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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6자 친서’ 中에 전달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박봉주 북한 내각총리는 중국 방문 이틀째인 23일 오후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박 총리는 후 주석과의 회담에 앞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친서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6자회담과 관련된 북한의 입장이나 후 주석을 평양으로 초청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관측된다. 후 주석의 방북과 관련, 중국 외교부의 고위 관계자는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참석을 전후해 후 주석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핵 문제 등을 둘러싸고 국제정세가 급박할 경우 후 주석의 방북 일정이 다소 앞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후 주석은 비공개로 진행된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양국의 공동이익에 부합된다.”며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설득했고 박 총리는 “우리는 6자회담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여건이 조성되면 회담장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후 주석은 이어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유일하고 정확한 선택이며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중국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oilman@seoul.co.kr
  • 박봉주 北총리 중국서 개혁·개방 ‘현장 학습’

    박봉주 北총리 중국서 개혁·개방 ‘현장 학습’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박봉주 북한 내각 총리가 22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와 회담을 갖고 5박6일의 방중 일정을 시작했다. 박 총리는 이날 회담에서 “우리는 6자회담을 반대하지 않고 회담을 포기한 적도 없다.”며 “여건이 조성되면 언제든지 이 회담에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류젠타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밝혔다. ●박봉주 “6자회담 포기한 적 없다” 류 대변인은 “두 총리는 핵 문제를 포함한 공동 관심사를 논의했으며 중국은 한반도 핵문제에 대해 진일보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강력하게 설득 중임을 시사했다. 박 총리는 23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예방하고 자칭린(賈慶林) 정협 주석과 회담할 예정이다. 박 총리는 이어 24∼25일 상하이(上海),26일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과 안산(鞍山) 등을 방문하고 27일 평양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방북과 관련, 중국의 고위 외교 관계자는 “후 주석이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전후해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동북아 정세가 급박하게 움직일 경우 후 주석의 답방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박 총리의 이번 방중은 북한의 경제지원 요구와 양국간 경제협력 논의로 모아진다. 박 총리의 지방도시 순방은 중국의 개혁ㆍ개방의 성공을 확인하고 북한 경제발전에 접목을 타진하기 위한 수순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한 북한 소식통은 “박 총리는 상하이 푸둥(浦東)지구를 방문, 자기부상열차 등을 시찰하고 한국기업이 다수 진출한 선양에서는 공업단지를 둘러보며 외자유치의 성과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일 대비 중국자본 北 진출 확대 지난 2001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시 “중국의 개혁·개방의 길은 옳았다.”고 평가한 뒤 북한은 각종 경제시찰단을 중국에 보내 중국식 모델의 접목 가능성을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북한 소식통은 “이번 박 총리의 방중을 계기로 북·중간 경협이 보다 구체화·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북·중간 경협의 방향은 북한의 경공업 지원 및 북한 자원개발과 연계하는 ‘상호 보완성’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있다. 북한 소식통들은 “중국자본의 북한 진출은 통일 한국을 대비, 한반도에서 장기적인 영향력 확대를 겨냥한 것이며 최근 중국의 동북3성 개발 역시 결과적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oilma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②-현대맨과 가신들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②-현대맨과 가신들

    “내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시도하는 것이고, 세계에 한국을 들이미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다들 덤볐고, 그랬기에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번듯한 직장과 두둑한 월급도 중요했지만 국가경제에 끼쳤던 절대적 영향력이 없었다면, 제 아무리 왕회장(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무서웠어도 그렇게 무모하리만큼 청춘을 불사르며 죽어라 달려들지 않았을 것이다.”25년을 현대에서 부대낀 이계안(53) 열린우리당 제3정조위원장은 자신을 포함한 현대맨들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기자는 짐짓 딴죽을 걸어보았다.“그렇지만 세상은 당신들을 가신이라 부르며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 위원장의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오너(창업주 일가)와의 친분으로 사장이 된 사람도 있다. 또 내부 세력 다툼에서 촉발된 경영권 분쟁으로 아직도 현대가 부분적으로 국가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다. 정주영 회장과 함께 건설, 자동차, 중공업 등 국가 기간산업을 무에서 일으킨 사람들이다. 부분적인 그림자가 있다고 해서 ‘경제인 정주영’과 현대맨들이 흘렸던 땀과 노력이 평가절하돼서는 안된다.” 현대는 여느 그룹처럼 구조조정본부가 없다. 그렇다고 비서실 인맥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회장님’(정주영)과 ‘현대맨’, 두 가지 구분법만이 있을 뿐이다. 이같은 독특한 구조 때문에 ‘가신그룹’이라는 부정적 단어도 생겨났지만 이 위원장의 말대로 오늘날의 현대를 일궈낸 데는 현대맨들의 열정과 우직한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현대… 현대맨… 현대스타일 현대맨들에게는 이른바 ‘현대 스타일’이라고 하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부지런하다.“부의 원천은 근검”이라며 새벽 6시에 출근해 7시에 임원회의를 소집했던 고 정주영 회장의 스타일에 적응하다 보니 근면이 아예 몸에 배어 버렸다. 정 회장이 세상을 뜨고 그룹이 뿔뿔이 쪼개진 지금도, 현대라는 간판을 단 회사의 직원들은 오전 7시면 출근한다. 둘째, 저돌적이다. 이 역시 “이봐, 해봤어?”하는 정 회장의 윽박에 오랜 세월 단련된 결과다. 이 때문에 때로는 거칠고 무모하다는 평가도 받지만 일단 ‘문제’에 달려들어 해보려는 의지가 남다르다. 셋째,‘정주영 마니아’다. 여느 그룹이나 창업주에 대한 직원들의 존경심은 대단하지만 현대맨들의 정주영 회장에 대한 경외심은 일반인의 상상을 넘어선다.“그 분의 부지런함, 하면 된다는 의지, 집요한 노력을 곁에서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뭔가가 끓어오른다.” 정주영 회장과 함께했던 현대맨들의 한결같은 고백이다. ●핵심 인맥 ‘건설’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에 대한 창업주의 애착은 남달랐다. 때문에 현대건설 출신이 아니면 그룹에서 성장하기 어려웠고 건설 스타일이 아니면 적응하기도 어려웠다. 