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세기의 회담
    2025-12-07
    검색기록 지우기
  • 외환시장
    2025-12-07
    검색기록 지우기
  • 김도읍
    2025-12-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59
  • 金大中 대통령 訪中­韓·中 공동성명 전문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 협력 강화”/중국,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수립 희망/한국,安徽省 2개 사업 70억원 차관 제공/황사·산성비·황해보호 정부간 연구 강화/中 WTO 가입 지지… 2000년 ASEM 협력 1.대한민국의 金大中 대통령은 중화인민공화국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초청으로 1998년 11월11일부터 15일까지 중국을 국빈방문하여 중국 정부와 국민의 정중한 환영과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2.방문기간 대한민국 金大中 대통령은 중화인민공화국 장쩌민 주석과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회담을 가졌다. 金大中 대통령은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리펑(李鵬) 위원장,주룽지(朱鎔基) 국무원총리,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과 면담하였다. 회담과 면담을 통해 양측은 한·중관계의 진일보한 발전과 공동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지역 및 국제문제에 관해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하고 광범위한 인식의 일치를 보았다. 3.한·중 양국 정상은 수교 이래 6년여 동안 양국간 선린우호 협력관계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온 데 대해 만족을 표명하고,이러한 발전은 양국 각자의 발전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를 포함한 이 지역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해왔음을 평가하였다. 양국 정상은 UN헌장의 원칙과 한·중 수교 공동성명의 정신 및 수교 이래 발전해 온 양국간 선린우호 협력관계에 기초하여,미래를 바라보면서 21세기의 한·중 협력동반자관계를 구축키로 합의하였다. 4.양측은 아시아 금융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양국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정보 교류와 경제연구기관간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한국측은 중국의 인민폐 환율 안정과 내수확대를 통한 경제성장 유지정책이 아시아 금융위기를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하였다. 중국측은 앞으로도 능력범위 내에서 이러한 기여를 계속할 것임을 표명하고,동시에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광범위한 경제개혁 및 금융위기 극복과 경제회복을 위한 노력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였다. 5.중국측은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유지를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을 재천명하고,최근 남·북한 민간경제 교류에서 얻어진 긍정적인 진전을 환영하며 한반도 남·북 양측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에서의 자주적인 평화통일 실현을 지지하고,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목표가 하루속히 실현되기를 희망하였다. 양측은 4자회담의 추진을 통해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점진적으로 수립되기를 희망하였다. 6.중국측은 세계에 하나의 중국만이 있으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불가분의 일부분임을 재천명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충분한 이해와 존중을 표시하고 지금까지 실행해온 하나의 중국 입장을 견지한다고 하였다. 7.양측은 양국 지도자,정부의 각 부문,의회 및 정당간 교류를 확대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8.양측은 수교 이래 6년여 동안 이룩해온 양국간 경제·무역관계의 발전을 높이 평가하고,21세기에도 계속해서 경제·무역 협력을 확대 심화시켜 양국의 공동 번영과 이 지역의 안정 및 발전에 기여하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양국간 ‘경제·무역 및 기술협력공동위원회’의 수석대표를 차관급으로 격상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현재 양국간 무역 불균형에 대해 유의하고,이러한 무역 불균형현상을 양국간 무역확대를 통해 개선해 나가기 위하여 공동 노력하기로 결정하였다. 한국측은 한·중간 무역 확대를 위한 중국의 한국측에 대한 수출금융 제공 제의를 환영하고 동 수출금융이 양국간 무역 확대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였으며 중국측은 한국 정부의 조정관세 축소 방침을 환영하였다. 양측은 새로운 무역상품 발굴 및 반덤핑제도 등 무역제한조치 완화를 위해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한국측은 중국의 방콕협정 가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고 중국측은 이에 대해 사의를 표시하였다. 한국측은 양국간 경제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중국 안후이성(安徽省)의 2개 사업에 대한 70억원(한화)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차관 제공을 금년 중 결정하기로 하였다. 양측은 금융감독 관리 부문과 금융시장 상호개방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하였다. 9.양측은 산업·과학기술·정보통신·환경·에너지·자원·농업·임업·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사회간접자본 건설,철도 등 부문에서 협력을 가일층 강화하는 데 있어 아래와 같이 인식을 같이하였다. ‘한·중 산업협력위원회’의 협력사업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21세기 양국간 산업협력 관계를 더욱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양측은 ‘한·중 과학기술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양국 정부 및 민간의 과학기술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최근 홍수,가뭄,지진 등 자연재해가 양국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음을 감안하여 양측은 상술한 부문에서의 정보교류 및 조기 예보,연구조사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기초과학 부문에서의 교류를 강화하고 동시에 첨단기술의 산업화 분야에서의 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양측은 초고속 정보통신망 및 전자상거래 등 국가정보화 부문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첨단통신기술 연구개발 분야에서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한·중 환경협력협정’에 기초하여 양국 정부간 환경보호 및 환경산업 협력을 강화하고 양국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황사 및 산성비 등 환경오염,황해 환경보호 등 문제에 대하여 정부간 공동 조사연구를 강화해 나가고 동북아지역 협력활동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황해 환경보호를 위해 양국 유조선 사고발생시 해상오염 예방을 위해 공동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에너지,자원 등 부문의 공동개발 이용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한국측은 1999년 쿤밍(昆明)세계원예박람회 참가를 결정하고 중국측은 이를 환영하였다. 양측은 이를 계기로 원예 부문에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한.중 시범농장을 공동으로 건립하고 농작물병충해 방지에 대하여 공동연구를 추진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삼림이 자연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삼림의 유지와 합리적 이용이 생태환경 개선,나아가 인류생존 환경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한·중간 임업협력약정’에 기초하여 산림녹화,토사유실 방지 등 분야에서 임업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양국은 ‘한·중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을 위한 협정’에 근거하여 핵 과학기술 및 핵에너지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하였다. 한국측은 호혜의 원칙하에 중국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참가하기를 희망하였으며 중국측은 이를 환영하였다. 양측은 또한 제3국 건설 분야에서 공동진출 협력을 추진하기를 희망하였다. 양측은 ‘한·중 철도 분야 교류 및 협력약정’을 체결하였고 철도 분야에서 과학기술 교류와 교육훈련 분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10.양측은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정부간 교류뿐 아니라 양국 국민간 상호 이해증진과 다양한 교류확대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양측은 양국의 각 분야에서의 문화교류 및 협력을 강화,발전시키기 위하여 한·중 양국 정부간 문화협정에 의거,‘한·중 문화공동위원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키로 하였다. 양측은 양국 각각의 정부수립 및 건국 50주년을 기념하여 금년과 내년에 각종 행사를 개최키로하고 양국 정부는 이를 적극 지원하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1998년 체결된 ‘교육교류약정’을 기초로 교육 및 학술 부문의 교류를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양측은 양국 관광 분야의 교류 및 협력을 강화하도록 장려하고 양국 관광업계의 발전을 공동으로 촉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양측은 양국의 각급 지방정부간 자매결연 등 방식을 통해 경제,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양국이 ‘한·중 형사사법공조조약’,‘한·중 사증발급 절차 간소화 및 복수사증 발급에 관한 협정’ 및 ‘한·중 양국 정부간 청소년 교류 양해각서’등 문서에 서명하고 어업협정을 가서명한 데 대해 환영을 표시하고 상술한 문서가 양국관계 발전과 양국간 교류 및 협력의 확대에 기여하기를 희망하였다. 11.양측은 핵무기 확산 방지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및 생·화학무기 감축,환경,마약,테러,국제조직 범죄 등 국제문제에 있어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다. 한국측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조기 가입을 지지하는 입장을 재천명하였으며 양측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및 UN 등 국제무대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고 2000년 한국에서 개최되는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12.양측은 金大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순조롭게 이뤄져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은 중국측의 따뜻한 환대에 대해 사의를 표시하고 장쩌민 주석이 편리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해주도록 초청하였다. 장쩌민 주석은 이에 대해 사의를 표시하고 동 방한 초청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34개 협력사업 ▲아시아경제위기 극복 ­정보교류,경제연구기관간 협력 ▲고위인사 교류 확대 ­양국지도자,정부 각부문,의회,정당간 교류 ▲경제통상분야 협력 ­한중경제공동위 수석대표 차관급 격상 ­중국,對韓수출금융 제공,한국,對中조정관세 축소 방침 ­무역상품 발굴,부역제한조치 완화를 위한 협력 ­중국의 방콕협정 가입 지지 ­한국,對中 대회협력기금 차관 연내 제공 연내 결정 ­금융감독관리 부문과 금융시장상호개방 분야에서 협력 ▲산업·과학기술·정보통신·환경·에너지·자원·농업·임업·원자력의 평화적 이용·SOC건설·철도분야 협력 ­한중산업협력위 활성화 ­양국정부 및 민간의 과학기술협력 강화 ­에너지,자원의 공동개발,이용분야 협력 ­99년 昆明 세계원예박람회 참가 및 원예부문 교류,협력 ­한중 시범농장 공동건립,농작물 병충해 방지 공동연구 ­자연재해 예방을 위한 협력 ­기초과학 및 첨단기술의 산업화 분야 협력 ­초고속 정보통신망 등 정보통신 분야 협력 ­환경오염,황해환경 공동조사 등 환경협력 ­임업협력 강화 ­핵 과학기술 및 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 ­한국의 중국내 SOC건설 참여,제3국 건설 분야 공동진출 ­한중 철도분야 교류협력 약정 체결 ▲문화·예술·교육·학술·관광·청소년·유학생 교류·사법협력,각종조약,협정 체결 ­한중 문화공동위의 정기개최 ­양국 각각의 정부수립 50주년 행사 개최 지원 ­교육학술분야 교류협력 ­관광분야 교류협력 ­지방정부간 협력 ­한중 형사사법 공조조약 서명 ­한중 사증발급 절차 간소화,복수사증 발급 협정 체결 ­한중 양국 정부간 청소년 교류 양해각사 서명 ­어업협정 가서명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핵무기 확산방치,생화학무기 감축 등 국제무역 협력 ­중국의 WTO 조기 가입지지 재천명 ­APEC,ASEM,ARF,UN 등에서의 협력 강화 ­2000년 제3차 ASEM 성공적 개최를 위한 협력
  • 金大中 대통령 訪中­정상회담 성과

