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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변호사 값어치/곽태헌 논설위원

    박사가 귀한 시절 박사 학위만 있으면 특별대우를 받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박사 학위가 있으면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으로 특별채용됐다. 대기업에는 보통 임원으로, 못해도 부장으로는 갈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박사가 대폭 늘자, 박사의 값어치도 예전보다 훨씬 못한 세상이 됐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다. 과거 신분상승을 위한 대표적인 지름길은 고시였다. 행정고시, 외무고시도 그랬지만 특히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사실상 평생이 보장됐다. 사법시험만 합격하면 권력 있는 집안이나 재력가 집안의 사위가 되고, 판사나 검사를 하면서 폼나게 살았다. 또 판검사를 그만둔 뒤에는 변호사를 하면서 전관예우 덕에 돈도 쉽게 벌 수 있었다. 사법시험의 높은 위상 때문에 대학 서열을 정할 때에도 사법시험 합격자 수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됐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1980년대 300명, 1990년대 500명, 2000년대 1000명으로 늘면서 가치도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법연수원 수료 성적이 좋아 판검사가 되면 ‘결혼시장’에서 특별대우는 받는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서울대 법대도 없어졌지만, 아직도 어떤 결혼정보회사에서 기준으로 삼은 1등 신랑감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판사다. 2등 신랑감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검사, 5대 로펌 변호사다. 판검사·변호사의 위상은 여전하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판사로 임용되면 3급 대우를 받는다. 행정고시(5급) 합격자보다 두 단계나 높다. 하지만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대폭 늘다 보니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잘나가는 판검사·변호사가 되는 게 쉽지 않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기업 부장으로 갈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대리급으로 낮아졌다. 5급 공무원으로 특별채용되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주 국민권익위원회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변호사 3명을 6급 주무관(옛 주사)으로 특별채용했다. 이에 대해 일부 동료 사법연수원생들은 “공개적인 모욕”이라며 발끈하지만, 그렇게 쉽게 말할 게 아니다.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주무관 자리에 채용 원서를 낸 그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 보았는가. 국민권익위가 사법시험이나 사법연수원생들을 모욕한 게 아니라 아직도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팔자 좋고, 집안 좋고, 성적 좋은 사법연수원생들이 국민권익위 주무관에 지원한 동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성직과 세금/김종면 논설위원

    속물시대다. 아니 속물 전성시대다. 몸은 비록 땅에 있지만 하늘에 속한 성직자까지 세속의 이해에 목을 매고 있으니 속물세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 속물사회의 한편은 개신교 목회자의 자리다. 언제쯤 거룩한 직을 수행하는 그들이 지긋지긋한 속물형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 줄기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교단 연합기관 차원에서 목회자들의 자발적 소득세 납부를 추진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 세금 부과는 그동안 심심찮게 여론화됐지만 그때마다 개신교계는 ‘반복음적 현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 9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개신교 나라’ ‘복음주의 대국’ 미국에서도 성직자에 대한 과세는 매우 엄중한(hard-and-fast) 사안인 것과 대비된다. 미국 목회자들은 소득세는 물론 자영세(self-employment tax)까지 낸다. 하지만 한국 교회와 목회자는 여전히 국법이 미치지 않는 소도(蘇塗)와도 같은 ‘면세특구’에 머물고 있다. 우리 교회의 목회자들은 왜 세금을 내지 않게 됐나 곰곰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교회의 정치 참여는 비복음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이 땅에 기독교 정당을 만들고 ‘기독교 전사’들을 정계에 내보내려고 애쓰는 복음주의 세력 아닌가. 복음주의의 미망에서 깨어나야 한다. 정치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었던 한국교회의 아픈 역사는 이제 박물관에 맡겨 둬야 한다. 복음삼덕(福音三德). 예수가 복음으로 지키기를 권고하며 가르친 세 가지 덕행이다. 자원에 의한 청빈, 평생의 정결, 온전한 순명. 목회자들은 이 최소한의 덕목을 어떻게 생각할까. 자신의 ‘택스 프리’(Tax Free) 인생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논어는 군자유어의(君子喩於義) 소인유어리(小人喩於利)라고 가르친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는 뜻이다. 의를 먼저 구하라는 성경의 말씀과도 통한다. 한번 은혜 받은 찰교인은 아무리 끼니가 간데없이 가난해도 흔쾌히 십일조를 낸다. ‘먹사’에 ‘개독교’라는 소리까지 듣는 판국이다. 지금 개신교가 처한 신뢰의 위기를 절감한다면 목회자들은 세금을 내지 말라고 말려도 내겠다고 나서야 한다. 그게 하나님이 보기에도 좋은 모습일 터이다. ‘나간 놈 몫은 있어도 자는 놈 몫은 없다.’는 말이 있다. 교회 밖 믿음 없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기 전에 교회 스스로 개혁에 나태한 점을 반성해야 한다. 목회자들의 잠든 영혼부터 먼저 깨울 일이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씨줄날줄] 진주만 & 강정마을/구본영 논설위원

    엊그제 처음 본 강정마을은 참 한적했다. 관광객들로 흥청거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졌다.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내건 현수막만 펄럭이고 있었다. “강정을 평화생명의 마을로”, “구럼비가 통곡한다”…. 722가구 1800여명의 주민이 사는 마을이 고즈넉해 보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군항 건설을 반대하는 원정 시위가 잦아든 탓만은 아니었다. 노령인구에 비해 아이들이 유달리 적으니 마을이 한산할 수밖에 없을 게다. 실제로 이곳 강정초교는 근래 연간 취학 아동이 10명도 안돼 분교로 전락할 위기에 몰렸다고 한다. 2007년 해군기지 유치 여론조사에서 주민 56%가 찬성표를 던진 데는 젊은 인구의 유입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을 법하다. 정물화처럼 조용한 해안을 걸으면서 십수년 전 하와이 여행 때가 생각났다. 당시 기억의 편린들이 지금도 뇌리에 또렷이 박혀 있다. 주도인 호놀룰루가 있는 오하우섬에서 너무나 대조적인 두 가지 풍광을 번갈아 접했기 때문일 게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와이키키와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있는 진주만(Pearl Harbor)이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진주만이 자리잡은 하와이 이외에도 관광선과 군함이 공존하는 항구는 부지기수다. 캐나다의 빅토리아항과 일본의 사세보항, 그리고 프랑스의 툴롱항이 그런 범주다.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호주의 시드니도 군항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들 항구는 군함과 관광선이 접안하는 부두의 출입구를 따로 두고 있다. 반면 강정의 해군기지는 크루즈선과 군함이 출입구를 같이 쓰게 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셈이다. 노무현 정부 때 입안했던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접점 없는 논란에 휩싸여 더디게 진행 중이다. 2007면 5월 후보지 선정이 이뤄졌지만, 반대 주민들과 외지인들의 시위가 이어지면서 공정이 늦어지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는 반대 시위가 역설적으로 순기능을 발휘한 측면도 없진 않다. 해군기지가 친환경·친주민형 항구로 건설되도록 방향이 잡히게 됐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평화의 섬과 군사기지는 양립 불가능하다는 반대 논리는 세계적 사례와 견줘볼 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무엇보다 그런 주장이 설득력이 없음을 입증하려면 중앙정부나 제주도가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 약속이 철저히 준수돼야 한다는 뜻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신라 향가/임태순 논설위원

