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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오래된 한국인 얼굴, 충격 외모

    가장 오래된 한국인 얼굴, 충격 외모

    ‘가장 오래된 한국인 얼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인의 얼굴이 공개돼 화제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일제가 수집한 문화재들을 공개한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한국인 얼굴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가면 한 쌍이 처음으로 소개됐다. 뉴스팀 chkim@seoul.co.kr
  • 가장 오래된 한국인 얼굴, 자세히 보면 슈퍼스타K6 심사위원이?

    가장 오래된 한국인 얼굴, 자세히 보면 슈퍼스타K6 심사위원이?

    가장 오래된 한국인 얼굴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가 수집한 문화재 중 가장 오래된 얼굴 모양 가면 1쌍을 소개했다. 가면에 표현된 한국인의 얼굴은 길고 갸름하며 턱이 앞으로 툭 튀어나온 형태다. 또한 찢어진 눈꼬리와 튀어나온 광대뼈를 통해 당시 한국인이 인상이 강렬한 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귀고리 흔적과 상투 등으로 보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인의 얼굴로, 2~3세기 부여에서 만든 금동 가면으로 말이나 무기 등에 부착한 장식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가장 오래된 한국인 얼굴, 내 얼굴 같다”, “가장 오래된 한국인 얼굴, 슈퍼스타K6 심사위원 김범수 닮았네”, “가장 오래된 한국인 얼굴, 많이 변했구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백제시대 한국인 얼굴 보니.. ‘믿을 수 없어’

    백제시대 한국인 얼굴 보니.. ‘믿을 수 없어’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일제가 수집한 문화재들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한국인 얼굴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가면 1쌍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가장 오래된 한국인 얼굴 가면을 보면 길고 갸름한 얼굴형에 턱은 앞으로 튀어나왔다. 눈꼬리는 쭉 찢어졌고 광대뼈도 도드라져 있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등과는 달리 눈, 코, 입은 물론 귀고리를 건 흔적까지 완벽히 남아 있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인의 얼굴로 추정되고 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그들의 치적?… 日帝의 오만과 왜곡

    그들의 치적?… 日帝의 오만과 왜곡

    ‘동양’(東洋)은 한쪽으로 치우친 단어다. 애초 중국의 무역항인 광저우를 중심으로 동쪽 바다를 일컬었으나 근대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들어와 동아시아 혹은 아시아 전역을 뜻하는 용어로 탈바꿈했다. 19세기 후반 유럽 열강을 통칭하던 ‘서양’(西洋)과 대비돼 사용된 이 단어에는 ‘동양 유일의 문명국’을 자처하던 일본의 오만과 교만이 잔뜩 배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박물관들(조선총독부박물관·이왕가박물관)에 수장됐다가 넘겨받은 아시아의 유물과 미술품 1600여점 가운데 200여점을 추려 28일부터 내년 1월 11일까지 특별전 ‘동양을 수집하다-일제강점기 아시아 문화재의 수집과 전시’를 이어간다. 전시 유물 중에는 일본 승려 오타니 고즈이가 탐험대를 파견해 중앙아시아의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끌어모은 ‘천불도’, ‘기마여인’ 등 ‘오타니 콜렉션’도 포함됐다. 수집 뒤 박물관에 기증되거나 매매를 통해 수장고에 들어왔으나 일본 수집상이나 탐험가들의 손을 거친 만큼 약탈품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박물관 측은 “해방 뒤 미군정이 ‘적산처분’을 통해 조선총독부의 재산을 우리 정부에 귀속시킨 만큼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고 밝혔으나, 향후 소유권을 놓고 잡음이 불거질 수도 있다. 그만큼 이번 전시는 일본의 ‘동양’에 대한 집착을 시대적 맥락에서 살펴보는 자리다. 유물들은 중국 한대(漢代) 고분 출토품부터 일본의 근대 미술품까지 다양하다. 조선총독부 청사의 중앙홀 북벽 벽화, 중국의 불비상과 북위(北魏)와 북제(北齊)시대의 반가사유상, 아래가 좁고 뾰족한 한나라의 말 머리 꾸미개와 악명 높은 일본인 고미술상 ‘야마나카 상회’의 주인이 직접 총독부박물관에 기증한 청동제 수정 감입 네 잎 금속장식, 아프가니스탄에서 출토된 부처의 머리, 고대 부여의 사람 얼굴 모양 장식 등이 망라됐다. 대다수가 상설전시를 통해 꾸준히 모습을 내비친 작품들이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70여년 만에 수장고를 나와 빛을 보는 유물들도 있다. 일본인 조사단이 만주 지역을 돌며 1912년의 광개토대왕비 모습 등을 그린 ‘여진비’ 스케치와 부여의 정치 중심지였던 북만주 마오얼산에서 1923년 출토된 사람 얼굴 모양 장식, 중국 허난 지역에서 출토된 수정이 감입된 네 잎 금속장식 등이다.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조선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종합박물관을 지향하면서도 중국, 인도, 중앙아시아 그리고 일본 문화재를 대거 수집했음을 방증하는 사례들”이라고 밝혔다. 전시에는 1940년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한 일본인 화가들의 작품 10여점도 처음 공개된다. 박물관이 소장한 250여점의 근대 일본화 가운데 금기시된 ‘군국주의’란 주제 탓에 공개되지 못했던 것들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옛 조선총독부 청사 중앙홀의 북벽에 걸렸던 길이 14m의 벽화. 1996년 청사 해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이 민족의 교훈으로 삼고자 수장고에 보관해 왔다. 그림을 그린 일본인 화가 와다 산조는 한국과 일본에 함께 전승돼 온 전설인 ‘날개옷 이야기’(나무꾼과 선녀)를 “민족의 뿌리가 같다”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북벽에선 금강산, 남벽에서는 시즈오카현의 경승지인 미호를 각각 배경으로 삼았는데. 이번에는 북벽 벽화만 공개된다. 작품은 마(麻) 재질의 캔버스 위에 고대 일본의 전통 종이인 도사지를 사용했는데 와다 산조는 1926년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1000년이 가도 변치 않도록 했고, 이는 양국의 영구적 일치(식민 통치)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왕가박물관에 전시됐던 중국 북제 시대 반가사유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중국 불교 조각 중 백미로 꼽힌다. 일본 수집상인 우라타니 세이지가 당시 1162원의 고가에 매도한 6세기 대리석 불상으로, 직사각형의 대좌 중앙에 배치된 반가사유상의 얼굴과 신체는 간결하면서도 균형감을 갖췄다. 아프가니스탄의 잘랄라바드 인근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부처 머리는 기원전 2세기부터 1세기까지 유행했던 후기 헬레니즘 양식을 담았다. 총독부박물관이 1920년대 프랑스 고고학 조사단을 이끌었던 아캥 당시 프랑스 기메박물관장으로부터 기증 받은 것이다. 이태희 학예연구사는 “당시 총독부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가운데 중국 한대의 것들이 많았는데, 이는 낙랑군이 한반도에 문화를 전수했다는 관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반도의 것과 유사한 일본 기타큐슈 지역의 토기들을 전시한 것도 같은 맥락(임나일본부설)”이라고 전했다. 박물관은 다음달 14일 국내외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관련 국제학술대회도 개최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문화 In&Out] 기운 것 바로잡으랴 원형 유지하랴 첨성대 복원 딜레마

