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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李鍾澤(전 서울신문 전산부 차장)씨 별세 16일 오후 6시30분 경기도 평택시 안중읍 송담리 자택,발인 18일 오전 8시 (031)681-8554 ●趙甲鎬(LG화학 홍보팀장)丙鎬(LTS코리아 대표)씨 부친상 宋大勳(삼진상회 대표)玄龍植(경산시 직원)씨 빙부상 15일 오후 7시 경북 경산시 신동산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53)812-4001,019-232-7035 ●金正淳(전 삼성라이온즈 회장·전 제일제당 사장)씨 별세 東勳(삼성전자 직원)씨 부친상 成昌垠(CJ푸드빌 대리)朴容泰(서울삼성병원 피부과 의사)씨 빙부상 13일 오전 5시 삼성서울병원,발인 19일 오전 9시 (02)3410-6915 ●閔丙九(한국경제TV 경영관리팀장)씨 모친상 16일 오전 6시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발인 18일 오전 6시 (02)3779-2195 ●宋炳奎(전 동아증권 부사장·전 외환은행 부장)씨 별세 昌純(외환은행 부부장)東訓(한미은행 국제금융팀장)씨 부친상 14일 오후 7시 서울보훈병원,발인 17일 오전 7시40분 (02)478-6499 ●金致重(한국무역협회 사이버연수팀장)씨 모친상 15일 오전 3시3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7일 오전 6시30분 (02)3410-6905 ●林斗榮(전 삼성생명 임원)씨 모친상 金政平(전 수자원공사 소장)申定植(변호사)金學烈(한국환경 임원)씨 빙모상 16일 오전 4시3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08 ●姜相旭(동원증권 삼성동지점장)씨 부친상 14일 오후 11시4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7일 오전 9시 (02)3410-6911 ●朴炯俊(해군 대령)華圭(캐나다 거주)勇俊(자영업)씨 모친상 金鍾(서울 성지고 교사)씨 빙모상 16일 오전 5시30분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18일 오전 8시 (02)929-6699 ●金應泰(한양증권 대리)恩炅(한국지인 차장)씨 부친상 崔鎭圭(육군 소령)黃龍燮(신창건설 대리)씨 빙부상 15일 오후 4시39분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2)921-3499 ●金珉基(KTF 대리)씨 부친상 16일 오전 9시10분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18일 오전 8시 (02)921-2299 ●趙晟祐(자영업)씨 부친상 金正泰(평택시 태광중 교수)씨 빙부상 15일 오후 6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60 ●金相默(자영업)相沅(평화토건 사장)씨 모친상 汶燮(서울경제신문 정보과학부 기자)씨 조모상 金榮基(평화토건 회장)씨 빙모상 15일 오전 11시 서울 월곡동성당,발인 17일 오전 10시 (02)909-3299 ●尹支鎬(한미전척 대표)中鎬(〃 상무)三鎬(〃 상무)씨 부친상 鄭重松(양주백석중 교장)씨 빙부상 16일 오전 7시2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8일 오전 8시30분 (02)3010-2268 ●姜炳基(민주노동당 진주시지구당위원장)炳雄(우리영농조합법인 직원)炳贊(현대해상화재보험 무한지점장)美正(진주고 교사)美蘭(반림중 교사)씨 부친상 千暳星(진주복지원 상담부장)朴泰奎(하나은행 RM 부장)씨 빙부상 13일 오후 5시50분 경남 진주전문장례식장,발인 17일 오전 10시 (055)763-2647 ●朴昶泫(자영업)載奎(신용보증기금 남동지점장)載學(자영업)載沆(〃)씨 모친상 任美知男(자영업)씨 빙모상 16일 오전 4시44분 경남 김해중앙병원,발인 18일 오전 9시30분 (055)324-4411 ●金光會(㈜LG유통 차장)씨 부친상 崔承國(대우정보시스템㈜ 상무)全重湳(충북대 교수)씨 빙부상 16일 오전 11시 서울아산병원,발인 18일 오전 7시30분 (02)3010-2291
  • [부고]

    ●李鍾澤(전 서울신문 전산부 차장)씨 별세 16일 오후 6시30분 경기도 평택시 안중읍 송담리 자택,발인 18일 오전 8시 (031)681-8554 ●趙甲鎬(LG화학 홍보팀장)丙鎬(LTS코리아 대표)씨 부친상 宋大勳(삼진상회 대표)玄龍植(경산시 직원)씨 빙부상 15일 오후 7시 경북 경산시 신동산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53)812-4001,019-232-7035 ●金正淳(전 삼성라이온즈 회장·전 제일제당 사장)씨 별세 東勳(삼성전자 직원)씨 부친상 成昌垠(CJ푸드빌 대리)朴容泰(서울삼성병원 피부과 의사)씨 빙부상 13일 오전 5시 삼성서울병원,발인 19일 오전 9시 (02)3410-6915 ●閔丙九(한국경제TV 경영관리팀장)씨 모친상 16일 오전 6시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발인 18일 오전 6시 (02)3779-2195 ●宋炳奎(전 동아증권 부사장·전 외환은행 부장)씨 별세 昌純(외환은행 부부장)東訓(한미은행 국제금융팀장)씨 부친상 14일 오후 7시 서울보훈병원,발인 17일 오전 7시40분 (02)478-6499 ●金致重(한국무역협회 사이버연수팀장)씨 모친상 15일 오전 3시3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7일 오전 6시30분 (02)3410-6905 ●林斗榮(전 삼성생명 임원)씨 모친상 金政平(전 수자원공사 소장)申定植(변호사)金學烈(한국환경 임원)씨 빙모상 16일 오전 4시3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08 ●姜相旭(동원증권 삼성동지점장)씨 부친상 14일 오후 11시4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7일 오전 9시 (02)3410-6911 ●朴炯俊(해군 대령)華圭(캐나다 거주)勇俊(자영업)씨 모친상 金鍾(서울 성지고 교사)씨 빙모상 16일 오전 5시30분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18일 오전 8시 (02)929-6699 ●金應泰(한양증권 대리)恩炅(한국지인 차장)씨 부친상 崔鎭圭(육군 소령)黃龍燮(신창건설 대리)씨 빙부상 15일 오후 4시39분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2)921-3499 ●金珉基(KTF 대리)씨 부친상 16일 오전 9시10분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18일 오전 8시 (02)921-2299 ●趙晟祐(자영업)씨 부친상 金正泰(평택시 태광중 교수)씨 빙부상 15일 오후 6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60 ●金相默(자영업)相沅(평화토건 사장)씨 모친상 汶燮(서울경제신문 정보과학부 기자)씨 조모상 金榮基(평화토건 회장)씨 빙모상 15일 오전 11시 서울 월곡동성당,발인 17일 오전 10시 (02)909-3299 ●尹支鎬(한미전척 대표)中鎬(〃 상무)三鎬(〃 상무)씨 부친상 鄭重松(양주백석중 교장)씨 빙부상 16일 오전 7시2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8일 오전 8시30분 (02)3010-2268 ●姜炳基(민주노동당 진주시지구당위원장)炳雄(우리영농조합법인 직원)炳贊(현대해상화재보험 무한지점장)美正(진주고 교사)美蘭(반림중 교사)씨 부친상 千暳星(진주복지원 상담부장)朴泰奎(하나은행 RM 부장)씨 빙부상 13일 오후 5시50분 경남 진주전문장례식장,발인 17일 오전 10시 (055)763-2647 ●朴昶泫(자영업)載奎(신용보증기금 남동지점장)載學(자영업)載沆(〃)씨 모친상 任美知男(자영업)씨 빙모상 16일 오전 4시44분 경남 김해중앙병원,발인 18일 오전 9시30분 (055)324-4411 ●金光會(㈜LG유통 차장)씨 부친상 崔承國(대우정보시스템㈜ 상무)全重湳(충북대 교수)씨 빙부상 16일 오전 11시 서울아산병원,발인 18일 오전 7시30분 (02)3010-2291˝
  • 가전업계 '귀족 마케팅’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악의 불경기가 예상되는 국내 가전업계가 ‘귀족마케팅’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양문형냉장고,PDP TV 등 프리미엄 제품 고객을 집중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LG전자는 15일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일대일 고객관리 체제를 강화하고,프리미엄 고객에 대한 별도의 멤버십 클럽인 ‘클럽 크렘(Club Crme·최고의 클럽을 뜻하는 프랑스어)’을 올해부터 도입,운영중이라고 밝혔다. ●고객분석 음악회·스포츠행사 초청 LG전자가 최근 자사 고객 1800만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프리미엄 고객은 3만∼3만 5000명으로,이들은 일반고객 10만∼15만명과 맞먹는 구매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고객의 취향을 파악,음악을 좋아하는 고객은 연주회나 콘서트에,스포츠를 좋아하는 고객은 향후 LG전자가 마련하는 대형 스포츠 행사에 초청할 계획이다.우선 뮤지컬 ‘캣츠’의 서울 공연에 1000명의 프리미엄 고객을 초청했다. ‘클럽 크렘’ 회원에게는 특별 교육을 받은 전담 애프터서비스 기사를 배정하고 선정 제품에 한해 1년간 무상서비스 기간을 연장키로 했다.또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고급 계간지를 통해 프리미엄 가전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골프,여행,와인,미용 등 프리미엄 고객들의 취향에 맞는 생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고급 브랜드인 ‘하우젠’을 앞세워 내수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매장도 `호텔급 분위기’로 대리점·직영점을 1300개로 정예화하고 스타벅스 매장·현금자동지급기(ATM)·무인민원발급기 등과 통합한 복합 대리점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본사에서 매장 인테리어와 디스플레이를 컨설팅해 ‘호텔 분위기’로 만들어 주는 등 할인점과의 차별성을 꾀하고 있다. 스웨덴 가전회사 일렉트로룩스는 200만원이 넘는 로봇청소기 ‘트릴로바이트’를 내놓으면서 신세계 강남점,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과 용평스키장 등 고소득층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로드쇼를 개최했다. 구입고객에게 뮤지컬 ‘시카고’ 티켓을 증정했고 올해부터는 기존 고객이 주변에 자사제품을 추천하면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는 ‘프리미엄 구전 마케팅’을 실시할 계획이다. 류길상기자 ukelvin@˝
  • 역삼동 퓨전일식당 '라꾸’ 럭셔리 오뎅

    따끈한 우동이나 오뎅 국물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우동과 오뎅은 맛이야 최고지만 한끼를 해결하기엔 왠지 부실하게 느껴지게 마련.역삼동의 ‘RAKU’(라꾸)는 이같은 우려를 잠재우면서도,우동과 오뎅의 퀄리티를 내세우는 퓨전 일식당. 신라호텔 식음팀장을 지낸 정윤영 사장이 ‘미식주가’(美食酒家)라는 개념을 도입해 지난해 5월 오픈했다. 미식주가는 일식당 중에서도 고급 요리점에 속하는 요정과 선술집인 이자카야의 중간쯤에 속한다.따라서 인테리어도 정통 일식당보다 모던하면서도 편안한 스타일로 꾸몄다. 요즘 잘 나가는 메뉴는 ‘우동스키’와 ‘모듬오뎅’.우동스키는 우리말로 우동전골쯤 된다.국물에 우동을 넣고 끓이면서 야채와 닭고기 넓적다릿살,새우,오징어,모시조개,홍합,어묵 등을 추가한다.하나씩 건져 먹으면서 정종이나 맥주를 한 잔 곁들이기에 적당하다.내용물이 떨어지면 어묵을 추가로 넣어주고,국물이 자작해지면 밥을 비벼먹을 수도 있다. 모듬오뎅의 주재료는 직접 만든 다양한 어묵들.생선,마,달걀 흰자 등을 반죽해 버섯의 갓에 얹어 만든 것 등 공이 들어간 어묵에다 토란,문어 등 야채와 해산물을 넣는다.어묵을 튀길 때도 찬물을 끼얹어 기름을 분리하는 방법으로 느끼한 맛을 없앴다.고소함이 덜한 대신 담백한 맛이 특징.정사장은 화려함과 맛을 동시에 갖춘 ‘럭셔리 오뎅’이라고 자부한다. 많은 사람들은 오뎅을 어묵의 다른말로 이해하지만 오뎅은 원래 고기,야채,어묵 등을 꼬챙이에 끼워 먹는 것을 의미한다고.일본 관동지방 농촌에서 일꾼들이 간편하게 먹기 위해 만든 음식에서 유래됐다고 한다.라꾸에선 오뎅의 이같은 취지를 살려 한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도록 내용물을 충실히 했음을 내세운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이라크 내전 조짐

    이라크 정국이 최근 잇따르고 있는 자살폭탄 테러 등으로 갈수록 혼미해지면서 미군이 주권이양을 약속한 7월1일 이전에 내전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정권이 이양되더라도 이라크 새 정부의 권력이 공고화되기 전에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종파 투쟁,이라크계와 쿠르드족간 알력 등으로 인한 내란 발발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그 와중에 존 아비자이드 중동지역 미군 총사령관이 11일(현지시간) 매복병으로부터 기습총격을 받는 등 무장반군의 대 미군 공격도 대담해지고 있다.아비자이드 사령관이 이날 오후 경호대와 함께 팔루자의 이라크인 민간방위대 본부로 들어가는 순간 로켓추진 수류탄이 발사됐으며 소화기 총격이 이어졌다.이비자이드 사령관을 경호한 미군과 반군간에 총격전까지 이어졌으나 미군측 희생자는 없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부는 이날 테러조직 알 카에다가 내전을 선동하려 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공개했다.전문가들은 지난 10일과 11일 각각 경찰과 군대에 지원하려는 이라크인들을 대상으로 바그다드 내·외곽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를 내전의 조짐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라크 경찰과 군대 재건은 주권 이양에 앞서 미군이 해결해야 할 필수적인 조건인데,두 건의 자폭 테러는 테러 직후 수니파와 시아파간 갈등으로 인한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 나왔었다. 이라크에선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통치기간에 전체 국민의 60% 가량인 시아파가 후세인을 앞세운 소수 수니파의 지배를 받았다.그 때문에 시아파는 후세인이 쫓겨난 마당에 새로 꾸려질 정부에서마저 수니파의 득세를 볼 수는 없다며 이를 갈고 있다.후세인 시절보다 더욱 폭넓은 자치권을 인정받기를 원하는 쿠르드족 역시 수니파와 갈등 관계에 있다. 11일 이라크 주둔 미군은 편지 한 통을 공개했다.요르단 출신의 이슬람 테러리스트이자 이라크내 알 카에다 조직 총책으로 추정되는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작성,알 카에다 핵심 지도부에 전달하려는 것을 미군이 입수했다는 편지로,주요 내용은 내전 선동이었다.편지 작성자는 미군 척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시아파를 반복 공격,이들이 수니파에 보복하게 만들 것”을 제시하며 이와 관련한 알 카에다의 도움을 청했다. 이라크에선 현재 무장이 잘 갖춰진 수니파 외에도 시아파와 쿠르드족 모두 독자적인 전투장비와 인원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다드 현지 미 82공수사단 사단장인 찰스 스와낵 소장은 10일 바그다드 외곽 이스칸다리야 경찰서 앞과 11일 바그다드 시내 이라크군 모병센터 앞에서 일어난 자살폭탄 테러를 가리켜 “시아파에 대해 수니파가,수니파에 대해 시아파가 공격하는 것처럼 꾸며 내전을 조장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고 12일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미군이 공개한 편지의 내용과 일치하는 해석이다. AP통신은 11일 영국 엑서터대학 아랍·이슬람연구소 가레스 스탠스필드 박사를 인용해 “이미 내전 가능성이 자리를 잡아 알 카에다가 부추길 필요도 없을 정도”라며 이라크 상황을 비관적으로 전했다.익명을 요구한 미국 고위관리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붕괴가 내전으로 이어진 옛 유고슬라비아와 옛 소련의 예를 들며,이라크가 내전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실재적”이라고 말했다. 황장석기자 surono@˝
  • [인사]

