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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盧대통령·朴대표 청와대회담] 盧 “양극화가 문제… 위기 아니다” 朴 “국민소득성장 제로… 감세를”

    -박 대표 2분기 국민소득 증가가 제로였다. 그런데 세금, 공과금 부담이 너무 많아졌다.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 정부가 씀씀이를 줄이고 세금을 감세해야 된다. 한나라당은 감세법안을 여러 가지로 냈다.7조원 정도 세수가 줄어든다.-노 대통령 어떤 것은 우리가 반대하고 있는 것이고, 이미 하고 있는 것도 있고, 몇 가지는 사실과 다르다. 어떤 것은 의견이 다르고 어떤 것은 같은 말 속에도 모순점이 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와의 회담인데 논쟁적인 것은 다른 기회를 만들어서 얘기했으면 좋겠다.-박 대표 경제난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위해 세금을 올리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민연금 문제도 크다. 또한 소주와 담뱃값 서민이 애용하는 것들 아닌가.-노 대통령 금년도의 세수 부족만 해도 4조원이다. 내년에도 세수부족이 예상되고 7조원을 다시 감세한다면 10조원의 예산을 줄여야 하는데 한나라당에서 깎을 10조 예산의 조목을 좀 정해 줬으면 좋겠다.-박 대표 차상위계층 등 보조를 위해 2조원의 예산을 올렸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그런데 공공기금이 21조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힌다. 정부 혁신에 힘썼으나 큰 정부로 가고 있다. 공무원 4만명, 장·차관 22명, 위원회가 12개나 늘었다. 우리 정부의 경쟁력이 무려 10단계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노 대통령 큰 정부는 우리의 공약이 아니었다. 할 일은 하는 정부, 효율적인 정부를 추구한다. 금년도에 정부 경상경비를 8조원 정도 줄였다. 조직은 늘어났지만 낭비요소는 줄였다. 시장의 활력을 존중하면서도 정부가 할 일은 해야 한다. 지금의 한국정부는 결코 큰 정부라 하기에는 무리다.-박 대표 참여정부 들어 `큰 정부´로 가면서 위원회가 양산돼서 정부의 독자성이 저해되고 있다.-노 대통령 드물게 생긴 오류이지 위원회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한나라당에서 위기라는 말을 하고, 경제 위기, 총체적 위기, 경제 파탄, 민생 도탄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너무 심한 표현이라고 본다. 양극화가 심해진 것은 참여정부 때문은 아니다. 한나라당은 진정 지금이 경제 위기, 파탄 상황이라고 보는가.-박 대표 잠재 성장률이 이런 식으로 떨어지면 장기 불황으로 가는 것 아니냐.-노 대통령 지표로 얘기했으면 좋겠다.정리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4) 한국 차의 전래와 역사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4) 한국 차의 전래와 역사

    지난 초여름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일지암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마침 해남에서 농민운동을 하다 함께 차를 재배하고 제다를 하는 남천다회 식구들과 차 제다를 마친 후였다. 차를 가꾸고 차를 제다하는 차인들에게는 곡우 전부터 입하까지가 제일 바쁜 철이다. 차인들에게 차를 제다한 후의 충만함은 그 어떤 풍족함에도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기쁨이다. 평소 존경하는 어른스님들, 선방의 수좌들,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한통씩 보내며 푸릇한 찻물이 든 뭉툭한 손을 바라보면 그저 한없는 우주를 담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즐거움과 충만함을 ‘확’깨버리는 전화였다. 전화의 주인공은 전남 지리산 화계에서 차를 재배하며 차를 만드는 젊은 차인이었다.“스님! 스님께 차를 맛있게 해서 보냅니다.”“그래 고맙다. 무슨 차를 했니?”“구증구포로 해서 만든 차입니다.” 순간 그 갸륵한 정성과 고마움보다는 안타까움이 스쳐갔다.“찐차를 했니, 아니면 덖음차를 했니?”“예 스님 물론 덖음차로 했습니다.”“구증구포를 했다면서 어떻게 한번도 찌지 않고 차를 제다할 수 있니?” 그 젊은 차인과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자생설·전래설·해양설 등 다양 ‘구증구포’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일이다. 매달 발간되는 차(茶)잡지에 이런 글이 실렸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제다법은 구증구포(九烝九曝)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전통적인 제다를 복원하고 알리기 위해 섬진강변에서 제다학교를 만들어 우리 전통차 보급에 힘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외진 곳에서 우리 차문화 보급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높이 살 일이다. 그 글대로 하자면 좋은 일이며, 일견 매우 설득력 있는 말로 들린다.‘구증구포’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떠도는 것은 차를 직접 제다하는 차인들에게는 어제 오늘 일처럼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구증구포’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풀이해 본다면 ‘아홉 번을 찌고 아홉 번을 말린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구증구포’로 만든 차는 우리 전통차인 덖음차가 아닐 뿐만 아니라 ‘찐차‘도 아닌 실체가 없는 제다(製茶)의 또 다른 ‘유령’인 것이다. 실제로 차를 제다해본 사람들은 잘 안다. 아홉 번 찌고 아홉 번을 말린다면 차 잎은 그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찢어지고 발겨질 수밖에 없다. 맛과 향도 마찬가지로 현저하게 감소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구증구포’에 의한 제다법으로 만든 차는 극소수로 존재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시장’에 정식으로 출품되어 우리의 삶 속에서 오랫동안 내려오는 전통적인 제다법은 아닌 것이다.‘구증구포’라는 말은 주역에서 최고의 양극수인 ‘九’를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이며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하는 한약재를 달일 때나 필요한 것이다. 우리 차의 존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자생설’과 ‘전래설’ 그리고 ‘해양설’이 그것이다. 그러나 생태학적이고 역사학적인 측면에서 우리 차 이야기를 다루기 전에 먼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일은 문화는 다양한 교류에 의해 ‘전통’과 ‘변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문화학자가 21세기 우리 문화코드의 사이클은 이제 ‘6개월’이라고 말할 정도로 짧아졌다. 광고 패션 노래 등 다양한 문화들이 뒤섞이며 빠르게 대중들의 기호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화적 현상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신라 고려시대에도 문화적 ‘전이(轉移)´와 그에 따른 변종의 양상은 매우 빨랐을 것으로 보인다. 차도 마찬가지다. 가야 신라 고려시대에도 지배엘리트들은 우리차를 당시 문화중심국이었던 중국에 보내기도 하고 역수입하기도 했다. 정확하게 역사적 고증을 할 수 없는 우리차에 대한 ‘자생설’과 ‘전래설’역시 그런 점에서 파악돼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자생설의 핵심은 우리 고대국가인 가야국의 가야차에 대한 것이다. 우리차의 독자성과 관련이 있는 가야차의 존재는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언급되어 있다. 이능화는 “김해의 백월산에 죽로차가 있었다. 가야국의 수로왕비인 허씨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씨를 심어서 된 것이다.”고 적고 있다. 또 다른 기록은 ‘삼국유사´에 보여진다.‘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서는 ‘김수로왕이 인도를 건너 가야국까지 오며 피곤해진 허왕후의 측근들에게 난액(蘭液:향기로운 음료, 즉 차)을 주어 쉬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 ‘난액’을 차 연구가들은 바로 ‘차’라고 하는 것이다. 가야국 ‘죽로차’의 존재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신라에 차씨를 가져와 심은 김대렴의 전래설보다 적게는 400년 많게는 600년 전으로 우리 차 역사를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 된다. 가야차의 존재는 우리나라에도 독자적인 차문화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고 이어 고구려 백제 신라에도 중국의 차문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차문화가 나름대로 위치를 점하며 존재했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 현재 몇몇 차인들에 의해 가야차랄 수 있는 ‘장군차’‘황차’ 등의 실체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것은 차인으로서 매우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삼국사기의 전래설에 따르면 ‘지난 12월 당나라 사신으로 간 김대렴이 차씨를 가져오니 왕은 지리산에 심게 했다. 차는 이미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으나 이때에 이르러 성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명차 ‘구화산차´ 신라서 가져가 우리차의 역사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의 명차라고 불리는 ‘구화산차’에 대한 것이다. 당시 신라에서는 많은 엘리트 스님들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신라왕자 출신인 김교각(704~803:지장) 스님이다. 김지장 스님은 신라를 떠날 때 신라의 차를 가져갔다. 당나라에서 공부를 끝낸 김지장 스님은 신라로 귀국하지 않고 중국의 구화산에서 많은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했다. 그리고 그곳 구화산에 신라에서 가져간 차를 심어 보급했다. 중국의 팽정구가 쓴 개옹다사(介翁茶史:1703년)에는 “김지장이 신라차를 구화산에 심어 운경차(雲梗茶)를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역사 시간대별로 따진다면 김지장 스님이 중국에 신라차를 전한 것은 8세기이고 김대렴이 신라에 차를 가져와 심은 것은 9세기가 된다는 점에서 약 100년이란 시간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차의 역사는 다양한 편차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해양설’도 많은 타당성을 가진다. 해상왕 장보고는 그 당시 가장 귀중한 물품중 하나였던 차 무역을 전개했을 것으로 본다.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 중 하나지만 중국의 차와 우리차에 대한 교환, 그리고 인근 대흥사 스님들과 교류를 통해 차를 적극적으로 보급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좀더 확실한 것은 ‘환경과 지정학적인 요건’에서 빚어질 수 있는 자생설이 가장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차나무가 생장할 수 있는 최적지인,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화강암지대라는 지정학적 특징과 차나무가 지구상에 생긴 이래 새나 배, 바다의 조류, 지형의 변화 등으로 ‘차씨’가 계속 옮겨져 번식했으므로 백제와 가야지방에는 우리가 기록할 수 있는 역사이전부터 차나무가 이미 ‘자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좀더 주목할 것은 차나무의 존재에 대한 유무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차를 ‘약용’이든 ‘음료’든 직접 제다해서 마셨다는 점이다. 그런 시각에서 우리차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때 우리차의 기원과 그 관련된 논쟁들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이다. 가야를 비롯한 우리고대국가에서는 차가 약용보다는 떡이나 술과 같이 귀족계급의 기호음료로 널리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가야의 종묘제사에서는 해마다 세시 때가 되면 술과 단술을 빚고 떡 밥 차 과일등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점에서 고대의 음다풍속은 중국과 다르게 일찍이 ‘기호음료’로서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고대국가 중 가장 선진적인 문화를 보유했던 고구려에서도 차는 기호음료로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애용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고구려에서는 누구나 만들고 마실 수 있는 ‘단차(團茶)´가 유행했다. 그같은 사실은 일본의 유명한 사학자 아오키 박사가 고구려의 옛 무덤을 발굴하면서 3개의 단차를 발견해 우리차계에 많은 충격을 준 것에서 증명되고 있다.‘구다국(句茶國)´이란 차 관련 지명이 있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차 지명 중 가장 오래된 지명이랄 수 있는 ‘구다국’은 차가 당시 일반민중의 생활양식과 깊은 연관을 갖고 일상화되어 있음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야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백제도 그 문화의 섬세함과 우수성, 지형적 특성을 볼 때 음다풍속이 매우 발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그렇지만 차를 재배할 수 있는 대부분의 땅이 바로 백제였고 자연스럽게 자생차가 그 생명의 뿌리를 깊숙이 박고 있으면서 활발한 차 문화를 꽃피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백제 행기 스님 일본에 전래한 인물로 이같은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일본 ‘동대사요록´에 나오는 행기 스님의 존재다. 행기 스님이 일본에 차를 전래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백제의 지도층과 스님들이 7세기 이전부터 차를 마셨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구산선문을 통한 남종선과 차의 유입을 통해 신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포용을 시작한다. 삼국 중 가장 후진국이었던 신라는 당시 최고의 문화로 꼽혔던 차문화를 보급 확산시키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선덕여왕이 지리산이라는 차의 최적지에 차나무를 생산 보급할 것을 명령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신라시대에는 왕, 승려, 귀족층뿐만 아니라 일반백성까지 차를 마셨다는 다양한 기록이 보이고 있다. 차를 전문적으로 만들어 바치던 마을인 ‘다소마을(茶所村)´, 귀족들이 차를 마시며 즐겼던 강릉의 한송정, 휴대용 다구(茶具)를 지고 차공양을 가다 경덕왕과 만난 충담 스님의 이야기 등을 통해서 당시 차 문화가 얼마나 일반화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원효 스님의 차방(茶房)이었던 ‘원효방’의 존재는 그 사실을 잘 입증하고 있다. 이규보는 ‘남행월일기´에서 전북 부안군 상서면에 있는 2.4m크기의 ‘원효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2.4m의 공간을 반으로 갈라 내실에는 불상과 원효 스님의 초상화, 외실에는 병하나, 찻잔과 불경을 놓는 책상만 존재하는 매우 작은 차방이다. 이같은 사실로 미루어 신라시대에도 다채로운 형태의 다방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차의 전성기는 이어진다. 당시 차는 치국(治國)의 도구로 사용됐다. 망국의 한을 달래고 있는 신라귀족들과 승려들에게 통치자의 ‘격려금’으로 차를 하사했다. 또한 차를 준비하고 베푸는 의례를 담당하는 관청인 다방과 다원이 존재했다. 다방은 다방시랑(정3품)에서부터 다방별감까지 있었고 직급에 따라 모자, 옷, 허리띠등이 달랐다. 각 지역의 중심부에 존재하며 아름다운 정원과 정자를 소유해 차를 마실 수 있었던 다원은 경북다방원, 경남다견원, 황해다정원, 충남·경북다정원 등이 있었다. 고려 때는 또 궁중 밖에서 왕족에게 차를 올리거나 준비하는 일을 위해 다구와 그에 필요한 짐을 담당했던 다군사(茶軍士)가 존재했고 차를 통해 부를 축적했던 차 상인까지 존재했다. 뿐만 아니라 명전(茗錢) 즉 투다(鬪茶:차의 맛을 겨루는 것)를 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행다(行茶)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새로운 왕조의 차 문화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소박한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수없이 밀려드는 전란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차문화를 주도했던 사찰의 급격한 몰락은 조선시대 차산지의 폐쇄를 불러왔고 차문화를 소박한 형태로 변형시킨다. 과중한 차세와 차 공납의 심화는 어려운 백성들을 수탈하는 도구로 이용됐다. ●稅茶 등 백성들 수탈 도구로 이용도 세차(稅茶)를 내기 위해 15세기에는 차 한홉과 쌀 한말,17세기에는 차 한말과 무명 30필을 바꾸었을 정도로 차의 폐해는 심각해졌다. 김종직은 그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관청용 차밭을 일구고 차 공납을 자체적으로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음다풍속이 존재했다. 궁궐이나 사신의 숙소인 태평관에서 차를 주관하는 다방, 관청에서 제대로된 판결이나 회의를 하기 위한 다시(茶時:차 마시는 시간)가 있었다. 그중 ‘야다시’는 매우 특이한 경우이기도 하다. 야다시(夜茶時)는 밤중에 관리들이 다시를 갖는 것으로 파렴치한 치부나 도덕적 패륜을 저지른 관리들을 골라 그 죄상을 흰 널빤지에 써서 그 집 문위에 걸고 가시나무로 문을 봉한 뒤 서명을 하고 돌아갔다. 야다시를 받게 된 사람은 그집에 평생 유폐되어 다시는 세상출입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전 안방극장에 등장했던 ‘다모(茶母)´는 조선시대 각 관청에서 차심부름을 하기 위해 서민계층에서 선발된 격이 낮은 여성을 말했다. 그러나 중엽 이후 포도청에서 선발한 여자 비밀형사로 변질되기도 했다. 아직도 한국 차 문화사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거의 백가쟁명의 시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차는 군자와 같아서 품성에 삿됨이 없다.”는 말이 있다. 차가 역사속에서 다양한 편린에도 불구하고 당시대의 정신적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해온 고고한 정신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어둡고 후미진 곳에도 우리생은 늘 피어나듯 하얀 황금의 꽃술을 머금은 차꽃도 찬바람과 눈을 맞으며 여기저기 가없이 피어난다. 수없는 역사의 핍박과 수탈 속에서도 느껴지는 차의 힘이다. 우리가 오늘 이 시대에 배워야 할 차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일지암 암주)
  • 남북차관급회담 득과 실