    ◎한­중 본격 ‘협력교류시대’ 열었다/정치·안보 등 모든 분야 ‘동반자관계’로 격상/대북 포용정책 지지 확보 한반도평화 버팀목 강화 【베이징 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중국국가주석간 정상회담의 성과는 한·중 관계를 선린 우호관계에서 한차원 높은 협력동반자로 설정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이를 위해 두나라는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 등 12개항 34개의 구체적인 협력계획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지난 96년 중국과 러시아간 합의한 공동성명 이후 처음이라는 林東源 외교안보수석의 설명으로 볼 때 공동성명 자체도 상당한 외교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이번 공동성명은 두나라간 전반적인 현안을 망라하고 있다.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안정을 위한 협력에서 부터 타이완문제,원자력·철도·농업·임업은 물론 국방장관급 군인사교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이제껏 경제분야에 치중해 있던 두나라간 교류협력이 전방위 체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실질적인 증거다. 이는 두나라가 21세기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데 서로 필요한 ‘동반자’라는 인식이 바탕이 됐다.이날 정상회담에서 金대통령이 “협력 동반자관계가 공동 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부분이나,장주석이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동반자관계를 설정하는데 노력하자”고 요청한 대목도 이를 반증한다. 양국이 이날 형사사법 공조조약과 사증발급절차 간소화 및 복수사증의 발급에 관한 협정,청소년 양해각서 등 4개 약정에 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정착과 동북아 지역의 안정 및 번영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金대통령은 우리의 대북(對北)포용정책을 고리로 집요하게 파고들었고,장주석도 이에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북한과 동맹인 중국의 처지를 감안할 때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한 관계자도 “수교 6년만에 두나라가 대화채널과 협력체제를 구축한 것은 향후 발전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단초”라고 지적했다. 어쨌든 두나라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21세기 한·중관계를 총괄할 구체적 협력관계 계획의‘대장전’을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또 양자 차원을 넘어 핵·군축·마약 등 범세계적인 문제와 방콕협정,WTO,UN 등 국제기구까지 협력을 확대했다. 그러나 이것이 한·중 동맹관계의 구축을 의미하지도,또 중국이 대(對)한반도 정책의 변화를 완전히 천명하는 것도 아니어서 여전히 극복해야 할 외교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즉 한반도 주변 4강과의 외교적 조화가 앞으로 성패를 가르는 최대 관건인 셈이다. ◎‘협력 동반자관계’란/‘선린우호’보다 한차원 높아/중 국가관계 단계중 3번째 【베이징 梁承賢 특파원】 한·중 정상이 12일 합의한 ‘21세기의 한·중 협력 동반자 관계’는 많은 산고(産苦) 끝에 탄생했다.중국이 북한과의 전통적 관계를 의식,양국이 동반자 관계 설정에서 부터 공동선언문 발표 형식에 이르기까지 쉽게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통상 국가간 양자관계를 ▲혈맹 ▲전통적 우호협력 ▲동반자 ▲선린우호 ▲단순 수교 등 5단계로 나누고 있다는 게 주중 대사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대국적인 면모를 과시하려는 중국 특유의 외교적 수사(修辭)인 셈이다.동반자관계를 설정한 만큼 한·중 관계는 이전의 선린우호협력관계보다는 한 단계 발전한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동반자관계의 앞에 따라붙는 형용사 때문에 양국은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여야 했다. 당초 우리는 경제분야에 치우친 양국관계를 정치·안보·문화분야로 확대시키자는 의미에서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주장했다.반면 중국은 포괄적이란 용어가 군사·안보협력의 강화를 암시하고 있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면서 ‘선린우호협력적 동반자관계’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동반자관계가 아닌,선린우호와 동반자관계의 중간으로 비치기 쉽다는 게 우리측의 판단이었다.양국이 평행선을 달리자 한국은 형용사 없는 ‘동반자관계’를 다시 타협안으로 제시했으나 중국은 이에 대해서도 반대,결국 양국 주장의 가운데 점인 ‘협력 동반자관계’로 낙착됐다. 북한과 양자관계의 최고단계인 ‘혈맹관계’를 맺었던 중국은 한·중수교이후 수준을 한 단계 내려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또 최근 초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와는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맺었다.
  • 韓·中‘협력 동반자관계’로/金 대통령,세계경제회복 中 역할 강조

    ◎양국정상회담 교류 확대 12개항 공동성명 합의/강택민 주석,햇볕정책·금강산사업 지지 【베이징 양승현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12일 양국관계를 지금까지의 선린우호관계에서 한단계 높여 ‘21세기의 협력동반자관계’로 설정키로 합의했다. 金대통령과 장주석은 이날 오전 2시간 반동안 베이징(北京)인민대회당에서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잇따라 열어 이같이 합의했다고 林東源 외교안보수석이 밝혔다.한.중 양국은 두 정상이 서명 교환한 공동성명을 13일 발표할 예정이다. 12개항으로 구성된 공동성명에는 ▲양국 정상을 포함한 정부 의회 정당간 교류확대 강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정보교류와 연구기관간 협력강화 ▲양국간 무역확대를 통한 무역불균형 시정 및 한국의 중국에 대한 조정관세 축소 ▲한국의 중국에 대한 차관 한화 70억원 제공 ▲중국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사업에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 등 34개항의 구체적인 협력사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金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양국의 국가이익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양국관계의 격상 필요성을 밝혔으며,장주석은 이에 동의하면서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동반자관계 설정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남북관계와 관련,자신의 대북정책을 설명하면서 북한도 4자회담에서 전진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으며,장주석은 한국의 노력을 평가하면서 “한국이 미.북관계 개선을 지지하는 것은 아주 잘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장주석은 특히 북한에 들어가는 바람이 따뜻한 바람이 아니라 찬 바람일 경우 북한은 옷을 더 여미게 될 것이라며 북한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갖고 자극하지 않으면서 너그러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장주석은 한국의 선양(瀋陽)영사사무소 개설문제와 관련,양국의 관계부처가 협의해서 처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세계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조기 가입과 유엔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의 역내 개도국간 관세인하 혜택을 받게 되는 ‘방콕협정’ 가입을 지지한다고밝혔다. 한편 정상회담 후 洪淳瑛 외교통상부 장관과 탕자쉬앤(唐家璇) 중국 외교부장은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형사사법공조조약,복수사증협정 및 청소년교류양해각서에 각각 서명했으며 李廷武 건교장관은 푸즈환 중국 철도부장과 양국간 건설교통부문 협력을 위한 한중철도교류협력약정에 서명했다.
  • 金 대통령 訪日­정상외교 결산

    ◎한·일 ‘함께하는 21세기’ 구체화/과거사 사죄 등 명문화 시비요소 없애/‘실리­미래개척’ 두 열매… 풍성한 귀로 【오사카=梁承賢 특파원】 이번 金大中 대통령의 방일 성과는 ‘미래’와 ‘실리’라는 양축에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양국의 현안인 과거사는 미래로 나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였고,교류협력 현안은 우리의 경제위기 극복과 선린·우호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전제’였다.이같은 측면에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과 세부적인 ‘행동계획(Action Plan)’은 ‘DJ식 외교의 결정체’로 볼 수 있다.쉽게 말해 문서로 근거를 만들어 향후 시비를 없애려는 외교전술이다. 이 때문인지 金대통령의 자평은 흡족한 수준이다.공동선언을 한·일간 ‘외교장전(章典)’이나 ’규범’으로 여기고 있는 金대통령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기한 과거사 사죄의 명문화가 그런 판단의 기초가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이 우리측의 사죄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됐다”고 털어놓아 방일 전 이 문제에 신경을 썼음을 암시했다.과거사가 매듭되어야 경제협력과 한반도 평화와 안보,문화협력,인적교류 등이 가능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金대통령은 구체적인 ‘실리’로 양국 정상간의 정례적인 회담을 포함,각료회담과 각종 경제협력 방안,문화협의체 등 협력기구 구성이라는 후속조치를 들었다.양국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이같은 구체적 조치야말로 21세기 미래지향적 분야의 큰 성과라는 게 金대통령의 자평이었다.나아가 인권,환경,마약·빈곤 퇴치와 같은 인류 공동의 가치를 양국이 선두에 서서 구현한다는 내용의 세계적 차원의 협력을 또다른 측면의 성과로 꼽았다. 무엇보다 金대통령은 명문화를 통한 양국의 실천의지를 강조했다.20세기의 불행은 20세기를 끝내면서 마감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서 양국관계를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金대통령은 이러한 성과의 근본 바탕을 평화적 정권교체에 따른 ‘국민의 정부’ 출범에서 찾았다.그는 “모든 영광을 국민에게 돌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이는 일본의 결심이 우리의 ‘민주의지’에 대한 존경에 의한 것이었다는 해석으로,달리보면 ‘이제 미래로’라는 대국민 호소이기도 하다.
  • 韓·日 정상회담 매년 개최/‘21세기 파트너십’ 공동 선언

