고 꿈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좌절을 안겨 주는 장벽으로 작동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 아직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장벽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한선태’라는 이름 석 자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에도 꽤 오랜 시간 1위에 올랐다. 나처럼 많은 사람이 인간 승리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야구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한선태 선수가 배출되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닐까.
  • [열린세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살맛 나는 직장 만들기/박영기 한국공인노무사회장

    [열린세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살맛 나는 직장 만들기/박영기 한국공인노무사회장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지난 16일부터 시행됐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산업 현장에서는 환영과 우려의 상반된 목소리가 섞여 나오고 있다. 기업과 사업주 입장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소 주관적이어서 허위 신고와 남용을 우려하는 반면 노동조합과 직원 입장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법률로 금지한 점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질병을 산재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 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 직장 안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기에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이 입법되고 시행된 걸까? 땅콩회항 사건으로 불거졌던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직원들에 대한 갑질, 직원의 뺨을 때리고 무릎 꿇려 사과를 강요하거나 짧은 시간에 보이차 20잔을 마시게 한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적인 괴롭힘, 운전기사에 대한 폭언 논란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던 종근당 회장의 갑질과 괴롭힘, 종합병원 간호사들 사이에서 발생한 직장 괴롭힘의 하나인 ‘태움’문화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직장 갑질과 괴롭힘이 결국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깨운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66.3%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는 직장인의 73.3%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의 문제는 일부 기업에서 발생하는 임직원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우리 사회 직장인 상당수가 겪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괴롭힘을 가하는 행위자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뿐만 아니라 같은 근로자도 행위자가 될 수 있다. 파견법에 따른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와 파견 근로자 관계에서도 행위자가 나올 수 있다.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근무 형태를 불문하고 근로자라면 피해자로 인정될 수 있다.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배려의무가 있다고 우리나라 법원은 인정한다. 배려의무란 근로자의 인격권 보호와 쾌적한 근로환경 제공 의무를 말하는데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하고 배려해야 하는 법적 근거가 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근로자에 대한 배려의무를 법제화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용자의 자율적이고 능동적 대응을 중요하게 여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근로기준법에 벌칙 조항을 둠으로써 괴롭힘 금지를 강제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해결은 사업장별 상황에 맞춰 취업규칙으로 정하고 그에 따라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 규정을 두지 않은 것과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대해 사용자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별도의 제재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이유다. 직장 괴롭힘 문제에 기업과 사업주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자의 생명과 건강에 피해를 주고 기업에도 법적·사회적·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킨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이직 경험자의 48.1%가 이직 사유로 직장 괴롭힘을 꼽았다. 직장 내 괴롭힘은 직원의 이직 및 업무능력 저하의 직접적인 요인이 돼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피해자의 업무 저하에 따른 근로시간 손실분, 대체인력, 괴롭힘 조사 비용 등을 추산한 결과 괴롭힘 1건에 대한 기업 손실비용이 1550만원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한항공, 한국미래기술, 종근당 등 직장 내 괴롭힘이 문제가 된 사업장은 기업 이미지 하락에 따른 손해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선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 위반 책임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등 법률적 분쟁 비용도 발생할 수 있다. 올해 개최된 국제노동기구(ILO) 100주년 총회에서는 제190호 협약으로 ‘직장에서의 폭력 및 괴롭힘 방지 협약’을 채택했다. 협약뿐만 아니라 ‘직장에서의 폭력 및 괴롭힘 방지’ 권고안과 결의안까지 채택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미 국제사회에서도 기준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 [열린세상] 공인회계사 시험과 투명성의 미래/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