    ■ 대법원 ◇지법 부장판사 전보 △재판연구관 金容祥 尹成遠 李東遠 李敏杰 이상주 林成根 韓勝△사법연수원 金永壽 金容贊 金泌坤 金興俊 朴基柱 裵起烈 卞熙讚 尹瓊 李永東 李應世 李貞美 李俊虎 林鍾憲 林采雄 田聖銖 崔胤重 崔珍洙 韓陽錫△서울중앙지법 姜玟求 金健洙 金德鎭 金命洙 金善惠 朴基東 申秀吉 柳哲桓 尹誠根 李忠相 李憲燮 李赫雨 李惠光 李洪喆 趙京蘭 趙海燮 崔重現 許根寧 黃正奎△서울가정법원 金善鍾(수석) 安暎鎭△서울행정법원 姜永虎(수석) 權純一 金仲坤△서울동부지법 趙鏞龜(수석) 金光泰 金湘根 文龍浩 朴炯南 鄭鍾植△서울남부지법 金建鎰(수석) 金京宣 文容宣 朴瑩夏 成樂松 李景民 鄭一晟△서울북부지법 尹又進(수석) 安起煥 梁虎承 黃炳夏△서울서부지법 趙秀賢(수석) 金柱賢 李根潤 李錫雄 李元一 朴淳成 韓凡洙△의정부지법 韓鎬亨(수석) 朴赫 劉承男 李宰榮△인천지법 鞠祥鍾 金鍾根 金泉秀 梁鉉周 趙容均 趙顯日 韓昌勳△인천지법 부천지원 朴龍奎(지원장) 金周元 尹南根△수원지법 金起楨 金東河 金義煥 朴尙勳 呂相薰 李來柱 鄭炳文 崔圭弘 韓炳毅 黃敬學△수원지법 성남지원 金熙泰(지원장) 閔丙勳 吳天錫 禹光澤 鄭鍾△〃 안산지원 高毅永(지원장) 朴鍾文△춘천지법 趙庸準(수석) 林範錫 洪承徹△〃 강릉지원 金南泰(지원장) 蔡東憲△〃 원주지원장 李祥敏△〃 속초지원장 洪碩範△〃 영월지원장 李鎭萬△대전지법 琴悳喜 金靖鎬 孫且準 呂勳九 林炳烈 崔正烈△〃 홍성지원장 李圭鎭△〃 서산지원장 黃聖周△〃 천안지원 許容碩△청주지법 鄭亨植(수석) 魯萬景 朴大泳 裵珖局△청주지법 충주지원장 李東信△대구지법 權奇薰 金鍾泌 金燦敦 金兌慶 成智鏞 李琳 李相善趙昌鶴 許銘△〃 경주지원장 許富烈△〃 포항지원 金世鎭(지원장) 崔勝昱△〃 상주지원장 金泰川△〃 영덕지원장 李炅九△부산지법 具南秀 金貞鶴 金泰昌 申昌洙△〃 동부지원 金相局 金伸△울산지법 金東沃(수석) 高圭貞 朴熙承 劉吉鍾 黃秦孝△창원지법 朴性哲(수석) 文炯培 沈甲輔 李丞鎬 曺源徹 洪性珠△〃 진주지원 姜求旭△광주지법 金鎭相 李昌翰△〃 목포지원 姜信仲△〃 장흥지원장 金載英△전주지법 丁昌男(수석) 金正晩 朴京鎬 鄭炅玄 崔復奎△〃 군산지원 黃迪和(지원장) 孫周煥△〃 정읍지원장 李載康△제주지법 金仁謙(수석) 趙漢暢△법원행정처 법정국장 姜日源△〃 기획조정심의관 金尙遵△〃 인사제도연구 洪承勉△헌법재판소 파견 張晳朝◇재판연구관 전보△姜聲國 高榮九 金尙煥 김성엽 金學俊 朴寬根 朴鍾旻 尹柄喆 李東哲 李元炯 李仁揆 林永浩 鄭善在 鄭永薰 鄭泰學 鄭漢翼 千大燁 崔東烈 崔秀煥 崔鍾吉 河宗大 韓奎現◇고법 판사 전보△사법연수원 具會根 尹賢周△서울고등법원 康承埈 郭東佑 김경호 金大雄 金明淑 金明漢 金尙煥 金晟洙 金昭英 金秀鎰 金時徹 金良奎 金容寬 金又洙 金載承 金才煥 김하늘 金賢錫 金炯枓 朴二奎 朴寅植 朴鍾澤 朴坪均 裵豪根 成秀濟 申光烈 沈雨湧 芮知希 吳在晟 吳俊根 韋賢碩 尹鍾秀 李圭哲 이범균 李相潤 李相勳 李承 李源範 李垠厓 李一周 李廷錫 李齊浩 李泰秀 林東奎 林正秀 蔣盛旭 張準顯 全炳寬 全晟喜 全珠惠 鄭彰鎬 曺圭鉉 趙鏞賢 趙休玉 池相睦 洪性七 黃鉉贊△대전고법 馬鏞周 朴炳讚 李縯甲 李賢鍾△대구고법 姜潤求 金鉉煥 孫大植 李英淑△부산고법 高永太 高在民 金奎兌 金東胤 金紋寬 박준용 安炯律 劉南根 李正一 李漢錫 張洪銑 田尙勳△광주고법 金東亞 朴佶成 宋惠英 尹相道△특허법원 薛範植△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 趙貴章△〃 법무담당관 郭炳勳△〃 사법정책연구심의관 李東根△〃 인사제1담당관 安正鎬△〃 인사제3담당관 朴英在△〃 송무심의관 金裕鎭 文俊弼 李承翰△〃 법정심의관 權純亨△〃 사법제도연구기간연장 李榮眞 兪承龍△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呂美淑 李昱來△국회 파견 鄭晙永△헌법재판소 파견 李祥源 河明鎬 咸尙勳 陳昌秀 姜乙煥◇지법 판사 전보△서울중앙지법 姜京兌 高鐘瑛 孔都一 郭祥基 金光燮 金都現 金東炫 金福馨 金成坤 金淳漢 金煉夏 金裕範 金益煥 金芝淑 金泰勳 盧貞姬 都振棋 文珖燮 文裕晳 文鍾植 朴南泉 朴德熙 朴泰一 潘正模 邊成桓 徐昌沅 孫東煥 宋燦鎬 申權澈 沈炅 沈揆弘 梁範錫 吳旻錫 吳水平 元鎬信 尹昇恩 李東勳 李炳世 李承遠 李在熙 李濟正 李鍾彦 林成哲 張世英 張允石 田政勳 全烋在 丁康讚 鄭濤泳 鄭宰宇 鄭哲玟 秦徹 車文鎬 蔡東秀 崔炳哲 崔龍浩 崔鍾斗 崔恒碩 崔賢鍾 崔亨杓 韓素英 洪聖焌 洪勝九 黃義東△서울가정법원 金貴玉 金祥圭 廉基昌 吳然正 李仁亨 鄭昌根 陳賢敏 崔鍾漢△서울행정법원 奇佑鍾 金炳秀 金政中 朴正洙 申尙烈 安德鎬 安秉旭 尹景雅 李容九 趙誠權△서울동부지법 高忠正 金東國 金珉岐 金鍾文 金辰玹 金弘濬 安東範 尹綱悅 李相哲 李宛洙 李漢鎰 車永敏 車幸典 崔圭賢△서울남부지법 姜京求 權赫中 金相勳 金晋亨 金泰毅 申一秀 吳權哲 李圭弘 李叔姸 李政烈 李智賢 李喆遠 李鎬載 崔光烋△서울북부지법 金國鉉 金柄龍 金柄住 金泰瑢 南基柱 安浩鳳 元益善 李建培 李載根 張日赫 鄭承圭 崔碩文 洪晙豪△서울서부지법 金成大 金正元 史奉官 劉憲鍾 李在郁 李埈承 李和容 林奇桓 林正燁 趙炳九△의정부지법 姜仁喆 郭富圭 金大成 金英天 金禮英 魯鎭榮 朴商鎭 白哲宇 徐現碩 柳永鉉 李貞和 張璨 全遇鎭△〃 고양지원 金秀貞 金允秀 金仁澤 南海淑 蘇榮鎭 劉榮根 兪在炫 殷澤△인천지법 金範俊 金炳 金尙東 唐宇增 朴正秀 徐基鎬 嚴雲龍 吳德植 鄭炳實 鄭晟完 趙賢旭 朱埰光△〃 부천지원 姜圭泰 申爀在 元貞淑△수원지법 姜相德 姜永薰 金容漢 金政中 金炯植 都亨錫 徐亨周 沈活燮 廉隅榮 李東植 李周憲 張在閏 曺眞求△〃 성남지원 金永鶴 金琮基 金兌建 金賢淨 朴昶秀 安省俊 李炫坤△〃 여주지원 崔瀚敦 黃允九 高準祐△〃 평택지원 朴泰安 吳星禹 李星參 韓榮煥△〃 안산지원 金秀京 金于楨 朴炯俊 李相鉉△춘천지법 具滋憲 宋惠政 李永薰 林善池△〃 강릉지원 金煐樹 徐東七 吳相龍△〃 원주지원 金炯淵 申玄一 梁大權 張哲翼△〃 속초지원 盧泰善△〃 영월지원 金東彬 朴柱炫△대전지법 金炳植 金亮澔 金鍾錫 朴敏禎 徐正 孫三洛 申東憲 楊泰卿 柳仙珠 李光永 李政玟 鄭甲生 鄭貞美 鄭澤壽 許瑄娥△〃 홍성지원 丁相奎 黃文燮△〃 공주지원 李明信 李東國△〃 논산지원 申永澈△〃 서산지원 金玄錫 蔡玧柱 金亨錫 徐重錫△〃 천안지원 鄭載憲 河相赫 金剛大 金重南 蘇秉錫 李勇均△청주지방법원 李午榮 李泫佑△〃 충주지원 成基權 曺圭錫 韓誠洙△〃 제천지원 李元△〃 영동지원 이재은△대구지법 郭柄秀 金敬哲 金起賢 金聖洙 金聖悅 徐璟嬉 徐英愛 辛宗烈 申眞和 愼炫範 梁熙默 李恩信 李在德 李政浩 林志娥 蔣淳在△〃 안동지원 辛憲基△〃 경주지원 權純祜 金相潤 崔錫圭△〃 포항지원 朴海彬 裵珠漢 成京姬 李周映△〃 김천지원 李圭喆 崔雲聖 黃淳敎△〃 상주지원 尹三洙△〃 의성지원 鄭城旭△〃 가정지원 李炳三△부산지법 姜厚遠 高敬雨 金紋希 金炳澈 朴春基 李赫 李星勳 丁元△〃 동부지원 成金石 全容範 崔煥△〃 가정지원 李南均△울산지법 閔靖晳 李昌林 鄭萬圭 丁寧植 許壹勝△창원지법 姜文景 金廷玟 安昌煥 禹寬濟 尹正根 丁文晟 趙珉奭 洪志榮△〃 진주지원 權東周 趙正雄△〃 통영지원 金辰旭 朴禎吉 安鍾和 이수영△〃 밀양지원 金泰光 成益慶 申容鎬△〃 거창지원 孫虎寬△광주지방법원 金現濤 閔基榮 朴範錫 吳永杓 林永又 曺永昊 金度槿 宋基錫 張正熙 鄭喜永 崔永男△〃 목포지원 金泳植 金鉉哲 朴石根 李敏洙 李鍾業△〃 순천지원 具熙承 南海廣 尹起秀 李榮豊 李政勳 林民成 許湘眞△〃 해남지원 金承輝△〃 가정지원 金裕津 曺在巾△전주지법 朴善英 宋錫奉 李敏豪 李昇哲 崔建鎬 최은주△〃 군산지원 房昌炫 李相一△〃 정읍지원 成忠容 柳成根△〃 남원지원 朴相國 宋永煥△제주지법 金良燮 朴鍾國 朴鍾郁 宋賢慶 尹興烈 林性文 鄭景仁 洪震昊◇예비판사 전보△서울고법 金秀映 盧柔慶 朴貞雨 朴玄廷 李圭永 이기리 李旼映 李世羅 張洙榮 趙璘英 崔瑞恩 姜秀貞 高承一 金暎賢 金允貞 柳然重 朴源鐵 朴恩永 元容一 李相悳 李俊奎 李珍官 李春洙 崔寶元 黃仁京△대전고법 朴相賢 鄭容信 崔眞淑△대구고법 金玧宗 李美貞 崔瑛恩△부산고법 金鍾雲 朴宰瑩 沈瑩眞 丁文卿 皇甫昇赫△광주고법 김부한 徐三熙 李羊姬◇지법 부장판사 임용△사법연수원 金亨鎭 曺海根 洪起守◇고법 판사 임용△사법연수원 崔允姬△대전고법 宋景根 鄭一衍◇지법 판사 임용△춘천지법 李元學△청주지법 崔炳俊△울산지법 李平根△창원지법 李官勇△광주지법 목포지원 朴炫△〃 순천지원 고흥·보성군판사 申定植△전주지법 張容基◇지법 판사 임명△서울중앙지법 姜成勳 姜宰沅 姜柱憲 郭玧炅 金昭伶 金貞娥 朴性玧 朴正三 徐榮孝 宋珏燁 申信浩 安熙吉 梁民好 李炅姬 李圭浩 李揆熏 李文世 李奉守 李嫦娥 李祥源 李秀眞 李麗振 이예슬 李政燁 李政勳 李晙英 任一爀 林慧眞 張健 蔣來我 張允瑄 鄭相喆 鄭燦宇 趙丙學 崔秀珍△서울가정법원 金梅慶 朴珍雄△서울동부지법 金鍾樸 徐源 嚴基標 曺媛卿 曺孝姃△서울남부지법 金勁勳 李啓正 李昶賢 趙秀貞 趙壯爀 玄宜仙△서울북부지법 金星佑 金良勳 申明姬 李東旭 李孝眞△서울서부지법 金良 閔素暎 朴魯洙 尹在南 정진아△춘천지법 金容斗 任成實△〃 강릉지원 辛容武△대전지법 姜旻成 高銀設 金周石 石埈協 李正熙△〃 천안지원 姜吉淵△청주지법 姜泰旭 朴相吉 李衡杰△대구지법 權在七 金相日 金泰均 南善美 閔智絃 朴賢玟 元從燦 張性珍△부산지법 姜東赫 金知慧 金顯哲 朴贊錫 申校植 林光鎬 林大虎 全在赫 鄭成均 鄭暎勳 崔太榮△울산지법 白珍圭 제갈창△창원지법 金珍善 朴鍾泰 吳海鎭 柳姬先 表克昶△〃 진주지원 李光偶△광주지법 金敬熙 朴思朗 朴賢洙 梁煥承 李炳柱 李世昌 李昌烈 鄭鉉錫△〃 순천지원 金江山△전주지법 姜熙錫 金明洙 沈奎皇 崔鎭永△〃 군산지원 金聖欽△제주지법 李植◇예비판사 임명△서울지법 姜銀珠 金秀貞 金秀珽 金必龍 南世眞 朴珖緖 朴珠英 徐昌錫 吳圭晟 尹柱卓 李政燁 林倡鉉 張俊雅 張智惠 鄭眩京 朱宣俄△서울동부지법 文鉉皓 張鎭英 崔雄永 河泰漢△서울남부지법 金頃愛 朴之姸 夫東植 李仲杓 李知玹△서울북부지법 張賢珍 陳炫志 韓基洙△서울서부지법 金度均 徐孝珍 李知珉 河兌憲△서울의정부지법 金貞勳 盧泰弘 柳孝英 李垠姃△의정부지법 고양지원 林泳澈△인천지법 孔鉉晉 柳昌成 申興浩 梁宇昌 劉載光 林鍾孝 鄭智榮△〃 부천지원 吳揆姬△수원지법 구민경 金敬珍 金旻貞 薛忠珉 魏智鉉 李成振 李恩惠 李政炫△〃 성남지원 金貞錫 鄭恩英△〃 안산지원 李永男△춘천지법 徐楨弦 鄭一叡△〃 강릉지원 金岐昱△대전지법 高椿淳 金洪壹 孫元洛 李惠鎭 張東赫 張珉碩△〃 천안지원 尹元默△청주지법 金相哲 申大熙 李眞寧△대구지법 金秀英 盧賢美 都勳泰 閔達基 朴贊祐 史鏡花 李晙榮 崔美福 黃惠珉△부산지법 權純男 沈在完 李恩政 林相珉 鄭玄植 鄭惠垣 朱殷瓔 崔盛宇 黃映喜△〃 동부지원 金珍惠 朴邵英△울산지법 沈秉稷 吳胤炅 李垠政△창원지법 裵貞炫 呂賢珠 李康昊 鄭仁燮 崔珍坤△〃 진주지원 文聖昊△광주지법 姜完樹 高永錫 郭亨燮 金在香 金台殷 朴正運 鄭永河 丁炯碩△〃 순천지원 沈賢芝△전주지법 金光洙 金大圭 房善玉 李榮鎬△〃 군산지원 金英希△제주지법 朴宰慶 ■ 문화관광부 ◇파견 △2002년월드컵축구대회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 기획국장 姜昌錫 ■ 중앙인사위원회 ◇이사관 승진 △인사정보심의관 金明植 ■ 숙명여대 △대학원장 韓貞信△특수대학원장 睦銀均△생활과학대학장 楊淑喜△경상대학장 洪讚植△약학대학장 金安根△교무처장(산학협력단장) 趙恒德△학생처장 黃善惠△사무처장 韓榮實△기획처장 金柱憲△도서관장 李春實 ■ 굿데이 △광고마케팅본부 영업팀 부국장 魏燦復 ■ 아리랑TV △부사장 金明中△대외협력관 崔光爀 金鉉植△정책기획팀장 李碩原△예산관리팀장 朴宰亨△경영지원팀장 李東熙△TV제작팀장 元種善△광고팀장 金炯錫△사업팀장 任萬爀△홍보영상제작팀장 朴熙承△수출지원센터장 金泰楨 ■ 근로복지공단 ◇승진 △본부장 金鐘允△1급 姜亨求 金永根 金秉奭△2급 黃潤夏 朴貴丹 高光默 任鎔彬 朴世玉 李聖基 李相萬 李昌浩 ■ 요업(세라믹)기술원 △전자부품·소재본부장 金光振△도자·구조세라믹본부장 吳有根△세라믹·건재본부장 金秉益△기획관리본부장 玄富成△감사실장 李承浩△전자소재기술개발사업단장 崔炳鉉△이천분원사업단장 崔義錫 ■ 신용보증기금 ◇부점장 전보 △서부신용정보팀 梁浩喆△광주〃 柳在奎△제주지점장 金世鍾 ■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과장급 전보 △조사2국 조사3과장 李相萬△조사2국 조사1과 심사관 鄭光容 ■ KBS ◇국장급△감사실장 金永錫△심의평가실 심의위원 李良九 李東淳 車甲鎭△정책기획센터 주간(기획) 崔榮敏△〃 주간(정책) 朴尙洙△〃 주간(예산) 李東燮△인력관리실장 陸京燮△인적자원센터 주간(연수) 吳壽星△시청자센터 전문위원 韓信平△〃 주간(시청자사업) 權五喆△〃 주간(수원센터운영) 朴明圭△방송문화연구소 연구위원 朴英錫 金基仁 金光石 吳光均 金知文 邊圓一 趙鏞健 朴元勳△남북교류협력기획단장 沈宜杓△글로벌센터 주간(글로벌전략) 殷文基△〃 주간(국제협력) 李丁玉△디지털미디어센터 주간(멀티미디어) 李鍾和△〃 주간(정보시스템) 李慶姬△〃 주간(방송콘텐츠) 徐廷烈△〃 전문위원 張潤相△아나운서실장 表永準△해설위원 해설위원 劉鐘溢△보도국장 李廷奉△보도국 주간(취재2) 李鍾學△〃 주간(국제) 朴世珉△예능국 주간(예능) 朴海璿△드라마제작국 주간(드라마) 金鍾湜△위성제작 玄淨柱△TV기술 崔龍均△경영본부 경영위원 金鍾皓 李東凡 金學來△〃 주간(노무) 金敬澤△재원관리 李寅雨△영업 黃仁德△재무 吳仁敎△부산방송총 李夢龍△광주방송총 朴沅基△청주방송총 兪重根 ■ 노동부 ◇이사관 승진△기획관리실 공보관 南奭鉉△산업안전국장 宋鳳根△중앙노동위원회 사무국장 金憲洙◇국장급 전보△근로기준국장 嚴賢澤△고용정책심의관 申英澈△부산지방노동청장 朴種哲 ■ 보건복지부 ◇부이사관 전보△보건정책국 약무식품정책과장 陳幸根 ■ 경찰청 ◇총경급△경찰종합학교 교무과장 高貴永△인천경찰청 생활안전과장 黃光基△인천 계양경찰서장 李錫化△경기청 경무과장 尹晟馥△〃 형사과장 金龍水△경기 포천서장 崔元一 ■ 헤럴드경제 △사회문화부장 직대 金永茂△대중문화부장 직대 姜槿周 ■ 국민은행 ◇카드 NPL 관리센터장△강서 金吉洙△동부 金相洙△북부 鄭聖郁△서부 曺在錫△중부 洪珍澤△부천 李仁傑△인천 李錦魯△동래 崔成軒△울산 金承龍△창원 金承在△대구 鄭九洛△서대구 宋孫祚△광주 申碩浩△전주 金榮鉉△천안 鄭址德△원주 李在珍△제주 李興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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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 ◇지법 부장판사 전보 △재판연구관 金容祥 尹成遠 李東遠 李敏杰 이상주 林成根 韓勝△사법연수원 金永壽 金容贊 金泌坤 金興俊 朴基柱 裵起烈 卞熙讚 尹瓊 李永東 李應世 李貞美 李俊虎 林鍾憲 林采雄 田聖銖 崔胤重 崔珍洙 韓陽錫△서울중앙지법 姜玟求 金健洙 金德鎭 金命洙 金善惠 朴基東 申秀吉 柳哲桓 尹誠根 李忠相 李憲燮 李赫雨 李惠光 李洪喆 趙京蘭 趙海燮 崔重現 許根寧 黃正奎△서울가정법원 金善鍾(수석) 安暎鎭△서울행정법원 姜永虎(수석) 權純一 金仲坤△서울동부지법 趙鏞龜(수석) 金光泰 金湘根 文龍浩 朴炯南 鄭鍾植△서울남부지법 金建鎰(수석) 金京宣 文容宣 朴瑩夏 成樂松 李景民 鄭一晟△서울북부지법 尹又進(수석) 安起煥 梁虎承 黃炳夏△서울서부지법 趙秀賢(수석) 金柱賢 李根潤 李錫雄 李元一 朴淳成 韓凡洙△의정부지법 韓鎬亨(수석) 朴赫 劉承男 李宰榮△인천지법 鞠祥鍾 金鍾根 金泉秀 梁鉉周 趙容均 趙顯日 韓昌勳△인천지법 부천지원 朴龍奎(지원장) 金周元 尹南根△수원지법 金起楨 金東河 金義煥 朴尙勳 呂相薰 李來柱 鄭炳文 崔圭弘 韓炳毅 黃敬學△수원지법 성남지원 金熙泰(지원장) 閔丙勳 吳天錫 禹光澤 鄭鍾△〃 안산지원 高毅永(지원장) 朴鍾文△춘천지법 趙庸準(수석) 林範錫 洪承徹△〃 강릉지원 金南泰(지원장) 蔡東憲△〃 원주지원장 李祥敏△〃 속초지원장 洪碩範△〃 영월지원장 李鎭萬△대전지법 琴悳喜 金靖鎬 孫且準 呂勳九 林炳烈 崔正烈△〃 홍성지원장 李圭鎭△〃 서산지원장 黃聖周△〃 천안지원 許容碩△청주지법 鄭亨植(수석) 魯萬景 朴大泳 裵珖局△청주지법 충주지원장 李東信△대구지법 權奇薰 金鍾泌 金燦敦 金兌慶 成智鏞 李琳 李相善趙昌鶴 許銘△〃 경주지원장 許富烈△〃 포항지원 金世鎭(지원장) 崔勝昱△〃 상주지원장 金泰川△〃 영덕지원장 李炅九△부산지법 具南秀 金貞鶴 金泰昌 申昌洙△〃 동부지원 金相局 金伸△울산지법 金東沃(수석) 高圭貞 朴熙承 劉吉鍾 黃秦孝△창원지법 朴性哲(수석) 文炯培 沈甲輔 李丞鎬 曺源徹 洪性珠△〃 진주지원 姜求旭△광주지법 金鎭相 李昌翰△〃 목포지원 姜信仲△〃 장흥지원장 金載英△전주지법 丁昌男(수석) 金正晩 朴京鎬 鄭炅玄 崔復奎△〃 군산지원 黃迪和(지원장) 孫周煥△〃 정읍지원장 李載康△제주지법 金仁謙(수석) 趙漢暢△법원행정처 법정국장 姜日源△〃 기획조정심의관 金尙遵△〃 인사제도연구 洪承勉△헌법재판소 파견 張晳朝◇재판연구관 전보△姜聲國 高榮九 金尙煥 김성엽 金學俊 朴寬根 朴鍾旻 尹柄喆 李東哲 李元炯 李仁揆 林永浩 鄭善在 鄭永薰 鄭泰學 鄭漢翼 千大燁 崔東烈 崔秀煥 崔鍾吉 河宗大 韓奎現◇고법 판사 전보△사법연수원 具會根 尹賢周△서울고등법원 康承埈 郭東佑 김경호 金大雄 金明淑 金明漢 金尙煥 金晟洙 金昭英 金秀鎰 金時徹 金良奎 金容寬 金又洙 金載承 金才煥 김하늘 金賢錫 金炯枓 朴二奎 朴寅植 朴鍾澤 朴坪均 裵豪根 成秀濟 申光烈 沈雨湧 芮知希 吳在晟 吳俊根 韋賢碩 尹鍾秀 李圭哲 이범균 李相潤 李相勳 李承 李源範 李垠厓 李一周 李廷錫 李齊浩 李泰秀 林東奎 林正秀 蔣盛旭 張準顯 全炳寬 全晟喜 全珠惠 鄭彰鎬 曺圭鉉 趙鏞賢 趙休玉 池相睦 洪性七 黃鉉贊△대전고법 馬鏞周 朴炳讚 李縯甲 李賢鍾△대구고법 姜潤求 金鉉煥 孫大植 李英淑△부산고법 高永太 高在民 金奎兌 金東胤 金紋寬 박준용 安炯律 劉南根 李正一 李漢錫 張洪銑 田尙勳△광주고법 金東亞 朴佶成 宋惠英 尹相道△특허법원 薛範植△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 趙貴章△〃 법무담당관 郭炳勳△〃 사법정책연구심의관 李東根△〃 인사제1담당관 安正鎬△〃 인사제3담당관 朴英在△〃 송무심의관 金裕鎭 文俊弼 李承翰△〃 법정심의관 權純亨△〃 사법제도연구기간연장 李榮眞 兪承龍△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呂美淑 李昱來△국회 파견 鄭晙永△헌법재판소 파견 李祥源 河明鎬 咸尙勳 陳昌秀 姜乙煥◇지법 판사 전보△서울중앙지법 姜京兌 高鐘瑛 孔都一 郭祥基 金光燮 金都現 金東炫 金福馨 金成坤 金淳漢 金煉夏 金裕範 金益煥 金芝淑 金泰勳 盧貞姬 都振棋 文珖燮 文裕晳 文鍾植 朴南泉 朴德熙 朴泰一 潘正模 邊成桓 徐昌沅 孫東煥 宋燦鎬 申權澈 沈炅 沈揆弘 梁範錫 吳旻錫 吳水平 元鎬信 尹昇恩 李東勳 李炳世 李承遠 李在熙 李濟正 李鍾彦 林成哲 張世英 張允石 田政勳 全烋在 丁康讚 鄭濤泳 鄭宰宇 鄭哲玟 秦徹 車文鎬 蔡東秀 崔炳哲 崔龍浩 崔鍾斗 崔恒碩 崔賢鍾 崔亨杓 韓素英 洪聖焌 洪勝九 黃義東△서울가정법원 金貴玉 金祥圭 廉基昌 吳然正 李仁亨 鄭昌根 陳賢敏 崔鍾漢△서울행정법원 奇佑鍾 金炳秀 金政中 朴正洙 申尙烈 安德鎬 安秉旭 尹景雅 李容九 趙誠權△서울동부지법 高忠正 金東國 金珉岐 金鍾文 金辰玹 金弘濬 安東範 尹綱悅 李相哲 李宛洙 李漢鎰 車永敏 車幸典 崔圭賢△서울남부지법 姜京求 權赫中 金相勳 金晋亨 金泰毅 申一秀 吳權哲 李圭弘 李叔姸 李政烈 李智賢 李喆遠 李鎬載 崔光烋△서울북부지법 金國鉉 金柄龍 金柄住 金泰瑢 南基柱 安浩鳳 元益善 李建培 李載根 張日赫 鄭承圭 崔碩文 洪晙豪△서울서부지법 金成大 金正元 史奉官 劉憲鍾 李在郁 李埈承 李和容 林奇桓 林正燁 趙炳九△의정부지법 姜仁喆 郭富圭 金大成 金英天 金禮英 魯鎭榮 朴商鎭 白哲宇 徐現碩 柳永鉉 李貞和 張璨 全遇鎭△〃 고양지원 金秀貞 金允秀 金仁澤 南海淑 蘇榮鎭 劉榮根 兪在炫 殷澤△인천지법 金範俊 金炳 金尙東 唐宇增 朴正秀 徐基鎬 嚴雲龍 吳德植 鄭炳實 鄭晟完 趙賢旭 朱埰光△〃 부천지원 姜圭泰 申爀在 元貞淑△수원지법 姜相德 姜永薰 金容漢 金政中 金炯植 都亨錫 徐亨周 沈活燮 廉隅榮 李東植 李周憲 張在閏 曺眞求△〃 성남지원 金永鶴 金琮基 金兌建 金賢淨 朴昶秀 安省俊 李炫坤△〃 여주지원 崔瀚敦 黃允九 高準祐△〃 평택지원 朴泰安 吳星禹 李星參 韓榮煥△〃 안산지원 金秀京 金于楨 朴炯俊 李相鉉△춘천지법 具滋憲 宋惠政 李永薰 林善池△〃 강릉지원 金煐樹 徐東七 吳相龍△〃 원주지원 金炯淵 申玄一 梁大權 張哲翼△〃 속초지원 盧泰善△〃 영월지원 金東彬 朴柱炫△대전지법 金炳植 金亮澔 金鍾錫 朴敏禎 徐正 孫三洛 申東憲 楊泰卿 柳仙珠 李光永 李政玟 鄭甲生 鄭貞美 鄭澤壽 許瑄娥△〃 홍성지원 丁相奎 黃文燮△〃 공주지원 李明信 李東國△〃 논산지원 申永澈△〃 서산지원 金玄錫 蔡玧柱 金亨錫 徐重錫△〃 천안지원 鄭載憲 河相赫 金剛大 金重南 蘇秉錫 李勇均△청주지방법원 李午榮 李泫佑△〃 충주지원 成基權 曺圭錫 韓誠洙△〃 제천지원 李元△〃 영동지원 이재은△대구지법 郭柄秀 金敬哲 金起賢 金聖洙 金聖悅 徐璟嬉 徐英愛 辛宗烈 申眞和 愼炫範 梁熙默 李恩信 李在德 李政浩 林志娥 蔣淳在△〃 안동지원 辛憲基△〃 경주지원 權純祜 金相潤 崔錫圭△〃 포항지원 朴海彬 裵珠漢 成京姬 李周映△〃 김천지원 李圭喆 崔雲聖 黃淳敎△〃 상주지원 尹三洙△〃 의성지원 鄭城旭△〃 가정지원 李炳三△부산지법 姜厚遠 高敬雨 金紋希 金炳澈 朴春基 李赫 李星勳 丁元△〃 동부지원 成金石 全容範 崔煥△〃 가정지원 李南均△울산지법 閔靖晳 李昌林 鄭萬圭 丁寧植 許壹勝△창원지법 姜文景 金廷玟 安昌煥 禹寬濟 尹正根 丁文晟 趙珉奭 洪志榮△〃 진주지원 權東周 趙正雄△〃 통영지원 金辰旭 朴禎吉 安鍾和 이수영△〃 밀양지원 金泰光 成益慶 申容鎬△〃 거창지원 孫虎寬△광주지방법원 金現濤 閔基榮 朴範錫 吳永杓 林永又 曺永昊 金度槿 宋基錫 張正熙 鄭喜永 崔永男△〃 목포지원 金泳植 金鉉哲 朴石根 李敏洙 李鍾業△〃 순천지원 具熙承 南海廣 尹起秀 李榮豊 李政勳 林民成 許湘眞△〃 해남지원 金承輝△〃 가정지원 金裕津 曺在巾△전주지법 朴善英 宋錫奉 李敏豪 李昇哲 崔建鎬 최은주△〃 군산지원 房昌炫 李相一△〃 정읍지원 成忠容 柳成根△〃 남원지원 朴相國 宋永煥△제주지법 金良燮 朴鍾國 朴鍾郁 宋賢慶 尹興烈 林性文 鄭景仁 洪震昊◇예비판사 전보△서울고법 金秀映 盧柔慶 朴貞雨 朴玄廷 李圭永 이기리 李旼映 李世羅 張洙榮 趙璘英 崔瑞恩 姜秀貞 高承一 金暎賢 金允貞 柳然重 朴源鐵 朴恩永 元容一 李相悳 李俊奎 李珍官 李春洙 崔寶元 黃仁京△대전고법 朴相賢 鄭容信 崔眞淑△대구고법 金玧宗 李美貞 崔瑛恩△부산고법 金鍾雲 朴宰瑩 沈瑩眞 丁文卿 皇甫昇赫△광주고법 김부한 徐三熙 李羊姬◇지법 부장판사 임용△사법연수원 金亨鎭 曺海根 洪起守◇고법 판사 임용△사법연수원 崔允姬△대전고법 宋景根 鄭一衍◇지법 판사 임용△춘천지법 李元學△청주지법 崔炳俊△울산지법 李平根△창원지법 李官勇△광주지법 목포지원 朴炫△〃 순천지원 고흥·보성군판사 申定植△전주지법 張容基◇지법 판사 임명△서울중앙지법 姜成勳 姜宰沅 姜柱憲 郭玧炅 金昭伶 金貞娥 朴性玧 朴正三 徐榮孝 宋珏燁 申信浩 安熙吉 梁民好 李炅姬 李圭浩 李揆熏 李文世 李奉守 李嫦娥 李祥源 李秀眞 李麗振 이예슬 李政燁 李政勳 李晙英 任一爀 林慧眞 張健 蔣來我 張允瑄 鄭相喆 鄭燦宇 趙丙學 崔秀珍△서울가정법원 金梅慶 朴珍雄△서울동부지법 金鍾樸 徐源 嚴基標 曺媛卿 曺孝姃△서울남부지법 金勁勳 李啓正 李昶賢 趙秀貞 趙壯爀 玄宜仙△서울북부지법 金星佑 金良勳 申明姬 李東旭 李孝眞△서울서부지법 金良 閔素暎 朴魯洙 尹在南 정진아△춘천지법 金容斗 任成實△〃 강릉지원 辛容武△대전지법 姜旻成 高銀設 金周石 石埈協 李正熙△〃 천안지원 姜吉淵△청주지법 姜泰旭 朴相吉 李衡杰△대구지법 權在七 金相日 金泰均 南善美 閔智絃 朴賢玟 元從燦 張性珍△부산지법 姜東赫 金知慧 金顯哲 朴贊錫 申校植 林光鎬 林大虎 全在赫 鄭成均 鄭暎勳 崔太榮△울산지법 白珍圭 제갈창△창원지법 金珍善 朴鍾泰 吳海鎭 柳姬先 表克昶△〃 진주지원 李光偶△광주지법 金敬熙 朴思朗 朴賢洙 梁煥承 李炳柱 李世昌 李昌烈 鄭鉉錫△〃 순천지원 金江山△전주지법 姜熙錫 金明洙 沈奎皇 崔鎭永△〃 군산지원 金聖欽△제주지법 李植◇예비판사 임명△서울지법 姜銀珠 金秀貞 金秀珽 金必龍 南世眞 朴珖緖 朴珠英 徐昌錫 吳圭晟 尹柱卓 李政燁 林倡鉉 張俊雅 張智惠 鄭眩京 朱宣俄△서울동부지법 文鉉皓 張鎭英 崔雄永 河泰漢△서울남부지법 金頃愛 朴之姸 夫東植 李仲杓 李知玹△서울북부지법 張賢珍 陳炫志 韓基洙△서울서부지법 金度均 徐孝珍 李知珉 河兌憲△서울의정부지법 金貞勳 盧泰弘 柳孝英 李垠姃△의정부지법 고양지원 林泳澈△인천지법 孔鉉晉 柳昌成 申興浩 梁宇昌 劉載光 林鍾孝 鄭智榮△〃 부천지원 吳揆姬△수원지법 구민경 金敬珍 金旻貞 薛忠珉 魏智鉉 李成振 李恩惠 李政炫△〃 성남지원 金貞錫 鄭恩英△〃 안산지원 李永男△춘천지법 徐楨弦 鄭一叡△〃 강릉지원 金岐昱△대전지법 高椿淳 金洪壹 孫元洛 李惠鎭 張東赫 張珉碩△〃 천안지원 尹元默△청주지법 金相哲 申大熙 李眞寧△대구지법 金秀英 盧賢美 都勳泰 閔達基 朴贊祐 史鏡花 李晙榮 崔美福 黃惠珉△부산지법 權純男 沈在完 李恩政 林相珉 鄭玄植 鄭惠垣 朱殷瓔 崔盛宇 黃映喜△〃 동부지원 金珍惠 朴邵英△울산지법 沈秉稷 吳胤炅 李垠政△창원지법 裵貞炫 呂賢珠 李康昊 鄭仁燮 崔珍坤△〃 진주지원 文聖昊△광주지법 姜完樹 高永錫 郭亨燮 金在香 金台殷 朴正運 鄭永河 丁炯碩△〃 순천지원 沈賢芝△전주지법 金光洙 金大圭 房善玉 李榮鎬△〃 군산지원 金英希△제주지법 朴宰慶 ■ 문화관광부 ◇파견 △2002년월드컵축구대회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 기획국장 姜昌錫 ■ 중앙인사위원회 ◇이사관 승진 △인사정보심의관 金明植 ■ 숙명여대 △대학원장 韓貞信△특수대학원장 睦銀均△생활과학대학장 楊淑喜△경상대학장 洪讚植△약학대학장 金安根△교무처장(산학협력단장) 趙恒德△학생처장 黃善惠△사무처장 韓榮實△기획처장 金柱憲△도서관장 李春實 ■ 굿데이 △광고마케팅본부 영업팀 부국장 魏燦復 ■ 아리랑TV △부사장 金明中△대외협력관 崔光爀 金鉉植△정책기획팀장 李碩原△예산관리팀장 朴宰亨△경영지원팀장 李東熙△TV제작팀장 元種善△광고팀장 金炯錫△사업팀장 任萬爀△홍보영상제작팀장 朴熙承△수출지원센터장 金泰楨 ■ 근로복지공단 ◇승진 △본부장 金鐘允△1급 姜亨求 金永根 金秉奭△2급 黃潤夏 朴貴丹 高光默 任鎔彬 朴世玉 李聖基 李相萬 李昌浩 ■ 요업(세라믹)기술원 △전자부품·소재본부장 金光振△도자·구조세라믹본부장 吳有根△세라믹·건재본부장 金秉益△기획관리본부장 玄富成△감사실장 李承浩△전자소재기술개발사업단장 崔炳鉉△이천분원사업단장 崔義錫 ■ 신용보증기금 ◇부점장 전보 △서부신용정보팀 梁浩喆△광주〃 柳在奎△제주지점장 金世鍾 ■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과장급 전보 △조사2국 조사3과장 李相萬△조사2국 조사1과 심사관 鄭光容 ■ KBS ◇국장급△감사실장 金永錫△심의평가실 심의위원 李良九 李東淳 車甲鎭△정책기획센터 주간(기획) 崔榮敏△〃 주간(정책) 朴尙洙△〃 주간(예산) 李東燮△인력관리실장 陸京燮△인적자원센터 주간(연수) 吳壽星△시청자센터 전문위원 韓信平△〃 주간(시청자사업) 權五喆△〃 주간(수원센터운영) 朴明圭△방송문화연구소 연구위원 朴英錫 金基仁 金光石 吳光均 金知文 邊圓一 趙鏞健 朴元勳△남북교류협력기획단장 沈宜杓△글로벌센터 주간(글로벌전략) 殷文基△〃 주간(국제협력) 李丁玉△디지털미디어센터 주간(멀티미디어) 李鍾和△〃 주간(정보시스템) 李慶姬△〃 주간(방송콘텐츠) 徐廷烈△〃 전문위원 張潤相△아나운서실장 表永準△해설위원 해설위원 劉鐘溢△보도국장 李廷奉△보도국 주간(취재2) 李鍾學△〃 주간(국제) 朴世珉△예능국 주간(예능) 朴海璿△드라마제작국 주간(드라마) 金鍾湜△위성제작 玄淨柱△TV기술 崔龍均△경영본부 경영위원 金鍾皓 李東凡 金學來△〃 주간(노무) 金敬澤△재원관리 李寅雨△영업 黃仁德△재무 吳仁敎△부산방송총 李夢龍△광주방송총 朴沅基△청주방송총 兪重根 ■ 노동부 ◇이사관 승진△기획관리실 공보관 南奭鉉△산업안전국장 宋鳳根△중앙노동위원회 사무국장 金憲洙◇국장급 전보△근로기준국장 嚴賢澤△고용정책심의관 申英澈△부산지방노동청장 朴種哲 ■ 보건복지부 ◇부이사관 전보△보건정책국 약무식품정책과장 陳幸根 ■ 경찰청 ◇총경급△경찰종합학교 교무과장 高貴永△인천경찰청 생활안전과장 黃光基△인천 계양경찰서장 李錫化△경기청 경무과장 尹晟馥△〃 형사과장 金龍水△경기 포천서장 崔元一 ■ 헤럴드경제 △사회문화부장 직대 金永茂△대중문화부장 직대 姜槿周 ■ 국민은행 ◇카드 NPL 관리센터장△강서 金吉洙△동부 金相洙△북부 鄭聖郁△서부 曺在錫△중부 洪珍澤△부천 李仁傑△인천 李錦魯△동래 崔成軒△울산 金承龍△창원 金承在△대구 鄭九洛△서대구 宋孫祚△광주 申碩浩△전주 金榮鉉△천안 鄭址德△원주 李在珍△제주 李興洙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2)함양군수 김종직을 아십니까?(하)