    ◎金 대통령·오부치 총리/日 총리 “식민지배 韓國民에 통절한 반성과 사죄” 【도쿄=梁承賢 특파원】 일본을 국빈 방문중인 金大中 대통령은 8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두나라간 과거사 인식 및 대화채널 확충,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경제협력,범세계적 문제 협력,문화교류 등 5개 분야 협력원칙을 담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양국 정상은 이날 오전 도쿄 영빈관에서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잇따라 가진 뒤 기자회견을 통해 21세기의 새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공통의 결의를 선언하고,양국 국민의 폭넓은 참여와 부단한 노력을 호소했다. 또 洪淳瑛 외교통상부장관과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일본외상은 별도의 양국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정상회담 최소한 연 1회 실시 ▲일본수출입은행 30억달러 금융지원 ▲일본문화의 단계적 개방 등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부속합의서로 43개 세부항목의 행동계획(Action Plan)에 합의,이를 공표했다. 오부치 총리는 공동선언 2항에서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이에 대해 통절(痛切)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이를 평가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자는 뜻을 표명했다. 이와 관련,金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오부치 총리와 가진 한·일 공동기자 회견에서 “일본 천황이 따뜻한 분위기에서 방한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노력할 것”이라고 일황의 초청의사를 거듭 밝힌 뒤 오부치 총리의 방한도 공식 초청했다. 특히 이른바 ‘DJ 도쿄납치사건’에 대해 양국 정부 책임 및 관계자 처벌 불원 원칙을 재확인한 뒤 “진상규명을 위한 적절한 방법을 장래에 밝힐 것”라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양국간 문화교류 확대를 위해 일본 대중문화의 단계적 개방 방침을 천명했으며,오부치 총리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중심적 역할과 대북 3원칙에 입각한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했다. 양국은 또 북한이 미사일개발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한·일두나라와 동북아지역의 안전과 평화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두나라 정상은 이를 위해 양국간 안보정책협의회 및 각급 차원의 방위교류를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 양국정상 공동회견 요지

    ◎金 대통령 “天皇 방한 가능토록 분위기 조성”/오부치 총리 “공동선언 존중 왜곡발언 않을것” 【도쿄=梁承賢 기자】 金大中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8일 한·일 양국의 과거사 정리 등을 담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 모두 발언을 통해 “공동선언 채택은 새 시대의 한·일 우호협력의 장전을 마련한 것으로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만족해했다. 金대통령는 “오부치 총리대신과 양국의 경제구조조정 노력의 성공과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해가기로 했다”면서 오부치 총리의 방한을 공식 초청했다고 덧붙였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정부를 대표해서 우리나라가 과거의 일정기간 한국 국민에게 식민지 지배에 의한 커다란 피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그것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의 사죄를 했다”고 소개하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일 관계의 개선을 향한 정치적 의지를 표명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만족하며,새로운 파트너십의 실행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공동회견 요지. ­일본은 과거에도 사과성 발언을 했으나 번번이 이를 왜곡하는 발언이 나와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부치 총리=일본정부는 공동선언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인정했으며 金대통령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이번에는 양국 정상이 문서를 통해 서명했다는 데 의미가 큽니다.앞으로 이를 왜곡하는 발언은 하지 않을 것이며,정부의 입장이 명확히 천명됐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도 존중할 것으로 봅니다. ▲金대통령=모든 여건이 과거와 다르고,또 앞으로 달라져야 합니다.일본정부의 과거사 표명이 문서화됐다는 게 지금까지와는 대단히 다른 것입니다.한국을 직접 지칭하고,우리에게 가한 피해에 반성·사죄하는 뜻을 표했기 때문에 그 무게가 과거와는 다릅니다. ­아키히토 일황의 방한 초청은. ▲金대통령=천황의 방한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부자연스런 일입니다.2002년 월드컵 공동주최라는 공동목표도 있습니다.일본 대중문화가 단계적으로 한국에 개방되고,그런가운데 천황의 영접이 따뜻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노력할 것입니다. ­金대통령은 25년 전 도쿄 납치사건의 당사자였습니다.방일중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어떤 입장입니까. ▲金대통령=지난 80년 5·17 군사쿠데타 전에 납치문제에 대한 생각을 밝힌 바 있습니다.양국정부에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고 관련자의 처벌도 요구치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다만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지금도 그런 입장에 변화가 없습니다.
  • ‘과거 청산’에 큰 의미/공동선언 日 시각

    ◎이번 사죄 진심 담겨 더이상 문제 안돼야/김 대통령 일 긍정 언급 “솔직한 표현” 높게 평가 【도쿄=黃性淇 특파원】 8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선언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20세기의 불행한 과거를 씻고 21세기를 향해 신뢰와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전반적 기류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회담 전 “이번 회담은 양국이 21세기를 앞두고 과거를 청산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공동선언에서 “한국 국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준 데 대해 통절(痛切)한 반성과 사죄를 한다”는 오부치 총리의 입장표명은 과거사와 관련된 일본의 ‘사죄’를 진심으로 담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 근거로 역대 한국 대통령의 방일 때와는 달리 ‘사죄’를 명문화한 대목을 든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있어온 정부 차원의 사죄 요구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인식도 깔려있다. 그러나 오부치 총리의 사죄 발언 내용이 회담 전부터 일본 언론에 보도되면서 집권 자민당 일각은 물론보수 우익층에서 ‘사죄 반대론’이 제기돼 왔던 것이 현실이다. 이들에 대한 무마용으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의 ‘95년 담화’에 들어있던 ‘국가정책의 잘못으로 전쟁의 길을 걸었다’라는 자기비판이 이번 사죄부분에는 빠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응어리는 일황의 조기방한 요청이나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 등 金大中 대통령이 견지하고 있는 전향적 대일(對日)자세를 바탕으로 양국간 인적,문화적 교류를 확산시킴으로써 점진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보고 있다. 일본측은 金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언급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기여,민주주의,개발도상국가에 대한 지원,유엔에서의 공헌 등 전후 일본이 이룬 긍정적인 면모에 대한 언급은 역대 대통령의 방일 때는 없었던 ‘솔직한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韓日 새 동반 협력시대로(사설)

    일본을 국빈방문중인 金大中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총리가 8일 정상회담후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은 두나라간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하나의 장전(章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동안 두나라 간의 진정한 우호협력 관계를 가로 막아왔던 불행한 과거사를 일본측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로 매듭짓고 미래지향적 동반·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로써 갈등과 협력이 혼재했던 20세기의 한일관계를 정리하고 선린우호의 21세기를 맞을 수 있게 됐다. 한일 공동선언의 가장 큰 성과는 한일관계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과거사문제를 풀었다는 것이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한국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과 사죄를 했다. 金대통령도 일본측의 역사인식을 평가하고 양국이 불행했던 역사를 극복해서 미래의 협력관계 발전에 노력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길고도 어려웠던 과거사문제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일본은 과거사에대한 반성과 사죄를 합의문서에 처음으로 명문화하여 종전과 다른 진지함을 보였다. 이번 공동선언에 대한 또하나의 평가는 새로운 동반협력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두 정상의 합의가 폭넓고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요란한 선언만 있고 실천은 적었던 과거의 정상회담과는 다른 점이다. 각 부문별 실천방안을 담은 행동계획까지 마련하여 공동선언의 실행을 담보하고 있다. 金대통령과 오부치 총리는 정치와 안보,경제,문화등 모든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의 확대를 약속했다. 연 1회이상의 정상회담을 갖고 동반·협력의 실천상황을 직접 챙기기로 했다.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일본수출입은행의 30억달러 추가융자,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핵개발 공동대응,안보정책협의회의 연례화및 방위 교류의 확대,재일동포의 지위향상등은 이번 정상회담의 실질적인 성과들로 꼽을 수 있겠다. 특히 경제분야에서의 긴밀한 협력이 두나라는 물론 아시아 경제위기 해소에 필수적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경제인을 비롯하여 투자,산업기술 등의 교류를 확대키로 한 것은새로운 동반·협력시대를 가시화할 것으로 기대되는 부문이다. 진정한 동반자로서 새로운 협력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두나라 국민들의 상호이해와 신뢰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특히 양국관계의 미래를 담당할 청소년들의 인식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교류의 확대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일정상의 이번 공동선언이 양국의 번영과 아시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양국 교류 章典 도의적 구속력/공동선언의 효력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의 단초는 지난 3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당시 일본 총리가 金大中 대통령에게 보낸 방일 초청 구두메시지에서 비롯됐다.이어 5월에 열린 외무장관 회담에서 양국은 파트너십 선언 작성에 최종 합의했고 5개월여에 걸친 실무협의 끝에 양국 교류의 장전(章典)이 탄생하게 됐다. 양국 사이의 포괄적인 협력 원칙을 담은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최근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외교문서 형식.‘공동비전’,‘협력 20 조치’,‘협력을 위한 공통과제’ 등으로 포장은 달리돼 있지만 알맹이는 비슷하다.이전의 유명한 예는 오랜 앙숙 관계였던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2차대전 직후 체결된 파트너십 선언.그 뒤 양국관계는 이 합의에 기초해 우호협력 관계로 전환됐다. 우리나라가 이같은 파트너십 선언을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金泳三 대통령 때도 여러 나라와 ‘동반자적 관계’를 맺었지만 주로 말에 머물렀을 뿐 이처럼 문서로 종합정리하지는 못했다.반면 일본은 이번이 5번째 사례다.지난 93년 미국과 처음 채택한 뒤 96년 독일과 프랑스,지난 1월에는 영국과 잇따라 파트너십을 맺었다.그러나 일본이 아시아국가와 이런 문서를 작성하기는 우리가 처음이다. 파트너십 선언은 국제법상 강제성은 없는 정치적 선언이어서 지키지 않더라도 법적 책임은 없다.하지만 도의적 책임까지도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실상 어느 정도의 구속력은 있다.
  • 金 대통령 訪日­日 국회연설 요지