    19일 타결된 남북 차관급회담에서 남측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평양행과 장관급 회담을, 북측은 비료 20만t을 각각 얻어냈다.10개월 만에 남북이 당국간 대화를 재개하면서 신뢰회복의 물꼬를 텄다는 점이 주요 성과라는 게 대다수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양측은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회담 내내 ‘동상이몽’을 절감해야 했다. 회담의 ‘격’을 둘러싼 마찰음도 피할 수 없었다. 남과 북이 각각 차관급과 실무자급으로 해석한 결과는 ‘명분’과 ‘실리’라는 확연히 엇갈린 명암을 낳았다. 장관급 회담 시기를 놓고 남측은 6·15 이전을, 북측은 6·15 이후를 고집했다. 남측은 6·15 이전에 회담을 열어야 같은 달 각각 예정된 한·미정상회담과 한·일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를 돌파할 수 있다는 절박감이 작용했다. 반면 북한은 6·15 5주년 행사를 대규모 축제로 치르는 과정에서 남한측의 자세를 판단하겠다는 일종의 탐색전을 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일정은 잡혔고, 그에 따라 재개되는 장관급 회담은 책임 있는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회의체라는 점에서 장성급·경추위 회담 재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6·15공동선언 5주년행사에 장관급 대표단이 참석키로 한 합의는 한 차원 높은 남북관계를 위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 중심의 행사로 치러져 왔지만 정부 당국이 결합하면서 대규모 축제의 장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북측이 민간단체의 독자성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그 의미를 한껏 깎아내릴 경우 효과는 반감될 소지가 있다. 수석대표를 맡았던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합의 직후 “이번 회담의 최대 쟁점 중 하나가 북핵문제였다.”라고 실토했다.“합의문에 (우리가 전달하고 촉구한) 모든 내용을 담기는 사실상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북측은 이번 회담을 핵 문제를 다루기에는 격이 맞지 않는 ‘실무회담’이라고 규정하면서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처음부터 논의 무대에 올릴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다. 남측은 ‘평화적 해결과 6자회담 조기복귀’입장을 북측에 거듭 밝혔다는 점에 만족해야만 했다. 비료 문제의 경우 당초 북측은 50만t 지원을 촉구했지만, 예년의 봄철 지원 수준인 20만t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나머지 물량은 장관급 회담에서 논의하기로 미뤄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시기 및 방법과 관련해서는 모내기철이 시작된 북측의 절박한 사정을 감안해 불과 이틀 뒤인 21일 경의선 도로를 통해 첫 수송을 시작하고 해로를 통해서는 오는 25일 첫 선박을 보내기로 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열린세상] 도덕적 가치가 우선한 美대선/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막스 베버는 “정치인이 깨끗한 영혼을 지니고 살아가기는 힘들다.”고 갈파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한때 정치인을 힐난하는 난센스 퀴즈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2004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현장에서 지켜보며 느낀 소감은, 정치인이 직업으로서 괜찮은 것이라는 점이었다. 정치인이 갖춘 자격과 능력보다, 그리고 그들이 투자한 노력보다 훨씬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공식적으로 케리의 도전이 좌절되고, 부시의 집권 2기가 확정되었다. 한국에서의 실망과 환영 못지않게, 미국에서의 절망과 환호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만큼 중요한 선택의 현장이었고, 치열한 결전의 무대였다.1960년 63%의 투표율 이래 가장 높은 투표참여율을 기록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가장 중시한 선택의 기준은 도덕적 가치와 경제, 그리고 테러리즘이었다. 유권자의 22%가 도덕적 가치,20%가 경제,19%가 테러리즘을 가장 중요한 투표의 기준이라 지적하였다. 경제문제가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전통적 쟁점이었다고 한다면, 도덕적 가치와 테러리즘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미국 유권자들이 이야기하는 도덕적 가치란 낙태, 동성간 결혼, 줄기세포 실험, 가족에 대한 인식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공화당 부시 후보는 낙태와 동성간 결혼, 줄기세포 실험에 반대하고 전통적인 가족의 유지를 중시하는 입장이었다.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유권자의 79%가 부시에 표를 던졌고,18%가 케리를 지지했다. 아직, 미국사회는 전통적 개념의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것으로 확증된 셈이다. 테러리즘과 전쟁 역시 중요 논점이었다. 어찌 보면, 전쟁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중단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투표적 성격을 갖는 대선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부시는 ‘강력한 리더’를 자임하며, 테러에 대한 강경 대처와 국민의 안전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반면 민주당 케리 후보는 이라크 전쟁을 부시 대통령의 실수로 시작된 것으로 몰아붙였다. 전쟁의 명분으로 제시된 대량 살상무기가 이라크에서 발견되지 않았고, 국제적 연대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 이라크 전쟁에 동의하는 유권자가 49%, 동의하지 않는 유권자는 47%였다. 근소한 차이지만 전쟁에 대해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유권자가 다수이고, 전쟁이 진행 중인 현실 속에서 전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은 무리였다. 국가안보라는 문제에 부딪쳐서는 득볼 것이 없는 민주당의 태생적 딜레마를 여지없이 보여준 선거였다. 11월2일 선거를 마치고도 또다시 혼란의 가능성이 우려되었던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미국의 선거제도에 기인한다. 미국의 대선은 일반국민이 하는 투표(popular vote)로 선거인단이 선출되고, 이들이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단 선거(electoral vote)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일반 국민이 하는 투표에서의 지지율과 선거인단이 하는 투표에서의 지지율이 달라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각 주의 정치적 자율성과 독자성을 극대화시키고자 과반을 점유한 후보측이 주의 선거인단 전체를 차지하는 제도를 택하고, 일반 대중의 민도를 신뢰하지 않았던 시대에 간선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초래되는 혼란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투표제도와 장비가 각 주마다 크게 달라 분권적으로 다양하게 투개표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투표방식과 개표기기에 따라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지지율이 팽팽할 경우 당락을 뒤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3일 오후 2시(한국시간 4일 새벽 4시) 패배를 인정하는 케리의 연설로 혼란에 대한 우려는 거두어졌다. 케리의 연설은 감동적이었다. 원고를 보지 않고 자신의 비전과 희망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갈라진 유권자를 통합해야 하는 과제가 부시 대통령에게 남겨졌다. 일반 유권자 투표와 선거인단 투표 모두에서 승리하고, 집권 2기를 맞는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유심히 살펴볼 차례이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 [이라크 ‘종교전쟁’ 비화되나]기독교·이슬람교 타협없는 대립 심화