    김종직이 함양에다 관영차밭을 만든 것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진귀한 사건이었다.그 이후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긴 우리들의 천박한 역사의식이 저지른 우리들의 수치이기도 하다. 김종직 군수가 관영차밭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은 도학사상이 내뿜은 빛이었다.현실세계의 부정과 불의를 질타하고 대안을 내놓아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몸과 마음을 던져 넣는 도학정치의 실천이었다. ●개인 소유 땅 보상해주고 차밭 조성 엄천사 북쪽 대밭 근처에다 함양현에서 직접 관리하는 차밭을 만들려고 하는 땅은 개인소유였다.당연히 적정 가격으로 보상해 주고 사들이거나 아니면 크게 모순되지 않는 조건으로 땅을 바꾸어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김종직 군수는 함양현에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땅과 엄천사 옆의 개인 소유 땅을 바꾸어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땅을 보상해 주는 이 과정에서 그의 도학사상이 추구하는 세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만약 국가의 법령과 제도에 따라서 관영차밭을 만들어야 했다면 문제될 일은 처음부터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법에 정해진 대로 토지를 장만하고 농민들에게 부역을 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종직 군수가 만든 차밭은 법령이나 제도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군수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서 생겨난 일이었다.따라서 함양군수가 나서서 굳이 관영차밭을 조성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차밭을 만들지 않는다 해서 군수가 처벌받을 일이 결코 아니었다. 또한 관영차밭에서 차를 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함양 농민들이 차 공물의 부담에 시달리다 못해 모두 도망을 쳐버리거나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군수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공물을 바치도록 지도하고 계몽하지 않았다는 행정적 책임 정도는 물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함양 농민들한테서 차 공물을 거두지 못한 나라에서는 함양현에서 책임져야 할 양만큼을 다른 지역 농민들에게 떠안겨버리면 그만이었다. 예사 군수들이라면 김종직의 일을 두고 부질없는 일을 자초하여 괜스레 군수의 일거리만 잔뜩 벌여 놓았다며 불평했을 것이다.김종직 군수의 생각은 달랐다. 만일 그쯤에서 관영차밭을 만들고 차를 생산하여 이것으로 농민들의 차 공물을 대신 해결해주지 않으면 장차 함양 농민들이 얼마나 혹독한 고통을 겪게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껏 함양 땅에서 차가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임 군수들은 하나같이 아무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다.관영차밭 조성을 생각하지 못했다면 정부에다 함양 농민들이 겪는 고충과 차 공물 제도의 모순을 바로잡아 달라는 상소라도 올렸어야 옳았다. 그런 일은 고사하고 도리어 기일 안에 차 공물을 바치지 못하면 군수에게 돌아올 행정적인 책임을 면하기 위해 아전들로 하여금 농민들을 독려하도록 엄하게 명령을 내리고 호통쳤을 뿐이었다. 이런 내력을 소상하게 헤아린 김종직 군수는 사뭇 남다른 생각을 했다. 차 공물 제도는 함양군수 따위가 폐지를 건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 제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양 농민들에게 매겨진 차 공물에 대한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게 되면 그 폐해는 매우 커진다는 것을 안 것이다.함양 농민들이 져야 할 책임을 다른 지역 농민들이 떠안게 되면 그 지역 농민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가혹할 것임을 생각했다. 농민들의 부담은 너무 무거웠고,벗어날 방도도 없었다.그렇다고 모든 공직자가 방임해버린다면 가련한 농민들의 삶은 누가 보호해 줄 것인지를 아프게 생각했다.백성이 불행하면 나라 또한 불행해진다는 것이 김종직의 철학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함양 농민들에게 해마다 부과되는 차 공물이 매우 중요한 국가의 외교 업무에 사용되고 있어서,공물의 납부에 차질이 생기게 되면 국가의 위신에 큰 손상이 생기게 된다는 점을 깊이 고려했다. 즉 차 공물은 서울의 왕이나 사대부들이 애용하는 기호품이 아니라 중국과의 외교에 긴요하게 사용되는 조공물(朝貢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국 황제와 귀족들의 기호품이었다. ●차 조공은 중국황실 요구 따른 것 조선왕조의 조공사행(朝貢使行)에는 동지사(冬至使: 동지 때 파견하는 사절로서 한 해를 보내게 된 데 대한 인사),정조사(正朝使: 새해맞이 인사를 위해 보내는 사절),성절사(聖節使: 왕,왕후의 생신을 축하하러 가는 사절),천추사(千秋使: 황태자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사절)의 정기적인 사행(使行)과 임시사행이 있었다.이때 반드시 가져가야 하는 조공물 중에서 매년 시월에 보내는 세폐(歲幣)의 품목에는 차(茶)가 들어 있었다. 조선왕조는 불교를 억압하는 차별정책을 국가이념으로 삼았고 이는 고려왕조와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어서 고려왕조의 문화적 특성이었던 차 마시는 문화를 단절시켰다. 다만 도학사상의 의리파에 속한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과 그의 학맥은 차 마시는 문화를 이어내렸다. 결국 조선왕조에서 차 공물제도를 유지시킨 궁극적 목적은 중국과의 조공에 필요했기 때문이었다.또한 조공품목에 차를 포함시킨 것은 조선왕조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음이 중요하다. 차 문화는 중국이 더 화려했지만 정작 차의 품질면에서는 조선의 차가 더 우수했던 것으로 보인다.중국의 황실이나 귀족들이 조선에서 생산되는 차를 높이 평가했고 이를 구하기 위해 외교적 방법까지 이용했던 사실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리산 일대에서 자라는 찻잎은 맛과 향기,색깔 모든 면에서 중국 차보다 우수했으며,차 외에도 지리산에서 자라는 약초들의 효험이 빼어났기 때문에 역대 중국의 귀족들이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점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일이다. 이와 같은 차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김종직은 그 자신 차 문화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함양 농민들에게 지워진 차 공물 부담을 어떻게든 줄여주어야 한다는 것과 차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문제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으로 고뇌했던 것 같다. 대답은 관영차밭을 조성하는 것,찻잎을 따고 가공하는 일은 함양 농민들이 협동하여 해냄으로써 부담을 줄이고 차 공물이 지닌 국가적 중요성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높은 학문과 깊은 경륜으로 백성들의 고단한 삶 구석구석을 챙겨주고 보살펴줌으로써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로부터 칭송받아온 어진 사람의 덕망은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이다. ●백성의 고통 어루만진 도학정치 김종직 군수는 그의 도학사상을 강론이나 책 속의 이론으로서만이 아니라 모순에 찬 현실을 개혁하고 불의의 근원을 척결하여 백성들의 삶에서 정치의 꿈이 실현되는 현실 속의 이상을 실천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유학자로서 도학정치의 완성을 꿈꾸었던 그는 조선 차의 역사와 성품을 만들면서 고통스럽게 생을 이어온 백성들의 마음을 절절하게 느꼈던 정치가이자 학자였다. 백성의 존재가 나라의 근본이라는 그의 생각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가장 깊은 화근이자 폐해가 다름 아닌 정치인들이며 가진 자들의 그릇된 생각임을 아프게 꾸짖는 말씀으로 새겨진다. 한편 함양을 두고 “좌강(左江) 안동(安東)이나 우강(友江) 함양” 이라고들 한다.낙동강 동쪽에서는 안동이 훌륭한 유학자를 많이 낳은 땅이고,낙동강 서쪽에는 함양이 그런 땅이라는 말인데,이는 함양을 자랑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그 함양 유학의 기틀이 된 이는 김종직의 문하이면서 안의현감을 지낸 정여창이다.그는 세종 때 함양 지곡에서 나서 큰 학자이자 정치가로서의 생을 살았다.연산군 때 그의 스승인 김종직과 더불어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죽었는데,그 스승과 제자를 죽인 사람들의 이름보다 죽은 이들의 이름이 오늘까지 한국인의 가슴에 향기롭게 살아남아 있다.정녕 문화의 새벽을 여는 민족 정신의 종소리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2)함양군수 김종직을 아십니까?(하)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2)함양군수 김종직을 아십니까?(하)

