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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현영이가 만난 하느님

    정 회 옥 버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모두 내립니다.현영이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마지막으로 내리려던 운전기사님이 현영이를 봅니다. “넌 왜 내리지 않니?”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에요.” “하지만 여기는 종점이라 모두 내려서 다른 버스를 타야 한단다.” 현영이가 내린 곳은 한번도 와본 적이 없는 큰 호텔 앞이었습니다.반대편에는 바다가 보였습니다.학교가 끝난 뒤 버스를 탔지만 오늘은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현영이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버스가 돌고 돌아 다시 집 앞까지 데려다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옳은 생각이 아닌 모양입니다.엄마가 걱정하실 겁니다.그 생각을 하니 서둘러 집을 찾아야겠습니다.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영 떠오르지 않습니다.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봅니다.친구들과 뽑기도 하고 게임을 하느라 200원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방파제 위에 섰습니다.바다는 온통 파랗습니다.그리고 멀리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부분은 눈이 시려서 볼 수가 없습니다.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부릅니다.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바다에 눈을 돌렸을 때입니다. “넌 누구니?” 현영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누구냐니까?” 거대한 몸집을 한 바다가 조금 화가 난 듯 다시 묻습니다. “나,나는 최현영.초등학교 1학년이야.” “그런데 혼자 여기까지 온 거야?” “응,그렇게 됐어.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아.” “그래,집은 어딘데?” “초원 청아 아파트.너 혹시 모르니?” “글쎄,잘 모르긴 하지만…….초원이니까,아마 풀이 많고 산 가까이에 있지 않을까?” “그래,맞아.난 가끔 집에서 가까운 산에 올라 가곤 했단다.” 현영이는 기뻐서 말했습니다. “아함.” 바다가 큰 소리로 하품을 합니다. “미안해.도와주지 못해서.난 지금 너무 졸려.이른 아침부터 이곳까지 밀려왔거든.잠시 쉬어야겠어.난 또 해가 질 무렵 다시 반대쪽으로 이동을 해야 해.안녕.” 바다는 그렇게 말하고 잠잠해졌습니다.현영이는 혼자가 되었습니다.점심도 먹지 못했습니다.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바다는 좋겠습니다.혼자가 아니고 모두 같이 있어서 집을 잃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바다의 말이 생각나 현영이는 아래쪽으로 걸어갑니다. 한참을 걸었습니다.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픕니다.잠시 현영이는 길옆에 걸터앉았습니다.엄마의 말이 생각납니다. “학교가 끝나거든 한눈 팔지 말고 곧장 집으로 와야 한다.” 어떡하죠? 오늘은 곧장 집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너무 멀리 와 버렸으니까요.잠시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생각이 눈물로 변했습니다.눈물 몇 방울이 땅위에 똑똑 떨어졌습니다. “아얏,비가 오나 봐.” 정말 작은 소리였습니다.주위가 조용하지 않았다면 현영이는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눈을 아래로 향했습니다.좀 전에 떨어트렸던 눈물이 조그만 동그라미를 만들었습니다.그리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개미를 발견했습니다. “개미야,뭐하니?” 현영이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비가 오려나 봐,서둘러 집에 가야겠어.난 비가 싫어.” “그건 내 눈물이야.비는 오지 않아,내가 도와줄게.” 현영이는 개미를 마른 땅 위로 옮겨주었습니다. “고마워.그런데 넌 왜 여기서 울고 있니?” 개미는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습니다. “난 집을 잃어버렸단다.버스를 탔는데 너무 멀리와 버렸어.” “그랬구나.” “너 혹시 초원 청아 아파트가 어디 있는지 알겠니?” “미안해.나는 거의 땅에 붙어 있어서 땅위에 있는 물체를 잘 알아보지 못한단다.그리고 눈도 좋은 편이 아니야.하지만 멀리 왔다면 온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될 것 같구나.” “그렇구나.” “난 서둘러 집에 가야겠어.어두워지면 집을 찾기가 곤란하거든.” 개미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가버렸습니다.현영이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개미의 말처럼 하는 것이 집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큰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졌습니다.망설이는데 바람이 휙 불어옵니다.아직 바람이 찹니다. “어떡하지.” 현영이는 걱정스레 혼자 말을 했습니다.그 말을 스쳐가던 바람이 들었습니다. “뭘 어떡해?” 차가운 바람이 현영이 곁에 머물자 갑자기 몸이 떨렸습니다. “미안해.내가 아직 차갑게 느껴지지.그러나 네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단다.” 바람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고마워.난 집을 잃어버렸단다.도무지 집을 찾을 수가 없어.” “안됐구나,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바람아,너는 안 가본 곳이 없지?” 현영이가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럼,초원 청아 아파트가 어디 있는지 아니?” “글쎄,우리는 한 곳에 머물지 않아.그리고 우리가 옮겨 다니는 속도는 굉장히 빠르단다.너도 알 거야.특히 여름철 태풍은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바다를 건너기도 해.미안해,도와주지 못해서.” “아니야,괜찮아.” “빨리 집을 찾았으면 좋겠다.날이 어두워지기 전에,안녕.나도 바빠서 같이 있어줄 수가 없구나.” 바람이 윙 소리를 내며 지나갔습니다.또 현영이는 혼자가 되었습니다.점심도 먹지 못했습니다.그래서 더 춥게 느껴집니다. 집 생각이 납니다.엄마는 현영이가 올 무렵 점심을 차려놓고 기다립니다.아마 엄마도 걱정이 되어 밥을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갑자기 엄마가 몹시 보고 싶습니다.엄마는 승용차로 학교를 데려다 주겠다고 했습니다.그러나 현영이는 친구들과 놀고도 싶고,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싶어 엄마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아빠는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십니다.아빠의 몸에서는 한약 냄새가 납니다.아빠는 한의사입니다.가끔 쓴 한약을 안 먹겠다고 버둥대는 현영이를 꼭 안고 어르십니다.약을 잘 먹으면 놀이공원에 데려간다든지 아니면 맛있는 갈비를 사주겠다고 말입니다. 현영이는 눈을 꼭 감고 못 이기는 척 받아먹습니다.최대한 아빠의 애를 태우면서.그러나 현영이는 아빠가 든든합니다.빨리 집에 가고 싶습니다. 4월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가 짧습니다.벌써 주위가 어둑어둑해집니다.현영이는 조바심이 납니다.기억을 더듬어 버스가 왔던 길을 생각해 봅니다.두 길 중 한 길이 분명합니다.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살필 걸 그랬습니다.간신히 한 길을 택했지만 조바심만 날 뿐 확실하지 않습니다.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얘,넌 누구니? 힘이 없어 보이는구나.” 현영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그러나 아무도 현영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나야,어둠이.” “응?” “어둠이라구.” “벌써 어두워지는구나.” “지금은 그래도 덜 어두운 편이야.저쪽에선 더 까만 애들이 준비하고 있단다.” 어둠이 반대편을 가리키며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어떡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난 집을 잃어버렸단다.” “큰일 났구나.조금 있으면 더 어두워질 텐데.” “넌 혹시 초원 청아 아파트를 아니?” “초원 청아 아파트?” “응.그곳이 우리 집이야.” “그런데 넌 왜 여기까지 왔니?” 어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합니다. “난 버스를 타고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를 다닌단다.엄마가 그 학교가 더 좋다고 그곳까지 보냈거든.” “엄마들의 욕심은 그렇지.그런데?” “오늘은 다른 생각을 하다가 내릴 곳을 지나쳤어.난 버스가 돌아서 다시 우리 집까지 갈 거라고 생각했거든.그런데 종점에서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나도 내리게 됐어.그리고 여기까지 걸어서 왔어.” “저런 고생이 많았구나.그러나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을 찾아야겠다.밤은 낮과는 달라.사람의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의 차이지.밤에는 나쁜 마음이 더 강해져.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그냥 있으면 안돼.나를 따라와.” 현영이는 어둠이 이끄는 대로 몇 발자국 움직였습니다.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사람들이 많이 서 있었습니다. “여기가 좋겠어.잘 봐.” 어둠이 말했습니다.현영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분이 좋겠어.이 분은 옷차림은 조금 허름하지만 마음이 착해 보여.침착하게 물어봐.넌 학교도 다니니까 잘 할 수 있을 거야.” “고마워.” 어둠이 빙그레 웃습니다. “빨리 서둘러.” 어둠이 현영이의 등을 떠밉니다.현영이는 용기를 냈습니다. “저,아주머니.제가 집을 잃어버렸거든요.초원 청아 아파트를 아세요?” “그럼,알고말고.나도 거기 근처에 산단다.그동안 고생했겠구나.” 아주머닌 정말 어둠이 말대로 마음씨가 착한 분이었습니다. “자,이 버스를 타면 된단다.그리고 아줌마랑 같이 내리면 돼.” “고맙습니다.” “아이고,인사성도 바르구나.” 주머니가 활짝 웃었습니다.벌써 집에 도착한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많이 기다렸을 엄마가 생각납니다.빨리 엄마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얼마나 갔을까요.그동안에도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내렸습니다.사람들은 표정이 없습니다.아마 피곤한 모양입니다.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아니면 눈을 감고 있습니다. “여기야.이젠 내리면 된단다.” 현영이는 눈에 익은 동네가 보이자 가슴이 뛰었습니다.버스에서 내려 다시 인사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래,어서 가거라.엄마가 많이 기다리시겠다.” 한참 동안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현영이는 달려가다 몇 번 이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이제 아주머니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그 곳에는 어둠이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어둠이 씨익 웃어 줍니다. 현영이도 한 번 웃어주고 달렸습니다.엄마와 아빠가 기다리는 집으로. “딩동” “누구세요?”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바로 나옵니다. “엄마.” “현영아.정말 현영이구나.하느님 감사합니다.” 엄마는 그동안 몇 차례나 밖으로 현영이를 찾아 다녔습니다.그리고 조금 전에 집에 들어와 경찰서에 전화를 했습니다. “집을 잃어버렸으면 전화를 해야지.그럼 엄마가 데리러 갔을 텐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면 쉽게 집에 올 수 있었겠지만 아마 바다나 개미,바람과 어둠이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겠지요. “그냥,물어서 왔어요.” 집에 돌아온 현영이는 안심이 되면서 피곤해졌습니다.아빠도 일찍 들어왔습니다.온 가족이 모였습니다.밥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일기를 쓰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자리에 든 현영이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엄마는 분명 하느님이라고 했습니다.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느님은 만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고마운 분들은 많습니다.바다,개미,바람,어둠이,아주머니.모두 다 고마운 분들입니다. 집과 숨바꼭질을 한 현영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 끝 - ■당선 소감 겨울,바람 끝에 칼이 숨어 있다.회색의 거리로 나왔다.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기웃거렸다.누군가 나를 봐주었으면 했을까.그것은 나름대로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였다.수많은 사람들이스쳐 지나갔다.그들은 표정이 없는 얼굴로 옷깃을 꼭꼭 여민 채 빠른 속도로 내 곁을 지나쳤다. 맥없이 또각또각 걸음을 옮기는데 가는 눈발이 발길을 잡았다.하늘을 보았다.가는 눈발이 함박눈으로 변했다.순간 같은 곳에서 많은 시선을 보았다. 일시에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향했다.그들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보았다.곧이어 수없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욕심이 생겼다.저 눈 같은 동화를 써 봤으면. 잠시 여유를 가져 보자.무심히 스치는 것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이 얼마나 간절히 말을 걸고 싶어 하는지.나 또한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우리는 모두 현대라는 빠르고 거대한 틀 속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보고 싶은 분들이 많다.조그만 가능성을 발견해 주셨던 배봉기 교수님,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광주 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그리고 나보다 더 가슴을 졸였을 가족들,같이 했던 문우들,세상 밖으로 끌어내 주신 심사위원님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약력 1959년 광주 출생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최종심까지 올라온 작품은 김혜정의 ‘청새리상어의 눈물’,김희진의 ‘휘파람새를 아세요?’,윤숙희의 ‘풍경’,최지혜의 ‘손수레에 넣어준 사랑’,정회옥의 ‘현영이가 만난 하느님’ 등 다섯 편이었다.이들 작품은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어서 당선작 결정에 고심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먼저 ‘손수레에 넣어준 사랑’은 지문보다 대화에 의존한 문장이 불안하고 전체적으로 응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풍경’은 소재가 진부하고 주인공 보현이가 밤길을 걸어 종소리를 찾아오는 부분에서 작위성이 드러난다는 이유로,‘청새리상어의 눈물’ 또한 실어증을 앓던 어린이가 말을 하게 되는 부분에서 작위성이 느껴져 오히려 감동이 반감되었다는 이유로 먼저 논의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남은 두 작품을 두고 고심한 결과 ‘현영이가 만난 하느님’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휘파람새를 아세요?’는 군더더기 없는 치밀한 문장과 소설적 완결성을 보여주어 앞날이 크게 기대되는 작품이었다.그러나 동화라기보다는 소년소설에 가깝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당선작 ‘현영이가 만난 하느님’은 잔잔한 일상 속에 내재돼 있는 동심을 발견하고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어떤 소중한 감동을 동화의 본질이라고 볼 때,이 작품은 그 본질에 성큼 가까이 다가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집을 잃은 어린이가 집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바다와 개미와 바람과 어둠에게 감사한 마음을 나타내는 데서 맑은 샘물과 같은 동심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낙선자에게는 격려를,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드린다. 조대현 정호승
  • 서울신문 신춘문예 /심사평