    통일신라 경덕왕 때(760년) 해가 두 개 나타나 10일 동안 사라지지 않자 민심이 뒤숭숭했다. 고민하던 왕이 해법을 묻자 신하들은 “인연 있는 스님을 불러 산화공덕(散花功德)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왕은 불전을 차리고 기다리던 중 스님 월명사가 인근을 지나자 기도문을 부탁했다. 월명은 “저는 원래 국선(國仙)의 무리에 속해 있어 향가만 알 뿐 산스크리트어로 된 염불은 잘 모른다.”며 사양했으나 ‘향가도 괜찮다.’는 말에 ‘도솔가’(兜率歌)를 지어 올렸다. 요즘 말로 “오늘 여기서 산화가를 부르니 꽃이 피어나네/너는 곧은 그 마음 변치 말고 도솔천의 부처를 맞으라.”는 내용이다. 해가 사라졌음은 물론이다. 모든 문학작품이 그렇듯이 월명의 도솔가에도 시대상이 반영돼 있다. 도솔은 미륵보살이 사는 도솔천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다스리다’라는 뜻을 지닌 ‘다살’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도솔가는 변괴를 다스리는 노래인 만큼 일찍이 신라시대 때부터 나라의 어려움을 노래로 극복하려는 전통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국선이라는 말에서 보듯 월명은 화랑이었다. 그러나 삼국통일로 태평성대를 구가하게 된 통일신라로선 화랑의 효용가치가 크지 않았다. 입지가 약화된 화랑 중 상당수는 승려로 신분을 전환해야 했고, 뒤늦게 승려가 된 월명은 법문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무(武)의 성격이 짙은 화랑들이 심신을 수련하면서 시가를 읊으며 정서를 함양한 것도 인상적이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월명은 죽은 누이를 위한 ‘제망매가’(祭亡妹歌)라는 서정성 짙은 향가도 남겼다. “어느 가을 바람에/떨어지는 꽃잎처럼/같은 나뭇가지에서 났지만/서로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라는 구절은 요즘 감각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신라시대 향가가 발견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울대 이승재 교수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2000년 출토된 목간(木簡·종이 대용으로 글씨를 남긴 나무조각) 가운데 통일신라시대 향가 한 수가 포함돼 있다면서 어제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학계에서는 그의 주장에 대해 찬반 양론이 일고 있다. 향가는 향찰(鄕札) 및 이두(吏), 즉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지은 신라의 시가다. 지금까지 삼국유사에 11수, 균여전에 14수 등 25수만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희귀하다. 목간의 글귀가 향가인지 여부는 학계에서 좀 더 검증해야 가려지겠지만 그런 주장이 나왔다는 것만 해도 가슴이 뛴다. 신라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생겼기 때문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세대교체/곽태헌 논설위원

    4·11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공천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70대인 박희태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이상득 의원은 불명예스럽게 4·11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같은 70대인 민주통합당 박상천 의원은 명예로운 퇴진을 선택했다. 선거를 앞두고는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진다.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낙선에 따라 타의(他意)로 정계를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자의(自意)로 물러나는 지혜가 있는 정치인도 많다. 보통 국회의원 선거를 할 때마다 초선의원 비율은 40% 안팎이나 된다. 세대교체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다. 오는 12월에 실시될 대통령선거를 통해서도 세대교체는 분명하게 이뤄지게 돼 있다. 현재 여론조사상 빅3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50세,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60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61세다. 빅3 중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6·25 이후 출생한 첫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갖게 된다. 시대흐름을 보면 2017년 대선의 주인공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가 될 가능성이 사실상 100%다. 한국정치사의 대표적인 세대교체 계기는 1971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나온 ‘40대 기수론’이다. 당시 제1야당인 신민당 김영삼(YS) 의원이 대통령후보를 겨냥, ‘40대 기수론’을 들고나왔다. 김대중(DJ) 전 의원과 이철승 의원이 호응하면서 ‘40대 기수론’은 야당의 세대교체를 가속화시켰다. DJ는 1차 투표에서는 YS에 뒤졌지만 결선투표에서 이철승 의원 지지표를 대거 흡수하면서 대통령후보가 됐다. DJ는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꺾고 당선됐다. 당시 나이는 72세. DJ에 5년 앞서 대통령의 꿈을 이뤘던 YS도 70대 초까지는 현직에 있었다. 구상유취(口尙乳臭)하다는 말도 들으면서 40대 기수론을 주창했던 YS와 DJ 모두 70대까지 정치판을 흔든 것은 아이러니다. 정치판이든, 스포츠계든 모든 분야에서의 세대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다소 인위적으로 이뤄질 때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의 부총재, 부총재보, 국·실장급 인사를 놓고 말이 많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보수적인 한은에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연공서열이 파괴된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50대 초·중반의 임원은 물론 고참 1급이 맡았던 주요 국장에 2급을 중용하면서 한은이 술렁이고 있다. 분위기 쇄신도 좋고, 세대교체도 좋지만 어느 조직이든 능력이 아닌 나이가 인사의 결정적인 잣대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참모와 주장(主將)/최용규 논설위원

