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살 만한 것인가
글 김성우 언론인, 《돌아가는 배》 저자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만큼 통속적이고 진부한 물음도 없지만 이만큼 진지하고 어려운 물음도 없다. 자꾸 묻는 것은 아무도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각자 이 출제의 정해(正解)를 위한 운산(運算)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살 만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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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허무하다.
<시편>은 탄식한다.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1)
*인생은 맹목이다.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은 ‘나는 물처럼 와서 바람처럼 간다.’고 노래한다.
’왜인지도 모르고 어디서인지도 모른 채 물처럼 저절로 세상에 흘러들었다. 어디로인지도 모른 채 황야에 바람 불 듯 속절없이 세상 밖으로 불려나간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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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그네길이다.
중국 고대의 우(禹)임금이 일찍이 설파했다. “인생은 기숙(寄宿)이요. 죽음은 돌아가는 것이다”(3)
서양에서도 “인생은 고작 여인숙일 뿐, 그리고 우리는 나그네일 뿐” (4)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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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한다.
이백(李白)은 봄날 밤 꽃잔치를 벌이면서 썼다.
’천지라는 것은 만물의 여관이요 시간이라는 것은 백대의 길손이다. 덧없는 인생은 꿈과 같으니 즐긴들 그 얼마이겠는가.’(5)
성(聖) 제롬도 “인생은 꿈”(6)이라 했고, 페르시아의 한 철학자도 “인생은 꿈이요 죽음이 그 꿈을 깨운다.”(7)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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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지루하다.’(8)
’인생은 두 번 듣는 이야기같이 따분한 것이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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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심연이다.’(10)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들어온 이 험난한 곳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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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이 오랜 지병(持病)’(12)이라고 한 시인이 진단했듯이, ‘인생은 불치의 병’(1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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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행로난(行路難)이다.
’인생의 길은 어렵구나. 인생의 길은 어렵구나. 인생의 길은 갈림길이 많은데 나는 지금 어디 있느냐.’(14)
’인생은 참으로 쉽지 않다.’(15)
《토지》에서 강쇠가 도랑을 뛰어넘으면서 하는 말이 있다.
”사램이 살아가는데 우째서 이리 간 곳마다 도랑일꼬.”(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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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해결책이 없다.’(17)
인생은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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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대 칼리프로 영명한 군주이던 압두르 - 라하만 3세는 그가 죽은 뒤에 발견된 수기에서 말했다. “나는 50년 동안 부와 명예, 권력과 쾌락 등 지상의 행복으로서 내가 누릴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의 날들을 곰곰이 꼽아 보니 겨우 14일간이었다.”(18)
인생의 행복은 이렇게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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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이상하다.
’울음으로 시작되고 신음으로 끝나는 인생을 사람들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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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은 것’(20)일까.
롱펠로우는 <인생찬가>를 고창한다.
’삶은 하나의 헛된 꿈이라고 슬픈 곡조로 나에게 말하지 말라.’(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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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단조롭기만 한 것도 아니고 단조(短調)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이 인생의 C장조’(22) - 이런 C장조의 인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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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그래도 아름답다.’(23)고도 하고, ‘인생은 황홀이다.’(24)라고도 한다. ‘인생은 일련의 경이’(25)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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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은 여성이다.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생의 가장 큰 매력이다.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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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인생은 대리석과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27)
’모든 인간의 일생은 전체로 보면 하나의 비극이요 부분으로 보면 하나의 희극’(28)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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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의 맨 마지막 구절처럼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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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당신이 하기에 따라 선의 거처도 되고 악의 거처도 된다.’(29)고 하고, ‘인생은 좋은 것이라고 말할 때, 또 인생은 나쁜 것이라고 말할 때,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동시에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이라고 말해야 옳다.’(30)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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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사는 법을 배우는 데는 일생이 필요하다.’(31)
어느 시인은 ‘내 늙기 전에 오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 내 인생을 바치게 해다오’(32)하고 기원한다.
’우리는 인생이 지나간 다음에야 인생을 사는 법을 배운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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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 맨 끝 부분에는 저승에 간 영혼들이 새로운 삶을 마음대로 선택하는 우화가 나온다. 플라톤은 말한다. “여기 인간의 모험이 있다. 좋은 삶과 나쁜 삶을 분간하고 언제 어디서나 더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지식을 가르쳐 줄 사람을 찾아내어 배울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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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는 말한다. “나의 직업과 나의 기예는 살아가는 것이다.”(35)
산다는 것은 그만큼 전문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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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는 것이 오로지 인생의 목표인 사람들이 많다.