    본심에 올라온 11편 가운데서 4편을 골라 집중적인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그 결과 ‘바늘집’은 늙고 병든 시아버지와 재혼 대상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상의 여인의 심리를 정겹고 아름답게 그리고 있으나 삶의 본질을 파고들기보다 일상을 스케치하듯 가볍게 처리함으로써 소품의 인상을 면치 못한다는 점에서,‘눈물 먹는 도마뱀’은 치부와 쾌락에 탐닉하는 한 중년여인의 즉물적 인생관을 통해 세태를 풍자하고 있으나 적나라한 성희 장면의 지나친 등장이 문학적 순수성에 흠집을 남긴다는 점에서,‘장다리흰물떼새’는 분단 비극의 형상화에 공을 들인 작품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낯익은 설정과 남파 공작원의 생포를 둘러싼 전후 사정에 작용하는 우연성이란 약점 때문에 차례로 제외되었다. 마지막 남은 ‘호박(琥珀)’은 늦가을 밤 문경새재 정상에서 30년 주기로 쏟아지는 사자자리 유성우를 관측 촬영하는 손자와 지체장애 할아버지를 통해 외로움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다.천체를 관측하는 동안에도 손자의 마음은 줄곧 다른 별을향한다.손자의 마음속 일등성은 동아리 선배인 ‘그녀’다.할아버지의 일등성은 등나무집 할머니다.‘그녀’ 또한 자신을 버린 ‘그’라는 다른 일등성을 좇다가 끝내 불행을 겪고 말았다.별을 붙잡지 못하고 우러르기만 하는 삶은 불행하고 고단할 수밖에 없지만 ‘겨울의 대삼각형’을 이룬 채 시리우스를 마주보며 외롭게 반짝이는 프로키온처럼 섬뜩한 아름다움을 띠기도 한다.유성우가 비처럼 쏟아지는 밤하늘의 장관 속에서 저마다 외로운 별로서 존재한다는 인간의 정체성을 선명히 부각시킨 ‘호박’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김윤식 윤흥길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당선 소감

    “그게 뭐냐?” 신춘문예가 뭔지 등단이 뭔지도 잘 모르시는 아버지가 얼른 떠오른다.참 솔직하신 분인데.대뜸 또 생각이 난다.아들에겐 책 좀 읽으라고 하시면서,정작 당신은 읽어도 뭔 소린지 모르겠으니 너나 많이 읽으라는.그 어수룩한 목소리가 지금 나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고 있다. 방금 전에 아버님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전화기야 있으나 없으나 하는 나에게 아버지께선 간혹 내 가까운 동기의 전화기를 통해 연락을 주곤 하신다.동기가 나에게 전화를 건네자마자 아버님이 또 물어보신다.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그게 뭐냐?”참으로 숫되신 분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봐!” 그게 다다.마냥 좋다.나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럴 것이다.사실,나도 신춘문예가 뭔지 등단이 뭔지 잘 모른다.그저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려니. 푸짐한 인정과 사랑으로 나의 아픔까지 안아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리고,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학우들,특히,소박한 문학 모임 ‘벙어리 소녀’ 문학도들에게 감사한다.그리고 아직 채 익지 않은 열매를 거두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끝으로 나의 영원한 목자가 되어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린다.언제나 그렇듯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란 소설보다 어려운 모양이다. 김효동 ●약력 1978년 충북 음성 출생 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예정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호박(琥珀) - 김효동