    이라크 전쟁이 끝난 지 1년이 훨씬 지났지만 이라크에서는 연일 테러와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최근에는 이라크 무장 저항세력들이 미군과 외국인뿐 아니라 기독교 교회와 단체들로 공격 대상을 확대하면서 종교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이같은 우려 속에 테러 위협을 피해 인근 시리아와 요르단 등지로 탈출하는 이라크 내 기독교인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종교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슬람과 비이슬람,특히 기독교간의 갈등과 대립을 일찍부터 점쳤었다.이른바 ‘종교전쟁’이다.그러면 과연 이라크는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종교 전쟁’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것일까.선문대 이원삼(46·이슬람사상) 교수와 강남대 이찬수(42·비교종교학) 교수의 대담을 통해 이라크 종교전 상황을 점검하고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과 대책 등을 들어본다. ■ 이원삼·이찬수 교수-전문가 대담- ●이원삼 교수 현 상황을 ‘종교전쟁’으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전쟁의 속성상 종교보다는 정치·경제적 요인이 더 크고 여전히 그같은 성격이 짙은 게 사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개되는 양상을 볼 때 종교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찬수 교수 종교가 가진 보편성을 도외시한 채 특정 이념과 교리를 강조한 종교행위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기독교뿐만 아니라 이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현재의 이라크를 포함한 이슬람권의 움직임을 볼 때 명쾌하게 ‘종교전쟁’으로 선을 그을 수 없지만 왜곡된 종교관으로 인한 갈등이 심각한 대립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다.종교전쟁의 위험성이 짙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원삼 교수 흔히 이라크 전쟁을 이슬람과 서구권의 충돌에 국한해 보고 있지만 문제는 비단 이슬람-서구세계만의 대립에 머물지 않는다.이슬람권 내부의 복잡한 관계와 미국을 비롯한 서구세계의 이해관계를 함께 연결하면 현재의 이라크 사태를 결코 단순하게 볼 수 없고 파병과 관련해 한국의 입장에서도 심각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찬수 교수 역사적으로 종교간 충돌과 갈등을 들여다보면 사소한 계기가 엄청난 살육을 불러온 경우가 많다.중세 십자군 전쟁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단순한 성지 순례를 둘러싼 탈환 목적에서 시작됐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낳았다.문제는 종교가 이념이나 외적인 표현 양식이 아니라 그 문화권이 지닌 독자성과 특성을 이해하고 실현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때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서구의 기독교가 이슬람 문화권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전쟁으로까지 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이원삼 교수 지구상의 모든 문화권에 각자 특수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이라크만 하더라도 각 부족마다 관습과 언어 종교적 이념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너무 그들을 모르고 있다.그 특수성을 외면한 채 무력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불러일으키려 한다면 전쟁을 피할 수 없다.그런 점에서 한국의 이슬람권 선교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한국기독교계의 예루살렘 평화의 행진은 비록 무사히 끝나기는 했지만 문화우월주의에 치우친 파행적 선교 측면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찬수 교수 이제 기존의 종교관은 세계 평화의 측면에서 볼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케케묵은 사고의 패턴으로 종교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말이다.종교에서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사고의 혁명이 절실하다.지금 행해지고 있는 한국 기독교계의 해외선교도 반드시 이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원삼 교수 현재 한국 기독교계가 파견하고 있는 해외 선교사의 70%가 이슬람권에 몰리고 있다.선교에 대한 열정은 좋지만 현지 사정을 도외시한 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식의 선교는 거꾸로 적을 만들 뿐이다.선교다운 선교도 시작하지 못한 채 적대감만 낳는다면 선교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찬수 교수 거듭 말하지만 이슬람권의 종교적 특수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현재 이라크에서 준동하고 있는 원리주의자들이 과격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거꾸로 기독교 입장에서 이슬람을 이해하고 포용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이슬람은 쿠란에서도 타 종교를 배척하지 말라는 원리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슬람과 기독교가 상호이해를 통해 폭력을 막고 줄일 방법은 충분하다고 본다. ●이원삼 교수 문제는 전쟁의 명분이 종교적으로 가려지고 있다는 점이다.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이 전쟁에서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분석하고 있다.옛소련 영향권에 있던 반미성향의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과 아랍국들이 친미로 돌아섰고,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점이 바로 큰 이유다.이라크와 이라크 바깥의 아랍국들이 속속 뭉치는 과정에서 이슬람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음은 바로 종교적인 선명성을 통해 응집력을 강화하려는 속셈이다. ●이찬수 교수 이슬람 국가들이 종교를 표방하면서 전쟁을 선언한다면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서로 이해하면서 어떻게 서로를 죽일 수 있는가. ●이원삼 교수 문제는 이슬람공동체(움마),혹은 이슬람국가 건설을 위한 원리주의 세력들이 종교전쟁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현재 이라크의 상황은 광복 후 좌우이념 대립의 혼란에 빠졌던 한국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각 세력들이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상황이다.그중에서도 알카에다나 알자르카위는 632∼661년 정통 칼리프 시대로 복귀해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자는 원리주의를 강하게 내걸고 있다.많은 아랍국 이슬람 신도들이 이같은 이슬람 움마 건설에 동조해 이라크로 결집하고 있는 상황이 종교전쟁을 예고케 하는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이찬수 교수 우려대로 상황이 종교전쟁으로 비화할 경우 한국의 입장에서도 피해가 없을 수 없다.지금부터라도 이슬람 세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종교전쟁의 참상을 막고 서구 세계의 제국주의적 팽창 드라이브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유력한 집단이 바로 종교일 수 있다.국내에서도 일반인들이 이슬람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아랍문화센터 같은 공간을 마련하는 데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원삼 교수 이라크 대사관 직원만 보더라도 미국 2000명,일본 200명에 비해 한국은 턱없이 적은 8명에 불과하다.현지의 정보 파악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김선일씨의 희생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외교채널 이전에 현지의 종교 지도자나 족장 등 대표들과의 폭넓은 유대관계를 확보해 나간다면 사고나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정리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히딩크 넥타이’ 원심파기