    촉(蜀)의 마속은 나관중의 작품 삼국지연의에서 무능한 인물의 대명사로 묘사돼 있다. 북벌의 승패가 달린 가정(街亭·간쑤성)전투에서 한낱 책에서 배운 병법을 고집하다 위(魏)의 선봉장 장합에 대패해 촉을 사지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주인공 마속, 그는 정말 무능한 인물일까. 그렇다면 제갈량은 촉군의 목구멍과 같다던 요충지 가정의 수비를 왜 마속에게 맡겼을까. 중국의 작가 왕우는 자신의 저서 ‘사마의’에서 “마속은 참모로서는 인재였지만 주장(主將)으로서는 범재에 불과했다.”고 색다르게 해석했다. 사실 마속은 가정전투 이전 수년 동안 제갈량을 보좌하며 탁월한 계책으로 공을 세웠다. 제갈량이 맹획을 일곱 번 놓아주고 일곱 번 사로잡았다는 칠종칠금(七縱七擒) 계책은 마속한테서 나왔다. 맹획이 대군을 이끌고 국경을 침범하자 계책을 묻는 제갈량에게 맹획을 죽이지 말고 마음을 사로잡을 것을 제안한 책사가 마속이다. 이처럼 계략에는 능했지만 장수의 기본 덕목인 실전경험이 없는 마속에게 대사를 맡긴 게 제갈량의 실수였다. 왕우는 “실전경험이 없는 참모가 선봉군 총사령관을 맡아 전략과 대세 파악 능력이 탁월한 위의 사마의와 맞섰으니 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었다.”고 갈파했다. 박근혜와 한명숙의 총선전쟁이 점입가경이다. 파상공세를 취하는 한명숙, 숨을 죽이며 때를 기다리는 박근혜. 시공은 다르지만 1870여년 전의 한판 승부를 떠올리게 한다. 민주통합당의 주장(主將) 한명숙을 보자. 그녀의 세(勢)는 질풍노도와 같다. 마치 벼랑에서 통나무가 굴러떨어지는 듯한 형세다. 당권까지 장악한 그녀의 언사엔 거침이 없다. 정신차리기 힘들 정도로 쏟아내는 속사포는 전략과 전술의 혼돈을 가져온다. ‘집권 후 한·미 FTA 폐기’ 발언이 대표적이다. 엉뚱한 데 영채를 세워 퇴로가 끊긴다면 그 좋던 형세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한명숙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는 어떤가. 한명숙의 집요한 공격에 쉽게 대응하지 않는다. 지금의 세가 한명숙 편인 걸 그녀가 모를 리 없다. 건괵(巾?·여자 머릿수건)과 소복을 보내 조롱하는 제갈량에 무대응 전략으로 일관해 대승을 한 사마의를 염두에 둔 걸까. 그런 그녀가 “FTA 폐기를 주장하는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살며시 ‘잽’을 날렸다. 박근혜는 전면적인 반격의 시(時)를 엿보고 있는 것일까. 싸움의 끝이 궁금해진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씨줄날줄] 낙하산 인사/주병철 논설위원

    낙하산 원리 연구에 관심을 가진 최초의 인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1617년 네모난 천을 장대 4개에 팽팽히 묶어 최초의 낙하산을 실험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낙하산을 만들어 상공에서 무사히 착륙했다는 기록은 없다. 현대의 낙하산은 비행기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에 생겼다.1687년 프랑스 루이 13세의 사절로 태국에 간 루베르가 우산 자루를 허리띠에 단단히 붙들어 매고 높은 탑에서 뛰어내려 비행하는 사람의 곡예를 봤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저서 ‘역사이야기’에 기록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뒤 이 책을 읽은 프랑스인 르노르망이 똑같은 실험을 해 대성공을 거뒀다. 양손에 파라솔을 하나씩 들고 2층에서 뛰어내린 뒤 낙하산을 직접 만들었다. 몽펠리에 관측탑에서 자신이 발명한 낙하산에 동물을 매달아 밑으로 날려보낸 뒤 자신도 직접 낙하해 보기도 했다. 르노르망은 자신이 만든 낙하산에 ‘파라슈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1783년쯤 된다. 이후 프랑스의 앙드레 자크 가르느랭이란 사람이 숱한 하강 실험을 거친 뒤에야 오늘날의 낙하산 모양이 됐다. 군대와 스포츠 등의 용어로 쓰이던 낙하산이 언제부턴가 공천이나 채용, 승진 등의 인사에서 작용하는 배후의 은밀한 지원이나 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둔갑됐다. 낙하산 인사, 낙하산 공천 이란 말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군사정권 시절부터 줄곧 준정부기관, 공기업, 준공기업 등의 인사는 낙하산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참여정부 때 ‘코드인사’라는 용어도 자리를 정치권력 장악에 뒤따르는 노획물로 생각하는 과거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외국에서도 회전문(Swing door), 낙하산 인사(parachute appointment)란 말이 있다. 미국의 엽관제도(spoils system)도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는데, ‘전리품은 승자에게 속한다.’고 말한 뉴욕주 출신 상원의원 월리엄 마시의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낙하산 인사를 꼬집을 때 신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뜻의 ‘아미쿠다리’라는 말을 쓴다. 한덕수 주미대사가 돌연 대사직을 그만두고 무역협회장으로 추대된 데 대해 전국무역인연합이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하고 나서 시끄럽다. 한 대사가 회장의 자격이 있느냐와는 별개로 무역인들로 구성된 민간 경제단체에 대해 언제까지 정부가 입김을 행사할 것인가는 고민해 봐야 할 때다. 때마침 여당 의원 일부가 ‘방송사 낙하산 인사 방지법’을 추진한다고 하니 이참에 ‘낙하산 인사 방지법’을 총선·대선 공약으로 내걸면 어떨까 싶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씨줄날줄] 주미대사/이도운 논설위원