    월령 29일,그믐이다. 동쪽 하늘에 그믐달이 비껴 떠 있다.망원경 경통에 입을 맞추고 숨을 길게 내쉰다.경통의 옆면을 스치며 부연 입김이 날아간다.파인더에 눈을 들이댄다.그믐달은 파인더의 십자선 중앙에 꼼짝없이 잡혀 있다.접안렌즈로 눈을 옮기고 핀트를 맞추자,달 표면의 크레이터가 또렷이 나타난다.달의 바다인 습기의 바다가 거친 암영을 채워가고 있다.그 주위를 비에타나 티코와 같은 크레이터들이 점점이 두르고 있다.크게 심호흡한다.내뱉은 입김이 옅은 달무리를 만들어내다간 금세 흩어진다.눈을 떼고 고개를 젖뜨린다.금방이라도 화구를 열 듯한 하늘이지만 아직껏 짙은 어둠만 머금고 있을 뿐이다.깊은 바다의 잔잔한 침묵을 그려내는 듯하다.꼭 움켜쥐고 있던 액세서리 호박을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온다.로스토크 연안 부두,김 선배는 독일에 가고 싶어 했다.오래 머물진 않을 거야.어디까지나 여행이니까…….호박이야.발트해를 상징한대.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북두칠성 국자의 머리 부분에 머물러 있던 눈동자가 작은곰자리를 거쳐 북극성으로 옮겨간다.호박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발트해,김 선배가 그곳에서 곤충이 박힌 호박을 캐고 있다면,나는 이곳에서 놈들을 낚아야 한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친다.간들거리는 고목 가지가 그믐달을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할아버지를 지그시 내려다본다.방한복을 여미는 모습이 어줍다.담배는 안 돼요.할아버지는 담배를 먼저대로 담뱃갑 속에 쑤셔 넣는다.할아버지의 등 뒤로 다가가 방한모를 씌우고 요철(凹凸)형 단추를 채워 드린다. 때각! 할아버지의 어깨가 움찔한다.손전등을 입에 물고 점퍼 속에 손을 넣는다.손바닥만한 관측일지가 차가운 공기를 맞는다.9월15일,강원도 횡성,오리온자리가 희미하게 보이다.맨눈 관측,화성이나 황소자리보다는 밝은 편임…….두 달이 훌쩍 지났구나.펜을 꺼내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11월18일,경북 문경새재.그믐달에 가까워 맨눈으로 3,4등성도 확인 가능.사자자리 부근을 향해실험 촬영.바람이 불지만 촬영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듯……. 망원경 앞으로 돌아온다.파인더를 단단히 고정하고 조심스레 미동나사를 조절한다.망원경의 방향이 찬찬히 천정(天頂)으로 향한다.하늘은 자정을 기해 이전까지의 침묵을 깨뜨릴 것이다.삼십 년을 넘게 만삭이었던 하늘이 자궁을 연다? 굉장히 매혹적이야.놈들을 사냥하는 일은 얼마나 더하겠어! 근사한 녀석들 많이 담아 와.플레이트로 고개를 돌린다.넉 대의 카메라가 좁은 플레이트 위에 빽빽이 올려져 있다.많이 잡아오면 괜찮은 놈으로 한 마리 주는 거지? 나도 꼭 찍고 싶었는데…….작년에 소백산에 갔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한 놈도 찍지 못했잖아.달이 보름달에 가까워서 큰 놈에게 희망을 걸었는데,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서 그것마저도 물 건너갔지 뭐야.편지하면 그 주소로 보내주는 거 잊지 마.바람에 실려 온 검불이 얼굴을 스친다.망원경의 접안부를 두 손으로 꼭 감싼다.밤하늘 이곳저곳에 빛을 게우고 번뜻 사라질 녀석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은 기필코 대어를낚아야 한다. 문경새재는 초행이다.소백산이나 함백산에서보다 수월한 등반이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귀띔이 이곳을 선뜻 결정하게 만들었다.잡광(雜光)이 없고 먼지가 적어 촬영이 용이한 곳이라는 정보는 관련 잡지를 통해 앞서 접한 터였다.산꼬대가 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괜찮은 촬영지다.나무가 많지 않은 나지막한 산언덕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 또한 썩 마음에 든다.고개를 들어올린다.밤하늘에 지독한 정적이 연출되고 있다.바람이 차다.귓불을 스치는 산바람은 가랑이까지 으스스하게 만들 정도다.할아버지가 으레 신경이 쓰인다.차에 계시는 편이 낫겠어요.내려가시겠어요?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가벼이 손을 올려본다. “괜찮아요.다 늙어서 한 번 찾아온 감기가 그 무슨 대수라고.” 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영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손자를 따라나서야겠다는 얄망궂은 고집을 쉬이 꺾을 수가 없었다.두통 때문에 소다를 댓 수저 퍼먹었거든.어째 머리가 다섯 배는 더 지끈거려요.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지려나…….할아버지를 향한 불안함이 이제는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으로 옮겨간다.온천 관광을 떠나는 부모님이 홀로 집에 계시기 적적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의 동행을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서릿바람에 아이를 업고 밭에 나온 기분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수안보에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내내 말이 없던 할아버지의 입을 트게 한 것이 차가운 기침이었다는 사실을 거슬러 생각하게 된다.화분증 탓에 봄마다 기침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은 없는 분이다.성치 않은 오른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 온다.당장 차로 모셔다드릴게요.얼마 버티기 힘드실 거예요.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니까…….그나저나,등나무집 할머니 말이다.왜,너도 알잖아,얼마 전에 네 엄마가 소개시켜준…….” 낚시용 승창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청승궂다.이내 지팡이 끝으로 낙엽 더미를 헤적이기 시작한다.땅 위에 글자를 새기고 있는 듯도 하다.낙엽을 헤치는 소리가 듣기에 좋지 않다.선영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네.경영학을 전공한다고? 수치에 매우 민감하겠군.아,자네도 들어서 알겠지만,난…….찻잔을 내려놓는 종업원의 행동이 거치적거린 모양이었다.남자는 말을 멈추고 김 선배의 어깨를 두드렸다.영문학과 선배야.우리 동아리 회장이었고…….이 년 전에 졸업했어.둘 다 초면이겠지? 나는 김 선배의 재킷에 박힌 장식용 버클에 시선을 고정했다.반갑네.남자는 내 시선을 밀쳐내듯 손을 내밀었다.손이 형편없이 못생겼군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꾹 삼켰다.나는 그가 청하는 악수를 건성으로 받아들였다.형편없기 짝이 없는 그 손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합니까! “성우라고 했지,아마?” 김 선배가 나를 대신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많이 찍어봤나? 사진 속에 별을 담는 것과 정물을 담는 것은 확연히 다르지.쉽사리 덤비지 말아야 할 것이 천체를 담아내는 일이야.한낱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간 큰 오산이지.듣자하니 소질이 많다던데…….무엇이든 역량이라는 것이 중요하지.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이 녀석이 찾아왔더라고.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이라고 보여주는데 볼품이 없더군.난 처음에 반딧불 사진인 줄 알았다니까.농담 삼아,개똥벌레의 일주 사진이네,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그랬지.” 남자는 김 선배를 돌아보며 짐짓 미소를 지었다.김 선배의 얼굴로 미소가 이어졌을 때,그녀의 재킷에 달려 있는 버클을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었다.어째서 별을 찍지? 나는 남자의 점잖은 말투가 듣기에 거북했다.글쎄요,뭐든 좋아지기 시작하면 따라가는 법이죠.남자는 한동안 내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선물을 하나 할까 하는데,어떤가? 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과장된 걸음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누군가 카페 바닥에 바나나 껍질을 놓아두었더라면,하고 생각했다.괜찮아,성우야? 불편해 보여.난 너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나는 김 선배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이 분야에선 알아주는 베테랑이야.물론 지금은 접은 상태지만…….작년엔 외국의 한 천문대가 주최한 천체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어.나이가 많은데도 열정이 대단해.열정이라는 말로 남자의 나이를 짐짓 감추어보려는 그녀의 말투가 왠지 우스꽝스러웠다.저 사람 곧 인도로 떠날 거야.다른 세상을 접해 보고 싶대.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많이 도와줄 거니까,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만나봐.남자의 구두 소리가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카페 가득 둔탁한 공명을 일으키며 다가왔다.할머니가 마음에 안 드세요,할아버지? “아니,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할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이내 기침을 토해낸다.기침 소리가 밤하늘에 긴 메아리를 긋는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의 안경알에 그믐달이 갇혀 있다.그믐달이 거듭 요람으로 변하는 착각이 든다.할아버지의 심상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산록을 오르면서 할아버지는 내내 요람 위에서 쉬고 싶다는 말을 되뇌었다.무릎을 매만지며 번번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요람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의족이 할아버지를 지탱하기엔 무리이지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그에 아랑곳없다는 듯 쉬지 않고 내 뒤를 따랐다.점점 뒤처지는 할아버지를 이곳까지 끌어올린 것은 아마도 달의 이미지가 전하는 느긋한 안주(安住)가 아니었을까.회답이라도 하듯 북극성 주위를 오르내리던 낙엽이 요람 위에 사붓 내려앉고 있다. “할망구가 은근히 피하더구나.어쩐지 아니다 싶었어.미련일랑 한푼 남길 것도 없다.네 엄마도 그렇지,그리 줏대 없는 할망구를…….” 할아버지는 의각이 끼인 다리를 쭉 뻗는다.아닐 거예요.할머니가 일부러 피하기야 하시겠어요? 할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가 귓가로 날아온다. 플레이트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 한 대를 집어 든다.애지중지하는 펜탁스67 기종이다.노출을 중단하고 필름을 교체한다.노출 시간을 초과한 감이 들지만 유성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될 일은 없다.다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필름이 아까울 뿐이다.대학에 다닐 때 처음으로 장만했던 카메라야.니콘FM2지.선배로서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자! 그믐달을 할퀴면서 한참을 꼬박거리던 나뭇가지가 툭 부러진다.배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배낭으로 고개를 돌린다.어서 받아,성우야.내년 가을에 유성을 촬영할 거라면서? 이번에 못 찍었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카메라 한 대 더 있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면서.어서 받아.나는 김 선배를 바라보다가 남자가 건네는 카메라를 말없이 받아들었다.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별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이 끝없이 생기더군.혼자 여행을 선택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가면 갈수록 새로운 걸 찾게 돼.물론 과거가 바탕이 된 새로움이겠지만.인도에 대해 아는 것 좀 있나? 힌두교? 일처다부혼? 아니면,마하트마? 남자와 김 선배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해해.아,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야,마하트마란.김 선배는 다시 돌아와 그렇게 몇 마디 던지고는 급하게 카페를 빠져나갔다.나는 김 선배가 잠시 우주로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불안감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힘으로 나타났다.그들이 지나간 카페 홀에 문뜩 간디와 마하트마를 외치는 남자가 부딪쳤다가 분산하는 이미지가 그려졌다.커피 리필해 드릴까요? 종업원은 나의 대답을기다리는 투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무안해하길 바라면서 그녀의 코밑을 계속해서 쏘아보았다.리필해 드리겠습니다.위대한 영혼 좋아하시네! 잠시 주춤하던 바람이 한달음에 몰려온다.옹그리고 있던 낙엽 더미가 소르르 흩어진다.달빛을 빌려 주위를 둘러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융단이 말리듯 낙엽 더미가 굴러간다.굴러간 낙엽만큼의 양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거년스럽다.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낙엽 한 장이 사부랑삽작 걸터앉는다.아니,어느새 날아간다.할아버지,녹차 드릴까요? “아니,됐다…….애초에 소개를 받는 게 아니었지,여시 같은 할망구!” 배낭에서 녹차 티백과 보온병을 꺼낸다.배낭 옆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힘없이 나동그라져 있다.다만 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웃음이 나온다.플레이트가 놓여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삼각대에 장착한 카메라와 플레이트 위에 올린 넉 대의 카메라가 하늘을 향해 조리개를 가만 열어놓고 있다.적도의 가대에 올린 카메라는 천구의 이동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가져오지 않은 남자의 카메라가 머릿속에 떠오른다.유성을 담아내기에 카메라가 적은 듯도 하다. 티백을 간닥거리며 망원경의 접안부를 들여다본다.카시오페이아와 페르세우스 사이에 웅그리고 있던 은하단이 어느 틈에 천정(天頂) 부근으로 이동해 있다.별들의 바다를 감상하기에 녹차의 양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없네,부담이 엔간히 드네,민망해서 자식들 볼 면목이 없네,다 늙어서 주책이 아닌가 싶네…….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괸다더니,뭐 그리 둘러댈 것이 많은지.보험 들으랄 때부터 알아봤지,내가! 참말로 사랑은 아무나 하나네 그려.” 녹차를 들이켜다 사레가 들린다.입술을 훔치며 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나의 시선이 어느새 할아버지의 고개를 따라간다.성도(星圖)를 펴놓은 듯한 밤하늘이다.고개가 각각의 별자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남쪽 하늘에 고래자리가 자오선 위를 조용히 헤엄치고 있다.서쪽 하늘,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말없이 지고 있는 모습이다.달을 품은 동쪽하늘,쌍둥이별의 카스트로와 폴룩스가 드높게 떠 있다.가슴속에 새겨진 성도가 보이지 않는 별마저 또렷이 그려내고 있다.아마 잦은 촬영에서 밴 습관일 것이다.멀리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이 외롭게 반짝인다.별을 본다는 건 말이야…….그건 결코 값싼 센티멘털리즘만으로 되지 않는 거야,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에겐.김 선배의 손가락이 작은개자리에 머물렀다.끝내 그 모습만을 유지하는 별은 없어.나 역시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진 않아.프로키온,다른 별들처럼 모여 있지 않고 외롭게 떠 있지.저 별을 보고 있으면…….아니다,값싼 감상은 내가 찾고 있네…….자,봐봐! 김 선배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천천히 움직였다.큰개자리의 시리우스와 베텔게우스를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다시 시리우스로 돌아오면…….김 선배의 손가락이 내 눈앞에 머물렀다.김 선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어색한 마음에 멀리 횡성군(郡)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니까,그렇게 그려보면 겨울의 대삼각형이 이루어지는 거야.네 손으로 한번 그려볼래?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주머니 속의 호박이 얼굴에까지 느껴진다. “생판 모르는 할망구 만나서 뭔 득을 보겠다고.내가 미쳤지!” 할아버지는 두 손을 비비며 몸을 움츠린다.몸 전체가 굼벵이처럼 오그라든다.정말 안 되겠어요,차로 돌아가요.할아버지는 대답이 없다.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치켜뜨고 달 쪽을 올려다볼 뿐이다.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 같아 안쓰럽다.달은 달일 뿐,요람은 그저 값싼 감상인 모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지독한 난시 탓에 할아버지에겐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밤하늘이라는 것마저 이곳에 와야 할 명분을 지우는 것 같아 답답하기까지 하다.어느새 할아버지의 발목까지 낙엽 더미가 덮여 있다.의족으로 낙엽을 헤치는 모습이 곰상스럽다.갑자기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의지해 승창에서 일어선다.차로 가시겠어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땅을 꾹 찌른다. “칼을 들었으면 두부라도 썰어야지,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산중턱을 엷게 스친다.등나무집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칠순을 넘겨보는 할아버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나에겐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 얼굴을 등나무집 할머니의 얼굴로 대신하겠다는 생각도 없다.다만,물 건너간 사랑을 되돌리지 못할 때 찾아올 슬픔을 고스란히 할아버지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작년 가을에 콤바인 예취날에 바짓부리가 걸려 발목을 잃은 할아버지에게 사랑은 그 후유증마저 낫게 할 수 있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생각지 못한 섬으로 가로막힐 때가 있다.경우에 따라선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사랑이 쉽사리 이루어지리란 기대는 들지 않는다.등나무집 할머니는 둘러대는 것이 아니다,어쩌면.할머니도 일부러 그러시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럼 만나지 말자는 게 진심이라는 게냐?” 아니,그런 것이 아니라,뭔가 사정이…….갑자기 눈 속에 번뜩하며 섬광이 스민다.고개를 젖히자 곧 하늘이다.드디어 화구를 벌린 모양이다.그대로 하늘에 눈을 처박는다.이중성단을 관통하며 희미하게나마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동시에 따라붙는다.단말마와 같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따라 금세 사라진 녀석이지만 잔상으로나마 눈 속에 남는다.보셨어요? 저기…….손가락을 펴 하늘을 가리키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관심도 없는 투다.대인이 또 세상에서 사라지는구나,하고 말하면서 그 사람 이런 말을 꼭 덧붙였어.자신은 타 없어지는 유성이 아니라,우주에 버려진 별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그 말이 무슨 뜻일까? 나는 선배가 말하는 남자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더니 결국 혼자가 되어버린 걸까? 그 사람 지금은 인도에 없어.또 다른 낯선 곳을 찾아갔겠지.김 선배는 간헐적으로 딸꾹질을 토해냈다.그러면서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었다.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어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한 번 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이번엔 네 엄마가 아니라,내가 직접 말해야겠어.만나서 담판을 짓든지…….성우야,두유 좀 가져다 다오.목이 다 탄다.” 배낭으로 다가간다.지퍼를 열고 배낭 속에 손을 넣어 두유를 찾는데 다시 유성이 떨어진다.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린다.큰곰자리 부근으로도 유성이 떨어지고 있다.큰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북극성을 오매불망하는 듯한 눈매가 큰곰으로부터 전해져 온다.거듭 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을 마지막으로 삼십 년 후에나 찾아올 사자자리 유성우다.모(母)혜성의 궤도 문제로 삼십 년의 주기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다.무엇이든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머물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봐.무슨 일이 있어도 유성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싼다.김 선배가 일러주었듯,아니,그녀가 전하는 어느 화백의 말처럼 하늘은 곧 오랜 세월 품어온 정한(情恨)을 차가운 땅덩이를 향해 쏘아댈 것이다.정한이란 비타민E 다음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비타민F와 같은 인생의 알 수 없는 영양소일지도 모른다고 천경자 화백이 말했지.그 여자,아니,그 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참 재미있게 표현했었어.전시회 작품들이 대부분 오로라와 같은 몽롱한 색채로 표현돼 있었거든.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로라를 목격했다는데,글쎄,갓 잡은 등 푸른 생선이 파닥이는 것 같더라나? 화가의 표현치고는 좀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아? 김 선배는 말을 마치자마자 상념에 사로잡힌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김 선배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내 어깨에 머물러 있었다.또 그 사람 생각하는군요? 김 선배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망원경에 눈을 들이대는 김 선배의 모습이 왠지 어색했다.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표정이었다.그런 식으로 시치미 떼지 말아요! 내뱉지 못한 말이 가슴속에서 빙빙 돌았다.김 선배는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사람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서도 머물지 않으려는 걸까? 그녀는 자신의 상념을 자르려는 듯 의외의 말을 던졌다.성우야,횡성에 가자.너도 태기산에 간 적 있지? 나는 한참 뒤에나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렇지 않아도 오리온자리 일주 사진을 찍을 곳을 찾고 있었어요.그래요,가요.김 선배는 바지 주머니 속에서 밀황색 호박을 꺼내 코에 가져다 댔다.그래,가.가보고 싶던 곳이었어.“얘,두유가…….” 느지감치 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린다.옷깃에 달라붙은 검불을 떼어내고 버름한 방한복을 여며드린다.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라이트 버튼을 누르자 액정 화면이 흐릿하게 빛을 발한다.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노출 시간을 체크하고 카메라로 다가간다.노출 시간을 또다시 오버한 감이 든다.필름을 새로 갈아끼운다.때마침 희미한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재빨리 카메라를 들어 연속 촬영을 한다. 다시 한 마리가 떨어진다.제법 모양을 갖춘 놈이다.운이 좋으면 긴 유성흔을 잡은 사진을 현상할 수 있을 듯하다. “땃땃하게 데운 베지밀이 최곤데 말씀이야.그,병에 든 거 말이다.” 카메라의 구도를 바꾸어본다.이번엔 복사점을 중심으로 앵글을 잡지 않고 주변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구도를 잡을 생각이다.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놈들이기 때문에 천구가 모두 피사체다.사진으로 태어난 녀석들이 깨알과 같이 작다 하더라도 사진을 현상하는 동안만큼은 현장에서 느꼈던 흥분이 다시 살아나 그야말로 황홀하다.마지막이라는 말이 얼마나유혹적인지 알아?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놈들을 잡을 수 있는 해는 아마도 네가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거나 손자도 볼 수 있는 시간들을 다 겪고 나서야 올 거야.군침이 돌지 않니? 장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유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거의가 떨어져서 그다지 훌륭한 사진은 찍을 수 없을 거야.운이지,뭐.노벨이 태어난 해엔 한 시간 동안 무려 만 개 이상이 떨어졌다는데…….성우야? 김 선배가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꼭 갈 건가요? 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를 가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성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선배가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나,인도에 갈까?” 그 사람 인도에 없다면서요? 아직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김 선배는 다소 신경질적인 내 물음에 뜬금없이,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나는 그녀의 얼굴빛에서 장난스럽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나는 내가 말했어야 하는 부분을 모욕적으로 도난당한 느낌이 들었다.널 좋아하는 것 같아.그녀가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땐 수치심마저 치밀었다. “젊었을적엔 참 고왔을 얼굴인데…….에이,모르겄다.늙을수록 애가 돼 간다는데 남사시럽게…….이놈의 나이도 이냥저냥 시들어갈 판인가?” 시계를 들여다본다.12시30분.유성은 카메라를 향해 간헐적인 입김만 뿜을 뿐 탄성을 자아낼 만한 모습은 보여주질 않고 있다.어쨌든 물고 늘어져야 한다.새벽 1시에서 2시 사이가 녀석들이 한꺼번에 태어나는 극대 시각이라는 정보를 굳이 믿으라면 아직 3,40분 정도의 터울이 있는 셈이다.그때에 대비해 아껴두었던 커트필름을 꺼낸다. 갑작스레 휴대전화기가 엉덩이를 간질인다.어머니의 전화다.걱정이 되는 모양이다.할아버지를 잘 모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이미 내 목소리에서 할아버지의 안전을 확인했을 것이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가 나를 따라나선 것에 대한 불만이 가신 것일까.할아버지는 세상을 관조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다리를 절단하고 병원에 누워 계실 때,이제는 바라만 보며 살란다,하면서 관조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뭐든 간섭하고 살았는데,이젠 좀 앉아서 쉬어야지.늙어서 다리 쓸 일이 뭐가 있겠어.방바닥에 앉아서 창 밖이나 구경하면 됐지.그걸 관조라고 해도 될 거야.할아버지가 관조라는 말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 말했을 때,사실 너무 우스웠다.세상에는 그저 바라보아야 하는 일보다 시기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법이니까.사학년생들끼리 전시회를 열기로 했어.작년 선배들처럼 여러 가지 테마를 가지고 전시하지는 않을 거야.그만큼 작품이 적다는 얘기겠지.그러고 보면 선배들은 참 대단해.별을 잡아온다는 게 어디 쉬워?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김 선배는 밖을 바라보며 전면 유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뽀드득뽀드득 듣기 싫은 소리가 귓전에 머물렀다.선배는 사진 많이 찍으러 다녔잖아요. “주문하시겠어요?” 검은 에이프런을 입은 여자가 테이블 앞에 섰다. “고작해야 일주 사진이 전부야…….커피 두 잔 주세요…….다른 사람들은 은하며 성단이며 그림 같은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탁자 밑에서 자꾸만 나의 구두코가 그녀의 발을 차고 있었다.그런데도 김 선배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내가 말을 걸지 않는다면그녀는 그녀의 생각 속에 머물고 말 듯했다.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어차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말이야.아,계획은 세웠니? 유성우 말이야.할아버지 사고 때문에 작년에 찍지 못했잖아.맞다,할아버지는 괜찮으시지?” 플레이트를 돌아본다.아무래도 좁은 플레이트 위에 넉 대의 카메라는 무리이지 싶다.사진 주변에 수차(收差)가 나올 것을 감안해야 할 듯하다.옆 카메라의 릴리즈가 들어올 것도 예상해야 할 판이다.사진 표면에 검은 줄이 생길 것이 뻔하다.필름을 스캔하고 이미지 처리를 한다고 해도 작품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망원경과 카메라를 부착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한다.카메라 한 대를 들어 망원경 앞으로 가져온다.신발 끈을 끄른다.망원경의 접안부와 카메라의 렌즈를 맞대고 신발 끈을 감는다.왜요,필요한 거 있으세요? 할아버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요 좀 보련다.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요.” 할아버지는 배낭을 걸어 놓았던 나무로 절뚝절뚝 다가간다.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크다.늦었구나! 지도교수가 내 어깨를 치고 홀을 빠져나갔다.몇 작품 전시하지 않은 전시회 치고는 꽤나 엄숙한 분위기였다.선배들의 사진전은 ‘우주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열렸다.‘끝의 향연’이었던 작년의 제목에 비하면 꽤나 성의가 없어 보이는 제목이긴 했다.사진전은 학교 도서관 입구의 홀에서 개방적으로 열렸다.얼마 안 되는 작품이 전시되었다고는 하지만 안드로메다은하나 플라아데스 성단 사진은 그 몇 안 되는 작품들까지 빛내기에 충분했다. “겸연쩍긴 하지만,그래도 차지 않은 달이 더 정이 간다니까.” 달은 고개를 젖힌 할아버지의 코끝에 붙어 있지만 바람에 끄덕이는 나뭇가지 탓에 자꾸만 명멸한다.‘달과 금성의 일주,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올림푸스 OM-1,45㎜ 광각렌즈…….’ 공책 크기만한 사진 속에 지평선을 향해 사선을 내리긋는 달과 금성의 일주가 힘차게 다가왔다.개똥벌레 일주 사진,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 “성우야.” 어느 결에 김 선배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나는 사진 속의 달과 금성을 머릿속에 그려진 반딧불과 견주어 보았다.미친놈!“늦었구나?” 김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선배는 자신의 사진을 한번 훑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횡성에 가본 적이 있군요? 나는 물으려다 말았다.실망했지? 사진을 찍을 때도,인화할 때도 온통 딴생각이었으니…….괜찮아요.개똥벌레 같지 않은데요,뭘.정말 괜찮아요.나는 김 선배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입아귀를 부풀렸다. “괜찮으면,너 가질래? 지금 가져가도 돼.” 김 선배가 조용히 물었지만,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때부터 김 선배의 입도 열리지 않았다.그녀는 홀 주위를 돌기만 할 뿐이었다.나는 김 선배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김 선배는 ‘개똥벌레의 일주’가 놓인 이젤을 무려 다섯 번이나 거치면서도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나는 그런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고 되뇌기만 했다. “더 이상은 못 봐주겠어!” 김 선배가 자신의 사진을 들고 돌연 도서관을 빠져나갔을 때에도 내 입 속에선,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는 말만 반복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바다뱀자리와 큰개자리의경계선 부근에 섬광이 스친다.지평선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한참 만에 나타난 녀석이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다.기대를 많이 한 탓이다.플레이트 앞에 선다.50㎜ 표준렌즈를 광각렌즈로 교체한다.필름을 빼내면서 웬일인지 작품다운 작품이 나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46도 화각으로 유성을 잡는다는 것이 무리이지 싶었다.새 필름으로 갈아끼운다.이번엔 초점비에 따라 4분에서 8분씩 노출을 주기로 한다.버름했던 앞섶을 단단히 여미고 망원경으로 다가간다.경통에 키스하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카메라로 눈을 가져다댄다.잘 보여? 힘없는 목소리로 김 선배가 물었다.오늘따라 잘 잡히지 않네요.횡성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무엇인가가 불안했다.달의 상을 또렷하게 끌어오는 것마저 힘에 부칠 정도로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다.잘 안 되니? 김 선배는 까치발을 하면서 재킷 주머니에 손을 꼭 찔러 넣었다.천문학도 아닌데 왜 그렇게 쩔쩔매? 천문학이면 괜찮게요? 이건 완전히 막노동이니…….안 되겠어요.카메라 좀 가져다 줄래요? 그냥 찍어야 할 것 같아요. “왜,내가 있어서 그래?” 카메라를 받아들려고 했지만 김 선배는 잠시 악력을 썼다.카메라가 중요해,내가 중요해? 나는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장난스레 되물었다.선배는 아빠가 좋아요,엄마가 좋아요? 김 선배가 갑자기 카메라를 놓아 버리는 바람에 몸이 뒤로 밀렸다.두 시간 동안 노출할 거니까 지겨워도 참아요.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망원경 접안부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셔터를 누르자,김 선배가 대뜸 딸꾹질을 토해냈다.나 몰래 뭐 훔쳐 먹었어요? 나는 배낭으로 다가가 보온병과 녹차 티백을 꺼냈다.자,마셔요. “자연현상이라는 게 그 자체로 인간에게 많은 감상을 주는 거 같아.” 김 선배에게 녹차가 담긴 잔을 건넸다.안 좋은 부분이 있다면 때론 인간을 징벌하기도 한다는 점이죠.김 선배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래,맞아.때론 징벌하기도 하지.그걸 피하는 방법은 뭘까? 나는 김 선배를 돌아보았다.피할 수 없어요.다만,치유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답일 뿐이죠.감상만 쫓아가지 말아요,제발! 그러다간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징벌을 안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뱉어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긴 한숨으로 대신했다.프로키온,외로운 별이야.김 선배는 감상에 빠지고 있었다.그녀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연거푸 그려댔다. 김 선배의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 댄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그녀가 대뜸 일어섰다.우리 그만 내려가자.나 너무 피곤해.나도 모르게 김 선배를 쏘아보고 있었다.피곤하다니요? 올라온 지 고작해야 한 시간 지났는데.노출 끝내려면 적어도…….김 선배는 기필코 가야 한다는 표정이었다.그녀의 눈을 다시 한 번 뚫어지게 쏘아보았다.일단 내려가자.김 선배는 무턱대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선배님,지금! 김 선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선배,이건 반칙이에요.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간다는 건…….저따위 별들이야 언제라도 볼 수 있어! 그녀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왜 그래요? 미안해,그냥 내려가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성우야,넌 여기가 어디 같니? 아까부터 유심히 살펴봤는데,아무래도 이상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온 할아버지가 묻는다.주위를 둘러본다.내 눈엔 그저 낮은 산언덕으로만 보인다.무슨 겁을 주시려구요? “모르겠니? 난 아무리 봐도…….” 안 갈 거예요? 김 선배는 ‘횡성여관’ 앞에 섰다.그녀는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여관이라는 글자에서 ‘관’자의 네온사인이 끔벅이며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차 있는 곳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돼요.빨리 가요,선배! “나…….나,여기 예약했어.” 예약요? 여관도 예약이 돼요? 응,오래 전에…….할아버지 손끝에서 라이터 불꽃이 번뜩인다.깊은 고랑이 팬 이마 위에 돌연 플라아데스 성단이 나타난다.영묘한 빛을 산란하는 산개성단.할아버지는 담배를 문다.성단이 단박 사라진다.담배! 손전등을 켜고 할아버지를 향해 불빛을 겨눈다.담배요! 나도 모르게 뱉어버린 소리가 맞은편 산허리에 부딪힌다.어이없이 큰 내 목소리에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툭 불거진다.죄송해요,전 다만……. “다시 한 번 비춰보거라…….아무래도 무덤자리 같은데.” 할아버지는 손가락을 펴고 팔을 뻗어 허공에 둥그런 원을 그린다.손전등 불빛이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간다.어느새 이슬이 맺힌 언덕 주위가 불빛에 번뜩인다. “그래,맞다.무덤자리가 확실해.둔덕이 좀 진 곳이 있잖니? 오래 돼서 다 깎여 내려갔지만 그것이 봉분이고…….” 할아버지는 이번에 두 팔로 허공을 감싸는 시늉을 한다. “양쪽의 활이 엉성하게나마 살아 있잖니.저 봐라,가지가 이리저리 벌어지긴 했지만 묘목도 있잖아.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다시 주위를 비추어본다.엉성한 이팝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그루씩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신경을 좀 쓰지,죽어서도 한이겠구먼.” 네,그런 것 같네요.할아버지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가 하늘로 고개를 든다.때를 맞추어 북두칠성의 국자 옆으로 상당히 밝은 유성이 떨어진다.준비해 두었던 커트필름으로 모든 카메라의 필름을 교체한다.하늘은 등갓이 손톱에 찢긴 순간처럼 번쩍 발한다.긴 유성의 꼬리가 눈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긴 궤적을 남긴 유성은 할아버지가 등진 산의 허리춤에 박히면서 소리 없이 부서진다. 망원경 접안부에 맞댄 카메라의 필름도 커트필름으로 교체한다.망원경과 카메라가 불안하게 맞대어져 있다.상이 선명하지 않잖아! 자,다시 해보자.김 선배가 내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처음엔 다 그런 거야.심호흡하고 다시 해봐! 천천히! 여자 다루어본 적 있을 거 아니야! 그래,천천히 렌즈를 돌리면서…….상을 잡아야 사진이든 뭐든 나올 거 아니야! 다시,다시! 신발 끈을 다시 단단히 매고 상이 선명해지도록 접안렌즈를 천천히 조정한다.무한대를 응시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피하려면 파인더를 보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그래,그래야 한다.파인더에 들이댄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아랫입술을 꼭 깨문다.다시 상이 가능한 한 선명할 때까지 망원경 접안렌즈의 초점을 맞춘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댄다.전망이 별로 감동적이지 못하다.다시 망원경의 초점을 정밀하게 맞춘다.들어온다.선명해진다.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하고 최대한의 노출을 유도한다.긴장이 밀려온다.검지에 힘을 주고 셔터를 누른다.순간 내 행동에 대한 반감 섞인 생각이 스친다.우주는 가만히 있어도 가슴에 소지할 수 있다는.그것 봐,하면 되잖아.어,언제 왔어요? 김 선배가 남자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나는 스스로 거역하고 있었다. “가만,그러고 보니,내가 죽은 이 위에 버릇없이 앉아 있었네 그려.” 할아버지는 승창을 들고 망원경 쪽으로 다가와 앉는다.배낭으로 다가가 녹차 티백과 두유를 꺼낸다.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간다.꼭 다시 한 번 만나보세요.좋으신 할머니 같던데.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차갑지만 폭신한 낙엽방석이다.녹차가 담긴 컵을 가볍게 감싸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영묘하게 빛나는 큰개자리의 시리우스가 동쪽 하늘을 호령하면서 지평선 위에 드높이 떠 있다.궁수자리의 남은 마지막 밝은 별들이 서서히 지고 있다.켄타우루스와 남십자가자리의 별들 그리고 에라다누스강자리의 아케르나르가 남쪽 하늘에 깊이 박혀 있다.할아버지,돌아가는 길에 온천욕이라도 하시겠어요? “아니다.온천은 무슨…….” 들추어진 할아버지의 바짓부리를 정리해드린다.차갑고 딱딱한 의족이 손끝에 느껴진다.할아버지가 내 어깨 위에 천천히 손을 얹는다. “힘들여서 만나봐야 게 잡아 물에 넣는 꼬락서니지.안 그러냐,성우야?” 죄송하지만,삼백이호실로 방 하나 더 주세요.돈을 지불하고 김 선배의 뒤를 따랐다.층계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벌건 융단을 뒤덮고 지루하게 이어졌다.관측장비가 무거운 탓인지도 몰랐다.삼층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김 선배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냈다.미안해,괜찮아질 거야.나에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나는 그녀가 괜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선배와 나는 삼백일호와 삼백이호 앞에 나란히 섰다.선배의 옆얼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그녀는 문을 향해 다시 한 번 딸꾹질을 토해냈다.괜찮아,정말이야.그녀에게 열쇠를 건네고 문손잡이를 돌렸다.꼭 자고 가야겠어요?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잖아요.더군다나 차도 있는데…….김 선배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목에 걸린 호박을 떼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짐짓 어색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깔려 있었다.미안해…….오래 머물 것 같지는 않아.무엇이든 오래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기억이든뭐든…….그녀는 내 손바닥 위에 호박을 얹어놓고 꼭 쥐어주었다.호박이야.발트해의 상징이래.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직접 가서 캐보려구…….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독일 북동부에 있는 발트해 연안 도시라는데.주 이름이…….아주 긴 이름이었는데……. 무척이나 밝은 대화구가 눈에 들어온다.사방이 일순 밝아진다.느낌이 좋다.큰곰자리의 꼬리 부분으로 다시 여러 개의 유성이 빗금을 그으며 떨어진다.곧 큰곰의 머리 부분으로도 유성이 떨어진다.유영하는 연어의 등지느러미처럼 은빛을 산란하며 하늘을 가른다.제법 공격적이다.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쾌감이 전해진다.맞아,포어포메른주였어.독일의 북동부,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 망원경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대자 동전 크기의 유성이 망원경 안으로 날아온다.몸이 반사적으로 꺾인다.조금만 참으세요,할아버지.이것만 찍으면 다 되니까.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한다.카메라에 키스한다.너만 믿으마.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할아버지 등뒤로 다가간다. “그놈의 미련이 문제라지…….성우야,등나무집 할머니가 만나는 주겠지?” 나는 할아버지 등뒤에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때마침 유성의 꼬리가 할아버지의 긴 하품 소리를 따라 하늘에 은회색 칼날을 하늘에 긋는다.뒤이어 서너 개가 더 떨어진다.지평선 어딘가에 떨어졌을 유성의 잔상이 오래도록 눈 속에 남는다.무덤 주위를 둘러본다.하필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를 모르겠군요.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호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그곳이 한때는 슬라브족의 요새였다는 거야.맞아,슬라브족의 요새.한자동맹이란 것도 그곳에서…….엉터리 수작 말아요! 입이 열릴 뻔했지만 참았다.내 손으로 호박을 채취하고 싶은 게 꿈이야.고대 생물이 들어 있는 호박 말이야.난…….김 선배는 말을 멈추고 문손잡이를 잡았다.잠깐만요! 김 선배는 여관 복도가 울릴 만큼의 내 부름에도 놀라지 않은 듯했다.김 선배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눈망울에 작은 프로키온이 나타났다.우는 거예요,지금? 그녀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이거요,잘 구경했어요.아무리 찾아도 개똥벌레는 없던데요.나는 돌돌 만 ‘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을 점퍼에서 빼내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나,잠깐 약국에 좀 다녀올게.기다리지 말고 자.” 김 선배는 사진을 받지 않았다.나는 호박과 돌돌 만 사진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말해줘요! 아니야,내가 갔다 올게.먼저 자고 있어.그녀는 이미 층계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나는 슬라브족도 한자동맹도 아닌,김 선배가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만을 알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기침이 다시 시작이다.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낙엽 더미가 굴러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흡사 융단이 말리는 듯하다.굴러간 양만큼의 낙엽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할아버지의 발 아래 펼쳐진다.그믐달로 날아간 낙엽들이 한점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진다.주머니에 손을 넣는다.호박이 느껴진다.호박 속에 갇혀버린 것은 나일지 모른다.손님,삼백일호 손님,안에 있어요? 복도 끝,창유리를 통해 어슷하게 비쳐든 새벽의 푸른 기운이 물 위에 떠가고 있었다.발트해,삼백일호 문 아래로 차가운 해수가 밀려나오고,나는 그 위에 밤새 쥐고 있던 호박을 떨어뜨렸다.점벙! 발끝으로 밀려온 해수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김 선배는 결국 호박을 캐러 떠났다.손님,손님! 이봐요! 하늘을 올려다본다.동쪽 끝에 겨우 고개를 내민 시리우스에 손가락을 찍는다.천천히 베텔게우스와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 옮긴다.다시 시리우스로 손가락이 이동하지만 그만 손가락은 가던 길을 멈추고 만다.나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그릴 수 없는 모양이다.곧 겨울이 찾아올 테지만 그때에도 삼각형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관측일지를 꺼내든다.11월19일,사자자리 감마성 부근을 복사점으로 20여 개의 유성 출현.30년 후에는…….호박을 꺼내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간다.로스토크,그녀는 결국 그곳에 가고 없다.
  • 대한매일 2004 신춘문예 결산/응모작 예년의 2~3배… 풍성한 수확