    김종직이 함양에다 관영차밭을 만든 것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진귀한 사건이었다.그 이후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긴 우리들의 천박한 역사의식이 저지른 우리들의 수치이기도 하다. 김종직 군수가 관영차밭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은 도학사상이 내뿜은 빛이었다.현실세계의 부정과 불의를 질타하고 대안을 내놓아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몸과 마음을 던져 넣는 도학정치의 실천이었다. ●개인 소유 땅 보상해주고 차밭 조성 엄천사 북쪽 대밭 근처에다 함양현에서 직접 관리하는 차밭을 만들려고 하는 땅은 개인소유였다.당연히 적정 가격으로 보상해 주고 사들이거나 아니면 크게 모순되지 않는 조건으로 땅을 바꾸어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김종직 군수는 함양현에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땅과 엄천사 옆의 개인 소유 땅을 바꾸어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땅을 보상해 주는 이 과정에서 그의 도학사상이 추구하는 세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만약 국가의 법령과 제도에 따라서 관영차밭을 만들어야 했다면 문제될 일은 처음부터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법에 정해진 대로 토지를 장만하고 농민들에게 부역을 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종직 군수가 만든 차밭은 법령이나 제도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군수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서 생겨난 일이었다.따라서 함양군수가 나서서 굳이 관영차밭을 조성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차밭을 만들지 않는다 해서 군수가 처벌받을 일이 결코 아니었다. 또한 관영차밭에서 차를 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함양 농민들이 차 공물의 부담에 시달리다 못해 모두 도망을 쳐버리거나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군수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공물을 바치도록 지도하고 계몽하지 않았다는 행정적 책임 정도는 물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함양 농민들한테서 차 공물을 거두지 못한 나라에서는 함양현에서 책임져야 할 양만큼을 다른 지역 농민들에게 떠안겨버리면 그만이었다. 예사 군수들이라면 김종직의 일을 두고 부질없는 일을 자초하여 괜스레 군수의 일거리만 잔뜩 벌여 놓았다며 불평했을 것이다.김종직 군수의 생각은 달랐다. 만일 그쯤에서 관영차밭을 만들고 차를 생산하여 이것으로 농민들의 차 공물을 대신 해결해주지 않으면 장차 함양 농민들이 얼마나 혹독한 고통을 겪게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껏 함양 땅에서 차가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임 군수들은 하나같이 아무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다.관영차밭 조성을 생각하지 못했다면 정부에다 함양 농민들이 겪는 고충과 차 공물 제도의 모순을 바로잡아 달라는 상소라도 올렸어야 옳았다. 그런 일은 고사하고 도리어 기일 안에 차 공물을 바치지 못하면 군수에게 돌아올 행정적인 책임을 면하기 위해 아전들로 하여금 농민들을 독려하도록 엄하게 명령을 내리고 호통쳤을 뿐이었다. 이런 내력을 소상하게 헤아린 김종직 군수는 사뭇 남다른 생각을 했다. 차 공물 제도는 함양군수 따위가 폐지를 건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 제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양 농민들에게 매겨진 차 공물에 대한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게 되면 그 폐해는 매우 커진다는 것을 안 것이다.함양 농민들이 져야 할 책임을 다른 지역 농민들이 떠안게 되면 그 지역 농민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가혹할 것임을 생각했다. 농민들의 부담은 너무 무거웠고,벗어날 방도도 없었다.그렇다고 모든 공직자가 방임해버린다면 가련한 농민들의 삶은 누가 보호해 줄 것인지를 아프게 생각했다.백성이 불행하면 나라 또한 불행해진다는 것이 김종직의 철학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함양 농민들에게 해마다 부과되는 차 공물이 매우 중요한 국가의 외교 업무에 사용되고 있어서,공물의 납부에 차질이 생기게 되면 국가의 위신에 큰 손상이 생기게 된다는 점을 깊이 고려했다. 즉 차 공물은 서울의 왕이나 사대부들이 애용하는 기호품이 아니라 중국과의 외교에 긴요하게 사용되는 조공물(朝貢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국 황제와 귀족들의 기호품이었다. ●차 조공은 중국황실 요구 따른 것 조선왕조의 조공사행(朝貢使行)에는 동지사(冬至使: 동지 때 파견하는 사절로서 한 해를 보내게 된 데 대한 인사),정조사(正朝使: 새해맞이 인사를 위해 보내는 사절),성절사(聖節使: 왕,왕후의 생신을 축하하러 가는 사절),천추사(千秋使: 황태자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사절)의 정기적인 사행(使行)과 임시사행이 있었다.이때 반드시 가져가야 하는 조공물 중에서 매년 시월에 보내는 세폐(歲幣)의 품목에는 차(茶)가 들어 있었다. 조선왕조는 불교를 억압하는 차별정책을 국가이념으로 삼았고 이는 고려왕조와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어서 고려왕조의 문화적 특성이었던 차 마시는 문화를 단절시켰다. 다만 도학사상의 의리파에 속한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과 그의 학맥은 차 마시는 문화를 이어내렸다. 결국 조선왕조에서 차 공물제도를 유지시킨 궁극적 목적은 중국과의 조공에 필요했기 때문이었다.또한 조공품목에 차를 포함시킨 것은 조선왕조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음이 중요하다. 차 문화는 중국이 더 화려했지만 정작 차의 품질면에서는 조선의 차가 더 우수했던 것으로 보인다.중국의 황실이나 귀족들이 조선에서 생산되는 차를 높이 평가했고 이를 구하기 위해 외교적 방법까지 이용했던 사실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리산 일대에서 자라는 찻잎은 맛과 향기,색깔 모든 면에서 중국 차보다 우수했으며,차 외에도 지리산에서 자라는 약초들의 효험이 빼어났기 때문에 역대 중국의 귀족들이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점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일이다. 이와 같은 차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김종직은 그 자신 차 문화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함양 농민들에게 지워진 차 공물 부담을 어떻게든 줄여주어야 한다는 것과 차가 지니고 있는 정치적 문제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으로 고뇌했던 것 같다. 대답은 관영차밭을 조성하는 것,찻잎을 따고 가공하는 일은 함양 농민들이 협동하여 해냄으로써 부담을 줄이고 차 공물이 지닌 국가적 중요성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높은 학문과 깊은 경륜으로 백성들의 고단한 삶 구석구석을 챙겨주고 보살펴줌으로써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로부터 칭송받아온 어진 사람의 덕망은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이다. ●백성의 고통 어루만진 도학정치 김종직 군수는 그의 도학사상을 강론이나 책 속의 이론으로서만이 아니라 모순에 찬 현실을 개혁하고 불의의 근원을 척결하여 백성들의 삶에서 정치의 꿈이 실현되는 현실 속의 이상을 실천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유학자로서 도학정치의 완성을 꿈꾸었던 그는 조선 차의 역사와 성품을 만들면서 고통스럽게 생을 이어온 백성들의 마음을 절절하게 느꼈던 정치가이자 학자였다. 백성의 존재가 나라의 근본이라는 그의 생각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가장 깊은 화근이자 폐해가 다름 아닌 정치인들이며 가진 자들의 그릇된 생각임을 아프게 꾸짖는 말씀으로 새겨진다. 한편 함양을 두고 “좌강(左江) 안동(安東)이나 우강(友江) 함양” 이라고들 한다.낙동강 동쪽에서는 안동이 훌륭한 유학자를 많이 낳은 땅이고,낙동강 서쪽에는 함양이 그런 땅이라는 말인데,이는 함양을 자랑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그 함양 유학의 기틀이 된 이는 김종직의 문하이면서 안의현감을 지낸 정여창이다.그는 세종 때 함양 지곡에서 나서 큰 학자이자 정치가로서의 생을 살았다.연산군 때 그의 스승인 김종직과 더불어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죽었는데,그 스승과 제자를 죽인 사람들의 이름보다 죽은 이들의 이름이 오늘까지 한국인의 가슴에 향기롭게 살아남아 있다.정녕 문화의 새벽을 여는 민족 정신의 종소리다.
  • [나의 건강보감]한신대학교 오영석 총장