    ◎“두나라 과거 직시하며 공동의 미래 개척하자” 나는 오늘 일본 민주주의 본산이자 유서깊은 역사의 현장인 국회 의사당에 서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25년전 동경 납치사건과 1980년 사형선고를 비롯한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생명을 잃을 뻔하였던 내가,이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서게 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나의 생명과 안정을 지키고자 긴 세월동안 힘써주신 일본의 국민과 언론,그리고 일본 정부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지난 반세기 동안의 정치역정에서 다섯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6년을 옥중에서 보냈으며 10년이상을 가택연금과 망명생활을 강요당했습니다. 나는 폭력을 일삼던 군사독재와 온몸으로 싸우면서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의 민주화 특히 한국헌정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한국 국민의 피와 땀에 의해 이루어진 기적입니다. 우리 국민과 나는 이처럼 값지게 얻은 민주주의를 흔들림없이 지켜나갈 것입니다. 지금 일본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세계 최대의 경제원조국으로서 자신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제적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원폭의 피해를 체험한 일본 국민은 변함없이 평화헌법을 지켜왔고 비핵 평화주의의 원칙을 고수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에는 아직도 일본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를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 스스로 과거를 바르게 인식하고 겸허하게 반성하는 결단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참으로 길고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양국은 1,500년 이상이나 되는 교류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역사적으로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불행했던 것은 약 400년전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간과 금세기초 식민지배 35년간 입니다. 50년도 안되는 불행한 역사때문에 1,500년 이상 걸친 교류와 협력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두 나라 사이의 교류와 협력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제는 서로 필요불가결한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한 것입니다. 65년 당시 2억달러에 불과했던 양국 무역규모는 작년엔 430억달러를 달성,무려 200배 이상이나 늘었습니다. 이러한 양국간 엄청난 인적·물적 교류는 그 누구도 막을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가야 할 두 나라의 끊을 수 없는 인연입니다. 이제 한일 두나라는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를 직시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고 미래를 지향한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에서 교훈을 찾고 보다 나은 내일을 함께 모색한다는 뜻입니다. 일본에게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고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오늘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함께 발표했습니다. 나는 이 선언이 한일 양국 정부간의 과거사 인식문제를 매듭짓고 평화와 번영을 향한 공동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하는 바입니다. 나는 먼저 새 시대의 한일 우호관계를 보다 증진시키기 위해 일본 대중문화의 한국진출을 단계적으로 개방할 것입니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위기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특히 한일 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를 증진시키는데 규범이 됨으로써 정치 경제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선도하는 주역이 될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번 나의 일본방문이 이러한 양국의 국민적 기대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21세기의 한일 동반자관계를 구축하는 튼튼한 초석이 될 것을 바라 마지 않습니다.
  • 21세기의 새로운 韓·日 파트너십 공동선언 全文/金 대통령 訪日

    ◎과거 극복·우호협력 증진 시대적 요청/金 대통령 “日 국제평화·번영 기여 평가”/日 총리 “한국 경제발전·민주화 달성 경의”/유엔해양법 기초 새 어업질서 구축 기대/온실가스·산성비 등 환경문제 협력 강화 1.金大中 대한민국 대통령 내외분은 일본국 국빈으로서 1998년10월7일부터 10일까지 일본을 공식 방문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은 체재중 오부치 게이조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과 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은 과거의 양국관계를 돌이켜 보고,현재의 우호협력관계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미래의 바람직한 양국관계에 관하여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 회담의 결과,양국 정상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되어 온 양국간의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공통의 결의를 선언하였다. 2.양국 정상은 한·일 양국이 21세기의 확고한 선린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관계를 돌이켜 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은 이러한 오부치 총리대신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 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하였다. 또한 양국 정상은 양국 국민,특히 젊은 세대가 역사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하여 견해를 함께 하고 이를 위하여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젊은세대 역사인식 심화 중요 3.양국 정상은 과거 오랜 역사를 통하여 교류와 협력을 유지해 온 한·일 양국이 1965년 국교정상화이래 각 분야에서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왔으며 이러한 협력관계가 서로의발전에 기여하였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한국이 국민들의 꾸준한 노력에 의하여 비약적인 발전과 민주화를 달성하고 번영되고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한데 대하여 경의를 표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은 전후 일본이 평화 헌법하에서 전수방위 및 비핵3원칙을 비롯한 안전보장정책과 세계경제 및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지원 등을 통하여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수행해 온 역할을 높이 평가하였다. 양국 정상은 한·일 양국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보편적 이념에 입각한 협력관계를 양국 국민간의 광범위한 교류와 상호 이해에 기초하여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는 결의를 표명하였다. 4.양국 정상은 양국간의 관계를 정치,안전보장,경제 및 인적·문화교류 등 폭넓은 분야에서 균형되고 보다 높은 차원의 협력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또한 양국 정상은 양국의 파트너십을 단순히 양자 차원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태평양지역,나아가 국제사회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또한 개인의 인권이 존중되는 풍요한 생활과 살기 좋은 지구환경을 지향하는 다양한 노력을 통해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를 위하여 양국 정상은 20세기의 한·일관계를 마무리하고 진정한 상호 이해와 협력에 입각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공통의 목표로서 구축하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며 이러한 파트너십을 구체적으로 실천해나가기 위하여 이 공동선언에 부속된 행동계획을 작성하였다. 양국 정상은 양국 정부가 앞으로 양국의 외무장관을 책임자로 하여 정기적으로 이 한·일 파트너십에 기초한 협력의 진척상황을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이를 더욱 강화해나가기로 하였다. 5.양국 정상은 현재의 한·일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양국간의 협의와 대화를 더욱 촉진시켜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양국 정상은 이러한 관점에서 정상간의 지금까지의 긴밀한 상호 방문·협의를 유지·강화하고 정례화해 나가기로 하는 동시에 외무장관을비롯한 각 분야의 각료급 협의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또한 양국 정상은 양국간 각료 간담회를 가능한 한 조기에 개최하여 정책실시의 책임을 갖는 관계 각료들의 자유로운 의견교환의 장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양국 정상은 지금까지의 한·일 양국 국회의원간 교류의 실적을 평가하고,한·일/일·한 의원연맹의 향후 활동 확충 방침을 환영하는 동시에 21세기를 담당할 차세대의 소장 의원간의 교류를 장려해 나가기로 하였다. 6.양국 정상은 냉전후의 세계에 있어서 보다 평화롭고 안전한 국제사회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대하여 한·일 양국이 서로 협력하면서 적극적으로 참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양국 정상은 21세기의 도전과 과제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연합의 역할이 강화되어야하며,이는 안전보장이사회의 기능강화,국제연합 사무국 조직의 효율화,안정적인 재정기반의 확보,국제연합 평화유지 활동의 강화,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개발에 대한 협력 등을 통해 이룩할 수있다는데 대해 의견이 일치하였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金大中 대통령은 국제연합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한 일본의 기여와 역할을 평가하고 금후 일본의 그와 같은 기여와 역할이 증대되는데 대한 기대를 표명하였다. 또한 양국 정상은 군축 및 비확산의 중요성,특히 어떠한 종류의 대량파괴 무기일지라도 그 확산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이러한 분야에서의 양국간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하였다. 양국 정상은 양국간의 안보정책협의회 및 각급 차원의 방위교류를 환영하고 이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아울러 양국 정상은 양국이 각각 미국과의 안전보장체제를 견지하는 동시에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다자간 대화 노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4자회담 순조로운 진전 바람직 7.양국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지향하는 동시에 대화를 통한 보다 건설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였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확고한 안보체제를 유지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金大中 대통령의 대북한 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양국 정상은 1992년 2월 발효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이행과 4자회담의 순조로운 진전이 바람직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또한 양국 정상은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간에 서명된 ‘제네바합의’ 및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북한의 핵 계획 추진을 저지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메커니즘으로서 유지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양국 정상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하여,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 의장이 안보리를 대표하여 표명한 우려 및 유감의 뜻을 공유하는 동시에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중지되지 않는다면 한국,일본 및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의 평화와 안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양국 정상은 양국이 북한에 관한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상호 긴밀히 연대해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재확인하고,각급 차원에서의 정책협의를 강화하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8.양국 정상은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경제체제를 유지·발전시키고,또한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아시아 경제의 회복을 실현해 나감에 있어서 한·일 양국이 각각 안고있는 경제적 과제를 극복하면서,경제분야의 균형된 상호 협력관계를 보다 강화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합의하였다. 이를 위하여 양국 정상은 양자간의 경제정책협의를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WTO,OECD,APEC 등 다자무대에서의 양국간 정책협조를 더욱 촉진해 나간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은 금융,투자,기술이전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지금까지의 일본의 대한국 경제지원을 평가하는 동시에,한국이 안고 있는 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설명하였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일본의 경제회복을 위한 각종 시책 및 아시아의 경제난 극복을 위하여 일본이 시행하고 있는 경제적 지원에 관해 설명하는 한편,한국의 경제난 극복을 위한 노력을 계속 지지한다는 의향을 표명하였다. 양국 정상은재정 투융자를 적절히 활용한 일본 수출입은행의 대한국 융자에 관하여 기본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것을 환영하였다. 양국 정상은 양국간의 커다란 현안이었던 한·일 어업협정 교섭이 기본합의에 도달한 것을 마음으로부터 환영하는 동시에,국제연합 해양법 협약을 기초로 한 새로운 어업 질서하에 어업분야에 있어서의 양국관계의 원활한 진전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였다. 또한 양국 정상은 이번에 새로운 한·일 이중과세방지 협약이 서명되는 것을 환영하였다. 아울러 양국 정상은 무역·투자,산업기술,과학기술,정보통신 및 노·사·정 교류 등 각 분야에서의 협력·교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며,한·일 사회보장협정을 염두에 두고,장래 적절한 시기에 서로의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정보·의견 교환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9.양국 정상은 국제사회의 안전과 복지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는 국경을 초월한 각종 범세계적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양국 정부가 긴밀히 협력해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양국 정상은 지구환경문제,특히 온실가스 배출 제한,산성비 대책을 비롯한 제반 문제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하여,한·일 환경정책대화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또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위하여 원조분야에서의 양국간 협조를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아울러 양국 정상은 한·일 범죄인인도조약 체결을 위한 협의를 시작하는 동시에,마약각성제 대책을 비롯한 국제조직범죄 대책분야에서의 협력을 더욱 강화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사증제도 간소화 지속 추진 10.양국 정상은 이상 각 분야의 양국간 협력을 효과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기초는 정부간 교류 뿐만 아니라 양국 국민간의 깊은 상호이해와 다양한 교류에 있다는 인식하에 양국간의 문화·인적교류를 확충해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양국 정상은 2002년 월드컵의 성공을 위한 양국 국민의 협력을 지원하고,2002년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문화 및 스포츠 교류를 더욱 활발히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양국 정상은 연구원,교사,언론인,시민단체 등 다양한 계층의 국민 및 지역간교류의 진전을 촉진하기로 하였다. 양국 정상은 이러한 교류·상호이해 촉진의 토대를 조성하는 조치로서 이전부터 추진해 온 사증제도의 간소화를 계속 추진하기로 하였다. ­또한 양국 정상은 한·일간의 교류 확대와 상호이해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중·고생 교류사업의 신설을 비롯하여 정부간의 유학생 및 청소년 교류사업의 내실화를 기하는 동시에,양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취업관광사증 제도를 1999년 4월부터 도입하기로 합의하였다. 양국정상은 재일한국인이 한·일 양국 국민의 상호교류·상호이해를 위한 가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인식에 입각하여 그 지위의 향상을 위하여 양국간 협의를 계속해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양국 정상은 한·일포럼 및 역사공동연구의 촉진에 관한 한·일 공동위원회 등 관계자에 의한 한·일간 지적교류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이러한 노력을 계속 지지해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金大中 대통령은 한국내에서 일본 문화를 개방해 나가겠다는방침을 전달하였으며,오부치 총리대신은 이러한 방침이 한·일 양국의 진정한 상호이해에 기여할 것으로 환영하였다. 11.金大中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대신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이 양국 국민의 폭넓은 참여와 부단한 노력에 의하여 더욱 높은 차원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공통의 신념을 표명하는 동시에,양국 국민에 대하여 이 공동선언의 정신을 함께하고,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의 구축.발전을 위한 공동의 작업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 金 대통령 오늘 訪日/내일 정상회담… 공동선언 발표/3박4일

