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신도시를 위한 변명/이건영 중부대 총장·전 국토연구원장
도시란 무엇인가? 아마도 우리 아이들은 빽빽한 아파트 숲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니면 자동차로 꽉 찬 도로와 콘크리트 덩어리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지금 국토 방방곡곡이 아파트 숲으로 바뀌고 있다. 시간을 내어 교외로 나가보라. 논두렁이나 밭이랑 사이, 산등성이에도 아파트가 솟아오르고 있다. 집은 부족하고 땅값은 비싸니 어쩌랴. 그래서 금수강산이라 불리던 우리들의 국토가 빽빽하게 솟아오른 고층 아파트 도시들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시대의 새로운 스카이라인이다.
따져 보면 토지이용에 대한, 도시에 대한, 주택에 대한 정책에 잘못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만성적인 주택부족에 시달려 왔다. 그렇다면 수요에 따라 계획적으로 택지를 공급하여야 할 터인데 항상 공급은 뒤져왔다. 그 때문에 되는 대로 난개발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한번 망가진 토지이용의 질서는 바로잡기 힘들다.
최근 건교부는 인천 검단지역, 경기 파주지역에 대규모 신도시를 만들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내년 상반기에는 강남을 대체할 ‘명품’ 신도시계획을 추가로 발표하겠다고 한다. 이같은 신도시 발표와 함께 부동산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을 잠재우겠다고 발표한 정책이 거꾸로 불을 지른 형상이 되었다.
참여정부 들어서부터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신도시계획이 발표되었다. 행정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벤처 밸리 등등. 수도권에만도 동탄·동백·파주·판교·송파·화성(수원)·평택·옥정(양주)·김포 등등, 여기에 인천의 송도·청라·영종 지역을 포함하여 신도시라 할 만한 택지개발 사업이 줄줄이 이어져 녹음 우거진 산허리를 잘라내고 있다. 이와 함께 부동산시장이 춤추어 왔다.
지금까지 우리는 집을 짓는 데만 치중해 왔다. 주택공급의 양이 항상 관심사였고, 집값 안정이 최우선 과제였다. 도시는 여러가지 생활기능을 가진 삶의 그릇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신도시는 거대한 아파트단지일 뿐 자족 기능이 부족하였다. 아무리 작은 단지라도 ‘단지’를 만든다기보다 ‘도시’를 만든다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신도시는 고밀도 일변도로 달려왔다. 대개 용적률이 180∼220% 수준이다. 전원 주거도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고밀도이다.1970년대의 반포·잠실 등지는 100% 내외인데 80년대의 올림픽 타운, 상계동 등지는 150∼200%, 그리고 최근에 개발된 용인 수지, 하남 신장지구 등은 200%가 훨씬 넘는다. 끔찍할 정도로 고층·고밀화된 단지도 많다. 최근에는 30층이 넘는 아파트들이 시골도시에 즐비하다. 세계에서 가장 과밀하다고 보는 도쿄권의 신도시들도 평균적으로 우리에 비해 개발밀도가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좁은 국토를 더욱 좁게 쓰고 있다. 밀도는 도시형태와도 관련이 깊다. 아파트 일변도보다는 단독주택, 빌라, 연립주택 등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조화된 공간이 되어야 한다. 물론 녹지나 공공용지도 제대로 확보되어야 한다.
넉넉하게 토지를 구입하여 녹색의 띠를 두르고 신도시를 개발하는 영국, 같은 건물은 두채 이상 짓지 않도록 다양한 디자인을 도입한 프랑스의 신도시, 신도시 하나 건설에 40년의 정성을 쏟는 일본 등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선진국에서 많이 만났던 작은 도시들은 모두 아담하고, 자전거 타기 편하고, 자연과 잘 조화된 동화같은 도시들이다. 우리의 딱딱한 산문같은 콘크리트 도시와는 다르다.
집값 잡겠다고 불쑥 내놓은 신도시계획, 과연 주택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그보다 이제는 진정 살고 싶은 도시, 도시다운 도시를 만들자. 똑같은 모양으로, 높이로, 디자인으로 된 아파트가 일렬 종대로 횡대로 늘어선 타운에서 우리의 미래공간을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허상이다.
이건영 중부대 총장·전 국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