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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근태씨 제주서 검거/서울로 압송,수감

    ◎전대협핵심 10명도 구속방침 지난9일의 도심폭력가두시위를 배후조종한 혐의로 미리 구속영장이 나와 수배됐던 「전민련」 집행위원장 김근태씨(43)가 13일상오 제주도 제주시 노형동 유니크아파트 622호 친척집에 숨어있다가 서울에서 급파된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는 이날 하오 대한항공편으로 서울로 압송돼 서대문경찰서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등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김씨는 지난9일 서울시내에서의 시위가 끝난뒤 대학생 등 2백여명과 명동성당에서 철야농성을 벌인뒤 10일 제주도로 건너가 숨어 지내왔다. 경찰은 이와함께 「전대협」의장 송갑석(24ㆍ전남대 총학생회장),「서총련」의장 윤진호군(24ㆍ고려대 총학생회장) 등 전대협집행간부 10여명에 대해서도 2∼3일내로 미리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서기로 했다.
  • 전민련 김근태­한상렬ㆍ국민련 이수호씨/집시법위반 사전영장

    서울시경은 12일 「전민련」 집행위원장 김근태씨(43),「국민연합」 집행위원장 이수호씨(41),전민련공동의장 한상렬씨(40)등 3명을 집회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및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이날 영장은 서울형사지법 박철판사가 발부했다. 이들은 지난9일 하오5시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민자당해체와 노정권퇴진 촉구 국민결의대회」에서 KBS와 현대중공업사태로 들어난 현정권의 폭력탄압을 즉각 중단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불법시위를 선동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이틀째 도심 가두시위/2천5백명/도로막고 화염병 던져

    서울대등 서울시내 13개 대학생들은 9일에 이어 10일하오 각 학교별로 민자당창당등에 반대하는 집회를 가진 뒤 이가운데 2천5백여명은 하오 6시30분쯤부터 동숭동 대학로 퇴계로 대한극장앞 등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대학생들은 이날 하오6시30분쯤 동대문구 동숭동 대학로에 모여 왕복6차선도로 5백여m를 점거하고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자 30여분만에 해산했다. 이들 가운데 1천여명은 하오7시30분쯤 중구 퇴계로 4가 대한극장앞에 다시모여 6차선 도로를 점거,「해체민자당」등의 구호를 외치고 화염병을 던지며 1시간남짓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제지하자 하오9시쯤 대부분 해산했고 이 가운데 2백여명만 동국대 후문쪽 골목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에 화염병 5백여개를 던지며 30여분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역시 해산했다. 경찰은 이날 서울시내에서 학생 등 3백여명을 연행했으며 경찰관과 학생 등 1백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국민연합」은 이날 하오6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민자당해체ㆍ노태우퇴진촉구 제2차 시민대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재야인사ㆍ학생등 2백여명만 참석한 가운데 1시간여만에 약식으로 집회를 마쳤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뒤 가두로 나가 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려다 경찰이 막자 이중 1백여명이 성당으로 돌아가 철야농성을 벌였다.
  • 1만여대학생 “반민자”격렬시위/심야까지 도심 곳곳서 화염병 공세