    워싱턴 특파원 시절 청와대 수석과 비서실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에게 물었다. “대통령의 인사에서 주미 대사는 어느 정도 중요한 고려 사항인가?” 그 정치인은 “대통령이 정말로 신경 쓰는 인사는 국무총리, 국정원장, 검찰총장,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장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주미 대사는 외교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고 말했다. 1998년 초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 한반도 전문가인 돈 오버도퍼를 단독으로 만나 “이홍구 전 국무총리를 주미 대사로 보낼까 한다.”며 의중을 타진했다고 한다. 오버도퍼는 “진보적이란 평가를 받았던 김 당선자로서는 좀 보수적인 인사를 보내야 워싱턴 보수 세력의 비판적인 시각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승주 주미 대사를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 ‘두 개의 한국’(Two Koreas)의 저자인 오버도퍼는 역대 주미 한국대사를 모두 인터뷰하거나 만났다. 그는 역대 주미 대사 가운데 관심을 가질 만한 인물이 많았다고 밝혔다. 8대 김동조 대사는 한국의 월남전 파병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워싱턴에서 인상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오버도퍼는 말했다. 또 9대 함병춘 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와 한국의 핵 개발 문제를 워싱턴에 설명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야 했고, 12대 김경원 대사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군을 투입하면 안 된다.”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친서를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과정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15대 한승수 대사의 경우 “국무부, 국방부뿐만 아니라 통상부 등 경제부처까지 활동영역을 넓혔다.”고 오버도퍼는 평가했다. 반면 12·12와 5·17을 거치며 신군부가 권력을 쟁취하던 당시의 10대 김용식 대사는 역할이 제한돼 있었다고 오버도퍼는 기억했다. 그는 또 햇볕정책을 워싱턴에 ‘세일’하는 역할을 맡았던 18대 양성철 대사에 대해서는 “운이 없었다.”고 말했다. 며칠 전 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했던 한덕수 주미 대사가 돌연 사표를 제출하고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곧바로 무역협회장에 추대되기는 했지만 국내에서나 미국에서나 ‘왜?’라는 물음표가 이어진다. 역대 주미 대사의 역할에 대한 논쟁은 있었지만, 사퇴 경위가 논란이 된 적은 거의 없었다. 무엇이 그리 절박했는지 그 속사정이 궁금하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씨줄날줄] 나선항의 오성홍기/구본영 논설위원

    부동항은 1년 내내 해면이 얼어붙지 않는 항구다. 위도가 높은 나라들일수록 부동항에 대한 집착이 강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제정시대 이래 남하 정책을 추진해온 이유다. 매서운 북서 계절풍과 함께 찾아온 올겨울 한파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중국 쪽 보하이(渤海)만이 얼어붙어 주요 항만의 어선 입출항이 한동안 중단됐다고 한다. 지난 1월 초 한때 서해안의 남포항 근해까지 결빙된 사실도 인공위성 사진으로 확인됐다. 부동항인 남포항이 얼어붙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제정 러시아가 동해의 청진·원산항에 눈독을 들였던 까닭을 짐작하게 한다. 러시아가 청일전쟁 후 3국 간섭으로 획득한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도 겨울엔 쇄빙선이 없으면 기능을 잃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과 나선 경제협력특구 개발에 최종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8년간 30억 달러를 쏟아붓는다고 한다. 더욱 주목되는 대목은 중국이 나선항의 4∼6호 부두를 개발해 50년간 사용할 권리까지 확보했다는 첩보다. 중국은 2008년에 이미 1호 부두 이용권을 따낸 바 있다. 나선은 외자 유치를 위해 만든 특별시다. 나진과 웅기로 불리던 조선시대부터 천연의 양항(良港)이었다. 북한은 웅기를 선봉군으로 개칭한 뒤 나진과 합쳐 1993년부터 나진-선봉시로 부르다가 2010년 특별시로 승격시켰다. 합의에 따라 나선과 북·중 국경을 잇는 55㎞ 철도 부설은 중국이 맡는다. 공사가 끝나면 중국은 새로운 항구 하나를 얻는 이상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한반도와 연해주에 막혀 동해 진출로가 차단된 중국으로선 큰 숨통이 트이는 형국이 아닌가. 어느새 주요 2개국(G2)으로 발돋움한 중국을 보며 부동항을 찾아 동진·남하를 거듭하던 러시아의 야심이 오버랩된다. 이는 중국 지도부의 입장에선 ‘꽃놀이패’일 게다. 중국사를 통틀어 대륙의 변란은 늘 만주(동북3성)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다고 전제했을 때다. 적잖은 비용을 들여야 하지만, 동북3성을 위한 인프라 투자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더구나 김정일 사후 흔들리는 북한을 미·일에 맞설 전략적 완충지대로 묶어두는 부수효과까지 있다. 하지만 오성홍기가 펄럭일 나선항에 중국 상선뿐만 아니라 혹여 항공모함까지 등장한다면 우리에겐 악몽의 시나리오일 게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큰 흐름을 못 읽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우리 정치권이 새삼 한심해 보인다. 연평도 사태 등 위기 때마다 총부리를 안으로 돌려 자중지란만 일삼고 있으니 말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씨줄날줄] 바가지 관광/임태순 논설위원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몇년 전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 주최 포럼에 나와 영국, 한국, 나이지리아 식당 종업원 중에서 나이지리아 사람이 가장 똑똑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식당 종업원은 식탁을 치우면서 음식 주문도 받고 계산도 하지만, 영국 식당에 들어가면 종업원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밖에 하지 못해 답답하다고 했다. 나이지리아는 한술 더 떠 한국 식당 종업원보다 더 능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식당에서 고객이 느끼는 만족감은 영국이 가장 좋고 다음은 한국, 나이지리아의 순이다. 영국 식당 종업원은 비록 한 가지 일밖에 할 줄 모르지만 살아가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반면 나이지리아는 개개인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번번이 당한다. 부정, 부패 등으로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은 일반적으로 경제력 차이로 구분되지만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가도 중요하다. 선진국은 약자나 강자나 제 할 일 하고, 법을 지키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사회적 갈등도 중재, 조정 등 정해진 절차를 따르면 공평하고 투명하게 해결된다. 부정, 비리가 개입될 소지가 적은 만큼 사회적 거래비용도 적게 든다. 이른바 저비용 고효율 사회다. 이는 물론 사회 구성원 간에 신뢰가 쌓여 있기에 가능하다. 그래서 미국의 사회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신뢰”라면서 “경제발전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얼마나 잘 보존하고 축적해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바가지 관광이 고개를 들고 있다. 남대문시장 포장마차에서 일본인 관광객에게 김치전에 맥주 2병을 5만원에 팔고, 콜밴은 2㎞밖에 가지 않았는데도 33만원을 내라고 횡포를 부렸다고 한다. 중국·일본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영글고 있는 관광대국의 꿈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바가지가 잦아지면 외국인 관광객은 우리나라를 불신하고 더 이상 찾지 않게 된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는데도 이런 후진적인 바가지 행태가 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관광산업은 고용효과가 크고 부가가치가 높은 대표적인 서비스 산업이다. 서비스업은 친절, 봉사 등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한번 무너진 신뢰는 다시 쌓으려면 몇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업주들도 눈앞에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긴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 관광공사 등 당국도 관련 업소를 대상으로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거물급/주병철 논설위원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 또는 진검 승부를 말할 때 등장하는 단골메뉴가 배수진(背水陣)이다.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候列傳)에 나오는 말로, 물을 등지고 진을 친다는 뜻이다. 원래 병법에는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두고 싸운다고 했는데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제위에 오르기 2년 전 한군을 이끌고 있던 한신(韓信)이 위(魏)를 격파한 뒤 조(趙)를 무너뜨릴 때 배수진을 쳐 승리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는 한신과 같은 ‘거물급’ 장수가 있어야 이길 수 있다. 거물급은 전쟁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스포츠, 연예 등 각 분야에 즐비하다. 특히 스포츠나 연예계에서는 내로라하는 거물급이 없으면 흥행을 담보할 수 없다. 판이 무르익고 흥미진진해 지려면 더더욱 그렇다. 거물급 가운데서도 위력이 가장 돋보이는 곳은 정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부산 서구에서 공화당 국회의원 후보로 나온 박찬종씨의 예가 그렇다. 그는 상대 후보인 신민당 김영삼 후보가 유세장소에 아예 나오지도 않자 “거물급, 거물급 하는데 나도 거물급 시험만 있으면 붙을 자신이 있다.”면서 거물급이라며 폼을 잡는 김 후보를 비난했다. 김 후보는 선거유세에 얼굴도 내밀지 않고 당선됐으니 박 후보로서는 분통이 터졌을 만도 하다. 이후 박씨는 거물급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쳤다. 거물급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검찰의 수사 리스트에 오른 거물급은 한마디로 죽을 맛이다. 검찰의 정조준 대상이다. 검찰은 굵직한 수사에서 거물급만 잡으면 절반 이상 성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구 권력 교체기의 권력형 비리 수사 때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물급들은 늘 포승줄에 묶여 감옥으로 가곤 했다. 얼마 전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저축은행 수사도,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수사도 거물급을 잡고 나서야 끝났다. 4월 총선,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계에 또다시 전략공천 대상자로 거물급 정치인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그제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새누리당 부산 사상구 후보로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전략공천될 거라는 얘기에 “새누리당이 거물급을 전략공천해서 선거판이 커질수록 바람직하고, 거물과 붙으면 더 좋죠.”라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홍 전 대표가 전략공천될지는 모르겠지만 거물급끼리의 빅매치는 유권자들을 흥분시키고 입맛을 쩍쩍 다시게 하는 묘미가 있다. 누가 이기든 그건 다음 얘기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씨줄날줄] 공약 베끼기 허실/구본영 논설위원

