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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넥슨, 베일 벗는 ‘프로젝트 HP’… 새달 사전 테스트

    넥슨, 베일 벗는 ‘프로젝트 HP’… 새달 사전 테스트

    넥슨이 개발 중인 대작 게임인 ‘프로젝트 HP’(가제)가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넥슨의 신규개발본부는 최근 프로젝트 HP의 티저 영상을 공개하고, 사전 테스트 일정을 예고했다. 넥슨은 사전 테스트 참가자를 모집한 뒤 다음달 5~8일 나흘간 일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넥슨은 테스트 기간 동안 근거리에서 맞붙어 싸우는 대규모 백병전의 재미를 중점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프로젝트 HP는 병사들이 죽으면 돌이 돼 사라지지만 큰 공을 세운 자는 강력한 영웅이 강림한 화신이 된다는 영웅신앙을 마음에 품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0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대상(대통령상)을 받은 ‘마비노기 영웅전’과 2018년 최우수상(국무총리상)을 받은 ‘야생의 땅: 듀랑고’를 만든 이은석 디렉터가 이번 게임의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넥슨의 신규개발본부를 총괄하는 김대훤 부사장은 “신규개발본부는 ‘프로젝트 HP’를 시작으로 완성도와 차별성을 두루 갖춘 작품을 시장에 연달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 신은 왜 모세에게 신 벗으라 했나… 신부·목사님들이 풀어주는 성경

    신은 왜 모세에게 신 벗으라 했나… 신부·목사님들이 풀어주는 성경

    상반기 성서 관련서 판매량 14.6% 증가 수평적인 예수 강조 ‘이현주의 신약 읽기’ 문화적 해석 곁들인 ‘성경 속 궁금증’도최근 개신교와 천주교계에서 신앙의 핵심인 성경을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적이 잇달아 출간됐다. 코로나19로 종교 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초심자들에게는 다소 난해한 교리를 쉽게 설명해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도서출판 삼인은 최근 동화작가로 활동해 온 이현주 목사의 저서 ‘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를 출간했다. 이 목사는 기존 신약 성경을 새로운 문장으로 다듬은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투를 ‘해라체’ 대신 ‘하오체’로 옮겨 수평적 관계를 강조했다. 그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건 우리와 같은 지평에서 나를 따라오라고 진정한 삶의 본을 보이려는 것인데 그분을 높은 자리에 올려 모시는 게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구절마다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보여 주기 위해 주제별로 소제목을 달았다. 각 주제의 끝마다 짤막한 논평도 덧붙였다. 예를 들면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는 마르코(마가) 복음 구절에는 “필요한 것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부자라고 한다면 물질의 풍요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라고 해설을 곁들이는 식이다.가톨릭출판사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가 펴낸 ‘성경 속 궁금증’을 내놓았다. 이 책은 ‘왜 성서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에서부터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은 누구일까’까지 신구약을 망라해 궁금할 만한 내용 95가지에 대한 답변을 제시한다. 예컨대 ‘하느님은 왜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하셨을까’라는 장에서는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그동안 익힌 인간의 관습과 생각을 버린다는 내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하느님 앞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허 신부는 “성경은 현재와 시공간의 차이가 있어 이를 이해하려면 시대의 문화·풍속·지리 등을 잘 알아야 한다”고 집필 배경을 전했다.이 밖에 성경 전문 출판사 성서원은 전체 24권으로 기획된 ‘스토리텔링 성경’ 시리즈 1차분 14권을 완간했다. 김영진 성서원 대표와 강정훈 목사 등이 집필한 이 책은 성경 신구약 전체의 장과 절을 현대 대화체를 사용해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성경 본문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본문을 읽고 나서 묵상을 통해 말씀에 대한 응답을 고백적으로 진술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성경 관련 서적의 잇따른 출간은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 하락에도 ‘인류 최대 베스트셀러’로서 성경이 주는 삶의 위안에 대한 갈망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1~6월 성경 관련 도서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6% 늘었다. 이창익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연구교수는 “인문학의 위기에 따른 인문학 붐이 일면서 난해한 학술 서적들을 쉽게 풀어 쓴 책들이 나오듯, 종교계도 이제 일반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변화의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평가했다.
  • 집합금지 어기고 6차례 예배 강행한 60대 목사 벌금 400만원

    집합금지 어기고 6차례 예배 강행한 60대 목사 벌금 400만원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어기고 대면 예배를 강행한 교회 목사와 전도사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형사1단독(부장 김종근)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목사 A(69)씨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함께 기소된 전도사 B(59)씨에게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들은 집합 금지 행정 명령을 어기고 광주 서구 모 교회에서 지난해 8월 28일과 8월 30일 총 6차례 대면 예배를 강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광주시는 당시 유흥시설, 광화문 집회, 교회 등을 중심으로 확산세가 심각해지자 8월 27일부터 9월 10일까지 교회, 놀이공원, 공연장, 야구장, 목욕탕 등에 대한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교회에서는 비대면 온라인 예배만 가능했다. 하지만 A씨 등은 금요예배 명목으로 8월 28일 신도 67명이 참석한 상태에서 예배를 했다. 8월 30일에도 1부 예배(83명), 2부 예배(42명), 3부 예배(69명), 청년 예배(18명), 저녁 예배(90명) 등 5차례 예배를 강행했다. 집합금지 명령 이행을 확인하러 현장을 찾은 공무원들에게 밖으로 나가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재판장은 신약성경 마태복음 구절을 인용해 “신앙을 가진 사람이 종교적 책무뿐 아니라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도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피고인들이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성경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에 예수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쳐라”라고 답했다. 김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은 국가와 전 국민이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대면 예배만이 올바른 종교의식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갖고 예배를 강행했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많은 교인이 코로나에 확진됐음에도 피고인들은 범행을 부인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반복했다”며 “다만 사실관계 자체는 인정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 청년부 사역하며 10년간 성폭력…목사 아들의 추악한 민낯

    청년부 사역하며 10년간 성폭력…목사 아들의 추악한 민낯

    “도덕적으로 잘못된 점은 인정하나, 위력을 행사해 성관계를 가진 적은 없다.” 교회 여성 신도들을 상대로 ‘그루밍(길들이기) 성폭력’을 저지른 30대 목사는 최후 진술에서도 무죄를 주장했다. 그루밍 성폭력은 피해자와 친분 관계를 맺고 심리적으로 지배한 후 성적으로 학대 하는 범죄를 의미한다. 담임목사의 아들이자 학생들의 사역을 담당하는 전도사였던 A씨는 2010년부터 2018년 2월까지 인천 부평구 한 교회에서 청년부 여자 교인 3명을 추행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2018년 10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글의 게시자는 “담임목사의 아들인 A목사는 전도사 시절부터 목사가 되기까지 지난 10년간 중고등부, 청년부 여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루밍 형태의 성범죄를 저질렀다”라고 호소했다. 피해를 입은 여성 신도들은 2018년 12월 변호인을 선임해 A씨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위계 등 간음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10대 때 A목사가 ‘좋아한다, 사랑한다’며 신뢰를 쌓은 뒤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검찰은 지난해 4월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고, A목사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지난달 9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징역 7년을 구형했다.인천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호성호)는 지난 9일 선고 공판에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위계 등 간음 및 유사성행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목사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신도들에 대한 상당한 영향력을 건강한 신앙생활의 책무가 아닌 범행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라며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지배해 성적 학대를 하거나 위력으로 추행하면서 (범행을) 인지하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회복도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범행 횟수가 많고 범행 경위, 방법 등을 고려하면 그 책임이 무겁다”라며 “다만 벌금형을 초과하는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피해자 측은 이날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입장문을 내고 “우리나라에 그루밍 성범죄와 관련된 법안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이 사건을 공론화하고 재판이 시작됐을 때 비관적인 목소리들이 많이 들려왔다”라며 “재판 결과가 앞으로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큰 울림을 주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 멍하니, 가만히… 대청에 호며들다