    [열린세상] 공인회계사 시험과 투명성의 미래/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

    지난달 공인회계사 시험 회계감사 문제가 특정 대학 특강 및 모의고사와 유사해 시험의 공정성이 도마에 올랐다. 해당 대학 학생과 수험생에 대한 비난은 부당하다. 잘못은 어른들이 저질렀으니 비난도 어른들 몫이다. 자본시장의 파수꾼을 뽑는 최종 시험의 과정이 감독 당국의 행정편의주의로 불투명하다는 오해를 샀다. 누가 출제하고, 모범 정답은 무엇이며, 합격선 등이 다 블랙박스다. 결국 일부 수험 장사꾼들과 교수들의 사익과 헛된 명성을 교환할 장이 선다. 시험제도의 환골탈태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의 국가고시형 인재선발 방식을 포기하고 문제은행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수년을 투자해 1, 2차 ‘과거시험’을 통과한 이들이 공급의 제한으로 경제적 지대를 누리는 현재의 방식은 전근대적이다. 소수만 승자이니 문제 하나에 당락의 희비가 엇갈린다. 수험생은 극도로 민감하다. 시험관리 주체는 책임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절차의 비밀주의에 기댄다. 비밀주의는 수험산업계 호황의 토양이다. 이론과 원리보다 기출 문제와 회계기준서의 변종교배로 가득찬 수험서가 대학 교육을 황폐화한다. 시험의 목적이 자격자를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합격자 숫자를 위해 떨굴 사람을 정하는 것이다. 결국 변별력을 위해 예측 가능성이 희생된다. 교수들도 제시간에 풀지 못하는 문제들, 공부 내용만큼 출제자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시험. 정상은 아니다. 낮은 수준의 회계 투명성과 저신뢰의 한국 사회에 가장 시급히 증원돼야 할 사회적 인력 인프라는 회계사다. 단언컨대 한국 사회와 경제에 회계사는 다다익선이다. 문제은행 출제와 더불어 부분적 상대평가를 통해 적정 수준의 자격을 갖춘 모든 응시자가 시험에 합격할 수 있어야 한다. 공인회계사 합격자 수는 획기적으로 늘 것이다. 물론 자신의 경제적 유인이 훼손될 이들은 쉬운 시험으로 아무나 회계사가 되면 자격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극력 반대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학생들은 공인회계사 자격증 없이 회계법인에 입사한다.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시험을 치르고 일하며 합격한다. 대신 현업의 체계적 직무교육으로 빠르게 전문성을 확보한다. 미국식 인재 양성 방식이다. 한국 학생들은 까다로운 과거시험에 합격해야만 회계법인에 입사할 수 있다. 어서 오라고 할 때는 잠깐, 합격자들은 실무에서 원재료로 취급돼 선배들의 눈총을 받으며 고객의 총알받이로 전락한다. 실무교육은 엉망이고 경력개발은 각자도생이다. 왜 우리는 젊은이들의 능력과 경력을 사회가 길러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시험 통과에 팽개쳐 놓는 것일까. 기업의 재무보고와 감사환경은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공인회계사회는 최근 파이선으로 짠 일반분개코드를 깃허브(GitHub)에 공개했다. 앞으로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에서 모든 거래 자료를 취득해 실시간 전산 감사를 할 수 있어야 회계사라는 것이다. 올해 초 미국의 대형 회계법인 PwC의 최고정보책임자는 전 세계 경영대학 학장들에게 태블로(Tableau)와 엑셀을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은 더이상 신입 회계사가 되기 어렵다고 강연했다. 회계사의 직무가 단순한 자료 정리와 검증에서 자료의 구조분석와 미래예측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대학들은 급속히 이런 변화를 회계교육에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회계에 더해 데이터 분석 및 영어 구사 능력을 겸비해야 할 한국의 미래 회계사들은 지금 도서관에서 전근대적인 수험서 외우기에 수년간을 허비하고 있다. 회계사의 쓸모와 가격은 경제사회와 시장이 결정한다. 현행의 고시형 공인회계사 제도는 젊은이의 시간을 불필요하게 허비하는 후진적 제도다. 시험 과목을 축소하고 문제은행 방식의 단일 시험으로 1년에 두 차례 이상 시험 기회를 주어야 한다. 부분 합격을 인정하고 기한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요컨대 많은 젊은이가 회계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노력과 시간 투자가 쉽고 경력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시험이 개편돼야 한다. 광범위한 회계전문인력 인프라를 구축하고 수험생이 아낀 시간은 정보기술과 어학을 위한 투자, 실무경험을 통해 진짜 능력 배양에 쓰여야 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 회계사를 진출시키는 것이 사회를 투명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 오피니언 필진이 더 젊고 더 다양해집니다

    오피니언 필진이 더 젊고 더 다양해집니다