    ◎전경버스등 차량6대 전소/미문화원 피습,1층 일부 태워/1백50명 연행… 전경등 2백명 부상 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 등 「전대협」소속 서울시내 32개 대학생 9천여명은 민자당 창당대회가 열린 9일 하오5시30분쯤부터 밤11시까지 시청앞ㆍ남대문ㆍ신셰계백화점앞ㆍ명동입구ㆍ서울역앞등 서울시내 도심 곳곳에서 『민자당해체』등의 구호를 외치고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6공들어 최대규모의 시위를 벌였다. 또 부산ㆍ대구ㆍ광주ㆍ전주ㆍ마산 등 지방에서도 이날밤 대학생 5백∼1천여명이 지역별로 시내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로 서울에서는 미문화원 1층 농업무역관등 30여평과 전경버스 4대와 형사기동대 봉고버스1대가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에 불탔으며 서울의 용두ㆍ봉천파출소와 지방의 대구 중부경찰서,비산ㆍ동산파출소,부산 사상파출소,대전 대홍파출소,인천 축현파출소 등 10곳이 화염병 공격을 받았다. 이날 시위로 전경과 학생등 2백여명이 부상했고 시위학생 1백5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에앞서 서울지역 32개대학생 1만2천여명을 비롯,전국 95개 대학생 4만2천여명은 이날 낮 각 학교별로 「민자당해체 출정식」을 가졌다. 이들은 이어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쟁취국민연합」측이 하오6시 17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기로 한 「민자당해체 노정권퇴진촉구 국민궐기대회」에 참가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곧바로 가두시위에 들어갔다. 서울시내 대학생들은 이날 하오5시30분쯤부터 집회장소로 예정되어 있던 시청앞 쪽으로 몰려들었으나 경찰의 제지를 받고 남대문옆 삼성본관건물앞 차도를 점거하고 시위를 시작했다. 이어 시위대는 남대문에서 신세계백화점에 이르는 도로를 점거하고 2시간30여분동안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하오 8시쯤 학생들은 일단 흩어졌다가 3백명∼5백명 단위로 다시 모여 미도파 백화점앞과 롯데호텔앞,서울역광장등지에서 시위를 계속했으며 하오9시쯤에는 시위학생 숫자가 최고 1만여명으로 불어났다. 학생들 가운데 5백여명은 하오9시쯤부터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철야농성을 벌였다. ◎지방서도 산발시위/파출소ㆍ민자지구당 기습 【부산=김세기기자】 부산시민운동본부 주최로 9일 하오6시 부산진구 옛 부산상고 교정에서 열릴 예정이던 「민자당 해체와 노태우퇴진을 위한 부산시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부산의 24개 대학(전문대포함) 2천여명의 학생들과 재야인사들은 하오6시쯤부터 서면ㆍ남포동ㆍ사상지역 등으로 진출,곳곳에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등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2백∼3백여명씩 떼를 지어 파출소2곳과 민자당 지구당사 1곳에 화염병을 던지는등 기습시위를 벌이다 자정쯤 해산했다. 【대구=김동진기자】 대구ㆍ경북지역 대학생 및 재야 15개단체회원 2천여명은 이날 하오3시 경북대에서 집회를 가진뒤 시내로 진출,하오5시30분쯤 북구 칠성시장에서 가두시위를 시작,하오11시까지 1백∼5백여명씩 몰려 다니며 시내 곳곳에서 민자당해체 『노정권퇴진』등을 외치며 가두시위를 했다. 시위대는 대구 중부경찰서에 화염병 1백여개를 던지고 비산파출소와동산파출소를 습격하는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광주=임정용기자】 전남대ㆍ조선대등 전대협소속 대학생 1천여명은 이날 하오5시 전남도청앞 광장에서 광주ㆍ전남 민주연합 주최로 열려던 「민자당 해체,노태우정권퇴진 촉구 국민결의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된뒤 광주시내 곳곳에서 심야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수원】 경기도내에서는 9일 수원ㆍ성남ㆍ안양ㆍ부천ㆍ안산등 5개지역에서 3천1백여명의 학생ㆍ근로자들이 하오7시부터 『민자당 창당규탄 국민궐기대회』를 가지려다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이날 자정까지 시내 곳곳에서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등 산발시위를 벌였다. 성남시내에서는 1천2백여명의 학생ㆍ근로자들이 이날 하오8시쯤 행사장인 성남시청에서 5백여m 떨어진 인하병원앞에 집결,1시간가량 경찰과 대치하다 흩어져 시내 곳곳에서 산발시위를 벌였고 수원에서도 시위대 5백여명이 집회장인 수원역 부근에 집결하다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흩어졌다. 또 안양지역의 시위대 6백여명은 벽산빌딩앞에서,안산지역 시위대 3백여명은 나성호텔앞에서,부천지역 시위대 5백여명은 부천 북부역광장 등지에서 각각 산발시위를 벌였다. ○전민련등 재야단체 명동서 약식대회 한편 「전민련」 「전노협」 등 전국 52개 재야ㆍ노동단체들로 이뤄진 「민자당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은 이날 하오6시쯤 서울 중구 명동성당 입구에서 약식으로 「민자당해체 노정권퇴진 국민궐기대회」를 강행했다. 이날 대회는 당초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명동성당으로 개최지를 바꿔 계훈제씨ㆍ이부영씨등 재야인사ㆍ학생 1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남짓 진행됐다.
  • 전교조위장 직대/이만호씨 집유

    서울형사지법 황찬현판사는 8일 지난해 7월 「교원노조」간부들의 명동성당 농성사건으로 구속기소된 「교원노조」위원장직무대행 이만호피고인(49ㆍ전 대구영남고교사)에게 징역1년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 석방했다.
  • 전국서 부활절 예배·미사/명동성당선 김수환추기경 집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신앙으로 찬양하는 예배와 미사가 15일 전국 교회와 성당에서 일제히 올려졌다.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이날 상오 5시30분부터 베풀어진 개신교계 연합예배에는 26개교단에서 20만성도가 초교파적으로 참가,부활의 뜻을 새롭게 되새겼다. 그리고 전국 성당에서는 이날 상오9시부터 부활절미사가 봉헌되었다. 이날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정오미사를 집전한 김수환추기경은 강론에서 『우리사회가 극심한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로 도덕의 붕괴와 정신적 파탄을 가져왔다』고 지적하고 『우리가 진정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이 되려면 가진 것을 구체적으로 나누어줄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개신교계의 여의도 부활절연합예배에 참석한 한국기독교회청년협의회 회원들은 「이웃 사랑,전세·월세 안올리기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면서 성도들의 서명을 받았다.
  • 전노협 1백50여명/내일까지 단식 농성/업무조사 중단요구