    멍하니, 가만히… 대청에 호며들다

    ‘언택트’와 ‘힐링’. 코로나 시대에 여행계의 유행을 주도한 단어다. 호수는 그 유행의 주무대 중 하나다. 이른바 ‘물멍’을 즐길 수 있는 곳. 초여름의 대청호를 찾았다. 충북 청주와 옥천, 대전 등에 걸쳐 있는 거대한 호수다. 성하를 앞둔 무더운 날씨에도 호숫가엔 격렬하게 햇빛에 항거하고, 격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뜻밖에 많았다.멀리서 소나기가 몰려들고 있었다. 안개처럼 흐릿한, 그러나 주변과는 또렷이 구별되는 세력으로 커진 소나기는 먼 산을 적신 뒤 이제 곧 호수를 덮칠 기세였다. 소나기가 호수 방향으로 올 것은 거의 확실했다. 습기를 잔뜩 머금어 서늘해진 바람이 장판처럼 잔잔했던 호수 위로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나기의 내습을 직감한 아이들은 가젤 영양처럼 ‘튀어’ 다니며 소리를 질러댔다. 비를 피하려는 건지, 소나기를 맞이하는 의식이라도 벌이려는 건지 불분명할 만큼 아이들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고조돼 있었다. 예전엔 소나기가 들녘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모습을 드물게나마 봤던 것 같다. 일종의 경험치도 쌓여 있다. 소나기가 다가올 때마다 바람과 기온은 미묘하게 바뀌었다. 대기 중엔 흙냄새도 옅게 묻어 있었다. 이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건 대도시에 정착한 이후다. 세상은 좀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진 거다.●비 그친 호수엔 사람도 나무도 ‘데칼코마니’ 대청호 ‘멍상정원’에서 이 모습을 지켜봤다. 공식 명칭은 ‘명상정원’인데, ‘호수 멍때리기’에 최적의 장소인 듯해 이번에 한해 별명처럼 이리 부르기로 한다. 소나기를 피할 공간이 있었다면 아마 황순원의 ‘소나기’를 생각하며 더 오래 ‘멍상정원’에 머물렀을지도 모르겠다. 이튿날 아침, 동이 트자마자 그 자리를 다시 찾았다. 사진작가 2명, 개인방송 진행자 1명 등 겨우 몇 명이서 그 너른 공간을 독차지하고 있다. 전날 소나기가 퍼부을 때는 혼돈의 호수였지만, 이날은 거울처럼 잔잔했다. 빙판, 장판 등 그 어떤 표현도 잔잔한 호수의 모습을 전하기엔 역부족인 듯했다. 호수 위로 작은 섬과 나무, 사람들이 정확히 반대로 비춰진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거울’이 그나마 적확할 듯하다.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데칼코마니라 표현한다. ‘멍상정원’이 속한 곳은 대전 마산동이다. ‘마산동 쉼터’라거나 ‘명상정원’, ‘슬픈 연가 촬영지’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세 곳 모두 한 지역을 이르는 이름이라 봐도 무방하다. 마산동 쉼터 주차장에서 ‘멍상정원’까지는 700m가 조금 넘는 거리다. 나무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길이 둘로 나뉜다. 왼쪽보다는 오른쪽이 조금 더 멀다. 오른쪽으로 먼저 간다. 볼거리를 고려해서다. 물론 정해진 규칙은 없다. 오른쪽 길을 따라 2층 정자를 지나면 우물이 나온다. 우물 곁엔 제멋대로 굽은 못생긴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평범하지만 어딘가 섬뜩한 느낌을 주는 모습이다. 이른바 ‘J 호러’의 기원이 됐던 일본 영화 ‘링’의 강렬한 인상이 여태 뇌리에 남은 거다. 이 우물은 영화 ‘7년의 밤’이 촬영된 세트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스스로 몸을 던진, 그리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에게 ‘고통의 블랙홀’로 작용했던, 일종의 미장센이다. 이와 비슷한 장르의 영화 ‘살인소설’, 한국형 좀비 영화 ‘창궐’ 등도 이 일대에서 촬영됐다, 고 안내판은 적고 있다. 우물에서 몇 걸음 더 옮기면 ‘물속마을 정원’이다. 크고 작은 장독들과 담장 등으로 멋을 냈다. 의아했다. 왜 갑자기 물속마을 정원이 튀어나온 걸까. 그러다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의 말을 듣고는 머리에서 ‘뎅~’ 하고 종이 울리는 듯했다. 백 회장은 “수몰 전 이 마을의 모습을 꿈에서 종종 본다”고 했다. 외갓집을 찾았던 기억의 단편이 꿈에서 재현될 정도면 수몰민은 얼마나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울까. 백발 성성한 노인이 수구초심으로 찾아와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노인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실향민은 통일되면 고향 땅을 밟을 희망이나 품지만 수몰민은 갈 고향이 아예 없다고요. (대청호) 물을 빼는 일은 아마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물속마을 정원은 수몰의 기억이 담긴 공간인 거다. 한데 여기서 살았을 사람에 대한 기록은 없다. 이들의 기억은 그저 눈요기용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물속마을 정원에서 오른쪽으로 난 모래톱은 드라마 ‘슬픈 연가’ 촬영지다. 이미 수많은 이들의 휴대전화에 ‘인증샷’으로 저장됐을 만큼 명소다. 액자 형태의 조형물을 세워 한층 ‘폼나게’ 만들었다. 건너편은 ‘멍상정원’이다. 이름처럼 많은 이들이 다양한 자세로 ‘호수멍’을 즐기고 있다. 개미허리처럼 가는 모래톱 건너편엔 야트막한 언덕이 있고, 그 위로 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흔히 ‘뜬섬’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름 그대로 평소에는 물에 떠 있다. 그러다 봄철 갈수기나 장마철을 앞두고 미리 물을 빼는 배수기엔 수면 아래 있던 모래톱이 드러나며 뭍과 연결된다. 그러니까 이맘때만 만날 수 있는 ‘한정판 풍경’인 셈이다.●수면 아래엔 日에 맞선 동학군 승전의 역사 이쯤에서 백 회장의 말을 조금 더 듣자. 기억을 더 거슬러 오르면 조선시대 당시 ‘멍상정원’ 일대는 주안장터였다. 삼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4차선 국도 격인 ‘율봉도’가 지나는 길에 형성된 큰마을이었다. 목을 축이려 주막에 들른 이들, 주모와 희롱하는 장돌뱅이들, 육모방망이 흔들며 으스대던 포졸 등 수많은 인간 군상들로 시끌벅적했을 테다. 이상면(75) 서울대 명예교수가 전하는 역사도 무척 흥미롭다. 그의 독자적인 연구 결과이긴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캐냈다는 점에서 역사학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듯하다. 현 청남대가 있는 충북 청주 문의면 등 대청호 중상류 일대는 조선시대 정치 경제의 요충지였다. 금강 수계와 ‘율봉도’가 교차하는 지점이어서, 이 일대를 장악하면 아래쪽 삼남까지 통제가 가능했다. 이는 대청호에서 15㎞ 정도 떨어진 청주에 삼남 최대 군사기지인 진남영을 설치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19세기엔 ‘호중동학군’의 주무대이기도 했다. ‘호중’은 다소 생소한 이름인데, 현재의 청주와 충주, 충남 공주 등의 지역을 아우르는 명칭이라고 보면 무리가 없겠다. 호중동학군이 일본군과 맞붙어 승전고를 울린 곳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동학군 승전의 역사는 호수 아래 깊이 가라앉아 있다. 이들의 이름이 생경했던 것도 이 때문일 텐데, 서둘러 이 역사를 인양하는 게 후대의 몫이 아닐까 싶다. 일제강점기엔 경부선 철길이 놓일 뻔했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최단 노선이기 때문이다. 한데 갑자기 대전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이유야 자명하다. 일제의 머릿속에 동학군에 당한 참패의 기억이 깊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한없이 조용한 ‘멍상정원’이지만 수면 아래엔 이처럼 숨가쁜 역사가 잠겨 있다. 이상면 명예교수는 호중동학군의 별동대장이었던 이종만(훗날 이종찬으로 개명)의 손자다. 그는 수많은 조상들의 역사가 새겨진 이곳을 찾는 후대에게 “사실을 사실대로 알고 역사가 부여하는 의미를 되새겨 보라”고 권했다.●좁은 틈 지나면 소원 이뤄진다는 ‘신선바위’ 인접한 비룡동엔 신선바위가 있다. 예전 제사유적지로 추정되는 공간이다. 바위 사이엔 겨우 사람 한 명 지나갈 정도로 좁은 틈이 나 있다. 이 틈을 지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대청호를 돌아본다는 건 사실 호반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긴다는 것과 뜻이 같다. 청주 문의면 쪽에서 내비게이션에 대청댐을 찍으면 보통 32번 국도로 안내한다. 하지만 적요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늘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문의문화재단지 옆으로 난 대청호반로가 그렇다. 국도에 비해 오가는 차량이 훨씬 적어 한결 호젓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이 도로를 따라 대청댐 쪽으로 가다 보면 현암사와 만난다. 대청호를 굽어볼 수 있는 절집이다. 계단을 통해 올라야 해 적잖이 품이 든다. 현암사 반대편 능선엔 구룡산 장승공원이 있다. 2004년에 폭설로 쓰러진 나무들을 깎아 만든 장승 500여기가 진입로부터 장승공원까지 길게 늘어서 있다. 장승들은 남근 형태가 많다. 안내판은 “여성의 기운이 강한 곳이라 남근 형태의 장승을 배치했다”고 적고 있다.마산동 쉼터 아래쪽, 그러니까 대청호 남쪽의 옥천 일대에도 볼거리가 많다. 대표적인 곳은 부소담악이다. 수십m 높이의 크고 작은 절벽들이 비단강(금강)을 찢으며 병풍처럼 이어져 있다. 모양새로는 딱 ‘비단강을 가르는 칼’이다. 출발 전 한국관광공사의 윤승환 세종충북지사장이 “하루 코스 언택트 힐링 여행지로 강추”한 곳도 아마 이쯤 어디일 것이다. 절벽의 길이는 700m에 이른다. 절벽 위로 길이 나 있다. 끝까지 갈 수도 있지만 위험하니 절벽 중간쯤의 추소정에서 발걸음을 돌리길 권한다. 부소담악은 사실 멀리서 봐야 제맛이다.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금강을 가르고 있는 절벽의 기세를 봐야 제대로 완상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적합한 곳은 추소리 마을 뒤 산자락이다. 이곳에 전망대 하나 세우면 단박에 명소로 발돋움할 텐데, 여태 실현되지 않아 못내 아쉽다. 방아실마을 끝자락엔 ‘수생식물학습원’이 있다. 이름으로는 생태교육시설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입장료(6000원)를 받는 상업시설이다. 개신교인 다섯 가족이 모여 사는 일종의 신앙촌 같은 곳인데, 내부를 잘 꾸며 놓아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관광객들이 셀피를 많이 찍는 곳은 시설 끝에 있는 작은 교회다.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다.부소담악 인근의 이백리엔 이지당이 있다. 지방문화재였다가 지난해 말 보물(2107호)로 승격된 국가지정 문화재다. 이지당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이끌다 충남 금산 전투에서 순국한 조헌이 후학을 길러내던 서당이다. 조헌 생전에는 각신서당(覺新書堂)으로 불리다 훗날 우암 송시열이 이지당(二止堂)이라 고쳐 불렀다. 이지(二止)는 시전에 나오는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 문구에서 끝 단어인 ‘지’(止)자 두 개를 딴 것이다. ‘산이 높으면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라는 뜻이다. 석호리엔 청풍정이 있다. 야산 중턱 끄트머리에서 단아한 자태로 금강을 굽어보고 있는 정자다. 한말 개혁파 정치인 김옥균과 기녀 명월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정자 곳곳에 담겨 있다. 옥천은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다. 그의 대표 시 ‘향수’에 나오던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은 이제 호수로 변했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던 모래사장은 대부분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풍경이 그나마 온전히 남은 곳은 대청호 안터지구다. 장계관광지가 있는 장계리와 오대리, 석탄리, 연주리 등을 잇는 지역이다. 지난 5월엔 환경부가 이 일대를 ‘국가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했다. 석탄리 안터마을은 반딧불이 서식지로 유명하다. 지난 15년간 호수 주변에서 농사를 짓지 않으며 반딧불이 서식지를 보존해 왔다. 요즘 석탄리 일대 호안은 초록빛 풀들로 뒤덮였다. 이 역시 배수기 때만 볼 수 있는 ‘한정판 풍경’이다. 연주리 쪽에선 둔주봉이 명소다. 등산로 입구에서 황토흙길을 800m쯤 오르면 정상 전망대가 나온다. 발아래로 반전된 한반도 지형이 펼쳐진다. ■여행수첩 →마산동 쉼터는 대청호 중간쯤에 있다. 수도권 등 외지에서 찾을 경우 청주 문의면 혹은 옥천 안남면 방면에서 출발해야 더 효율적으로 대청호를 돌아볼 수 있다. →T맵으로 신선바위를 찍으면 멀리 떨어진 황당한 곳에 데려다 놓는다. ‘대전 동구 대청호수로296번길’을 찍고 간 뒤 마을 중간쯤에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된다. 20분 정도 소요된다. 신선바위까지는 외진 데다 오가는 이도 별로 없는 만큼 단독 산행보다 동반 산행을 하길 권한다. →장승공원은 승용차로도 갈 수 있지만 찾기는 쉽지 않다. 주차장에서 마을 쪽으로 좀더 들어가야 공원 진입로가 나온다. 여기서 구룡산 정상까지는 불과 500m다. →돌팡깨 식당은 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식당이다. 두부, 청국장 등 주요리는 물론 밑반찬까지 싹싹 비울 만큼 정갈하고 맛있다. 검은 돌이 밀집된 ‘돌팡깨’ 바로 앞에 있다.
  • [씨줄날줄] 구석기 비너스/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구석기 비너스/서동철 논설위원