    서울신문 오피니언 면이 창간 115주년을 맞는 18일 자부터 더 젊고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냅니다. 월요 특별칼럼에 이윤경 캐나다 토론토대 사회학과 교수가 노동 분야를 ‘이윤경의 노동을 묻는다´로,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가 외교 안보 분야를 ‘이해영의 쿠이 보노(Qui Bono)´라는 기명칼럼으로 찾아갑니다. 화요 기명에세이에 시인 안도현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안도현의 꽃차례´로, 일본 도쿄에 거주하는 박철현 테츠야공무점 대표가 ‘이방사회´(異邦社會)로 새로 합류합니다. 화요칼럼에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이 ‘책 사이로 달리다´를, 이의진 서울 누원고 교사가 ‘교실풍경´을 통해 각각 출판계와 고등학교 교실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수요 에세이에 김주대 시인 겸 문인화가가 ‘방방곡곡 삶’을 집필합니다. 열린세상에는 30대 필진으로 남시훈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와 장애인권법센터 대표인 김예원 변호사가 참여해 각각 국제통상과 장애인 인권 분야에서 인식도를 높여줄 글을 선보일 것입니다. 또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표현의 자유와 소셜 미디어 시대의 언론 역할을, 황금주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영 혁신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은 애초 월요일에서 화요일 기명칼럼으로 옮겼습니다. 문화마당에는 송정림 드라마작가가 참여합니다. 과학오피니언 면에는 이민호 경희대 환경공학과 교수의 ‘환경 탐구’와 엄상일 카이스트 수리과학과 교수의 ‘수학자의 시선’,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의 ‘마음 의학’ 등이 연재됩니다.
  • [열린세상] ‘게임중독’ 논쟁에 부쳐/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열린세상] ‘게임중독’ 논쟁에 부쳐/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국제기구의 결정이 한국 사회에서 주요 뉴스로 다뤄지는 경우가 드문 편인데,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내린 결정은 국내 언론의 주요 기사로 다뤄졌다. 당시 총회는 의약품의 투명성 확보 등 주요 안건을 긴 논의 끝에 통과시켰지만, 국내 언론은 유독 게임과 관련된 결정만 소개했다. 이 결정으로 ‘게임사용 장애’는 국제질병분류 제11차 개정안에 공식 등재되고 건강 조건을 진단 및 치료하는 표준이 됐다.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증상을 ‘게임사용장애’로 정의한 것인데, 국내에선 2011년 청소년의 게임 사용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를 도입할 당시처럼 ‘게임중독’ 논쟁이 재연됐다. 관련 기업들은 이번 결정이 게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우려했고, 의료계는 이 결정을 게임의 과다한 사용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들을 제대로 돌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게임 관련 기업들의 가장 큰 반론은 게임중독이나 게임 과몰입 등으로 불리기도 했던 ‘게임사용 장애’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술과 마약 등 이른바 물질중독처럼 게임이 중독 증상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허약하다는 것이다. 해외 문헌을 찾아보더라도 관련 연구들은 통계 표본이 너무 적거나 연구방법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다. 사용자들의 자기 보고에 의존하는 연구들이 많은데, 그 방법이 50가지가 넘어 서로 비교할 수 없다는 불만도 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게임에 대한 우려는 정당하다고 보는 것 같다. 게임업계의 반론처럼 원인은 게임이 아니고 학업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전략일 수도 있지만, 일부의 게임 사용자들이 임상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용 습관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게임 자체가 중독적이지는 않더라도 게임을 ‘중독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은 ‘일일 퀘스트’, ‘출석체크’ 등을 통해 이용자들이 매일 게임을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사용자는 매일 게임에 접속해 해당 임무를 수행해야 게임 캐릭터를 강화할 수 있다. 플레이 중간에 그만두면 주위 친구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게임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실시간 전략 게임은 게임의 진입 장벽에 해당하는 ‘최소 실력’을 갖추기 위해 시간을 계속 투자하도록 만들고 있다. 사용자의 계속적 사용이 수익 창출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업체들은 게임의 재미 향상을 넘어 사용을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 장치들을 고안하고 있다. 심지어 인공지능으로 사용자들의 행동을 분석하는 일도 한다. 큰 기업들은 자체 분석팀으로, 작은 기업들은 외부의 전문기업을 통해 사용자의 행동을 분석해 ‘이탈ㆍ유지 비율’을 예측한다. 게임을 이탈할 가능성이 높은 이들에게는 미리 공짜 아이템을 선물하거나 게임 난도를 낮춰 준다. 게임은 중독질병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필요하면 손에 쥐었다가 필요 없으면 간단히 놓아 버릴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게임은 많은 이들이 즐기고 있는 놀이문화인 것도 사실이고 놀이를 위한 기술이라고 낭비적이라고 폄하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놀이일 뿐이라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해서도 안 될 것 같다. 충분한 증거가 없는데도 부정적 낙인을 찍으려 한다는 억울함은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증거가 충분하게 제기되기 전까지는 기술과 관련된 문제적 결과에 책임이 없다고 말해도 안 될 듯하다. 관련 기업들은 기술에 대한 과도한 사용을 유도해 수익을 얻으려고만 하지 말고, 이런 문제적 행동을 함께 연구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실 스마트폰과 온라인게임 등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행동과 사고에 끼치는 심각한 영향을 우리는 매일 느끼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 정보로 가득차고 미디어 기술로 온통 연결된 세계에서 우리의 집중력과 자제력 등을 어떻게 유지하고 훈련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이 새로운 세계와 경험들을 정의하고 대응할 지식도 부족하다. 의료계가 지나치게 병리화하는 일도 삼가야겠지만, 관련 기업과 언론들도 마약과 다르다고 항변만 할 게 아니라 이 새로운 세계에 대해 좀더 책임 있게 대응했으면 한다.