    대법원 1부(주심 이규홍 대법관)는 26일 산업디자인 회사 누브티스 이경순 대표가 고안한 태극 및 팔괘 문양의 ‘히딩크 넥타이’를 무단 제작케 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한국관광공사와 장모 전 과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저작권법상 넥타이 도안에 넥타이와 구분한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 저작권 보호대상인 응용미술 저작물에 해당한다.”면서 “그러나 원심은 독자성 인정 여부에 대한 심리를 다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선물할 태극과 팔괘 문양이 들어간 넥타이를 제작했다.이 넥타이는 이후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를 때까지 중요 경기마다 히딩크 감독이 착용,‘행운의 넥타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히트상품으로 선정됐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이총리 “대통령 모험적 訪北 부적절”

    이해찬 국무총리는 12일 “대통령이 방북을 모험적으로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국회 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을 건의할 의사가 있느냐는 열린우리당 양형일 의원 질문에 대해 “2차 남북정상회담은 북핵 문제가 해결의 가닥을 잡거나 남북관계에 새로운 진전을 가져올 상황에서 추진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이 총리는 “만남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면서 “남북 정상회담 자체의 상징적 의미도 있으나 회담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의 역진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행정수도 이전과 통일 뒤 수도의 관계에 대해 “정부는 남북한이 상호 독자성을 유지하는 국가연합 단계를 3단계 통일방안의 2단계로 상정하고 있다.”며 “(통일수도는)3단계로 가는 과정에 통일헌법이 제정된 뒤 통일국회에서 다룰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영길 국방부장관은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 보유와 관련한 미 CIA의 정보가 잘못된 것이라는 미 상원 보고서와 관련,“현 단계에서 그것이 (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요인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열린세상] 미국제국의 출현/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최근 미국의 학술지,신문,잡지들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국(帝國)으로 볼 것인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미국인들은 제국이라는 표현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그러나 국력의 지표를 살펴보면 미국이 로마제국 이후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테러전쟁 비용을 포함하면 미국의 국방비는 전세계 국방비의 50%에 육박하고 미국의 국내총생산은 세계 경제의 30%를 넘어섰다. 미국 제국의 등장은 냉전 붕괴의 직접적 산물이다.이미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각자의 영향권 내에서 제국적 질서를 창출했다.이들의 생사를 건 투쟁은 동의와 협력에 기초한 다자주의적 제국 질서를 창출하고 운영한 미국의 승리로 돌아갔다.이 시점에서 역사를 되돌아보면 20세기는 미국으로 힘이 집중화되는 과정이었고 미국 제국으로의 전환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냉전 시기 미국의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9%였지만 지금은 3.2%에 불과하다.이 수치를 보면 미국 제국이 과도한 국방비 부담 때문에 조만간 쇠퇴할 것 같지는 않다.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한국은 미국의 제국적 질서 하에서 국익을 정의하고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따라서 중요한 것은 강자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어떤 종류의 제국인지를 냉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이러한 분석에 기초하여 우리 대외정책의 전략적 비전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노무현정부의 외교·안보 전략가들이 이런 논의를 주도해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대외정책 결정이 지나치게 국내정치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외교정책의 독자성 확보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내정치적 변수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그만큼 뚜렷한 국가전략적 비전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려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미국은 식민지 없는 비공식 제국이다.14개의 자치령을 갖고 있지만 전세계 영토의 4분의1을 직접 통치했던 영국식의 공식적 제국과는 다르다.미국 제국은 정보화시대의 제국이기 때문에 영토 점령과 직접 지배를 필요로 했던 산업시대의 제국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또한 미국은 민주주의 제국이라는 점에서 황제가 지배한 여타의 제국들과 달리 의회와 여론에 의해 대외정책이 많은 영향을 받는다. 미국 제국의 출현은 우리에게는 기회인 동시에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미국은 이미 더 이상 단순히 국가안보가 아니라 ‘제국안보’를 추구하고 있다.냉전 시기 미국의 봉쇄전략에 동참했던 것처럼 한국이 미국의 제국안보의 전략적 비전을 공유하고 추구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우리의 국익 추구에 매우 유리하다.이라크파병,북핵 문제,해외주둔 미군재배치(GPR)와 주한미군 재조정,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 모든 문제들이 제국안보와 밀접히 연관된 사안들이다.제국의 확실한 동맹국에만 외국 자본이 들어간다는 것은 대영제국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가 제국의 동맹국으로서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린다면 당연히 그 질서 유지를 위한 군사적,재정적 부담을 떠맡지 않으면 안 된다.무조건 무임승차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이러한 부담을 기꺼이 지는 것이 국익에 부합된다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구한말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삶은 제국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주변 4강 모두가 제국이었고 그들 중 일부는 조폭적 제국이었다.그 중에서도 민주적 미국 제국의 영향 하에서 한국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다.미국 중심의 제국적 질서가 우리의 국익에 부합한다면 우리는 제국안보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미국 제국 질서 밖에서 국익을 추구할 수 있는 대안적 전략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역사적으로 제국은 질서와 풍요를 의미했고 제국 밖은 무질서와 빈곤을 겪었다는 사실을 노 대통령과 그의 전략가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
  • 식민사관 처음 비판한 사학계 거두

    2일 별세한 이기백 학술원 회원은 지난 89년 타계한 이병도 박사의 수제자로,해방후 한국사학계 1세대 중에서도 선두로 꼽힌다.지난달 19일 세상을 떠난 고병익 전 서울대 총장과 전해종 전 서강대 교수 등이 동기생이다.숱한 후학들을 길러냈으면서도 파벌 만들기를 극구 꺼려,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이시대의 마지막 선비’로 불렸다. 평북 정주에서 후일 풀무농원을 설립한 농민운동가 이찬갑(1904∼1974)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3·1 만세운동 33인 대표의 한 사람인 남강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에 입학해 1년 만에 졸업했다.이화여대교수를 거쳐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양사의 전해종,서양사의 길현모·차하순 등과 함께 ‘서강사학’의 전성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고인은 신라와 고려사 연구에 몰두,이 분야에서 ‘고려병제사 연구’‘신라정치사회사 연구’‘신라사상사 연구’‘고려귀족사회의 형성’같은 굵직한 저작을 펴냈다.신라 권력구조가 왕과 상대등,집사부 시중의 3각관계에 기반한다는 학설을 제시하면서 신라를 귀족연합-전제왕권-귀족연립시대로 구분한 장본인으로,이후 이 학설을 많은 후학들이 발전시켰다.또 고려시대 병제가 병농일치에 입각한 당나라 부병제를 모방했다는 기존학설을 뒤엎고 전문적 군인이 핵심을 이루는 군반제였다는 새학설을 제시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이 학설은 현재 고려대 민현구,서강대 홍승기,경희대 조인성 교수 등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한국실증사학을 대표하는 고인의 업적 가운데 우리 학계가 가장 확고하게 인정하는 부분은 인간중심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대구분법을 제시,한국사의 독자성을 살려냈다는 점이다. 대표적 저작인 ‘한국사신론’은 일제가 세워놓은 ‘식민주의 사관’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을 처음으로 시도한 역저로,이로 인해 그는 한국사학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현재 30∼50대는 대부분 이 한국사신론을 교재로 삼아 역사공부를 한 세대다.영어와 러시아어를 비롯한 여러 외국어판으로 번역돼 한국사를 국제사회에 소개하는 대표적인 책이기도 하다. 이밖에도‘민족과 역사’‘한국사학의방향’‘신라사상사 연구’‘한국사상의 재구성’‘한국고대정치사회사 연구’‘한국고대사론’‘한국사를 보는 눈’ ‘한국전통문화론’같은 역사전문 논문집 외에 수상집 ‘연사수록(硏史隨錄)’을 남겼다.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학술원 저작상,인촌상,국민훈장 모란장,위암 장지연상,용재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이경형칼럼] ‘수석 당원’의 지도력

    집권 2기에 들어간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겉으로만 보면 이번 개각 파행은 고건 국무총리의 각료 제청 거부로 대통령이 구상한 장관 경질 계획이 한달여 뒤로 미뤄진 ‘개각 불발’현상에 불과하다.그러나 한꺼풀 더 들여다 보면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관계 정립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개재돼 있다. 이번 사안은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친정(親政)체제로 끌고 갈 것인가,아니면 일정한 거리를 두어 당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당정분리방식으로 운영해 나가느냐의 기본 방향과 관련된 문제다.입으로는 당정 분리를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당의 친정 체제를 도모하는 이중적인 태도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와 여당 관계에 관해 정책 협의는 긴밀히 하되 집권당은 당대로 독자성을 갖고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면서도 앞으로 공천이나 당직 인사에는 일절 간여하지 않을 것임을 밝혀 집권당의 홀로서기를 북돋워주었다.대통령의 당내 지위도 과거처럼 ‘총재’가 아니라 ‘수석 당원’으로 입당했다.노 대통령이 매월 납부할 200만원의 당비 수준에 비추어 보면,의전적 지위는 당의장이나 원내 대표급에 해당된다. 노 대통령의 당정분리 원칙 천명에도 불구하고,대권예비주자들을 조기 관리하는 등 당을 친정체제로 끌고 가려한 이유는 무엇일까.십중팔구 대통령 직계나 참모들이 국정을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로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당을 초기에 장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진언했고,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다.당내 예비주자들을 방임하면 파벌이 조기에 형성되는 것은 물론 과열 경쟁이 불 보듯하므로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는 것이 옳다고 본 것이다. 그 방안의 하나로 정동영 전 당의장,김근태 전 원내 대표 등을 내각의 일원으로 편입시켜 ‘행정 수업’을 하도록 하고 동시에 그들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왕 당정분리 원칙을 선언한 터에 굳이 지금부터 ‘예비주자군’을 조기 관리할 필요성이 과연 절실했는지 의문이다.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지금 노 대통령의 국정 추진력은 매우 막강해졌다.당내 어느 누구도 감히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 위치에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럴 필요성도 없을 것이다.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통치 양태에 익숙해온 대통령 주변의 인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그동안 한국 정치 문화는 권위주위 리더십에 젖어왔다.대통령이 으레 여당 총재를 겸하는 당의 친정체제 운영방식은 역대 집권당 관리의 전범처럼 여겨져 왔다.대통령이 제왕적 총재로서 여당을 운영한 것은 군사정권 시대나 민주화 정권 시대나 오십보백보였다.노 대통령은 취임 이래 줄곧 권위주의 통치의 수직적 리더십을 지양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평적 네트워크 리더십을 강조해왔다.대화와 토론을 거치고 시스템이 작동하는 합리적인 리더십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대선 예비주자 관리용 개각의 공회전 과정을 돌아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개각을 구상하면서 총리의 제청 절차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려 했고,여대야소 국회라고 해서 새 총리의 인준을 쉽게 생각하는 오만도 읽혀진다. 대통령은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해 집권당을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할 수 있다.그러나 그 방법은 당내 인물들을 평준화하는 데 있지 않고,비록 ‘수석 당원’이라 할지라도 대통령으로서 지도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편집제작 이사 khlee@˝
  • 학계전문가 ‘국회개혁’ 제언