    국립중앙박물관 선사실에선 다양한 모습과 재질의 주먹도끼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주먹도끼는 140만년 전 나타난 구석기시대 대표 석기로 오랫동안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 1980년대부터 전국 각지에서 출토되기 시작해 지금은 우리나라가 ‘주먹도끼의 나라’로 불린다. 하지만 열과 성을 다한 전시에도 이 방에서 오래 머무는 관람객은 많지 않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호모사피엔스: 진화∞관계&미래’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사피엔스는 현생인류와 같은 종으로 분류하는 학명이다. 특별전이 다루고 있는 시대는 바로 옆 상설전시관의 선사실과 다를 것 없는 구석기시대다. 그런데 700만년 전의 샤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이후 인류가 분화하는 과정을 화석 복제품으로 보여 주는 첫 번째 방에 들어서면 갑자기 눈이 환하게 열린다. 전시의 주인공이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별전에서는 다양한 ‘구석기시대 비너스’도 만날 수 있다. 구석기 비너스를 전시실 안내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2만 6000년 전 무렵 기후는 더 추워지는데, 이 시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비너스는 나체 상태로 머리, 다리가 축소되고 늘어진 가슴, 과장된 배와 허리, 엉덩이 등이 특징이다. … 다수 연구자는 비너스가 다산, 풍요, 생식력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특별전에는 구석기 비너스를 대표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도 나왔다. 1909년 오스트리아 다뉴브 강가의 빌렌도르프에서 철도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됐는데, 출품된 비너스는 오스트리아 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원본을 복제한 것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유럽 사람보다 불교 조각이 친숙한 동양 사람이 더 큰 관심을 갖는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소라처럼 꼬아 올린 비너스의 머리 모양에서 누구나 절에 가면 쉽게 만나는 여래의 머리 모습을 떠올린다. 2017~2018년에는 전곡선사박물관이 ‘구석기 비너스가 부르는 노래’라는 특별전으로 글자 그대로 특별한 관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구석기 비너스가 무엇인지 그 실체를 밝히는 작업도 불교미술 연구가 활발한 동양에서 결정적 진척을 이룰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구석기 비너스를 대모지신(大母地神)으로 보는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의 안목도 설득력 있다. 생산과 풍요의 어머니로 생명과 창조의 어머니인 대모지신은 원초적 신앙의 대상이다. ‘보주’라는 개념으로 생명의 무한 확산을 설명하는 그는 비너스의 머리와 여래의 나발이 응축된 생명력을 상징하듯 비너스의 둥근 몸체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주먹도끼가 그랬듯 갑자기 우리 앞에 비너스가 나타날 날을 기다린다.
  • 법원 “손원영 교수 복직 방해 말라” 판결에도… 손 교수 “아직 연구실 못 들어가”

    법원 “손원영 교수 복직 방해 말라” 판결에도… 손 교수 “아직 연구실 못 들어가”

    불상을 훼손한 개신교인을 대신해 사과하고 복구 비용을 모금했다는 이유로 강단에서 쫓겨났던 손원영(55) 서울기독대 교수가 더는 대학 측의 방해를 받지 않고 강단에 돌아갈 길이 열렸다. 29일 교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1민사부(재판장 전지원)는 지난 28일 손 교수가 서울기독대 총장과 교무연구처장 등 학교 관계자 4명을 상대로 낸 방해금지 가처분 항고심에서 1심 결정을 취소하고 강의를 방해하지 말도록 결정했다. 재판부는 학교 측에 손 교수의 연구실과 도서관 등 학교시설 출입, 학교 홈페이지 이용, 연구실 내 전화·냉난방·인터넷 접속도 방해하지 않도록 했다. 재판부는 “손씨 임용권자인 환원학원이 재임용 결정을 한 이상, 법원 판단 등으로 이 결정이 무효임이 확인되기 전에는 학교 관계자들이 환원학원의 결정을 부정하고 학교 교수로서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학교 관계자들이 손씨의 교수 지위를 부정하며 환원학원의 재임용 통보를 접수하지 않고, 손씨가 학교 연구실에 출입하는 것을 막고, 강의를 배정하지 않는 등 교수로서 권리행사를 방해한 점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이 가처분 결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며 이들이 결정을 위반하면 위반 일수 1일당 50만원씩을 손 교수에게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손 교수는 2016년 1월 한 개신교인이 경북 김천시 개운사 법당에 들어가 불상과 법구를 훼손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교계를 대신해 사과 글을 올리며 법당 복구 비용 모금에 나섰다. 이에 대해 서울기독대 교단인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는 손 교수 신앙을 조사하도록 했고, 대학 측은 손 교수의 행위가 신앙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며 2017년 2월 그를 파면했다. 손 교수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2019년 10월 학교 측의 파면 조치를 취소하라는 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법원 판결을 받아들인 학교법인 환원학원의 재임용 결정에도 총장과 대학본부는 재임용 결정이 총장 제청 없이 이뤄졌다며 복직 반대를 고수했고, 그의 연구실을 폐쇄한 채 맞서왔다. 손 교수는 29일 “법원 결정에 따라 학교에 출근했지만, 여전히 학교 측은 연구실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라며 “강제성 있는 판결인 만큼 방학이 끝나는 2학기 때부터는 다시 강의 현장으로 돌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땅 위 순교의 상처 땅 아래 스며… 그 땅에 기대어 살아가는 지금