  • [열린세상] 일본 항공모함 100년과 동북아 정세/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일본 항공모함 100년과 동북아 정세/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항공모함은 공격적인 무기다. 일본이 지난해 말 항공모함을 갖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한국의 이웃 국가들인 중국과 일본이 항공모함 경쟁에 돌입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항복한 이후 74년이 지난 2019년 현재 필자의 생애에 일본의 항공모함이 재등장하는 장면을 목격할 줄은 몰랐다. 역사는 이렇게 확 바뀌는구나 하는 사실을 절감하는 오늘날이다. 일본은 1920년 세계 최초로 항공모함 ‘호쇼’의 착공을 개시한다. 항공모함 개발의 선구자였던 영국이 기존 여객선이나 순양함을 개조해 항모화했던 반면에 처음부터 항공모함의 개발을 시작한 나라는 일본이 최초다. 그리고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 공격을 할 시점이었던 1941년 1월 통계를 보면 미국의 항공모함이 9척, 영국이 9척, 일본이 11척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항공모함을 보유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반격이 시작되고 잠수함 공격으로 일본의 항공모함이 줄줄이 격침되기 시작하면서 일본은 패망의 길로 들어섰지만 항공모함 역사에서 일본은 큰 획을 그은 나라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지 73년 만인 2018년 12월 18일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은 헬리콥터 탑재 군함이라고 속이던 이즈모형 군함을 미국의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 F35B 10기를 탑재할 수 있는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일본이 항공모함을 보유하는 것은 항공모함 자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항공모함을 운용하려면 그에 따른 잠수함과 이지스함ㆍ구축함 등이 함께하게 되는데, 공격적인 군사력의 집합체라는 점에서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 일본의 항공모함보다 큰 미국의 항공모함에는 이지스함ㆍ잠수함ㆍ구축함 등 따라붙는 군함들이 최소 10척이 넘는다. 거기에다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들이 탑재돼 있으니 일본의 항공모함 보유는 한국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 일본이 항공모함을 보유한다는 것은 일본의 항공모함 건조 역사를 볼 때 크나큰 걱정거리다. 일본은 1920년 항공모함 건조를 처음 시작해 20여년 만에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 국가로 발전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때의 항공모함 건조 기술과 운영 등 다양한 경험이 축적돼 있다. 일본이 항공모함 보유 국가로 변신하면서 42기의 F35B 수직이착륙기를 도입할 예정인데, 산술적으로 환산하면 최대 4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할 수 있어 한국의 안보는 더 위태롭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과 중국이 항공모함 경쟁을 시작하면서 한국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똑같이 항공모함 경쟁에 뛰어들 수도 없고 급변하는 주변국의 정세에 맥없이 앉아 있을 수도 없고 하니 차선책으로 잠수함 증강을 생각할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1943년부터 약 1년 동안 일본이 자랑하던 항공모함 무려 8척이 미국의 잠수함 공격에 의해 침몰됐던 것을 상기하면 여전히 항공모함은 잠수함 공격에 가장 취약하다. 한국으로서는 세계 최강의 최첨단 잠수함을 육성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이 주변국의 위협에 시달리지 않고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미군이 한국에 주둔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이라는 외교는 엄청난 돈을 들여 가며 무기 사재기를 하는 국방 전략 이상으로 국가안보와 평화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평화 전략이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은 중국과 일본이 항공모함 보유 국가로 변신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나간 역사에서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크게 시달리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이 두 나라가 항공모함 보유 경쟁에 들어섰다는 것은 그동안의 평화를 위협하는 상징으로 우리 앞에 다가서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러한 위협의 정도는 더욱더 거세질 전망이다. 우리 후손들이 과거 역사처럼 무릎 꿇는 일에 맞닥뜨리지 않게 하려면 지금보다 더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돼야 외교와 국방의 지평도 넓어진다. 미국의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F35를 147기나 도입하겠다는 일본은 경제적으로 부자인 나라다. 