    갓 고등학교 1학년인 그가 고 함석헌 선생에게 물었다.“건강한 기독교인으로 살고 싶지만 몸이 너무 약해 걱정입니다.최근에는 신경쇠약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좋은 방도를 일러 주십시오.” 함 선생은 왜소한 체격에 눈만 말똥거리는 이 소년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나는 어려서부터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냉수마찰을 해오고 있다.냉수마찰을 마친 뒤 명상과 기도를 하면 몸과 마음을 두루 건강하게 지킬 수 있지.너도 냉수마찰을 해보는게 어떠냐?”이렇게 해서 냉수마찰은 평생 그와 함께 한 건강법이 됐다. ●함석헌 선생이 일러주신 필생의 건강법 이 소년이 바로 지금의 오영석(62) 한신대 총장이다.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자란 어린 시절,그는 어머니가 ‘사람 노릇을 할까?’ 걱정할 정도로 약골이었다.홍역을 심하게 앓아 여섯살 때까지는 ‘죽을 수도,살 수도 있는’ 그런 목숨이었다.시들시들 자란 소년은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왜소한 몸에,피부 곳곳이 들뜨는가 하면 신경쇠약으로 인한 두통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이 무렵,그는 자신의 종교생활을 이끈 이준묵 목사와 친교하며 해마다 해남을 찾던 함석헌 선생을 만나 필생의 건강법을 얻었으니,큰 스승의 ‘은총’이랄밖에. “그 때부터 새벽4시면 일어나 냉수마찰을 했지요.대야에 길어 담은 맑은 샘물을 삼베에 적셔 전신을 문지르는 거지요.무작정 문질러서는 안됩니다.먼저 발가벗은 뒤에 다리-팔-등을 순서대로 문지른 뒤 배는 맨 나중에 합니다.뱃속에는 오장육부가 들어있어 갑자기 찬 물이 닿으면 안좋거든.”그가 함 선생에게서 이 건강법을 배운 게 59년이니 벌써 햇수로 44년째다.냉수마찰에 대한 믿음은 그 후의 행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유학시절은 물론 감옥에 갇히거나 ‘똥 눌 시간도 없다.’는 신병 훈련소에서도 냉수마찰만은 빠뜨리지 않았다. ●감옥에서도 군대에서도 냉수마찰 계속 “65년 시국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좀 했는데,그 당시 감옥이라는 곳이 물도 없지,세면시간이라야 고작 5분이거든.그래도 타고난 허약체질이라 이걸 안하면 금방 감기가 오는데 도리없지.세면시간에 발가벗고 냉수마찰을 했어요.나중에는 간수들도 냉수마찰 하는 걸 양해해 줘 내놓고 했어요.논산훈련소에서도 훈련병이 감히 냉수마찰 엄두라도 내겠어요.난 했지.남들 세수할 동안에 벼락처럼 해치우곤 했는데,그걸 해야만 살아있다는 걸 느끼거든요.나중엔 내무반장이 이해해 주더라고요.” 그 후,대구 영천 부관학교를 거쳐 20사단에서 복무할 때는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도 철모에 얼음물을 떠놓고 냉수마찰을 했다.“아침 6시 기상인데,난 5시에 일어나 냉수마찰을 했지.철모에 떠놓은 물이 돌아서면 얼어붙어.그래도 냉수마찰과 명상,기도를 하고 나면 새로 의욕이 솟고 세상이 달라보였어요.그래도 그렇지.아,신참 일등병이 그 짓 하고 있으니 금방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한번은 주번사령이 그걸 보고 “뭐 하느냐.”고 물어요.그래 설명을 했더니 “나는 자신 없지만,건강에 좋다니 계속 하라.”고 해 군생활 내내 그걸 할 수 있었어요.” ●68년에 요가 바탕 `그만의 체조´ 만들어 냉수마찰과 함께 그가 ‘내 것’으로 창안한 체조도 오랜 ‘운동지기’다.“68년 무렵,이준묵 목사님에게서 요가를 배웠어요.그후 대학때 등산하다 허리를 다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지.요가 동작을 기본으로 해 내게 맞도록 창안한 건데,모두 15가지 동작입니다.지난 76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유학한 6년 동안 나를 지켜준 것이 바로 냉수마찰과 요가체좁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냉수마찰과 요가체조에 이어 명상과 기도를 한 뒤 밖으로 나가 과천의 관악산 산자락을 40분 가량 오르는 것으로 운동을 마무리한다.지금도 그런 운동으로 총장이 짊어져야 하는 일상적 스트레스를 감당해 낸다.중학교때부터 익힌 아령이며 평행봉으로 지금도 짬짬이 몸을 푸는가 하면 대학 다닐 때는 학교 배구선수로 뛸 만큼 여러 운동을 두루 섭렵했다.지금 그가 누리는 건강은 ‘절박한 필요가 낳은 몰두’의 결과다.이처럼 ‘건강한 삶’에 평생을 투자한 덕분에 또래 가운데 가장 허약한 그가 지금은 가장 튼실한 사람이 됐다.이런 그가 일군 건강의 비결은 ‘꾸준함’.“운동,꾸준해야 됩니다.지금도 하루 운동을 못하면 중압감이 느껴지고,사흘을 못하면 몸에 이상이 옵니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 저절로 건강” 사실,그가 처음 선택한 대학은 의대였다.의대에서 인술을 펴는 의사를 꿈꾸던 그에게 “좋은 의사가 되려면 신학공부를 하라.”는 선배의 조언이 힘이 돼 한신대에 입학하면서 목회자의 삶을 시작했다.“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없지는 않으나,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는 목회자의 길도 뜻깊고 소중하다.”는 그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건강법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이다.“간단하게 말하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우주의 질서에 인체의 생체리듬을 맞추는 방법입니다.인간이 영장이지만 우주의 일부에 불과합니다.더 겸손하게 살 필요가 있는 존재이지요.그러기 위해 사람들이 좋은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고,특히 청소년들은 위대한 삶을 살았던 선인들을 정신적 지향으로 삼아 더 치열하게 살기를 권합니다.그들이 모두 정치가,의사, 법률가만 되려 한다면 이 사회가 얼마나 살벌하고 삭막하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기도를 소개했다.“항상 노력하고 탐구하지만 아직도 저는 까마득히 부족합니다.부족한 제가 더 자랄 수 있도록,그래서 이 막막한 세상에 등불 하나 밝힐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주소서.”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강성남기자 snk@˝
  • [러일전쟁 100주년]박종효 前모스크바대 교수 본지 기고 (상)