    문학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예비 문인들을 위한 관문이 다양해지고 그 문턱도 많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신춘문예는 문단의 꽃이며 등단의 으뜸 기회다.오랜 세월 작용해온 정통 등용문으로서 비단 기성 문인이나 문학 지망생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언제나 한 해를 여는 새로움과 설렘의 대상으로 다가온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춘문예 응모작들이 우리 문학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소설 응모 74세 老翁의 문학열정 지난 15일 시 예심으로 시작해 26일 소설 본심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 2004년도 대한매일 신춘문예의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양적 증가와 질적 균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응모작이 예년에 비해 2∼3배 늘어나 눈길을 끈다.소설의 경우 275명이 응모해 지난해보다 2.5배 늘어났고 시인의 꿈을 불태우는 이들도 2500여편의 작품을 보내와 지난해의 1200편보다 2배 넘게 증가했다.이밖에 희곡의 경우는 88편이 응모해 지난해보다 3배 가까이 늘었고 동화(106편) 시조(85편) 평론(16편) 등도 각각 1.5∼2배 늘어났다.이들 가운데는 소설에 응모한 74세 할아버지 등 남다른 문학 열정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젊은층 대한매일 열독률 높아져 이같은 응모작 증가현상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취업난 등으로 인해 사회진출의 길이 좁아지면서 내적 자아 실현을 위해 글쓰기로 방향을 전환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여기에 젊은 연령층 사이에 대한매일의 열독률이 높아진 것도 큰 원인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면에서는 큰 발전이 없다는 평가가 많아 아쉬움을 남겼다.작품 수준은 전체적으로 고른 편이었지만 눈에 확 띄는 수작이 없었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주된 분석이다. 시 예심에 참가한 나희덕 시인은 “산문시가 많이 늘고 그 수준도 고른 편이지만 딱히 ‘이 작품’이라고 할 만한 작품은 없었다.”며 “작품의 엄격성·집중력 등에서 떨어져 문학적 완성도가 낮아진 편”이라고 말했다.소설 예심도 비슷한 양상으로 심사위원들이 고심을 했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평론의 경우는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고 특히 시 평론이 부쩍 늘었다.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근래 시 평론이 계속 줄다가 올해 부쩍 늘어 소설 평론과 비슷해졌다.”며 “‘시’ 독자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문학의 균형성을 위해 반가운 일”이라고 평했다.동화와 희곡도 높은 수준의 작품이 많아 당선작 선정에 진통을 겪었다. ●“완성도 높은 수작없어 아쉬움” 응모작의 소재는 장르별로 다양했다.시의 경우는 외국인 노동자,실업자,자살 등 최근 사회상을 반영한 작품이 많았다.반면 소설에서는 최근의 사회상을 다룬 것보다는 일반적인 소재가 폭넓게 등장했다.인터넷 소설의 영향을 받은 이모티콘 사용이나 잦은 행갈이가 사라진 점도 큰 변화로 포착됐다.동화는 아동 생활의 단면을 그리는 ‘생활 동화‘가 여전히 양적으로 우세했지만 환상적 기법을 다룬 작품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와 함께 올해도 역시 중복 응모가 상당수 포착되어 아쉬움을 남겼다.시상식은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바꾼 뒤인 새달 16일 오전 11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
  • 社告/ 최인호 장편소설 새해부터 연재합니다