    金大中 대통령은 7일 오전 부인 李姬鎬 여사와 함께 3박4일 동안의 일정으로 일본을 국빈방문한다. 金대통령은 방일 첫날 아키히토(明仁) 일황을 예방하고 저녁에는 일황 내외 주최 만찬에 참석한다.이틀째인 8일 오전에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와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열어 한·일간 ‘21세기의 새로운 파트너십’을 공동선언문 형식으로 채택하고 분야별 협력방안도 논의한다. 이와 관련,洪淳瑛 외교통상장관과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일본외상은 두 나라 정상이 정상회담에서 제시하게 될 대화채널 확충,국제평화를 위한 공동 노력,경제교류 확대,환경과 마약 등 범세계적 문제에 관한 협력,문화교류 증진 등 5개 분야의 협력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담은 ‘행동계획(Action Plan)’을 발표할 예정이다. 공동선언문 전문에는 오부치 총리가 구체적으로 밝힌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과 내용이 처음으로 공식 명문화되며,金대통령은 일본의 전후(戰後) 역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金대통령은 이어 일본 국회연설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맺기 위해 일본 국민들이 과거사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촉구하고 한·일 양국 정부와 국민의 실천의지도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할 예정이다. 金대통령은 8일 정상회담 및 국회연설 외에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공동주최 오찬에서 연설을 하고,NHK 좌담회,오부치 총리 내외 주최 만찬에 참석한다.
  • 金 대통령 訪日과 향후 韓·日 관계

    ◎과거 정리 ‘실천적 동반시대’로/일 사과­반성따라 국제적 역할 인정/경제·환경 등 협력차원 제고 새지평 7일부터 시작되는 金大中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은 21세기를 목전에 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한·일간의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함께 박차고 나가는 특별한 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동안 많은 대통령이 ‘미래지향적 관계’를 역설했지만 한·일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는 여전히 미흡했다.전문가들은 ‘말의 성찬’으로는 결코 풀리지 않는 한·일 관계의 특수성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미래로 가야 한다는 양국 국민의 공통인식 속에서도 과거에 대한 앙금의 뿌리가 깊고, 여기에 안보·경제적 측면에서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재의 동반자적 관계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것이다. 金대통령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일본 국민들이 과거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용기를 갖기를 바라고 있다.그 연장선상에서 우리도 전후 일본의 세계평화와 경제에 기여한 국제적 역할을 평가하겠다는 의지다.과거사에 대한 언급이 두 나라 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에 구체적으로 명문화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특히 ‘천황’이라는 명칭을 공식 사용하고,협력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제시하는 것은 두 나라간 확고한 실천의지의 반영으로 이해된다. 또 金대통령은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일본의 역할과 금융·무역·투자부문의 두 나라간 협력관계가 도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우리에 대한 일본의 조건없는 30억달러 지원문제는 이 선상에서 이뤄지는 성과중 하나다.여기에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와 일본 대중문화의 단계적 개방,북한의 미사일 위협 공동대처 문제도 어떤 형태로든 협력이 이뤄져야 할 현안들이다.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 및 각료간 대화창구는 물론 청소년·여성·비정부기구(NGO)·지방자치단체간 교류의 폭을 확대하는 것도 이를 감안한 새로운 틀로 볼 수 있다. 나아가 金대통령은 동북아시아와 범세계적인 협력문제를 논의,양국 관계를 한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林東源 외교안보수석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WTO체제,인권,환경문제에서 양국이 기여할 수 있는 문제들도 협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방문은 양국 관계가 새로운 지평을 여는 발판을 굳히는 계기가 될 게 분명하다.다만 양국 국민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21세기의 동반자적 관계를 인식하면서 이번 회담의 성과를 실천하느냐가 최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양국 현안 점검/파트너십­협력원칙 등 문구 확정상태.과거사 사과­‘한국민·일제’ 표현 구체화.경제협력­경제각료모임 정례화 이견 金大中 대통령의 이번 일본 방문은 어느 역대 대통령의 방일(訪日)보다도 많은 결실을 예고하고 있다.독도를 제외한 한·일 양국 사이의 모든 문제가 총망라돼 새로운 시각과 접근법으로 해결이 시도되기 때문이다. 이번 방일의 현안들을 지금까지 드러난 진행상황을 토대로 재검검해 본다. ▷21세기 파트너십◁ 이번 방일의 결실은 양국 정상이 회담 뒤 공동발표할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에모두 담긴다.우리나라가 국가간 전반적인 협력원칙을 문서화하기는 이번이 처음.물론 법적 구속력은 없는 정치적 선언이다.하지만 양국 사이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금세기사(史)를 정리하고 다음 세기 양국간 교류의 큰 틀을 그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둘 만하다.양국은 ‘공동선언’에서 큰 줄기의 원칙을 천명하고 부속서인 ‘행동계획’에서는 구체적 실행계획을 명시한다.‘행동계획’은 양국간 마지막 문구 조정작업을 거쳐 이제 거의 확정 상태다. ▷한·일 어업협정◁ 2년4개월을 끌어온 한·일 어업협상이 지난달 25일 새벽 종지부를 찍었다.어업협상 타결로 다음 세기를 향한 양국의 발전적 관계 설정에 앞서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게 됐다.양국은 최대쟁점인 중간수역의 동쪽 한계선을 양국 주장의 중간선인 동경 135도 30분으로 매듭짓는 등 대부분의 사안을 정치적인 ‘주고 받기’로 타협했다.이번 방일 때 가서명할 예정이다. ▷과거사 사과◁ 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지난달 30일 과거사 사과 문안을 가지고 온 노보루 세이이치로(登誠一郞)일본 내각 외정심의실장(차관급)과 의견 조정을 벌였다.그러나 이때 일본이 내놓은 안(案)은 우리 기대에 다소 못미쳤다는 후문이다.일본은 ‘식민지배’를 받은 ‘아시아제국’에 대해 사과했던 지난 95년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의 담화 수준에다 대상과 시기를 ‘한국민’과 ‘일제’로 구체화할 것으로 전해졌다.일본은 파트너십 선언에 과거사 사과를 포함할 계획인데 이처럼 과거사 사과를 문서화한 것은 처음이다.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金대통령에게 직접 말로도 사과할 예정이지만 일황의 구두사과 수준은 아직 미확정이다.양국은 더 나아가 역사교과서 수정을 위한 기초단계로 이번 파트너십 선언에 “올바른 역사인식을 해나간다”는 내용도 담을 계획이다. ▷경제교류협력◁ 이번 방일에서 일본이 줄 가장 큰 ‘선물’은 무엇보다 대한(對韓)차관 30억달러의 제공이다.일본 수출입은행이 제공하는 이번 공공차관은 월드컵 주경기장 건설 등 각종 사업에 배정되는 ‘프로젝트 론’의 성격.특히 일본은 우리측 요구를받아들여 사용처를 우리 마음대로 지정하는 ‘언 타이드 론’ 위주로 차관을 편성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방일때 양국이 양해각서에 서명한다.이와 함께 70년 체결된 한·일 이중과세방지협정도 개정된다.일본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주식양도차익의 면세범위를 비상장주식에 까지 확대하고 투자소득에 대한 제한세율을 2% 포인트 낮춘다.아울러 한·일 경제각료모임이 신설된다.일본은 정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에 다소 부정적 입장.일본의 대한(對韓)첨단기술 이전의 한 방법으로 우리 고졸생 1,000명을 일본 공대에 유학시키는 제도도 마련됐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일본 대중문화의 단계적 개방도 파트너십 선언에 포함된다.그러나 원칙만 천명될 뿐 구체적 개방분야와 일정은 양국 문화정책 당국자들의 협의를 거쳐 추후 발표될 전망.당초 예상보다 전면적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일동포의 법적 지위◁ 일본은 “재일동포는 엄연히 외국인이기 때문에 내국인과 똑같이 대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따라서우리가 요구했던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부여는 이번에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김 대통령 방일 현안별 점검 ▲한·일파트너 공동선언 외국과의 교류협력 원칙을 포괄한 최초의 문서 ▲어업협정 9월25일 타결,방일때 가서명 ▲과서사 사과 ‘한반도’ ‘일본식민지배’ 명기,일본 총리 구두사과,올바른 역사인식 노력 합의 ▲경제협력 30억달러 대한공공차관 제공,양국경제각료 모임신설,이중과세방지협정 개정,대일투자설명회 개최 ▲인적교류 워킹홀리데이협정 체결,국내 고졸생 1,000명 일본공대 휴학 ▲국제사회협력 일본,우리의 대북포용론 지지 표명 한국,유엔 등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의 역할 증대기대 ▲일본대중문화개방 개방원칙 천명,세부일정은 양국실무진 협의후 발표 ▲재일동포 법적지위 향상 지방참정권 부여 등 구체적 합의는 추후 논의
  • 日 “양국 최대 현안 해결” 희색