평화가 경제안보로 유지된다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 [열린세상] 차등의결권주: 열린 논의와 그 적들/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차등의결권주: 열린 논의와 그 적들/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차등의결권주는 1주당 의결권이 서로 다른 주식을 지칭한다. 대개 창업자 또는 지배주주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이들의 기업 지배권을 강화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상법에서 ‘1주 1의결권’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어 차등의결권 주식과 거리가 먼데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해외 투기적 자본의 공격으로부터 국내 기업의 경영권 보호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우선 들 수 있다. 최근에는 벤처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제도의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차등의결권주 제도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재계, 정부,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가 가진 입장과 시각차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현행 상법의 중요 원칙을 바꾸는 일이므로 신중하면서도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해외 사례에 대해서도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며, 장단점에 대한 주장의 논리도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한다. 다른 나라 제도의 일면만을 강조하거나 상대방 주장의 한 측면만을 부각시켜 공격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차등의결권주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경영권의 안정적 유지가 가능해짐에 따라 경영진이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를 제시한다. 또한 벤처기업 창업자가 의결권 희석이나 이로 인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우려를 씻고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스위스, 핀란드 등 많은 나라가 현재 차등의결권주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더욱이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유명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한 사실이나 최근 홍콩, 싱가포르, 중국의 주식 거래소들이 차등의결권주 제도를 도입한 것도 자주 인용된다. 반면 차등의결권주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쪽의 논리도 간단치 않다. 당장 경영진의 사익 추구 행위를 견제하지 못하거나 무능한 경영자의 경영권이 보호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차등의결권주의 도입을 벤처기업에 한정하는 경우에도 경영권 승계의 수단으로 활용될 우려가 거론된다. 해외 사례에 대해서도 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차등의결권주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부정적 효과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조치들이 마련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상장 이전에 이미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회사의 상장을 허용하고 있지만, 이미 상장된 회사가 신규로 차등의결권 주식을 도입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보통주를 소유하고 있는 주주의 의결권을 차별적으로 줄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나스닥(NASDAQ)도 마찬가지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도 차등의결권주 발행 기업에 대한 자격 조건을 두거나 차등의결권주 소유자의 사망, 퇴임, 자격 상실 시 보통주로 전환하는 일몰 조항을 의무화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주가 양도되는 경우에도 보통주로 전환되며, 이 외에 부정적 효과를 차단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이 존재한다.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차등의결권주를 반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CalPERS) 등 미국의 주요 공적 연금들은 차등의결권 기업에 대해 기한부 일몰 조항의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블랙록, 뱅가드그룹 등 유수 자산운용사들도 차등의결권에 반대하고 있다. FTSE 러셀이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다우존스 등 글로벌 지수 공급 업체들도 최근 차등의결권 제한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결국 차등의결권 주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과 여러 가지 사례가 혼재돼 있다. 우리나라에 적합한 제도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세밀한 조사와 함께 치밀하고도 열린 자세의 논의가 필요하다. 자신의 입장만 강변하는 것은 생산적인 논의를 더 어렵게 한다. 상대방의 주장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공격하는 것 역시 논의의 진전을 방해할 뿐이다. 경제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기업의 활력 제고가 절실히 필요한 현시점에서 차등의결권주 등 새로운 제도에 대해 보다 열린 논의를 기대한다.