    [문화 In&Out] 기운 것 바로잡으랴 원형 유지하랴 첨성대 복원 딜레마

    ‘첨성대’(국보 제31호)가 북쪽으로 기울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정된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리며 나타난 자연적 현상이란 해석부터 일부러 건축 때부터 원활한 천문 관측을 위해 살짝 기울여 놨다는 설명도 있다. 100년 전 사진에서도 첨성대의 기울어진 모습이 일부 확인되는 건 이 같은 설을 뒷받침한다. 분명한 사실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첨성대가 기울어 왔고 지금은 누가 봐도 확연히 구분할 만큼 눈에 띈다는 점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첨성대의 구조모니터링은 1981년부터 거의 매년 정기적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기울기 측정이 행해진 것은 2009년 10월부터다. 당시 기단 중심과 꼭대기 정자석의 중심을 연결선 삼아 측정한 수치는 북쪽으로 200㎜, 서쪽으로 7㎜ 기울어져 있었다. 5년 만인 지난 1월 조사에선 북쪽으로 204㎜ 기울어 4㎜가 더 벌어졌다. 서쪽은 변동이 없었다고 한다. 지난 18일 경북 경주시 역사유적지구에서 마주한 첨성대는 위태로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문화재청의 그간 설명과는 차이가 났다. ‘문화재가 자리한 지역의 지자체가 일차적인 책임을 진다’는 지역주의 원칙을 감안하더라도 문화재 당국의 방기를 묵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여태껏 첨성대 구조의 안정성을 판단할 명확한 근거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콘크리트 현대 건축물의 경우 안전점검 범위 등이 법으로 명시됐지만 첨성대는 상황이 다르다. 북쪽 지반이 정말 약해서, 점점 더 기울어질 것 같다면 지금은 괜찮더라도 전면 보수를 생각해 봐야 할 때라는 지적이 문화재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동행한 탁경백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첨성대는 현재로선 건축물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지반 약화가 원인으로 파악된다”며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처럼 지반 안정화 작업을 통해 어느 정도 문제를 해소할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지반 안정화 작업 역시 간단하지 않다. 탁 학예연구관은 “첨성대를 떠받치는 하부구조 파악을 위한 철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는 1300여년 전 첨성대가 세워진 시기의 신라 건축 기술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마땅한 문헌기록조차 없어 당시의 흙다짐 기법은 물론 일반적 건축물의 구조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다. 콘크리트를 사용해 우격다짐 식으로 지반을 강화할 수 있으나 이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다. 일제강점기 콘크리트를 사용해 해체와 재조립을 거친 석굴암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곳곳에 틈새를 드러낸 첨성대를 불국사 석가탑처럼 기단부터 해체해 다시 복원하는 과정이 조만간 요구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탁 학예연구관은 “현재 문화재 복원 기술로 첨성대를 해체해 다시 재조립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면서도 “그럴 경우 첨성대의 원형을 잃었다는 비난을 감내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최근 경주시는 첨성대 주변의 지반을 안정화한다며 주변 지하수 분포도를 조사하고 있다. 첨성대 밑의 지하수량이 많아 첨성대가 점차 기울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 지하수를 빼내는 작업을 계획 중이라는 것이다. 깊이 40m의 구멍 4개를 뚫어 첨성대 주변에서 지하수 시추 작업을 벌이는 이 작업은 가벼운 지진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첨성대를 놓고 다시 우려를 키우고 있다. 문화재 당국이 나서 첨성대가 앞으로 하중을 얼마나 견뎌 낼 수 있는지 이른바 ‘지내력’부터 다시 조사하는 게 첨성대를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는 지름길이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박물관협회장에 김쾌정 관장 선출

    박물관협회장에 김쾌정 관장 선출

    김쾌정(67) 허준박물관 관장이 20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협회 임시총회에서 8대 회장에 선출됐다. 김 신임 회장은 2015년 1월 1일부터 4년간 협회를 이끌게 된다. 김 회장은 한독의약박물관 관장, 한국박물관학회 부회장, 한국박물관협회 수석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 보이나요, 붓다의 인간적 고뇌의 몸짓

    보이나요, 붓다의 인간적 고뇌의 몸짓

    파사무용단의 ‘붓다, 일곱 걸음의 꽃’은 종교 지도자로서의 면모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붓다 일생을 다룬 현대무용극이다. 붓다의 인간적인 면을 현대무용으로 집중 부각한 건 아시아 최초다. 붓다가 부와 권력, 가족, 자신까지 모두 버리고 고행을 통해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사람 속으로’ ‘일곱 걸음’ ‘싯다르타’ ‘그리고 해탈’ ‘열 개의 이름’ ‘궁극의 열반’ 등 6개 장으로 그려냈다. 다양한 대형으로 변화하는 군무(群舞)가 인상적이다. 황미숙 예술감독은 “붓다를 통해 우리가 진정 바라는 지도자상을 모색해 보고, 나눔과 비움의 정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붓다를 열연하는 오창익은 국제현대무용제 모다페에서 스파크플레이스 신인상을 수상한 실력파 무용수다. 붓다의 고행 과정을 때론 부드럽게, 때론 날카롭게, 심오하면서도 변화무쌍하게 표현한다. ‘댄싱9 시즌2’의 레드윙즈팀 활동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이윤희는 관음보살들이 붓다의 1000개 손과 1000개의 귀, 1000개의 입이 됐다는 천수관음을 열연한다. 김예림 무용평론가는 “오창익은 인간 붓다, 고뇌하는 붓다의 생생한 느낌을 여과 없이 전해줄 것”이라며 “거칠지만 진솔한 몸짓이 부처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고 기대했다. 2012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초연했다. 지난해 ‘부처님 오신 날’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됐을 때 2회 공연 전회 매진되며 화제를 모았다.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종로구 대학로 한국공연예술센터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02)2263-4680.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김주혁 선임기자의 가족♥男女] 건강가정지원센터