    땅 위 순교의 상처 땅 아래 스며… 그 땅에 기대어 살아가는 지금

    특별한 장소를 기억하는 방법은 그 장소가 지닌 역사적 의미에 따라 달라진다. 88올림픽처럼 우리 역사에서 오래도록 자부심을 갖고 축하해야 할 곳에는 웅장한 상징물을 세우기도 하지만 위무해야 할 장소에는 추모비나 위령비를 세운다.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100년 넘도록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당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라면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 한국천주교의 성지 중 성지에 조성된 서울 서소문 역사공원에 2019년 6월 개관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땅이 지닌 역사성과 상징성을 은유적으로 풀어내면서 아픈 역사를 추모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 준다. 도심의 대로에서 살짝 비켜 간 곳에, 그것도 도심의 자그마한 공원 지하에 들어앉아 있어서 사전 정보가 없으면 지나치기 쉽지만 엄청난 공간의 아우라를 지닌 곳이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다. 설계를 맡았던 윤승현 중앙대 건축공학과 교수와 보이드아키텍츠의 이규상 건축가를 만나 이곳의 의미를 짚어 봤다.붉은 벽돌로 된 벽이 사방을 둘러싼 이 이국적인 곳은 한국 천주교인들에게는 성지 중의 성지로 꼽히지만 워낙 눈에 띄지 않는 장소였다. 박물관은 개관 6개월 만에 코로나19가 창궐하는 바람에 문을 닫아야 했으니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만도 하다. 윤 교수는 “천주교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권력의 폭력성과 시대적 편협성에 반하는 항거의 상징적 장소임에도 지끔껏 이런 역사성과 장소성의 의미를 내포한 특별한 장소적 가치를 간과한 채 방치되고 있었다”면서 “숱한 애환이 서린 이 땅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했다”고 의미를 전했다.●3인 건축가 ‘지하와 지상의 관계’에 초점 지금은 사라졌지만 돈의문과 숭례문 사이에 소의문(昭義門)이 있었다. 도성 축조와 함께 1396년 건립됐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철거된 소의문의 다른 이름은 서소문. 한양의 4개 소문(小門) 가운데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화군과 인천군으로 통하던 관문으로, 서소문 밖 네거리는 한강의 지천인 만초천(蔓草川·욱천이라고도 함)을 따라 일찍이 상권이 형성됐다. 늘 사람들로 북적이던 터라 조선 중기 이후 300여년 동안 국사범들의 처형장으로도 쓰였다. 처형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이 시신을 밖으로 내가는 ‘시구문’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39년 기해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천주교인이 신앙과 신념을 위해 순교했다. 그 숫자가 수만 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전한다. 이 장소는 1973년 서소문 근린공원으로 지정됐지만 경의선 철로와 서소문 고가 등으로 지역과 단절된 채 외딴섬처럼 버려졌다. 1996년 공원 지하에 중구의 재활용쓰레기처리장과 900여대의 공영 주차장이 건립되면서 순교자들의 신념을 담은 성스러운 장소라는 상징성에서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그러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2011년 7월 국유지인 서소문 근린공원 일대를 역사공원으로 조성하고 박물관을 짓는 사업을 제안하면서 대역사가 시작됐다. 윤승현·이규상·우준승 팀이 현상 설계에서 당선돼 5년간의 ‘험난한 설계와 공사’ 기간을 거쳐 2019년 6월 완공됐다. “가장 공공적인 장소는 그 지역의 역사와 장소가 품은 깊이를 담아내 고유한 분위기로 펼쳐질 때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의 성지로서 이 장소가 전하는 메시지를 충실하게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천주교인들뿐 아니라 시민 모두에게 가치 있는 장소로 거듭나는 유효한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규상 건축가가 말하는 설계의 방향이었다. 세 건축가는 장소의 종교적 상징성을 살리되 종교를 초월해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공의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과거와 현재, 기념성과 일상성을 대비하고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풀어냈다. 특히 기존의 근린공원과 재활용쓰레기처리장, 지하 4개층 3만 6000㎡의 공영주차장을 재편해 역사기념공간을 건립하는 작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은 ‘땅 위와 땅 아래’, 즉 지하와 지상의 관계였다. “과거의 역사는 기억에 남고 현실은 삶으로 지속된다고 하지만 이 두 가지 개념은 별개의 것일 수 없습니다. 땅 위에서 벌어진 상처와 기념은 그 땅 아래로 스며들었고, 우리는 그 땅에 기대어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이죠.” 윤 교수는 “지상의 역사성을 담은 공원과 그에 기반한 지하 역사박물관은 불가분의 관계이고, 그들 간의 관계가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흐름이 땅의 위아래를 넘나드는 공간의 흐름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단초가 됐다”면서 ‘대지의 결속’을 설명했다. 그러니 이 역사적 공간의 답사는 지상의 공원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른 순서다.서소문역사공원이라 이름 지어진 공원에는 천주교 박해 때 이곳에서 참수된 순교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현양탑이 서 있다. 순교자 현양탑은 원래 1984년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을 기념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순교자 중 44명이 시성된 것을 기념해 세워졌다. 이후 서울시의 각종 시설물 설치 계획에 따라 부득이 철거했다가 1999년 새로운 순교자 현양탑을 세웠다. 공원에는 과거 처형장의 망나니가 피 묻은 칼을 씻었다고 하는 ‘뚜께 우물터’, 조각가 티머시 슈왈츠의 작품 ‘노숙자 예수 2013’도 설치돼 있다.추모의 기능과 장소의 의미들을 도시의 일상적 문맥 안으로 들여놓은 공원은 사방이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로 녹색 띠를 이룬다. 중앙부는 잘 다듬어진 잔디광장에 지하에서 올라온 3개의 구조물이 서 있다. 붉은 벽돌과 거친 느낌의 노출 콘크리트, 내후성 강판의 물성이 각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 구조물은 지하 공간의 존재감을 알려 주는 동시에 지상의 빛을 지하로 끌어들이는 건축적 장치다. 윤 교수는 “원래 이 마당에 33m 높이의 메모리얼 타워를 배치해 자연스럽게 공원의 지반과 하늘과의 관계를 만들면서 작지만 알찬 역사공원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도록 할 계획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공원을 가로질러 서남쪽 계단에 그나마 2층 높이 탑이 외부인들에게 공간의 존재를 알리는 표지 역할을 한다. 공원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순교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서 있는 박물관 입구가 나온다. 지하의 박물관은 종교적 공간이자 문화적 공간이다. 이 땅의 역사적 기록과 유물들을 전시하는 상설전시관과 기획 전시공간을 갖추고 있다. 공간은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무척 단순한 구조다.●주차장 격자모듈이 다층구조로 연결 윤 교수는 “기존의 주차장 일부 구조를 활용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철저히 주차장 공간의 효율적 측면만으로 고려해 설정된 격자모듈(가로 7.5m×세로 8m)이 공간의 기본 그리드(격자판)가 됐다”면서 “135개의 단위 입방체 격자판이 지하 2층과 3층에 다층적 구조로 연결되면서 끊임없이 증식 및 통합돼 가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각 단위 격자는 십자 기둥에 의해 독립적 공간이 된다”고 말했다.기해박해 때 순교한 성 정하상(정약용의 조카)을 추모해 만든 성 정하상 기념 경당은 방문자들이 이 장소의 본질적 의미를 체감하도록 만들어졌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완만한 내리막 경사를 따라 경당에 이르게 된다. 경당을 지나 순례길 같은 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어둠이 짙게 드리운 기념 전당 ‘콘솔레이션 홀’에 이른다. 땅속 14m 깊이에 2m 높이로 떠 있는 가로 25m, 세로 25m, 높이 10m의 입방체 튜브는 ‘신념을 다한 위인들’을 위한 기념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그 한가운데로 한 줄기 빛이 쏟아진다. 이규상 건축가는 “공원에서부터 내려오는 이 빛은 이 장소에서 사라진 이들의 신념이 여전히 땅속 깊은 곳에서 영원히 비치는 것을 은유하면서 이 홀 전체가 박물관의 가장 소중한 전시물이 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어둠 속에서 한참을 있다 보니 빛이 그리워진다. 만초천을 상징하는 바닥의 희미한 빛을 따라가 문을 나서면 드라마틱하게 정방형의 하늘을 품은 광장이 나타난다. 가로·세로 각 33m, 높이 18m의 무표정한 붉은 벽돌에 둘러싸여 자연스럽게 시선을 하늘로 유도하는 하늘 광장이다. 압도적인 스케일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윤 교수는 “과거의 아픔이 하늘과 교우함으로써 영원히 빛나게 되길 기대하는 공간적 장치”라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묵상의 공간이 될 하늘 광장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의를 향한 용기와 무한의 자유를 선사하는 것 같았다.함혜리 칼럼니스트
  • 남아공 정부 “일처다부제 허용”에 아내가 넷인 남편이 맹렬히 반대