  • [열린세상] 인체 내 39조 마리 미생물, 또 하나의 장기/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열린세상] 인체 내 39조 마리 미생물, 또 하나의 장기/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인간의 세포는 모두 30조개 정도지만 인체에 사는 미생물은 39조 마리에 이른다. 이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박테리아, 즉 세균이다. 대부분 대장에 살고 있으며 종류는 약 1000종, 무게는 1.5㎏ 남짓이다. 대변에서 수분을 제외한 고형물 중 60%를 차지한다. 인간의 유전자가 2만 1000개에 불과한 반면 체내 세균의 유전자는 최대 300만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생물은 인체에 기생한다기보다는 하나의 통합된 초유기체로서 함께 살아간다. 장내 세균은 사람의 생존과 건강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음식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효소를 모두 가지고 있지 못하다. 미생물이 단백질·지질·탄수화물 중 많은 부분을 분해한 다음에야 인체는 이들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다. 우리가 섬유질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그 덕분이다. 또한 미생물은 일부 비타민B, 비타민K와 장내 염증을 억제하는 화합물 등 인간이 생산하지 못하는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 낸다. ‘제2의 장기’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그뿐만 아니라 중추신경계, 면역계, 자율신경계 등을 통해 뇌의 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장은 이미 ‘제2의 뇌’로 불렸는데 이제는 ‘장-장내세균-뇌 축’(gut-microbiome-brain axis)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세균의 역할이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다. 장내 세균은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인체 능력에도 큰 도움을 준다는 최근 연구가 있다.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가 ‘셀 보고서’에 발표한 논문에서 건강한 장내 박테리아를 보유한 생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80%가 살아남았다. 하지만 사전에 항생제를 투여해 박테리아를 제거한 생쥐의 생존율은 3분의1에 불과했다. 조사 결과 장내 박테리아는 폐의 표면을 구성하는 상피세포에 경계태세를 유지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제1형 인터페론이 계속 생성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물질은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는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유전자를 자극한다. 폐의 상피세포가 바이러스의 1차 방어막으로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밝혀졌다. 2차 방어막인 면역세포가 바이러스 감염에 대응을 시작하는 데는 이틀 걸린다. 그동안 바이러스는 상피세포에서 증식한다. 감염 후 이틀이 지나자 항생제를 투여한 생쥐의 폐 바이러스 숫자는 그렇지 않은 생쥐의 5배에 이르렀다. 연구팀은 항생제를 투여한 생쥐에게 건강한 생쥐의 대변을 이식하는 실험도 수행했다. 그 결과 인터페론 신호가 회복되고 바이러스 저항력도 다시 살아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장내 박테리아가 신체의 비면역 세포로 하여금 대비태세를 유지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우리의 실험은 보여 준다”고 밝혔다. 장내 세균은 식품 알레르기를 치료하는 데도 희망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미국의 브리검 여성병원과 보스턴 어린이병원 연구팀이 ‘네이처 의학’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이들은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2세 이하 유아 56명에게서 4~6개월 간격으로 대변 표본을 계속 채취했다. 이를 건강한 유아 98명의 대변과 비교한 결과 세균의 종류에 차이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표본들을 달걀에 알레르기를 쉽게 일으키도록 민감하게 만든 생쥐들의 장에 이식했다. 건강한 유아의 대변을 이식한 생쥐들은 알레르기 유아의 것을 받은 생쥐들보다 달걀에 알레르기를 덜 일으켰다. 이어 컴퓨터 모델을 통해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어린이와 그렇지 않은 어린이의 장내 세균 차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식품 알레르기를 억제할 수 있는 두 종류의 세균 군집을 조합해 낼 수 있었다. 각각 클로스트리디움균이나 박테로이데테스균에 속하는 5, 6종의 박테리아로 구성됐다. 이들 군집을 투여한 생쥐는 달걀 알레르기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종류의 박테리아는 효과가 없었다. 조사 결과 치료용 박테리아 군집은 두 종류의 중요한 면역학적 경로에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역계를 조절하는 특정한 T세포를 자극한다. 이런 효과는 생쥐와 유아에게서 모두 발견됐다. 공저자 대부분은 청소년 식품 알레르기에 대한 임상시험을 준비 중인 회사(ConsortiaTX)의 창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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