    “의원들은 앞문으로 가고,주인인 국민들은 뒷문으로 들어가는 게 어디 있습니까?” 열린우리당이 국회개혁에 대한 자문을 받으려고 자문위원으로 섭외 중인 숙명여대 박재창 교수의 질타다. “학원 이사장이 교육위에 들어가는 등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소관 상임위에 배정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역시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자문위원 위촉을 의뢰받은 이화여대 김수진 교수의 지적이다. 학계 전문가들의 국회개혁에 대한 의견은 어떨까.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과거 국회의원들이 보여온 구태를 꼬집으면서 17대 국회가 추진하겠다는 개혁방향에 대해 대체로 공감을 표시했으나 일과성이나 전시성이 아닌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주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와 관련,박재창 교수는 23일 ‘의회권력의 분권론’을 강조했다.그는 국회운영에 대해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이나 각 상임위의 독자성이 보장되지 않고 지나치게 의장이나 원내총무 중심으로 통제돼 의회가 분권적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면서 “원내총무가 장악한 의회를 분권적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원내대표의 강한 지도력은 획일성으로 이어져 다양한 시민사회 의견을 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박 교수는 이어 “교섭단체 구성요건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의회운영은 교섭단체로 묶을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치권력단위 중심으로 열어놓아야 한다.”면서 “5명이건 3명이건 정치적 의미가 있으면 수용해서 대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이는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20석 이상에서 5석 이상으로 낮춰야 한다는 민주노동당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김수진 교수는 “만약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 국회의원의 면책특권,불체포특권 제한문제,국민소환제 도입 등의 문제를 관철시키도록 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국회의 윤리성’을 강조했다.장애인 편의시설 확충 등 외형적인 것도 보완해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의정활동의 윤리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이를 위해 유명무실한 국회 윤리특위 보강을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회의원의 특권과 관련해 타율보다는 자율성을 요구했다.“무료철도 이용 등 국회의원으로서 누리는 특권은 공·사를 정확히 구분하기 힘드니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면서 “미국에서도 수천통의 메일·우편발송비를 무료로 지원하는 등 의원들에게 주는 혜택이 크다.”고 지적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민노총, 건물 구입비 400억 국고지원 요청-네티즌 “납득 못해” 비난

    민주노총이 최근 사무실 등으로 사용할 건물 구입비 40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정부에 요청,이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노동부와 민주노총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지난달 29일 본부 건물 구입비 400억원을 내년도 정부 예산에서 지원해줄 것을 요구하는 ‘예산지원신청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다. 현행 ‘국고보조금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노동계를 포함한 시민단체는 공익사업 등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업에 대해 정부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현재 입주해 있는 건물 임대 보조금 등의 명목으로 2002년 20억원의 지원을 신청해 9억 7000만원을 보조받았으며,올해도 10억원 가량을 지원받을 예정이다. 노동부는 “일단 국고보조 신청이 들어왔기 때문에 한국노총의 예와 마찬가지로 사업내용과 액수를 검토해서 국고보조사업에 맞다고 결정되면 기획예산처에 예산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동부 관계자는 “한국노총이 현재 여의도에 건립 중인 중앙근로자복지센터 건설비로 내년까지 모두 337억원의 국고보조를 받고 있는 것에 대해 민주노총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체 사장인 정모(46·경기도 안산시)씨는 “노동계가 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면서 국고보조금을 요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일한다면서 건물 구입을 위해 국고지원금을 요구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고 말했다. 노동부 및 민주노총 홈페이지에도 부정적인 글들이 올라왔다.“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익집단이다.왜 여기에 우리 세금이 지원돼야 하는가.”(노동자) “국민의 세금 400억원이나 되는 돈으로 신축청사를 짓겠다니…”(바다나무) “민주노총은 공무원도 아니고 정당도 아닌데 왜 국민이 돈을 주어야 하는가?”(d)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 독자성이나 투명성이 손상될 수 있다며 거절해오다 이제 와서 건물 구입비 명목으로 지원금을 신청한 것을 놓고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이수봉 교육선전실장은 “정부 예산은 노동자가 낸 세금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돌려받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형평성 유지나 힘의 논리에 의해 국고가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국고보조 심사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진상기자 jsr@˝
  • [이라크戰 1년] (下) 갈길 먼 민주화-제헌·경제문제등 산넘어 산

    이라크의 민주화는 가능할까.더 나아가 중동전역으로 민주화가 확산될 수 있을까. 지난 8일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는 과도헌법에 서명했다.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한 뒤 아랍족과 쿠르드족 및 투르크맨족,시아파와 수니파,기독교도를 포함한 이라크인 전체가 어떤 형식이든 국가의 장래를 규정하는 문서에 합의했다는 자체는 민주화의 중요한 출발이다.그러나 과도헌법의 서명이 곧바로 이라크의 민주화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라크의 종교,인종적 갈등뿐만 아니라 중동지역 전체의 지정학적 변화가 수반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권 이양까지 치안확보 해결해야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측은 일단 오는 6월30일까지 이라크에 주권을 이양하겠다고 선언해놓은 상태다.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이라크내의 치안이다.6월말까지 이라크 스스로 치안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또 이라크는 내년 1월까지 헌법 마련을 위한 제헌의회 선거를 실시하고 10월까지는 헌법채택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헌법준비위나 임시정부가 민주주의를 지지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이라크에서 가장 조직화된 정치단체는 이슬람 정당이다.국제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라크가 민주주의를 채택하기보다는 ▲새로운 독재자를 맞이하거나 ▲신권정치로 전락하는 것이다.만일 미국이 나라 안팎의 사정으로 이라크에 정치적 안정이 이뤄지기 전에 철군할 경우에는 이라크는 내전에 휘말릴 수도 있다. 이라크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가도 민주화의 중요한 요건이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이라크의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추정치는 500달러 안팎이다. 이 정도의 소득으로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이라크 경제의 미래는 매장량 세계 2위인 석유에 달려 있다.지난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후 바그다드의 정부청사가 파괴됐지만 단 한 곳,석유청만은 폭격 당하지 않고 온전히 보전됐다.결국 미국과 이라크 가운데 어느 쪽이 석유 개발의 주도권을 갖느냐가 관건이다. ●국민 47% 강력한 지도자 원해 법과 제도라는 민주주의의 하드웨어보다 그 운용방식이나 철학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중요시하는 시각에서 본다면 이라크의 민주화는 한걸음 더 멀어 보인다.미국의 ABC방송이 최근 이라크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향후 1년 동안 이라크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단일하고 강력한 이라크의 지도자 옹립”이라는 답변이 47%로 가장 많았다.“이라크의 민주화”라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10%는 “종교적 지도자로 구성된 정부의 수립”이라고 밝혔다.이라크 국민이 갈망하는 것은 민주화보다는 독립성과 독자성의 유지인 것 같다. 이라크의 민주화는 내부적으로 더딘 걸음이 되겠지만 중동의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은 간과할 수 없다.이미 중동의 21개 아랍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은 쿠웨이트,카타르,바레인 등 친서방 성향의 아랍국가와 시리아,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 등 전통적 주도세력 등으로 재편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도운기자 dawn@˝
  • [盧대통령 회견]모금한도 초과·출처 논란