    미국 대학원에서 첫 수업 때였다. 자기 소개 뒤 교수가 맨 먼저 입에 올린 단어가 ‘표절’이었다. 즉, ‘다른 사람의 저작물의 일부라도 몰래 베끼는 일’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다. 표절은 선진국의 강단에선 가장 부도덕한 행위로 치부된다. 적발되면 치팅(cheating)을 하다 들켰을 때보다 더 엄한 처벌을 받는다. 여기서 치팅은 흔히 커닝(cunning)이라는 잘못된 표현으로 쓰이지만, 시험볼 때 부정행위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다. 반면 표절(plagiarism)은 ‘어린아이 납치범’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다른 사람의 창의를 무단 인용하는 것은 남의 ‘정신적 아이’를 훔치는 것과 같다는 뜻일 게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들 간 공약 베끼기가 횡행한다는 소식이다. 국민의 복지 욕구에 앞다퉈 편승하면서다. 이를테면 민주당의 무상 급식·보육·의료 공약은 과거 민주노동당이 창당 때 내세운 공약과 판박이 같다. 새누리당의 고교 전면 의무교육 공약도 2000년 민노당이 내건 공약을 빼닮았다. 요즘 여야가 내놓는 인기영합성 정책들이 데자뷔 현상(기시감·旣視感)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물론 다른 창작물과 달리 공약을 갖고 엄정한 저작권을 물을 순 없다. 어차피 각 당이 다른 나라의 제도를 베끼거나, 과거의 정책을 새로 포장해서 내놓는 형편이 아닌가. 원전을 찾아내는 것은 고사하고, 인용하면서 출처를 밝히기도 애매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민노당의 공약도 기실은 북유럽 국가의 복지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한다. 정작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재정 파탄을 우려해 현금을 지급하는 복지는 줄이고 있는 형편이지만. 민주당의 무상 의료 공약을 보며 한 탈북자의 말이 생각났다. “무상 의료를 선전하는 북한의 의료시설에는 치료에 쓸 약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요지였다. 사병 월급을 40만원까지 인상하겠다는 새누리당의 공약은 2002년 대선에서 민노당이 내건 사병 월급 현실화 공약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러잖아도 60만 대군을 유지하느라 엄청난 국방비가 소요되는 터에 가당키나 한 일일까. 혹여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 등 세 나라는 우리보다 소득도 월등히 높고 병력을 다 보태도 6만명이 안 되기에 가능할진 모르지만. 여야가 국민에게 도움이 될 정책을 서로 참고하는 것은 나무랄 일은 아닐 게다. 하지만 누울 자리도 안 보고 다리를 뻗듯 선심성 공약을 주거니 받거니 베껴 내놓는다면 가공할 일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찢어진 눈/최광숙 논설위원