    [김주혁 선임기자의 가족♥男女] 건강가정지원센터

    가족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군·구별 건강가정지원센터에 가면 된다. 그곳에서는 가족을 친밀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다채로운 가족 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부분 무료다. 지금 당장 인터넷을 검색해 관심이 가는 프로그램을 골라 보자. 해당 시·군·구민만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열린 경우도 많으니 옆동네 프로그램에도 눈길을 주는 게 좋다. ‘가족돌봄나눔’은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히고 가족 기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다. 정부가 ‘가족사랑의 날’로 지정한 수요일마다 가족이 함께 모이도록 지역 특성에 맞게 아빠와 함께하는 요리교실 등 가족 참여 프로그램을 월 1회 이상 제공한다. 서울 강동구 건강가정지원센터는 10월 가족사랑의 날 프로그램으로 ‘알쏭달쏭? 우리가족’을 부모와 자녀 42명이 참여한 가운데 15일과 22일 저녁 2회기에 걸쳐 무료로 진행 중이다. 미술놀이를 통해 가족 간의 관계 등을 알아보고 대화법도 배운다. 담당자 권안나씨는 “1회기에는 가족 소풍에 대해 가족이 함께 그림으로써 아이들이 어떤 때 행복한지 등을 알게 돼 좋았다는 반응들이었다”고 말했다. 초등 4년, 1년 된 아들 둘과 함께 참석한 강인선(40)씨는 “9월 찹쌀떡 만들기 프로그램에 남편도 함께 처음 참여해 보니 다들 너무 행복해해서 이번에 또 참여했는데 아이들의 솔직한 느낌을 끄집어낼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 “건강가정지원센터에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은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모두가족봉사단은 가족 2명 이상이 함께 지역사회 참여 등 봉사활동을 한 달에 1~2회 하는 프로그램이다. 모두가족품앗이는 놀이활동 등 자녀 돌봄과 양육을 이웃끼리 품앗이하도록 연결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토요가족돌봄나눔사업은 토요일에 아버지와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가족체험 등 돌봄 프로그램이다. 아버지-자녀 토요돌봄 프로그램은 아버지의 양육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취미활동, 요리교실 등 스킨십이 가능한 활동으로 구성된다. 서울 중구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아빠와 초등학생 자녀의 관계 향상을 위해 ‘프렌디 아빠 되기’ 프로그램을 매달 다양하게 무료로 운영한다. 이달에는 실내 암벽 클라이밍을 18일 충무로 헥사클라이밍센터에서 5가족 1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했다. 농구, 국립중앙박물관, 남산 애니메이션센터, 창덕궁 생태·역사 탐방 등 행사 때마다 만족도가 높다. 가족문화담당 신혜림씨는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부족하고, 어떻게 놀지도 잘 모르는데 이런 프로그램이 있어서 너무 좋다는 반응들”이라고 말했다. ‘가족교육’은 부모, 남성, 가족, 자녀를 대상으로 다양하게 이뤄져 지난해에만 총 44만여명이 참여했다. 예비 부부 및 신혼기 부부 프로그램부터 아동·청소년기와 중년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별 가족생활교육이 지역별 특성에 맞게 진행된다. 집안일과 아이돌봄을 함께 하는 멋진 남편, 멋진 아버지가 되도록 남성의 돌봄노동 참여를 위한 아버지교육, 아버지가 행복한 일터 만들기, 찾아가는 아버지학교 등 남성 대상 교육이 지역별로 개설된다. 자녀 코칭을 포함해 가정생활의 여러 영역을 총망라한 가족성장 아카데미교육도 실시된다. 서울 관악구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중2병 사춘기 자녀와 잘 통하는 방법’ 교육을 지난 15일 시작했다. 초중생 자녀를 둔 아빠 2명을 포함해 부모 20명이 참여한 가운데 매주 수요일 오전에 2시간씩 4회 진행한다. 반항하는 아이, 외모와 이성교제, 게임과 스마트폰, 공부 스트레스 등 주제별로 자녀 이해와 유용한 대화법을 배운다. 가족교육 담당 오소라씨는 “청소년기 부모교육 참여자들의 요구조사 결과 대화법에 대한 요구가 높아서 사춘기 자녀들과 갈등이 많은 주제를 선택해 기획했는데 반응이 좋다”고 말한다. ‘가족상담’도 무료로 이뤄진다. 상담을 통해 부부·부모·자녀문제 등 다양한 어려움을 치유하고 관계가 회복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이용자는 24만 여명. 보통 신청 후 2~3개월 정도 대기한다. 물론 위기 케이스는 즉각 상담으로 연결된다. 전국대표전화(1577-9337)로 걸면 가장 가까운 센터로 연결돼 상담시간을 예약하고 면접상담을 할 수 있다. 전화·인터넷상담도 가능하다. 상담과정에서 필요한 심리검사, 미술치료 등 다양한 검사도 이뤄진다. 서울 관악구 건강가정지원센터 차지영 사무국장은 “주로 면접상담으로 10~15회기로 진행한다”면서 “내담자들이 노출을 꺼려 만족도 조사는 못하지만, 이혼할 생각으로 상담을 시작했다가 부부 관계가 회복됐다며 감사 메일이나 과일을 보내오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미뤄 어느 정도 안전망 역할은 한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가족지원사업’은 우리 사회 가족구조의 변화로 등장한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 조손가족, 북한이탈주민가족 등 다양한 가족 유형별로 상담·교육·문화가 포함된 통합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은주 경기 화성시 건강가정지원센터장은 “부모 교육을 받다가 문제를 느끼면 가족 상담도 하고, 가족관계가 탄탄해지면 문화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등 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굉장히 유익한 사업을 건강가정센터가 다양하게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고, 예산 지원이 9년째 제자리여서 더 활성화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happyhome@seoul.co.kr
  • 고려 불화보다 귀한 ‘나전경함’

    고려 불화보다 귀한 ‘나전경함’