건설 인맥의 맏형은 훗날 그룹 상임고문까지 지낸 이춘림(78) 전 회장이다.19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77년 1월 사장을 지낼 때까지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건설에서 보냈다. 그 뒤를 잇는 이는 이명박(64) 현 서울시장이다.‘현대맨의 전형’으로 불리는 그는 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해 5년 만에 이사,12년 만에 사장이 됐다. 이후 91년까지 현대건설 회장으로 장수하며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이렇게 말한다.“세간에서 나를 신화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화는 명명하는 사람들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만 신화일 뿐, 안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겹겹의 위기와 안팎의 도전으로 둘러싸인 냉혹한 현실이다. 시련이라는 험한 파도 앞에서 나는 우회하지 않고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서울시장 재임 중에 밀어붙인 청계천 복원과 교통체계 개편은 그가 건설 출신의 현대맨임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일각에서는 그에 대한 일화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의 한 고위 임원은 “태국 근무때 강도에게서 회사 금고를 지켰다는 일화 등 일부 얘기는 다소 부풀려졌다.”면서 “정주영 회장과도 막판에는 사이가 벌어졌다.”고 밝혔다. 이 시장의 뒤를 잇는 이내흔(69)씨는 90년대의 현대건설을 키운 주역이다.70년 현대건설로 입사해 91년 11월부터 7년 가까이 현대건설 사장을 지냈다.100% 국산 기술로 원자력발전소(영광 3·4호기)를 지어 우리나라 원전 건설사에 새 장을 열었다. 이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정주영 회장이 말년에 가장 애착을 가졌던 서산간척사업의 토대도 그가 닦았다. 옛 현대전자에서 분사된 홈네트워크시스템 전문구축업체 현대통신을 인수해 현재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잠시 대학 강단에 섰다가 ‘친정’으로 돌아온 이지송(65) 현 현대건설 사장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달성하며 옛 영광 재현에 나섰다. 박세용(65) 전 INI스틸 회장과 심현영(66)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도 현대건설 출신이다. 박 전 회장은 비자금 문제에 연루돼 중동에서 옥고를 치르면서도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아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냈다. 외환 위기때는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았다. 대학(연세대) 선후배라는 인연까지 더해져 고 정몽헌(MH) 회장의 믿음도 컸다. 이 때문에 그가 99년 12월31일 현대차 회장으로 발령나자 ‘MH계의 자동차 접수’라며 MK(정몽구 현대차 회장) 진영의 반발을 샀고, 결국 형제간 다툼의 시초를 제공했다. 딸이 미국에 살고 있어 딸 집을 오가며 소일하고 있다. ●왕회장의 그림자 인맥 정주영 회장의 최장수 비서를 지낸 이병규(52) 전 비서실장(현 문화일보 사장)이 단연 첫 손에 꼽힌다.77년 1월부터 91년 12월까지 무려 14년을 회장 비서실에서만 근무했다.92년 정주영 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했을 때도 당으로 옮겨 정 회장을 ‘모셨다’. 이 기간까지 포함하면 꼬박 15년이다. 정치자금 관리 혐의로 1년 8개월 동안 ‘5평짜리 아파트에서 연탄을 직접 갈며’ 숨어 지내면서도 단 한번도 불편한 내색을 내비치지 않아 “가신을 넘어 분신”이라는 평을 들었다. 정주영 회장 장례식때 조사를 읽은 사람도 그다. 육군 중위 출신의 김영일(62) 전 현대백화점 사장도 통일국민당 사무부총장을 맡아 정주영 회장을 그림자처럼 보좌했다. 이 공을 인정받아 94년부터 5년간 금강개발산업(현 현대백화점) 사장을 지냈다. 김 전 사장이 금강개발산업으로 발령나자 셋째 아들인 몽근(현 현대백화점 회장)씨 진영은 ‘왕회장의 친정체제 구축’으로 이어질까봐 바짝 긴장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리츠칼튼CC 등 골프장 운영업체인 애머슨퍼시픽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진호 전 고려산업개발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스스로를 ‘명예회장의 지팡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출신으로 92년 대선때 정주영 회장의 경호 책임을 맡았었다. 그러나 고려산업개발이 부도나기 직전인 2000년 말에 현대를 떠나면서 씁쓸한 인상을 남겼다. 고 정몽우(정주영 회장의 넷째 아들)씨의 부인 이행자씨의 친오빠이기도 하다. 정주영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10년간 역임할 때 통역을 담당했던 박정웅씨도 ‘인간 정주영’을 가까이서 들여다본 인물이다. 이 때의 일화를 엮어 ‘이봐, 해봤어?’라는 제목의 책도 냈다. 책에 나오는 한 대목.“호칭을 보면 회장님의 기분상태를 알 수 있었다. 기분이 좋으면 ‘김 이사’ 식으로 아랫사람들의 직책을 불렀지만 기분이 나쁘면 ‘그치’라고 불렀다.” 책을 본 현대산업개발 정세영 명예회장은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며 무릎을 쳤다고 한다. 생전의 정주영 회장은 아랫사람들이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을 때면 “이봐, 해보기나 했어?”하고 다그치곤 했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이 드물게 아랫사람들을 칭찬한 적이 있다. 독일 바덴바덴에서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할 때다. 그는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프랑크푸르트 지점 전 직원과 그 부인들까지 혼연일체가 돼 한 가지 목표(올림픽 유치)를 향해 뛰었다.”며 올림픽 유치의 숨은 공로를 현대건설 프랑크푸르트 지점 식구들에게 돌렸다. 재료가 변변찮은 이국 땅에서 30∼50명분의 한국음식을 매일같이 해나른 사람이 채수삼(62) 당시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이다. 그 열정과 노력을 인정해 정주영 회장은 93년 그를 ‘그룹 통합구매실장’으로 불러들였다. 이후 광고 계열사 금강기획 사장을 맡아 업계 5위권 밖을 맴돌던 회사를 2∼3위로 끌어올렸다. 지금은 서울신문 사장을 맡고 있다. 채 사장은 “69년 현대양행에 입사해 내 인생의 반이 넘는 시간을 현대에 몸담았건만, 돌이켜보면 엄청나게 일만 한 기억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룹 ‘7인 회의’ 멤버였던 김형벽(70) 전 현대중공업 회장, 그룹 종합기획실 인맥의 대부로 불리는 이현태(69) 전 현대석유화학 회장,‘포니 정’(정세영)과 함께 현대차의 기반을 닦은 박병재(63) 전 현대차 부회장, 현대종합상사를 일군 김고중(65) 전 현대아산 부사장도 빼놓을 수 없는 현대맨들이다. ●가신 3인방의 등장 박세용-심현영-이내흔 등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하던 새로운 인맥이 90년대 중반 들어 등장한다. 김윤규-이익치-김재수로 이어지는 이른바 ‘가신 3인방’의 급부상이다. 왕회장 인맥이 MK·MH 인맥으로 쪼개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엔지니어 출신의 김윤규(61) 현 현대아산 대표이사 부회장은 ‘소떼 방북’을 성사시킨 대북사업의 주역이다. 정주영 회장의 평생 염원인 금강산관광 사업을 주도하면서 2대(정주영-정몽헌)에 걸쳐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정주영 회장의 임종 직전까지 거의 매일 서울 청운동 자택을 찾아 점심을 함께 하며 말동무가 돼주기도 했다. 정주영 회장의 비서 출신인 이익치(61) 전 현대증권 회장은 98년 3월 ‘바이 코리아’ 돌풍을 일으키면서 주가 1000시대를 이끌었다. 매사가 시원시원하고 자신감에 넘쳐 MH의 총애를 받았지만, 경박함 때문에 싫어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MH의 상가에 끝내 나타나지 않아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정몽준(현대중공업 대주주) 의원과도 사이가 벌어지면서 현대가와 완전히 등을 돌렸다. 82년 현대중공업 사장과 현대엔진공업(중공업 관계사) 전무로 처음 만난 두사람은 그러나 당시 정몽준 사장이 “화장실에서 생각난 아이디어를 말하지 마라.”며 면박을 줬을 만큼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역시 정주영 회장의 비서 출신인 김재수(57)씨는 박세용 회장의 뒤를 이어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아 그룹을 이끌었다. 재무통으로 노래도 잘했던 그는 2000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대학 동문인 MH 진영에 뒤늦게 합류했다. 