    2005년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프랑스 파리 에르메스 매장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적이 있다. 화장하지 않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점원들이 영업시간을 넘겼다며 제지한 것이다. 윈프리는 당시 상점 안에 사람들이 쇼핑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생각해 엄청 화를 냈다고 한다. 만약 자신이 가수 셀린 디온,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였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명품 매장들은 명사들에게는 영업시간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결국 에르메스는 윈프리에게 사과했다. 지난해 10월 크리스찬 디올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유대인 모욕 파문으로 해고됐다. 그가 카페에서 한 커플을 유대인으로 지목하고 욕설을 퍼부은 데다 만취한 채 히틀러를 찬양하는 모습의 동영상이 한 언론에 공개되자 크리스찬 디올은 천재적인 디자이너를 가차 없이 잘라야 했다. 세계 30여개국에서는 인종·피부색·종교·성별 등에 따른 차별 또는 모욕 행위를 ‘증오범죄’(Hate Crime)로 분류해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조차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다못해 당초 백인 인형만 출시하던 바비 인형도 흑인·아시아·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의 인형을 내놓고 있지만 사람들 마음속의 뿌리 깊은 차별 의식을 없애지는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심지어 미국의 한 초등학교 교사마저 “나무에 오렌지 56개가 있는데, 노예 8명이 똑같이 가져간다면 몇 개씩 가져갈 수 있나?”라는 수학 문제를 숙제로 내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니 말이다. 최근 미국 애틀랜타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한국 교민 김모씨가 ‘찢어진 두 눈’이 그려진 음료 컵을 받아 한국인 비하 논란이 되고 있다. 보통 주문을 받으면 컵에 고객의 이름을 적는데 백인 종업원이 김씨의 컵에 ‘찢어진 눈’을 그려 건넸다고 한다. ‘눈이 찢어진’(chinky-eyed)은 서양에서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는 표현이다. 앞서 지난달 뉴욕 맨해튼 파파존스 매장에서 직원이 한국인 고객의 영수증에 ‘찢어진 눈의 여성’이라고 표현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파문이 커지자 파파존스 본사는 해당 직원을 해고하고 트위터를 통해 공식 사과했다. 그나마 성의 있는 답변을 회피하는 스타벅스 측보다 낫기는 했다. 사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우리도 지난해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 여성이 목욕탕 출입을 저지당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적이 있지 않은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바보 3주기/임태순 논설위원

    바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지적 능력이 떨어져 제 앞가림도 못할 때 흔히들 바보라고 놀린다. 그러나 바보가 항상 남에게 속고 이용당하고 놀림만 당하는 것은 아니다. 똑똑한 사람의 꾐에 빠져 제 것을 나누어 주고, 상황변화에 대처하지 못해 앞만 보고 가지만 오히려 강자가 되고 승자가 된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 길을 가는 ‘바보의 역설’이다. 이러한 바보의 양면성은 이솝 우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 먹이를 물고 다리를 건너다 물가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뛰어드는 ‘어리석은 바보’ 개가 있는가 하면 토끼와 경주를 벌여 이기는 ‘우직한 바보’ 거북이도 있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바보 이반’에 나오는 이반도 우직한 바보다. 악마는 잘난 형들을 괴롭히고 골려 주지만 묵묵히 일하는 이반에겐 끝내 당해내지 못하고 도망가고 만다. 우리 주위엔 우직한 바보가 적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렸다. 부산에 출마하면 떨어질 줄 알면서도 눈치 보지 않고 여러 번 나가 고배를 마셨다. 결국 지역감정을 타파하려는 진정성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그를 대통령의 길로 이끌었다. 정계의 ‘원조 바보’는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난 김근태 전 의원이다. 그는 옛 민주당 경선 때 스스로 정치자금법을 위반했다고 고백했다. 말 바꾸고 불의와 타협하는 현실에서 그는 손해 볼 줄 뻔히 알면서도 원칙은 양보하지 않는 바보였다. 지난해 숨진 애플사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도 바보 반열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05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를 하면서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눈 팔지 않고 파고드는 집요함이 없었다면 정보기술(IT)분야에서의 그의 성공은 요원했을 것이다. 노자는 ‘대지약우’(大智若愚)라고 했다.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다.’는 말이다. 버릴수록 채워지고 아낌없이 베풀수록 더 많은 것이 돌아오는 게 세상이치다. 바보가 아니면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큰 깨달음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파스텔로 듬성듬성 그린 자신의 자화상에 ‘바보야’라고 적어놓은 자칭 바보다. 약자와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사랑을 실천해온 평생 바보였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16일이면 어언 3년이 된다. 김 추기경 선종 3주기를 맞아 서울 명동 등지에서 자선음악회, 사진전, 전시회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그가 더욱 그리워진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명상 식사법/최광숙 논설위원

    스티브 잡스, 리처드 기어, 마이클 조던, 비틀스의 존 레넌. 그들의 공통점은 ‘명상 예찬론자’다. 선불교에 심취했던 애플의 최고 경영자 잡스의 집에 별도의 명상 장소가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달라이 라마의 속가 제자로 불리는 배우 기어는 “명상을 하고 나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말할 정도로 명상에 푹 빠져 있다. 요즘 명상을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명상은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고, 신체적·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묘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다. 그뿐만 아니라 우울증·불면증·고혈압·암 등 각종 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한몫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유럽에서는 명상의 효과를 인정받아 의료계에서도 보완요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명상을 꾸준히 하면 부정적 정서가 긍정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자율신경을 조절해 자연치유력도 향상시킨다고도 한다. 질병으로 변형된 유전자도 정상적으로 되돌려 놓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런 명상에 대한 의학적 연구에 힘입어서인지 전 세계에 명상 바람이 불었는데, 그중 걷기 명상은 몇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유행처럼 번졌다. 앉아서 하는 기존의 명상과 달리 조용히 걸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걷기 명상은 ‘숲 걷기 명상’ ‘꽃길 따라 걷기 명상’ ‘경복궁 돌담길 따라 걷기 명상’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최근 미국에서 불교식 명상 식사법이 유행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 식사법은 음식을 25~30차례씩 꼭꼭 씹고, 입 안의 음식을 다 삼킬 때까지 포크를 잡지 않는다. 식사 중 TV를 보거나 컴퓨터·휴대전화를 하지 않고, 누구와도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 다만 음식이 어디에서, 누구의 손을 거쳐 내게 왔는지, 내가 왜 이 음식을 먹는지 등등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러면 마음의 안정도, 먹는 즐거움도 얻는다고 한다. 먹으면서 수행하는 셈이다. 구글에서도 지난해 9월 본사로 걷기 명상을 전파했던 주역인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을 초청해 명상 식사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다고 한다. 반응이 좋아 구글에서는 한달에 한번 채식으로 침묵 식사를 한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숭산 스님은 일찍이 ‘오직 ~할 뿐’이라며 명상 식사법을 설파한 바 있다. 하버드대 출신 현각 스님의 스승인 숭산 스님은 “밥 먹을 때는 오직 먹을 뿐, 수행할 때는 오직 수행할 뿐”이라면서 순간순간에 집중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지 않았던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교권조례/주병철 논설위원