    남아공 정부 “일처다부제 허용”에 아내가 넷인 남편이 맹렬히 반대

    21세기에 일부다처제(polygamy)를 주장하는 것은 어지간히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일처다부제(polyandry)를 주장하는 것도 정신줄 놓은 일로 비친다.  그런데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일처다부제를 합법화하자고 제안했던 사실이 공개돼 보수 진영을 뒤집어놓았다고 영국 BBC가 27일 전했다. 세상에서 가장 ‘리버럴’ 헌법을 갖고 있는 남아공은 남녀 모두에 동성애를 허용하고 남성에 일부다처제를 허용했으니 당연히 여성에 일처다부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론 수렴을 위해 정부 견해를 담아 발표하는 문서인 녹서(Green Paper)를 통해 1994년 백인 소수 정권이 끝난 뒤로 혼인법과 관련한 가장 큰 개정 움직임을 주장했다.  남아공 정부는 이번 녹서에 일처다부제뿐만 아니라 무슬림(이슬람교도)과 힌두교도, 유대교도, 라스타파리아니즘(성서를 다르게 해석해 에티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1892∼1975년)를 재림한 그리스도로 섬기는 신앙운동) 결혼 역시 법적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담았다.  이 주제에 권위자인 콜리스 마초코 교수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반대하는 이들은 통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라며 “아프리카 사회는 진정한 평등을 향유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통제권 밖에 있는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기업인이며 네 부인과 어울려 사는 집안 모습을 리얼리티 예능으로 보여줘 얼굴을 알린 무사 음셀레쿠는 일처다부제에 맹렬히 반대한다. “아프리카 문화를 파괴할 것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느냐. 신원 증명을 어떻게 할지도 의문이다. 여성은 남성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 들어본 적도 없다. 이제는 여성이 남성에게 로볼라(지참금)를 지불한다는 것인데, 그럼 남자가 여자 성을 따라야 하는 건가?”  마초코 교수는 이웃 짐바브웨 태생으로 그 나라의 일처다부제를 연구했다. 사회적으로 터부이고 법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결혼 방식이지만 20명의 여성이 45명의 공동남편과 어울려 사는 것을 지켜봤다. “일처다부제는 사회 일부로부터 격렬한 반대를 받기 때문에 지하로 숨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 은밀함은 프리메이슨의 그것과 닮았다. 믿지 못하며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부터 그런 결혼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부정한다. 천대나 박해를 받을까봐 그러는 것이다.”  마초코 교수가 연구한 이들은 모두 따로 살지만 그네들끼리는 매우 열려 있는 공동체였다. “한 아내는 초등학교 6학년(열두 살) 때부터 일처다부제를 받아들이고 준비했다. 여왕벌이 수많은 일벌들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것을 배운 뒤부터였다.”  어른이 돼 여러 짝과 동시에 성관계를 갖기 시작했는데 다들 아는 사이였다. 지금 아홉 명의 공동남편 가운데 넷은 어린시절 남자친구들이었다. 여자가 우선권을 쥐고, 남편들을 불러들인다. 신랑이 지참금을 챙기기도 하고, 가축을 내기도 한다. 다른 남편들과의 관계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판단하면 공동남편을 내쫓기도 한다.  그가 인터뷰한 남성은 남편을 공유하는 것을 용인한 것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아내를 잃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몇몇 남성은 아내를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해 이혼이나 외도를 피하려고 공동남편을 받아들이는 데 동의했다고 했다. 또 아이를 잉태시킬 수 없어 아내가 아이를 갖도록 다른 남편과 잠자리에 들게 한다는 이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남자들은 공적인 체면을 세우고 거세됐다는 낙인이 찍히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마초코 교수는 남아공에도 일처다부제 가정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젠더인권 활동가들은 정부가 평등과 기회의 관점에서 일처다부제를 허용하는지 묻는다. 아프리칸 기독민주당(ACDP)을 이끄는 케네스 메슈 목사는 “사회를 파괴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남자들이 ‘왜 그 남자와 지내고 나랑은 놀아주지 않느냐’고 얘기한다고 생각해보라. 두 남자에 싸움 나는 건 당연하다.”  이슬라믹 알자마 당의 지도자 가니에프 헨드릭스는 “아이가 태어났는데 수많은 남자의 DNA를 채취해 아빠를 가려야 한다고 상상해보라”면서 말도 안된다고 했다. 음셀레쿠는 남아공인들이 평등의 가치를 너무 좇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헌법에 어떤 것이 보장돼 있다고 마냥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왜 당신은 네 명의 아내를 거느려도 되고, 여자들이 그러면 안된다는 거냐고 묻자 “내 결혼 때문에 위선자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침묵하기보다 떠드는 게 낫다”고 동문서답을 한 뒤 “이건 아프리카다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바꾸지 못한다.  마초코 교수는 한 발 나아가 케냐와 콩고민주공화국, 나이지리아 등에서 도입을 검토했으며 가봉에서도 법으로 허용해 계속 도입 실험 중이다. 그는 “더는 평등은 없으며, 결혼은 계층을 나누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일처다부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의 정확한 신원을 둘러싼 걱정 자체가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에 대한 문제는 간단하다. 그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는 누구에게서 태어났든지 집안의 아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여성 권리를 위한 로펌인 ‘여성의 법 센터’는 “(정부의 이번) 녹서는 인권을 지키기 위한 시작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견해에 도전한다고 해서 법 개정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 무더위 식힐 스릴러 영화 잇달아 개봉…‘추격’, ‘무당’, ‘탈출 게임’이 극장가 살릴까

    무더위 식힐 스릴러 영화 잇달아 개봉…‘추격’, ‘무당’, ‘탈출 게임’이 극장가 살릴까

    조우진 배우가 주연을 맡은 도심 추격 스릴러 ‘발신제한’이 개봉 첫날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가운데, 최대 성수기 여름 시즌을 맞은 극장가에선 또 다른 스릴러 영화들도 속속 개봉을 앞두고 있다. ‘추격’과 ‘무당’, ‘탈출 게임’ 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코로나19로 침체된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을지 관심이 쏠린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권오승 감독의 ‘미드나이트’는 한밤중에 재개발단지에서 벌어지는 살인범과의 추격전을 다뤘다. 청각 장애가 있는 경미(진기주 분)가 피를 흘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소정(김혜윤 분)을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칼에 찔린 소정을 도와주려던 경미는 연쇄살인마 도식(위하준 분)의 새로운 표적이 된다. 경미는 살고 싶다는 의지로 도망치지만, 도식의 발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불리한 상황으로 관객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영화는 ‘악마를 보았다’(2010), ‘신세계’(2012), ‘마녀’(2018) 등 흥행작을 제작한 페퍼민트앤컴퍼니의 신작으로 기대를 모은다. 지난 4월 공유·박보검 주연의 SF 블록버스터 ‘서복’과 마찬가지로 극장과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서 동시에 공개돼 성패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다음 달 14일에는 태국의 샤머니즘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 ‘랑종’이 개봉한다. ‘곡성’(2016)의 나홍진 감독이 시나리오 원안을 쓰고, 태국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한 ‘피막’(2013)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이국적 풍광을 배경으로 긴장감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는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의 산골 마을에서 대를 이어 조상 대대로 ‘바얀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이 조카 ‘밍’의 이상증세가 심해지는 등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가족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다. 집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이산 지역 사람들의 믿음은 깊게 뿌리내린 토속 신앙이다. 마을 곳곳에 자리한 신당과 제사를 위해 바쳐진 제물들의 모습, 깊은 숲 한가운데 자리한 석상 등 이국적인 정경이 공포와 어우러져 몰입감을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랑종’과 같은 날 개봉하는 미국 애덤 로비텔 감독의 ‘이스케이프 룸 2: 노웨이 아웃’은 방 탈출 게임을 소재로 한 ‘이스케이프 룸’(2019)의 속편이다. 전편에서 실시된 출구 없는 탈출 게임에서 살아남은 조이(테일러 러셀 분)와 벤(로건 밀러 분)이 게임을 설계한 의문의 조직 ‘미노스’의 실체를 밝히고자 뉴욕에 도착한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남자에 휘말려 지하철에 갇히게 되고 살아남으려고 목숨을 건 탈출 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전기가 흐르는 지하철, 물이 잠기는 방, 모래사장 늪에 빠지는 모습 등 전편보다 자극적인 위기 상황과 화려한 볼거리에 관심이 집중되는 작품이다.
  • 비폭력 신념 따른 입영거부 첫 무죄

    비폭력 신념 따른 입영거부 첫 무죄

    대법원이 비폭력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남성에게 처음으로 무죄를 확정했다. 여호와의 증인 등 종교적 양심이 아닌 개인의 평화적 신념을 이유로 현역 입대를 거부한 남성의 무죄가 확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이 병역 거부의 ‘양심’을 폭넓게 인정하면서 지난해 10월부터 시행 중인 대체복무제의 확대 여부를 둘러싼 논의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는 24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모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 2월 비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이에 대해 무죄 판결을 확정한 대법원은 이번엔 현역 입대 거부자에게까지 무죄 판단의 범위를 넓혔다. 앞서 정씨는 2017년 11월 병무청으로부터 현역병 입영 대상자 통지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정씨는 종교적·정치적 신념을 기초로 한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했다며, 이는 병역법상 입영 기피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재판에서 자신이 고등학생 때부터 남성성을 강요하는 또래 집단문화에 반감을 느꼈고, 대학 입학 후에는 평화와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 정신에 따라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정씨는 이스라엘의 무력 침공을 반대하는 기독교단체 긴급 기도회나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 등에 참여했다. 성 소수자인 정씨는 자신을 ‘퀴어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며 “다양성을 파괴하고 차별과 위계로 구축되는 군대 체제와 생물학적 성으로 나를 규정짓는 국가권력을 용인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정씨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 처벌의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형사 처벌을 감수하면서 입영을 거부했고, 항소심에서는 36개월간 교도소 또는 구치소에서 대체복무하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관들의 판단도 2심 재판부와 다르지 않았다. 대법원 재판부는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병역법 제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사람이 현역 입영을 거부해 무죄를 확정받은 최초의 판결”이라며 “단순히 기독교 신앙만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어서 기존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사안과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병무청은 201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면서 지난해 10월부터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체복무요원들은 전국 주요 교도소에서 육군 현역병(18개월)의 두 배에 해당하는 36개월간 합숙 복무하며 교정시설의 보조업무를 수행한다.
  • 대법, 종교 아닌 ‘개인 신념’ 현역 입대 거부 첫 무죄 확정

    대법, 종교 아닌 ‘개인 신념’ 현역 입대 거부 첫 무죄 확정

    종교적 신념이 아닌 개인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한 병역 거부자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이 비종교적 신념에 따른 현역 입대 거부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4일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정모씨(32)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정씨는 2017년 10월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까지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씨는 재판 과정에서 “정의와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 신앙 및 성소수자를 존중하는 ‘퀴어 페미니스트’가치관에 따라 군대 체제를 용인할 수 없다고 느꼈다”고 주장했다. 1심은 “피고인이 종교적 양심 내지 정치적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는 것이 병역법이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신앙과 신념이 피고인의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고, 이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월 ‘폭력과 살인 거부’ 등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 훈련과 병역 동원 소집에 불참했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다만 이 판결은 현역 입대가 아닌 예비군 훈련과 병역동원소집을 거부한 사례였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NCCK, 25일 제7차 한미교회협의회…한반도 치유와 화해 모색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오는 25일 미국그리스도교협의회(NCCCUSA)와 제7차 한미교회협의회를 25일 서울 종로구 여전도회관 14층 제1강의실에서 개최한다. ‘화해와 일치의 희망을 일구어 내자’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협의회는 지난해 6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예정돼 있었으나 코로나19로 취소됐다. NCCK와 NCCCUSA는 25일 이를 온라인으로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현장 참석은 NCCK 이홍정 총무 등 회원 교단 및 기관 대표, 관련 위원회와 직원, 캐나다연합교회, 캐나다교회협의회 등 총 50여 명만 가능하다. 유튜브로도 실시간 중계된다. NCCK 관계자는 “1970년 제1차 한미교회협의회가 개최된 이래 양 교회는 6차에 걸쳐 협의회를 열었고, 공동의 신앙 고백을 바탕으로 공동의 선교 과제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제7차 한미교회협의회에서는 한미 교회의 선교 여정을 회고하고, 양국 상황과 선교 과제를 공유하며, 조 바이든 시대 한미교회 공동 액션플랜을 모색할 계획”이라며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해 안젤라 커윈미 국무부 한국사무국장의 발표도 예정돼 있다”고 덧붙였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생명의 은인이니 잘해라” 여고생 신도 성폭행한 40대 목사