    노무현 대통령이 24일 취임 1주년에 즈음,방송기자클럽과 가진 회견에서 경선자금 총액을 ‘십수억원’이라고 밝혀 조달방법과 출처 등을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노 대통령은 경선자금 내역에 대한 계속된 질문을 받고 멈칫멈칫하다가 끝내 “십수억원을 썼다.”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이어진 오찬에서 “그 동안 비밀로 해왔는데,오늘 솔직히 얘기하라고 해서,꼬여서 얘기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노 대통령은 “십수억 들었을 것,이렇게 말하면 이걸 ‘노무현 경선때 십수억 썼단다.’ ‘실토!’라고 하니 말할 수 없다.”면서 “본질이 전달되지 않고,모든 것을 생략하고 나오면 망하는 것이다.두려운 생각이 있다.”고 말끝을 흐리며 피해나갔다.그러나 경선자금에 대한 추가질문을 받자 “경선자금이 십수억원 이야기 했는데,대략의 규모를 털어놓은 것인데,이걸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2001년 3월~2002년 4월 사용 경선자금이 사용된 시기는 노 대통령이 해양부 장관을 그만둔 직후인 2001년 3월부터 2002년 4월26일 경선이 끝났을 때까지라고 청와대측은 설명했다.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본격적인 지출은 2001년 11월 무주대회부터 이뤄졌다.”고 밝혔다.현행 정치자금법상 국회의원 개인후원 모금한도액은 선거가 없는 해엔 3억원이었고,선거가 있는 해에는 6억원으로 돼 있었다.십수억원을 썼다고 한다면,모금 한도액을 두배 가까이 초과한 것으로 불법일 가능성이 제기된다.청와대는 경선자금으로 기탁금 2억 5000만원과 캠프조직비용,경선기간 숙박비 등으로 십수억원을 썼다고 밝혔으나 구체적 내역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경선자금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이미 시인한 적이 있다.지난해 7월21일 불법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져 나오자 긴급기자회견을 자청해 “당시 실제로 경선에 들어간 홍보비용,기획비용 등 여러가지가 합법적 틀속에서 할 수 없었고 경선후 자료를 다 폐기했다.”면서 “하지만 당시 후원금 성금이 소액이었고 국민성금 내역은 모두 공개됐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김근태 의원이 권노갑 전 의원으로부터 200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던 시기와 맞물리기도 했다. ●우리당 득표위해 합법적인건 모두 하고싶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에 대한 관심도 늦추지 않았다.노 대통령은 “대통령은 국정을 책임있게 끌고가려면 국회에 우호적인 지지세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총선 이기고 싶다.노력하게 된다.”고 솔직하게 밝혔다.또한 “대통령이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 줄 수 있으면 합법적인 것 모두 다 하고 싶다.”고 말해 선거운동 논란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장·차관급의 총선출마로 야기된 ‘올인’시비에 대해 노 대통령은 “문민정부때 13명 진출했고,16대 때는 17명이 나왔다.”면서 “이번에는 7명이다.”고 소개했다.하지만 이번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현 정부의 장·차관급은 청와대 고위직을 빼고도 9명이다.청와대의 핵심관계자는 “장관 5명과 차관 2명을 합해 7명이라고 한 것”이라면서 “장관급과 차관급이라고 말해 오류가 있었다면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통일수도 개성·판문점 일대 적절 노 대통령은 통일에 대한 시각도 구체적으로 나타냈다.정부내 ‘통일수도로 서울이 제격’이라는 목소리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우리 통일은 독일 통일과는 다를 것”이라며 “흡수통일이 아니라 상호간 인정하면서,정치적·경제적 체제에서 독자성을 오랫동안 유지해나가면서 국가연합체제로 갈 것이다.”고 밝혔다.노 대통령은 통일수도와 관련,“개성,판문점 어디 일대에 서울과 평양보다 규모가 작고 상징적인 국가연합의 의회,사무국이 존재할 것이고,대부분 행정은 지방정부에서 해나가는 것이 멀리 볼 때 통일과정에서 합리적일 것이다.”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노 대통령은 “나도 하고 싶지만,6개국이 북핵과 관련해 전략협상,게임을 하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은 적절치 않다.”면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핵문제가 남북국면으로 전환되는데,우리 역량이 그렇게 안 된다.”고 밝혔다. 문소영기자 symun@˝
  • “카드사 위기 모럴해저드가 원인”이호군 여신금융協회장 고해성사

    “무분별한 경쟁에서 비롯된 업계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카드시장을 이렇게 만든 가장 큰 원인입니다.카드사들은 앞으로 자산규모 축소 등 경영정상화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18일 제3대 여신금융협회 회장에 선출된 이호군(사진·李鎬君·61) BC카드 사장이 26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뼈아픈 자기반성의 목소리를 냈다. 앞으로 카드·캐피탈 등 여신전문업계를 이끌고 갈 이 회장은 “일부 카드사는 금감원에 수치를 보고할 일이 있으면 막판에 내놓지 않다가 경쟁 카드사 수치가 보고되면 자사 수치를 조정해서 발표한 적도 있었다.”며 “오죽하면 당시 BC카드 사장으로서 사장단 회의에서 통계만큼은 솔직하게 보고하자고 제안했을 정도”라고 말했다.이어 그는 “이런 과당 경쟁속에 정부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문제가 더 심화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업체들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있는데다 연체율도 나아지고 있기 때문에 내년 2·4분기부터는 경영상태가 호전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LG카드 문제와관련,“외국자본에 국내 금융기관을 너무 많이 넘기면 금융시장의 독자성이 훼손된다는 여론이 많아 국내 매각으로 가닥이 잡힌 것 같다.”면서 “채권단 차원에서 LG카드 매각이 무산되면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이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유영기자
  • 특검법 재의결/209표의 의미

    거야(巨野)의 위력이 다시한번 실감됐다.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182명)를 넘는 압도적 찬성(209표)으로 재의결되면서 한나라·민주·자민련 등 야3당이 공조할 경우 개헌이나 대통령탄핵까지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노무현 대통령은 재적 3분의1도 안 되는 ‘왜소여당’인 열린우리당과 함께 국정을 운영하기가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같은 정국구도는 새해벽두 특검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정국을 요동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3야 공조 위력,단단한 것인가 ‘찬성 209표’는 입법부가 행정부 수반에 보낸 일종의 ‘경고성메시지’로도 해석된다.지난달 10일 1차 투표때 이미 184표 찬성으로 재의결 정족수를 넘겼음에도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무리였음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하지만 야 3당의 공조가 계속 콘크리트처럼 단단할 것 같지는 않다.각 당이 처한 상황과 총선에 임하는 셈법이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민주당내에는 실제 당초 측근비리 특검법을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수사 물타기용이라며 반대하는 의원이 많았고,현재도 한나라당과의 사안별 공조에 거부감을 갖는 의원들이 많다.내년 총선에서 충청지역 독자성을 확보해야 할 자민련도 한나라당과의 전반적인 공조엔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따라서 3야 공조의 위력을 개헌 혹은 탄핵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해석이다. ●거야 공조위력은 여전한 뇌관 야 3당의 공조는 이처럼 일정정도 한계를 갖기 때문에 연말 정국은 국회가 정상화되면서 일단 정상궤도로 재진입할 것 같다.물론 코너에 몰린 검찰이 한나라당의 메가톤급 대선자금 비리를 밝히거나,헌법재판소에 특검법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경우엔 정국이 빠르게 얼어붙을 수도 있어 보인다. 특히 특검이 내년 초 가동돼 노 대통령의 측근비리 일부라도 확인하거나 당선축하금 일부를 확인할 경우엔 정권자체가 위기로 몰릴 수 있다.이 경우 다시 3야 공조는 위력을 떨칠 전망이다.반대로 특검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하면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하고,3야공조는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각 정당별 특검법 득실도 복잡할 전망이다.한나라당은 재의결 관철에도 불구하고 지도부의 무리한 극한투쟁에 대한 책임론이 일 수도 있다.민주당은 조순형 대표체제가 재의협조를 통해 국회를 정상화시킴으로써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열린우리당의 정국 소외와 무기력증은 더욱 깊어갈 분위기다. 이춘규기자 taein@
  • ‘교육특구’내 교원 지방공무원화/교육계“신분 불안”강력 반발

    정부가 지역 특성화 발전을 위해 마련키로 한 교육특구 안에 설립되는 시·군·구립 초·중·고교의 교원신분을 현행과 달리 국가공무원이 아닌 지방공무원으로 규정,교원의 지방직화 논란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또 교육특구의 특성화 학교로 지정된 학교의 교장이나 교원의 임용권도 특구지자체의 장에게 넘겨,교육계의 반발이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원단체들은 20일 “교원의 신분을 지방직화하려는 의도”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 16개 시·도 교육위원 협의체인 전국교육위원협의회도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따라서 지난 6월 교원 지방직화를 놓고 정부와 교육계간에 빚어진 갈등이 다시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인적자원부와 재정경제부는 이날 이같은 내용을 담은 ‘지역특화발전특구법’ 제정안이 18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재경부가 추진하는 이 제정안이 입법예고될 당시 교육특구 교원의 지방직화 부분은 없었다. 현재 지역특구의 지정을 희망하는 전국 23개 지역 중 14곳이 초·중·고교 교육과 관련된 교육특구를 신청한 상태이다. 제정안에 따르면 특구 지자체는 교육감의 인가를 받아 시립·군립·구립 등의 공립학교를 설립할 수 있다.또 특구 지자체의 장은 교육감의 지정을 받아 교육과정이나 학생모집을 자율적으로 결정,운영할 수 있다.교원의 정원 체계나 배치 권한도 확보,이른바 ‘자율학교체제’가 가능하게 됐다. 교육특구의 교원신분과 관련,국가공무원이 아닌 지방공무원으로 못박았다. 재경부측은 “시립이나 도립대학의 교수가 지방직인 것과 같이 시·군·구에서 세우거나 지정한 교육특구의 학교인 만큼 교원도 지방직 공무원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주장하고 있다.제정안에서는 외국어의 전문교육을 위해 외국인을 외국어 교원 및 강사로 임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교조측은 이와 관련,“교육을 무리하게 일반 행정과 통합하는 조치는 교육의 전문성과 독자성을 훼손하고 ‘교육의 상품화’를 초래한다.”면서 “교육특구의 학교는 신흥 명문입시기관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박했다.전교조는 “교직의 안정성을 흔들 뿐만 아니라 심각한 갈등을 낳을 것”이라면서 “나아가 교육특구는 현행 고교 평준화의 근간도 해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총은 “지난 6월 사실상 백지화된 교원의 지방직화를 다시 추진하려는 의도”라면서 “지역특화 발전과 교원신분과는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또 “교원신분이라는 중요한 사항을 다루면서 교원,교원단체 등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은 것은 국정방향과도 어긋난다.”고 밝혔다. 박홍기기자 hkpark@
  • 책 / 아동의 탄생