    진화론을 증명한 찰스 다윈이 종자(種子)의 진화를 연구하게 된 것은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호를 탈 때부터였다. 자연을 관찰하고 미지의 자연을 몸소 체험하며 사색하는 것이었지만,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힘은 스승인 헨슬로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다윈의 케임브리지대학 은사인 헨슬로는 식물학·곤충학·지질학 등에 박식한 사람이었는데, 그보다는 제자들이 존경하는 인격자였다. 다윈은 “내가 세상에서 성공하였다고 인정받는 것은 오로지 헨슬로 선생의 덕분”이라고 말했다. 제자들의 스승에 대한 예의는 동양에서 더하다. 제자가 스승을 공경함을 이르는 정문입설(程門立雪)이 그런 예에 속한다. 북송 때 유초(游酢)와 양시(楊時)가 대유학자인 정이천(程伊川)을 처음 찾아갔을 때 얽힌 고사에서 유래한다. 이천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고 두 사람은 조용히 서서 기다렸다. 이윽고 이천이 그들을 발견하고 물러가라고 했다. 이때 문밖에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다고 한다. 제자가 스승의 발자국을 따른다는 의미의 역보역추(亦步亦趨)도 비슷하다. 장애를 이겨내고 미국 최고의 하버드대에 입학해 평생을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일한 헬렌 켈러의 스승 애니 설리번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헬렌 켈러의 위대한 스승 애니 설리번’도 제자에게 스승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일깨워 준다. 자신도 시각장애인과 비슷한 시력을 가졌으면서도 헬렌에게 장애아라서 특별한 대우를 받기 이전에 인간의 심성과 예절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 그의 특별한 교육관은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불행히도 요즘 제자와 스승의 관계는 예전만 못해 안타깝다. 2006~2010년 시·도별 교권침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폭언이나 욕설·문자메시지 등으로 교권이 침해당한 사례가 전체 수백건의 절반이 넘고,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예는 30%가량 됐다. 가히 ‘스승 수난시대’다. 서울시의회 일부 교육의원이 그제 학생인권조례 시행에 따른 교권 침해 우려를 차단하는 차원에서 교권조례를 제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교원단체와 일선 학교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는데, 이번에는 교권조례로 교사와 동료, 교사와 교장 간의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원래 사제관계라는 게 마음으로 존경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권조례가 학생인권조례처럼 갈등 조례로 변질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씨줄날줄] 상담원의 눈물/임태순 논설위원

    어느 기업에 매일 찾아와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있었다. 제품에 불만이 있어서인가 하고 교환, 환불 등으로 달래거나 봐달라며 사정하고 위협해도 통하지 않아 전문 상담사의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며칠 지나지 않아 골칫거리 고객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상담사에게 비법을 물어보니, 회사에 불만을 이야기했는데 담당자가 들어주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며 자신은 단지 그의 이야기를 죽 듣기만 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상담 수요가 늘고 있다. 업무 또는 조직 구성원과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과 관련, 스트레스를 받거나 강박관념에 시달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소통 단절 또는 소외로 인해 이야기 상대를 찾는 경우도 늘고 있다. 상담자의 제1덕목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傾聽)이다. 물론 노련한 상담가는 상대방의 말에 담긴 표면적인 메시지 외에 말할 때의 몸짓, 감정 등 이면의 내용까지 읽지만 초보 상담자는 내담자(談者)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상담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친구나 마음이 통하는 동료가 자신의 고민이나 불만을 들어주기만 해도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감정을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감정 교류를 통해 서로 마음이 통하는 ‘라포’(Rapport)가 형성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경제난 등으로 살기가 어려워지면서 자살자들이 늘고 있다. 자살충동자 상담의 경우 익명으로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어 전화상담이 일반적이다. 자살 상담도 물론 경청과 공감이 절대적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어려운 처지를 이해해 주어야지, 자살행위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며 논리적으로 맞서는 것은 금물이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상담원들이 상담 후유증으로 ‘남모를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 자살충동자와 감정이입을 하다 보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그들을 도와주지 못한 데 대한 무기력감·죄책감 등으로 자책한다는 것이다. 내담자와 공감대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심리적 고뇌에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상담자들에게 전문가의 심리 치료를 받게 한다. 오랜 시간 상담으로 인해 심신이 피로해지는 데다 내담자의 세계에 상담자가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원봉사 또는 비정규직 형태로 상담원을 꾸려가는 우리나라 현실에선 너무 먼 이야기인가.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재외국민 투표 명암/구본영 논설위원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보스턴 차(茶) 사건’이다. 영국의 가혹한 세금 징수에 반발한 식민지인들이 1773년 보스턴 항에 정박한 배에 실려 있던 홍차 상자들을 바다에 내던졌다.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구호와 함께. 투표권도 없는데 왜 영국정부에 세금을 내야 하느냐 하는 원초적 항변이었다. 40년 만에 재개되는 재외국민 투표를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재외국민 투표는 국외에 거주·체류하는 국민의 참정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2007년 결정에 따라 부활했다. 국민의 참정권 확대와 평등권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해외에서 선거관리의 어려움에 따른 부정 선거나 교민사회의 분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4·11총선을 앞두고 재외국민 투표 열기가 뜻밖에 시들한 것 같다. 선거등록 마감을 5일 남겨둔 그제까지 등록자가 8만여명에 그쳤다고 한다. 전체 재외국민 선거인 223만여명의 3.6%에 불과하다. 외교통상부와 중앙선관위는 158개 재외공관에 재외선관위를 설치하고 213억원의 선거관리 예산을 배정했다. 하지만, 정작 생업에 바쁜 동포들은 무덤덤한 모양이다. 여권에서 우려했던,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의 ‘국적 세탁’과 ‘종북(從北) 투표’ 징후도 아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당초 걱정했던 시나리오가 가시화되지 않았다고 안도하긴 아직 이르다는 게 중론이다. 재외국민은 비례대표 선거만 하고 지역구 투표를 할 수 없어 투표 열기가 뜨겁지 않지만, 대선은 다를 것이란 얘기다. 정치권의 과열경쟁으로 결국 갖가지 부작용이 드러날 것이란 우려다.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여야 대권주자들이 미국·일본·중국 등의 해외 한인단체들과 손잡고 표밭갈이에 나서면서다. 재외동포 몫으로 비례대표 몇 석을 준다는 부추김 탓일까. 회원은 없고 회장단만 있는 단체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구호를 뒤집어 보자. 납세하지 않는 이들에게 투표권을 줘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미국이 해외의 미 국적자들에게 세무신고를 해야만 투표권을 주는 이유다. 어찌 보면 우리가 미국보다 더 전향적으로 해외 영주권자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셈이다. 원칙론으로 봐도 해외 교민들은 체류국의 주류 사회에 뿌리를 잘 내리는 게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들이 고국의 정치권 풍향에만 촉각을 세우도록 부추겨 동포 사회를 분열시키는 일은 온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씨줄날줄] 포클랜드 vs 말비나스/이도운 논설위원