    ◎“김 대통령 국빈방일 계기로 서로 양보” 평가/황금어장 대화퇴 조업제약엔 아쉬운 표정 【도쿄=黃性淇 특파원】 한국과 일본이 양국이 진통 끝에 이끌어 낸 새로운 한·일 어업협정에 대해 일본은 최선을 다한 결론이라며 대체적으로 반기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는 25일 “협정안 타결을 미루면 어장(漁場)은 혼란해지고 양국간 긴장은 높아진다”는 판단 아래 金大中 대통령 취임 이후 좋아지고 있는 한·일관계를 양국이 더욱 발전시키려 노력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실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이날 새벽까지 金琫鎬 국회 부의장과 자민당 사토 고코(佐藤孝行) 국제어업문제특별위원장 등이 가진 회담에 자리를 같이 하기도 했다. 일본의 언론들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동반자 관계를 여는 시점에서 양국 최대현안이 타결됐다고 반겼다. 니혼 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어업마찰로 초래될 한·일간 최악의 사태 방지와 金대통령의 국빈방문이라는 두가지 요인을 축으로 양측이 조금씩 양보하는 미덕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본 어민들은 새로운 협정의 시행에 ‘일본 근해에서 한국 어선의 조업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며 기대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효고(兵庫)현 지역의 어민단체들은 황금어장인 대화퇴 등에 중간수역이 설정돼 조업에 제약을 받게 됐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 내일 離任 張庭延 주한 中 대사 인터뷰

    ◎“장쩌민 주석 등 중 지도자들 한반도 안정에 각별한 관심”/‘11월 김 대통령 방중’ 21C 양국관계 기틀마련/경제수역 확정·어업협정 체결 등 쉽게 해결될것/재임중 북핵해결 틀 마련·4자회담 시작돼 보람 장팅옌(張庭延·62) 초대 주한 중국대사가 6년동안의 임기를 마치고 12일 중국으로 돌아간다.한국 근무를 끝으로 40년동안의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하는 그는 “두나라가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장 대사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자들이 한·중 관계발전과 한반도 안정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장주석을 비롯,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리펑(李鵬) 전 총리 겸 현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등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습니다” 명동 중국대사관 대사 집무실의 한 면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휘호도 한·중관계 발전을 보여준다는 설명도 이어졌다.95년 11월16일 한국 방문중이던 장쩌민 국가주석이 ‘방문이 성공적이었다’며 흥에겨워 마지막 방문지 제주도에서 써 준 것이란다. 장 대사는 오는 11월로 예정된 金大中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이 두나라 관계를 한단계 끌어 올리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金 대통령의 방문은 21세기 두나라 관계의 방향과 기틀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장쩌민 국가주석,주롱지(朱鎔基) 총리 등 최고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와 폭넓은 현안 논의 등 이해를 더욱 깊게 할 것입니다” 그는 金 대통령과의 여러차례의 만남이 한국생활을 더욱 기억나게 한다고 말했다.야당 시절 사무실을 방문하고 경기도 일산의 자택에 초대받았던 일화도 소개했다. “金 대통령은 중국 역사와 문화에 정통하고 세계 정세에도 뛰어난 안목을 갖고 있는데다 야당시절 중국을 세번이나 방문,중국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어 두 나라 관계발전에 큰 힘이 되고 있읍니다” 이어 “金 대통령이 중국에선 지식인뿐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야당시절부터 TV와 신문 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고 폭넓은 존경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특히 대사 자신이 가장존경하는 한국인이 金 대통령이라고 털어놓았다. 92년 8월 수교이후 두 나라가 6차례의 정상회담과 28차례의 외무장관 회담을 가졌고 서로 3번째 교역국으로 성장하는 급속한 관계발전을 이룩한 것이 대사로서 기쁨이란다. 대사 부임때만해도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감정에 대해 걱정스럽고 불안했었다고 회고했다.“두나라 사이엔 역사상 불행한 시기도 있었고 수교후 6년동안 어려운 문제도 있었습니다.” 재임기간동안 남북한과 중국,미국이 참가하는 4자회담이 시작되고 북한 핵문제도 해결의 틀을 마련하는 등 한반도정세가 완화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보람이라고 했다. “특정 사안과 관련,한국 정부가 북한에 ‘강력한 요구’를 부탁할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결국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중국의 원칙이 수용될 수 있었고 결과도 좋았다고 봅니다.” 63년부터 3차례에 걸쳐 15년동안 북한에서 근무한 장대사는 남북관계를 풀어가는데는 “무엇보다 신뢰회복이 시급하다”는 충고도 잊지않았다.“중국은 한반도 남북의 문제해결을 위해측면지원을 할 수도 있고 대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도 도움을 줄 수도 있읍니다.그러나 문제해결의 주체는 남북한이란 점을 잊어선 않될 것입니다” 북한에서 15년,한국생활 6년.한반도에서만 21년을 산 그는 한국인들은 성질 급한 것 빼놓고는 다 좋은 것 같다고 빙긋이 웃는다.“성실하고 정력적으로 일에 몰두하는 자세야 말로 남북한 똑같은 한민족의 장점”고 평했다. 북한 핵위기 등 남북문제와 관련,주한 미국대사 등과도 적잖은 ‘의견교환’을 나누었다는 그는 “경제수역 획정문제,어업협정의 체결 등이 현안이지만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베이징(北京)토박이인 장대사는 베이징대학에서 ‘조선어’를 전공한 뒤 58년부터 외교부에 근무해 온 중국내 제1의 한반도 전문가.서울 사람과 구분않될 정도의 유려한 우리말을 구사한다. 퇴임후 계획과 관련,“한반도와 관계된 일을 할 생각”이라며 21세기의 한·중관계의 발전을 위해 옛 시각이 아닌 새로운 눈으로 중국을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 “美·中 정상회담 순탄치 않을 것”/양국 외교가 한 목소리

    ◎미­티베트 독립 등 인권문제로 공세 예상/중­“대만에 무기판매는 잘못” 반격할듯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이 25일 시작됐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클린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금세기 가장 중요한 중국의 외교활동’이라고 공언한데서 짐작해 볼 수 있듯 클린턴 일행에 대한 중국의 환대는 극진했다.미국 방문단 역시 1,200여명의 매머드급으로 가히 ‘세기의 외교 이벤트’로서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의외로 결실은 빈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화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두 나라 외교가에서는 입을 모은다. 톈안먼(天安門)사태와 티베트 문제로 요약되는 중국의 인권 문제와 미국의 타이완(臺灣) 정책이 우선 클린턴의 나들이 길을 가로 막을 난제다.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은 매우 비타협적이다.이번 방문에서 클린턴과 반체제인사의 면담을 봉쇄키로 했다. 클린턴의 중국 방문을 취재하기 위해 입국하려던 라디오프레스 아시아(RFA)기자들의 입국 비자를 취소해 버렸다.티베트 문제와 톈안먼사태에 대해 중국 정부를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클린턴 대통령은 방문에 앞서 “중국정부에 항의를 할 것이며 이번 결정을 재고토록 요청할 것”이라고 말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중국의 당초 방침은 흔들림이 없다. 미국이 인권 문제에서 공세적이었다면 중국은 타이완 문제로 반격할 것이다.미국은 82년 중국과 맺은 협정에서 타이완에 무기판매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기로 다짐했지만 지금까지 첨단무기 판매를 계속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이 파키스탄이 최근 핵실험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는판단 아래 이란이나 미얀마 같은 나라에 미사일과 각종 무기 제작기술을 이전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다짐을 받아 내려할 것이다.
  • “外遊 아닌 세일즈 무대로”/달라진 정상외교