    경함(經函)이란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함을 이른다. 고려 나전칠기로 만든 경함은 통상 뚜껑 윗부분 각 모서리를 모죽임한 장방형의 형태로, 자개와 금속선을 함께 사용한다. 이 중 지난 7월 9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고려 나전칠기 경함’은 국내에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아 국보급으로 불린다. 각 면에 모란당초(牧丹唐草) 무늬가 가득 장식됐으며 2만 5000여개의 자개가 사용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 불화보다 더 중요한 유물로 꼽히는 고려 ‘나전경함’(螺鈿經函)을 비롯해 2010년부터 최근까지 수집한 불상과 불화, 초상화, 도자기 등 문화재 12점을 모아 1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상설전시관에서 신소장품 특별공개전인 ‘새롭게 선보이는 우리 문화재’전을 이어 간다. 전 세계에 단 9점만 남아 있다는 고려 나전경함을 비롯해 유물 대다수가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높이 30㎝인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입상’은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불상으로, 보석이 박혀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방형의 얼굴과 평면화된 이목구비, 얼굴이 큰 신체 비례, 선으로 새긴 옷 주름, 내의(內衣)를 입고 법의(法衣)를 양어깨에 걸친 옷차림새 등에서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정조 시대 최고의 초상화가로 꼽히는 이명기(1756~1802)가 그린 ‘김치인 초상’(1787년)은 길이 177㎝, 폭 71.5㎝로 비단에 채색한 작품이다. 왕실 화원화가인 이명기는 당시 영의정이었던 김치인을 그렸는데, 쌍학문(雙鶴紋) 흉배를 부착한 단령(團領)을 입었으며 정1품 이상이 차는 서대(犀帶)를 착용했다. 정조가 그림을 보고 내린 어찬(御贊)이 화면에 적혀 있다. 19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정왜기공도병’은 종이에 색을 입힌 것으로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1598년 전라도 순천과 인근 바다에서 벌어진 여러 전투 장면을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따라 묘사했다. 화면에 금채를 사용하고 구불구불한 윤곽선을 반복해 산을 표현한 점, 길쭉한 비례로 인물을 표현한 점 등이 일본 회화의 특징으로 꼽힌다. 박물관 측은 전쟁에 참여한 중국 종군화가의 그림을 일본 화가가 모사한 작품으로 보고 있다. 전시에는 이 밖에도 19세기 조선 시대 작품으로 사찰에서 불교 의식 등에 사용하던 북(법고)을 올려놓는 ‘법고대’와 15~16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분청사기 조화어문 편병’, 감식안과 예술적 재능을 지닌 강세황(1713~1791)의 그림 등이 포함됐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산성(하)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산성(하)

    북한산성은 신라, 고구려, 백제, 고려, 조선 등 5개 나라의 역사가 공존하는 곳이다. 북한산성의 역사는 기원전 1세기 무렵 한성백제가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토성을 쌓으면서 비롯됐다. 132년 백제 개루왕이 산성을 쌓아 북진의 기치를 높이 올렸으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점령하여 남진의 발판으로 삼았고, 551년 신라 진흥왕이 차지하여 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1387년 고려 우왕이 중흥산성을 쌓았다. 한강을 차지하는 나라가 한반도의 패권을 장악한 것이 우리 전쟁사이다. 한반도의 목구멍(咽喉)에 해당하는 이 지역을 차지하려는 각축의 역사를 웅변하는 것이 북한산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이다. ‘순수’(巡狩)란 천자가 제후의 봉지(封地)를 직접 순회하면서 현지의 통치상황을 보고받는 의례이며 순행(巡行)이란 용어가 일반적이다. 순수비란 순수를 기념해 세운 비석인데, 진흥왕 순수비의 비문 속에 나타나는 ‘순수관경’(巡狩管境)이란 구절에서 따왔다. 진흥왕은 가야 병합, 한강 유역 확보, 함경도 해안지방 진출 등 왕성한 대외정복사업을 기념하고자 4곳의 비석을 세웠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산 3번지 북한산 비봉 정상이 순수비가 서 있던 자리이다. 큰 비석이 있다고 해서 비봉(碑峰)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순수비는 함경남도 마운령비와 황초령비, 경상남도 창녕비와 더불어 진흥왕 재위 말인 568년부터 576년 사이에 세워졌다. 1972년 옮겨질 때까지 최소 1400년 동안 한강과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며 풍상을 겪었다. 이 비석의 정체는 건립 1200여 년 후인 1816년에야 밝혀졌다. 추사 김정희였다. 추사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로 서예가, 화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은 우리나라 금석학의 개조(開祖)였다. 실용학문을 연구하라는 스승 박제가와 박지원의 가르침을 좇아 금석학과 문자학, 음운학, 지리학, 천문학 등을 두루 연구했다. 그때까지 이 비석은 ‘고려 태조 비’ ‘도선국사 비’ ‘무학대사 비’ 등으로 잘못 알려졌었다. 황초령비와 북한산비의 비문을 고증한 ‘진흥이비고’(眞興二碑攷)에서 추사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지금 경도(한양)의 북쪽으로 20리쯤 되는 북한산 승가사 곁의 비봉 위에 있다. 길이는 6척 2촌 3푼(154cm)이고 너비는 3척(71cm)이며 두께는 7촌(16cm )이다. 비문은 모두 12행인데 글자가 모호하여 매 행 몇 자씩을 분별할 수 없다.…이 비문에 연월(年月)이 마멸되어 어느 해에 세워졌는지 모르겠다.…그래서 마침내 이 비를 진흥왕의 고비(古碑)로 단정하고 보니, 1200년이 지난 고적이 일조에 크게 밝혀져서 무학의 비(無學之碑)라고 하는 황당무계한 설이 변파(辨破)되었다”라고 적었다. 북한산비는 1200년 만에 주인을 찾았다. 추사는 비석 왼쪽 측면에 ‘두 번 와서 비의 글을 읽었다’라는 내용의 글을 손수 새겼다. 순수비는 1934년 국보 제3호로 지정됐다. 1400년 역사에다 추사의 글씨까지 더해지니 ‘국보 중의 국보’가 아닐 수 없다. 이를 국보 1호가 아니라 3호로 정한 일제의 간사함에 치가 떨린다. 문화적 열등감의 발호였으리라. 숭례문이 2008년 소실되고서 국보 1호 재지정 논란이 일 때마다 ‘국보의 번호는 관리번호일 뿐 가치의 순서와는 무관하다’고 변명하는 우리 문화재 당국의 순진함도 못마땅하기는 매한가지다. 추사는 비석을 발견했을 때 덮개돌이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고 적었지만 사라졌고, 한국전쟁 때 총알 세례를 받아 탄흔이 선연하다. 언제인지 모르게 몸돌 위쪽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잘렸고, 오른쪽 아래 귀퉁이는 뭉텅 떨어져 나갔다. 1972년 일단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옮겨 보존하다가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2006년 10월 그 자리에 복제비를 세웠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 그리고 남한산성과 강화성이 서울을 지키는 대표적인 성곽이다. 우리나라에는 3000개에 이르는 산성이 있고,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기원전의 고대 도시 서울주변엔 숱한 성곽의 유허가 존재하지만, 규모나 형태면에서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 성곽이 서울을 제대로 지켰나’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북한산성은 왜 쌓았을까. 한양도성의 북쪽 외곽 방어막인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은 단 한번도 서울을 사수하지 못했다. 서울을 남쪽에서 보호하는 남한산성이나 강화성과 달리 외적의 침입 때마다 무용지물이었다. 한양도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추풍낙엽으로 무너졌고, 두 번의 반정(중종과 인조) 과 이괄의 난 때도 맥없이 뚫렸다. 한국전쟁 때 창동~미아리 전선을 형성했지만 서울사수의 최후 방어선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권력자는 북쪽 외곽 방어선 축조에 집착했다. 고려의 영향이 컸다. 거란족과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태조 왕건의 관을 옮겨둔 오래된 피란처였고, 1232년 몽골 군과 격전을 치렀으며, 최영 장군의 전공이 있다는 점에서 경복궁의 뒤를 지키는 산성의 필요성을 느꼈다. 성을 지키려면 곡성(曲城)과 돈대(墩臺) 그리고 해자(垓子)가 필요하다. 한양도성은 방어용 성이 아니었다. 임진, 병자 양란에서 경험하였듯이 군사적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도성은 넓고 커서 지키기 어렵다고 여겼다. 도성의 축조가 당초에 성을 지킬 계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원래 견고하지 못하였다. 지금 만일 개축한다면 몰라도 수축만 하게 한다면 나을 것이 없을 듯하다”라는 숙종의 고변이 비변사등록에 남아있다. 조선 왕들에게 성곽은 국가 권위와 통치의 표상이었다. 외적을 방어하는 국력의 표현이기에 앞서 내부의 적대세력을 물리치는 대내용이었다. 숙종은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등 3군문에서 구역을 나눠 성을 쌓게 했다. 축조공사는 불과 6개월 만에 끝났다. 북한산성의 넓이는 49만㎡로 한양도성의 14만㎡보다 3배 이상 넓다. 왕이 집무를 볼 수 있도록 1만㎡에 124칸의 행궁을 지었다. 2만 6000섬의 군량미를 확보하고, 저수지 26개와 우물 99개를 팠다. 인수봉~백운대~만경대~용암봉~시단봉~보현봉~문수봉~나한봉~용혈봉~미륵봉(의상봉)~원효봉~영취봉 같은 험한 봉우리를 이어 구축한 포곡식 산성이다. 숙종은 몸소 시단봉 동장대에 올라 9.73km에 이르는 산성의 위용을 만끽했다. 그러나 이때 지은 성곽과 행궁은 1915년 대홍수 때 대부분 떠내려갔다. 이중환은 ‘택리지‘ 팔도총론 경기편에서 도성과 산성에 관해 여러 차례 의견을 피력했다. “비록 산세를 따라 성을 쌓은 것이나 정동방과 서남쪽이 낮고 허하다. 또 성 위에 작은 담을 쌓지 않았고, 해자도 파지 않았다. 그래서 임진년과 병자년의 두 난리 때 모두 지켜내지 못했다”라고 한양도성의 가치를 깎아내렸다. 북한산성에 대해서도 “숙종 때 조정에서 도성을 고쳐 쌓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동쪽이 너무 낮아서 만약에 강을 막아 그 물을 성에다 댄다면 성 안 백성은 모두 물고기 신세’라는 말이 있어 그 논의는 중지되고 말았다”라고 언급했다. 숙종 재위 기간 내내 이어진 산성 축조 논쟁을 지적한 말이다. 북한산성 축조가 처음 논의된 1675년부터 완공된 1711년까지 무려 36년을 끈 북한산성 축조논쟁을 비꼰 것이다. “도성을 버리고 북한산성으로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전략인가” “북한산성을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겠는가” “북한산성은 험준하여 지키기는 좋지만 도성민을 수용하기는 좁지 않은가” “물자와 인력이 부족하니 강화성이나 남한산성 둘 중 하나는 포기하는 게 옳다” 등의 온갖 논의가 난무했다. 찬반의 논리는 단순했다. 찬성론자들은 유사시 왕이 피할 곳이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고, 반대론자들은 병자호란 때 청과 맺은 정축조약의 ‘성곽을 수축할 수 없다’라는 조항을 위배해선 안 된다면서 맞섰다. 숙종이 북한산성을 짓기로 용단을 내린 것은 1710년 청으로부터 날라온 한 장의 외교문서가 결정적이었다. ‘왜구의 노략질이 심하니 연해 지방의 방어에 유의하라’는 문서가 성곽수축 금지조항을 해제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반대논리를 잃자 축성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청화자 이중환은 비판적이다. “도성에서 서쪽으로 5리를 가면 사현(무악재)이 되고, 그 고개를 넘으면 녹번현이 있다. 당나라 장수가 여기를 지나면서 ‘한 사람이 관문을 막으면 만 사람이라도 열 수 없겠다’하였다고 한다. 또 서쪽으로 40리를 가면 벽제령인데 임진년 왜란 때 이여송이 패한 곳이다. 고개 두 곳과 벽제령은 모두 관문을 설치할 만한 곳이다. …천연적인 험한 곳을 버리는 것이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벽제령에서 남쪽으로 40리를 가면 임진나루터이다.…아주 험하게 되어 있으니 참으로 지킬 만한 곳이다”라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소용도 없는 도성과 산성을 짓는다고 백성을 달달 볶거나 세금을 축내지 말고 지킬 만한 곳을 찾아서 지키라는 주장이었다. 천 번 만 번 지당한 말씀이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씨줄날줄] 훈맹정음/서동철 논설위원