    「전국노동조합협의회」(위원장 직무대행 김영대)소속 노동자 1백50여명은 6일하오 4시30분쯤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삼성제약ㆍ대한광학노조등에 대한 업무조사를 중단해줄 것을 요구하며 8일까지 시한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 「합당 규탄대회」무산/경찰,원천봉쇄/도심서 가두시위

    「전민련」 등 재야운동권 단체가 주최한 「민자당 1당 독재분쇄 및 민중기본권 쟁취를 위한 국민대회」가 주말인 24일 하오 서울을 비롯,안양 성남 수원 군산 목포 등 10개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기도됐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모두 무산됐다. 이들 단체들은 25일에도 부산 등 6개 도시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며 경찰은 원천봉쇄할 방침이다. 이날 하오5시 대회가 열릴 예정이던 명동성당이 경찰에 의해 봉쇄되자 평민당의 문동환ㆍ이해찬의원과 「전노협」의 김영대부위원장ㆍ지선스님 등 50여명은 하오4시30분쯤 중구 정동 세실극장앞에 모여 30여분동안 약식집회를 가졌다. 이에앞서 「서총련」소속 대학생 1천5백여명은 이날 하오3시쯤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집회를 갖고 종로5가 쪽으로 나가려다 이를 막는 경찰에 화염병 7백여개를 던지며 1시간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인뒤 명동일대까지 진출,가두시위를 벌였다.
  •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과 기대/김문환 서울대교수ㆍ미학(세평)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불리는 현대사상의 한 맥을 주도한 칼 포퍼의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이라는 저서는 그가 히틀러에 의한 오스트리아 침공소식을 처음 접했던 1938년으로부터 1943년 사이에 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플라톤 등을 다루면서 『전쟁이나 그밖의 어떤 현대적인 사건들중 어느 것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그러한 사건들과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문제들 중에는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에 발생될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비판적 합리주의 공감 그러한 문제들의 예로 우리는 전체주의ㆍ권위주의ㆍ인종차별주의ㆍ부족주의 또는 그의 포괄적인 술어를 빌린다면 역사(결정)주의를 지적할 수 있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에 이어 마르크스를 비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에 따르자면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이 좀더 좋고 좀더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어보려는 끊임없는 위험스러운 투쟁을 벌이는 사이에 만들어진 실수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그의 이론에 대해서는 엄격한 합리적 비판이 요구된다는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 『그 이론이 지닌 놀라운 도덕적 호소력과 지적 매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쓰고 있다. 작은 지면에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의 집필동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것은 차마 함부로 비교될 것은 못되지만 이른바 민중예술에 대한 필자의 심정이 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대학생활은 1962년부터 시작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에서 제대한 1964년 여름부터이다. 이때 대학들은 이른바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운동,또는 6ㆍ3사태로 들끓었고 그 열풍이 지나간 2학기의 캠퍼스는 그야말로 마른 잎들만이 뒹구는 들녘과 같았다. 이 메마른 대지에 다시 싹을 틔우려는 여러가지 노력들중의 하나가 문화운동이었고 그 한가지 표현이 탈춤인 셈이었다. 향토의식 초혼굿이라는 행사가 그 대표적인 활동이었던 바,필자도 예컨대 연암 박지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에서 북곽선생이라는 역을 맡아 다가오는 추위와 맞서보기도 하였다. 1969년 서울신문의 서울문예평론 모집에 당선되었을 때,그 내용이 민속극을 다루는 것이 되었던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마지막 귀절에서 필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정을 통한 긍정의 세계관,갈등과 모순을 날카롭게 의식하면서도 그것을 멋스럽게눙쳐 몸으로 받아치는 실감,모든 잡다한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너ㆍ나의 대립을 초극한 우리만을 있게 해주는 우리 민속극의 활개짓을 「오늘ㆍ여기」에서 펼쳐주는 창작적 민속극의 출현이다』라고 쓴 바 있다. 25살 청년의 치기가 아직도 묻어나지만 이러한 주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학가를 풍미한 마당극의 출현을 마치 예감한 듯 싶기도 하다. 필자 스스로는 교회를 거점으로 삼은 창작적 민속극(판소리 포함)에 좀더 관심을 보이면서도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그 비슷한 작업들도 비교적 열심히 구경한 셈인데 어느날 그만 벽에 부딪치고 만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그것은 김지하의 「비어」를 읽었을 때였다. 대학시절의 인연도 작용하면서 그의 작품들에서 창작적 민속극의 가능성을 가장 확실하게 읽어내던 필자로서는 대연각 화재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고관」이라는 소품에서 비롯 그것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될 위인들의 죽음일지언정 그 죽음이 한낱 분풀이를 위한 우스개감으로만 다뤄질 때 섬뜩한 느낌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동기의 순수성은 인정 그러면서도 그후 「민중의 소리」가 그의 작품이라고 소문이 났을 때 필자는 아직 만일 그것이 그의 작품이라면 그가 시인이기를 포기했거나,아니면 그것이 전혀 그의 작품이 아니거나 둘중의 하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1976년 독일에 유학했을 때 그곳에서는 이 「민중의 소리」를 김지하의 작품으로 믿어 의심치 않아 이를 일어ㆍ영어ㆍ독어 등으로 번역하여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는 운동이 열성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필자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필자의 대답은 한결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단지 위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아니면 필자를 사이비 내지 사쿠라로 매도하기까지 한 일도 있다. 왜 나는 아무런 물증도 없이 그런 소리를 했을까? 그것은 결국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많은 청년들이 밖에서 「피ㆍ피ㆍ피」를 외치는 와중에 명동성당의 한 부속건물에서 이루어진 문학강연에서 김지하 시인이 「살림」론을 차분하게 강연했을 때 필자는 그에게서 여전히 이러한 믿음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는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아니라 정치ㆍ사회적인 죽임에 의해 희미해져가는 삶을 되살리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문학도 그러한 살림의 일환이다. 그러나 살림은 규모가 있어야 한다』 ○신명과 품위의 조화를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중예술을 주도하던 몇몇 일꾼들이 「현장」을 떠날 때,때마침 이른바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이는 개혁의 물결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그것 봐라』 하는 음성이 제법 크게 들려온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기」마저 그릇되었다고 질타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예술과 현실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지만 칼 포퍼의 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바로 그 핵심적인 인물들의 자성에 힘입어 우리가 공허하지 않으면서 신명과 품위가 조화된 본래적인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는 순진한 관객일 뿐이다.
  • 서민학련 3백여명 영등포서 격렬시위/명동성당선 박종철군 추모행사