    “생명의 은인이니 잘해라” 여고생 신도 성폭행한 40대 목사

    수년간 성폭행하고 가학적 성행위까지“피해자 고통 상당해”…징역 10년 선고 교회에서 알게 된 여고생 신도를 수년간 성폭행하고 가학적 성행위까지 한 40대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제13형사부(부장 호성호)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준강제추행), 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41)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 또 아동 및 청소년 관련 기관 등과 장애인복지시설에 10년간 취업제한과 5년간의 보호관찰을 받을 것도 명령했다. A씨는 2012년 4월 7일 서울 한 신학대학원으로 B(당시 16)양을 불러냈다가 자신을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 B양의 가슴을 1차례 주무르는 등 추행하고 같은해 4월 14일 신학대학원 기숙사 방으로 불러내 “땀이 많이 났으니 샤워를 하라”고 말한 뒤 샤워실로 들어가 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그는 2013년 한 모텔에서 B양에게 “내가 생명의 은인이니 잘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강간하고, 2014년 9월 12일에도 모텔로 불러들여 강간했다. 그는 성관계 당시 여러명이 상대를 바꿔가면서 성관계를 맺도록 요구하고, B양에게 소변을 먹이는 등 가학적 성행위를 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B양이 성관계를 거부하면 허리띠 등으로 마구 때리기도 했다. A씨는 2011년 말~2014년 말 서울 강동구 소재 교회 전도사, 2015년~2016년 말 서울 종로구 소재 교회 전도사를 거쳐 2017년~2018년 서울 서초구 한 교회 목사로 재직했다. 그는 현재 소설작가로도 활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B양은 2012년 1월 교회에서 알게 됐으며, 대학 입시 압박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등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B양의 상담을 맡아오면서 자신을 의지하는 점을 이용해 범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학생들을 담당한 전도사로서 나이 어린 신도였던 피해자의 신앙생활을 돕고, 피해자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책무를 부담하고도 자신에게 의지하는 피해자를 상대로 장기간 심리적으로 지배하며 범행했다”며 “범행 과정에서 가학적 행위를 했고 상당 수준의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를 본인의 욕구 충족 대상으로 대했고,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신체적 고통 또한 상당했으나, 피해자에 대한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다만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흥남철수 영웅’ 美 선장, 가톨릭 성인 추대 진전

    ‘흥남철수 영웅’ 美 선장, 가톨릭 성인 추대 진전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 1만 4005명의 목숨을 구한 ‘흥남철수의 영웅’ 레너드 라루(1914~2001년) 선장을 가톨릭 성인으로 추대하려는 노력에 커다란 진전이 이뤄졌다. 21일 미국의소리(VOA) 등에 따르면 미국 가톨릭주교회의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춘계총회에서 라루 선장에 대한 지역교구 성인 추대 안건을 표결에 부쳐 99%의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가톨릭교회는 탁월한 덕행이나 순교 등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하느님의 종’과 ‘복자’ 등 과정을 거쳐 ‘성인’으로 추대한다. 각 단계에서 생전 또는 사후의 기적이 인정돼야 한다. 미 해군과 상선 선원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비영리단체 ‘바다의 사도’는 2017년 라루 선장을 성인으로 추대해 달라고 가톨릭교회에 요청했다. 2019년 첫 단계인 하느님의 종으로 인정된 라루 선장은 이번 주교회의 승인에 따라 다음 단계인 복자 추대 절차를 밟게 된다. 미 필라델피아 출신의 라루 선장은 한국전쟁 당시 군수물자 수송 명령에 따라 7600t급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이끌고 함경남도 흥남 부두로 갔다. 하지만 그가 흥남에 머물던 1950년 12월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 개입과 극심한 추위로 전황이 불리해지면서 철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라루 선장은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배 안의 군수물자를 버리고 그 자리에 피란민을 승선시켰다. 12월 23일 흥남 부두를 떠나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성탄절인 25일 무사히 거제도에 도착한 이 항해를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렀다. 60명 정원에 1만 4000여명이 승선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배로 기네스북 기록에 올랐다. 당시 구조된 1만 4000명의 후손은 현재 약 100만명으로 추정되며, 문재인 대통령도 이들 중 한 명이라고 현지 언론은 소개했다. 라루 선장은 1954년 ‘마리누스’라는 이름으로 성베네딕토 수도원에 입회해 수사 생활을 하다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김태균 선임기자 windsea@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유럽의 아버지‘ 로베르 쉬망 가톨릭 성인의 첫 관문 통과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유럽의 아버지‘ 로베르 쉬망 가톨릭 성인의 첫 관문 통과

    유럽연합(EU) 설립의 초석을 깔았다는 평가를 받는 로베르 쉬망(1886∼1963년) 전 프랑스 외무장관이 가톨릭 성인(聖人)으로 인정받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쉬망 전 장관의 ‘영웅적 성덕(heroic virtue)’을 인정하는 시성성 교령을 승인했다고 교황청이 19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로써 쉬망 전 장관은 가경자(可敬者, venerable)의 칭호를 갖는다. 가경자는 교황청 시성성의 시복 심사에서 영웅적 성덕이 인정된 ‘하느님의 종’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가경자로 선포된 증거자는 그의 전구(轉求·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간청하고 탄원하는 행위)로 기적이 일어났음을 입증하는 기적 심사를 통과하면 시복(beatification)돼 복자 칭호를 받는다. 시복 이후 한 번 더 기적이 인정되면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데 canonisation이라고 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쉬망 전 장관은 1950년 5월 9일에 이른바 ‘쉬망 선언’을 통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창설을 제안했다. 석탄·철강 자원의 공동 관리를 통해 경제적 연대·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전쟁을 예방하고 함께 번영을 이루자는 취지의 구상이다. ECSC는 쉬망 선언 2년 뒤인 1952년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 여섯 나라가 정식 출범했다. 그는 1951년 4월 18일 조약 서명식 도중 우리는 이제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We are venturing into the Unknown)”이라고 말했다. 이 공언은 자유무역지대 설립, 관세 동맹, 단일 시장·통화 도입 과정을 거쳐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 1993년 EU로 발돋움해 현실이 됐다. 우리에겐 가톨릭 신앙과 세계관에 근거해 유럽 통합이 설계됐으며 공허하고 이상적일 것만 같은 내용이 실은 아주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목표와 단계에 맞춰 차근차근 현실로 이뤄졌다는 점을 깨닫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쉬망 전 장관은 알치데 데 가스페리 이탈리아 전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 전 독일 총리,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외교관 출신인 장 모네 등과 함께 ‘유럽의 아버지’로 불린다. 1958년 유럽의회의 전신 기구 첫 의장으로 일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퇴임했는데 앞의 칭호가 붙여졌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쉬망 선언 70주년을 맞아 쉬망이 “오늘 날 우리가 혜택을 누리는 장기간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왔다”며 시성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1886년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알퐁소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한 알사스-로렌(Alsace-Lorraine)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원래 프랑스 시민권자로 태어났으나, 1871년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독일 땅이 돼 독일 시민권자가 된다. 쉬망의 어머니는 룩셈부르크 사람이었으나 아버지의 국적에 따라 가족 모두가 독일인이 됐다. 쉬망은 룩셈부르크에서 중등 교육을, 독일 대학에서 법학 교육을 받은 뒤 로렌 지방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다. 쉬망은 나중에 1차 대전의 결과 다시 알사스로렌 지방이 프랑스 땅이 되자 독일 법을 프랑스 법으로 바꾸는 일에 공을 세워 정치에 입문했다. 2차대전이 벌어지자 비시 괴뢰정부에 가담해 나치 부역자로 몰려 사형이 선고된 페탱 원수를 짧은 기간 따랐다. 1940년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됐다. 독일군에 징집됐으나 군복을 입지 않고 건강을 핑계로 지방관청에서 근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일년 뒤 탈출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어 지냈다.(일부에선 그가 지하 저항활동을 조직했다고 한다) 종전 후 프랑스 총리와 외무장관으로 일했다. 그는 1949년 미국과 유럽의 집단 안보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 모네가 위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상가였다면, 쉬망은 이를 어떻게 하면 현실에 적용할지 방법을 아는 실천가였다. 아데나워 총리에게 양국이 합의한 내용을 먼저 공표하게 한다든지, 극우에 민족주의 성향의 드골을 지지하는 자신의 부하들이 협상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게 독일어로 협상을 진행하는 등 약간의 반칙도 썼다. 한국과 일본 못잖게 사이가 안 좋은 프랑스와 독일의 국민감정을 넘어서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심초사를 했을지 짐작도 못하겠다. 양대 대전을 몸소 겪으며 온갖 어려움을 체험한 결과이기도 했다. 해서 쉬망 선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럽은 하루아침에 건설되거나 단 하나의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유럽은 실질적인 상호 의존과 이익, 그리고 함께 행동하겠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구체적인 성과를 통해 만들어 질 것입니다.” 브렉시트다 코로나19다 해서 어려움을 겪는 유럽 통합의 현실에서 반추할 테제라고 생각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실존의 심연에서 건져낸 언어…견고하게 빚어낸 문학의 주름