    8일은 러일전쟁의 첫 포성이 울린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일본은 이 전쟁에서 러시아를 이겨 사실상 대한제국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다.최근 일제 식민시대의 서막을 연 러일전쟁의 발발지가 중국 뤼순(旅順)항이 아니라 제물포 팔미도(八尾島)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박종효 전 국립모스크바대 교수가 러시아국립 해군함대 문서보관소 자료에서 확인한 것이다.박 전 교수가 서울신문에 보내온 ‘러일전쟁의 서막,러시아 바략함과 카레예츠함의 제물포해전’이라는 글을 2회에 걸쳐 요약한다. 러일전쟁으로 대한제국은 위태롭게 유지하던 독립을 일본에 약탈당하게 되었다.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남한은 패전국 일본 대신 전승국 미국이,북한은 공교롭게도 제정 러시아의 후신인 구 소련이 점령하여 각각 자기 세력권으로 편입시켰다. 일본은 1896년 야마기다 원수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사절로 보냈다.야마기다는 러시아 외무장관 로바노프 로스토프스키에게 한반도를 38선으로 분할하여 각각 러·일의 영향권으로 설정하자는 제안을 했다.러시아는 이 제안을 거부했으나,한반도 분할문제는 이때부터 러·일 사이에 잠정적인 논의 대상이 됐다.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소련에 제의한 38선 분할안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1945년 8월13일부터 청진과 원산 등으로 상륙한 소련군의 남하를 시급히 차단해야 했다.이에 제정 러시아 시대에 이미 일본이 제안한 38선을 상기했다.우리의 비극적 근·현대사의 기원과 원인 제공은 열강의 침투와 러일전쟁에서 비롯되었다. ●러 국립 문서보관소 자료에서 확인 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문서에 따르면 러일전쟁의 첫 포성은 중국 뤼순항이라고 한국학계가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제물포 팔미도 앞바다에서 울렸다.일본 함대는 1904년 2월9일 새벽 뤼순항에 앞서 2월8일 우리 영해에서 러시아 포함 카레예츠함과 처음 교전했다.고려인이라는 뜻의 ‘카레예츠’는 마산포 개항을 기념하여 러시아 해군이 붙인 이름이다.이날 밤 제물포에 상륙한 3000여명의 일본군은 대한제국군 2만여명과 청룡1호 해군훈련함이 있었지만,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서울을 점령했다. 앞서 1903년 말 한반도에는 동학교도가 일본인을 내쫓기 위해 다시 봉기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일본군이 이를 진압하려 상륙하면 대한제국군은 동학교도들에 가담하여 폭동을 일으키고,독립을 위협하는 영일조약 당사자인 일본공사관과 영국공사관을 습격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놀란 영국은 12월 말 공사관 보호를 위해 순양함 시리어스함에 28명의 해병대원을 승선시켜 제물포로 파견하고,곧 이어 탈보트함에 도착했다.다른 열강도 제각기 함대를 급파했다.미국을 빅스버그,프랑스는 파스칼,이탈리아는 엘바,독일은 한사,일본은 지오다,러시아는 바략함을 보내 제물포는 마치 열강 해군의 집합소처럼 변모했다. 일본군은 전신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서울에 800명,원산에 400명,부산에 400명을 주둔시키고 있었다.그런데 1904년 2월 초부터는 마산포에 1만 2000명을 상륙시키고,군수품과 식량을 수송해 왔다.원산에도 민간인 복장을 한 예비군과 군인 및 군마를 비롯한 군수품과 탄약 등을 수송했다.일본은 이처럼 전쟁준비를 착착 진행하면서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일협상은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이 무렵 러시아 극동총본부는 1904년 2월2일부터 4일까지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아무르 군관구 사령부로부터 극동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귀국하고 있다는 긴급보고를 받았다.이미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일본인 귀국여객선이 대기하고 있었다.긴박감을 느낀 극동총독은 니콜라이 2세에게 총동원령과 함대 배치 칙령을 요청했으나,황제는 일본이 먼저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한반도 남쪽이나 동해안 원산 이남에 상륙할 경우 러시아가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그러나 서해안에 일본의 상륙군을 수송하는 군함이 나타나거나,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는 군함이 있으면 발포를 기다리지 말고 선제 공격하라고 덧붙였다.이처럼 러·일 양국은 이미 묵시적으로 각각 한반도 남북의 영향권을 인정하고 있었던 셈이다. 러시아는 제물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뤼순항의 배후 항으로 서울의 러시아 공사관과 멀지 않은 제물포에 1903년 3척의 순양함을 파견했다.1904년 1월18일 두 척의 순양함이 뤼순으로 귀항하자,제물포에는 바략함과 소형 포함 카레예츠함,여객선 순가리(송화강)호만 남았다.일본은 1903년 말에 러시아가 아직 미완성이었던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하여 유럽지역으로부터 일부 군대를 연해주 군관구로 이동시켰다는 첩보를 받고 크게 놀랐다.대한제국 협상에서 러시아가 시간을 끄는 것도 일본에 불안감을 가중시켰다.일본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러시아에 유리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반대로 러시아는 태평양함대와 극동 주둔 육군이 일본에 열세였으므로 협상을 통하여 철도를 완성시킬 때까지 시간을 벌면서 어떻게든 대한제국 문제를 카드로 만주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러시아는 일본과의 관계악화를 원하지 않았다.대한제국에서 일본의 우월권을 인정하면서 직접적으로 국경선을 접한 만주의 이권을 보호하고 만주개방을 요구하는 일본과의 완충지대로 한반도를 고려하고 있었다.극동 현상유지 정책으로 대한제국이 독립국가로 있는 것이 러시아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여,특히 고종에게 정치적의 호의를 보이면서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1904년 2월4일 청나라 주재 일본영사가 뤼순항의 러시아군함이 모종의 중대한 임무를 띠고 출항했다는 급보를 도쿄에 보냈다.그러나 28척의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해상훈련을 나간 것이었다. ●日, 러 공사관·군함 통신망 봉쇄 일본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4일 밤 일왕 특별 어전회의를 열어 대 러시아전쟁을 결의했다.일본이 외교단절을 선언했지만 제물포의 러시아 함대와 서울의 러시아 공사관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일본은 한반도의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으면서,전략적으로 서울 러시아 공사관이 외부와 통신연락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봉쇄했다. 5일 한 미국인이 중국의 상하이에서 제물포에 도착하면서 러·일 사이에 곧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6일 아침 일본 해군중장 도고는 사세보(佐世保)로 함장들을 소집했다.전 함대는 황해로 발진하여 제물포와 뤼순항에 정박하고 있는 러시아 함대를 습격하라고 명령했다.일본 연합함대는 6척의 전함,14척의 순양함,35척 이상의 어뢰정으로 구성됐다. 7일 제4전투함대사령관 우리우 소장은 5척의 순양함과 8척의 어뢰정,3척의 대형 상륙군 수송선으로 제물포로 향했다.제물포에 정박중이던 순양함 지오다함은 8일 새벽 출항하여 러시아 함대 동향을 보고한 뒤 일본함대에 합세했다.우리우는 러시아의 바략함과 카레예츠함은 제물포에 상륙하는 일본군을 방해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 있었던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는 바략함장 루든예프에게 공사관의 비밀 보고문서를 카레예프함으로 직접 뤼순항으로 전달하라고 지시했다.이 긴급문서 가운데는 고종 황제가 은밀히 전한 문서도 있었다.일본 함대가 압록강 하구로 항해하고 있으며,제물포에 일본군이 상륙할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카레예츠함은 8일 오후 3시40분 제물포를 출항하여 15분 만에 멀리서 2열종대로 다가오는 일본 순양함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마침내 제물포 남방 13.5㎞ 지점에 있는 작은 섬 팔미도 근해에서 일본함대와 조우했다.카레예츠함장 벨야예프 해군중령은 러시아와 일본의 외교단절을 모르는 상태였다.일본함대가 진로를 가로막고 공격태세를 취하자 카레예츠함은 제물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4척의 일본 어뢰정 가운데 한 척이 어뢰로 첫 공격을 했을 때 벨야예프도 전투경보를 내렸다.오후 4시35분이었다.제2,제3의 어뢰정이 잇따라 어뢰를 발사했다.벨야예프도 두 번째 어뢰공격을 받자 발포명령을 내렸다. 일본측의 ‘해전기록(海戰記錄)’은 카레예츠함이 일본의 어뢰정을 보자 갑자기 오른쪽으로 피하면서 어뢰정에 포를 발사했고,수송선에 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만 되어 있다.일본함대가 응사하여 교전이 이루어졌다는 대목은 없다.그러나 대형 함대에 소형 포함 한 척이 먼저 포를 발사했다는 일본측 주장은 신뢰할 수 없다. ●러 바략함 수장, 카레예츠함 폭파 이렇게 러일전쟁은 뤼순항이 아니라 2월8일 오후 4시40분쯤 제물포 팔미도에서 일본측이 먼저 발포하여 시작됐다.그러나 통신이 두절된 제물포의 러시아군은 본국에 보고할 수 없었고,다음날 새벽 뤼순의 태평양함대가 기습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페테르부르크에 먼저 전달되면서 전쟁 발발 날짜가 2월9일로 기정사실화된 것이다.한편 제물포의 일본함대는 9일 낮 바략함 및 카레예츠함과 다시 본격적인 교전을 벌였고,전함수 14대2의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러시아군은 결국 바략함을 수장시키고,카레예츠함은 폭파시켰다.러시아는 제물포해전을 패전이 아닌 러시아 해군 사상 가장 영웅적인 전투로 평가하면서,전설적인 신화처럼 한 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기념하고 있다.˝
  • 고양 계약자 “住公도 분양가 밝혀라”

