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남쿠릴 왜 집착하나/ 북방4섬 반환 교두보 포석
일본이 남 쿠릴열도의 한국 어선 조업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러시아와 진행 중인 북방 4개 섬 반환 협상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로부터 북방 4개 섬을 돌려 받는 데 최대의 외교역량을 기울이고 있는 일본 정부로서는 이른바 ‘제3국의조업’은 협상의 장애물일 수밖에 없다.
남 쿠릴열도와 해역이 ‘일본 땅,일본 바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일본측은 이 해역을 현실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이유로 한국 어선이 일본이 아닌 러시아 당국으로부터조업 허가를 받는 자체에 당혹감을 느끼고 재빨리 행동에나섰다.그래서 한국 정부를 따돌리고 러시아 정부와의 담판에 총력을 기울여 ‘내년부터 제3국 조업 금지합의’라는 외교 성과를 따낸 것이다.
북방 4개 섬은 지난 45년 8월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고 항복한 직후 옛 소련에 의해 점령된 홋카이도(北海道) 동북쪽 구나시리(國後) 등 섬 4곳을 가리킨다.한국,중국과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독도,센카쿠(尖閣) 열도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북방 4개 섬 반환은전후 일본 최대의 외교 현안으로 여겨져 왔다.72년 미국으로부터오키나와(沖繩)를 반환받은 이후 역대 정권은 20세기 안으로 이들 북방 섬을 돌려받겠다고 러시아와의 반환 협상에정권의 명운을 걸다시피 했다.
93년 일본을 방문한 옐친 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총리가 회담,“북방 4개 섬을 반환하고 평화조약체결을 지향한다”는 도쿄선언을 발표하고 양국은 본격적인 협상을 벌여 왔다.그러나 섬을 돌려주는 유리한 입장에있는 러시아측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느긋한 태도로 나와 협상은 그다지 진전을 보지 못했다.
97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는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국내의 비난을 무릅쓰고 러시아측에 “러·일간에국경선을 확정짓는다면 4개 섬 가운데 2개 섬의 반환은 연기할 수 있다”는 절충안을 제시했으나 이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그런 가운데 남 쿠릴 해역에서의 제3국 조업 문제가 터지자 일본 정부가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한국과의 관계가 보다 악화될 것을 뻔히 예견하면서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일본정부가 러시아와 이 같은 합의를 한 것은 북방 4개 섬 반환에 일본 정부가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를 방증하고 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사할린주 56개 작은섬이 있는 쿠릴 열도.
러시아 극동지역 사할린 주에 속하는 56개의 작은 섬들.
러시아 캄차카 반도의 남단에서부터 일본 홋카이도의 북동부에 이르기까지 1,200㎞에 걸쳐 길게 늘어서 있다.열도의 면적을 모두 합치면 1만5,600㎢가량 된다.
17∼18세기에 러시아인들이 최초로 정착했다.그러다 1855년 일본인들이 남쪽의 섬들을 점령했다.일본은 1875년 열도 전체를 손에 넣었다.1945년 일본의 2차세계대전 패전에따라 쿠릴 열도는 다시 옛 소련에 양도됐으며, 일본인들은추방됐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열도의 남단에 있는 4개 섬을 ‘북방 4개도서’로 칭하며 역사적인 권리를 주장,영토분쟁이계속되고 있다.이 섬들을 러시아는 ‘남 쿠릴열도’라 부른다.남쿠릴열도 인근 수역은 우리나라의 연간 꽁치수요 4만5,000t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1만5,000t을 공급할 만큼중요한 어장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양손에 떡 든 러시아 “어느쪽이든 챙기면 된다”.
러시아 정부는 양 손에 떡을 들고 있는 형국이다.상대가어느 쪽이든 남 쿠릴 열도에서 조업할 때 내는 입어료를챙기기만 하면 된다는 극도의 ‘실리 외교’를 구사하고있다.
일본과의 실무협의에 이은 지난 9일의 러·일 차관급 협의에서 제3국의 조업 금지에 대체로 합의해 주면서 한국등이 내는 입어료 외에 ‘플러스 알파’를 조건으로 제시받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방 4개 섬 협상을 일본과 벌이고 있는 러시아 정부로서는 일본 정부의 체면을 살려줌으로써 외교적으로 보다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러시아는 일본 정부로부터 실리와 명분을 모두 챙긴 셈이다.
추석 직전 모스크바 한·러 고위당국자간 정책협의회를비롯해 남 쿠릴 조업 문제와 관련한 공식·비공식 협의에서 한국측에 호의를 보였던 러시아 정부는 조업 금지 조치가 한국과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재료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러시아는 조업 금지가 한국 등을 고의적으로 배제하는 국가간의 신뢰 문제가 아닌 단순한 계약상의 문제라며 한국정부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일본 정부도 제3국조업 금지 합의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방한 전에 언론에 흘림으로써 러시아측에 단단히 못을 박았다.
따라서 홍승용(洪承湧) 해양수산부 차관을 비롯한 정부 대표단이 러시아에 파견돼 ‘막판 뒤집기’를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 황성기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