세네카는 “오래 살려고 애쓰지 말라, 충분히 살려고 애쓰라.”(36)고 충고한다.
”사람은 모두 잘 살 생각은 않고 오래 살 생각만 한다. 누구나 잘 사는 행복은 스스로 얻을 수 있지만 아무도 오래 사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데도.”(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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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짧다고?
’그 짧은 시간을 시시하게 보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다.’(38)
’인생은 쓸 줄을 알면 충분히 길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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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쁘게 사는 것이 나쁜 것이다.’(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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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게 살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인생을 하직할 수 있듯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라.’(41)
그리고 ‘매일이 각각 하나의 일생이라고 생각하라.’(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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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참으로 행복하게 살았다면서 자기 생애에 만족하고 배부른 손님이 잔치를 떠나듯 세상에서 물러가는 사람을 보기가 드물다.’(43)
’왜 그대는 배부른 손님처럼 인생에서 물러가지 않는가.’(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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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인생은 살 보람이 있는 것인가.
모든 인생론은 헤겔의 사상에 귀결시킬 수 있다.
’인생은 가치 있는 무엇을 목적으로 가지고 있을 때 가치가 있다.’(45)
(1) 《구약성서》 시편 89:47
(2) 핏제랄드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28,29
(3) ‘生寄也 死歸也’-《십팔사략(十八史略)》 하우씨(夏禹氏)
(4) 제임스 하우엘(1594?-1666·영국 문필가)《친서》1권, 73
(5) 이백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6) 성 제롬(4세기 라틴 성서학자) 《큐프리아누스에의 편지》 140
(7) 호즈비리 11세(페르시아 철학자)
(8) 사뮤엘 존슨 [보스웰이 쓴 전기에서, 1761, 6, 10]
(9) 셰익스피어 《존왕》 3막 4장
(10) 빅토르 위고 《어떤 범죄 이야기》
(11) 쇼펜하우어 《여록과 보유》 ‘삶의 괴로움에 대하여’
(12) 알렉산더 포프 <아버드노트 박사에의 서한시> 132행
(13) 아브라함 코울리 <스카버러 박사에게>
(14) ‘行路難 行路難 多技路 今安在’- 이백<행로난(行路難)>
(15) ‘人生誠未易’-육기(陸機·진(晉) 대 시인) <맹호행(猛虎行)>
(16) 박경리(朴景利) 《토지》 4부 1권
(17)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19장
(18)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52장
(19) 워위크 공작부인, 임종의 침상에서(1678)
(20) 《구약성서》 전도서 9:4
(21) 롱펠로우 <인생찬가> 첫련
(22) 로버트 브라우닝 <보글러 신부> 12련
(23) ‘Das Leben ist doch schon’- 실러 《돈 카를로스》5막
(24) 에머슨 《처세론》 I
(25) 에머슨 《수상록 》’서클’
(26) ‘Vita femina’-니체 《즐거운 지식》§339
(27) 나다니엘 호우도온 《일곱박공의 집》 Ⅱ
(28) 쇼펜하우어 《여록과 보유》 ‘삶의 괴로움에 대하여’
(29) 몽테뉴 《수상록》 I·20
(30) 아나톨 프랑스 《에피퀴르의 뜰》
(31) 세네카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Ⅶ·3
(32) 캐롤라인 메이슨 <내 늙으면>
(33) 몽테뉴 《수상록》 I·26
(34) 플라톤 《국가》 10권, 617 d~618c
(35) 몽테뉴 《수상록》 Ⅱ·6
(36)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편지》 93
(37) Ib.102
(38) 셰익스피어 《헨리4세·제1부》 5막 2장
(39) 세네카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Ⅱ·1
(40) 디오게네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Ⅵ·2·55)
(4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Ⅱ·11
(42)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편지》 101
(43) 호라티우스 《풍자시》 I·1·117
(44) 루크레티우스 《자연에 대하여》Ⅲ·936
(45) 헤겔 《역사철학》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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