    서울대ㆍ동국대 등 국가보안법의 폐지 등을 요구하는 「서민학련」소속 대학생 3백여명은 15일 하오5시10분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우신극장 앞길을 점거하고 화염병 2백여개를 던지며 1시간남짓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학생들이 각목 등을 휘두르며 신길동파출소쪽으로 나가자 최루탄을 쏘아 이를 막았다. 이날 시위로 대림동에서 영등포에 이르는 길이 1시간남짓 막혔다. 이에앞서 14일 하오2시쯤 서울 명동성당에서 박종철군의 부모 및 재야단체회원 학생 등 1백20여명이 박군의 3주기를 추모하는 모임을 갖고 전두환 전대통령의 구속과 현정권의 퇴진 등을 요구했다.
  • 임종석군 검찰 송치/“도피중 평민 김총재 비서한테 2백만원 받아”

    ◎변호인 면담때 밝혀 서울시경은 5일 국가보안법위반 등 혐의로 구속된 「전대협」의장 임종석군(23ㆍ한양대 무기재료학과4년)을 서울지검에 송치했다. 경찰수사결과 임군은 지난해 5월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이철규군 사인규명단식농성」때 2천만원을 모금,이 가운데 3백30만원은 수배된 「전대협」정책위원장 정은철군을 통해 임수경양에게 밀입북비용으로 주었으며 1천만원은 6월28일 한양대에서 열린 「평양축전참가 진군대회」경비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임군은 또 도피중이던 지난해 4월 평민당 김대중총재의 재야담당비서 제성민씨로부터 2백만원을 받아 썼다고 담당 변호인인 박용일변호사와의 면담때 털어놓았으나 경찰조사과정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했고 제씨도 이를 부인하고 있다. 임군은 도피중이던 지난해 4월부터 10월사이 「전농련」의장 윤정길씨(50),「전노련」의장 박순희씨(43),「전노협」 준비위원장 단병호씨(41),「전민련」지역대표 한상렬씨(37) 및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교원노조」간부 등과 달마다 한차례씩 접촉,노ㆍ농ㆍ학연대투쟁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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