    남아메리카 대륙의 아르헨티나 남단에서 동쪽으로 460해리 떨어진 곳에 나비가 날개를 편 모양의 군도(群島)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이 최근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포클랜드(Falkland Islands)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말비나스(Islas Malvinas)라고 부른다. 포클랜드 군도는 16세기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등 유럽의 항해가들에 의해 무인도로 처음 발견됐다. 1832년 영국이 고래잡이 기지로 삼기 위해 영유권을 선언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군도의 영유권도 계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982년 4월 2일부터 두 나라 간에 75일간에 걸친 영유권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포클랜드 군도는 중심지 스탠리가 있는 동쪽 섬과 서쪽 섬 그리고 776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돼 있다. 면적은 1만 2173㎢로 경기도(1만 136.16㎢)와 서울(605.52㎢)을 합친 것보다 조금 크다. 인구는 3140명(2008년 7월 조사)밖에 되지 않으며 이 가운데 2000명이 스탠리에 살고 있다. 원주민이 61.3%로 가장 많고 영국인 29.0%, 칠레인 6.5%, 스페인인 2.6%이며, 일본인도 0.6%가 사는 것으로 통계에 잡혀 있다. 군도 자체의 경제적 가치도 그다지 크지 않다. 주 산업은 목양(牧羊)이다. 양의 수가 60만 마리에 이른다. 수목이 자라지 않는 불모지가 많아 농산물은 거의 재배되지 않는다. 2005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은 7500만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5000달러로 우리나라보다 조금 높다. 화폐는 포클랜드 파운드를 별도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포클랜드는 현재보다 미래의 가치가 크다. 우선 근해에 많은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인류의 마지막 자원 보고라는 남극 대륙의 전진 기지에 해당된다. 1차 세계대전 때에는 남대서양의 영국 해군기지 역할을 했다. 부근 해상에서 영국과 독일 함대의 전투가 벌어졌던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1982년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가 패배한 이유는 100가지가 넘을 것이다. 그러나 1999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했을 때 만났던 현지 지식인의 탄식은 아직도 마음을 두드린다. “4월 2일 드디어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주요 일간지의 헤드라인은 그 뉴스가 아니었습니다. 톱 뉴스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아르헨티나가 어떤 나라와의 축구 경기에서 2대0으로 이겼다는 겁니다. 이러고도 우리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씨줄날줄] 모나리자의 눈썹/최광숙 논설위원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해 9월 평소와 달리 선명하고 강한 눈썹 문신을 하고 나타났다. 그 이후 그는 스마트폰 게임 앵그리버드와 닮았다며 ‘홍그리버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눈썹 문신은 대표적인 ‘관상 성형’ 중의 하나다. 단순히 인상을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12월 디도스 사태가 터지면서 대표직을 물러났다. 관상학에서는 눈썹 모양으로 장래운을 점친다. 초승달 눈썹은 대인운이 좋아 출세길이 열리고, 눈썹이 끊기면 동분서주하나 결과가 미진하다고 한다. 일자 눈썹은 안정적이고, 팔자 눈썹은 두뇌가 명석하다고 한다. 눈썹 색깔이나 길이에 따라 운도 달라진다고 한다. 관상학 어디에도 눈썹이 없는 경우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굳이 쓴다면 풍파에 시달리는 험난한 인생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초상화인 ‘눈썹 없는’ 모나리자는 다르다. 전 세계 수많은 관람객들이 순전히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다. 누드 모나리자, 진주 장식을 한 모나리자, 콧수염을 단 모나리자 등 라파엘로와 앤디 워홀 등 동시대 화가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화가들도 모나리자를 모방한 작품을 남겼을 정도로 미술사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모나리자의 매력은 여태껏 풀지 못한 신비스러운 수수께끼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델과 정확한 제작 시기, 야릇한 미소의 의미 등 온통 미스터리투성이다. 모델을 놓고는 피렌체의 부호 상인의 부인인 리사 게라르디니라는 얘기도 있고, 다빈치 자신의 자화상을 여성화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가장 큰 논란은 모나리자 그림에는 눈썹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거다. 이를 놓고도 눈썹을 뽑는 것이 당시 미의 기준이었기에 그렇다는 주장이 있다. 넓은 이마가 섹시하다고 해 눈썹 뽑기가 유행이었다는 설이다. 한 미술전문가는 특수 카메라를 사용해 분석한 결과, 원래 눈썹이 그려졌으나 복원 과정에서 지워졌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모나리자와 똑같은 쌍둥이 모나리자가 발견됐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하던 모나리자 복제품은 16세기 초 다빈치의 제자가 그렸다고 한다. 스승의 작품을 따라 그린 이 모작품이 원작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눈썹이다. 원작에 없는 눈썹을 그렸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모나리자의 눈썹을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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