    대한매일이 서울신문으로 새로 나면서 새달 5일부터 최인호(58)씨의 장편소설 ‘유림(儒林)’을 연재합니다.‘유림’은 공자의 사상에 담긴 참된 ‘정치와 권력’의 의미를 조선 시대의 풍운아 조광조와 대학자 퇴계 이황,율곡 이이의 사상과 삶을 통해 되짚어 보는 대하 서사시입니다. ▶작가 인터뷰 6면 자칫 딱딱하게 생각하기 쉬운 성인의 삶과 사상을 ‘탁월한 이야기꾼’의 감수성으로 현대화하여 깊이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나갈 것입니다. ‘유림’의 세계는 과거에 갇혀 있지 않고 정치와 권력의 본질을 파헤치면서 현재적 의미로 되살아납니다.이는 개혁이란 대의를 내세워 정쟁에 사로잡혀 있는 혼탁한 현대 정치판에 청량제 역할을 하면서 참된 정치의 의미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되돌아볼 객관적인 거울이 될 것입니다.아울러 옛것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길어 올리면서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혼돈의 시대를 헤쳐갈 슬기를 제시할 것입니다. 작가는 늘 공부하는 자세로 시대를 앞서가는 감수성을 벼리면서 문제작을 터뜨려 왔습니다.그 저력을 바탕으로 ‘유림’에서도 특유의 탁월한 상상력과 재기 넘치는 문체로 연재소설의 새 장을 열 것입니다.“재미있으면서도 ‘만고 불변의 지혜’가 담긴 작품”이라고 밝히는 작가는 15년 전 이 작품을 구상했고 공자의 고향인 중국의 취푸(曲阜)를 비롯,조광조의 유배지 전남 화순의 능주,퇴계 이황의 경북 안동 도산서원과 풍기의 소수서원 등을 빈틈없이 취재하면서 ‘유림'의 형상화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 최인호씨는 고교 2학년 때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뒤 1967년 ‘견습환자’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일찍이 문재를 알렸습니다.소설 ‘타인의 방’‘잠자는 신화’‘별들의 고향’‘도시의 사냥꾼’‘지구인’‘잃어버린 왕국’‘길 없는 길’‘왕도의 비밀’‘상도’‘해신’ 등 주옥 같은 작품으로 현대문학상,이상문학상,가톨릭문학상,현대불교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소설의 삽화는 최씨와 ‘바보들의 행진’ 이후 20여년 동안 호흡을 맞춰온 이우범(60) 화백이맡습니다.62년 삽화 작업을 시작한 이 화백은 세심하고 정감 어린 화풍으로 소설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난세의 지혜를 문향(文香)으로 들려줄 ‘유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 바랍니다.
  • 신춘문예 공모