    서울시 도시개발공사 아파트 분양원가 내역 공개 파장이 주공 아파트로 번지고 있다. 6일 주택업계에 따르면 대한주택공사가 작년 11월 경기도 고양시 풍동지구에 분양한 아파트 계약자들은 5일 계약자 대표자회의를 구성,주택공사에 분양가 공개 및 인하를 요구했다. 계약자 대표자회의는 “주공도 서울시 도시개발공사처럼 분양가를 공개해야 한다.”면서 “주공이 분양가 공개를 계속 거부하고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이달말 법원에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을 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분양가 공개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계속 고수했다. 류찬희기자 chani@˝
  • 북파공작원들 인력파견社 차렸다

    북파공작원 동지들이 사장과 직원으로 다시 뭉쳤다.대한민국 HID 북파공작원 인천본부는 지난달 8일 ㈜인천HID라는 상호로 회사를 설립하고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인천HID의 주 사업 분야는 경비·청소·인력파견업으로 인천본부 HID 회원 150여명을 직원으로 두고 있다.회사 사무실은 인천시 남동구 간석3동에 위치한 HID인천본부 사무실을 그대로 쓰고 있다.직원들은 한국전쟁 직후 HID에서 활동한 직원부터 90년대 초반에 전역한 젊은 직원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50세를 넘긴 직원들 중엔 상당수가 한번 이상씩 북한에 잠입,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들이기도 하다.인천HID 이덕로 부회장은 “몸뚱이 하나를 밑천 삼아 열심히 해 보려 했지만 사회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다.”며 “하지만 언제나 사회의 부적응자로 남을 순 없다는 회원들간의 의기투합으로 회사를 설립하게 됐다.”고 회사 설립배경을 밝혔다. /연합˝
  • [인사]

    ■ 외교통상부 △주 유엔연합 대표부 차석 대사 신각수 ■ 건설교통부 ◇국장급 파견 △중앙공무원교육원 鄭昌洙 李靈根△국방대학원 李在春◇과장급 파견△세종연구소 申東震 ■ 정보통신부 △전파방송관리국장 申容燮△공보관 姜大榮△국제협력관 邢泰根△감사관 南宮 珉△정보기반심의관 姜仲協△전산관리소장 金仁植△강원체신청장 高光燮△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 柳必啓△국방대학교 파견 梁俊喆 ■ 스포츠서울21 △광고국 광고2부장 趙遠興 ■ 한겨레신문사 △이사대우 논설주간 金善珠△사업담당 이사 朴聖得△판매제작담당 이사대우 尹錫仁△이사대우 교육문화국장 李炳△경영기획실장 崔永善△전략기획담당 고문 吳龜煥 ■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비즈넷타임스 본부장 겸 주간 서명수△월간중앙 온라인에디터 겸 정치개혁포럼팀장 이필재 ■ 중앙방송 ◇본부장 △방송 직대 박동수△경영 이근목 ■ 국가보훈처 ◇부이사관 교육파견 △국방대 張大燮△세종연구소 鄭桂雄 ■ 특허청 ◇국장 전보 △기획관리관 尹鍾敏△특허심판원 심판장 金鎭 ■ 국세청 ◇국장급 파견△국방대학교 丁炳春△중앙공무원교육원 金浩業◇과장급 파견△세종연구소 陳祐範 ■ 경기도 △자치행정국장 朴薺珦△환경〃 朴信興△보건복지〃 朴稚順△건설교통〃 咸重植△제2청 기획행정실장 朴光錫△제2청 경제농정국장 李賢默△제2청 환경보건〃 李根洪△비서실장 韓英九△감사관 鄭興在△지방공무원교육원장 李麟載△건설본부장 趙炳敦△정책기획관 兪政仁△의회사무처장 李炳萬△수원부시장 李錫雨△성남〃 梁仁權△고양〃 蘇秉周△남양주〃 芮昌根△파주〃 李禹衡△구리〃 尹聖均△김포〃 崔泰烈△광주〃 文洪吉△의왕〃 李花順△군포〃 趙炳錫△안성〃 申光植△오산〃 崔文鎔△과천〃 朴鍾善△동두천〃 朴相國△화성〃 崔源澤△여주부군수 禹仁煥△연천〃 李丙晩△수원시(구청장요원) 李胤澤△성남시(〃) 朴光一△안양시(〃) 朴元鏞△교육파견 崔順植 徐효원 金正翰 李圭雄 黃永喆 盧承哲 李熙雄 兪在佑 朴禹良 馬昌煥 趙斌株 李海龍 李容瓘 崔承大 金賢哲 李鎭浩 ■ 서울시 도시철도공사 ◇임용 △감사 姜熙豊 ◇2급 전보△대공원역무관리소장 柳亨根△모란〃 洪性兌△전기설비사업소 지원팀장 李永埈△시설사업소 보선2〃 朴光植 ◇2급 승진△전산정보처 정보개발팀장 李愚相△연수원 교무〃 崔乘大△시설사업소 지원〃 金善一△지원관리처 자산관리〃 金在官△도봉차량사업소 지원〃 金能周△고덕〃 〃 安永權 ■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체육산업개발(주)) △상무 李曙海△사업부장 직대 金東圭△일산올림픽스포츠센터 관장 朴東燮△스포츠교실 운영부장 金顯龍 ■ 한국산업인력공단 ◇국장급 승진 △부산지역본부 능력개발지원국장 李茂植△대구지역본부 검정관리국장 韓相源△정선직업전문학교 원장 邊茂長△출제실 출제1팀장 田孝重△〃 출제5팀장 朴春和◇국장급 전보△경영기획실장 金興在△총무국장 具慶會△외국인고용지원〃 洪錫雲△인력개발지원〃 金仁政△국제협력〃 李丁雨△출제실 출제2팀장 朴範洙△〃 출제3팀장 朴浩然△〃 출제4팀장 奇庚鐵△서울지역본부 능력개발지원국장 李明熙△원주직업전문학교 원장 金光洙△경기지방사무소장 呂榮燮△춘천〃 崔乘鎬△대전지역본부 검정관리국장 李泰鉉△순천직업전문학교 원장 金文煥△전북〃 〃 金光永 ■ 교보생명 △다이렉트지원 팀장 金昱△법인영업기획〃 姜喆元△투신마케팅〃 黃在勳△북경주재사무소장 許錦珠 ■ 고려대 △교육대학원장 權大鳳△언론대학원장 元佑鉉△태양광사업단장 金東煥 ■ 서울아산병원 △담석센터 소장 金明煥 ■ 경남은행 ◇1급 승진 △서울지점장 河宗振△검사부장 崔根卿◇2급 승진△무거동지점장 崔鎬根△구미지점장 全煥△합천지점장 黃永一△문화홍보실장 權宇相△신월동지점장 王洪成△사무지원부장 金昌淳△지내동지점장 李文基△우정동지점장 梁浩天△고객부장 鄭鉉靖 ■ ㈜발텍 △상무 이승룡 ■ 파라다이스그룹 △부사장 이원진△전무 박병룡△이사 최승무 서영철 손호철△이사 이호영 백진기△이사대우 김종헌 박영호△대표이사 사장 백운태△상무 이규백△이사대우 이병선△대표이사 전무 김한기△상무 노영관△대표이사 사장 유영섭△전무 정훈구△상무 임병찬△이사대우 이강호△전무 이택일△상무 배태호△대표이사 부사장 김형겸△상무 손영수△대표이사 상무 박영호
  • 김남주 10주기 추모 첫 평전 발간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소나무 뿐이다.”라는 괴테의 말은 ‘진리의 힘’을 돌아보게 한다.이론과 실천이 결합된 그 영원한 싯푸름을 삶으로 보여준 인물로 우리는 칼 마르크스,체 게바라를 떠올린다.좀 더 가까운 곳에서는 ‘시인 김남주’를 기억한다. 13일은 그가 평생 사랑했던 민중의 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날.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기리는 책이 나오고 추모문화제가 열려 ‘김남주의 자리’를 되새기게 한다. 대구가톨릭대학 철학과 강대석 교수가 지은 ‘김남주 평전’(한얼미디어 펴냄)은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첫 평전.강교수는 감옥도 가두지 못한 김남주 시인의 사상·문학의 고갱이를 ‘계급의식’으로 규명한다.김지하와 황석영의 저항정신과 문학적 형상화를 뛰어넘는 김남주,그만의 미덕을 ”철저한 역사의식과 세계관을 견지했다.”고 평가한다. 이런 입장에 바탕하여 지은이는 1부에서 김남주 시인의 삶을 상세하게 추적한다.시인은 전남 해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79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남민전)’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아 1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와 5년 동안 살다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평전이 돋보이는 대목은 시인의 삶을 단순 연대기로 서술하는게 아니라 작품을 적절하게 배치해 삶의 편린들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어릴적 성장기에는 ‘아버지’‘이야기’,중고교시절엔 ‘그러나 나는 잘된 일인지 못된 일인지’같은 시를 얹어 고뇌와 인간성을 살려낸다. 2부 ‘투쟁의 무기’는 시인의 예술세계를 보듬는다.주요 시집 ‘조국은 하나다’와 산문집 ‘시와 혁명’ 등을 토대로 시인의 통일·민중에 대한 애정의 원천을 풀어낸다.당연히 지은이의 철학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이 바탕이 됐다.저자는 또 정세 분석을 병행하면서 ‘시인의 선택’이 어떻게 나왔고 필요했는지에 대해 당위성을 부여한다.여기에 중학교 친구로서 변혁의 길을 함께 걸은 이강,선배 박석무,남조선민족해방전선의 동지 박석률 등 관련 인물의 생생한 증언을 덧붙여 평전을 살아있게 한다.덕분에 ‘민중의 벗’ 김남주는 영원히 푸른 소나무로 되살아 난다. 한편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관련 단체들과 함께 13일부터 이틀간 전남 해남문예회관,김남주 생가,5·18기념문화관 등지서 추모문화제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김남주 시 ‘노래’의 첫 행)를 연다.추모제는 가수 안치환,극단 ‘토박이’‘신명’의 공연과 ‘소설가 황석영이 본 김남주의 삶과 문학세계’강연으로 이뤄진다.15일에는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추모제도 갖는다.(02)313-1486. 이종수기자 vielee@˝
  • [인사]

    ■ 외교통상부 △주 유엔연합 대표부 차석 대사 신각수 ■ 건설교통부 ◇국장급 파견 △중앙공무원교육원 鄭昌洙 李靈根△국방대학원 李在春◇과장급 파견△세종연구소 申東震 ■ 정보통신부 △전파방송관리국장 申容燮△공보관 姜大榮△국제협력관 邢泰根△감사관 南宮 珉△정보기반심의관 姜仲協△전산관리소장 金仁植△강원체신청장 高光燮△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 柳必啓△국방대학교 파견 梁俊喆 ■ 스포츠서울21 △광고국 광고2부장 趙遠興 ■ 한겨레신문사 △이사대우 논설주간 金善珠△사업담당 이사 朴聖得△판매제작담당 이사대우 尹錫仁△이사대우 교육문화국장 李炳△경영기획실장 崔永善△전략기획담당 고문 吳龜煥 ■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비즈넷타임스 본부장 겸 주간 서명수△월간중앙 온라인에디터 겸 정치개혁포럼팀장 이필재 ■ 중앙방송 ◇본부장 △방송 직대 박동수△경영 이근목 ■ 국가보훈처 ◇부이사관 교육파견 △국방대 張大燮△세종연구소 鄭桂雄 ■ 특허청 ◇국장 전보 △기획관리관 尹鍾敏△특허심판원 심판장 金鎭 ■ 국세청 ◇국장급 파견△국방대학교 丁炳春△중앙공무원교육원 金浩業◇과장급 파견△세종연구소 陳祐範 ■ 경기도 △자치행정국장 朴薺珦△환경〃 朴信興△보건복지〃 朴稚順△건설교통〃 咸重植△제2청 기획행정실장 朴光錫△제2청 경제농정국장 李賢默△제2청 환경보건〃 李根洪△비서실장 韓英九△감사관 鄭興在△지방공무원교육원장 李麟載△건설본부장 趙炳敦△정책기획관 兪政仁△의회사무처장 李炳萬△수원부시장 李錫雨△성남〃 梁仁權△고양〃 蘇秉周△남양주〃 芮昌根△파주〃 李禹衡△구리〃 尹聖均△김포〃 崔泰烈△광주〃 文洪吉△의왕〃 李花順△군포〃 趙炳錫△안성〃 申光植△오산〃 崔文鎔△과천〃 朴鍾善△동두천〃 朴相國△화성〃 崔源澤△여주부군수 禹仁煥△연천〃 李丙晩△수원시(구청장요원) 李胤澤△성남시(〃) 朴光一△안양시(〃) 朴元鏞△교육파견 崔順植 徐효원 金正翰 李圭雄 黃永喆 盧承哲 李熙雄 兪在佑 朴禹良 馬昌煥 趙斌株 李海龍 李容瓘 崔承大 金賢哲 李鎭浩 ■ 서울시 도시철도공사 ◇임용 △감사 姜熙豊 ◇2급 전보△대공원역무관리소장 柳亨根△모란〃 洪性兌△전기설비사업소 지원팀장 李永埈△시설사업소 보선2〃 朴光植 ◇2급 승진△전산정보처 정보개발팀장 李愚相△연수원 교무〃 崔乘大△시설사업소 지원〃 金善一△지원관리처 자산관리〃 金在官△도봉차량사업소 지원〃 金能周△고덕〃 〃 安永權 ■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체육산업개발(주)) △상무 李曙海△사업부장 직대 金東圭△일산올림픽스포츠센터 관장 朴東燮△스포츠교실 운영부장 金顯龍 ■ 한국산업인력공단 ◇국장급 승진 △부산지역본부 능력개발지원국장 李茂植△대구지역본부 검정관리국장 韓相源△정선직업전문학교 원장 邊茂長△출제실 출제1팀장 田孝重△〃 출제5팀장 朴春和◇국장급 전보△경영기획실장 金興在△총무국장 具慶會△외국인고용지원〃 洪錫雲△인력개발지원〃 金仁政△국제협력〃 李丁雨△출제실 출제2팀장 朴範洙△〃 출제3팀장 朴浩然△〃 출제4팀장 奇庚鐵△서울지역본부 능력개발지원국장 李明熙△원주직업전문학교 원장 金光洙△경기지방사무소장 呂榮燮△춘천〃 崔乘鎬△대전지역본부 검정관리국장 李泰鉉△순천직업전문학교 원장 金文煥△전북〃 〃 金光永 ■ 교보생명 △다이렉트지원 팀장 金昱△법인영업기획〃 姜喆元△투신마케팅〃 黃在勳△북경주재사무소장 許錦珠 ■ 고려대 △교육대학원장 權大鳳△언론대학원장 元佑鉉△태양광사업단장 金東煥 ■ 서울아산병원 △담석센터 소장 金明煥 ■ 경남은행 ◇1급 승진 △서울지점장 河宗振△검사부장 崔根卿◇2급 승진△무거동지점장 崔鎬根△구미지점장 全煥△합천지점장 黃永一△문화홍보실장 權宇相△신월동지점장 王洪成△사무지원부장 金昌淳△지내동지점장 李文基△우정동지점장 梁浩天△고객부장 鄭鉉靖 ■ ㈜발텍 △상무 이승룡 ■ 파라다이스그룹 △부사장 이원진△전무 박병룡△이사 최승무 서영철 손호철△이사 이호영 백진기△이사대우 김종헌 박영호△대표이사 사장 백운태△상무 이규백△이사대우 이병선△대표이사 전무 김한기△상무 노영관△대표이사 사장 유영섭△전무 정훈구△상무 임병찬△이사대우 이강호△전무 이택일△상무 배태호△대표이사 부사장 김형겸△상무 손영수△대표이사 상무 박영호
  • [부고]