다소 ‘욱’ 하는 성질도 있다는 게 주위 얘기다. 세 사람은 이렇듯 형제간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MH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MH 인맥을 만들어냈다.MH의 눈과 귀를 가렸다는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이후 현대건설이 자금난에 휩싸이면서 세사람 사이에도 반목이 커졌다.‘MH의 그림자’로 불리던 강명구(59) 전 현대택배 회장, 박종섭(58) 전 현대전자 사장 등도 MH 인맥으로 꼽힌다. 같은 범주에 들었던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은 대북송금 특검 과정에서 MH와의 인연을 끊었다. ●MK 인맥의 전면부상 MH쪽에 김윤규-이익치-김재수가 있었다면 MK쪽에는 유인균-이계안-정순원이 있었다. 세 사람 모두 MK의 고등학교(경복고) 선후배다. 가장 선배인 유인균(65) 전 INI스틸 회장은 보는 이에 따라 시각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의리파’로 통한다. 김익환 현 기아차 사장이 세 싸움에서 밀려 쉬고 있을 때 “유능한 후배를 놀려서는 안된다.”며 앞장서 불러들였다. 이계안 의원은 76년 현대중공업으로 입사해 2004년 총선에 출마할 때까지 20년 넘게 현대에 몸담았다. 현대 시절의 가장 큰 보람으로 그는 기아차 인수를 꼽았다.“기아차를 인수하자고 하니까 그룹내에서 다들 겁먹고 물러서며 반대했다. 찬성한 사람은 오직 정몽구 회장 한사람 뿐이었다.” 이 의원은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 결국 기아차를 성공적으로 인수했다. 이 일로 MK의 신뢰를 굳혔지만 MK 인맥내 세 싸움에서 밀려나 현대를 떠났다는 관측도 있다. 정순원(53) 현 로템 부회장은 경제학 박사 출신답게 학자 스타일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구조조정본부격인 기획총괄본부장을 오랫동안 맡았다. 현대차써비스 출신의 윤명중(64) 전 현대하이스코 회장, 자타가 공인하는 해외영업통 김뇌명(63) 전 기아차 부회장,‘영업의 귀재’ 김수중(64) 전 기아차 사장,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창립 멤버인 박정인(62) 현대모비스 회장 등도 MK 인맥의 핵이다. 유인균-박정인-김동진(현대차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정공 인맥’은 저돌성과 로열티(오너에 대한 충성심) 면에서 ‘건설 인맥’과 매우 흡사하다는 평을 듣는다. 출신 성분(입사 계열사) 못지 않게 현대에는 대학을 연결고리로 한 인맥이 있다. 이현태-박세용-김재수 등으로 이어지는 연세대 인맥과, 정세영-이명박-김호일(전 현대해상 사장) 등으로 이어지는 고려대 인맥이다. 두 인맥은 오랜 세월 견제와 갈등 관계를 지속해 왔다. 고대 인맥은 MK의 외아들인 정의선(35) 현대·기아차 사장으로 연결된다. 고희를 바라보는 전직 현대 사장의 얘기다.“어느덧 창업주의 2·3세들이 그룹을 각자 나눠 이끌고 있다. 부디 아무것도 없던 데서 조국경제를 일으켰던 왕회장의 헝그리 정신과 초심을 도도히 되살려 정주영가의 영광과 거기에 젊음을 불살랐던 현대맨들의 긍지를 재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hyun@seoul.co.kr ■ “가신들 사랑싸움이 MK·MH 갈등 비화” 현대맨이 보는 ‘왕자의 난’ 2000년 MK와 MH간의 경영권 다툼은 현대를 핵분열시켰다. 이 다툼을 둘러싸고 여러 해석이 존재하지만 현대맨들은 “가신(家臣)들의 사랑싸움”이라고 정의한다. 분쟁의 직접적인 출발점이었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회장)의 현대차 인사발령만 하더라도 박 회장과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의 사랑싸움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경영권 다툼의 한복판에 있었던 한 현직 고위임원의 얘기.“두 사람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MH의 사랑을 서로 더 차지하려는 경쟁에서 박 회장이 밀리면서 인사발령이 났고, 결국 죽음으로 끝이 난 형제간 갈등을 초래했다.” MH의 사랑을 독차지한 이 회장은 그러나 이번에는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과 사랑을 나눠야 했다. 두 사람은 입사동기(1969년 현대건설)이자 동갑내기였다. 이어지는 임원의 얘기.“싸워야 할 상대(MK진영)가 분명했을 때는 서로 똘똘 뭉쳤지만 싸움이 끝나자 두 사람 사이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현대건설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결정적으로 사이가 틀어졌다.” 경영권 다툼의 승패 원인을 ‘사즉생(死卽生)’에서 찾는 것도 흥미롭다. 현대그룹의 한 임원은 “사실 브레인으로만 따지면 MH쪽에 인재가 더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MK 진영의 승리였다.MK 진영 가신들은 MH쪽에 현대차가 접수되는 순간, 피바람이 불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배수진을 치고 덤벼들었다. 반면 MH 진영은 싸움에서 이기면 좋지만 진다고 해서 ‘목숨’까지 왔다 갔다 할 일은 아니었다.” 그는 ‘숙부의 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현정은(MH 부인)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정상영(정주영 회장의 막내 동생) 회장이 이끄는 KCC에 먹히면 줄줄이 옷을 벗고 나가야 할 판이었다.‘왕자의 난’때와 입장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들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번에는 승자가 됐다.” 그렇다면 왜 유독 현대에는 다른 재벌에는 없는 ‘가신그룹’이 생겨났을까. 이계안 의원은 이렇게 해석한다.“삼성만 하더라도 소비재가 많기 때문에 오너가 아무리 예뻐해도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생존이 어렵다. 그러나 현대는 기간산업이 대부분이다. 오너가 영업을 하고 임원들은 생산·노무관리를 책임지다 보니 오너의 영향력이 다른 재벌에 비해 절대적으로 컸다.” 그래서 가신그룹이라는 특이한 인맥이 생성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내흔 현대통신 회장은 “평생을 현대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가신들의 싸움이 얼마나 보기 민망하고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면서 “이제라도 마무리됐으니 생채기를 치유하고 각자의 길을 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파키스탄 부토 前 총리 “미사일 설계도 북한서 구입”

    파키스탄은 미사일 개발을 위해 북한에서 직접 설계도를 구입했다고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전 총리가 밝혔다. 또 북한에 핵 기술을 제공하고 대신 미사일 기술을 얻는 맞교환 가능성도 시사했다. 부토 전 총리는 지난 주말 워싱턴에서 기자들에게 1993년 총리로서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에 미사일 설계도 구입을 제안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UPI통신이 8일 전했다. 부토는 “핵 미사일은 아니지만 핵탄두 탑재능력도 갖고 있었다. 당시 인도도 보유하지 못했던 성능이 뛰어난 단거리 및 중거리 미사일 설계도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는 현금 거래였으며 핵 기술 교환은 아니었다. 나의 방북 기간 중엔 핵 기술과 미사일 교환은 논의조차 안됐다.”며 자신의 정권 아래선 핵과 미사일 기술의 교환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 후 1998년 핵 실험으로 파키스탄이 국제사회의 제재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핵과 미사일 기술의 맞교환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칸 박사의 자백에서도 이는 간접적으로 인정됐다.”면서 북한에 핵기술을 주고 미사일기술을 얻는 맞교환이 그 이후 정권들에 의해 이뤄졌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지난해 2월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 압둘 칸 박사는 핵 기술을 북한과 이란·리비아에 팔았다고 고백한 바 있었으나 파키스탄 고위당국자나 주요 정치인이 북한 미사일 기술의 도입과 대가로 핵기술 제공을 인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사설] 고구려 고분 공동연구 기대 크다