    ■ 공모 부문 및 당선 상금 ●시(3편 이상):200만원 ●소설(80장 안팎):30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200만원 ●희곡(90장 안팎):250만원 ●동화(30장 안팎):150만원 ●시조(3편 이상):200만원 ※장 수는 200자 원고지 기준임 ■ 마감 2003년 12월12일(당일 소인까지 유효) ■ 당선작 발표 2004년 1월1일자 본지 지면 ■ 보낼 곳 100-745 서울 중구 태평로 1가25 대한매일 편집국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인터넷 접수는 안됨) ■ 유의 사항 -원고 겉장에 별도로 본명(필명일 경우),주소지,연락처(집 및 직장 전화,휴대전화 번호) 등을 명기한 개인 신상표를 첨부할 것. -우송할 때는 겉봉에 ‘신춘문예 응모작’을 표기할 것. -원고는 원고지 대신에 A4용지에 쓸 수 있으며,응모작을 무삭제 수록한 컴퓨터용 디스켓을 함께 제출할 것.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 응모했거나 다른 작품을 표절한 사실이 확인되면 당선을 취소함. -응모 작품은 반환하지 않음. ■ 문의 (02)2000-9192∼5
  • 문학인의 등용문 대한매일 신춘문예 공모

    문학은 삶의 거울입니다.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확인하고 또 생명의 영혼을 키우는 인류 문화의 가장 값진 성취입니다.문학의 위기를 말하기도 합니다.하지만 혼란한 시대와 어지러운 세상을 문학으로 곧추세우려는 수많은 문재들이 치열하게 뜻을 키우고 있습니다.문학 지망생들에게 뜻깊은 등용문이 되어온 전통의 대한매일이 2004년도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합니다.공모 부문은 시·소설(단편)·문학평론·희곡·동화·시조이며,각 부문에서 권위와 공정성을 인정받는 분들이 심사를 맡습니다.우리 문학의 미래를 이끌 참신하고 능력있는 신인들의 많은 관심과 응모를 바랍니다. ■ 공모 부문 및 당선 상금 ●시(3편 이상):200만원 ●소설(80장 안팎):30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200만원 ●희곡(90장 안팎):250만원 ●동화(30장 안팎):150만원 ●시조(3편 이상):200만원 ※장 수는 200자 원고지 기준임 ■ 마감 2003년 12월12일(당일 소인까지 유효) ■ 당선작 발표 2004년 1월1일자 대한매일 지면 ■ 보낼 곳 100-745 서울 중구 태평로 1가25 대한매일 편집국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인터넷 접수는 안됨) ■ 유의 사항 -원고 겉장에 별도로 본명(필명일 경우),주소지,연락처(집 및 직장 전화,휴대전화 번호) 등을 명기한 개인 신상표를 첨부할 것. -우송할 때는 겉봉에 ‘신춘문예 응모작’을 표기할 것. -원고는 원고지 대신에 A4용지에 쓸 수 있으며,응모작을 무삭제 수록한 컴퓨터용 디스켓을 함께 제출할 것.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 응모했거나 다른 작품을 표절한 사실이 확인되면 당선을 취소함. -응모 작품은 반환하지 않음. ■ 문의 (02)2000-9192∼5
  • 새만금 사람들 이야기 문학적 그물에 주렁주렁/조헌용 첫 소설집 ‘파도는‘

    개발이냐 환경이냐? 뜨거운 논란을 빚었던 새만금 간척사업 건은 법원으로 넘어가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아 있다.시끌벅적한 소용돌이 속에 정작 새만금 주민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새만금 사람들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신인작가 조헌용의 첫 소설집 ‘파도는 잠들지 않는다’(창비사 펴냄)는 간척사업을 둘러싼 여러 인간들의 반응을 섬세하게 반영해 눈길을 끈다. 표제작등 8편의 중단편은 모두 새만금 간척사업을 둘러싼 인심(人心)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작가는 신춘문예 당선작을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소고’로 삼았을 정도로 새만금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자란 곳이 그곳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소박하게 말하면서도 “순하고 착한 사람들이 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너무 쉽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환경·개발이라는 거대담론이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새만금의 오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새만금에 대한 미시적 보고서’로 읽힐 만한 이 작품집은 보상금을 둘러싸고 달라지는 세태 등을 추적한다. 그렇지만 작품집은 소재주의에 갇히지는 않는다.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구성과 인물 묘사로 녹록지 않은 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차를 산다 집을 고친다 보상이 나오기도 전부터 사람들은 흥청망청 들떠”(252쪽)있는 분위기 속에서 보상금을 날려버린 사람들의 좌절을 다룬 ‘오늘의 날씨’를 비롯,간척으로 삶의 터전인 포장마차를 철거하려는 시청직원과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학미로 버무린 ‘전국노래자랑’ 등 다양한 사연들이 조헌용의 촘촘한 문학적 그물에 주렁주렁 걸려온다. 평론가 유보선은 “바다의 신화성에 주목하거나(천승세),벗어나지 못한(한창훈) 해양문학과는 달리 근대성의 옷을 입은 ‘탈마법화된 바다’라는 낯선 풍경을 그리면서 문학사의 새 항목을 추가했다.”며 “기존의 문학적 관습을 근본적으로 전복시키려는 패기로 가득찬 소설집”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종수기자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9)현기영-남북한 민주주의와 통일의 현단계