    실존의 심연에서 건져낸 언어…견고하게 빚어낸 문학의 주름

    더위가 일찍 찾아온 초하(初夏)에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시인 정현종 선생을 나희덕 시인과 함께 뵀다. 건강하신 스승의 말씀을 들으며 식사를 하는데 나 시인이 연필을 선물했다. 언제나 무언가를 들고 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좋아하는 그는 미국에 사는 한국인 목사가 목수가 되어 만든 연필을 바다 건너 구입해 스승과 친구에게 나누어 줬다. 순간 ‘연필’이라는 상징이 세 사람의 글쓰기를 환하게 이어 주었는데, 그것은 언제나 나희덕만이 만들어 내는 순간이다. 그의 첫 시집 ‘뿌리에게’(1991) 발문에 정현종 선생이 쓴 한 구절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의 나희덕은 시를 열심히 쓰는 학생이었고 산문을 봐도 우선 문장력이 마음 놓이는 학생이었다. 말이 그렇지 대학 시절에 눈에 거슬리지 않는 글을 쓴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벌써 상당히 견고한 문장은 눈에 띄게 마련이었다.”인터뷰는 그의 ‘견고한 문장’이 빛을 발하는 신작 산문집 ‘예술의 주름들’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지만 자연스럽게 그의 삶과 시 전체로 번져 갔다. 그는 이제 막 종강을 해서 한숨 돌리고 있다면서 벌써 세 학기째 학생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다 보니 좀 지치기도 했다고 한다. “책을 내고 나서 한동안 행사나 강연 등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어요. 방학에는 조용히 시인의 자리로 돌아가 살아 봐야죠.” ●시인의 눈으로 읽어 낸 오솔길 같은 책 이번 산문집에서는 ‘아름다움’과 ‘주름’의 의미가 각별하다. “예술의 여러 장르들을 넘나드는 책을 낸 것은 사실 무모한 일일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도 “시나 문학이 아닌 다른 예술장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헤아려 보는 일이 많은 공부와 즐거운 경험이 됐다”고 했다. 그는 예술적 성취를 논하는 비평가의 역할보다는 예술적 순간이 시작되어 창조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시인으로서의 느낌을 책에 가득 채워 넣었다. ‘주름’은 무슨 뜻일까? “희로애락과 온갖 기억이 깃들어 있는 우리 몸과 마음의 주름처럼 예술작품에 새겨진 주름을 찬찬히 펼쳐 보면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예술이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돼요.” 그 주름 속에 감춰진 심연이나 온기를 제 방식으로 길어 올린 기록들인 셈이다. 책에서 호명한 여러 예술가들은 시대도 장르도 성별도 국적도 개성도 모두 다르다. 한때 피아노를 치고, 유화를 그리고, 사진에도 남달리 심취했던 나 시인의 예술적 경험이 다른 예술언어에 대한 이러한 차근한 기록을 가능케 했을 성싶다. 그리고 그 결실은 그가 지상에 남기는 또 한 권의 시집인 것 같기도 하다.●전위적 언어가 가닿을 수 없는 세계의 비밀 그는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종교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실현하려 했던 분이었고 그러한 인생관으로 경북 산골에서 신앙공동체를 일궜다. 아버지는 거기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고 산을 내려와서 정착한 곳이 논산이었다. 그의 시에 줄곧 나타나는 현실과 종교의 갈등적 공존이라거나 타자를 향한 한없는 연민과 사랑의 마음은 부모님으로부터 온 유전자와도 같은 것이었을 터이다. 그에게 종교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성장기에 갈등도 심했다. 문학을 하게 된 것도 “종교적 수행과 사회적 혁명 사이 어디에도 귀속되지 못한 자의 경계인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한동안 그에게 종교와 문학은 서로 건널 수 없는 간극을 지닌 것처럼 보였지만 어느 순간 양자의 갈등이 더이상 자신을 억압하지 않게 됐다. 그는 “흔히 제 시에 대해 붙어 다니는 ‘생태적, 여성적, 공동체적’ 특성이 넓은 의미의 ‘영성’과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더이상 종교성에 갇히지 않으면서 다양한 영성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예술의 주름들’ 서문 첫 행에는 “피아니스트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어린 시절 예배당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던 가녀린 손이 써 내려간 시가 진정한 찬미(讚美)의 노래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초의 예술적 꿈이었던 음악적 선율이 그만의 시로 펼쳐져 간 것이니까 말이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뿌리에게’가 당선돼 30년 넘는 시력을 일구어 왔다. 그의 초기 시는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1994), ‘그곳이 멀지 않다’(1997)에 담겨 있다. ‘형식적 단정함과 따뜻한 모성’이 평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고단함과 기다림과 상처와 통증으로 버텨 온, 나희덕만의 시간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는 사라져 감으로써 존재의 빛을 남기는 것들에 대한 사랑과 애착, ‘시’를 향한 자기 엄격성의 산물로 진화해 갔다.오랫동안 이러한 지속과 변이를 거듭해 온 그의 시에서 우리는 한동안 시단을 잠식했던 분열과 환각, 우울과 공포, 광기와 모멸, 전위적 포즈 같은 것들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그는 그러한 언어들이 가닿을 수 없는 세계의 비밀스러움을 탐색했고, 그만큼 그의 시는 다양한 폭과 깊이를 담고 있으면서도 언어 선택에서만은 고전적인 청교도적 자세를 유지해 왔다. “저의 문학 수업은 어쩌면 등단과 함께 시작됐고 늘 학생의 마음으로 지내 온 것 같아요. 그러는 동안 빛에서 어둠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식물성에서 동물성으로, 낙관주의자에서 비관주의자로 조금씩 변화했죠.” 그 점에서 그는 네 번째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2001)이 중요한 변곡점이었다고 말한다. 가장 힘들고 불안할 때 비명처럼 한숨처럼 토해 낸 시들이어서인지 그 시집은 자신에게도 애틋하고 독자들에게도 가장 공감을 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후 시인은 ‘사라진 손바닥’(2004)과 ‘야생사과’(2009)에서 자신의 시를 변화시키려는 모험과 도전을 새롭게 보여 준다. 그 안에는 나희덕 시의 속살이 지속하고 변이하는 충일하고도 격렬한 교차 과정이 펼쳐져 있다. 그는 이 시집들을 통해 ‘가이아’에서 ‘사이렌’으로, 상처를 ‘다스리는 것’에서 ‘받아들이는 것’으로, ‘뿌리’로부터 ‘가지’로 ‘잎’으로 끝없이 시적 원심을 확장해 갔다. 그러면서 가장 실존적이고 종교적인 심층으로서의 ‘죽음’과 ‘사라져 감’의 형이상학에 대해 노래하는 성숙한 시인이 되어 갔다. 그 뚜렷한 귀납적 결실이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2014)이었을 것이다. 그는 시집 뒤표지 글에 “떼어낸 만큼 온전해지는, 덜어낸 만큼 무거워지는/ 이상한 저울, 삶” 그리고 “이미 돌이킬 수 없거나 사라진 존재를 불러오려는/ 불가능한 호명, 시”라고 썼다. 그렇게 이 시집은 한 시대의 죽음을 넘어 애도와 치유라는 이중 기능을 충실하게 담아낸 결과로 남았다.●진퇴의 왕복을 벗어날 수 없는 시의 힘 여덟 번째 시집 ‘파일명 서정시’(2018)는 ‘눈과 얼음’으로 시작해 ‘서른세 개의 동사들 사이에서’라는 시로 끝난다. “온통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세상을 간신히 살아내면서, 현실의 그 한기와 단단함을 조금씩 녹여내면서, 마침내 허공과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시집”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눈과 얼음이라는 고체적 상태에서 어떤 기화와 액화를 위한 몸부림을 쳤다고 말한다. 이 작품들을 쓰는 동안 개인적으로든 시대적으로든 다양한 죽음과 폭력을 통과해야 했는데 막상 시집으로 내고 나니 그런 시간에서 조금은 놓여나게 되었다고 한다. 나희덕 시의 찬연한 결실이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가끔 배시시 웃기를 잘한다. 물론 그것은 발랄한 성정에서 오는 게 아니라 고통을 지나고 나서 얻어 낸 어떤 넓음 같은 것에서 온다. 그의 이름처럼 웃음은 ‘희’(喜)고 넓음은 ‘덕’(德)이다. ‘파일명 서정시’의 ‘시인의 말’에 “시는 나의 닻이고 돛이고 덫이다”라고 썼다. 아름다움을 향한 간절한 그의 언어를 가장 적정하게 담은 말이 아닐까 한다. “저를 머물게 하기도 하고, 나아가게 하기도 하고, 결국 그 진퇴의 왕복 작용에서 끝까지 벗어날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시는 참 힘이 세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시보다 앞장서지 않고 겸허하게 시의 뒤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기를 바란다. 그럴 것이다. 그나 나나 정현종 선생을 만난 것은 문학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감사한 인연이다. 선생은 시인이 지녀야 할 자존과 주름까지 낱낱이 보여 준 스승이시다. 불가피하게 이 글은, 스승과 제자들이 모처럼 만난 초여름 저녁에 시인 친구와 나눈 우정의 기록도 되는 셈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문현웅의 공정사회] 무명씨의 나라/변호사