    남쪽의 고구려문화재단과 북의 조선력사학회가 올해 안에 평양 주변 고구려 고분을 공동조사하기로 했다. 고구려문화재단에 따르면 지난달 24∼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양쪽 대표단이 이같이 합의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쪽 대표단이 “공동조사를 정치와 별개로 진행하자.”고 제의하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니 실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우리로서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 고구려를 제 나라 역사에 편입하려는 억지를 부리는 판이어서 남북 공동대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고구려사가 우리 민족의 역사라는 기본 인식에 남북간 이견은 물론 없다. 하지만 세밀하게 들어가면 해석상에 적잖은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남한 학계로서는 옛 고구려 땅에서 직접 조사·연구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에 일정부분 한계를 느껴 왔다. 또 논문 교류조차 원활하지 않아, 북쪽의 일부 학설에 대해서는 정권의 정통성 강화를 위한 역사 부풀리기라는 의혹을 갖기도 했다. 이제 남북 공동조사가 실현돼 그 연구성과를 함께 축적한다면 고구려사 이해는 외연을 크게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울러 남쪽의 역사단체가 북한에 공식으로 첫발을 딛게 됐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자 한다. 그동안 남북 학계가 국제학술회의에서 머리를 맞대거나, 학자 개인 차원에서 방북한 사례는 몇 차례 있었지만 북한 땅에서 갖는 정식 조사·연구는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따라서 이를 계기로 남북간에 역사·언어·민속 등의 학술교류가 더욱 활발해져 민족 동질성 회복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 후진타오 상반기 訪北 가능성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은 6일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 여부와 시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리자오싱 부장은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제3차 회의 이틀째인 이날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후 주석의 상반기 중 방북설을 확인해 달라는 질문에 후 주석의 해외방문 일정은 외교부 대변인이 관례대로 적절한 시기에 발표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후 주석은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며, 이에 앞서 지난해 4월 방중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리 부장은 북한 핵 6자 회담 재개 노력과 관련,“미국과 북한이 모두 주권 국가”라고 전제하고 “북핵 문제의 주요 당사자인 북·미가 상호 이해와 신뢰를 증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리 부장은 6자 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의 합리적인 요구가 고려돼야 한다고 말하고 북핵 문제는 복잡해 회담 재개에 난관이 많지만 중국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중재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리 부장은 관련 당사국들이 6자 회담 재개를 위해 융통성과 성의, 인내를 갖고 상호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oilman@seoul.co.kr
  • [뉴스플러스] 힐 - 우다웨이 6자회담 협의

    방한 중인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은 3일 오전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대사와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잇달아 만나 6자회담 조기 개최 방안을 협의했다. 우 부부장은 서울 세종로 주한미대사관에서 이루어진 힐 대사와의 면담에서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당시 북·중 협의결과를, 힐 대사는 한·미·일 3국 고위급 회담 결과를 상호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대사관측은 “미·중 양측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이를 위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6자회담이 열려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앞서 북한은 전날 발표한 외무성 비망록에서 “미국은 ‘폭정의 종식’ 발언에 대해 사죄하고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면서 “미국이 회담을 개최할 수 있는 조건과 명분을 마련할 때 (미국과) 마주 앉아 회담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열린세상] 북핵위기와 카터, 그리고 DJ/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북한의 핵보유 선언 이후 한반도의 위기국면은 정점으로 치닫는 듯하다. 부시 대통령의 재선으로 미국의 대북 정책은 변화보다 일관성을 강화하는 추세이고 이에 대해 북한은 6자회담 참가라는 온순한 대응 대신 핵보유 선언과 무기한 회담 불참이라는 초강수를 던지고 말았다.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북한과 북한의 조건 없는 6자회담 참가를 주장하는 미국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만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북핵문제가 해결되려면 불가불 일정한 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현실적 아이러니를 지적하기도 한다. 북핵문제 해결은 북·미간 협상과 양보라는 쉬운 방법을 택하면 되는데도 문제발생 이후 지금까지 양자간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해결책을 몰라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미 양자는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극적 위기가 조성되어야 마지못해 상호 양보로 문제해결에 나선다는 것이다. 실제로 1차 북핵문제 역시 대화국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극적 타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결국은 극단적 위기가 조성되었을 때에야 상호 양보에 나섰다.1993년 북·미간 고위급 대화에도 불구하고 북·미는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만 달렸고 급기야 1994년 4월 북한이 폐연료봉 인출을 시도하자 미국은 군사적 조치 검토와 함께 극적 타결을 시도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의 연료봉 인출을 참지 못할 위기로 인식하면서 북폭 검토와 카터 전 대통령 방북을 동시에 추진했다. 실제로 미국은 북한 폭격에 나섰을 경우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과 인적 물적 피해 예상치를 검토했고 주한 미대사관의 소개작전까지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카터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극적 협상이 성사되고 남북정상회담까지 합의되면서 한반도 위기는 기나긴 터널을 빠져 나오게 되었다.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북한의 연료봉 추출이라는 극단적 위기조성 전에는 북·미간 극적 협상이 불가능했던 셈이다. 이에 비추어 본다면 지금의 2차 북핵문제 역시 일정한 정도의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북·미간 타협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마저 가능해진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북·미 양자가 위기조성 이전에 상호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겠지만 이미 2년이 넘도록 합리적인 해결조짐은 보이지 않았고 급기야 북한의 핵보유 선언이라는 위기상황에까지 다다른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긴장고조를 통해 북핵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움으로써 미국으로 하여금 협상에 나서도록 유도하려는 포석의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미국은 ‘무시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이전에도 들었던 일이라며 위기상황으로 인식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1994년에는 핵물질 추출시도만으로도 위기라고 느꼈던 미국이지만 지금 부시 행정부는 핵무기 보유 시인에도 크게 개의치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 사정이 다르다. 