    지금이야말로 탈중심의 변방 정신이 필요한 때다.지구를 파괴하고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자본의 무한 질주에 제동을 걸려면 거부와 저항의 변방 정신이 아니고는 안 된다.왜냐하면 자본운동은 질주의 관성만 있고,자신을 멈출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진흥원 원장실에서 만난 선생은 여전히 흰 턱수염이 두덕두덕,면도한 지 이틀은 되었음직한 얼굴이시다.응접 세트며 책상이며 모두 길이 안든 물건이라 그런지 썩 편치 않게 보이는데 실은 그게 선생의 매력이다.어느 공식석상에서도 작가다운 모습. “문예진흥원 일은 어떠세요?힘든 일이 많으시지요?” “글쎄,꼭 내 일인가 고민하다 하게 되었어요.예술 활성화와 사회에 창조적 의욕이 확산될 수 있도록 일한다는 의미가 있으니까.기금 배분의 어려움은 있지만 시민들이 순수문화와 예술을 널리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지방이 문화적으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일도 하고 있고.” ●민주주의엔 ‘무제한의 자유' 함정 도사려 “직무를 수행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일이 많으실 텐데요.” “예전에도 열심히 해왔습니다만 진흥원 활동을 조금 더 활기차고 적극적인 쪽으로 바꾸고 싶습니다.무엇보다 예술 자체가 몸을 비틀면서 굉장한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미술·음악 등 고전적 의미의 장르 틀 속에 갇힐 수 없는 것이죠.문학과 미술이 만나기도 하고 미술이 평면에서 입체로 가기도 하고,비디오 영상과 음악·무용이 결합하고 있기도 해요.이러한 변화에 문예진흥원 같은 국민의 기관이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계획을 세우려 합니다.” “작가로서 공인에 더 가까워지셨는데요.저는 한국과 북한의 민주주의에 관해 묻고 통일 문제에 관해서도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요즘 한국은 정치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일까요.” “아직도 한국사회는 다양한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서로 상충하고 갈등하고 있어요.민주주의라면 우선 자유 아니겠습니까,자유.그전에는 독재정권 파시즘 속에서 개인 자유가 희생되고 억압되었습니다.지금은 정치적인 자유는 많이 확보되었죠.그러나 그 자유를 무제한,무책임의 자유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생겨났어요.무제한의 자유를 갈구하다 보니까 풍속도 문란해지고 개인도 도덕적인 해이를 보이는 면이 있지요.민주주의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죠.무제한의 자유에 자기 몸을 싣다 보면 일탈로 가게 되죠.그리고 일탈은 중독을 낳습니다.인터넷 게임,사이버 섹스,알코올,마약….그러니까 민주주의에는 무제한의 자유라는 함정이 있는 셈입니다.공동체도 개인도,책임과 셀프 거번먼트(self government),자신을 다스리는 자치 말이지요.이게 있어야 합니다.인내가 필요합니다.” 나는 평소에 가깝게 뵌 분께 이렇게 딱딱한 질문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문학인이나 문화인이 나라와 민족의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그것 또한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한국사회가 당면한 과제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국사회가 이제까지 성장을 꾀했으니까 지금부터는 부의 재분배를 통해서 소외된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지나친 성장위주는 곤란하다는 거지요.성장을 꾀하면서도 공동체의 삶의 질을 생각해야합니다.성장이라는 게 인간 크기의 성장이어야지 인간을 훨씬 능가해 버리는 성장은 오히려 인간을 잡아먹게 됩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사회적 갈등의 표현을 맛보고 있습니다.그러다 보니까 파시즘이 새롭게 등장해야 한다는 견해까지 부상하잖아요.기업가도 노동자도 오늘의 상태를 차분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한국사회를 진단해 주시지요.” “이제 외형상 민주주의는 확보된 것 같습니다.이제는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심성이 구체적으로 민주화되어야 합니다.정치적 파시즘이 없어졌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확립되는 것은 아니죠.파시즘 정권은 사라졌어요.민중은 많은 자유를 갖고 있어요.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완전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건 아니에요.많은 국민이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하나의 예죠.지역감정에 사로잡혀서 그것에 골몰하면 그 지역감정을 동력으로 삼아 파시즘으로 회귀할 수도 있는 거죠.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면 개인의 내면이 민주화되어야 합니다.지역과 지역이 어떤 표결 없이 바라볼 수 있고 노동자와 자본가가 대결 없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교한 외교로 대등한 한·미관계를 내친 걸음이다.나는 4·3의 작가에게 미국이라는 오늘의 화두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기로 한다. “미국이라는 존재도 한국의 민주주의와 뗄 수 없는 문제 같은데요.” “한반도 문제는 미국에도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다.내면의 민주화는 외부로부터 지배받지 않는 것,부당한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죠.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세계 민주주의에 어떤 저해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한국은 미국과 대등한 관계로 가야 되는데,방법은 강대국과 약소국 일이기 때문에 정교한 외교로 대처해야지 피맺힌 절규로 해결될 수 있는 일만은 아닙니다.” “미국은 지금 세계경찰 역할을 자임하고 있어 우려되는 점이 많습니다.” “미국이 세계 경찰을 자임한다는 것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유일한 강대국이 되었다는 것인데,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사태만 봤을 때 미국이 참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나중에 어떤 사고의 전환이 올지는 모르지만계속 그런 사고와 행동을 밀고 나간다면 미국이 강대국이기 때문에 지구가 파멸까지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테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전쟁이 있고 나면 반드시 테러가 뒤따르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마련입니다.이것이 점점 규모가 커지고 테러나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서 인류의 재난이 온다고 생각해요.미국의 사고 전환이 중요합니다.미국 시민의 애국주의도 잘못된 편견의 소산입니다.수정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미국 국민들이 사실은 엄청난 두려움에 떨고 있거든요.그 두려움을 방어적·공격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지요.문제는 그게 옳은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죠.두려움은 공격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다원주의가 굉장히 큰 미덕이죠.남을 이해하고 남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기독교 국가인 미국과 이슬람 국가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경할 수 있는 큰 사고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지금이 중세 십자군 시대하고 뭐가 다릅니까.” 이제 마지막 관문이다.나는 평소에 북한체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으로서도 화해 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를 겪고 있던 참이다.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이 유효하고 유일한 방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반면 북한체제 문제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대응방법이 요구된다고 보는 사람들도 뚜렷한 집단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햇볕정책이 유효하고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어떤 포스터를 보고 느낀 건데,아마 중동의 팔레스타인 소년 이야기일 거예요.소년인 형이 아우를 등에 업고 있어요.그래서 ‘무겁지 않으냐,내려놓지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제 아우인데요.’라고 반문했단 말이에요.북한은,남한인 우리가 형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짐이에요.그러니까 짐스럽게 느끼면 안 되죠.아우가 힘들고 빈사상태에 빠져있는데 업고 있어야지요.” “북한 인민과 체제로서의 김정일 정부는 또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사회주의 정권에서 중국은 많이 변모하고 있습니다.그게 모델이 되어서 북한사회도 그런 쪽으로 변모하면 되리라생각합니다.또 그렇게 수정되지 않으면 안됩니다.그러려면 지금 당면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것이 선결되어야 합니다.” ●北, 중국 모델 따라가도록 시간 줘야 “김정일 체제에 대해서,체제만 살찌게 하는 건 아니냐 하는 견해가 있지 않습니까?” “예컨대 이슬람 국가들의 증오와 분노와 절망은 강요된 것이지요.북한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봉쇄정책을 쓰면 그것은 북한의 집행부,지배 집단,김정일만이 아니라 북한사회 전체를 압박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절망이 깊숙하게 자리하면 증오에 의해 어떠한 범죄도 일어날 수 있어요.9·11테러는 깊은 절망에서 일어난 거예요.남북이 대치해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절망과 분노로 내달리지 않도록 하면서 평화와 미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화해정책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북한사회는 점진적으로 변모해 가고 있으니 중국 모델을 따라가도록,시간을 두고 북돋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통일은 궁극적인 목표죠.1국가 2체제든 1국가 1체제든.1국가 2체제는 먼 이정표일 뿐이고 지금은 화해와 교류가중요합니다.” “‘통일전망대’ 같은 TV 프로에 나오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금강산에도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북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좀 낯설지만 그것이 우리 이전 모습이에요.1950년대,60년대의 남한 국민들의 표정과 심성 같은 거지요.정치적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차원에서 사람들은 순박하고 타락하지 않은 심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얼마 전에 교보문고에 나갔다가 선생님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보았습니다.‘느낌표’라는 TV 프로그램 영향도 크겠지만 세상 많이 변했더군요.” “뭐,하도 안 팔려서 베스트셀러는 예술작품이 아니구나 생각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베스트셀러가 되다 보니 내 소설이 예술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나는 내 문학이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많은 독자를 만나게 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남북한 관계를 위해서 문화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문화예술에는그 민족의 고유한 형식과 정서가 들어있고 정서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담론보다는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문화예술을 공유해야 합니다.앞으로 남북 화해나 통일을 생각할 때 문화와 예술의 교류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자 선생은 내방객들을 저녁식사 자리로 데려간다.딱딱한 인터뷰에 무척 지친 듯한데도 그 인자한 눈빛을 바꾸는 법이 없다.나는 그런 선생에게서 인(仁)을 느낀다.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작가 현기영 현기영 선생은 나와 같은 마포 주민이다.선생은 망원동 사람이고 나는 합정동 사람으로 상암동 경기장으로 가는 길이 넓혀지는 바람에 내가 서교동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 한두 달에 한번씩은 꼭 합정동 로터리 근처나 망원동 근처에서 합석을 해서는 문학 이야기며 세상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낯선 공간서 만난 낯익은 얼굴 선생은 귀가 크고 길어서 후덕하게도 생기셨지만 무엇보다 미덕은 젊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부족한 점까지 너그럽게 포용하면서 문학과 인생의 길을 함께고민할 줄 아는 소인(素人)의 성품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선생이 언제까지나 마포구 망원동 주민으로서 나와 같은 문학도나 상대하면서 요즘 같은 세상에는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아웃사이더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시고 잘 안 들리는 귀에 손바닥을 대고는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실 줄 알았다. 그런데,이게 웬걸.선생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실에서 만나뵙게 될 줄이야.그런데 원장실에서 만난 선생은 앞으로 몇 년 지나면 어떨지 몰라도 옛날 그 자리에 있던 바로 그분이시다.자리가 달라지면 안색도 따라서 달라지는 소인(小人)이 아니라 언제나 희고 소탈한 소인(素人).그가 바로 현기영 선생이다. ●제주로 빚은 선굵은 문학세계 작가 현기영 선생은 1941년 제주 출생이다.제주가 낳은 많지 않은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선생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주를 무대로,4·3 문제를 화두로,인간과 역사와 자연을 대주제로 삼은 선 굵은 문학세계를 일구어 왔다. 서울대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선생은 작가로서는 드물게 해병대 출신으로 사석에서 부르는 해병대가를 패러디한 노래는 이어도 노래와 함께 단연 일품이다.1975년에서야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니 이른바 늦깎이인 셈인데,학교 선생도 그만두고 문학에 매진하되 상업성과 허명을 멀리하고 역사와 인간에 대한 물음을 놓치지 않았다. ‘순이삼촌’‘마지막 테우리’‘변방에 우짖는 새’‘바람 타는 섬’,그리고 ‘지상에 숟가락 하나’로 대변되는 현기영 문학은 한국문학사에서 단연 이채를 발하는 제주의 문학,‘변방’의 문학이자 새로운 탈중심의 문학이다.
  • “극에 대한 열정 50년도 짧아요”/8번째 희곡집 낸 팔순의 작가 차범석

    50여년 동안 한국적 개성이 뚜렷한 사실주의 연극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원로 극작가 차범석(사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이 오는 11월15일로 팔순을 맞는다. 차 회장은 “늘 현역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감회는 없다.”고 손을 내젓고 있지만,후학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는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극단 두레가 대표작 ‘산불’을 18일부터 10월12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아리랑에서 공연하는 데 이어 연희단패거리는 12월12일부터 20일까지 문예진흥원예술극장에서 ‘옥단어’를 이윤택 연출로 선보인다. ‘산불’은 전쟁 직후의 갈등상을 묘사한 차 회장의 초기 대표작이며,신작 ‘옥단어’는 일제 말에서 해방기까지 전남 목포에 실존했던 인물 옥단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한을 그린 작품이다.‘옥단어’는 ‘옥단아’라는 호명의 목포식 방언.11월13일에는 8번째 희곡집 ‘옥단어’ 출판기념회가 팔순행사를 겸해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다. 차 회장은 광주사범학교와 연세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온 뒤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귀향’이 당선되어 등단했다.전후세대로 사회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식이 강한 작품을 발표했으며,소극장 운동을 통해 연극의 저변확대를 꾀했다. 1963년에는 극단 산하를 창단해 1983년까지 대표로 활동하면서 현대극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최근에도 각종 평문을 쓰는 등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순녀기자 coral@
  • 책꽂이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서성란 지음,실천문학사 펴냄)96년 실천문학 신인상 수상작가의 장편.각 장마다 자폐아를 둔 어머니를 등장시키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모성애의 힘을 강조한다.방황,다른 자폐아 부모를 격려하는 모습,사회적 대응 등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9000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박민규 지음,한겨레신문사 펴냄) 문학동네 신인상과 한겨레문학상을 동시에 거머쥔 무서운 신인의 작품. 초등학교 4학년때 가입한 프로야구 삼미슈퍼스타즈 회원의 추억을 바탕으로 80년대의 사회상을 재미있게 그린다.8500원. ●검은 꽃(김영하 지음,문학동네 펴냄)신세대의 감각을 자랑하던 작가가 100년 전인 1905년 멕시코 농장에 끌려간 11명의 조선족의 삶을 모티브로 한 장편.작가는 “그들의 고생보다는 인간으로서의 보편성에 무게를 두었다.”고 말한다.8800원.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한강 지음,열림원 펴냄)94년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 당선으로 등단,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이는 작가의 첫 산문집.미국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프로그램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편적으로 그렸다.8000원. ●항해지도(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조구호 옮김,시공사 펴냄)스페인 대표적 작가의 해양 스릴러.18세기 계몽주의에 반발한다는 이유로 추방위기에 놓인 예수회 지도부가 왕실을 매수하려고 에메랄드를 싣고 오다가 침몰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었다.1만 2000원. ●한국 현대시 해설-이해와 감상(홍윤기 지음,한누리미디어 펴냄)한국현대시문학연구소 소장인 저자가 7년 동안 자료를 모아 정리.육당 최남선의 1908년 작품부터 올해 시집을 낸 손호택의 작품 등 시인 250명의 작품을 망라했다.2만 5000원. ●창랑지수(옌전 지음,박혜원·공빛내리 옮김,비봉출판사 펴냄)중국 대표적 현대작가의 두번째 장편.중국인들의 사고방식,행동 양식,처세술,관계 중시 등을 주제로 한 사회소설.모두 3권,각 9500원. ●시간의 옷(아멜리 노통 지음,함유선 옮김,열린책들 펴냄)프랑스 문단에서 주목받는 벨기에 여성작가의 장편.79년 폼페이시의 화산 폭발을 누군가의 계획 범죄로 가정하면서 전개.1996년 공쿠르상 후보작.7500원.
  • 가난·허무속에서 샘솟은 詩心/대한매일 신춘문예 출신 정영주 첫시집 ‘아버지‘