    필립 아에리스 지음 / 문지영 옮김 새물결 펴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굳이 이런 진부한 속담을 초들지 않더라도 아이 혹은 자식에 대한 사랑은 충분히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이다.그런 만큼 우리와 다른 사회,다른 시대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이 크게 다르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프랑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가 펼치는 주장은 사뭇 도발적이다.중세 유럽에는 아동기에 대한 의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며,아동에 대해 현재와 같은 의식이 확립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것이다.그에 따르면 중세에 아동기는 성인이 되기 전에 잠깐 거쳐가는 과도기 정도로 무시됐으며,아이들은 젖을 떼자마자 어른들 사이에 섞여 함께 생활했다. 필립 아에리스의 방대한 저서 ‘아동의 탄생’(문지영 옮김,새물결 펴냄)은 아동은 이처럼 철저하게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심성사(心性史)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 책은 1960년에 처음 나왔지만 이제서야 국내 번역본을 갖게 됐다. ●17세기 들어서야‘아동' 인식 생겨 저자는 아동과 가족에 관한 의식의 기원과 전개과정을 역사적 맥락에서 살핀다.특히 프랑스 사회를 중심으로 중세와 17세기 이후의 아동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밝혀낸다.‘미래의 희망으로서의 어린이’라는 이미지는 17세기에 들어서야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중세 프랑스 사회에서는 영아살해가 공공연히 자행됐다.그것은 도덕적인 타락으로 인식되지도 않았다.심지어 근대적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계몽사상가 루소조차 다섯 명의 자식들을 모두 고아원에 맡겨버렸다.‘인간회복’을 일관되게 주장한 루소의 이상적인 모습만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의 ‘비정’은 당혹감을 안겨줄 만하다. ●중세 프랑스선 영아살해도 공공연히 자행 중세의 아이들은 그저 몸집만 작을 뿐 어른과 다를 것 없는 존재로 간주됐으며,아동기는 나름의 독자성을 지닌 시기로 인정받지도 못했다.이를 반영하듯 중세의 도상(圖像)에서는 아이들이 전혀 아이다운 특징을 보이지 않는다.아이의 외형적인 특성을 살린 도상들이 나타난 것은 14세기 경부터다.아이들의 인격을 고려한 듯한 이런 경향은 16∼17세기의 아이 초상화,벌거벗은 아기 그림인 푸토(putto) 등으로 발전했다.마침내 아동이 ‘발견’된 것이다.이에 따라 그전엔 볼 수 없었던 현상들이 생겨났다.아이들에게 어른들과 다른 옷을 입혔고 이전까지는 구분하지 않던 어른과 아이들의 놀이도 비로소 구분했다. 중세의 학교는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었지 아이들을 의한 교육기관이 아니었다.때문에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이 뒤섞여 수업을 듣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연령에 따른 학급 구분은 프랑스의 경우 17세기에 가서야 어느 정도 정착됐다.나폴레옹과 더불어 본격화된 민족국가 건설 과정에서 아이들은 병영처럼 운영되는 학교에 격리돼 ‘국민교육’을 받기 시작했다.미셸 푸코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아이들은 이제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림에서도 아이다운 모습 찾기 어려워 아동에 대한 의식의 역사를 추적해온 저자가 연구의 종착지로 삼는 것은 가족의식이다.근대 이전에는 개인의 삶의 중심은 가족이 아니라 사회였다.그러나 18세기 들어 사회 중심의 삶은 위축되고 가족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가족의식은 이웃이나 친구관계 등 전통적인 관계들을 희생시키며 점차 강화돼갔다.흔히 근대에 개인주의의 발달이 이뤄졌다고 하지만,저자는 “승리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단언한다.2만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이경형 칼럼] ‘연극촌’에서 본 지방화

    지난 주말 때 이른 추석(?)성묘를 마치고 귀경길에 경남 밀양시 부북면의 ‘밀양연극촌’에 들러 두 편의 연극을 잇따라 관람했다.4년전 월산초등학교 폐교 건물을 개조하여 연극공동체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이곳은 한국의 대표적인 연극 마을로 자리잡아 가고있다. 교실 2개를 튼 소극장에선 아동극 ‘토끼와 자라’가 공연됐다.관객은 창원에서 버스 두 대로 온 어린이와 학부모가 대부분이었고,나머지는 인근 주민이거나 일부러 찾아 온 사람들이었다. 공연에 앞서 관객들은 출연배우들의 선창과 몸짓에 따라 노래와 춤을 배우면서 장내는 흥겨움으로 가득했다.1시간여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축제가 파할 때처럼 자리 뜨기를 아쉬워했다.두 번째 공연은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교사 뒤쪽의 천막 극장에서 저녁 8시부터 시작된 ‘서툰 사람들’이었다.객석엔 연극캠프에 참여중인 어린이들과 일반 관객이 채 100석도 채우지 못했지만,연극이 끝난 후 출연자들에게 보내는 여러 차례의 뜨거운 박수는 대형 공연 못지않게 장내를 달구었다. 지난 7월17일부터 보름 동안 이곳에서 열렸던 제3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기간엔 개막 첫날 야외 ‘숲의 극장’등 4개 극장의 좌석이 매진되는 등 피서를 겸한 전국의 관객들로 대성황을 이뤘다고 한다.연극촌 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연출가 이윤택씨는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이끌고 매주말 연극 공연으로 이곳을 일궈왔다.그는 “밀양시민들과 호흡을 함께하면서 자리를 잡아왔다.”면서 “인근 부산,울산은 물론 서울 관객도 심심찮게 온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밀양 하면 주변의 뛰어난 풍광과 함께 조선 후기 대표적 건축물인 영남루가 먼저 떠올랐지만 앞으로는 연극촌이 될 법하다.지난 90년대 이후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지방화’가 강조돼왔고,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도 지방 분권을 역설하고 있다. 중앙집권적 국가경영시스템을 분권형으로 전환하는 제도적 개혁은 지방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마찬가지로 지방 주민들이 그 지역의 특화된 문화적 요소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중앙 정부나 해당 지자체가 적극 지원하는 일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금 전국적으로 매년 1000여 건의 기초자치단체 단위 지역 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각 지방은 특산물,유적지,유·무형문화재,온천,기타 관광자원과 연관된 지역 축제를 개최하고,이 과정에서 지역문화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축제 숫자만큼 내실을 거둔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그래도 지방화의 소중한 촉진제가 되고 있다. 언젠가 독일 뮌헨 지방을 여행했을 때 우연히 어울렸던 맥주 축제, 일본 홋카이도 노보리벳쓰 지역에 갔을 때 ‘도깨비 결혼’ 마쓰리(축제)행렬에 끼어 놀았던 문화 체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영국의 웨일스 지방의 헤이온와이는 1960년대 초만 해도 퇴락한 시골마을에 불과했다.그러나 리처드 부스라는 한 청년의 헌책 사랑으로 세계 최초의 ‘책 마을’로 자리잡은 뒤 지금은 세계고서전시회 개최 등으로 연간 50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청계천 복원공사로 존폐 위기에 처한 청계천6가 일대의 헌책방들도 한국의 헤이온와이로 재탄생할 수는 없을까.고서점 호산방 박대헌 대표는 강원도영월의 한 폐교에 책박물관을 세우면서 책마을을 건설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파주 통일동산 인근에 건설되고 있는 예술문화인들의 창작,전시,거주 공간을 겸한 ‘헤이리 마을’도 헤이온와이의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했다. 진정한 지방화 시대는 권력 구조나 경제력의 분권 못지않게 그 지방의 문화적 차별화,독자성이 꽃을 피울 때 제대로 열리는 것이다. 본사 이사 khlee@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6)조동일 - 한국의 학문, 탈 식민지화를 위해