물론 핵보유의 사실 여부와 핵무기의 군사적 실효성 여부를 따져 봐야 하지만 북한의 핵보유 시인은 그 자체로 한반도의 위협요인임이 분명하다. 또한 핵문제의 표류상황이 미국에는 득도 실도 아닐 수 있지만 한국에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를 더 이상 진전시킬 수 없는 치명적인 장애이자 위기국면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강경대응과 미국의 초강경 대응이 맞부딪칠 경우 한국은 감내하기 힘든 구조적 불안정성을 겪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지금의 국면을 위기상황으로 규정하고 이에 맞는 전략적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미국의 정세인식을 좇아 6자회담 복귀요구만 되뇌는 안이한 대응을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위기라고 간주할 수준까지 더 이상 문제해결을 뒤로 미룰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주도적 노력은 1994년 카터의 방북과 같은 극적 돌파구 마련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최근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방북 용의를 표명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1차 북핵위기에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이 했던 역할을 지금 2005년의 북핵위기에서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해주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中 우다웨이 “北核상황 변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2일 비망록을 통해 “미국이 믿을 만한 성의를 보이고 행동해 6자회담이 개최될 수 있는 조건과 명분을 마련한다면 우리는 어느 때든 회담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때 북한은 6자회담의 전제조건보다는 회담 조기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오후 외교부 청사에서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북핵문제를 논의했다. 우 부부장은 “상황이 새롭게 변하고 있어 (중국 정부가) 나를 한국에 보내 의견을 교환하도록 했다.”고 말했으며, 반 장관은 “우리의 관심 내용을 북한에 잘 전달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우 부부장은 이태식 외교차관, 송민순차관보, 조태용 북핵외교기획단장 등으로부터 지난 26일 한·미·일 3자협의 결과를 전달받고 북한의 6자회담 조기 복귀방안을 협의했다.2박3일 일정으로 방한한 우 부부장은 3일 오전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대사와 회담을 갖고 곧바로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만날 예정이다. 한편 반 장관은 이날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시한이 있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시한을 설정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26일 한·미·일 북핵 고위급회담과 관련,“(3국의 발표가) 뉘앙스 상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북한이 지체없이 회담에 북귀해야 한다는 것에 완전히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지운 구혜영기자 jj@seoul.co.kr
  • “美 ‘폭정 전초기지’ 해명땐 북한 6자회담 복귀할 것”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북한은 미국이 6자회담 복귀 명분으로 조그만 상황 변화를 만들어 주면 회담에 복귀할 것이라고 정통한 북한 소식통이 24일 전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포함한 북한 지도자들의 6자회담 복귀 의지는 상당히 강하게 느껴졌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상황 변화와 관련,“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지칭한 ‘폭정의 전초기지’에 대한 미측의 전향적인 해명이나 북한체제의 전복이나 변형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공개적 의사표현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물질적 보상은 북핵 해결 과정에서 북한의 장기적 목표이기 때문에 이번 왕자루이(王家瑞) 당 대외연락부장의 평양 방문에서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이를 토대로 향후 미국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을 설득, 북한의 회담 복귀 명분을 조성하는 데 노력할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왕자루이 부장과의 면담에서 특유의 유머나 위트를 사용하지 않고 시종 진지한 태도로 임했으며, 면담은 예정보다 긴 1시간40분 정도 진행됐다.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은 왕 부장과의 면담에서 ‘중국이 (6자회담 참가국들에게)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구체적으로 당부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핵보유 기준과 관련,“중국은 북한의 말뿐인 핵보유 선언이 아니라 핵실험 여부를 핵보유의 최종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북한이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한 점도 이번 방북의 성과”라고 밝혔다.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이번 방북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경제지원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면서 “원유와 식량의 무상원조 확대 등 경제지원 문제는 국가 지도자가 결정하는 사안인 만큼 장관급인 왕 부장이 언급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이 소식통은 닝푸쿠이 한반도문제 담당대사가 포함된 왕 부장 일행이 강석주·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등과 단독 또는 비밀회담을 갖지 않았다며 일각의 관측을 부인했다. 중국의 이같은 행보는 ‘북핵 중재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편 쿵취안(孔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왕자루이 부장의 방북 결과에 대한 질문에 “북한은 명확히 6자회담에 반대하지 않고 있고, 문을 박차고 나가지도 않았다.”며 6자회담의 재개 가능성을 강조했다. 쿵 대변인은 이어 6자회담은 시작 때부터 많은 어려움 속에서 당사국들이 나름대로의 공동인식을 갖게 되는 성과를 거둔 만큼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식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밝혔다. oilman@seoul.co.kr
  • 김정일, 美에 압박정책 철회·核보상 재촉구