    송암 박두성(1888~1963) 선생은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린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했듯, 박 선생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15세기 위대한 업적이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훈맹정음이 나오기 전까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1994년 한글점자연구위원회가 확정해 현재 쓰고 있는 한글 점자 통일안은 1926년 박 선생이 내놓은 훈맹정음을 바탕으로 여러 차례 개정해 이루어진 것이다.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1913년 국립맹학교의 전신인 제생원 맹아부에 교사로 부임하면서 점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닫히고 세상도 닫혀 버린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점자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일본에서 점자인쇄기를 들여와 한국 최초로 점자 교과서를 출판했지만 일본어 점자라는 한계는 여전했다. 한글 점자가 아니더라도 선생의 우리말 사랑은 지극했던 것 같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뒤 조선총독부가 제생원 맹아부의 조선어 과목을 없애려고 하자 그는 “눈이 없다고 사람을 통째로 버리면 되겠느냐.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게 모국어를 안 가르치면 이중의 불구가 되어 생활을 못하는 것”이라고 항의해 조선어 과목을 유지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1921년 한글 점자 개발에 들어간 선생은 1923년 제자들과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라는 비밀조직을 결성해 연구를 본격화했고 마침내 3년 뒤 최초의 한글 점자를 발표할 수 있었다. 선생은 캄캄한 밤에 촛불도 켜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더듬어 가며 한글 점자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후 ‘배우지 않으면 마음조차 암흑이 된다’며 훈맹정음을 시각장애인에게 보급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점자 콘텐츠 확보를 위한 점역(點譯)에도 힘을 쏟았다. 한글날인 9일 국립한글박물관이 문을 연다. 한글박물관은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동쪽에 자리 잡았다. 중앙박물관이 유형문화유산의 보고라면, 한글박물관은 가장 중요한 무형문화유산의 새로운 보금자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글박물관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대표하는 자료 1만점을 수집했다고 한다. 기증받은 훈맹정음도 전시될 것이라는 소식이 반가웠다. 인천시가 박두성 선생의 고향인 강화군 교동도에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만들어 그의 한글 사랑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헌신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뉴스도 있다. 강화도와 이어지는 다리 공사가 한창인 교동도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 될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한글날에 국립한글박물관 개관