    저 옛날 원효는 중국으로 가려다 중도에 돌아왔으되 당대 불교철학의 첨단에 서 있었다.오늘날에도 해외에 유학하지 않고 세계적인 학문을 이룩하는 사람이 있다.그가 바로 국문학자 조동일 선생이다.“유럽 문명권의 독주 때문에 빚어진 불행한 역사를 청산하고 다음 시대를 열기 위해서 일제히 노력하는데 동아시아도 다른 여러 문명권과 함께 적극 기여하는 것이 마땅하고,한국에서도 할 일을 해야 한다.나는 내 나름대로 그 임무의 일단을 수행하면서,주위의 다른 사람,이웃나라 학자,다른 문명권 학계의 분발을 촉구한다.”(조동일 ‘세계문학사의 전개’(2002) 중에서) 말복을 앞두고 부채질을 해야 할 만큼 뜨겁던 날,선생의 연구실 바깥에서는 매미 소리가 따갑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선생은 역시 변함이 없었다.뭔가 혼자만의 담대한 구상에 빠져 있다 불청객을 맞은 듯했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지 손수 녹차를 타주시는 배려를 보이기까지 했다. 비록 내 자신이 도둑맞은 건 아니었지만,선생과의 인터뷰 테이프를 도둑맞은 나는 뭐라 변명 드릴말씀이 없었다.빨리 본론을 시작하는 수밖에. “다시 선생님의 근황을 여쭈어 보아야겠어요.” “‘지방문학사 연구의 방향과 과제’라는 책을 썼어요.이제 교정을 다 봐서 책이 곧 나올 단계입니다.그리고 ‘국문학통사’도 한 번 더 고쳐서 제4판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이 작업은 오래 걸려서 2005년 초에나 나올 예정입니다.” “오랫동안 한국문학사를 연구해 오셨는데요.우리의 문학은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의 문학과 어떤 점에서 구별될 수 있을까요?” “한국문학사가 세계문학사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점이 뭐가 있느냐.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어요. 첫째,구비서사시의 전통입니다.우리 문학을 보면 고대부터 근대까지 서사시가 면면히 이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어느 한 시대에 구비서사시의 풍부한 유산을 가진 나라는 여럿 있지만 이렇게 시대에서 시대로 이어지면서 면면히 새롭게 창조되는 구비서사시를 볼 수 있는 것은 한국문학이 특별한 경우입니다.시대에 따른 역동성이 있다는 것이죠. 둘째,한국은 동아시아 문명권의 중간에 위치해있습니다.중국이 중심부이고 일본이 주변부라면 한국은 중간부인데 중간부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느냐.중심부가 발전시킨 공동 문어문학과 주변부에서 일찍부터 발전시킨 자국어 민족문학이 비슷한 비중으로 발전하면서 그 양자가 밀접한 관련 양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한국문학의 이런 특징은 다른 문명권의 중간부에서도 발견됩니다.산스크리스트어 문명권의 타밀,아랍 문명권의 페르시아,유럽 문명권의 프랑스나 독일 등이 그렇지요. 셋째,한국은 식민지 통치를 받으면서 근대문학을 일으켰는데 식민지 경험을 가진 다른 어느 나라의 문학보다 훌륭한 근대민족 문학을 이룩했습니다.그리고 그것은 앞 시대의 축적의 대가입니다.일본 식민지 통치는 언론과 정치의 자유를 극도로 억압했고 이것이 문학에서는 고도의 암시와 상징,비유를 가능케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 근대문학은 문학적 창조의 방법을 보이면서도 민족이 요망한 것을 깊이 집약하는 양면성을 갖추었습니다.이것은 우리 문학이 가진 한 특성이면서 제3세계 근대문학이 가진 보편적 특징을 잘집약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대,중세,근대에 걸쳐 한국문학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전통과 가치를 구비하고 있는 셈이군요.문명권을 중심부,중간부,주변부로 보는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동아시아 문명권의 경우 중국은 공동 문어문학,즉 한문학의 중심부이고 그 규범을 보인 성과가 높은 반면에 중국의 백화문학은 근대에 들어서야 성립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반면에 일본은 공동 문어문학을 많이 하지 않았고 그 수준도 별로 높지 못한 데 반해 자국어문학은 일찍 성립된 편입니다.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굉장한 것인 양 자랑하고 있는데 이것은 문명권의 주변부가 가지는 일반적 특성일 뿐 민족성 우위를 주장하는 것은 전혀 적합하지 못합니다.일찍 자국어문학을 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일본보다 유럽 문명권에서 주변부 중의 주변부인 아이슬란드보다 못합니다.중세에는 공동 문어문학을 잘한 중간부,즉 한국이 아주 위세가 높았고,근대에 와서는 주변부였던 탓에 자국어 문학이 일찍 개화한 일본이 조금 나은 형편에 놓여 있는 거지요.그러나 근대를 넘어서서 다음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대와 중세의 유산을 함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공동 문어문학에 함유된 가치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중간부인 한국의 중요성이 커집니다.유럽처럼 동아시아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중국이 가지고 있는 중세적 보편성과 일본이 가지고 있는 개별성을 함께 구비하고 있는 한국이 두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구실을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한국문학 연구를 폭넓은 시야를 확보하면서 주체적,독자적인 위상으로 끌어올리는 문제를 깊이 고민해 오신 것 같은데요.” “학문하는 데 있어 흔히 볼 수 있는 두 가지 조류가 있어요.하나는 서양 학문을 가져와서 우리 것을 만들고 또 그것을 토착화하자는 수입학이죠.그런데 이 수입학은 아무리 잘해도 원산지보다 잘 할 수는 없어요.원산지와의 격차를 줄이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이죠.또 수입학으로 대안을 만들 수는 없는 거죠. 다른 하나는 국학,우리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이것을 자립학이라고 했어요.수입학이 범람하는 와중에 자립을 하자는 것도 좋지만 우리 것에 매달리면서 그것의 의의를 많은 경우 감정적으로 설정하고,우리 것이 가지는 보편적 의의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편성이 결여돼 일반이론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자립학입니다.이러한 자립학으로도 우리 학문은 학문이 크게 나갈 수는 없어요. 수입학의 폐단과 자립학의 폐쇄성을 함께 넘어가는 바람직한 학문의 방법이 필요한데,나는 이것을 창조학이라고 명명했습니다.창조학이란 뭐냐면,우리 것,우리 민족,우리 유산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의의를 발견하고 그것을 한편으로는 동아시아로 확대하고 제3세계로,세계로 확대하는 것이죠.동아시아로 확대한다는 것은 중세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고 제3세계로 확대한다는 것은 근대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져요.그렇게 해서 얻어진 결과를 가지고 유럽문명권 사람들이 무엇을 잘못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따져보는 거죠.그렇게 해서 근대를 합리화하는 그들의 한계에서 벗어나,유럽 문명권 중심주의를 세계 전체로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그것의 근본적 결함을 비판하고 대안이 되는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학문의 바람직한 자세일 것입니다.” “중요한 말씀 같습니다.그런데 학문을 함에 있어 언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예컨대 영어를 잘 알아야 한다든가,말입니다.” “국제비교문학회 같은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보면,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할 말이 없고 할 말이 있는 사람은 말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겪게 됩니다.우리나라뿐 아니라 제3세계가 다 마찬가집니다.말할 수 있으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영문학,혹은 국문학 전공자들이 해외에 나가서 영어는 빠지지 않게 하지만 내용이 없다는 것이죠.할 말도 있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도 있고 그것을 외국어로 표현할 줄도 아는,그러니까 양쪽을 갖춘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영문학자나 국문학자가 그렇게 하기는 매우 어려워요.국문학을 깊이 공부하는 사람이 비교연구의 관점도 다 갖추고 세상에 통용되는 말로 글을 쓰고 발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현실이고 제3세계 국가들도 모두 비슷합니다.그런 공통적인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런가 하면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경쟁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견해는 만만치 않은데요.복거일씨가 그런 분 가운데 한 사람이었죠?” “영어는 일종의 교통어입니다.모국어가 다른 사람끼리 통용하기 위한 말인데,교통어로서의 영어가 갖는 효용성을 부정할 수는 없겠죠.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말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할 말은 점점 더 없어져요.할 말이 있고 말을 못하면 다른 사람이 번역을 해서라도 내놓을 수 있는데 말을 할 수 있고 말할 내용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선생은 어조가 한결 높아진다. “지난번에 그런 주장이 횡행하길래 3개월 만에 급한 대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이라는 책을 썼습니다.관심이 있어 자료는 모으고 있었지만 내 분야가 아니었기에 바로 쓸 계획은 없었어요.그러나 문제가 시급하다는 생각,몇 달 만에 책을 썼고 원고 넘기고 한 달여 만에 책이 나왔어요.그 책의핵심 중 하나는,영어 공용어 국가는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였거나,자기 나라 사람끼리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뿐이라는 것이에요.우리나라 사람끼리 말이 통하지 않게 하는 것,영어를 공용어로 만들어 한국어를 못 쓰게하는 것은 어떤 정치권력이나 법으로도 불가능해요.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리를 떠드는 것은 사람의 의식을 혼미하게 하는 거예요.영어를 공용화한 나라가 얼마나 많은 불행과 고통을 겪고 있는지 조사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고 정책을 좌우하는 사람들까지 부응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그것은 경쟁력도 못키우고 학문을 발전시키지도 못합니다.” 선생은 외국어를 가장 잘하는 국문학자 가운데 한 분이고 학문을 하려면 5개국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영어 공용어론에 대해서는 여간 강경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 평생 학문을 학문답게 해온 사람의 지혜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닐는지. 나는 선생께,선생님도 생활이라는 개념이 있느냐고 여쭈었더니,그렇단다.매년 8월 아무 날에는 제자들과 속리산에함께 오르신단다.이 글을 정리하느라 선생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매주 일요일 오후 1시5분쯤이면 도봉산역에 도착해 등산을 하신단다.참으로 놀라운 생활이 아니냐.그 규칙성,그 성실함이라니. ■방교수가 본 국문학자 조동일 옛날에 신림 4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큼직한 가방을 멘 사람이 혼자 쑥 들어오더니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 호프 500cc를 한 잔 시켜 마시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그가 바로 조동일 선생이었다.그 무렵 나는 그가 늘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마냥 큼직한 커리어백을 끌고 다니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그는 다른 생각 없이 공부만 하고 땅만 보고 다니는 사람 같았다.생각은 하늘에 두고. ●도전과 의지의 삶… 저서 50여권 이번에 조동일 선생과 인터뷰를 치르는 동안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녹취 테이프 푸는 일을 맡은 작가 김신우씨 집에 도둑님이 들어 테이프를 잃어버린 것.생각다 못해 선생에게 다시 인터뷰를 하자고 어렵게 말씀 드렸더니 쾌히 그러자신다.천재지변 같은 일을 어떻게하겠느냐고. 나는 선생 연구실의 낮은 문턱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높고 낮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었다. 1939년 경상북도 영양 사람으로 예천 출생이다.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한 뒤 국문과에 다시 입학,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학문을 익히는 도전과 의지의 삶을 살아왔다.1982년에 간행되기 시작하여 모두 다섯 권으로 낸 ‘한국문학통사’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쓴 저서가 모두 50여권. 그의 관심은 한국문학에서 출발하여 한국문학으로 끝나되 그 단일 주제는 끊임없이 확장,심화되어 왔다. ●평생 한국학의 세계성 탐구 ‘우리 학문의 길’(1993) 등이 보여주듯,그는 한국 지식사회가 주체성과 독자성을 확보하는 길을 고민해 왔으며 나아가 그러면서도 정저지와(井底之蛙)에 머무르지 않는 학문의 창조성을 고창해 왔다.최근 ‘세계문학사의 전개’(2002)처럼 그동안의 학문적 성과를 갈무리하는 저서를 내는 한편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민족문화가 경쟁력이다’(2001) 같은 저서로 사회 일각의 천박한 서양 동화주의를 비판하면서 우리언어와 학문의 가치 옹호에 앞장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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