    김정일, 美에 압박정책 철회·核보상 재촉구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22일 전해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북핵 관련 발언의 의도와 배경은 아직 분명치 않다. 외교부는 이날 “북·중 협의 결과를 토대로 향후 상황전개에 따른 면밀한 대책을 검토하고 한·미·일 3자 협의 등 후속 협의를 개최하겠다.”며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정부는 금명간 중국을 통해 구체적인 설명을 전달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의 발언은 대체로 긍정적인 면이 많은 쪽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위원장 자신이 직접 “6자회담을 거부한 일이 없다.”고 말한 점 등 김 위원장의 화법이 부정형이 아닌 긍정형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그의 언급 자체가 또한 의미를 갖는다.”는 게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분석이다. 김태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 발언 이후에 벼랑끝까지 가보겠다는 데 대해 브레이크를 잡았다는 점에선 의미를 둘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한은 중국을 통해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협상’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정영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선임연구원은 “유화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본다.”면서 “북한이 ‘추가 조치’보다는 대화와 협상의 의지가 있음을 내보이려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내용상 큰 변화는 없다는 점에서도 의견은 대체로 비슷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김 위원장은 그동안 6자회담 전제조건으로 내건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와 ‘동결 대 보상’ 요구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핵무기 보유 선언의 진정한 의도가 핵무기 보유국으로 가겠다는 것보다는 비핵화로 가는 것이 목표라는 점을 강조했다.”며 “그런데 미국의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아 그 목표 실현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점에서 상황이 당장 진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김정일 위원장 역시 미국의 ‘성의’를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며 공을 다시 미국으로 넘겼기 때문에, 김태효 교수는 ‘장기전’을 예상했다.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대사는 이날 “북한은 자신의 미래가 6자회담 테이블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면서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한 외교전문가는 “6자회담이 성사되기까지 예상되는 외교적 행보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면서 “향후 주변국의 반응, 중국측의 추가 방북, 북한의 추가 행보, 행정적 절차 등을 감안하면 빨라도 초여름이나 차기 회담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지운 구혜영기자 jj@seoul.co.kr
  • 후진타오 “6자회담 틀 깨지말라”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후진타오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구두메시지(口信)’는 북한에 대한 ‘이해’와 함께 중국의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다. 21일 왕자루이 당 대외연락부장을 통해 전달된 후 주석의 메시지는 정치·외교적 수사가 동원됐지만 핵심은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라.”는 경고인 것이다. 후 주석은 메시지 서두에서 “중ㆍ조 쌍방이 6자회담을 통해 핵문제와 조선측의 합리적인 우려를 해결하는 것이 중ㆍ조 쌍방의 근본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고 있다.”며 완곡한 표현으로 북핵 문제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인정했다. 하지만 후 주석 메시지의 핵심은 “우리는 상황이 더 이상 복잡해지는 것을 피하고 이른 시일 안에 6자회담이 재개되길 희망한다.”는 내용이다. 중국의 최우선 정책인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의 틀을 깨는 어떤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혁명세대인 덩샤오핑(鄧小平)과 장쩌민(江澤民) 등 2,3세대 지도부와 달리 실용주의로 선회한 4세대 지도부의 “언제까지나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도 읽혀진다. 중국 최고지도자의 최후통첩성 메시지에 대해 일단 북한은 최대한 예우를 갖췄다. 김 위원장은 “북한은 6자회담을 반대하지 않으며 조건이 구비되면 회담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화답했다. 왕 부장은 이날 베이징으로 돌아온 직후 중국 지도부에 김 위원장의 견해를 전달하고 조만간 중국측의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다.‘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적 북핵 해결’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중국 당국은 미국에 보다 유연한 입장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 특사인 왕 부장의 방북을 통해 중국이 ‘상황악화’를 막았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을 살린 셈이다. 앞으로 중국은 중재자로서의 역할과 함께 북핵 해결의 주요 고비마다 막후에서 대북 경제지원의 당근과 압박을 동시에 추진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oilman@seoul.co.kr
  • DJ “北송금 특검 굉장한 잘못…訪北뜻 있다”

    DJ “北송금 특검 굉장한 잘못…訪北뜻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북 의사를 밝히며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의 숨통을 트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김 전 대통령은 21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만일 김정일 위원장이 ‘우리 민족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한번 좀 와주시오.’라는 초청이 있으면 갈 수 있다.”면서 방북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다만 그는 “내가 특사로서 가는 것은 합당치 않다.”면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대통령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다녀와서도 정책을 계속 실행할 수 있는 최측근이 특사로 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 2003년 대북송금 특검과 관련해서는 “굉장히 잘못한 것”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국가의 책임자가 최고 기밀사항으로 취급해 놓은 것을 그렇게 까발리면 앞으로 어느 나라가 우리를 신뢰하고 대화를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반면 김 전 대통령은 현 정부의 대미자세에 대해 “참여정부가 지금 아주 힘들게 노력하면서도 비교적 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핵보유를 선언한 북측에 대해 안타까움과 함께 비판을 가하는 한편 미국의 현안 접근 태도에도 비판적 자세를 내비쳤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과 협상하고 싶은데 협상이 잘 안되니까 약간 극단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에 대해서도 “미국의 강경세력들은 이 사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북한을 악당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구실로 군비강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사찰을 받겠다고 하면, 미국은 안전보장해 주고 국교 정상화한 뒤 다음 문제를 이야기하겠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줘야 한다.”고 미국측의 소극적 태도를 지적했다. 또한 정부의 인도적 대북지원에 대해 우리 국가와 민족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인 만큼 지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청와대는 김 전 대통령의 방북용의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일단 그 취지와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날 국회 통일외무통상위원회에 출석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김 전 대통령의 방북 성사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북핵에 대한 염려, 위기 상황 해소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반겼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왕자루이 ‘북핵라인’ 릴레이 면담