    ◎실사구시 대원칙… 겉치레 철저히 배격/수행원 절반 축소… 강연 원고 직접 손질 【런던=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이 1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에 도착,제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 일정을 시작함으로써 한국의 대통령으로 국제무대에 공식 ‘데뷰’했다.도착 즉시 金대통령은 대선때 국민에게 제시한 경제·외교대통령으로 면모를 보이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가장 빠른 일정인 영국 더 타임지(紙) 회견과 2일의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그 서막이다.ASEM 무대에 개혁과 시장경제를 동시 추진하고 있는 金대통령의 진면목(眞面目)을 알리는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金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부터 ASEM에 대비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당시 朴定洙 외교통상부장관 내정자에게 철저한 사전준비를 지시했고,행사일정이 정해지면서 ‘일하는 대통령’이라는 구체적인 목표을 세우고 준비를 해왔다는 게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의 한 관계자도 “과거와 같이 ‘원칙적 합의’라는 성명서를채택하는 전시적 성과가 아닌 실질적 성과가 있을 것”이라며 실질외교가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2일 영국 경제인연합회(CBI) 초청 오찬연설과 4일 런던대학 SOAS초청 강연회 연설은 준비된 일면을 그대로 보이는 대목이다.金대통령은 그의 체취가 묻어나도록 직접 손질했다고 한다.연설문 또한 영문원고이다.국제화 시대에 맞는 지도자상을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된다. 여기에 실효성이 없는 전세기의 핫라인 설치를 취소하고,특별기의 규모를 줄인 데 이어 수행원마저 절반이상 줄인데서도 金대통령의 준비가 어디에 까지 미쳐 있는가를 일깨우는 부분이다. 어쨋든 金대통령의 이번 정상외교를 통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외교대통령으로서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줌으로써 IMF에 짓눌려 있는 국민에게 위안을 심어주겠다는 각오다.
  • 손순용 건교부 항공국장(폴리시 메이커)

    ◎“북 영공개방은 민간항공협력 발판”/새달 평양관제구역 상용화… 청주공항 활성화 강구 “평양 FIR(비행관제구역)이 개방돼 우리는 연간 2천만달러 이상의 유류비를 절감하고 북한은 4백만달러 이상의 관제료 수입이 예상됩니다.그러나 경제적인 이득보다 남북한간 항공분야 합의로 양측이 모두 국제민간항공의 발전 및 기술협력을 위한 발판을 만든 점이 더 의미있습니다.” 건설교통부의 손순룡 항공국장(52)은 남북 항공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북한의 영공을 개방케 한 장본인이다.그는 지난 1일부터 일주일간 5개국 항공사가 7차례에 걸친 평양FIR 시험비행을 아무런 문제없이 마치자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북한 FIR을 통과하는 단축항로를 개설함으로써 향후 북한과의 항공분야 협력의 길을 트고 아시아·태평양지역 항공계의 오랜 숙원도 풀었기 때문이다. “민항기의 북한영공 통과문제는 지난 81년부터 제기됐지요.반응이 없던 북한은 93년 12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창립 50주년기념 국제회의에서 영공개방을 대외적으로 선언,남북 항공회담이진전을 보게 됐습니다” 북한이 영공개방 의사를 밝힌 후 96년 9월 남북한 및 일본 중국 등 인접국 대표들이 태국에서 처음 만났다.2차회담이 열린 97년 3월부터는 남북한만이 협상을 했다.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은 통신망 구성 문제였다.북한은 위성통신을,우리는 육상 직통전화를 원했다.그러나 지난해 10월 방콕에서 열린 3차 회담에서 북한이 우리 제안을 전격적으로 수용하면서 역사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오는 4월 23일부터 평양FIR이 상용화됩니다.북한영공에는 1주일에 140회 정도의 국내외 민항기가 통과할 예정이며 앞으로 횟수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그는 모처럼만에 합의한 남북한간 협력을 바탕으로 항공기술분야로의 협력관계를 넓혔으면 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손국장은 그러나 제구실을 못하는 청주국제공항 얘기만 나오면 풀이 죽는다.물론 착공 당시는 경제성을 전혀 고려치 않고 정치적 목적에서 건설돼 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지만 항공정책 핵심 담당자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정부는 무려 7백51억원을 들여지난해 4월 완공한 청주공항의 이용도를 높이기 위해 국내 및 외국 항공사의 입주를 좋은 조건으로 권유했지만 여객수요가 없어 개항 1년이 다되도록 개점휴업상태다.IMF까지 겹쳐 겨우 유치한 5개 노선의 국제선은 물론이고 국내선조차 이용 여객이 없어 하루 국내선 2회를 제외한 노선을 모두 폐지됐다. “이용객이 없다고 공항시설을 썩힐 수는 없지 않습니까.국적항공사의 비행훈련장으로 활용케 해 중국 천진비행훈련장 이용시 지불하는 연간 72만달러의 외화유출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손국장은 이와함께 러시아 키르키스탄 등 정부와 화물전세기의 유치도 적극 추진하는 등 시설 활용도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17회(75년)에 합격,해운항만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동해지방해운항만청장 주택심의관 국제항공협력관공보관 등을 지냈다.지난해 8월 대한항공 괌 사고를 잘 수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 새 발굴 자료와 증언으로 다시쓰는 현대사(대한민국 50년:1)