    ‘시에 운명을 건 늦깎이 시인의 절절한 노래’ 지난 99년 ‘어달리의 새벽’으로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등단한 정영주(사진·51)가 낸 첫 시집 ‘아버지의 도시’(실천문학사 펴냄)에는 우울함과 혼돈,그리고 그것을 이겨낸 강인함이 들어있다. 연작인 표제시 ‘아버지의 도시’를 비롯하여 56편을 담은 시집은,주로 시인이 직간접적으로 호흡하고 맛본 세 도시를 중심으로 이미지가 펼쳐진다.그 흐름속에서 ‘아버지의 도시’로 대변되는 찌든 가난과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시인의 을씨년스러운 내면 풍경,시적 자아가 성장하면서 맛본 쓰디 쓴 삶의 정경이 등장한다. 시인의 회상은 먼저 동해안의 도시 묵호를 향한다.감성이 예민하던 성장기를 채운 궁핍한 풍경은 시인의 노래를 음화로 채색하게 했다.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밤도 내다 팔아야 했다.”(‘아버지의 도시 2’)는 그 공간을 시인은 “채우지 못한 빈 주머니에 독이 난 아낙들/입에서 허연 거품만 일었다.”거나 “아무리 소금을 뿌려도/펄펄 살아나는 가난”(‘아버지의 도시 5’)으로 회상한다. 시인의 회색빛 추억은 묵호를 벗어나도 변하지 않는다.시집간 도시 광주에서 시인이 맛본 것은 신혼의 달콤한 꿈이 아니라 정치적 폭력이라는 광기였다.그 시절을 시인은 묵호에 빗대서 그린다.“묵호의 대책 없는 바람이 이곳에서 다시 불었다/검은 바다의 그 탱탱 불은 성난 파도가/금남로에 넘실거렸다.”(시 ‘오월의 신부’) 시인이 만난 세번째 도시는 실재하지 않으면서도 실재하는,허무로 가득찬 ‘안개 도시’다.그곳은 누구나 생의 길목에서 한번쯤 들어가보는 곳인데 시인은 이 벗어나기 힘든 늪을 “오후엔 습기가 천천히 도시를 화장하고/밤이면 이따금 건물도 사람들도 안개에 눈이 멀고 만다.”며 늘 사람들이 “떠나고 싶어하는” 곳으로 그리고 있다.이렇듯 힘든 삶의 여정에서 시인을 버티게 해준 것은 시였으리라. 문학평론가 이혜원은 시집 해설에서 “혹독한 가난과 억압과 허무의 무게에 매몰되지 않고 심지를 세우는 그녀의 곧은 정신은 자신의 상처를 딛고 시대의 아픔을 감싸안는다.”고 평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베트남전의 상처 가슴으로 짚고파…”‘베트남, 잊혀진‘ 펴낸 이용준 외교부 심의관

    현직 외교관이 우리 현대사의 상처로 남아 있는 베트남 전쟁의 흔적들을 몸으로,가슴으로 짚은 책을 펴냈다. 이용준(47) 외교통상부 북미국 심의관.지난 99년 가을부터 2년 반 베트남 공관 근무 중 금단의 지역으로 여겨져 온 베트남 중부의 한국군 주둔 지역을 찾아 양국 과거사의 덮어진 진실을 들춰냈다.책의 제목은 ‘베트남,잊혀진 전쟁의 상흔을 찾아서’. 지난 85년 희곡 ‘심판’으로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된 경력도 지닌 그는 외교부내 손꼽히는 입담가.속도감 있게 풀어낸 2년 반의 기록은 읽는 이가 현장에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특히 한 노인의 피맺힌 절규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지만,한·베트남 미래를 위해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관철해야 하는 외교관으로서 보여주는 두 모습에선 야릇한 긴장감마저 느껴진다.중부 쾅남성,쾅나이성,빙딩성 등 5개 성은 65년 참전 이후 청룡·백호부대 등 우리 군이 4960명의 전사자를 내며 북부 월맹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던 곳이다. 이 심의관은 “99년 9월 내외신에서 우리 군에의한 베트남 양민학살 의혹이 제기된 시점에서,당시 한국 정부가 추진하던 초등학교 지어주기 무상원조 사업이 자연스레 연계돼 양민 피해지역들을 찾게 됐다.”면서 의혹의 사실 여부를 떠나,한국인에게 피맺힌 원한·기억을 가진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학교 건설 과정에서 지난 68년 우리 군에 의해 한 마을 전체 주민 135명이 숨진 디엥즈엉면 한 마을에 세워진 섬뜩하고 절절한 원한을 담긴 비문을 교체해 달라고 요구했고,마을 주민들은 역사 왜곡은 안된다며 아예 연꽃 모양의 대리석으로 비문을 교체했다.”면서 아직도 마을 주민들에 대한 죄스러움이 가시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 심의관은 “공직자가 공무중 수행한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상당히 망설였다.”면서 “바라기는 이 책이 베트남 전에 젊음을 바친 우리 참전용사들이 전적지들을 방문,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베트남 재향군인들과 화해의 악수를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책꽂이

    ●못다 그린 그림 하나(박충훈 지음,이소북 펴냄) 90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한 작가의 소설집.운동권학생의 반평생을 보여주면서 참된 사회운동의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지적하는 표제작 등 8편의 중단편을 실었다.8500원. ●반인간(김태연 지음,책세상 펴냄) 87년 등단한 작가의 네번째 장편.공학과 문학을 함께 전공한 이력을 살려 다이어트 산업에 눈이 먼 동양의학의 문제점을 비판.9000원. ●바람편지(유안진 지음,중앙M&B 펴냄) 시와 수필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지은이의 신작 에세이.성장기,시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시에 대한 개인적 생각 등을 담았다.잊혀져가는 옛 풍속을 들려주고 한국 여성에 대한 새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8500원. ●그래서 너를 안는다(김인숙 지음,청년사 펴냄)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가가 10년 전 쓴 작품을 개작.순수했던 소년이 전과 3범의 백수로 타락해 가는 과정을 통해 남성의 억압된 성 인식이 스스로를 어떻게 타락시키는가를 조명.8500원. ●너없는 세상에서 1,2(이은 지음,제이북 펴냄) 99년 신춘문예 당선자의 첫장편.20대의 꿈과 사랑을 신세대 시각으로 조명.가볍지만은 않은 진실함도 담겨 있다.각권 7500원. ●영천동 7번지(조명인 지음,풀잎문학 펴냄) 단편을 주로 써온 작가의 첫 장편.유부남을 사랑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주인공이 겪는 기구한 운명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소재로 한 소설.7500원. ●마우스(김호경 지음,민음사 펴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가의 장편.현실과 사이버 세계를 오가며 일어나는 현실파괴 음모와 사랑의 이야기.영화적 상상력과 기법을 빌린 전개가 독특하다.8500원. ●로빙화(魯花)(중자오정 지음,김은신 옮김,양철북 펴냄) 타이완 1세대 작가의 대표 장편.초여름에 잠깐 피었다 지는 로빙화의 생장과 멸종에 빗대,주인공인 미술천재 소년의 짧은 삶을 이야기.7500원.
  • Book소리/ 계간지 ‘창비어린이’ 뿌리내리길 기대하며

    국내 어린이문학을 본격 비평할 계간지 ‘창비어린이’가 지난 1일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왔다. 여름호부터 출간된 책에 출판가의 관심이 쏠릴만도 하다.그동안 월·계간형태의 어린이 잡지가 없었던 건 아니다.그러나 아쉽게도 그들은 출판가 식구들끼리 돌려보는 ‘동네소식지’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안정적인 서점 배급망을 타고 다양한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는 ‘뿌리 튼튼한’ 어린이문학 비평지가 갈급했던 참이다. 지난 몇 년동안 국내 아동출판계는 눈에 띌만한 양적 성장을 기록해왔다.김중미·고정욱·황선미 등 작품성을 인정받는 신예작가들이 줄줄이 탄생하면서 아동문학계에 유례없을 정도의 시선이 쏠렸다. 지난 한해동안의 출판현황을 파악한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자료에 따르면,전년도 대비 신간 발행부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쪽이 아동서다.지난해 아동 서적의 신간발행 부수는 1995만 7670권으로,2001년(1551만 785권)보다 무려 28.6%나 증가했다.하지만 이러한 양적 성장에 질적 수준이 비례하지 못했으며,침체의 기로에 섰다는게 최근 출판계의 자성이다. 질적 성장이 담보되지 않는 아동출판물의 팽창은,어린이책을 ‘적자 보전’의 수단으로 삼는 출판사들의 안이한 발상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이렇다할 특색없는 해외 출판물을 무분별하게 사재기하는 풍토가,아동출판의 생명력을 좀먹어 왔다는 사실에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향력있는 출판사가 창작의 질적 향상을 위해 비평의 마당을 마련한 소식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창비어린이’의 김이구 편집위원은 “창작여건은 전반적으로 좋아졌지만 제대로 된 비평문화가 없었다.” 면서 “어린이문학 비평에 중점을 두되 작가,학부모,교사와 일반독자들이 두루 관심가질 수 있는 내용들로 지면을 꾸밀 계획”이라고 밝혔다.신인평론상을 제정해 문학계에서 소외돼온 아동평론을 부활시키고,원고료도 신춘문예 출신작가의 두배 정도로 후하게 줄 계획이란다. 그 작은 운동이 한국 아동문학의 행로를 다잡을 수 있는,미더운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을 기대한다. 황수정 기자
  • 제27회 ‘오늘의 작가상’ 받아

    소설가 김종은(29)씨가 장편 ‘서울특별시’로 민음사가 주관하는 제2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에 2일 뽑혔다.‘서울특별시’는 찰리,유진,호기,중만 등 70년대생 네명의 서울 이야기이다.2001년 추계예술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 시인 임영조씨 별세

    시인 임영조(任永祚)씨가 28일 오후 5시3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58세. 1945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70년 ‘월간문학’신인상에 ‘출항’이,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목수의 노래’가 당선돼 등단했다. 서라벌문학상(91년),현대문학상(93년),소월시문학상(94년)을 수상했고,시집으로 ‘바람이 남긴 은어’‘그림자를 지우며’‘갈대는 배후가 없다’‘귀로 웃는 집’‘시인의 모자’ 등을 남겼다. 발인은 30일 오전 10시,장지는 경기도 광탄 종로성당 묘지.(02)590-2135.
  • 작가회의 사무국장에 한창훈씨

    소설가 한창훈(사진)씨가 14일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염무웅) 신임 사무국장으로 선임됐다.한씨는 19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돼 등단했으며,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 장편 ‘홍합’ 등을 발표했다.
  • 노경식씨, 동랑유치진연극상 수상

    학교법인 동랑예술원(이사장 유덕형)은 제25회 동랑유치진연극상 수상자로 극작가 노경식(사진·65)씨를 선정했다. 노씨는 1965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신춘문예에 ‘철새’가 당선돼 극작가로 데뷔한 이래 대표작인 장막극 ‘달집’을 비롯해 30여편을 남겼다. 시상식은 11일 오후7시 서울예술대학 남산캠퍼스 드라마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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