    19일 방북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첫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예방했으며, 방북기간 중 외무성 강석주·김계관 부상 등 북한의 핵문제 주요 라인을 만나게 될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왕자루이 부장은 22일 돌아오기 이전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예방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후진타오 국가 주석의 친서가 전달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대북지원 의사를 갖고 있다면 후 주석의 친서와 함께 전달될 공산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의 무상원조 결정은 양국 고위급이 참석하는 외교행사 때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향후 왕 부장에 이어 리자오싱 외교부장 또는 다이빙궈 외교부 수석부부장, 나아가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9월 리창춘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 당시 박봉주 내각총리와의 회담과 10월 중국을 방문한 김영남 위원장과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회담을 통해 북한에 각각 무상원조 보따리를 전달한 전례가 있다. 중국의 2004년 대북 무상원조 규모는 1458만달러였으며 ▲2000년 2756만달러 ▲2001년 6912만달러 ▲2002년 1596만달러 ▲2003년 1088만달러 등으로 추산된다.2001년 원조액 급증은 그해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장 주석이 9월 평양을 찾는 등 정상외교에 따른 결과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편 북한은 왕 부장의 방북 직후 평양발 신화통신을 통해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고집하고 북한과의 공존을 거부하며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하고 있어 이제 북한이 한반도 핵문제에 대해 미국과 양자회담을 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핵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는 원칙적 입장과 한반도를 비핵화한다는 궁극적인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조건과 분위기가 형성되면 6자회담에 나올 수 있다는 수사(修辭)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사설] 개성공단사업 차질은 막아야

    이봉조 통일부차관이 엊그제 연합뉴스와의 회견에서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추가로 상황악화 조치를 취할 경우, 개성공단 후속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그동안 어떤 일이 있어도 남북화해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사업만은 차질 없이 진행되길 바랐다. 그런데 북한의 핵보유 선언 이후 사태는 이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안타깝기 짝이 없다. 개성공단사업은 지난해말 냄비가 첫출시된 이래, 시범단지공사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돼 왔다.3월중 전력공급이 시작되고 전화와 팩시밀리 등 통신시설도 개통될 예정이었다. 본단지 1단계 100만평 가운데 5만평 추가분양일정도 3월중에 잡혀 있다. 핵문제가 계속 악화되면, 이런 계획들이 유보·취소되는 속도조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북핵문제와 별도로 남북경협사업은 큰틀에서 계속되는 게 좋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문제를 계속 악화시키면, 경협을 계속하자는 명분도 약해지고 실현가능성도 낮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여론이 그러할 것이고 미국, 일본, 중국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의 입장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차관의 발언 또한 이런 원론적 차원의 우려를 나타낸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은 지금이라도 방북중인 중국의 왕자루이(王家瑞)특사를 통해 전달될 나머지 참가국들의 입장을 새겨들어,6자회담 복귀결단을 내려야 한다. 크리스토퍼 힐 주한미국대사가 대북경협에 한·미간 의견조율이 필요하다고 한 언급도 새겨들어야 한다. 우리 정부가 다른 참가국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 반기문 외교 “중국, 또다른 對北설득 준비”

    반기문 외교 “중국, 또다른 對北설득 준비”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와 크리스토퍼 힐 주한대사가 17일 각각 중국을 방문,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북한을 6자회담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중국의 역할 등을 논의했다. 이와 관련,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과 재외공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조찬 간담회에서 “중국은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계획 이외에도 다른 ‘이니셔티브’를 취할 계획을 우리에게 알려오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현지에서는 차기 방북 인사로 리자오싱 외교부장이나 김정일 위원장의 신임이 비교적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다이빙궈 외교부 수석 부부장이 거론되고 있으며, 중국 지도부는 최종적으로 정치국 상무위원 중 한 명이 직접 방북해 설득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김하중 주중대사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남북한 방문 가능성에 대해 “중국 최고지도자가 오는 11월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할 예정인 만큼, 그 기회에나 또는 회의 이전에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 방중한 송민순 차관보는 “‘중국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해 종래보다 좀더 강하게 설득해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우리의 입장을 중국측에 전달했다.”고 반기문 장관이 밝혔다. 당일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힐 대사도 중국측에 강력한 대북 설득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쿵취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대북 경제 제재를 반대하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北설득 中國만 믿는다”