    ◎바람속에 밝힌 등불/1948년 8월15일 감격의 새아침 열리다/유엔 총선감시단 평양행 좌절되고/좌·우 이념대립속 ‘5·10선거’ 실시/해방 3년만에 반공정권 탄생/미 군정 정책 혼선으로 우익진영은 분열되고 북은 빨치산까지 양성/정부 권력구조 싸고 이승만·한민당 또 갈등/끝내 ‘대통령중심제’로 올해 1998년은 대한민국 정부를 선포한지 50주년이 되는 매우 뜻 깊은 해다.그 반세기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파란만장한 당대사다.그럼에도 비민주적 요소가 다분했던 여러 공화국의 정치상황 때문에 가려진 부분을 다 들추어내지는 못했다.또 전통주의의 수정주의에 입각한 학계의 양극화 현상은 현대사가 더러 왜곡 기술되는 오류도 드러냈다.그래서 서울신문은 새로 발굴한 자료와 생존자의 증언으로 엮은 주간기획물 ‘대한민국 50년’을 연재키로 했다.이 시리즈는 우선 대한민국 50년 역사속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었다.이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 다가오는 21세기 미래사를 발전적으로 이끄는 작업의 하나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1948년 새해가 밝았다.세밑 그믐날 잔뜩 찌푸렸던 하늘도 활짝 개었다.수은주는 영하 11도7분까지 내려가 기온은 쌀쌀했지만,날씨만큼은 쾌청했다. 우리 민족에게 새해 원단은 늘 각별한 것이었다.해방을 맞고나서 세번째 돌아온 새해는 더욱 그러했다. 전해인 1947년 11월14일 유엔 총회가 한국독립을 위한 계획안을 채택해 두었던 터라 고무적일 수 밖에 없었다.유엔총회의 한국독립 계획안은 1948년 3월31일까지 남북한 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국회 및 정부를 조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1947년 봄부터 한국문제의 유엔 이관을 구상했다.미국의 대외정책문서(FRUS)에 나타난 이같은 구상은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각오를 시사하는 것이었다.미·소의 이해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한반도문제를 합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소련은 한반도문제의 유엔 이관을 처음부터 반대하고 나섰다.그 대신 1948년초까지 남북한 주둔 미·소병력을 동시에 철수,한국인들 스스로가 외부개입 없이 정부를 수립하자는 제의를 내놓았다. 소련의 제의는 명분상 설득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당시 남북한 현실을 비교하면 남한쪽에는 위험한 것이었다.북한에는 이미 소련의 지원에 따라 사실상의 정부로 보아도 무방할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었다.이와는 달리 남한에는 권한과 지지기반이 취약한 남조선 과도정부가 있기는 했다.그러나 미군정의 일관된 정책이 없었기 때문에 우익 민족진영은 분열된 상태였고,북한의 조정을 받는 강한 공산세력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래서 1948년 새해 첫날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큰 사건 하나를 딛고 넘어갔다.이날 경무부장 조병옥은 이른바 ‘인민해방군’사건을 서둘러 발표했다.그런 어수선한 판에 1월4일에는 38선을 경비하는 북한 보안대원들로부터 황해도 연백경찰서 장곡지서가 습격되었다.그리고 15일에는 개성경찰서 여현지서가 피습되는 가운데 남로당 출신으로 이루어진 야산대라는 이름의 빨치산이 전국에서 설쳤다.이들 야산대는 소규모 빨치산에 불과했다.그러나 북한은 대규모 게릴라전을 위해 이 해에 평남 강동학원을 차렸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떻든 유엔 감시아래 한반도 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키로 한 유엔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이에따라 총선을 감시할 유엔한국임시위원단(유엔한위·UNTCOK)이 1월8일 김포비행장을 거쳐 서울로 들어왔다.서울에서는 영등포공업지대 근로자들이 임금인상과 고용직 근로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파업에 들어간 날이었지만,시민들의 환영은 대단했다.이날 KPS메논 인도 대표와 오스트레일리아·시리아 등 3개국 대표가 먼저 도착한데 이어 캐나다·프랑스·필리핀·엘살바도르 대표가 29일까지 서울에 왔다.유엔한위 1진이 서울에 도착한 다음날 유엔한위가 북한에 한 발도 못 들여놓을 것이라는 김일성 발언이 나왔다.그 때만해도 의례히 해보는 상투어 정도로 여겼다.그런데 미군정연락장교편에 평양으로 보낸 유엔한위의 입북신청은 소련군사령 참모장에 의해 거절되었던 것이다. 소련의 거부로 남북한 동시 총선거를 재검토할 수 밖에 없었다.유엔한위는 남한에서만이라도 단독선거를 실시하는 문제를 놓고 미군정과남한 정치지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연속회담을 열었다.우파에서는 남한 단독선거를 환영했으나 우익중에서 김구의 한국독립당은 반대했다.그리고 김규식을 주축으로 한 중도파도 통일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반대입장에 섰다.좌익도 물론 반대했다. 유엔한위는 남한 단독선거가 유엔 결의와 부합되는지를 놓고 고심했다.그러다 이 문제를 유엔 소총회에 넘겼다.소총회는 2월19일 유엔한위의 접촉이 가능한 지역(남한)에서만이라 우선 총선을 실시하자는 미국의 안을 받아들였다.투표결과는 미국 입장에 대한 찬성 31,반대 2,기권 11로 나타났다.유엔 소총회가 남한 단독선거쪽으로 손을 들어주자 유엔한위는 곧 바로선거준비에 들어갔다.그리고 정치권에서도 이승만 중심의 우익진영이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미군정은 우익진영과 협조하여 선거준비에 들어가는 한편 3월17일에는 국회의원 선거법을 제정발표했다.전통적인 민주선거원리에 입각한 이 선거법은 21살 이상의 남녀 모두를 유권자로 규정했다.이 선거법에 나타난 특이한 점은 일제에 빌붙어살았던 부일협력자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 박탈이다.새 정부의 민족정통성 확립을 위한 것이었는데,일제 청산은 뒷날 이승만정권에 의해 퇴색되었다.선거일은 처음 5월9일로 정했으나 일요일 투표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다음날인 10일로 바꾸었다. 단독선거를 반대하면서 남북협상에 운명을 걸고 평양으로 떠났던 김구와 김규식이 5월5일 서울로 돌아왔다.5·10선거를 방해하려는 북한 의도에 말려들었을 뿐 남북협상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5·10선거 역시 예상했던 대로 평온하지 못한 분위기속에 진행되었다. 총선거에는 대한독립촉성회,한민당,대동청년단 말고도 45개 군소정당이 나왔다.특히 무소속이 많아 전체 당선자 198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85명이 무소속이었다.이어 대한독립촉성회가 55명,한민당이 29명,대동청년단이 12명,다른 군소정당과 사회단체가 19명의 국회의원을 냈다.이들이 바로 제헌의원인데,국회는 5월31일에 개원되었다.이날 국회는 이승만을 의장에,신익희와 김동원을 부의장에 선출했다. 제헌국회는 7월17일에 열렸다.이날 국회는 이승만의 주장대로 대통령중심제를 권력구조로한 헌법을 통과시켰다.그리고 7월20일에는 헌법에 따라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했다.7월24일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은 헌법 골격을 가지고 갈등을 빚었던 한민당과 또 격돌을 벌였다.이승만은 귀국 이후부터 자신을 추종하면서 대통령으로까지 밀어준 한민당을 각료 선임에서 소외시켰던 것이다.그래서 민국당에 이어 민주당으로 개편한 한민당의 뿌리는 1960년 4·19혁명기까지 이승만과 영원한 정적이 되었다. 대한민국정부 수립 선포식은 8월15일 상오10시쯤 중앙청 광장에서 베풀었다.미군사령관 J R 하지 중장은 미군정 폐지를 공식 선언했다.해방을 맞은지 꼭 3년만에 독립정부가 출범한 것이다. 극심한 혼란속에 이상주의적 민족주의자들과 군정의 갈등,공산주의 세력들과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극복하고 어렵사리 태어났다.그러나 제1공화국이라고도 말하는 내정체제하의 반공정권은 그 장래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로부터 50년,꼭 반세기를 맞은오늘 험란한 민주화의 길을 걸어온 야당지도자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새 정부가 막 돛을 올릴 참이다.돌이켜 보면 대한민국이 걸어온 반세기의 역사는 파란만장했다.그 역사속에는 비민주적 요소가 다분한 여러 단계의 공화국이 기록되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열 문화부 차장급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정치부 기자 서창아 정치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중국에 귀 기울인다(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서구사회 팽배한 ‘중국 위협론’ 반박/자국의 가치·배경 바탕으로 국가건설 강조/미­일 신안보체제 국제평화 위협 강력 비판 【북경=이석우 특파원】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을 세계는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가. 뜨거운 갈채와 환영인가,아니면 경계와 두려움으로 대하고 있는가.강택민 중국 국가 주석의 미국 공식방문,백악관에서 열린 클린턴과의 역사적인 정상회담 등에도 불구,중국의 빠른 성장에 대한 의구심과 걱정의 눈길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광동 인민출판사가 최근 펴낸 ‘중국에 귀기울인다’는 냉전종식 이후의 국제정세의 변화·발전에 대한 중국의 입장 및 시각,그리고 중국 위협론에 대한 중국의 반박과 변명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하덕공,포위충,김용 등 3인의 공동 저서다.하덕공씨는 관영 신화통신이 펴내는 시사 일간지 ‘참고소식’의 국제시사문제 편집담당자이고 포위충 박사는 중국공산당 중앙 직속 교육기관인 북경 청년정치학원의 교수.김용 박사는 ‘중국부녀보’의 기자며 홍콩문제 전문가다.저자들의 신분에서도 이책이 중국측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따라서 이 책을 통해 중국측의 논리와 주장,대외관계등 정책 방향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중국이 서양의 질서와는 다른 사회가치와 정신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중국의 국가건설은 ‘서구와는 다른 중국적인 가치와 배경’에 따라 진행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인권문제,소수 민족지역에 대한 입장,홍콩문제 등과 관련,이 책은 단호하게 서구의 여러나라와 서구적 가치의 침투를 거부하고 있다.중국은 중국적 잣대로,중국공산당과 중국인들에 의해 통치하고 경영해 나갈 것임을 강조한다. 중국적인 방향으로 국가를 건설해 나가는 방법과 관련,전통문화의 재해석을 통해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고 민족주의 및 애국사상을 고취,국가 건설의 기본 정신으로 삼을 것을 제시한다.민족주의 및 애국사상에 대한 강화는 강택민 등 현 중국 지도부의 국가건설의 핵심 사업중 하나고 이 책은 그 의의를 재강조한 것이다.애국주의와 민족주의가 21세기 중국 국민들을 하나로 단결하는 끈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특히이 책은 ‘새로운 권위주의 이론’으로 대표되는 중앙집권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어 눈길이 간다.강택민을 정점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 중앙의 권위를 강화하는 것이 국내외적인 도전을 극복하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물질·정신 건설을 완성하는 길이란 주장을 강력하게 펼치고 있다.“개혁초기 중앙의 권력을 하부에 이행하는 것은 경제의 활력을 위해 필요하고 효과있는 조처였다.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작용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국민총생산액에서 중앙정부가 차지하는 몫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고 반면 지방재정수입은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다.지역간 격차를 줄이는데 필요한 수단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중앙의 거시 조정·통제 능력도 떨어지고 있다. 안정은 일체의 것을 넘어서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중국적인 발전 방법 및 목표,그를 달성하기 위한 강력한 중앙정부의 권한에 대해 이 책은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이와함께 이 책은 일본의 우익화 경향 및 군사 대국화 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미국과 일본의 신안보체제확립,이를 통한 일본의 유사시 동북아시아지역에서의 군사활동 영역의 확대 등에 대해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진정 동북아시아와 세계 평화의 잠재적 위협은 일본의 우익화 경향과 미국·일본의 신안보체제라고 꼬집는다. 냉전이 끝난뒤 21세기를 바라보는 다극화 시대에 대해서 이 책은 ‘포탄과 연기는 없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며 서구세력의 ‘문화침투’ 정책 및 각종 압력 행사에 대해 경계와 함께 비판을 가하고 있다.“미국은 지난 96년9월 ‘자유아시아 방송’을 개국하고 뉴스매체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의 내정에 간섭하며 정치 및 사회 안정을 흔들어 대고 있다.이는 아시아 국가들의 안전에 대한 위협이다”. 이 책은 중국의 성장을 위험스럽게 바라보는 서구 시각은 중국 문화와 현상을 잘못 이해하는데서도,또 서구의 패권주의적·냉전적 발상에서도 기인한다고 공격했다.특히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이 중국 위협론의 배경이론이 되고 있다면서 문명 충돌론의 오류를 지적했다.“문명 충돌이론의 개연성은 인정될수 있다. 그러나 헌팅턴씨는 일부 단면을 갖고 일반화하려는 오류를 범했다.금세기의 주요한 충돌은 문명간의 충돌이 아닌 같은 문명안에서의 갈등이었으며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려는 국가 이익간의 부딪침이었다”. 저자들은 냉전종식 이후 국제무대에서 독주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시하고 미국의 독주가 국제갈등의 원인중 하나라고 공격한다.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 등은 미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대립을 부추기고 있다.미국의 패권주의는 쿠바 등에 제재를 가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같은 문명권에서 프랑스 등과 갈등을 빚고 있다”.반면 중국은 현재 경제건설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고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국제환경을 중요시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중국은 등소평 시대에 ‘세계 혁명’전략을 버렸으며 세계를 적과 동지로 나누는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났다는 논조다. 또 “중국은 개혁개방 이래 3백여건의 법률을 제정했고 4천여건의 지방 법규를 만들었다.또 공무원제도를 개혁하는 한편, 직접 선거의 확대 등 풀뿌리민주주의를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중국도 국민 개개인의 잠재력과 창조력을 최대한 발현시키고 민주적이고 안정된 사회확립을 위해 노력해 나가고 있다는 설명이다.중국을 독재국가의 전형으로 생각하거나 침략적인 위험한 국가로 보는 것은 착오라고 이책은 재삼 강조한다. 원제 경청 중국:신랭전과 미래전략.광동 인민출판사.22위안. 하덕공·포취충·김용 공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