    한글날에 국립한글박물관 개관

    민족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국립한글박물관이 9일 제568돌 한글날에 맞춰 문을 연다. 문영호 국립한글박물관 초대 관장은 박물관 공식 개관에 앞선 언론 공개 설명회에서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한글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면서 “한글의 문자·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과학·산업·예술 등 여러 분야와의 소통을 통해 한글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중심기관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한쪽에 연면적 1만 1322㎡,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들어선 한글박물관은 문화행사, 전시, 교육 등이 가능한 잔디마당 등도 갖추고 있다. 개관에 맞춰 준비한 기획전시실에서는 ‘세종대왕, 한글문화 시대를 열다’라는 주제로 세종시대의 한글문화와 전통 유물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정연두, 이지원 등 현대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세종대왕이 뿌리내린 한글이라는 씨앗이 어떻게 현대의 한글문화로 발전했는지를 살피도록 상설전시실도 꾸몄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용비어천가, 월인석보와 같은 한글 창제기 제1급 국보는 물론 생활 속 한글 사용을 엿보게 하는 한글 편지와 한글 악보, 한글을 새긴 도자기나 소반 같은 유물도 내놓는다. 훈민정음은 간송미술관에서 대여해 한시적으로 전시한다. 또한 어린이와 외국인을 위한 배움과 체험의 공간 ‘한글 놀이터’, ‘한글 배움터’도 마련됐다. ‘쉬운 한글’, ‘예쁜 한글’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한글의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이다. 이와 함께 세계 검색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한 검색 포털사이트 구글은 어린이는 물론 외국인들이 짧은 시간 동안 한글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박물관 측에 기부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청화백자/서동철 논설위원

    이탈리아 베네치아화파(畫派)의 조반니 벨리니가 1514년 그린 ‘신들의 향연’(The Feast of the Gods)에는 중국산으로 추정되는 세 점의 청화백자가 등장한다. 이탈리아에서 중국산 자기를 이렇듯 자세하게 묘사한 것은 처음이다. 이탈리아와 중국의 직접적인 교섭은 없었으니 중국에서 이슬람 세계로 수출된 그릇이 유럽으로 전해진 결과일 것이다. 미술사학자들은 그림에 나오는 청화백자 가운데 두 점은 명나라의 홍치제(弘治帝·1488~1505) 연간에 만들어진 청화백자와 유사하다고 본다. ‘신들의 향연’에 청화백자가 등장하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림의 제목에서 보듯 이 그림은 천상의 세계를 묘사한 것이다. 오른쪽 여인이 머리에 인 물병을 제외하고 화면에 등장하는 나머지 그릇은 모두 청화백자다. 청화백자가 ‘신들의 향연’에 반드시 사용돼야 할 만큼 가치 있는 그릇이라는 당대의 인식을 상징한다. 유럽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이 19세기 일본의 판화 우키요에(浮世繪)를 소재로 삼기 이전에 중국 청화백자를 적극적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유럽 사람들의 청화백자 사랑은 상상을 초월했다. 중국 장시성(江西省) 징더전(景德鎭)은 송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는 동안 세계 도자기의 메카였다. 지금도 유럽 고성(古城)에 가면 영주들이 쓰던 중국산 청화백자 몇 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시관에는 그다지 품질이 좋지 않은 그릇도 애지중지 모셔 놓은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중·일을 제외하고는 최대의 청화백자 컬렉션을 갖고 있다는 터키 이스탄불의 톱카프 박물관에서는 깨진 청화백자를 철사로 얼기설기 때운 흔적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이슬람 왕국의 궁정에서 사용한 것이다. 15~16세기 청화백자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 베트남 정도밖에 없었다. 청화백자는 수입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던 유럽뿐 아니라 생산국에서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청화백자란 누르스름한 태토에 누르스름한 유약을 바르고, 역시 누르스름한 코발트 안료를 칠해 고온으로 구운 결과 새햐얀 그릇 표면에 새파란 문양이 드러나는 하이테크의 산물이다. 청화백자가 금은보화에 못지않은 사치품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을 수도 있다는 것은 ‘경국대전’에서도 경계했다.‘관청 근무자로 금· 은, 청화백자를 사용하는 자는 장 팔십에 처한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청화백자를 주제로 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조선청화, 푸른빛에 물들다’ 전시회에는 500점의 청화백자가 출품됐다. 청화백자의 역사를 돌아보고, 그 아름다움을 반추할 수 있는 기회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아~ 푸른빛에 물든 청화백자

    아~ 푸른빛에 물든 청화백자

    조선시대 백자는 왕실의 그릇이었다. 금보다 비싼, 페르시아에서 수입한 청화(코발트)를 안료로 만든 탓에 사치의 대명사로 인식됐다. 영·정조 때는 아예 ‘청화백자’(靑華白磁)를 임의로 만들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율했다. 청화백자는 중국 원대에 처음 등장한 뒤 유럽에 수출돼 ‘시누아즈리’란 중국풍을 일으켰다. 조선 청화백자가 등장한 것은 15세기 무렵으로 중국의 청화백자를 모방한 뒤 점차 특유의 멋과 맛을 표현해 나갔다. 왕실은 경기도 광주에 자리한 왕실 주도의 ‘관요’(官窯)를 직접 관리하며 이곳에서 생산된 백자에 왕실 도화서 화원들이 사군자나 산수, 인물, 화초, 동물 등을 그리도록 했다. 최고 수준의 공예와 회화가 결합된 왕실 미의식의 정수라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다. 서울 용산구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같은 청화백자를 주제로 무려 500여점의 도자가 등장하는 특별전 ‘조선청화, 푸른빛에 물들다’를 30일 개막한다. 오는 11월 16일까지 이어지는 역대 최대 규모의 특별전에는 국보·보물급 도자 10점을 비롯해 국립고궁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호림박물관 등 14개 기관이 손꼽는 조선 청화백자 대표작이 한자리에 모인다. 진귀한 조선 전기의 청화백자부터 원숙미를 뽐내는 19세기 작품 등을 망라했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과 이데미쓰미술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소장된 조선 청화백자 명품들과 중국 명대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영락·선덕제 시기의 청화백자, 일본 이마리 자기 등도 함께 선보인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들은 일제강점기 이후 공개되지 않고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온 청화백자 150여점이다. 박물관 측이 수장고에 소장한 30만점의 유물 가운데 일부다. 전시 관계자는 “그간 이렇다 할 기회가 없어 일반에 미처 공개하지 못했던 유물들”이라고 설명했다. 19세기 청화백자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일반에 보급됐던 실용기들이란 박물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처음 공개되는 유물들은 화려함을 뽐낸다. 괴석 꽃무늬 사각 합, 당곡이란 글씨가 쓰인 넝쿨무늬 병, 모란무늬 발, 산수 인물무늬 항아리, 물고기와 십장생무늬를 지닌 세반, 포도무늬 화분받침대, 산수무늬 사각병 등이다. 정조가 죽은 뒤 사대부 명문가를 중심으로 청화백자 제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향락적 풍토가 확산됐다는 학설이 굳어질 정도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를 마련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기획자들은 수장고에 어느 정도 규모의 청화백자가 보관돼 있고, 또 전체 도자는 몇 점이나 되는지 등을 여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체 전시의 초점도 기존 명품들에 쏠려 있어 ‘옥에 티’가 됐다. 새롭게 세상에 모습을 내민 150여점의 청화백자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어느 정도 가치를 지녔는지에 대해선 명확한 설명이 따르지 않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아동학대 착한 신고 캠페인’ 선포식