    중국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주변국의 시선이 온통 중국에 쏠린 상태다. 중국과의 전화통화나 중국을 찾는 발걸음도 줄을 잇고 있다. 주변국들은 중국이 ‘좀더 강하게’ 북한을 설득해줄 것을 계속 요구하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중국도 매우 당혹해하고 있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입을 모은다. 우선 “성과를 기대하는 시선들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17일 한 소식통은 전했다. 현실적으로 당장 진전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당국자는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이 예정된 상황에서 북한이 앞서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것 자체가 중국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중국의 심기가 대단히 불편한 상황에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한국 정부의 고위 관계자가 ‘중국 특사가 간다.’고 말했을 때 중국쪽이 굉장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외교가의 한 인사는 소개했다. 일부 외교·안보 관계자들은 “미국이 이번 일로 북핵에 대한 중국의 해결의지를 가늠할 수도 있다.”고 본다. 미국은 최근 중국의 미온적 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출한 적이 있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중국의 역할에 금이 갔다.”고 보도하는 등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감소했다고 보는 서방 언론도 많다. 그러나 김하중 주중대사는 “중국은 얼마만큼 줬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원조를 북한에 해왔고 그런 만큼 그 영향력도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북·중간 15개의 도로가 있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몇개를 보수하느라 물자가 들어가지 않으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다만 문제는 영향력을 행사하느냐의 여부다. 김 대사는 “중국이 대북카드를 쓸 경우 파생되는 반작용이 있는데 현 단계에서 써야 할지를 고려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아직은 설득에 주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역으로 받아들인다.“북한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중국도 압박의 형태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힐 美대사 17일 전격 訪中…核메시지 전달

    힐 美대사 17일 전격 訪中…核메시지 전달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가 북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7일 오전 중국을 전격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16일 “힐 대사가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에 앞서 미국의 분명한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중국에 가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이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로 지명됐으나 공식 임명 절차를 거치지 않은 힐 대사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힐 대사는 최근 미국으로 일시 돌아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등과 북핵 문제를 협의한 뒤 서울로 돌아왔다. 이에따라 미국이 중국이나 북한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그의 중국 방문에 관심이 모아진다. 외교소식통들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 이후 ‘회담 복귀 이전에는 아무런 대가가 없다.’고 강조해온 미국이 힐 대사를 중국에 보내는 모습은, 북한에 미국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힐 대사는 17일 중 서울로 돌아올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도 같은 날 중국을 방문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과 협의를 갖고 북핵해법을 논의할 예정이나 한·미·중 3자 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16일 저녁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과 35분간 전화통화를 갖고 북핵 6자회담의 조기 재개를 위한 중국측의 적극적인 노력을 요청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비행기 투하式 핵무기 北, 1~2개 개발 추정”

    국가정보원은 15일 북한의 핵무기 개발 능력과 관련,“비행기에서 투하하는 재래식 핵무기 1∼2개를 개발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미사일에 탑재해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갖추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국정원은 북한 핵무기 보유선언과 관련해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다 하더라도 2차대전 때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됐던 재래식 핵무기 수준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고 여야 정보위원들이 전했다. 국정원은 이어 “핵무기를 미사일에 탑재하기 위해서는 500㎏ 미만으로 소형화돼야 하는데 북한은 아직 이같은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또 파키스탄의 유명한 핵과학자인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과거 방북시 미사일에 탑재된 핵무기를 보았다는 일부 외신보도와 관련,“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부인했다. 국정원은 북한 핵기술의 해외유출 개연성에 대해 “그동안 외부로 유출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며, 당분간 유출할 가능성도 없다고 본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 배경에 대해 “핵협상이란 큰 틀에서 미국으로부터 자기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벼랑끝 전략의 일환”이라면서 “대내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에게 핵보유국이란 점을 과시하고, 미국의 압력에 맞서 버티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고 보고했다. 여야 의원들은 북핵과 관련한 국정원의 정보 능력에 심각한 수준의 문제 제기를 했으며, 국정원은 “북한은 럭비공 같은 존재로 예측이 어렵다.”고 밝혔다. 정보위는 오는 24일 전체회의를 열어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 및 6자회담 무기한 중단선언 등 대북 관련 현안에 대해 보고를 받고 대책을 추궁키로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北, 핵보유 선언 中에 사전통보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북한이 지난 10일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핵보유 선언과 6자회담 무기한 연기를 발표하기 수시간 전에 중국측에 ‘성명을 발표할 것’이란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3세 생일(2월16일) 행사 개최와 관련해 중국측 인사들을 초청하지 않았으며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도 이르면 이번주말 방북할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의 정통한 한 중국 소식통은 “북한이 핵보유 선언에 앞서 중국측에 발표 사실을 알린 것은 우방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표시한 것”이라며 “중국은 북한의 발표 사실을 통보받고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일부 언론에서 왕자루이 부장의 방북 시기로 보도한 16일은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 축하행사와 겹쳐 외부 손님을 초대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핵보유 선언과 관련,“중국측은 지난 2002년 10월 당시 제임스 켈리 미 동아태담당 차관보의 방북과 그 이후에도 수차례나 핵보유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미국에 알렸기 때문에 이번 선언이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단지 ‘말’에 불과하며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거나 핵무기를 공개하기 전까지는 상황이 종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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