    ●權鎭東(대용자원 대표)明淑(구로구 총무과 직원)씨 부친상 尹泰源(상설운수 대표)安光睦(서울신문 편집부장)高大洙(대호산업 대표)씨 빙부상 4일 오전 3시 대구의료원,발인 6일 오전 8시 (053)551-8432 ●張義鎭(전 충북도 부지사)씨 상배 俊雄(LG 과장)씨 모친상 鄭俊(시티은행 부장)姜承協(신세계 대리)씨 빙모상 4일 오전 1시3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6일 오전 8시 (02)590-2538 ●金中星(자영업)中雨(연세대 기획차장)中屹(군산중앙중 교사)씨 모친상 3일 오후 11시3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6일 오전 7시30분 (02)392-0299 ●金鎬英(대우증권 효자동지점 과장)씨 모친상 3일 오후 3시 전북 전주시 전북대병원,발인 5일 오전 11시 (063)251-8268 ●李奉煥(전 현대전자 연구소장)明煥(공군사관학교 교수)德煥(㈜피죤 전략기획팀장)씨 부친상 李華榮(자영업)韓基大(우리은행 창동북지점장)씨 빙부상 3일 오후 8시3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5일 오전 10시 (02)3410-6914 ●許洙(전 대한여객 주주)씨 별세 彰烈(국립수의과학검역원 검역관)相烈(삼성물산 건설부문 과장)씨 부친상 申均夏(동원이엔씨건설 부장)吳圭權(쌍용화재보험 전주지사장)金章奎(포스코상사 대표)씨 빙부상 4일 오전 2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6시 (02)3010-2237 ●李根宇(자영업)根安(미국 거주)씨 모친상 書烈(코리아엔터테인먼트 대표)씨 조모상 3일 오후 7시2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0시 (02)3010-2238 ●陳宰(변호사)正宰(서울 강서중앙의원장)씨 모친상 崔炳久(단국대 물리학과 교수)씨 빙모상 4일 0시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8시 (02)3010-2292 ●金榮相(경기기술단 이사)씨 형님상 4일 오전 7시 서울 경희의료원,발인 6일 오전 8시 (02)958-9547 ●鞠玉鎬(전 육군 원사)씨 상배 潤萬(세라증 직원)씨 모친상 李鍵郁(두산그룹 전략기획본부 과장)씨 빙모상 4일 0시25분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발인 6일 오전 7시30분 (031)920-0307 ●宋泳錫(현대하이스코 과장)泳周(한누리투자증권 투자금융팀 부장)泳承(정인월드 대표)씨 모친상 3일 오후 7시40분 경기 고양시 일산병원,발인 5일 오전 7시20분 (031)908-1599 ●金南植(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실장)靖桓(회사원)씨 부친상 朴炳圭(스터링테크 부장)梁時憲(파워펄스 대표)씨 빙부상 3일 오전 8시20분 광주 한국병원,발인 5일 오전 9시 (062)380-3045 ●崔昌日(자영업)昌燮(MBC 아나운서국 위원)씨 부친상 許光寧(국립한국재활복지대학 직원)씨 빙부상 4일 오전 8시55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6일 오전 8시30분 (02)590-2579 ●金商琦(자영업)商鎬(〃)商善(케네텍 이사)씨 부친상 3일 오전 11시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5일 오전 10시 (02)3010-2293˝
  • [부고]

    ●權鎭東(대용자원 대표)明淑(구로구 총무과 직원)씨 부친상 尹泰源(상설운수 대표)安光睦(서울신문 편집부장)高大洙(대호산업 대표)씨 빙부상 4일 오전 3시 대구의료원,발인 6일 오전 8시 (053)551-8432 ●張義鎭(전 충북도 부지사)씨 상배 俊雄(LG 과장)씨 모친상 鄭俊(시티은행 부장)姜承協(신세계 대리)씨 빙모상 4일 오전 1시3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6일 오전 8시 (02)590-2538 ●金中星(자영업)中雨(연세대 기획차장)中屹(군산중앙중 교사)씨 모친상 3일 오후 11시3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6일 오전 7시30분 (02)392-0299 ●金鎬英(대우증권 효자동지점 과장)씨 모친상 3일 오후 3시 전북 전주시 전북대병원,발인 5일 오전 11시 (063)251-8268 ●李奉煥(전 현대전자 연구소장)明煥(공군사관학교 교수)德煥(㈜피죤 전략기획팀장)씨 부친상 李華榮(자영업)韓基大(우리은행 창동북지점장)씨 빙부상 3일 오후 8시3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5일 오전 10시 (02)3410-6914 ●許洙(전 대한여객 주주)씨 별세 彰烈(국립수의과학검역원 검역관)相烈(삼성물산 건설부문 과장)씨 부친상 申均夏(동원이엔씨건설 부장)吳圭權(쌍용화재보험 전주지사장)金章奎(포스코상사 대표)씨 빙부상 4일 오전 2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6시 (02)3010-2237 ●李根宇(자영업)根安(미국 거주)씨 모친상 書烈(코리아엔터테인먼트 대표)씨 조모상 3일 오후 7시2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0시 (02)3010-2238 ●陳宰(변호사)正宰(서울 강서중앙의원장)씨 모친상 崔炳久(단국대 물리학과 교수)씨 빙모상 4일 0시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6일 오전 8시 (02)3010-2292 ●金榮相(경기기술단 이사)씨 형님상 4일 오전 7시 서울 경희의료원,발인 6일 오전 8시 (02)958-9547 ●鞠玉鎬(전 육군 원사)씨 상배 潤萬(세라증 직원)씨 모친상 李鍵郁(두산그룹 전략기획본부 과장)씨 빙모상 4일 0시25분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발인 6일 오전 7시30분 (031)920-0307 ●宋泳錫(현대하이스코 과장)泳周(한누리투자증권 투자금융팀 부장)泳承(정인월드 대표)씨 모친상 3일 오후 7시40분 경기 고양시 일산병원,발인 5일 오전 7시20분 (031)908-1599 ●金南植(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실장)靖桓(회사원)씨 부친상 朴炳圭(스터링테크 부장)梁時憲(파워펄스 대표)씨 빙부상 3일 오전 8시20분 광주 한국병원,발인 5일 오전 9시 (062)380-3045 ●崔昌日(자영업)昌燮(MBC 아나운서국 위원)씨 부친상 許光寧(국립한국재활복지대학 직원)씨 빙부상 4일 오전 8시55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6일 오전 8시30분 (02)590-2579 ●金商琦(자영업)商鎬(〃)商善(케네텍 이사)씨 부친상 3일 오전 11시5분 서울아산병원,발인 5일 오전 10시 (02)3010-2293
  • 반돌이 추적 잠정중단/소재는 파악… 장군이는 ‘쿨쿨’

    지리산 반달곰 ‘반돌’이가 당분간 ‘도망자’ 신세를 벗어나게 됐다.지난해 11월 보호시설을 탈출한 이후 추적팀을 따돌리느라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봄이 올 때까지 겨울잠을 자거나,지리산 자락을 편안하게 돌아다닐 것으로 보인다.석달째 뒤를 쫓고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 관리팀이 추적활동을 잠시 중단키로 했기 때문이다. 한상훈 관리팀장은 3일 “다음달 말이나 4월 초까지 당분간 반돌이 추적활동을 중단할 것”이라면서 “반돌이가 현재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 데다 주요 활동지역이 파악된 만큼 목을 지키고 있다가 봄철이 돼 반돌이가 나타나면 그때 가서 포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현재 반돌이는 지리산 경남쪽 자락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반돌이와 함께 방사된 ‘장군’이는 설 연휴를 전후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먹이를 찾기가 쉽지 않게 되자 뒤늦게 겨울잠에 들어갔다.관리팀은 “1주일 전부터 동면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
  • “4년여만에 ‘자유인’이 되었습니다”/민노총 수장자리 떠나는 단병호 前위원장

    “하루도 긴장을 풀지 못하다 이제야 ‘자유인’이 된 느낌입니다.” 4년 5개월 동안 민주노총 수장자리를 지켰던 단병호(55) 전 위원장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임기만료를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만난 그는 오랜만에 평온한 모습이었다.‘한국노동운동 1세대’‘열혈투사’ 등의 수식어와는 거리감을 갖게 했다. 집무실에는 미처 옮기지 못한 짐꾸러미들이 박스에 포장된 채 한켠에 쌓여 있었다.성급하게 향후 거취문제에 대해물은 탓일까, “아직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쉬면서 동료나 주변의 의견을 들어 움직이겠다.”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40줄 가까워 노동운동 시작… 가족에 늘 죄책감 그는 “앞으로의 포부랄까 커다란 계획 같은 것은 좀더 두고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그러면서 국내 최대 노동조직으로 꼽히는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역할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는 점에 만족감을 표했다. 그는 87년 40줄에 가까운 늦은 나이에 노동 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올해로 17년이 됐다.하지만 지금까지 노동운동에 투신한 것을 후회하거나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는 “앞으로는 가족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징역살이와 수배생활을 하면서 가족은 언제나 뒷전이었기 때문이다.그는 대학생인 딸과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이 아버지가 걸어온 길의 의미를 나름대로 이해하는 것 같아 대견스럽다고 자랑한다. 노동운동을 벌이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아주 우연히’라고 답했다.청년시절은 험난하기만 했다며 먹고 살기 위해 행상까지 나서야 했다고 밝혔다. 직장다운 직장을 갖게 된 것은 83년 ㈜동아콘크리트에 입사한 것이 처음이다.전신주를 만드는 회사로 동아건설 창동공장으로 이름이 바뀐 뒤 87년 7월 노조가 결성됐다. 당시 이 회사는 휴일도 반납한 채 일을 했지만 보수가 형편없어 근로자들이 뭉칠 수밖에 없었다.”며 “마음씨 좋다는 이유로 떼밀려 위원장이 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월 총선때 노동자 정치세력화 힘 보탤 것” 실제 그는 동아건설 창동공장노조위원장이 된 이후 서울지역노조협의회 의장이 됐고,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1∼4대 위원장을 거쳐 민주노총 위원장이 됐다. 그는 ‘푹 쉬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노동운동의 중요한 과제이자 여망인 4월총선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힘쓰겠다는 심정은 숨기지 않았다.그러나 본인의 출마여부에 대해서는 끝내 말을 아꼈다. 앞으로 민주노총에 기여할 방법에 대해 “다양한 통로를 열어놓고 고민해 보겠다.위원장직을 떠난다고 해서 노동운동을 접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위치에서 힘을 보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장으로서 보람과 아쉬운 심경도 토로했다.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주요과제로 삼아 활동했던 것이 보람이었지만 제도개선으로까지 끌어올리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주5일 근무제 도입도 사회의제로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국회가 중소영세업체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배제한 방향으로 입법화된 것도 마찬가지다.손해배상 가압류 등으로 목숨을 끊은 일도 두고두고 마음에 걸릴 것이라고 했다.이밖에 노동자들의 염원대로 민주노총 합법화를 이뤄낸 일이나 민주노총 조직이 70만명에 육박할 만큼 거대해진 점 등은 노동자와 국민들의 공으로 돌렸다. ●새 집행부 변화 원한다면 정치·자본부터 바뀌어야 새집행부 구성을 놓고 노동운동의 연성화나 큰 변화가 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에 대해 과도한 기대에 따른 편의적인 해석일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변화와 혁신은 필요하지만 신임 위원장이나 집행부도 그 동안 민주노총을 세우고 강화하는데 함께 힘써왔던 사람들이다.새집행부 역시 전혀 동떨어진 외인부대가 아니라 민주노총 조합원임을 강조했다. 신임 집행부 당선을 전후해서 “언론들은 마치 민주노총이 이전과 완전히 다른 조직으로 변할 것처럼 진단하고 심지어 무쟁의 선언을 하라는 등 무책임한 말을 하고 있는데 모두 과도한 기대에 따른 주관적 바람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아울러 “민주노총의 투쟁노선은 노동운동을 배제하고 탄압해온 정권과 기업의 탄압에 따라 불가피하게 택하게 되는 것”이라며 “이에 대한 노력없이 민주노총운동의 큰 변화를 예단한다는 것은 우스운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민주노총 노선의 변화를 바란다면 정치와 자본의 태도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새 집행부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과 정부의 ‘노사관계선진화 방안(로드맵)’을 저지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주문했다. 정부가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업률을 낮추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일자리 문제의 핵심인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 늘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려운 고비 때마다 관심을 갖고 성원해 준 분들에게 감사한다.”며 “나쁜 이미지는 모두 잊고 좋은 것만 기억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유진상기자 jsr@ ▲1949년 경북 포항 출생 ▲1967년 포항 동지상고 중퇴 ▲1983년 동아건설창동공장 입사 ▲1987년 동아건설창동공장 초대 노조위원장 ▲1988년 서울지역노조협의회 의장 ▲1993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공동대표 ▲1996∼98년 금속연맹 위원장,민주노총 부위원장 ▲1999년 9월 민주노동 위원장 보궐선거 당선 ▲2001년 1월 민주노총 위원장 ▲2004년 1월31일 민주노총 위원장 임기 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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