    ‘아동학대 착한 신고 캠페인’ 선포식

    16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2014 아동학대 착한 신고 캠페인’ 선포식에서 의사 여에스더(왼쪽부터)씨와 뮤지컬 배우 손준호씨 등 홍보대사 및 내빈들이 신고 전화번호가 적힌 패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는 29일부터 아동학대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및 개정 아동복지법이 시행된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박원순·이스탄불시장 13일 회동… 내년 우호 10주년 교류협력 논의

    박원순·이스탄불시장 13일 회동… 내년 우호 10주년 교류협력 논의

    박원순 서울시장은 방한 중인 카디르 톱바스 이스탄불 시장과 13일 만나 내년 우호도시 10주년 행사 등 양 도시 간 교류 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카디르 톱바스 시장은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대구, 경주 등 주요 도시를 예방하고 ‘이스탄불 인 코리아’ 행사를 위해 방한 중이다. 이번 면담은 우호협력 10주년을 맞는 내년을 양 도시의 교류협력 원년으로 삼기 위함이다. 서울시는 이번 회담이 두 도시 간 교류의 새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시민에게 이스탄불의 문화예술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이스탄불 in 서울 2014’ 공연을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시와 이스탄불시의 공동 주관으로 서울국립중앙박물관 용극장에서 열린다. 14일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하는 공연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120년 동학정신, 세계화·대중화로 通한다

    120년 동학정신, 세계화·대중화로 通한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동학농민혁명 제120주년기념대회 추진위원회(추진위)는 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에서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대회 출범식을 갖고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킬 것을 선언했다. 추진위는 천도교중앙총부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전국동학농민혁명유족회 등 3개 단체로 구성된 협의체. 이들은 지난 5월 서울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양해각서( MOU)를 체결, ‘사람, 다시 하늘이 되다’라는 주제의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할 것을 결의했다. 추진위는 우선 다음달 1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시청 대강당에서 120주년 기념식을 열어 시대 과제 해결을 지향하는 동학정신과 실천 과제들을 선정 발표키로 했다. 이에 앞서 10일 오후 5시부터 분당 새마을운동연수원에서 전국 각지의 동학농민군 후손과 천도교 교인, 지역별 동학농민운동가, 시민 등 500명이 모여 전야제를 치른다. 11일 오전 10시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역사, 평화, 미래’를 주제로 한 동학농민혁명문화축제를 진행한다. 이 자리는 일반 시민과 청년 학생들이 그동안 동학의 가치를 발굴 선양하는 데 힘써 온 세대들과 소통하면서 동학의 미래상을 만들어가는 축제 한마당으로 펼쳐진다. 이와 관련해 동학농민혁명을 세계화하기 위해 국제학술대회와 남북 공동행사도 준비한다. 우선 다음달 28, 2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는 한·중·일 3국을 비롯해 구미 각국의 동학 연구자들이 모여 동학농민혁명의 미래화를 위한 주제들을 놓고 발표와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천도교 주관으로 북한에서 개최를 추진 중인 남북공동행사도 주목받는 행사. 남북 천도교는 지난 7월 개성에서 만나 오는 17∼20일 평양과 해주에서 학술세미나를 열고 동학혁명 전적지를 함께 순례하기로 협의했지만 지난 6일 북한 조선천도교중앙위원회와 천도교청우당 측이 “공동행사는 어렵다”며 오는 10월 3일 자체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이에 따라 천도교는 조속한 시일 내에 개성에서 실무자 회의를 열자고 제의했으나 아직 답신이 없는 상태다. 북한에서는 조선천도교중앙위원회와 천도교청우당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이념적 계승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여왔다. 천도교는 지난해부터 올해 120주년을 계기로 남북의 동학 후손들과 학자, 관련 단체 활동가들의 만남과 연대 교류를 본격적으로 벌이기 위해 준비해 왔다. 천도교는 특히 120주년 행사를 1회성의 기념행사가 아닌 지속 사업으로 연결시켜 나갈 계획이다. 오는 11월까지 일반 시민과 역사관련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국내외 동학관련 유적지를 방문하는 ‘동학기행’을 진행하는 한편 ‘동학시민강좌’를 서울·부산·대전·대구·남해에서 차례로 열기로 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온 가족이 모였다면 이곳 안 들르면 섭섭하지요