    [문현웅의 공정사회] 무명씨의 나라/변호사

    최근 한국천주교회에 매우 경사스러운 소식이 전해졌다. 교황청이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해미순교성지를 국제성지로 지정, 선포한 것이다. 해미순교성지는 유명한 성인의 발자취가 남아 있거나 특별한 기적이 일어난 곳은 아니지만 이름이나 세례명을 남기고 순교한 132명의 천주교 신자가 기록으로 남아 있고 기록되지 않은 2000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곳이다. 해미순교성지 전담 신부인 한광석 신부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해미순교성지의 국제성지 선포는 이름도 남기지 못한 순교자들의 신앙을 모범으로 인정하고 이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영광스러운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그리스도신앙의 모범인 성인을 열심히 기린다. 한국천주교회에서도 1984년에 한국인 첫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을 비롯한 103위 성인이 시성됐고 그 이후 줄곧 한국 성인을 기리는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특히 올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미사 때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탄생 200주년 희년 기도를 바치는 등 매우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아 순교 성인의 반열에 들 수 없었던 한국의 무명 순교자들을 신앙의 모범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건이 바로 해미순교성지의 국제성지 선포인 것이다. 역사에서 기억되는 것은 결국 기록된 역사적 인물밖에 없는 듯 보인다. 그리하여 매우 당연하게도 역사에서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물결을 주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의 이면을 한 꺼풀만 벗겨 보면 무명씨들의 삶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 절대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진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명씨들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무명씨들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인 양 취급하기 일쑤고 같은 인간이면서도 마치 유명인들보다는 덜 소중한 인격체인 것처럼 취급되는 것이 무명씨들 삶의 일반적 현실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와 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종교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분야를 대표하는 것처럼 일반인들에게 인식돼 있다. 종교에서는 고위 성직자가 그 종교의 주인공인 듯, 국가에서는 국가원수가 그 국가의 주인공인 듯 인식되는 게 매우 당연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위 성직자만 존재하는 종교는 사실 종교로서의 존재 가치가 전무하다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고 국가원수나 고위직들만 존재하는 국가도 존재 가치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종교의 존재 이유나 국가의 존재 이유 모두 무명씨들이 주인공이 될 터인데 진정한 주인공은 뒷방 신세고 어찌 보면 종노릇 해야 하는 사람들이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꼴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신자 없는 종교가 무슨 소용이며 국민 없는 국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 묘 참배로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보더라도 국가원수가 타국을 방문했을 때 무명용사 묘를 우선 참배하는 것은 오래된 외교 전례인 것 같다. 무명씨들의 헌신에 대해 깊은 존경을 바치는 것이 외교의 기본인 것을 보면 국가원수의 무명용사 묘 참배는 오랜 역사에 걸쳐 무명씨들이 그 역사의 주인공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이런 장면들이 단지 보여 주기식의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면 문명사의 진전은 진정으로 요원할 뿐일 게다. 하루하루 아니 매시간 올라오는 언론의 톱기사는 온통 유명인에 대한 보도뿐이다. 무명씨에 대한 보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죽음이 운 좋게 사회적 관심을 얻었을 때에만 어쩌다 한 번 가능한 일이다. 누가 주인공인 세상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제아무리 높은 경륜과 지혜를 갖춘 자라 할지라도 그 경륜과 지혜를 펼치기 위해서는 무명씨의 존재가 매우 당연한 전제다. 사실 유명인의 나라는 없다. 무명씨의 나라만이 있을 뿐.
  • UN 인권 전문가들 “중국 강제 장기적출 관련 믿을 만한 정보 입수”

    UN 인권 전문가들 “중국 강제 장기적출 관련 믿을 만한 정보 입수”

    중국의 소수민족 출신 억류자들이 이식용 장기적출 대상자로 강제 지목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믿을 만한 정보’를 유엔(UN)의 인권 전문가들이 입수했다고 밝히자 중국 정부가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AFP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유엔 인권이사회가 선임한 독립 전문가 12명은 14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이런 의혹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전문가 중에는 인신매매, 고문, 종교·신앙의 자유권리 분야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을 비롯해 임의(무영장) 구금 관련 유엔 특별조사위원 등이 포함됐지만, 이번 발언이 유엔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전문가에 따르면, 소수민족 출신 억류자들은 자세한 설명과 동의 없이 강제로 혈액 검사뿐만 아니라 초음파나 X선 등의 장기 검사를 받지만, 소수민족 출신 이외의 억류자들에게 이런 검사는 요구되지 않는다. 이런 검사 결과는 장기 이식용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는 데 심장과 신장, 간 그리고 각막이 주로 적출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또 “중국의 강제 장기적출은 체포 사유를 설명받거나 체포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구금된 특정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리는 수감자와 억류자의 인종과 종교·신앙에 따라 차별적인 대우를 한다는 보고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류위인 주 제네바 중국대표부 대변인은 유엔 전문가들이 허위 정보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이런 노골적인 주장을 확고하게 반대하고 전적으로 부인한다고 밝혔다. 유엔의 인권 전문가들은 2006과 2007년에도 중국 정부에 대해 수감자들로부터 강제로 장기를 적출했다는 의혹에 대해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이식용 장기의 출처에 관한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정보 이용과 정보 공유 체계의 부족이 장기적출 피해자의 신원 확인과 보호 그리고 효과적인 수사와 장기매매자를 기소하는 데 있어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유엔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류 대변인은 “중국은 법치국가”라면서 “장기 매매와 불법 장기 이식은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고 답했다. 그는 또 유엔 전문가들에게 “즉각 잘못을 시정하고 중국에 관한 편견을 버리고 노골적인 중국 비방을 지양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대왕고래의 노래와 ‘30×30 이니셔티브’/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대왕고래의 노래와 ‘30×30 이니셔티브’/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

    환경의 날이 지날 무렵 인도양에서 ‘피그미 대왕고래’의 노래가 수집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왕고래보다 조금 작아서 그런 이름이 붙은 모양인데, 기존의 대왕고래와는 다른 주파수로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몸길이가 무려 30m에 달하는 대왕고래는 자신들만의 언어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같은 무리와 소통한다. 주파수가 낮아서 우리는 그 일부만을 들을 수 있지만, 대왕고래는 그들만의 언어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인간만이 ‘말’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하기에 고래의 언어를 우리는 ‘노래’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그들의 언어다.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 뿐 고래도 새들도 자신들의 언어로 소통한다. 자연은 침묵하는 존재가 아니다. 중국의 서남부 윈난성 다리에는 바이(白)족이 산다. 그들의 창세신화를 보면 하늘과 땅이 갈라지면서 최초의 남녀가 탄생한다. 둘이 혼인해 남녀 열 쌍의 아이들을 낳았다.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남녀가 한 쌍씩 짝을 지어 세상 밖으로 떠난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으러 먼 길을 떠난 아이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각각 한 가지씩 배워 돌아온다. 거미에게서 그물 짜는 법, 누에에게서 옷감 짜는 법, 개미에게서 뗏목 만드는 법, 제비에게서 집 짓는 법 등등 자연에서 지식을 얻어 왔다. 바이족 사람들은 자연을 단순한 대상물이 아니라 ‘말할 줄 아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랬기에 최초의 아이들이 자연에서 지식을 배워 돌아왔다고 설명한 것이다. 최초의 인간이 자연 속에 맨몸으로 던져졌을 때 어쩌면 자연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우리가 그 방법을 잊었을 뿐. 그러니 고래가 ‘말’을 하는 것은 원래부터 당연한 일이었다. 피그미 대왕고래도 자신들만의 주파수로 수다를 떨고 있을 것이며, 대왕고래도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주파수로 장거리 통화를 하고 있을 것이다. 때로 다른 주파수로 혼잣말을 하는 고래도 있다. 1989년부터 지금까지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알래스카 사이를 오가며 52Hz라는 특이한 주파수를 보내는 그 고래는 ‘외로운 고래’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외로울 거라는 건 우리의 추측일 뿐 드넓은 바다에서 홀로 유유히 떠돌며 여유를 즐기고 있을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이 대왕고래들이 고통받고 있다. 상업적인 포경이 시작된 후 대왕고래의 개체 수가 이전 시대의 1%로 줄어들었다는 보고도 있다. 현재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있지만, 사실 지금 고래들의 고통은 포경 때문만은 아니다. 소위 ‘인류세’(Anthropocene)의 3대 표지 중 하나인 플라스틱은 오늘도 고래들의 뱃속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으며, 고래들의 중요한 먹이인 크릴(새우) 역시 급속도로 줄어드는 추세다. 대기 중의 탄소 농도 증가가 남극해에도 영향을 미쳐 바닷물이 산성화되고, 그 때문에 크릴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크릴오일’이 몸에 좋다고 하는 바람에 남획을 하니 대왕고래의 먹이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고래들의 언어 전달 수단인 ‘노래’가 바다를 메운 수많은 선박이 내는 소음과 해저 개발로 인한 소음, 음향탐지기 등으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는 점이다. 음파로 대화를 나누는 고래들이 인간이 만들어 내는 소음 때문에 소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몸에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대왕고래는 100년, 북극해의 북극고래는 200년이나 산다. ‘탄소 저장탱크’라고 불러도 좋을 고래는 죽을 때가 되면 몸에 수십 톤의 이산화탄소를 지닌 채 바다 밑으로 들어간다. 게다가 고래의 배설물에 들어 있는 철분과 질소가 식물성 플랑크톤을 자라게 해주고, 그 플랑크톤 역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니 고래야말로 바다의 지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유라시아 동쪽 끝에 살았던 여러 민족의 신화와 신앙에 늘 고래가 등장하는 것이리라.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30×30 이니셔티브’ 동참 선언이 고래의 노래를 이어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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