    온 가족이 모였다면 이곳 안 들르면 섭섭하지요

    닷새간 이어지는 올 추석 연휴에는 고궁과 미술관, 박물관 등 전국의 문화예술시설에서 다채로운 행사와 전시가 마련된다. 전국 13개 국립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서울·과천·덕수궁관), 4대 궁, 종묘, 조선왕릉 등은 휴무 없이 관람객을 맞는다. 추석 당일에는 창덕궁 후원을 제외한 4대 궁과 종묘, 조선왕릉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6일 ‘해설이 있는 종묘제례악’ 행사가 종묘 재궁 앞에서 열리며, 7일 오전에는 창덕궁 후원을 산책하며 조선 국왕과 세자들의 사랑 이야기, 풍류음악을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국립국악원의 ‘소현세자가 꿈꾸는 조선’ 전통극도 즐길 수 있다. 8~9일에는 ‘이춘희 명창’의 경기민요 공연이 덕수궁 즉조당 뜰 앞에서 펼쳐진다. 이 밖에 추석 당일 ‘가야금 3중주 공연’이 현충사 충무공 고택 앞에서 진행되며 세종대왕릉과 칠백의총에서는 전통 민속놀이인 투호·윷놀이 등의 체험 기회가 주어진다. 전국 4개 국립국악원에서도 연휴 기간 단막창극 박 속의 복(福), 아리랑노래자랑, 가야금병창 아리랑 연곡, 팔도민요 연곡 등 전통 국악 공연들을 마련했다. 국립무형유산원에서도 ‘이리농악’(5일·전북 익산 배산체육공원)을 비롯해 공예 종목으로 ‘배첩장’(2~13일·충북 청주 배첩전수교육관) 전시를 연다. 전시장에선 장인의 공예기술 시연도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추석 당일과 다음날(8~9일) 국악 공연 ‘창작국악 더(The) 정글’과 ‘다 함께 놀자! 신명나는 한판 유희노리’를 연다. 김해·청주·제주 등 전국 12개 지방박물관에서도 전통 민속놀이 체험, 이판사판미(美)친광대 공연, 퓨전국악 콘서트, 떡메치기 체험 등 40여 개의 문화행사를 연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강강술래와 어린이뮤지컬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한가위 OX 퀴즈’, ‘베트남 추석 알기’ 등 45개의 공연·전시·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올 한가위 미술관도 풍성한 전시를 마련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연휴 기간에 첨단 뉴미디어 아트를 다루는 설치 작품 전시인 ‘초자연’전과 수학과 미술을 접목한 ‘매트릭스: 수학-순수에의 동경과 심연’전을 이어 간다. 서울관 마당에선 프로젝트팀 ‘문지방’(최장원·박천강·권경민)의 설치 작품 ‘신선놀음’도 만날 수 있다. 추석 당일에는 퓨전 국악 공연을 선보인다. 과천관에서는 ‘올해의 작가’ 후보로 선정된 구동희(40)·김신일(43)·노순택(43)·장지아(41) 작가가 참여하는 ‘올해의 작가상 2014’전이 이어진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는 ‘귀신, 간첩, 할머니’를 주제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가 계속된다. 천경자 화백의 기증작을 선보이는 상설전시실에서는 10여년 만에 작품을 전면 교체해 ‘영원한 나르시스트, 천경자’전을 열고 있다. 시립미술관의 남현동 남서울생활미술관과 중계동 북서울미술관도 연휴 기간에 관람객을 맞는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개관 10주년을 맞아 ‘교감’전을 이어 간다. 국보급 미술품을 비롯해 다양한 소장품을 대거 선보인다. 연휴 첫날인 6일과 대체공휴일인 10일에만 문을 열고 7∼9일은 휴관이다. 종로구 원서동 ‘공간’ 사옥을 리모델링한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는 개관전 ‘리얼리?’가 열린다.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의 컬렉션 3700여점 중 작가 43명의 작품 96점을 선보인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미술관은 대학 실험실처럼 늘 열려 있고 토론 자유로워야”

    “미술관은 대학 실험실처럼 늘 열려 있고 토론 자유로워야”

    “미술관은 대학의 실험실과 같습니다. 언제나 열려 있고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해야 합니다.”(니콜라스 세로타 영국 테이트미술관 총관장) 세계 미술계의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인 ‘확장하는 예술경험’ 포럼이 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리움 개관 10주년과 광주비엔날레 창설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아트포럼에는 세로타 영국 테이트미술관 총관장을 비롯해 리처드 암스트롱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장, 오쿠이 엔위저 2015 베니스비엔날레 예술감독, 제르마노 첼란트 프라다재단 관장, 아네테 쿨렌캄프 독일 카셀 도큐멘타 대표이사, 바르토메오 마리 스페인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장 등 거물급 미술계 인사가 대거 참여해 현대미술관의 진화 방향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국내 인사 중에는 홍라영 리움 총괄부관장을 비롯해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선정 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 예술감독 등이 참석했다. 홍라희 리움 관장은 리움 개관식 이후 10년 만에 미술관 행사에 공식 참석해 환영사를 했다. 남편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세로타 테이트미술관 총관장은 21세기 미술관의 도전 과제에 관한 기조 강연에서 “미술관의 개념은 계속 변화해 왔고 앞으로 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21세기 미술관의 역할은 어떻게 작가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더 능동적으로 관람객의 참여를 끌어내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어 2003년 테이트미술관에서 진행한 관람객 참여 행사를 예로 들며 “미술관은 사회의 변화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늘 변화를 자극하면서도 구성원에게 편안함을 안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로타 관장은 테이트 모던을 비롯해 4개 미술관을 운영하는 테이트그룹의 총관장을 26년째 맡고 있다. 이어 토론에 나선 암스트롱 구겐하임미술관장은 “구겐하임의 전시는 늘 새로운 동선을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며 “다른 미술관과의 차별을 위해 조성한 중앙의 거대한 나선형 구조와 비교적 낮은 천장, 굴곡진 벽면들은 작품 설치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베니스, 라스베이거스, 베를린, 빌바오, 아부다비의 구겐하임미술관처럼 현대 미술관은 미술, 전시, 건축, 프로그램 등 각각의 맥락에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포럼은 4일 광주비엔날레 거시기홀에서 ‘비엔날레의 확장과 현대미술의 진화’ 등을 주제로 계속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인왕산 백운동계곡 서울시 문화재 지정

    인왕산 백운동계곡 서울시 문화재 지정

    종로구 인왕산 백운동계곡이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된다. 20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8일 백운동계곡에 대해 기념물 지정을 의결했다. 시는 21일자 시보에 기재해 향후 한달에 걸쳐 각계의 의견을 듣는다. 백운동계곡 일대 8675.5㎡와 구한말 법무대신이자 독립운동가인 동농 김가진 선생이 1903년(광무 7년) 백운동천(白雲洞天)이라는 글을 적은 바위가 대상이다. 총 7개 필지로 바위와 3개 필지는 서울시, 1개 필지는 종로구, 3개 필지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소유다. ‘동천’이라는 말은 기막힌 절경을 뽐내는 곳에 붙인다. 서울 도심의 비밀 정원으로 불리는 청와대 뒤 부암동 백석동천(白石洞天)의 자취도 커다란 바위 글씨와 함께 또렷이 남아 있다. 현재 자하문터널 위쪽에 위치한 백운동계곡 인근은 조선 때 ‘백운동’(白雲洞)으로 불렸다. 각 관아의 사무 처리에 필요한 행정법규와 사례를 편집한 행정법전인 ‘육전조례’와 각 도의 지리, 풍속 등을 기록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청계천의 수원으로 기록돼 있다. 또 성현(1439~1504)이 지은 ‘용재총화’와 이긍익(1736~1806)의 ‘연려실기술’ 등 조선시대 문집이나 사서, 역사지리지에서 명승지로 소개돼 있다. 한양도성도(1770년), 동여도(1856~1872년) 등 고지도에서도 그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백운동’(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회화에 기록된 풍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백운동은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청학동과 함께 조선 5대 명소로 꼽히기도 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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